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겔16:10)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and shod thee with badger,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and I covered thee with silk(Ezek. 16:10).
겔16:10이AC.297에 인용된 이유는, 주님께서 교회와 사람에게 입혀 주시는 여러 종류의 ‘의복’이 각각 서로 다른 차원의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AC.297의 주제는 ‘의복’이란 무엇이며, 왜 말씀에서 선과 진리가 옷 입는 것으로 표현되는가를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에스겔의 이 구절은 그 대표적인 증거로 제시됩니다.
먼저 겔16은 예루살렘, 곧 교회를 한 여인으로 묘사합니다. 주님께서는 버려져 있던 그 여인을 살리시고, 아름답게 단장시키십니다. 그런데 그 단장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모두 영적인 은혜를 의미합니다. 곧 주님께서 교회에 여러 단계의 선과 진리를 공급하시고, 그것으로 교회를 온전하게 갖추어 가시는 과정을 의복과 장신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놓은 옷을 입혔다’는 것은 다양한 진리들이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결합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수놓은(broidered work)옷은 여러 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를 만드는 것처럼, 말씀의 많은 진리들이 하나의 사랑 안에서 질서를 이루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물돼지 가죽신을 신겼다’는 표현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발은 사람의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을 의미하며, 신은 그 발을 보호하는 가장 바깥의 덮개입니다. 따라서 ‘물돼지’(badgers)가죽으로 만든 신은 자연적 선이 사람의 외적 삶을 보호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가AC.296에서 해달의 가죽을 자연적 선으로 설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겔16은 그 해석을 다시 확인해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또한 ‘가는 베로 두르고’는 순수한 진리가 삶을 질서 있게 묶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리는 사랑과 능력이 작용하는 부분을 뜻하며, 가는 베(fine linen)는 깨끗하고 순수한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허리를 가는 베로 두른다는 것은 사람의 삶이 순수한 진리에 의해 질서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 ‘모시로 덧입히고’는 더욱 내적인 진리의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모시(silk)는 매우 부드럽고 빛나는 직물이므로, 사랑에서 비롯된 진리가 지닌 섬세함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의복 자체가 아니라, 의복이 내적 생명을 밖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 전체는 주님께서 사람을 여러 층위의 선과 진리로 차례차례 입히시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AC.297에서 겔16:10을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의복’이 단순한 옷이 아니라 내적 선과 진리가 외적으로 나타난 형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놓은 옷’, ‘물돼지 가죽신’, ‘가는 베’, ‘모시’는 각각 서로 다른 영적 의미를 지니지만, 모두 주님께서 교회와 사람에게 입혀 주시는 선과 진리의 다양한 층위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AC.297에서 ‘의복은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 근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된 것입니다.
천적 선은 옷 입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깊고 순진무구하기 때문입니다. 옷 입는 선은 천적 영적 선부터이며, 그다음은 자연적 선입니다. 이들은 더 외적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의복’(garments)에 비유되고, 또 그렇게 부릅니다. 에스겔에서 고대교회 얘기를 하면서 말이지요. Celestial good is not clothed, because it is inmost, and is innocent; but celestial spiritual good is that which is first clothed, and then natural good, for these are more external, and on that account are compared to and are called “garments”; as in Ezekiel, speaking of the ancient church: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겔16:10) I clothed thee with broidered work, and shod thee with badger, I girded thee about with fine linen, and I covered thee with silk (Ezek. 16:10).
이사야에서는In Isaiah: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사52:1) Put on thy beautiful garments, O Jerusalem, the city of holiness (Isa. 52:1).
계시록에서는In Revelation: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4, 5) Who have not defiled their garments, and they shall walk with me in white, for they are worthy (Rev. 3:4–5),
또한 이십사 장로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흰옷을 입었다’ 하고 있지요(계4:4). where it is likewise said of the four and twenty elders that they were “clothed in white raiment”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계4:4)
이와 같이 더 외적 선들, 곧 천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 ‘의복’(garments)입니다. 그러므로 체어리티의 선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천국에서 빛나는 의복 입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몸 안에 있기 때문에 ‘가죽옷’(coat of skin) 입은 것으로 표현됩니다. Thus the more external goods, which are celestial spiritual, and natural, are “garments”; wherefore also those who are endowed with the goods of charity appear in heaven clothed in shining garments; but here, because still in the body, with a “coat of skin.”
