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13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 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The Contents

 

190. 태고교회의 세 번째 상태에 대한 내용인데요, 이 상태는 사랑할 정도로 본성을 원했던 상태입니다. The third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 즉,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eagerness)이 크다 못해 나중엔 일종의 패션(a passion, 열정, 격정)이 된, 그런 상태였습니다.

 

 

191. 자아 사랑, 즉 그들의 본성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그들은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안 믿기 시작했습니다. 감각 파트는 ‘뱀’, 자아 사랑, 혹은 그들의 본성에 대한 사랑은 ‘여자’, 합리, 이성 파트는 ‘남편, 아담’으로 각각 표현한 것입니다. Because from 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 they began to believe nothing that they did not apprehen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is represented by the “serpent”; the love of self, or their own love, by the “woman”; and the rational by the “man.”

 

※ 즉, 자아 사랑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때부터 이들은 육체적 감각을 가지고 포착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안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뱀은 감각 능력을, 여자는 자아 사랑을, 남자, 아담은 이성적 사고력을 표현합니다.

 

 

192. ‘뱀’, 혹은 감각 파트가 여자를 설득, 주님 신앙에 관한 것에 대해 그게 정말 그런지를 조사하게 했습니다. ‘지식의 나무(선악과)를 먹기’는 이것을, ‘그도 먹은지라’는 그걸 동의, 받아들인 인간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각각 상징합니다. (1-6절) Hence the “serpent,” or sensuous part, persuaded the woman to inquire into 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 in order to see whether they are really so, which is signified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that the rational of man consented is signified by “the man that he did eat” (verses 1–6).

 

※ 뱀이 여자를 설득, 그게 과연 사실인지 아주 자세히 조사하게 한 것은 주님 신앙에 관한 교리입니다. ‘선악과를 먹다’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며, 그래서 주님이 금하신 것입니다. 주님께 속한 것을 세속적인 것으로 살피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며, 사람이 이런 시도를 하게 되면 그는 모든 천적, 영적인 것들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여러 세상 예화를 들어가며, 설교를 그럴듯하게 꾸미며, 여러 세상 기술과 기교를 사용하여 설교하는 것을 너무 선호하거나 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 인간 이성은 감각이 범하는 잘못을 바로잡아 인간을 주님께 올바로 인도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만 반대로 감각의 부추김에 넘어가 그런 조사에 동의해버린 이성을 봅니다. 이처럼 인간이 자기 사랑에 푹 빠지게 되면 감각의 사람이 되고, 그의 이성 역시 역기능을 하게 됩니다. 모든 순서, 질서가 정 반대가 됩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193.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악 가운데 있었음을 지각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로 상징된, 남아 있는 퍼셉션으로부터 (7-8절), 그리고 그들이 치마 삼은 무화과 잎들로부터 (7절), 그리고 그들이 부끄러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으로부터 (8-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인(acknowledgment)과 고백(confession)으로부터 (10-13절)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직 자연적 선(natural goodness)이 그들 안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But they perceived that they were in evil; from which remnant of perception, signified by their “eyes being opened,” and by their “hearing the voice of Jehovah” (verses 7–8), and from the fig-leaves of which they made themselves girdles (verse 7), and from their shame or hiding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verses 8–9), as well as from their acknowledgment and confession (verses 10–13), it is evident that natural goodness still remained in them.

 

※ ‘악 가운데 있었다’는 것은 잘못 행동했다는 것이며, ‘자연적 선’이란, 일종의 세속적 선을 말합니다. 양심의 가책이라든지, 수치, 부끄러워함, 미안해함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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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The Contents

 

131. 여기서부터는 태고교회의 후손, 후대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본성(本性, own, 라 proprium)을 향해 기울어진 사람들입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3 is here treated of.

 

※ 여기 ‘자신들의 본성을 향해 기울어진’의 의미는, 자치(自治, autonomy)를 얻고자 분투했다(strive for autonomy)는 뜻으로, 주님에게서 벗어나 독립하고자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웠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분투할 게 따로 있지!

