AC.46첫 인용 구절인 겔36:9,11,‘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Behold,I am for you,and I will look back to you,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가 거듭남을 다루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저한테는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잘 납득이 되지 않아서요...
이 구절은 겉으로 보면 ‘땅이 회복되고 사람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어떻게 ‘거듭남’ 이야기인가가 바로 납득이 안 되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의 방식은, 이 모든 표현을 ‘사람의 내면 상태에 대한 상응’으로 읽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한 개인 안에서 일어나는 거듭남의 과정을 ‘농사와 번성의 이미지로 풀어낸 것’입니다.
먼저 가장 핵심이 되는 표현은 ‘땅’입니다. 말씀에서 ‘땅’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사람 자신, 특히 그의 마음과 삶의 자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로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라는 말은, 어떤 외적인 회복이 아니라, ‘주님이 그 사람의 내면 안으로 다시 작용하시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거듭남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람 쪽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이제 ‘갈고 심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데, ‘간다’(tilled)는 것은 단단해진 땅을 부드럽게 뒤집는 것이고, ‘심는다’(sown)는 것은 씨를 넣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풀면, 먼저 사람 안에 굳어 있던 자기 생각, 자기 확신, 자기 사랑이 ‘흔들리고 깨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그 자리에 ‘진리가 들어오는 것’이 ‘심는 것’입니다. 즉, 거듭남은 단순히 좋은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존의 상태가 흔들리고 열리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그다음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AC에서 반복되는 구조와 연결됩니다. ‘사람’(man)은 ‘이해,곧 진리와 관련된 것’, ‘짐승’(beast)은 ‘의지,곧 선과 사랑에 속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히 인구 증가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이 함께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번성하고 열매 맺는다’는 것은, 이 둘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 실제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연결이 하나 더 있습니다.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라,너희를 옛 때처럼 거주하게 하리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처음 창조 때의 질서,곧 하나님과 바르게 연결된 상태로 돌아가되,더 깊은 형태로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 식으로 말하면, 이것은 태고 상태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거듭남을 통해 새롭게 이루어지는 질서의 회복’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 줄로 묶어 보면 이렇게 됩니다. 이 구절은 ‘주님이 사람 안에서 다시 일하시기 시작하여,그의 굳은 상태를 깨고 진리를 심으며,그 안에서 선과 진리가 함께 자라 열매 맺게 하여,결국 하나님과 바르게 연결된 상태로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갈아엎고,그 안에 말씀을 심으셔서,결국 우리 안에 새로운 삶이 자라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겔36의‘갈고 심고 번성하게 한다’는 말씀은,주님이 사람 안에서 일하시어 진리와 선을 자라게 하고,열매 맺게 하시는 거듭남의 과정을 농사의 비유로 보여 준 것입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4, 25)
AC.46
‘짐승’(beasts)이 사람의 애정(affections)을 뜻한다는 사실, 곧 악한 사람에게서는 악한 애정을, 선한 사람에게서는 선한 애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말씀의 많은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요, 에스겔입니다.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36:9, 11, 거듭남에 대해 말하는)Behold, I am for you, and I will look back to you, 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 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Ezek. 36:9, 11, treating of regeneration).
요엘입니다.In Joel: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욜2:22)Be not afraid ye beasts of my field, for the dwelling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become grassy(Joel 2:22).
시편에서도In David also: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시73:22)So foolish was I, I was as a beast before thee(Ps. 73:22).
예레미야에서 거듭남을 다루며In Jeremiah, treating of regeneration: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27, 28)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Jer. 31:27–28).
[2]‘들짐승’(Wild animals)도 비슷한 의미인데요, 호세아입니다.“Wild animals” have a similar signification, as in Hosea: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호2:18)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Hos. 2:18).
욥기입니다.In Job: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욥5:22, 23)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Job 5:22–23).
에스겔입니다.In Ezekiel: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겔34:25)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Ezek. 34:25).
이사야입니다.In Isaiah:
장차 들짐승곧 승냥이와 타조도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43:20)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Isa. 43:20).
에스겔입니다.In Ezekiel: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겔31:6)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Ezek. 31:6).
이는 앗수르에 대한 말입니다.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뜻하며, 에덴동산에 비유됩니다.This is said of the Assyrian, by whom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and who is compared to the garden of Eden.
시편입니다.In David: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7너희 용들과바다여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과수와모든 백향목이며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시148:2, 7, 9-10)Glorify ye him, all his angels, glorify Jehovah from the earth, ye whales, fruit trees, wild animal, and every beast, creeping thing, and flying fowl(Ps. 148:2, 7, 9–10).
