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8 심화

3. 피를 오른쪽 귀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발랐을까?’

 

8:23-24는 제사장 위임식 가운데 가장 낯설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모세는 위임식 숫양의 피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왜 하필 이 세 곳이며, 왜 모두 오른쪽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의 원전이 놀라울 만큼 구체적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0060(29:20)은 위임식 숫양의 피가 주님의 신적 선에서 나오는 신적 진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세 곳에 발라지는 것은 같은 신적 진리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AC.10061(29:20)은 오른쪽 귓부리를 해설합니다. 귀는 지각을 의미하며, 특히 오른쪽 귀는 선에서 나오는 진리를 지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오른쪽이 선에서 나오는 진리와 관련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귀에 피가 발라지는 것은 먼저 주님의 진리를 듣고 그 진리를 속에서 지각하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그 다음은 오른손 엄지입니다. AC.10062(29:20)는 엄지손가락이 선을 통한 진리의 능력, 곧 선에서 나오는 진리가 가진 힘과 그로부터 생기는 이해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손은 능력과 행동을 나타내며, 엄지는 손의 힘을 대표하는 끝부분입니다. 귀에서 받아들인 진리가 이제 이해와 능력, 그리고 행동의 영역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오른발 엄지입니다. AC.10063(29:20)은 이것을 가장 바깥 천국에 해당하는 이해와 연결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머리와 그 기관들이 가장 안쪽 천국에, 몸과 손이 중간 천국에, 발이 가장 바깥 천국에 상응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귀··발은 단순한 세 신체 부위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완전한 질서를 보여 줍니다.

 

이것을 인간의 거듭남에 적용하면 매우 실제적인 의미가 나타납니다. 진리는 먼저 귀로 들려야합니다. 그러나 들었다고 거듭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이해와 능력으로 내려와 손에서 행해져야 하고, 다시 가장 바깥 일상의 삶으로 내려와 발이 걷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안다말씀대로 산다사이에는 귀에서 발까지의 거리가 있습니다. 설교를 듣고 감동하는 것은 귀의 단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해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손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순간만이 아니라 돈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운전하고, 일하고, 가족과 살아가는 일상의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발의 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 곳 모두 오른쪽이라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오른쪽은 선에서 나오는 진리와 연결됩니다. 단순히 진리를 많이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선으로부터 진리를 듣고 이해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진리는 제사장의 귀와 손과 발을 거룩하게 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레8의 피는 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손을 지나 발까지 내려갑니다. 주님의 신적 진리는 우리의 가장 안쪽 지각에서 시작하여 이해와 행동을 지나 가장 바깥 일상의 삶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속 사람에서 받아들인 진리가 겉 사람의 삶까지 질서 있게 할 때 거듭남이 실제가 됩니다.

 

이것이 위임식의 본질과도 연결됩니다. 주님의 쓰임을 감당하는 사람은 진리를 잘 듣는 사람만도 아니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만도 아닙니다. 주님의 진리를 듣고, 그 진리를 선에서 이해하며, 손으로 행하고, 발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른쪽 귀와 손과 발에 같은 피가 발라진 것은 한 사람 전체가 신적 진리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SW.8 심화 3)

 

 

 

SW.레8 심화4, ‘왜 제물을 제사장의 손에 올려놓고 흔들었을까?’

SW.레8 심화4. ‘왜 제물을 제사장의 손에 올려놓고 흔들었을까?’ 레8:25-28에서는 위임식의 뜻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숫양의 기름과 오른쪽 뒷다리, 무교병과 기름 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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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레8 심화2, ‘왜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까?’

SW.레8 심화2. ‘왜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까?’ 레8:12에서 모세는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기름을 손이나 옷에 조금 바른 것이 아니라 ‘머리에 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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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8 심화

2.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까?’

 

8:12에서 모세는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기름을 손이나 옷에 조금 바른 것이 아니라 머리에 붓습니다.제사장 위임식에서 왜 기름 부음이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스베덴보리는 출29의 병행 본문을 해설하면서 관유를 신적 선으로의 취임을 표상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아론은 최고 의미에서 주님을 신적 선에 관하여 표상하고,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주님의 인성 전체에 있는 신적 선을 나타냅니다. 기름이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제사의 여러 규례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됩니다.

 

따라서 제사장직의 가장 깊은 중심은 사랑의 입니다. 제사장은 진리를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그 진리의 생명은 선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차갑고, 체어리티가 없는 신앙은 생명이 없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외적으로는 제사장의 옷을 입었어도 그 안에 관유가 없는 셈입니다.

