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3:8)

 

AC.222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hide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는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를 두려워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악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대답, 곧 다다음 절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라는 말로부터도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낯(the face of Jehovah), 또는 주님의 얼굴(the face of the Lord)은 자비(mercy), 평화(peace), 그리고 모든 선(good)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음의 축복 말씀으로부터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to “hide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means to be afraid of the dictate, as is wont to be the case with those who are conscious of evil, is evident from their reply (verse 10):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The “face of Jehovah,” or of the Lord, is mercy, peace, and every good, as is clearly evident from the benediction: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25, 26) Jehovah make his faces to shine upon thee, and be merciful unto thee; Jehovah lift up his faces upon thee, and give thee peace (Num. 6:25–26).

 

또 시편에서, And in David: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67:1) God be merciful unto us, and bless us, and cause his faces to shine upon us (Ps. 67:1).

 

,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4:6) There be many that say, Who will show us any good? Jehovah, lift thou up the light of thy faces upon us (Ps. 4:6).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비는 이사야서에서 자기 앞의 사자(the angel of faces)라고도 불립니다. The mercy of the Lord is therefore called the “angel of faces,” in Isaiah: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사63:7-9) I will make mention of the mercies of Jehovah; he hath requited them according to his mercies, and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his mercies; and he became their savior. In all their affliction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faces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pity he redeemed them (Isa. 63:7–9).

 

 

해설

 

AC.222는 창세기 38절의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를 설명하면서, 말씀에서 ‘여호와의 낯(the face of Jehovah)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 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무서워하여 숨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구절을 해석합니다.

 

그에 따르면 주님의 얼굴은 진노나 심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비(mercy), 평화(peace), 사랑(love), 그리고 모든 선(good)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해서 ‘주의 얼굴을 비추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만일 주님의 얼굴이 두려움과 심판 자체라면, 아무도 그 얼굴이 자신에게 비추어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담은 그런 얼굴을 피하여 숨었을까요? 이유는 주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기 안의 악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악을 사랑하는 상태에서는 주님의 사랑조차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눈병이 난 사람이 태양 빛을 괴롭게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은 변하지 않았지만, 눈의 상태가 변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현상을 영계에서도 반복해서 보았다고 설명합니다. 선한 영이나 천사가 가까이 오면 악한 영들은 고통을 느끼며 물러납니다. 천사가 그들을 공격하기 때문이 아니라, 천국의 사랑과 평화가 그들의 상태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도망갑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 줍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도 얼굴을 돌리지 않으십니다. 실제로 말씀 전체를 보면, 주님의 얼굴은 언제나 자비를 향하고 있습니다. 변하는 것은 인간의 상태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때는 그 얼굴이 평화와 기쁨으로 느껴지고, 자기 사랑과 악 속에 있을 때는 같은 얼굴이 불편함과 두려움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이사야 63장의 ‘자기 앞의 사자(the angel of faces)를 주님의 자비의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까이 오시는 사랑의 임재를 뜻합니다. 즉 ‘얼굴’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주님의 가장 가까운 현존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결국 AC.222의 핵심은, 아담이 숨은 이유가 주님의 진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은 여전히 자비와 평화와 선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 사랑을 더 이상 기쁨으로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숨으려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진리의 말씀을 피하고 양심의 소리를 듣기 싫어할 때, 그는 실제로 주님에게서 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심화

 

1. ‘6:25-26

 

 

AC.222, 심화 1, ‘민6:25-26’

AC.222.심화 1. ‘민6:25-26’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6:25, 26) Jehovah make his

bygrace.kr

 

2. ‘67:1

 

 

AC.222, 심화 2, ‘시67:1’

AC.222.심화 2. ‘시67: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시67:1) God be merciful unto us, and bless us, and cause his faces to shine upon us (Ps. 67:1). 이 구절을 AC.222

bygrace.kr

 

3. ‘4:6

 

 

AC.222, 심화 3, ‘시4:6’

AC.222.심화 3. ‘시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4:6) There be many that say, Who will show us any good? Jehovah, lift thou up the li

bygrace.kr

 

4. ‘63:7-9

 

 

AC.222, 심화 4, ‘사63:7-9’

AC.222.심화 4. ‘사63:7-9’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그가 말씀하

bygrace.kr

 

 

 

AC.223,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낯’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bygrace.kr

 

AC.221, 창3:8, ‘그 날 바람이 불 때’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21.심화

 

1.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4) I must work the works of him that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cometh when no man can work (John 9:4).

