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7.심화

 

4. ‘31:35-36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5, 36) Said Jehovah, who giveth the sun for a light by day, and the ordinances of the moon and of the stars for a light by night, . . . these statutes shall not recede from before me (Jer. 31:35–36).

 

 

이 구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영적 삶에 존재하는 교대(alternations)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질서이며, 말씀에서는 이것을 규례 또는 법도(ordinances, statuta)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7의 핵심 주제는 아침과 저녁,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처럼 영적 상태에도 반복적인 변화가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자적으로는 천체의 운행 질서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더 깊은 의미를 봅니다. AC.31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해는 사랑을, 달은 신앙을, 별들은 진리의 지식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의 질서는 단순한 천문학적 질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과 진리가 인간과 교회 안에서 작동하는 영적 질서를 의미합니다.

 

특히 AC.37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36절의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법도’는 해와 달과 별의 운행 법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상징하는 영적 상태의 질서까지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강해지는 때와 약해지는 때, 신앙이 밝아지는 때와 어두워지는 때, 위로의 때와 시험의 때가 교대로 오는 것은 주님께서 세우신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37에서 생명은 이런 교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일 항상 낮만 있고 밤이 없다면, 또는 항상 여름만 있고 겨울이 없다면, 우리는 빛과 어둠, 따뜻함과 차가움을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영적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의 상태와 침체의 상태, 확신의 상태와 시험의 상태가 교대로 오기 때문에 사람은 선과 진리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대는 생명의 결함이 아니라 생명의 필수 조건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질서를 법도’라고 부릅니다. 해와 달과 별의 질서가 폐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도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스라엘’은 단순한 민족이 아니라 참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랑과 신앙의 영적 질서가 유지되는 한 교회도 존속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AC.37에서 렘31:35-36이 인용된 이유는, 영적 상태의 교대가 단순한 심리 변화나 우연한 경험이 아니라 주님께서 창조 때부터 세우신 법도’, 곧 영원한 섭리의 질서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때로는 아침 같은 상태를, 때로는 저녁 같은 상태를 지나고, 때로는 봄 같은 상태를, 때로는 겨울 같은 상태를 지나더라도 그것은 주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 있는 것이며, 바로 그 교대를 통해 생명은 자라고 완성되어 간다는 사실을 이 구절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AC.37, 심화 5, ‘렘33:25’

AC.37.심화 5. ‘렘33: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렘33:25) Said Jehovah, If my covenant of day and night stand not, an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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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3, ‘광명체와 징조’

AC.37.심화 3. ‘광명체와 징조’ AC.37의 본문인 창1:14-17에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14절)말인데요, 해, 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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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명체와 징조

 

AC.37의 본문인 창1:14-17에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14)말인데요, , , 별로 이런 낮, 밤 및 계절, , 해가 생기는 건 납득이 되지만, 징조까지는 좀... 무슨 옛날에 별자리를 보고 점을 치는 것도 아니고... 앞 해설 및 심화 1, 2를 요약,어떻게 이 광명체와 징조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비슷하게 걸려 넘어지는 지점입니다. ‘, , 별이 낮과 밤, 계절, , 해를 만드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갑자기 징조(signs)인가?’ 하는 의문이지요. 그런데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 ‘징조’는 점을 치는 별자리가 아니라, ‘상태를 알아보게 하는 영적 표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광명체는 단순히 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의 상태를 비추고 구별하게 하는 빛이다’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스베덴보리는 ‘, , ’을 자연물로 보지 않고, 인간 안에 있는 ‘사랑과 신앙과 다양한 진리의 빛’으로 봅니다. 해는 사랑(특히 주님 사랑), 달은 신앙, 별은 개별적 진리들입니다. 그러면 이 빛이 사람 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로 ‘구별’이 생깁니다. 낮과 밤이 나뉘듯이, 밝은 상태와 어두운 상태를 알게 되고, 계절이 생기듯이 기쁨의 때와 침체의 때를 구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징조’가 등장합니다.