해설
이 글의 중심은 선에도 내적 질서와 외적 질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선을 하나의 평면적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가장 깊은 곳에는 천적 선이 있고, 그 바깥에는 천적 영적 선이 있으며, 다시 그 바깥에는 자연적 선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천적 선은 가장 깊은 생명 자체이므로 옷 입지 않습니다. 옷은 안에 있는 것을 둘러싸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지만, 가장 깊은 것은 더 안쪽에 감추어야 할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적 선이 ‘순진무구하다’(innocent)는 말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순진무구함은 단순히 세상 경험이 없거나 어린아이처럼 미숙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모든 선과 진리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겉과 속이 나뉘지 않고, 사랑과 행위가 하나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천적 선’(celestial good)은 무엇인가로 자신을 꾸미거나 감출 필요가 없으며, 그 자체로 생명이고 빛입니다.
반면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은 처음으로 옷 입는 선입니다. 이것은 가장 깊은 천적 사랑이 진리와 질서를 통해 표현되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가장 깊은 사랑 자체는 말이나 형식 없이도 존재하지만, 그것이 생각과 지각, 신앙과 교리, 그리고 삶의 형식 안으로 내려오면 외적 모양, 즉 외형, 형태를 입게 됩니다. 바로 이때 이런 걸 선이 ‘의복’을 입는다 표현합니다. 의복은 선 그 자체가 아니라, 선이 밖으로 드러나고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진리와 형식을 의미합니다.
그다음에 오는 자연적 선은 더욱 외적인 의복입니다. 자연적 선은 사람이 실제 생활에서 행하는 선, 곧 말과 행동, 습관과 관계, 책임과 봉사 속에서 나타나는 선입니다. 가장 깊은 사랑이 아무리 참되더라도 자연적 삶에까지 내려오지 않으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선은 내적인 천적 영적 선을 덮고 보호하며, 그것을 현실 속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가장 바깥 의복과 같습니다.
에스겔의 ‘수놓은 옷’, ‘물돼지 가죽신’, ‘가는 베’, ‘모시’는 고대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여러 층위의 선과 진리를 받아 옷 입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수놓은 옷’은 다양한 진리들이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결합한 것을, ‘물돼지 가죽신’은 가장 바깥 자연적 선을, ‘가는 베’는 순수한 진리를, ‘모시’는 그 진리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곧 주님께서 교회를 옷 입히신다는 것은 교회가 스스로 선과 진리를 만들어 냈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그것들을 받아 내적 생명과 외적 삶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의 ‘아름다운 옷’과 계시록의 ‘흰옷’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뜻하며, 그 교회가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것은 선에서 비롯된 참된 진리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은 외적인 말과 행위까지 악과 거짓으로 물들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들의 진리가 선으로부터 나와 깨끗하고 빛나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의 흰옷 역시 말씀의 진리들이 선으로부터 빛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천국에서 체어리티의 선을 가진 사람들이 빛나는 의복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은, 그 의복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상태가 밖으로 형상화된 것임을 뜻합니다. 천국에서는 겉모습이 속 상태와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선에서 나온 진리에 따라 빛나는 옷 입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옷의 밝음과 아름다움은 그 사람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과 진리가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몸 안에 있기 때문에 ‘가죽옷’(coat of skin) 입은 것으로 표현됩니다’라는 말은 창3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더 이상 태고교회의 가장 깊은 천적 선 안에 머물지 못하고, 더 외적인 상태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어진 옷은 빛나는 천국 의복이 아니라 ‘가죽옷’이었습니다. 가죽은 동물의 가장 바깥 부분이므로, 여기서는 영적 선과 자연적 선 가운데서도 특히 몸과 자연적 삶에 가까운 외적 선을 의미합니다. 곧 ‘가죽옷’은 단순한 형벌의 표지가 아니라, 사람이 아직 몸 안에 있고 내적 생명이 약해진 상태에서도 주님께서 외적 선을 통하여 그를 덮고 보호하시며, 거듭남의 길을 남겨 두셨다는 자비로운 섭리를 나타냅니다.