 

 

이 구절을 AC.221에서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day)은 신앙과 진리의 빛이 있는 상태를, ‘(night)은 신앙과 진리의 빛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주님께서 단순히 시간이 있을 때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시간보다 상태(state)를 봅니다. 그에 따르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아니라 진리가 비추는 상태이며, ‘’은 해가 진 시간이 아니라 진리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일할 수 있다’는 말은 사람이 아직 진리를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양심이 살아 있고, 회개할 수 있으며, 주님의 인도를 따를 수 있는 상태입니다. 반면 ‘밤이 오면 아무도 일할 수 없다’는 말은 진리의 빛이 거부되고 신앙이 사라져 더 이상 영적 진보가 어려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AC.221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창3:8의 ‘그 날 바람이 불 때(the breath of the day)와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표현을 태고교회 후손들이 아직 얼마간의 지각(perception)을 보유하고 있던 상태로 해석합니다. 즉 완전한 낮은 아니지만, 아직 밤도 아닌 상태입니다. 빛은 약해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요9:4 AC.221에서 매우 적절한 증거 구절이 됩니다. 주님 자신도 ‘’과 ‘’을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밝은 낮과 같은 퍼셉션 가운데 있었지만, 점차 ‘날의 서늘함’으로 내려왔고, 결국 밤에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거듭남의 과정에도 적용됩니다. 사람이 주님의 진리를 들을 수 있고, 양심의 소리에 응답할 수 있으며,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를 느낄 수 있을 때가 바로 ‘’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 빛을 거부하면 점차 ‘’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낮이 있을 때 일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창3:8의 아담과 하와는 이미 한낮의 밝은 퍼셉션은 잃었지만, 아직 완전한 밤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고, 여전히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여전히 자신들이 타락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 날 바람이 불 때’입니다.

 

그러므로 AC.221에서 요9:4를 인용한 이유는, 말씀의 ‘’과 ‘’이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신앙과 지각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창3:8의 ‘그 날 바람이 불 때’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영적 빛의 상태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태고교회의 후손들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퍼셉션의 빛은 이미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한 밤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AC.221, 창3:8, ‘그 날 바람이 불 때’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3:8)

 

AC.221

 

그 날 바람이 불 때(the air or breath of the day)란 교회가 아직 얼마간의 지각(perception)을 남겨두고 있던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day)(night)의 의미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태고인들(the most ancient people)은 교회의 상태들을 낮과 밤의 시간들에 비유하였는데, 교회가 아직 빛 가운데 있을 때의 상태를 낮의 시간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상태가 그 날 바람이 불 때에 비유된 것은, 그들에게 아직도 자신들이 타락하였음을 알 수 있는 얼마간의 지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신앙(faith)의 상태는 (day), 신앙 없는 상태(no faith)(night)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에 이르기를, That by the “air” or “breath” “of the day” is signified a period when the church had still somewhat of perception remaining,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day” and of “night.”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the states of the church to the times of the day and of the night, to the times of the day when the church was still in light, wherefore this state is compared to the breath or air “of the day,” because there was still some remnant of perception by which they knew that they were fallen. The Lord also calls the state of faith “day,” and that of no faith “night”; as in John: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4) I must work the works of him that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cometh when no man can work (John 9:4).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창세기 1장에 보면 사람의 거듭남(regeneration)의 상태들을 날들(days)이라 하고 있습니다. The states of the regeneration of man were for the same reason called “days” in chapter 1.

 

 

해설

 

AC.221은 창세기 38절의 ‘그 날 바람이 불 때’라는 표현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저녁 무렵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시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한 묘사로 해석합니다.

 

그에 따르면 말씀에서 ‘(day)은 신앙과 진리의 빛 가운데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night)은 신앙과 진리가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날 바람이 불 때’란 완전한 낮도 아니고, 완전한 밤도 아닌 상태, 곧 빛이 약해지고 어둠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 직후의 태고교회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뱀의 설득을 받아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하였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타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양심의 소리와 퍼셉션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 날 바람이 불 때’란 ‘자신들이 타락하였음을 알 수 있는 얼마간의 퍼셉션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만일 그 퍼셉션마저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들은 숨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잘못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주님의 음성을 두려워할 만큼의 영적 감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서늘함’ 또는 ‘바람(breath, air)이라는 표현도 의미가 있습니다. 뜨거운 한낮의 강한 빛은 아닙니다. 이미 빛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밤도 아닙니다. 마지막 남은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황혼과 같은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개인의 영적 상태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처음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에는 아직 양심이 살아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찔리고, 악을 행하면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날의 서늘함’, 곧 ‘그 날 바람이 불 때’ 같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계속 그 음성을 무시하면 결국 밤이 찾아옵니다. 그때는 양심도 무디어지고, 진리에 대한 감각도 사라지며, 잘못을 잘못으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창조의 날들도 같은 원리로 이해합니다. 거기서의 ‘첫째 날’, ‘둘째 날’ 등은 자연적인 24시간이 아니라 거듭남의 단계들입니다. 즉 말씀에서 ‘’은 흔히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AC.221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주님의 음성을 들은 때는 완전한 밤이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날의 서늘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은 양심이 살아 있었고, 아직은 자신들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심판의 순간이라기보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영적 감각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를 보여 주는 매우 자비로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마지막 남은 빛을 통해 인간을 다시 부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심화

 

1. ‘9:4

 

 

AC.221, 심화 1, ‘요9:4’

AC.221.심화 1. ‘요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9:4) I must work the works of him that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c

bygrace.kr

 

 

 

AC.222,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bygrace.kr

 

AC.220, 창3:8, ‘거니시는 소리’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