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70.심화

 

4.  몇 시간이나?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scarcely anything was left to me except thought, and the consequent perception, and this for some hours. (AC.170)

 

 몇 시간이나 지속되는 걸까요?

 

 

AC.170의 ‘몇 시간’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흥미롭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죽음을 단순 ‘순간적 소멸’이 아니라, 실제로는 단계적 전이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를 벗는 순간 곧바로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확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감각과 연결이 점차 풀리면서 영적 의식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실제로 어떤 ‘transition period’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몇 시간’이 꼭 지상 시간 개념 그대로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계에서는 상태(state)가 시간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몇 시간’이라고 말할 때는, 인간이 자연적 의식에서 영적 의식으로 옮겨가는 일정한 상태 지속을 인간 언어로 표현한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는 실제로 그것이 전혀 찰나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시간이 필요한가? 스베덴보리 흐름에서는, 인간은 평생 육체 감각과 자연적 사고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그것이 완전히 제거되면, 인간 존재 전체에 너무 큰 충격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을 점진적으로 자연적 층위에서 영적 층위로 옮기십니다. 마치 아주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강한 빛을 보면 눈이 견디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죽음 직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살아 있는 동일한 인간’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갑자기 모든 감각과 자기 의식이 끊겨 버린다면, 인간은 자기 연속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나는 여전히 나다’라고 느끼는 가운데 점차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몇 시간은 그런 부드러운 이행 과정과 관련됩니다.

 

그리고 AC.170 문맥을 보면,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심장과 호흡의 분리 과정에 주목합니다. 그는 인간 자연 생명의 중심이 심장과 호흡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단순히 심장이 멈추는 기계적 사건이 아니라, 자연적 호흡과 영적 의식 사이의 연결이 점차 풀리는 과정처럼 설명됩니다. 이 과정이 완전히 instantaneous하지 않기 때문에, ‘thought consequent perception만 남는 상태’가 얼마간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주님의 자비와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 전체에서 주님은 인간을 abrupt하게 다루지 않으십니다. 천천히, 상태에 맞게,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죽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갑자기 낯선 우주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연 세계 감각을 놓고 영계 의식 안으로 옮겨집니다.

 

사실 이 설명은 매우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찰나의 절단’이 아니라, 주님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는 매우 세심한 transition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죽을 때, 혼자 통과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이 함께하며, 주님이 인간 의식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음 상태로 이끄신다고 봅니다. 그래서 ‘몇 시간’이라는 표현은 단순 시간 정보 이상으로, 죽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드러운 전이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AC.170, 창2 뒤, ‘심장 관련, 천적 천사들과 결합된 느낌’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0 천적 천사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심장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bygrace.kr

 

AC.170, 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AC.170.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위 AC.170의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그런 얘기보다는 무슨 터널 통과 후, 누구를 만났는데 아직 올 때가 안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70.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위 AC.170의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그런 얘기보다는 무슨 터널 통과 후, 누구를 만났는데 아직 올 때가 안 되었으니 돌아가라 하였다, 사고 후 갑자기 몸에서 튕겨 나와 공중에서 자기 몸, 그리고 사고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여러 케이스들이 수두룩합니다. 육체에서 영으로 이동, 이행하는 프로세스가 250년 전 스베덴보리 때와는 또 달라진 건가요?

 

 

스베덴보리 관점으로 보면, 아닙니다. 인간이 육체에서 영적 상태로 옮겨가는 근본 질서 자체가 시대 따라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오늘날 사람들이 보고 듣고 기억하여 이야기하는 ‘표현 양식’과 ‘의식 경험의 외형’은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나 임사체험(NDE) 사례들 가운데 상당수는,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초기 영계 전이 상태와 어느 정도 겹쳐 보이는 부분도 실제로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몸 밖으로 나와 사고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죽은 가족이나 존재를 만났다’, ‘아직 올 때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빛이나 터널을 통과했다’ 같은 경험들은, 스베덴보리 설명과 완전히 무관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죽음 직후 인간이 여전히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인간처럼 느끼며, 점차 새로운 의식 상태 안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신이 몸 밖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부분은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차이는, 스베덴보리는 이런 경험의 ‘영상적 외형’보다 그 배후 영적 질서를 훨씬 더 중요하게 본다는 점입니다. 현대 임사체험 이야기들은 대개 개인 경험 중심이고, 감정적, 시각적 묘사가 강합니다. 반면 스베덴보리는 그 현상을 천국과 지옥, influx, 상태 변화, 천사 공동체, 인간 구조 같은 훨씬 큰 질서 안에서 설명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현대 NDE 증언들은 종종 ‘무엇을 보았는가’ 중심이고, 스베덴보리는 ‘왜 그런 상태가 가능한가’를 설명하려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한 죽음 과정은 ‘보편적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장면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영계에서 각 사람 상태에 따라 경험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고 repeatedly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의 평화롭게 옮겨지고, 어떤 사람은 한동안 혼란을 겪고, 어떤 사람은 익숙한 환경 비슷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 임사체험들 가운데 일부는, 영계 입구에 해당하는 ‘영들의 세계(world of spirits) 수준 경험과 어느 정도 연결해 볼 여지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영들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 상태이며, 사람은 거기서 점차 자기 내면 상태에 맞는 방향으로 정렬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만났다’, ‘돌아가라고 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같은 경험도 완전히 스베덴보리 구조 밖 이야기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스베덴보리라면 probably 매우 조심스럽게 경고했을 부분도 있습니다. 그는 영적 경험 자체를 곧 진리 보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영계에도 appearance가 있고, 인간 기억과 imagination이 섞일 수 있으며, 어떤 경험은 상태에 따라 symbolic하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그 경험이 인간을 주님과 선한 삶 쪽으로 이끄는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그리고 ‘250년 전과 지금 프로세스가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스베덴보리식으로는 probably 이렇게 답할 가능성이 큽니다. ‘근본 질서는 동일하지만, 인간 의식과 문화와 상상 구조가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사람들은 영화적 이미지와 시각적 서사에 익숙하기 때문에, 터널, 빛, 공중 시점 같은 imagery로 경험을 기억하고 설명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결국 스베덴보리에게 핵심은, 죽음이 존재 소멸이 아니라 상태 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육체를 벗은 뒤에도 여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며, 주님의 질서 안에서 다음 상태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현대 임사체험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는 바로 그 ‘전이 과정’의 단편적 경험들로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을 언제나 더 큰 영적 질서와 연결해서 보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AC.170, 심화 4, 왜 ‘몇 시간’이나?