6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7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8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9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 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10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11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12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13제단의 재를 버리고 그 제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14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민4:6-14)
스베덴보리가AC.296에서 민4:6-14를 인용한 이유는, ‘해달의 가죽’이 성막 가장 바깥 덮개로 반복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그것이 자연적 선을 표상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본문에서 법궤와 진설병의 상, 등잔대, 금제단, 성소의 기구들, 번제단 기구들을 모두 운반할 때 해달의 가죽으로 덮습니다. 곧 해달의 가죽은 단순한 방수용 재료가 아니라, 거룩한 것들을 외부의 충격과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바깥 덮개였습니다.
민4에 나오는 성막 기구들은 각각 주님과 천국, 교회와 사람 안의 거룩한 것들을 표상합니다. 법궤는 가장 내적인 천적 선과 진리를, 진설병의 상은 사랑의 선과 그 선에서 나오는 천적 양식을, 등잔대는 영적 진리와 그 진리에서 오는 밝음을, 금제단은 기도와 예배의 향기로운 것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가장 거룩한 것들이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덮개로 싸여야 했으며, 가장 바깥에는 공통적으로 ‘해달의 가죽 덮개’가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적인 거룩한 것들이 직접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먼저 청색이나 홍색, 자색 보자기로 싸고, 그 위를 다시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청색은 천적인 진리를, 홍색은 영적 선을, 자색은 천적 선을 나타내는 색채이며, 해달의 가죽은 그 모든 것을 둘러싸는 가장 외적인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덮개의 순서는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질서를 보여 줍니다.
특히 해달의 가죽이 거의 모든 성막 기구에 반복하여 사용된 것은 자연적 선의 보호 기능이 보편적임을 나타냅니다. 사람이 아무리 내적으로 사랑과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외적 삶의 질서와 선한 행위로 보호되지 않으면 쉽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선은 내적 거룩함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을 보존하고 운반하며 세상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필수적인 외피입니다.
이 점은AC.296의 중심 주제인 ‘가죽옷’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신 ‘가죽옷’은 그들이 더 이상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에 머물 수 없게 된 뒤에도,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통하여 보호받을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외적인 옷을 의미합니다. 민4의 해달 가죽 덮개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내적인 거룩한 것들이 외적인 자연적 선으로 보호되는 모습을 표상합니다.
또한 성막 기구들이 이동할 때 해달의 가죽으로 덮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성막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광야를 이동할 때, 곧 변화와 시험, 그리고 불안정의 상태를 통과할 때, 이 덮개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거듭남의 과정에서 여러 상태의 변화를 지날 때, 내적 사랑과 신앙이 외적 삶의 선과 질서에 의해 보호되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자연적 선은 특히 시련과 변화의 과정에서 내적인 것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는 민4:6-14를 통하여 ‘가죽’이 말씀에서 단순한 동물성 재료가 아니라, 사람의 가장 바깥 자연적 차원에 속한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법궤에서부터 제단 기구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거룩한 것이 해달의 가죽으로 덮였다는 것은,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자연적 선을 통하여 안전하게 보존된다는 질서를 보여 줍니다.
AC.296에서 이 긴 본문을 인용한 이유는, ‘해달의 가죽’이 자연적 선을 의미하며, 그 자연적 선이 내적인 거룩한 것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가장 바깥 덮개라는 사실을 말씀의 반복된 규례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창3의 ‘가죽옷’, 창27의 ‘염소 새끼의 가죽’, 출26의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함께 하나의 상응 체계를 이룹니다. 곧 주님께서는 사람의 가장 깊은 사랑과 신앙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 생활까지도 선으로 질서 있게 하셔서 사람 전체를 보호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