 

※ 아주 중요한 주석 #3.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은 여기 이 본문과 다른 여러 곳에서 ‘오운’(own)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어온, 원전(the original text)에 사용된 용어입니다. Critical Notes 3.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프로프리움의 사전적 의미는, 형용사로서, ‘아무개의 것, 소유’(one’s own), ‘적절한’(proper), ‘아무개 자신에게만 속한’(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special), ‘특정한’(particular), ‘특유한’(peculiar) 등입니다.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이 프로프리움이라는 말이 중성(neuter) 명사로 사용되었을 때의 의미는, ‘소유’(possession), ‘재산’(property), 또 ‘어떤 특이점’(a peculiarity), ‘특징점’(characteristic mark), ‘구별점’(distinguishing sign), ‘특징’(characteristic) 등입니다.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영어 형용사 ‘오운’(own)을 웹스터에서 보면 그 의미를 ‘...에 속한’(belonging to), ‘...에 독점적으로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유한’(peculiar) 등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운’이야말로 ‘프로프리우스’(proprius, 형, 고유한)에 딱 맞는 번역이지 싶고요,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에 맞는 말을 찾기 위해 이 ‘오운’을 명사로 쓰면, 그거야말로 정말 가장 근접한 최상의 번역이 아닐까 합니다. [편집자역]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132. 인간은 주님의 인도로는 만족하지 않고, 대신 자신과 세상, 혹은 자신의 본성으로 인도받기를 원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연유로, 여기서는 그런 인간에게 환영받는 인간 자신의 본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 즉, 이 절은,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인류에게 생겨난 자율성(自律性), 곧 주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대신 자신이 세운 원칙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경향을 다루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133. 그래서 먼저 그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고, 그에게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주어지는데, 이것들은 주님이 그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19-20절)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 선과 진리 및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주님의 신성, 곧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인간에게 주님 자신을 주시지만, 그러나 인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를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본성이며, 심지어 천국 천사들마저 그래서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만큼 천사다’ 할 정도입니다.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운다는 것은,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성향, 자치, 자율 성향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134. 이런 이유로, 인간은 자기 본성에 속한 어떤 상태 안으로 들어가고(let into), 다른 본성(an own)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것이 여자(a woman)로 빚어진 갈빗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21-23절)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 즉, 일종의 자치 상태(a state of self-governance)로 옮겨지고, 어떤 자율성(a sense of autonomy)이 주어지는데, 이걸 여자로 빚어진 갈빗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135. 천적, 영적 생명과 인간의 본성(本性, the man’s own)은 서로 인접, 아주 밀접하게 붙어 있습니다.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24절)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 ‘인간의 본성’은 독립성(獨立性, the sense of independence)을 말합니다.

 

 

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이노센스(innocence, 純眞)가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듭니다.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25절)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 무례한 존재, 불쾌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신다는 뜻으로, 인간이 그 본성상, 독립하고자 하는 건 어쩔 수 없으나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님 앞에 무례하고 불쾌한 존재가 되는 것은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살피시며, 배려하십니다.

 

 

The Internal Sense

 

137. 창세기의 첫 세 장은 대체로 태고교회(太古敎會, the most ancient church)를 다루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시기부터 끝에 가서 사라지게 될 때까지, 이 교회를 가리켜 ‘사람’(man, homo, 천적 인간)이라고 했는데요, 이 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태고교회가 가장 융성했던 상태, 곧 천적 인간이었던 상태를 다루었다면, 이제 여기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본성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을 다루고 있습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 자기 사랑, 곧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태도가 모든 악과 거짓,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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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20-24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The Contents

 

280. 태고(太古) 교회와 서서히 줄어든 그 교회 사람들이 여기서 간략하게 다루어집니다. 그 교회의 후손들 또한 다루어지는데, 이들은 끝에 가서 홍수로 사라졌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ose who fell away, are here summarily treated of; thus also its posterity down to the flood, when it expired.

 

 

281. 20절,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천적(天的, celestial)이었던 태고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 신앙(faith in the Lord)의 삶을 산 교회이며, ‘하와’(Eve)라, ‘모든 산 자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living)라 일컬음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20절)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 태고(太古) 교회란, 인류 첫 교회로서, 천국 속성(a heavenly nature)을 가졌던 참된 교회(the true church)를 말합니다. 주님을 향한 참된 신앙의 삶을 산 교회였습니다.

