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0.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위 본문에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럼,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안 그런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대부분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라기보다 ‘진리나 지식에서 시작되어 사랑으로 나아가야 하는 신앙’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AC.110에서 말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은 일반적인 신앙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신앙의 완성된 상태’, 곧 천적 인간의 신앙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신앙은 먼저 듣고, 배우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교리를 익히고, 무엇이 참인지 분별하려는 과정이 먼저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나는 이것이 옳다고 믿는다’라는 의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아직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이해와 선택을 통해 붙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신앙에는 종종 긴장과 싸움이 따릅니다. 알지만 따르기 어렵고, 믿지만 흔들리는 일이 생깁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적 인간의 신앙’입니다.

 

반면 AC.110에서 말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은 출발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는 먼저 사랑이 있고, 그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이 흘러나옵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옳은지를 먼저 따져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참으로 보이고 받아들여지는 상태입니다. 이때 신앙은 더 이상 ‘결정’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표현’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굳이 논증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신앙에서는 ‘나는 믿는다’는 감각이 중심에 있지만, 사랑에서 나온 신앙에서는 ‘주님이 이끄신다’는 감각이 중심이 됩니다. 전자는 여전히 자기 의식이 앞서 있고, 후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에는 신앙이 힘들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 움직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두 신앙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된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일반적인 신앙, 곧 진리에서 시작하는 신앙을 통해 준비됩니다. 말씀을 배우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양심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사랑도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목적은 아닙니다. 이 신앙이 점차 사랑과 결합되고, 마침내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태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AC.110에서 말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직 ‘완성된 형태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출발점일 수도 있고,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영적 인간에게는 신앙이 출발점이고, 천적 인간에게는 신앙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진리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가야 하는 신앙’이고, AC.110에서 말하는 신앙은 ‘이미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근원의 차이’, 곧 어디에서 시작되느냐의 차이입니다.

 

 

 

AC.110, 창2:11-12, '천적 인간의 첫 지성, 비손 : 사랑에서 나온 신앙'(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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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2:11, 12)

 

AC.110

 

첫째(first) , 비손(Pishon)은 신앙의 지성을 의미하는데, 이 신앙은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은 마음을 의미하고, (gold)은 선을 의미하며, 베델리엄과 호마노(bdellium and the onyx stone)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gold)이 두 번 언급되는 것은,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베델리엄과 호마노(bdellium and the onyx stone)가 언급되는 것은, 하나는 사랑의 진리를,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The “first” river, or “Pishon,” signifies 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the land of Havilah” signifies the mind; “gold” signifies goo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truth. “Gold” is mentioned twice because it signifies the good of love and the good of faith from love; an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are mentioned because the one signifies the truth of love, and the other the truth of faith from love. Such is the celestial man.

 

해설

 

이 글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지혜의 강이 ‘구체적 지성의 첫 형태’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네 강 가운데 ‘첫째 강’이 먼저 설명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의 지성이 ‘사랑에서 시작되는 신앙의 지성’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지성은 교리에서 출발한 신앙이 아니라,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신앙입니다.

 

‘비손’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지성입니다. 이는 신앙이 이해의 산물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라는 뜻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신앙은 무엇을 믿을지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이미 살아 있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이 지성은 차갑거나 분석적이지 않고, ‘따뜻한 빛을 띤 이해’입니다.

 

하윌라 땅’이 마음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 지성이 머무는 자리를 정확히 짚어 줍니다. 천적 인간의 지성은 머릿속 개념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마음 전체, 곧 사랑과 의지가 자리한 내적 영역 안에 놓여 있습니다. 지성과 사랑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장에서 작동하는 상태입니다.

 

이제 ‘’과 ‘보석들’이 등장합니다. 금은 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금이 두 번 언급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반복입니다. 하나는 ‘사랑의 선’,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선’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신앙조차도 선의 성격을 띱니다. 신앙이 의무나 판단이 아니라, 선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베델리엄’과 ‘호마노’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 또한 중립적 사실이나 교리 명제가 아닙니다. 하나는 사랑의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진리입니다. 즉, 진리마저도 사랑을 근원으로 하여 두 겹의 깊이를 가집니다. 진리는 사랑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신앙의 진리는 사랑을 따라 말하는 진리입니다.

 

이 구조를 종합하면, 비손 강의 영역에서는 ‘선이 중심이고, 진리는 그 선을 섬기는 빛’입니다. 지성은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사랑을 더 잘 살도록 봉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적 인간의 지성 구조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적 인간이다.’ 이는 정의라기보다, ‘삶의 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 살며, 그의 지성은 언제나 사랑에서 흘러나옵니다. 비손 강은 그 첫 흐름이며, 이후의 강들은 이 흐름이 어떻게 더 세분화되는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AC.110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인간의 첫 지성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며, 그 지성의 땅에는 선이 금처럼 풍부하고, 진리는 보석처럼 빛난다고 말입니다.  

