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1)

 

AC.150

 

사람이 own 안에 있을 때, 곧 자신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여길 때의 상태는 깊은 잠(deep sleep)에 비유되며, 실제로 고대인들은 이 상태를 깊은 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poured out upon them the spirit of deep sleep)(29:10)라고 하며,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51:57)라고 합니다. The state of man when in his own, or when he supposes that he lives from himself, is compared to “deep sleep,” and indeed by the ancients was called deep sleep; and in the Word it is said of such that they have “poured out upon them the spirit of deep sleep” (Isa. 29:10), and that they sleep a sleep (Jer. 51:57).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29:10)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 (51:57)

 

사람의 own은 그 자체로 죽어 있으며, 누구도 자기로부터 생명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계에서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own만을 사랑하고, 완강하게 자신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주장하던 악한 영들조차도,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이 아님을 납득하게 되었고, 마침내 자기로부터 살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특별히 사람의 own이 어떠한지를 알도록 허락받았으며, 그 결과 나는 내가 스스로로부터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생각의 모든 관념이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각, 그러니까 퍼셉션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어떻게, 또 어디서부터 흘러들어오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여기는 것은 거짓된 상태에 있는 것이며, 자신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믿음으로써, 본래라면 결코 자기에게 귀속시키지 않았을 모든 악과 거짓을 스스로에게 귀속시키게 됩니다. 만일 그의 믿음이 사태의 참된 실상과 일치하였다면,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That man’s own is in itself dead, and that no one has any life from himself, has been shown so clearly in the world of spirits, that evil spirits who love nothing but their own, and obstinately insist that they live from themselves, were convinced by sensible experience, and were forced to confess that they do not live from themselves. For a number of years I have been permitted in an especial manner to know how the case is with what is man’s own, and it has been granted to me to perceive clearly that I could think nothing from myself, but that every idea of thought flows in, and sometimes I could perceive how and whence it flowed in. The man who supposes that he lives from himself is therefore in what is false, and by believing that he lives from himself appropriates to himself everything evil and false, which he would never do if his belief were in accordance with the real truth of the case.



해설

 

AC.150은 앞선 AC.147-149에서 설명된 ‘own’ 교리를 ‘의식의 상태’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주는 매우 결정적인 단락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자기로부터 산다고 여기는 상태’를 단순한 오류나 무지로 설명하지 않고, ‘존재 전체가 잠든 상태’, 곧 ‘깊은 잠’으로 규정합니다.

 

이 ‘깊은 잠’은 육체적 수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각의 상실’을 뜻합니다. 사람은 여전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스스로 살아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깨어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는 줄 알지만, 실상은 생명이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 점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영적 체험을 조심스럽게 증언합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 생각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할 수 없다는 것을 지각, 곧 퍼셉션으로 알도록 허락받았다고 말합니다. 생각 하나하나가 흘러들어오며, 심지어 그 유입의 경로까지도 인식할 수 있었다는 이 고백은, 앞선 교리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경험적 인식’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특히 중요한 대목은, 악한 영들조차도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진술입니다. 이는 자신의 own을 사랑하는 정도가 극단적인 존재들조차도, 실제 경험 앞에서는 더 이상 그 주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생명’이라는 관념은 ‘지적 오류’이기 이전에 ‘의지의 집착’이며, 그것이 무너질 때 비로소 진실이 보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단락의 윤리적, 영적 핵심을 짚어 줍니다. 사람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믿는 순간, 그는 모든 악과 거짓을 자기에게 귀속시킵니다. 왜냐하면 그 출발점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명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참된 인식 위에 서 있다면, 그는 악과 거짓을 자기의 본질로 붙들지 않게 됩니다. 책임은 사라지지 않지만, ‘귀속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AC.150이 말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의 근원을 바로 인식하는 전환’을 뜻합니다. 이것이 곧 이어질 본문에서, ‘여자’와 ‘자신의 own’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심화

 

1. ‘29:10

 

 

AC.150, 심화 1, ‘사29:10’