 

 

282.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 있었습니다; 이어 그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해서는, 그들에게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있었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으신 가죽옷’으로 상징되었습니다. (21절)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 ‘천적 영적 선’은 ‘영적 종류의 천적 선’(a spiritual kind of heavenly good)을, ‘자연적 선’은 ‘세속적 수준의 선’(good on the earthly level)을 각각 말합니다. 즉, 크게 두 종류의 선, 곧 영적인 선과 영적이지 않은 선이 있으며, 전자는 천국적 선, 사후 천국에서나 경험하게 될 선, 후자는 세상적, 세속적 선, 우리가 세상 살며 지금도 경험하는 많은 아름다운 선, 체어리티(charity, 慈善)의 선을 각각 말합니다. ‘세속적’이라 하여 꼭 안 좋은 의미로만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위 21절 본문에서 이런 걸 겉 글자의 뜻만으로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지어’, ‘입히시니라’ 및 ‘가죽옷’ 정도로만 살짝 담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정말 깊은 아케이나가 있기 때문이며, 설마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믿으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자세한 것은 해당 절을 살필 때 보겠습니다.

 

 

283.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네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서는 자연적 선이 소멸(dissipate)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 안에서 새롭게 빚어졌거나 가르침을 받았더라면, 그들은 소멸(perish)되어 버리고 말았을 텐데요, 이것이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의미입니다. (22절)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 자연적 선의 소멸, 곧 일상 체어리티의 선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런 상태에서 만일 천국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가르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걸 받아들이고 뉘우치며 돌이킬까요? 정반대로, 그러면 안 된다, 오히려 소멸된다고 합니다. 만일 그게 가능했으면 주님도 이때 무슨 손을 쓰셨겠지요... 오늘 이 세대에게 아케이나를 전파, 가르치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284. 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다섯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후손에 이르러는 드디어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deprive)되었고, 그리고 거듭남 이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이런 내용입니다. (23절) Of the fifth posterity, which was deprived of all good and truth, and was reduced to the state in which they had been previous to regeneration, which is meant by his being “sent forth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verse 23).

 

※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즉,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모든 인생이 다 이런 상태입니다. 그 아름답고 찬란했던 천적 인간, 안식일의 사람이 이렇게 곤두박질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285.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후손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memory-knowledge)조차 남아 있지를 않았으며, 그들의 본성(own)에는 아주 더러운 사랑들(filthy loves)과 망상들(persuasions)만 남겨졌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은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을 모독(profane)했을 것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24절)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 여기 나오는 ‘사람’은 사실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사람입니다.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가 있어 사람이요, 이 둘이 있어야 주님의 선(good)과 진리(truth), 사랑(love)과 신앙(faith)에 상응할 수 있는데, 이 사람, 곧 이 교회는 이미 이 둘이 사라진,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 ‘그룹’(cherubim, guardian beings)은 이런 사람이 다시 주님 신앙을 기웃거리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providence)를 의인화한 것입니다.

 

※ 천적 인간이었던 교회가 거듭남 이전 상태가 되면 아예 처음부터 거듭남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보다 더 처참한 상태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 그래서 ‘영들의 세계’(사후 모든 사람의 영이 일단 도착하는 곳, 이곳에서 천국 또는 지옥에 갈 준비를 하게 됨) 그 혼잡할 정도로 많은 악한 영들이 거진 다 기독교인들이라는 슬픈 사실에 주목합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차라리 처음부터 기독교를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나 그저 순박한 삶, 선한 삶을 살다 죽었더라면 최소한 일층천인 자연적 천국엔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을...

 

 

The Internal Sense

 

286. 이 장과 앞의 장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절들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영적인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다음은, 천적 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고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 뒤에, 사라진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차례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과 이후 홍수 때까지 이른 그들의 계승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and the preceding chapters, down to the verses now under consideration, tre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d of their regeneration; first, of those who lived like wild animals, but at length became spiritual men; then of those who became celestial men, and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afterwards of those who fell away, and their descendants, in regular order through the first, second, and third posterities and their successors, down to the flood.

 

이 장을 포함, 이어지는 절들을 통해, 태고교회의 사람이 형성된 때부터 홍수 때까지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요를 만나게 됩니다. 즉, 이것이 앞서 다룬 모든 내용, 곧 창세기 맨 앞 첫 세 장의 결론입니다. In the verses following, which conclude the chapter, we have a recapitulation of what occurred from the period when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formed, until the flood; thus it is a conclusion to all that goes before.

 

※ 창세기 첫 세 장은 말씀 전체를 여는 가장 중요한 관문입니다.

 

https://youtu.be/jACx0K78g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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