 

관유가 머리에 부어진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머리는 몸 전체의 첫째와 가장 높은 부분이며, 스베덴보리의 상응에서 첫째와 가장 높은 것은 전체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사랑의 선이 일부 행동에만 붙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람을 지배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목회나 교회 봉사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정을 섬기든, 직장에서 일하든, 어려운 사람을 돕든, 말씀을 가르치든, 그 쓰임을 실제로 천국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일을 움직이는 사랑입니다. 똑같은 행동도 자기 명예를 위해 할 수도 있고 이웃의 선을 위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레8에서는 씻음 다음에 옷을 입히고, 그 후 관유를 붓습니다. 진리로 정결하게 되고 진리를 입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사랑의 선에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진리가 길을 보여 준다면 사랑은 그 길을 실제로 걷게 하는 생명입니다.

 

참된 기름 부음은 어떤 특별한 종교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의지 안으로 들어와 선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선한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이 깊어지면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따라서 아론의 머리에 부어진 관유는 제사장이라는 지위에 권위를 더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모든 거룩한 쓰임의 근원이 사랑의 선이라는 선언입니다. 진리가 아무리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없으며,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선이 전체 사람을 채울 때 비로소 진리는 살아 있는 쓰임이 됩니다. (SW.8 심화 2)

 

 

 

SW.레8 심화3, ‘왜 피를 오른쪽 귀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발랐을까?’

SW.레8 심화3. ‘왜 피를 오른쪽 귀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발랐을까?’ 레8:23-24는 제사장 위임식 가운데 가장 낯설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모세는 위임식 숫양의 피를 아론과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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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레8 심화1, ‘왜 제사장은 옷을 입기 전에 먼저 물로 씻어야 했을까?’

SW.레8 심화1. ‘왜 제사장은 옷을 입기 전에 먼저 물로 씻어야 했을까?’ 레8의 제사장 위임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순서입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화려한 에봇이나 흉패부터 입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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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8 심화

1. 제사장은 옷을 입기 전에 먼저 물로 씻어야 했을까?’

 

8의 제사장 위임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순서입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화려한 에봇이나 흉패부터 입히지 않습니다. 먼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깁니다.그 다음에야 속옷과 띠와 겉옷과 에봇과 흉패와 관을 입힙니다. 왜 거룩한 옷보다 씻음이 먼저일까요?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0002(29:4)는 이 장면을 매우 직접적으로 해설합니다. ‘물로 씻는 은 신앙의 진리들을 통한 정결을 의미합니다. 물은 진리를 나타내며, 인간의 정결과 거듭남은 진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먼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씻음이 옷보다 먼저라는 것은 중요한 영적 질서를 보여 줍니다. 인간이 진리를 많이 입는 과 그 진리에 의해 실제로 정결하게 되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 지식과 교리와 신학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자기 악을 비추고 씻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거룩한 옷은 입었지만 몸은 씻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진리는 먼저 우리를 꾸미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씻기 위해 주어집니다. ‘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가르칠까?보다 먼저 말씀은 안에서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분노와 교만과 탐욕과 자기애를 비추고, 그것이 죄임을 인정하게 하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여 피하게 하는 것이 말씀의 첫 쓰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후에 옷이 입혀집니다. AC.10003(29:5)은 아론의 옷을 주님의 영적 나라의 표상으로 설명합니다. 정결하게 된 사람에게 진리가 입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악을 제거하는 소극적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받아 새로운 삶의 형태를 갖추는 적극적 과정입니다.

 

따라서 거듭남에는 씻음입음이 모두 필요합니다. 씻기만 하고 아무것도 입지 않으면 비어 있게 되고, 씻지 않은 채 옷만 입으면 겉만 종교적인 사람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로 우리를 씻으시고 다시 진리로 우리를 입히십니다. 같은 진리가 처음에는 악을 드러내는 물이 되고, 그 다음에는 새로운 삶을 형성하는 옷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8의 첫 위임 행위가 물로 씻는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쓰임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직책도, 지식도, 권위도 아닙니다. 말씀의 진리가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어 악과 거짓으로부터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위임은 먼저 씻김에서 시작됩니다. (SW.8 심화 1)

 

 

 

SW.레8 심화2, ‘왜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까?’

SW.레8 심화2. ‘왜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까?’ 레8:12에서 모세는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기름을 손이나 옷에 조금 바른 것이 아니라 ‘머리에 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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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레8, ‘귀와 손과 발에 피를 바르고 - 제사장 위임식에 감추어진 거듭남과 쓰임의 아르카나’

※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읽는 말씀’은 주님의 말씀 위에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덧붙이거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보다 더 깊은 뜻을 스베덴보리에게서 찾고자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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