AC.150.심화 1. ‘사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사29:10) 이 구절이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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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1:57

 

 

AC.150, 심화 2, ‘렘51:57’

AC.150.심화 2. ‘렘51:57’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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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refore in what is false,’

 

 

AC.150, 심화 3, ‘therefore in what is false,’

AC.150.심화 3. ‘therefore in what is false,’ The man who supposes that he lives from himself is therefore in what is false, and by believing that he lives from himself appropriates to himself everything evil and false, which he would never do if 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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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For a number of years

 

 

AC.150, 심화 4, ‘For a number of years’

AC.150.심화 4. ‘For a number of years’ For a number of years I have been permitted in an especial manner to know how the case is with what is man’s own, and it has been granted to me to perceive clearly that I could think nothing from myself, but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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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AC.150, 심화 5,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AC.150.심화 5.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고백의 무게와 근본적인 중요성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고백은 단순히 경건한 종교 문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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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창2:21, ‘갈빗대’와 ‘뼈’라는 인간의 own이 어떻게 ‘주님에 의해 살아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9 말씀에서도 사람의 own은 ‘뼈’(bones)를 의미하며, 이는 주님에 의해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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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심화

 

8. ‘속 사람, , 영혼, own(proprium), 자아

 

속 사람, , 영혼, own(proprium), 자아 등 이런 것들이 다 다른 건가요, 아니면 그냥 한 가지에 대한 서로 다른 명칭인가요?

 

 

이것은 스베덴보리를 읽을 때, 거의 반드시 한 번은 크게 헷갈리게 되는 지점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어에서는 영혼’, ‘자아’, ‘내면’, ‘ 같은 말을 굉장히 느슨하게 섞어 쓰는데, 스베덴보리는 인간을 훨씬 더 층위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들은 서로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의 인간 안에 서로 다른 층과 기능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먼저 가장 큰 틀에서 보면, ‘속 사람(internal man)은 인간 안의 주님 쪽으로 열릴 수 있는 내적 인간 전체’를 뜻합니다. 반대로 겉 사람(external man)은 세상과 몸과 감각을 통해 살아가는 바깥 인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은 항상 이 두 층으로 설명됩니다. 속 사람은 천국 쪽을 향하고, 겉 사람은 세상 쪽을 향합니다. 거듭남이란 결국 속 사람이 겉 사람 안으로 질서를 흘려보내는 과정입니다.

 

그다음 (spirit)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인간이 육체를 벗은 뒤에도 계속 살아 있는 실제 인간 자신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은 죽으면 영이 됩니다가 아니라, 사실은 이미 지금도 영적인 존재이며, 단지 육체를 입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영은 몸 없는 유령 같은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살아 있는 내적 실체에 가깝습니다.

 

반면 영혼(soul)은 스베덴보리에게서 비교적 더 깊고 미묘한 층입니다. 영혼은 인간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가장 직접 생명을 받는 가장 안쪽(inmost)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영혼은 인간 전체의 가장 깊은 생명 접점 같은 개념입니다. 다만 스베덴보리는 전통 철학처럼 영혼을 인간 전체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 물질처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영혼에서 영으로, 영에서 몸으로 생명이 흘러간다고 봅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가장 오래 붙들고 계신 own’,  proprium은 또 전혀 다른 범주의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어떤 기관’이 아닙니다. 인간 안에서 내가 나로 느껴지는 자기감’, ‘내 것이라 여기는 중심성’, ‘자기 스스로 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proprium은 인간 존재의 방향성과 중심 의식을 설명하는 말이지, 영혼이나 영 같은 실체 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영혼, 영, 몸은 인간 존재의 층 구조에 가깝고, proprium은 그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중심 삼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도 일종의 proprium은 있지만, 그것은 주님께 열린 proprium입니다. 반면 지옥적 인간의 proprium은 자기 자신에게 닫혀 있습니다.

