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4:17)

 

AC.331

 

이 이단의 확장을 에녹(Enoch)이라 합니다. (17)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is called “Enoch.” (verse 17)

 

 

해설

 

AC.331은 매우 짧은 한 문장이지만, 창4의 계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글입니다. 창4:17에는 ‘가인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가인의 아들 에녹의 출생을 말하지만, 속뜻으로는 앞에서 ‘가인’이라 했던 교리, 곧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 이제 하나의 독립된 교리적 체계로 더욱 발전하고 확장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곧 ‘이 이단의 확장’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amplification’을 단순히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거나 가인의 후손이 번성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확장은 앞에서 생겨난 분리된 신앙의 교리가 더욱 전개되고 발전하여 하나의 구체적인 교리적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AC.324에서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리들, 곧 ‘heresies’가 창4의 중요한 주제라고 하였고, AC.325에서는 그 가운데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가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에녹’은 그 가인적 교리가 한 단계 더 전개되고 확장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창4와 창5의 계보를 읽는 방식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AC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가인이 에녹을 낳았다’는 말씀을 먼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낳은 족보로 읽게 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속뜻으로 보는 ‘낳음’은 교회와 교리의 발생과 계승을 의미합니다. 어떤 교리적 상태에서 또 다른 교리적 상태가 발생하고, 그것이 다시 발전하여 새로운 형태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인이 에녹을 낳았다’는 것은 속뜻으로는 ‘가인’이라는 분리된 신앙의 교리로부터 ‘에녹’이라 불리는 더욱 발전된 교리적 형태가 생겨났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단의 확장’이라고 하면 오늘날 어떤 이단 단체가 포교하여 신도 수를 늘리고 조직을 확장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외적으로 그런 현상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AC.331의 직접적인 의미는 그보다 깊습니다. 이것은 교리의 내적 발전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신앙과 체어리티를 서로 구별할 수 있다’는 정도였던 생각이 점차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중요하다’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체어리티와 관계없이 신앙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하나의 독립된 교리 체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분리가 논리와 설명과 가르침을 갖추어 점차 체계화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확장’에 가깝습니다.

 

앞의 AC.330에서 ‘가인의 표’가 주어진 것도 이 대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훗날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다시 심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 자체는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존되었다고 해서 당시의 ‘분리된 신앙’이라는 왜곡된 상태가 곧바로 바로잡힌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는 그 교리가 계속 발전하고 여러 형태로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첫 번째 확장이 ‘에녹’으로 표상됩니다. 주님께서 어떤 것을 섭리 가운데 보존하신다는 것과 그 상태 자체를 승인하신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임을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4:17에는 또 하나 중요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가인은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습니다. 이어지는 AC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말씀에서 ‘’은 흔히 교리적인 것을 표상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에녹’이 단순한 한 사람의 이름을 넘어, 가인으로 시작된 분리된 신앙이 이제 일정한 교리적 구조와 체계를 갖추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분리된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것을 둘러싼 ‘’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교회의 타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매우 섬세하게 보여 줍니다. 잘못된 교리는 처음부터 완성된 체계로 나타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처음에는 참된 것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을 다른 것에서 떼어 내는 작은 분리에서 시작됩니다. AC.325의 가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신앙 자체가 거짓이었던 것이 아니라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리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시작합니다. 논리가 만들어지고, 교리가 형성되고, 그것을 지지하는 여러 생각들이 덧붙여집니다. 마침내 처음의 작은 분리가 하나의 독립적인 교리적 세계를 형성합니다. AC.331의 ‘에녹’은 바로 이러한 발전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proprium의 작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리가 체어리티와 결합되어 있을 때, 사람은 그 진리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선한 삶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선에서 분리되면, 인간의 proprium은 그 진리를 자기 것으로 붙들고 체계화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논리를 만들고,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해 또 다른 교리를 세우며, 마침내 그 안에 하나의 ‘’을 쌓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작은 분리였던 것이 점점 견고한 교리적 구조가 되어, 오히려 그 안에 갇혀 밖의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심화

 

1. 4에녹과 창5에녹은 같은 의미인가?

 

 

AC.331, 심화 1, 창4의 ‘에녹’과 창5의 ‘에녹’은 같은 의미인가?

AC.331.심화 1. 창4의 ‘에녹’과 창5의 ‘에녹’은 같은 의미인가? AC를 처음 읽는 분에게는 여기서 또 하나 매우 중요한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창4에도 ‘에녹’이 나오고 창5에도 ‘에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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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2, 창4:17, ‘라멕’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창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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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0, 창4:10-16, ‘창4:10-16 전체의 속뜻’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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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0.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은 역시 ‘가인의 표’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만 보면 가인은 부정적인 것의 연속입니다.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했고, 그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였으며, 마침내 아벨을 죽여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 결과 교리가 왜곡되고, 거짓과 악이 생겨났으며,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돌아서 영원한 죽음의 위험에 놓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그런 가인을 보호하셨을까요?

