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5.심화

 

2. 10:35-36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이 구절은 민10:35-36인데, AC.85의 문맥에서 보면 ‘여섯 날의 싸움과 일곱째 날의 안식’이라는 구조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문자로는 언약궤가 이동할 때와 멈출 때 모세가 외친 기도이지만, 속뜻으로는 ‘주님이 우리 안에서 싸우실 때의 상태’와 ‘그 싸움이 끝나고 평안에 들어갈 때의 상태’를 나란히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궤가 떠날 때’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라는 부분은, 거듭남 과정에서 반복되는 ‘영적 싸움’, 곧 유혹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대적’, ‘주를 미워하는 자’는 외부의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거짓과 악, 그리고 그것들과 결합된 영적 세력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싸움에서 모세가 ‘우리가 싸우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여 일어나사...’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싸움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계속 보셨던 ‘his work’, 곧 주님의 일입니다. 인간은 그 싸움에 참여하지만, 실제로 악과 거짓을 흩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반대로 ‘궤가 쉴 때’의 ‘여호와여 돌아오소서’라는 말씀은, 싸움이 멈추고 질서가 자리 잡는 상태, 곧 안식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돌아오소서’는 주님이 멀리 계셨다가 다시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싸움 가운데서 다소 가려졌던 주님의 임재가 다시 분명하게 인식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수만 수천’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질서 있게 정돈된 선과 진리의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곧, 내적과 외적, 속과 겉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정리된 상태입니다.

 

이 두 구절을 하나로 보면 아주 분명한 흐름이 드러납니다. ‘떠날 때 - 싸움 - 주님이 일어나심’, 그리고 ‘쉴 때 - 평안 - 주님이 거하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의 여섯 날과 일곱째 날, 곧 ‘싸움의 상태’와 ‘안식의 상태’의 반복 구조입니다. 그래서 AC.85는 이 말씀을 통해 ‘안식은 싸움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며, 그 싸움과 안식 모두가 주님의 일이다’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우리가 싸울 때도 주님이 싸우시고, 우리가 쉴 때도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전 과정이 주님의 일이다.’

 

 

 

AC.85, 심화 3, ‘민10:33’

AC.85.심화 3. ‘민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이 구절, 민10:33은 AC.85의 흐름에서 매우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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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5, 심화 1, ‘막2:28’

AC.85.심화 1. ‘막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구절, 막2:28은 AC.85의 맥락에서 아주 결정적인 열쇠 역할을 합니다. 먼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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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5.심화

 

1.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구절, 막2:28 AC.85의 맥락에서 아주 결정적인 열쇠 역할을 합니다. 먼저 문자 그대로 보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선언인데, 스베덴보리의 흐름 안에서는 이것이 단순히 율법 해석 권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안식의 본질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밝히는 말씀으로 열립니다.

 

앞에서 보신 것처럼 ‘안식일’은 단순히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여섯 날의 싸움 이후에 이루어지는 ‘사랑과 신앙이 하나가 된 상태’, 곧 거듭남의 완성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은, 그 상태를 주관하시고 이루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가리킵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안식일을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된다’는 식의 자유 선언이 아니라, ‘안식이라는 상태 자체가 주님께 속해 있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인자(the Son of Man)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인자’는 주님의 신적 진리, 곧 말씀으로서의 주님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진리 자체’로서 인간 안에서 질서를 세우시고, 그 질서가 완성될 때 ‘안식’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은, ‘진리이신 주님이 안식 상태를 이루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을 AC.85의 흐름과 연결하면 더 또렷해집니다. 여섯 날 동안의 모든 싸움이 사실은 주님의 일이었고, 일곱째 날의 안식도 역시 주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안에서 싸우고, 또 평안을 누리지만, 그 시작도 과정도 완성도 모두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조차 인간이 ‘지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상태’입니다.

 

안식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 이루시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AC.85, 심화 2, ‘민10:35-36’

AC.85.심화 2. ‘민10:35-36’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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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5, 창2:2-3, ‘창2 안식 사상의 확장’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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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이며, 그러므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아르카나(arcana)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천적 인간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지 못하였고, 영적 인간이 어떤 상태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동일시하였으나, 그 둘 사이에는 사실 매우 큰 차이가 있으며, 이는 AC.81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관해서,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또는 안식일(sabbath)이라는 사실에 관해서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라는 점에서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은 주님이 곧 사람 자신(man himself)이시며, 동시에 안식일 그 자체(the sabbath itself)이심을 뜻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를 가리켜 안식일이라 하는데, 이 안식은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다른 말로는 영원한 평화와 쉼이라고 합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그 이후에 있었던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이후에 이어진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들 역시 안식일이며, 또한 거듭남을 거쳐 천적 상태가 된 모든 개인 역시 안식일입니다. 이는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여섯 날의 싸움과 수고가 선행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회에서 노동의 날들과 안식일로 대표, 즉 표상되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주님과 그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이 광야에서 언약궤가 나아갈 때와 쉴 때로도 표상되었습니다. 언약궤가 광야에서 행진할 때는 싸움과 시험이, 쉴 때는 평화의 상태가 표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궤가 나아갈 때에 모세는 말하기를,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또한 언약궤에 관하여는, 그것이 여호와의 산에서 나아가 그들을 위하여 쉴 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10:33)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10:33)

 