 

징조’란 쉽게 말해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를 알게 해 주는 표시’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느 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내 안에 빛이 들어와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별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징조’입니다. 또 어떤 때는 말씀이 갑자기 더 깊이 와닿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징조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갑자기 메마르고, 기도가 잘 안 되고, 신앙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상태가 바뀌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그래서 ‘징조’는 미래를 맞추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의 영적 상태를 비추는 표지’입니다. 해가 떠 있으면 낮인 것을 알듯이, 내 안의 사랑과 진리의 빛이 켜지면 내 상태가 어떤지 알게 됩니다. 이게 바로 ‘광명체가 징조가 된다’는 뜻입니다.

 

광명체는 시간을 만드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태를 비추는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징조란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해주는 신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마음이 밝고, 어떤 때는 어둡고, 어떤 때는 말씀이 살아 있고, 어떤 때는 잘 안 들어옵니다. 이것이 바로 징조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신호입니다.’

 

결국 이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해, 달, 별은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물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상태를 나누고, 시간을 이루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상태를 알게 해주는 빛’입니다. 그래서 ‘징조’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실제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마음의 변화, 깨달음, 갈등, 평안 등, 이 모든 것이 이미 그 ‘징조’ 안에 들어 있습니다.

 

 

 

AC.37, 심화 4, ‘렘31:35-36’

AC.37.심화 4. ‘렘31:35-36’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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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위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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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수 없고, 더 나아가 퍼셉션, 곧 지각될 수도 없습니다.’(Life without such alternations and varieties would be uniform, consequently no life at all; nor would good and truth be discerned or distinguished, much less perceived.)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진술은 참 놀랍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천국은,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 삶이 늘 행복, 만수무강, 무사형통하게 될 줄,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줄 알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흔히 ‘좋은 신앙생활’이나 ‘천국 같은 삶’을 생각할 때, 늘 밝고, 늘 평안하고, 변화 없는 상태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변화와 교대가 없으면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철학적 표현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구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먼저 왜 ‘교대와 다양함’이 없으면 생명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명이란 항상 ‘움직임과 변화’를 포함합니다. 심장도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기 때문에 살아 있고, 호흡도 들이마심과 내쉼이 있기 때문에 유지됩니다. 만약 이 리듬이 멈추고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면, 그것은 안정이 아니라 곧 죽음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영적 생명도 똑같다고 봅니다. 기쁨만 계속되고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이 무뎌지고,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선과 진리가 분별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다른 상태와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의 소중함은 병을 겪어본 사람에게 더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빛의 소중함은 어둠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더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삶에서도 ‘어두움과 혼란의 상태가 있어야, 빛과 진리의 상태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항상 같은 상태만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퍼셉션’, 곧 지각이 등장합니다. 퍼셉션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이것이 선이다, 이것이 진리다 하고 느끼고 아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퍼셉션도 대비 속에서 더 또렷해집니다. 사람이 시험과 갈등을 겪으면서, ‘, 이것은 아닌데’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이것이 옳다’는 감각이 훨씬 깊어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교대와 다양함이 없으면 퍼셉션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과 연결해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항상 평안해야 한다’, ‘천국은 늘 같은 기쁨의 상태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천국조차도 ‘다양성과 변화 속에서 더 깊어지는 기쁨의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천사들도 하나의 단조로운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천국의 기쁨은 반복되어도 지루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음이 메마르거나, 기도가 잘 안 되거나, 혼란이 올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잘못된 길에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렇게 말해 줍니다. ‘그런 상태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교대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이해와 사랑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이 진술은 우리에게 기대를 바꾸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라, ‘그 모든 교대와 변화 속에서 점점 더 살아나는 상태’입니다.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침체도 있고, 때로는 혼란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더 깊은 생명으로 이끌리는 과정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진짜 생명은 단순한 ‘항상 좋음’이 아니라, ‘다양한 상태들이 조화를 이루며 더 깊어지는 살아 있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어두움이나 흔들림이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AC.37, 심화 3, ‘광명체와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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