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3. ‘16:14-15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6:14, 15)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it shall no more be said,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but,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from the land of the north, and from all the lands whither He had compelled them; and I will return them onto their ground that I gave unto their fathers (Jer. 16:14-1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시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 구절은 그 진리를 더욱 깊은 차원에서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며,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장차 그보다 더 큰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며, 백성은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역사적으로는 포로에서의 귀환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주님께서 사람을 악과 거짓의 모든 속박에서 건져 내시는 더 큰 구원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역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이라는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도, 포로 된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때도 동일한 ‘살아 계신 여호와’이십니다. 다시 말해, 시대와 사건은 달라져도 생명의 근원은 언제나 오직 주님 한 분뿐입니다. 이것이 AC.290의 중심 사상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주님께서 단순히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시키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애굽에서의 구원은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고, 북방 땅과 여러 나라에서의 귀환은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는 회복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이것은 사람이 악과 거짓 가운데 있다가 주님에 의해 다시 신앙과 생명의 상태로 인도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특히 ‘북방’은 말씀에서 진리의 빛이 희미해진 상태나 영적 어둠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북방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다’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영적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다시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 결과 사람은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은 영적으로는 본래 주님께서 의도하신 교회와 생명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이 구절은 ‘살아 계신 여호와’라는 이름과 함께, 그 살아 계신 주님께서 실제로 사람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까지 보여 줍니다. 따라서 생명은 단순히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끊임없이 악에서 선으로, 거짓에서 진리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렘16:14-15를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사람을 모든 영적 속박에서 구원하여 참된 생명의 상태로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290에서 말하는 ‘(living)은 단순히 존재를 유지하는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고, 당신께로 이끄시는 구원의 생명인 것입니다.

 

 

 

AC.290, 심화 4, ‘렘23:7’

AC.290.심화 4. ‘렘23: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렘23:7) Therefore, b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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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2, ‘렘12:16’

AC.290.심화 2. ‘렘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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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2:16) And it shall be, if learning they shall learn the ways of My people, to promise by My name, Living Jehovah, as they taught My people to promise by Baal, then shall they be built in the midst of My people (Jer. 12:16).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오직 주님만이 살아 계신 여호와’로 불리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중심 주제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시라는 것이며, 이 구절은 그 사실을 잘 뒷받침하는 성경적 증거입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여 내 백성의 도’를 배우고, 더 이상 바알을 두고 맹세하지 않고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한다면, 그들도 주님의 백성 가운데 세움을 입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이방 민족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 주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한 맹세의 관용구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생명이 바알이나 다른 어떤 존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반대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는 거짓 신을 숭배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생명의 근원을 주님이 아닌 다른 데서 찾는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힘, 거짓된 교리, 또는 어떤 피조물을 생명의 근원처럼 의지할 때, 그는 영적인 의미에서 바알을 따르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또한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라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입으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 말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주님의 도를 배우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며, 그 결과로 살아 있는 여호와’를 고백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살아 있는 신앙이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배우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임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90에 인용합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 자체를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곧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모든 참된 생명이 오직 그분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12:16 AC.290의 핵심 사상을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생명의 근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도 되고, 죽은 사람도 됩니다. 주님을 생명 자체이신 살아 계신 여호와’로 인정하고 그분의 길을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은 참된 생명 안에 거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을 밝히기 위하여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90, 심화 3, ‘렘16: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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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5:2) And though they say, Jehovah lives; still they promise falsely (Jer. 5:2).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참으로 살아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앞에서 생명은 오직 하나이며, 그 생명은 주님으로부터만 나온다고 설명한 뒤, 말씀이 실제로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 계신’이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단순히 존재하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천사와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생명이 오직 그 분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문맥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백성은 입으로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짓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살아 계신 여호와’를 입술로는 인정하면서도 삶으로는 그분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고백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참된 생명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AC.290의 내용과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생명은 단순히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 안에 역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아무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 말해도, 주님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 신앙은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또한 살아 있는 신앙과 죽은 신앙의 차이를 보여 줍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신앙입니다. 반대로 죽은 신앙은 입술의 고백은 있지만,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상태를 거짓 맹세’라는 말로 책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예레미야 시대의 죄악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말씀에서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며, 그 생명은 참된 신앙 안에서만 역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2 AC.290의 핵심 주제를 잘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입술로 주님을 고백한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주님과 실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은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하며, 그분 안에 있는 사람만을 참된 의미에서 산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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