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3:15)



AC.236

 

그러므로 모든 인류가 지옥으로 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5절)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해설

 

이 글은 창세기 3장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희망의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인간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사랑이 생겼고, 감각과 자기 이성을 신뢰하기 시작했으며, 주님의 음성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점점 더 own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결과 태고교회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AC.236에 이르면 분위기가 갑자기 바뀝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한 일이 아니라, 이제 주님께서 하실 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류는 단순히 약간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두면 ‘모든 인류가 지옥으로 돌진(rushing into hell)’할 정도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표현은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과장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인간은 중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지옥적 사랑들, 곧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계속 타락하면, 결국 인간은 천국과의 연결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강림은 단순히 새로운 종교를 세우기 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개입이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만일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인간과 천국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창3:15는 흔히 ‘원복음’(Protoevangelium)이라고 불립니다. 타락 직후에 이미 구원의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막 넘어졌을 때, 주님은 이미 회복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특히 스베덴보리의 시각에서는 이 약속이 단순히 미래의 한 사건 예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주님을 떠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주님은 인간을 되찾기 위한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인간의 타락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주님의 사랑이며, 인간의 실패보다 더 강한 것은 주님의 구원 의지였습니다.

 

이 점에서 AC.236은 AC.223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주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지만, 주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주님에게서 돌아섰지만, 주님은 인간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최종 표현이 바로 성육신(Incarnation), 곧 주님의 세상 강림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창3:15는 단순한 예언 구절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중심을 미리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첫 부분에서 이미 복음의 핵심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타락했지만, 주님은 모든 인류가 지옥으로 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친히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AC.236은 창세기 3장의 어두운 흐름 속에 처음 비치는 새벽빛과 같습니다. 타락 이야기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보다 더 깊은 곳에서 이미 주님의 구원 계획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창3은 단순히 죄의 시작에 관한 장이 아니라, 동시에 구원의 시작이 선포되는 장이기도 한 것입니다.

 

 

 

AC.237, 창3:14-19, ‘16절 개요’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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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5, 창3:14-19, ‘14절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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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3:14)

 

 

AC.235

 

감각(the senses)으로 파악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 파트, 이걸 (serpent)이라 한 건데, 이 감각 파트는 스스로를 저주하였고, 지옥(infernal)이 되었습니다. (14)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해설

 

이 글은 지금까지 AC.229-233에서 계속 설명해 온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말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의 ‘뱀이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실제 뱀이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 안의 감각 수준(sensuous level)이 자기 본래의 자리를 벗어나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각의 존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감각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며, 자연계를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문제는 감각이 최종 판단자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감각은 이해를 섬기고, 이해는 신앙을 섬기며, 신앙은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이 시작되면서 이 질서가 뒤집혔습니다. 사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러하다’가 아니라, ‘내가 보고 만지고 이해할 수 있어야 믿겠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을 뱀의 상태라고 봅니다. 감각은 본래 가장 바깥 단계에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장 위에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은 점점 부정되고, 결국 몸과 세상에 속한 것만 실재처럼 보이게 됩니다.

 

특히 AC.235에서 눈에 띄는 표현은 ‘스스로를 저주하였다’(cursed itself)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은 누구도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이전 AC.223에서도 보았듯이, 주님은 결코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며, 언제나 자비와 평화 가운데 계십니다. 따라서 저주란 주님께서 어떤 존재를 미워하시거나 벌하시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주님의 질서에서 벗어남으로써 초래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사람이 태양을 등지고, 깊은 동굴로 들어간 뒤 어둠에 갇혔다고 해서 태양이 그 사람을 벌한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는 스스로 빛을 떠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뱀의 저주도 이와 같은 원리로 이해합니다. 감각이 주님과 신앙을 섬기는 자리에 머물렀다면 선한 도구가 되었겠지만, 스스로 주인이 되려 했기 때문에, 결국 지옥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235는 단순히 뱀에 대한 심판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인간에게 주어지는 경고입니다. 인간이 감각과 자기 이성을 신앙 위에 두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단지 ‘확인해 보고 믿겠다’는 정도로 시작, 결국에는 ‘감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영적인 것은 사라지고, 몸과 세상만 남게 됩니다.

 

따라서 AC.235의 핵심은 ‘감각을 사용하지 말라’가 아니라, ‘감각을 주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각은 훌륭한 종이 될 수 있지만, 본래 자리를 벗어나면 나쁜 주인이 됩니다. 태고교회의 후손들은 바로 이 점에서 넘어졌고, 그 결과 감각적 인간은 스스로를 저주, 지옥 상태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36, 창3:14-19, ‘15절 개요’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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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4, 창3:14-19, ‘창3:14-19 본문, 개요’(AC.234-279)

창3:14-19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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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19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3:14-19)

 

개요

 

AC.234

 

여기서는 홍수(the flood)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그 이후 상태가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회가 스스로를 완전히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 예언됩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해설

 

이 글은 창세기 3장의 해설이 단순히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 전체의 역사와 운명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창3의 여러 장면들을 통해 태고교회 후손들이 어떻게 점차 타락해 갔는지를 설명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사랑이 생겼고, 다음에는 감각과 자기 이성을 신뢰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지각(perception)은 약해지고, 주님의 음성을 두려워하게 되더니, 결국 자신들의 own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AC.234에 이르면 스베덴보리는 이 과정이 단순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붕괴 과정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붕괴는 일시적인 약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를 완전히 파괴하였다’(utterly destroyed itself)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점은 ‘파괴되었다’가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하였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교회의 몰락은 주님께서 교회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언제나 인간이 먼저 주님을 떠났고, 진리를 거부했으며,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AC.223에서 ‘주님은 결코 얼굴을 돌리지 않으신다’고 했던 원리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태고교회의 경우 그 결과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홍수 직전의 사람들은 자기 사랑과 거짓 확신 속에 깊이 빠져 있었고, 천국으로부터 오는 영향(influx)을 거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홍수를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교회의 영적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 예언된다.’

 

창세기 3장은 보통 타락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장을 단순한 타락의 기록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락과 함께 이미 구원의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스스로를 완전히 구원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가 무너졌고, 그 뒤의 고대교회도 결국 쇠퇴했으며, 유대교회도 타락했습니다. 인간은 반복해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단순히 예언자나 천사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주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인류 역사의 중심 사건으로 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직접 인간성, 그러니까 인성을 입고 세상에 오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234는 매우 감동적인 글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인간의 실패 이야기였습니다. own, 자기 사랑, 감각의 지배, 신앙의 상실, 체어리티의 소멸, 영적 어둠의 확대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처음으로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스스로를 파괴했지만, 즉 파괴를 자초했지만, 주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반복해서 넘어졌지만, 주님은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창3의 가장 깊은 의미는 단순히 ‘인간이 타락했다’가 아니라,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 주님은 구원을 준비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AC.234는 창세기 3장 전체를 바라보는 하나의 열쇠와 같습니다. 이 장은 죄의 시작을 말하는 동시에, 장차 오실 주님에 의한 회복의 시작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주님의 구원 계획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스베덴보리는 바로 그 점을 이 짧은 글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AC.235, 창3:14-19, ‘14절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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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3, 창3:11-13, ‘감각과 기억 지식만으로는 신앙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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