AC.170.심화 4. 왜 ‘몇 시간’이나?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scarcely anything was

bygrace.kr

 

AC.170, 심화 2, ‘갑작스런 죽음’(sudden death)에서도?

AC.170.심화 2. ‘갑작스런 죽음’(sudden death)에서도?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70.심화

 

2. ‘갑작스런 죽음(sudden death)에서도?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scarcely anything was left to me except thought, and the consequent perception, and this for some hours. (AC.170)

 

이런 상태는 고요하고 평안한 임종 때만 가능한 건가요? 청천벽력 같은 교통사고나 전쟁이나 테러 같은 상황 가운데 맞이하는 갑작스런 죽음에서도 동일한가요?

 

 

스베덴보리 설명으로는, 네, 기본적으로는 동일합니다. AC.170 이하에서 그가 설명하는 것은 ‘육체 죽음의 외적 상황’보다, 육체와 영 사이의 연결이 끊어질 때, 영 안에서 일어나는 더 깊은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요한 임종이든, 갑작스러운 사고든, 전쟁이든, 테러든, 본질적인 영적 과정 자체는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통 죽음을 외적 사건으로만 봅니다. 평화로운 병상 죽음, 교통사고 즉사, 폭발, 익사 같은 차이에 크게 주목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진짜 생명은 육체가 아니라 영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육체 차원의 충격이 곧 영 자체의 파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여러 곳에서, 사람이 죽는 순간 주님과 천사들이 매우 가까이 함께하며, 특히 심장과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영이 혼란 속에 방치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갑작스러운 죽음의 경우에도, 인간은 대개 곧바로 자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점차 다른 상태 안으로 옮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AC.170의 ‘마침내 거의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만 남았다’는 상태는, 외적 감각과 육체 연결이 점점 뒤로 물러나고, 보다 내적인 의식 상태가 남게 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육체 죽음 방식보다, 영이 점차 자연적 감각에서 분리되는 과정과 관련됩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사고나 폭력적 죽음에서는 외적 의식 차원에 순간적 충격과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 설명에서는 그것이 영의 본질 상태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일수록 주님의 보호와 천사들의 돌봄이 더욱 가까이 작용한다고 말하는 흐름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죽음 상태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아래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죽은 직후에도 한동안은 자신이 여전히 이전처럼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죽음이 존재 소멸이 아니라 상태 전이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전쟁이나 재난 속 sudden death도, 영적으로는 ‘갑자기 무(無)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영계 질서 안으로 인도되는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또 목사님께서 주목하신 AC.170의 상태는 굉장히 ‘조용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이것 역시 꼭 외적 환경의 고요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적 감각층이 뒤로 물러나면서, 더 내적인 의식만 남게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따라서 바깥에서는 매우 격렬한 상황 속 죽음이라도, 영 자체는 전혀 다른 층위에서 이 과정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는 순간이 너무 끔찍하면 영혼도 망가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 흐름에서는, 주님은 인간을 단순 외적 사고 현장에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육체가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영은 여전히 주님의 질서와 보호 아래 다음 상태로 인도됩니다.

 

 

 

AC.170, 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AC.170.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위 AC.170의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그런 얘기보다는 무슨 터널 통과 후, 누구를 만났는데 아직 올 때가 안

bygrace.kr

 

AC.170, 심화 1, ‘심장 영역’(the region of the heart)

AC.170.심화 1. ‘심장 영역’(the region of the heart) 천적 천사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심장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저는 심장과 관련해서는 그들과 하나로 결합된 것처럼 느껴졌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