 

그 답은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한 문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태고교회 이후 인류의 거듭남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지를 미리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순수한 사람들은 ‘사랑에서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에게 사랑은 출발점이었고, 진리는 그 사랑 안에서 지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가 상실된 뒤 인간에게 동일한 길을 그대로 요구한다면 아무도 거듭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간의 달라진 상태에 맞추어 ‘신앙에서 체어리티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준비하십니다. 사람은 먼저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인 다음, 그 진리에 따라 살면서 체어리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따라서 가인의 표는 단순히 ‘살인자에게도 자비를 베푸셨다’는 도덕적 교훈보다 훨씬 깊은 섭리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망가뜨린 것 가운데서도 장차 구원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파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는 것은 질서의 파괴였지만, 신앙 그 자체에는 여전히 진리를 담아 전달하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 신앙을 통하여 다시 체어리티를 심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가인의 표’는 창3 마지막의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과도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창3에서는 인간이 거룩한 것을 모독하여 완전히 멸망하지 않도록 생명나무의 길을 보호하셨습니다. 창4에서는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인간이 장차 다시 체어리티에 이를 수 있도록 신앙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의 길을 보존하시는 보호이고, 다른 하나는 훗날 그 생명으로 돌아가는 데 사용될 신앙을 보존하시는 보호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계속 깊어지는 가운데서도 주님의 섭리는 끊임없이 다음 구원의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AC.330은 가인의 이야기를 단순한 타락의 이야기로 끝내지 않습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가인은 보존됩니다.’ 이것은 체어리티가 사라져도 분리된 신앙만 남으면 괜찮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체어리티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신앙이 보존된 것입니다. 신앙의 최종 목적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체어리티입니다. 진리는 선으로 이끌기 위해 존재하고, 사람이 배우고 믿는 것은 결국 그것을 살아가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표는 신앙의 독립을 영구히 승인하는 표가 아니라, 언젠가 신앙이 다시 체어리티를 섬기는 본래의 목적을 이루도록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의 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AC.325부터 AC.330까지를 하나로 읽으면 창4의 흐름이 매우 선명해집니다. ‘사랑에서 신앙이 분리됨’, ‘예배가 분리됨’, ‘내적 상태가 악해짐’,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높아짐’, ‘체어리티가 소멸됨’, ‘교리가 왜곡되고 거짓과 악이 생겨남’으로 인간의 타락은 계속 깊어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가인의 표’를 두십니다. 인간은 하나였던 것을 갈라놓지만, 주님께서는 그 갈라진 것 가운데서도 다시 생명으로 이어질 길을 보존하십니다. AC.330의 중심에는 바로 이 역설적인 주님의 자비와 섭리가 놓여 있습니다.

 

 

 

AC.330, 창4:10-16, ‘창4:10-16 전체의 속뜻’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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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4:10-16)

 

AC.330

 

핏소리(voice of bloods)는 소멸된 체어리티를(10),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curse from the ground)는 왜곡된 교리를(11),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는 거기에서 비롯된 거짓과 악을(12) 각각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에 처할 위험에 놓였습니다.(13-14)가인에게 표를 주신 것(mark set upon Cain)은 그러나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될 것이었으므로, 신앙은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되었음을 의미합니다.(15)가인이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는 신앙이 이전의 위치에서 옮겨진 것을 의미합니다.(16)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verse 10);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verse 11);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verse 12)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verses 13–14)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verse 15)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verse 16)

 

 

해설

 