이렇게 여기서 전반적으로 ‘용들’(whales), ‘과수’(the fruit tree), ‘짐승’(wild animal), ‘가축’(the beast),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가 함께 언급되는데, 이것들이 사람 안의 살아 있는 원리들을 뜻하지 않는다면,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 tree,” “wild animal,” the “beast,” “creeping 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선지자들은 ‘가축’(beasts)과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e earth), 또 ‘가축’(beasts)과 ‘들의 짐승’(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별합니다. 그럼에도 사람 안의 선한 것들은 ‘가축’(beasts)이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주님과 가장 가까운 이들도 ‘생물’(animals)이라 하는데,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field.” 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주3)의 주위에 서 있다가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7:11)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Rev. 7:11),3
※ AE.462에 의하면, 여기 ‘모든 천사’(the angels)는 일층천, 즉 가장 낮은 천국 천사들을, ‘장로들’(the elders)은 이층천, 즉 중간 천국 천사들을, ‘네 생물’(the four animals)은 삼층천, 즉 가장 높은 천국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계19:4)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Rev. 19:4).
또한 복음이 전파되는 이들도 ‘만민’(creatures)이라 하는데, 이는 그들이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또 이르시되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Mark 16:15).
주3.여기 이 단어는 ‘비스트’(beasts,짐승,야수)가 아닌,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에서처럼 ‘애니멀’(animals,짐승,동물)로 정확하게 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의 ‘준’(ζοόν, z¯oon)과, 라틴과 영어의 ‘애니멀’은 서로 정확히 대응하며, ‘생물’(a living creature)이라는 의미에 맞기 때문입니다. 원전(the original)해당 구절들에서 사용된 단어는 준이며, 만일 ‘비스트’ 사용을 의도했다면 썼을 법한 테르(θήρ, th¯er)나 테리온(θηρίον, th¯erion)이 아닙니다.This word is here correctly translated “animals” and not “beasts,” as in the authorized version, for z¯oon in Greek, and animal in Latin and English, precisely correspond to each other, and properly signify “a living creature.” Z¯oon is the word used in these passages in the original, and not th¯er or th¯erion, as would be the case if “beast” had been intended.
해설
이 글은 왜 말씀에서 ‘짐승’(개역개정에서는 자주 ‘가축’으로 번역)과 ‘들짐승’이 그렇게 자주, 그리고 다양한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결코 우연적이거나 장식적인 표현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애정 구조를 드러내는 필수적인 언어라고 말합니다. 사람 안에서 가장 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애정이기 때문에, 애정은 언제나 ‘살아 있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이 글은 먼저 짐승이 선과 악 어느 쪽에도 사용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악한 사람에게서의 짐승은 악한 애정이며, 선한 사람에게서의 짐승은 선한 애정입니다. 그래서 짐승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짐승이 어떤 성질을 지니느냐가 핵심입니다. 거듭남을 다루는 본문들에서는 언제나 짐승이 긍정적인 의미로 등장하는데, 이는 애정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새롭게 정돈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언서들에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린다’는 표현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생각과 애정이 함께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씨는 이해와 인식을, 짐승의 씨는 의지와 애정을 가리킵니다. 거듭남은 어느 한쪽만의 변화가 아니라, 두 영역이 동시에 새롭게 심어지는 과정입니다.
이 글은 또한 ‘짐승’과 ‘들짐승’을 세밀하게 구분합니다. 들짐승은 더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층위의 애정을 뜻하며, 짐승은 보다 질서 잡힌, 의지에 속한 애정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주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와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들짐승과 언약을 맺는다’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시편에서 고래(‘용’으로 번역됨)와 과실나무(‘과수’로 번역됨)와 짐승과 새들이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불리는 장면은, 이 상징들이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찬양은 의식적 행위이므로, 그것은 오직 살아 있는 원리에게만 요청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인간 안의 모든 생명 원리들이 주님을 향하도록 부름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글은 또한 천사들이 ‘짐승들’(‘생물’로 번역됨)로 불린다는 사실을 통해, 짐승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깊은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는 인간적 이성이나 지식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의 충만함이 주님께 가장 가까운 상태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주님께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 ‘짐승’으로 불린다는 것은, 애정이야말로 생명의 핵심임을 분명히 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이 ‘모든 피조물’(‘만민’으로 번역됨)에게 전파된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교리를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말씀 전체가 인간의 애정과 생명을 새롭게 빚어 가는 과정임을, ‘짐승’이라는 상징을 통해 아주 풍성하게 보여 줍니다.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2, ‘만유의 주 앞에’와, 찬67,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입니다.
오늘은 창1 다섯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4절로 25절, AC 글 번호로는 30번에서 45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21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14-25)
이 본문을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에 주목하여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다만 분량 관계상, 여섯째 날 본문인 창1:24-25, 글 번호로는 AC.44-45만 다루고, 그 앞 부분인 넷째 날, 다섯째 날 본문은 원고나 블로그 형태로 주중 리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는 분량이 많네요. 주일예배 시간 관계상 맨 뒷부분만 다루었지만, 앞부분은 일상 중 꼼꼼히 리딩하시기 바랍니다. 거기 정말 보석 같은 내용들이 수두룩합니다. 읽으실수록 뭐랄까... 그러니까 여러분의 심령의 뼈가 충실해지고, 근육이 붙는 걸 느끼실 겁니다. 그것은 영혼의 주춧돌이 반석 위에 놓이는 것으로, 그 결과 영육 간 아주 건실한 빌딩이 높이 세워져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