[3] 천적 인간의 안식은 이사야에서 안식일로 묘사됩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58:13, 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이와 같이 천적 인간의 성질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따라 행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기쁨을 따라 행하는 데 있으며, 그것이 곧 그의 욕망(desire)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데, 이것이 여기서는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로 표현되었고,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도 누리게 되는데,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해설

 

이 글은 창세기 2장의 안식 사상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밀도 높은 정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천적 인간 = 일곱째 날 = 안식일’이라는 등식을 단순한 해석 차원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아르카나’라고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 이 내용은 새로운 교리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이미 들어 있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했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거의 구분하지 못해 왔고, 그 결과 신앙 중심의 상태를 곧 완성 상태로 오해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C.81에서 이미 보았듯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이 중심인 상태와 사랑이 중심인 상태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내적 질서는 전혀 다릅니다. 이 차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안식일의 본질 역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안식의 본질을 주님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주님이 곧 안식일이시라는 말은, 안식이 어떤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인격적 실재’임을 뜻합니다. 주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말씀은, 주님이 인간의 참된 안식이시며, 동시에 참된 인간의 형상이시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주님이 곧 ‘사람 자신’이며 ‘안식일 그 자체’라고까지 말합니다. 안식은 주님과 분리된 어떤 상태가 아니라,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만 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로부터 중요한 확장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나라는 ‘안식일’이라 불리며, 이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뜻합니다. 안식은 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태고교회는 그 이후의 어떤 교회보다도 주님의 안식일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들이 도덕적으로 더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중심이 사랑과 퍼셉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등장한 모든 가장 내적인 교회들, 그리고 거듭남을 거쳐 천적인 상태에 이른 각 개인 역시 이름하여 안식일이라 합니다. 이는 그가 주님의 형상, 곧 주님의 안식을 담는 그릇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안식은 갑자기 주어지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엿새 동안의 싸움과 수고가 선행한다고 말입니다. 이는 앞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질서입니다. 영적인 단계의 싸움과 선택, 유혹과 투쟁 없이는 천적인 안식이 오지 않습니다. 안식은 싸움을 회피한 결과가 아니라, ‘싸움을 통과한 결과’입니다.

 

이 구조는 유대교회의 제도 안에 표상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육일 간의 노동과 안식일의 구분은 단순한 사회 질서가 아니라, 인간 내적 상태의 상응이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유대교회에 제정된 것 가운데 주님과 그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단언합니다. 즉, 안식일 계명은 외적 순종을 요구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표지’였습니다.

 

이 표상은 광야에서 언약궤의 움직임에서도 반복됩니다. 언약궤가 나아갈 때는 싸움과 시험이 표상되고, 쉴 때는 평화의 상태가 표상됩니다. 모세의 두 기도는 이 두 상태를 정확히 가릅니다. 나아갈 때에는 원수들이 흩어지기를 구하고, 쉴 때에는 여호와께서 백성 가운데로 돌아오시기를 구합니다. 싸움의 때와 안식의 때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언약궤가 ‘쉴 곳을 찾으러’ 나아갔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안식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의 영적 여정 전체를 요약하는 말과도 같습니다. 유혹과 시험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그 끝에는 반드시 쉼이 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이사야를 통해 천적 인간의 안식을 한층 더 내적으로 묘사합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행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멈추는 것입니다. 자기 길, 자기 기쁨, 자기 말을 내려놓는 것이 안식의 본질입니다. 이는 금욕이나 억압이 아니라, ‘중심의 이동’입니다. 자기 자신이 중심에서 물러나고, 주님의 기쁨이 중심에 놓일 때, 비로소 안식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은 자기 욕망을 따라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무욕(無慾)의 사람이라는 건 아닙니다. 그의 욕망 자체가 주님의 선하신 기쁨과 일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천적 자유입니다. 그는 억지로 자기 뜻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의 뜻이 이미 주님의 뜻 안에서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그는 두 가지를 동시에 누립니다. 하나는 내적 평화와 행복이며, 다른 하나는 외적 평온과 기쁨입니다. 이사야에서 말하는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는 내적 상승을,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는 말은 외적 삶의 안정과 충만을 뜻합니다. 천적 안식은 내면과 외면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을 하나로 엮습니다.

 

AC.85는 이렇게 해서 안식일을 도덕규범이나 종교 의무에서 해방, ‘인간 완성의 상태’로 되돌려 놓습니다. 안식은 멈춤이 아니라, 가장 깊은 일치이며, 가장 충만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은 주님 자신으로부터 오며, 주님을 닮아갈수록 인간 안에서 실제가 됩니다.  

 

 

심화

 

1.2:28

 

 

AC.85, 심화 1, ‘막2:28’

AC.85.심화 1. ‘막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구절, 막2:28은 AC.85의 맥락에서 아주 결정적인 열쇠 역할을 합니다. 먼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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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5-36

 

 

AC.85, 심화 2, ‘민10:35-36’

AC.85.심화 2. ‘민10:35-36’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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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33

 

 

AC.85, 심화 3, ‘민10:33’

AC.85.심화 3. ‘민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이 구절, 민10:33은 AC.85의 흐름에서 매우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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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13-14

 

 

AC.85, 심화 4, ‘사58:13-14’

AC.85.심화 4. ‘사58:13-14’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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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르카나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

 

 

AC.85, 심화 5, ‘아르카나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

AC.85.심화 5. ‘아르카나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 본문 중,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이며, 그러므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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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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