 

 

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AC.110, 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AC.110.심화 1. ‘사랑에서 나온 신앙’ 위 본문에 ‘사랑에서 나온 신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럼,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은 안 그런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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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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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9, 창2:10, '지혜와 지성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9 지혜와 지성 나타나는 것이 겉보기엔 사람인 것 같아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실은 오직 주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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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실제로 어떤가?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목격한 천국 부부의 삶

 

 

스베덴보리가 영계를 왕래하면서 가장 경외심을 느꼈던 장면 중 하나는 천국에서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천국에도 결혼이 있다’ 정도의 진술을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들의 일상 전체, 곧 그 얼굴의 빛, 말투, 행동, 기쁨의 흐름, 심지어 생각의 결합까지 모두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그가 본 천국의 결혼 생활은 지상에서 우리가 아는 결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천국 부부는 두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영혼이다

 

스베덴보리는 천국 부부를 보고 가장 먼저 충격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닮아 있었습니다. 서로의 말투, 기쁨의 색깔, 빛깔까지 닮아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 부부는 두 사람이 아니라, 두 영혼이 하나의 생명을 공유하는 것이다.’(‘결혼애’ 178, 181) 지상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도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천국에서는 같은 선(善), 같은 진리, 같은 사랑을 공유하므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본 천국 부부 중 일부는 서로 손을 잡고 걸을 때, 마치 한 존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천국 부부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빛이 흐른다

 

스베덴보리는 천국 부부를 볼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서 어떤 따뜻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빛은 열정적인 환희가 아니라 잔잔한 기쁨이 차오른 채 넘치지 않는 ‘평화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습니다. ‘나는 그들의 눈에서 사랑과 지혜가 서로 흐르고 오르는 것을 보았다.’ 즉, 부부끼리 서로를 바라볼 때, 지혜가 흐르고 사랑이 흘러서 두 영혼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천국 부부는 말보다 감정의 투명한 교류로 소통한다

 

천국에서는 사람의 내적 감정이 표정, 눈빛, 기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감추기, 오해, 삐침, 질투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 부부 사이의 대화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말이 거의 필요 없었다. 마음이 마음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말은 서로의 애정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입니다. 천국의 말은 다정하고 부드러우며, 상대의 마음을 감싸는 음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 부부의 일상은 함께 일하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다

 

스베덴보리는 천국 부부가 어떤 의미에서 ‘동역자’라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각자 역할이 있지만, 그 역할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더 선한 방식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며, 자신이 맡은 영적 공동체를 돕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공동체에 진리를 가르치고, 아내는 그 진리를 사랑으로 완성시키는 데 기여하며, 이 두 흐름이 하나의 선으로 결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의 남편은 지혜를 통해 아내를 사랑하고, 천국의 아내는 사랑을 통해 지혜, 곧 남편을 사랑한다.’(‘결혼애’ 21) 지상에서처럼 가사 분담, 성 역할 갈등 같은 개념은 없습니다. 모든 활동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천국 부부에게는 권태’, 식상함’, 갈등이 없다

 

왜 없는가?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들의 사랑이 주님에게서 직접 흐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 부부의 사랑을 ‘늘 새로워지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천국의 결혼 사랑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그러므로 하루하루 더 새로워지고 풍성해진다.’ 지상의 결혼처럼 싫증이 나거나, 익숙해져 무감각해지거나, 서로를 상처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이 이미 악과 이기심에서 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천국 부부는 ’() 또한 영적 기쁨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스베덴보리는 이 부분을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아주 깊게 기록했습니다. 천국의 혼인 사랑에는 ‘친밀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밀함은 지상의 성적 욕구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정서의 가장 순전한 결합, 영혼이 영혼을 포옹하는 기쁨, 두 생명의 교류가 빛처럼 흐르는 경험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천국의 부부는 서로를 포옹할 때, 사랑과 지혜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육체적 욕구가 아니라 영적 친밀성이며, 그 기쁨은 지상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결합니다.

 

 

천국 부부의 사랑은 영원히 유지되는 기쁨이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의 부부는 함께 있을 때, 주님의 사랑을 가장 선명하게 경험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결합은 중간 영계에서 검증되고, 천국의 빛 속에서 굳어지며,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을 스베덴보리는 ‘혼인천국’(婚姻天國)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약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의 결혼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두 영혼이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는 결합, 말보다 감정이 더 투명하게 흐르는 소통, 갈등, 질투, 오해가 없는 평화, 주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새로워지는 기쁨, 하나의 선을 이루는 동역자 관계, 영혼의 친밀함이 최고조로 발현되는 관계,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라고 말입니다. 지상의 어떤 결혼도 천국의 이 결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SC.75, ‘지상에서 배우자가 없었던 사람의 천국에서의 결혼은?’

지상에서 배우자가 없었던 사람의 천국 결혼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바로 스베덴보리의 경우인데요,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주님이 정해주신 짝을 만나 결혼했겠지요? 목사님, 이 질문은 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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