AC.330은 창4:10-16 전체의 속뜻을 한꺼번에 압축하여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개요입니다. 앞의 AC.325-329에서 사랑과 신앙의 분리로 시작된 과정은 마침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 곧 체어리티의 소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AC.330에서는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체어리티가 사라지자 교리는 왜곡되고, 그 왜곡된 교리에서 거짓과 악이 생겨나며, 사람은 주님에게서 점점 멀어져 영원한 죽음의 위험에 처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그런 가인을 즉시 멸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를 주어 보호하십니다. 왜냐하면 훗날 체어리티가 다시 인간에게 심어질 때, 바로 ‘신앙’을 통하여 심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AC.330은 가인의 타락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 타락 가운데서도 미래의 거듭남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먼저 ‘소멸된 체어리티는 피들의 소리라 불린다’고 합니다. 창4:10의 개역개정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에는 ‘’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 스베덴보리는 이를 ‘voice of bloods’, 곧 ‘피들의 소리’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피 자체가 아니라 아벨로 표상되던 체어리티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AC.329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것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인 사람들에게서 체어리티가 소멸된 것을 뜻했습니다. 따라서 ‘피들의 소리’는 그렇게 죽임당한 체어리티가 주님 앞에서 증거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체어리티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사라졌지만, 그 소멸된 상태가 주님 앞에서 감추어질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는 ‘왜곡된 교리’를 뜻합니다. 여기서 ‘’은 단순한 자연계의 토양이 아니라 교회, 또는 교회에 속한 사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본래 교회 안에서 신앙과 체어리티는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체어리티가 소멸된 뒤에도 신앙의 교리는 남았습니다. 문제는 이제 그 교리를 살아 있게 해 줄 선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선과 분리되면 사람의 proprium이 그것을 붙들고 자기 목적에 맞게 해석하기 시작하며, 그 결과 교리는 점차 왜곡됩니다. 따라서 가인의 길은 ‘체어리티 없는 신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왜곡된 교리’로 진행됩니다.

 

그 결과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왜곡된 교리에서 비롯되는 ‘거짓과 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상응입니다. 진리가 선과 결합되어 있을 때, 사람에게는 영적인 중심과 방향이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지 알고, 그것을 왜 행해야 하는지도 알며, 주님을 향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어리티가 소멸되고 교리가 왜곡되면 그 중심을 잃습니다. 생각은 이 교리에서 저 교리로 흔들리고, 삶 역시 선이라는 중심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거짓에는 참된 영적 안식처가 없고, 악에는 주님 안에서의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는 결국 더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AC.330은 ‘그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에 처할 위험에 놓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고 하지 않고 ‘그들이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다’고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하나님 이해에서 계속 나타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주님은 사람에게서 사랑과 생명을 거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태양이 계속 빛과 열을 내듯 주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모든 사람에게 흘러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사랑과 거짓을 향하여 돌아설 때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원한 죽음의 위험은 주님께서 사람을 버리셔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에게서 스스로 돌아서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AC.330의 놀라운 반전이 나타납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신앙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었고, 마침내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 역시 함께 없애 버리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를 주십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이유를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창4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은 사랑에서 떨어져 나와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신앙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후 인류의 영적 구조가 달라지면서 바로 그 신앙이 다시 체어리티로 가는 통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은 사랑으로부터 신앙에 이르렀습니다. 먼저 주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 안에서 진리를 퍼셉션으로 지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천적 질서가 무너진 뒤에는 인간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거듭날 수 없게 됩니다. 이후에는 진리를 배우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사람 안에 심어지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신앙은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되었습니다.’ 여기서 ‘faith was made inviolable’은 신앙이 절대적으로 가장 높은 것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을 없애서는 안 되도록 주님께서 보호하셨다는 뜻입니다. 가인이 잘했기 때문에 보호받은 것이 아닙니다.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이 훗날 주님의 구원 섭리에서 다시 사용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랑에서 직접 진리를 지각할 수 없게 된 뒤에는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체어리티에 이르는 길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에게 주어진 ‘’는 악에 대한 승인이나 면죄의 표가 아니라, 미래의 구원을 위하여 신앙이라는 기능 자체를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표상합니다.

 

이 점은 앞의 AC.328과 연결해서 보면 더욱 선명합니다. 체어리티는 신앙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주된 것이 되어 체어리티보다 높임을 받지만 않는다면’ 체어리티는 신앙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문제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질서의 전도였습니다. 이제 아벨이 죽고 체어리티가 소멸되었지만, 주님께서는 가인마저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신앙을 보존하여 언젠가 다시 체어리티와 결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앙과 체어리티를 갈라놓았지만, 주님의 섭리는 그 갈라진 신앙마저 붙들어 장차 다시 체어리티로 이끄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가인이 에덴 동쪽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신앙이 ‘이전의 위치에서 옮겨진 것’을 뜻합니다. ‘동쪽’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주님과 사랑을 표상하는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인이 에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덴 동쪽’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것은, 신앙이 본래 태고교회에서 차지했던 위치와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위치로 옮겨졌음을 나타냅니다. 본래 신앙은 사랑 안에 있었고 사랑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제는 그 직접적인 천적 질서 안에 있지 못합니다. 신앙은 여전히 보존되지만, 그 성격과 기능, 교회 안에서의 위치가 달라진 것입니다.

 

 

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 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은 역시 ‘가인의 표’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만 보면 가인은 부정적인 것의 연속입니다. 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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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1, 창4:17, ‘에녹’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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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9, 창4:8-9,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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