 

그리고 자아’는 사실 가장 애매한 현대어입니다. 문맥에 따라 ego 비슷하게도 쓰이고, self 비슷하게도 쓰이며, 어떤 때는 그냥 나 자신 정도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 번역에서는 자아라는 말을 너무 넓게 써 버리면 proprium soul spirit이 다 뒤섞여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proprium을 그냥 자아’라고 번역하기 망설이시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아주 단순화해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속 사람은 주님 쪽으로 열릴 수 있는 내적 인간’, 영은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 있는 실제 인간 자신’, 영혼은 주님으로부터 가장 직접 생명을 받는 가장 깊은 층’, proprium 내가 나 자신으로 느껴지는 자기 중심성’, 자아는 현대 한국어의 넓고 애매한 표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의 핵심은 이 모든 층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데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이 전체를 질서 있게 흐르느냐에 있습니다. 그래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연결되고, 영이 살아 있으며, proprium이 주님께 열릴 때, 인간 전체가 비로소 하나의 살아 있는 질서가 됩니다.

 

 

 

AC.149, 창2:21, ‘갈빗대’와 ‘뼈’라는 인간의 own이 어떻게 ‘주님에 의해 살아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9 말씀에서도 사람의 own은 ‘뼈’(bones)를 의미하며, 이는 주님에 의해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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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심화 7, ‘redeemed, saves’

AC.149.심화 7. ‘redeemed, saves’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본문에 나오는 위 문장에서 ‘redeemed’와 ‘saves’를 해설해 주세요. 그 차이가 무엇이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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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심화

 

7. ‘redeemed, saves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본문에 나오는 위 문장에서 redeemed saves를 해설해 주세요. 그 차이가 무엇이며, 시제도 다른 이유가 뭔가요?

 

 

이 문장은 짧지만, 스베덴보리의 구원 이해가 아주 깊게 들어 있는 문장입니다. 특히 목사님께서 보신 것처럼, 왜 하나는 redeemed’이고 다른 하나는 saves’인지, 왜 시제가 다르게 쓰였는지는 그냥 우연이 아닙니다.

 

먼저 redeemed’는 과거형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결정적 역사, 곧 인간을 지옥의 지배와 단절 상태로부터 다시 되찾으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redemption(구속)은 단순 법적 면죄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지옥들을 제압하시고, 인간과 천국 사이의 길을 다시 여신 우주적, 영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redeemed’는 완료된 역사입니다.

 

반면 saves’는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금도 계속 인간 각 사람 안에서 행하고 계시는 구원의 작용을 뜻합니다. 곧, 인간을 실제로 거듭나게 하고, 악과 거짓에서 벗어나게 하며, 천국 질서 안으로 인도하시는 ongoing process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salvation(구원)은 단순히 언젠가 천국 입장권을 받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실제로 사랑과 진리가 형성되는 현재적 과정입니다. 그래서 saves는 현재형으로 쓰입니다.

 

즉,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redeemed’는 주님께서 인류 전체를 위해 이미 이루신 객관적, 우주적 구속의 역사이고, ‘saves’는 주님께서 지금 각 인간 안에서 계속 행하고 계시는 개인적, 실제적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둘은 연결되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식으로 말하면, 주님께서 먼저 구속(redemption)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인간이 실제로 구원(salvation)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지옥들을 제압하시고 천국 질서를 회복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아예 구원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redemption은 구원의 가능성을 연 사건이고, salvation은 그 가능성이 각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문맥상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proprium은 본래 죽은 것이며, 오직 주님만이 참된 Own, 곧 생명 자체를 가지고 계신다고 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자신의 신적 Own으로 인간을 redeem하셨고, 같은 신적 Own으로 지금도 인간을 save하시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는 생명을 만들 수 없고, 오직 주님의 신적 Proprium, 곧 신적 생명만이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사실 시간 구조까지 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결정적 구속(redemption)과 현재 진행 중인 구원(salvation)이 하나의 문장 안에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AC.149, 심화 8, ‘속 사람, 영, 영혼, own(proprium),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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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심화 6, ‘출12:46’

AC.149.심화 6. ‘출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출12:46) 이 구절이 AC.149에 인용된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명령이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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