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국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The God of Heaven Is the Lord
HH.2
무엇보다 먼저,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위에 다른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온 천국에서는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천국의 하나님으로 인정합니다. 거기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바와 같이, First of all it must be known who the God of heaven is, since upon that all the other things depend. Throughout all heaven no other than the Lord alone is acknowledged as the God of heaven. There it is said, as he himself taught,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8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요10:30, 38);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14:9-11);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요16:13-15) That he is one with the Father; that the Father is in him, and he in the Father; that he who sees him sees the Father; and that everything that is holy goes forth from him (John 10:30, 38; 14:9–11; 16:13–15).
저는 이 문제에 관하여 천사들과 자주 대화하였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천국에서는 신성(the Divine)을 셋으로 나눌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성은 하나임을 알고 지각하며, 그 하나가 주님 안에 계심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이 세상에서 온 교회 사람들 가운데 신적 존재(Divine beings)를 셋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가진 자들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한 신적 존재에서 다른 신적 존재로 옮겨 다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셋을 생각하면서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주13) 허용되지 않습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각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는 말은 생각이 직접 나오는 거, 즉 말하는 생각(the thought speaking)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신성을 셋으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 서로 다른 관념을 가지며, 그것을 하나로 만들어 주님 안에 집중시키지 않은 자들은 천국에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생각이 서로 쉐어링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셋을 생각하면서 하나라고 말한다면, 그는 즉시 드러나 거절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진리와 선을 분리하지 않았던 자들, 곧 신앙과 사랑을 분리하지 않았던 자들은, 저 세상에서 가르침을 받은 후, 주님이 우주의 하나님이시라는 천국의 관념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삶과 분리한 자들, 곧 참된 신앙의 계명에 따라 살지 않았던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I have often talked with angels on this subject, and they have invariably declared that in heaven they are unable to divide the Divine into three, because they know and perceive that the Divine is One and this One is in the Lord. They also said that those of the church who come from this world having an idea of three Divine beings cannot be admitted into heaven, since their thought wanders from one Divine being to another; and it is not allowable there to think three and say one,13 because in heaven everyone speaks from his thought, since speech there is the immediate product of the thought, or the thought speaking. Consequently, those in this world who have divided the Divine into three, and have adopted a different idea of each, and have not made that idea one and centered it in the Lord, cannot be received into heaven, because in heaven there is a sharing of all thoughts, and therefore if anyone came thinking three and saying one, he would be at once found out and rejected. But let it be known that all those who have not separated what is true from what is good, or faith from love, accept in the other life, when they have been taught, the heavenly idea of the Lord, that he is the God of the universe. It is otherwise with those who have separated faith from life, that is, who have not lived according to the precepts of true faith.
주13. 그리스도인들은 저세상에서 유일신 사상(唯一神, the idea of the one God)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되는데, 일단 그들을 조사해 보면, 그들은 삼신 사상(三神, the idea of three Gods)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Christians were examined in the other life in regard to their idea of the one God and it was found that they held the idea of three Gods (n. 2329, 5256, 10736, 10738, 10821). 주님의 신적 삼위일체(A Divine trinity in the Lord)가 천국에서는 인정되고 있다. A Divine trinity in the Lord is acknowledged in heaven (n. 14, 15, 1729, 2005, 5256, 9303).
해설
HH.2에서 스베덴보리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바로 아는 일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천국을 먼저 장소로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빛의 세계, 죽음 이후의 평안한 처소처럼 상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 천국은 어떤 공간 이전에 ‘누구와 함께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세계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천국 이해 전체를 결정합니다. 하나님 이해가 흔들리면 천국 이해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의 구조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문제를 제시합니다.
그는 단언합니다. 천국에서는 오직 주님 한 분만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파적 주장이나 단순한 신학적 선택이 아니라, 천국의 실제 상태에 대한 증언입니다. 천사들은 신성을 셋으로 나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신성을 하나로 ‘알고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 논리적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의 경험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세 중심이 아니라 한 중심이며, 그 중심이 곧 영화로우신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 말씀은 천국에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아버지라는 또 다른 분리된 신적 인격을 따로 상상하지 않습니다. 신성 전체가 주님 안에 있다고 지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지상의 일반적 관념과 차이가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사고 속에서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각각 다른 존재처럼 떠올립니다. 겉으로는 하나를 말하지만, 내적 상상에서는 셋으로 분리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는 이런 분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는 생각과 말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는 생각을 숨길 수 있고, 말은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말이 곧 생각의 직접적인 표현입니다. 생각이 곧바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셋을 생각하면서 하나라고 말하는 상태는 즉시 모순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교리 시험에서 탈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존재의 구조 자체가 천국의 질서와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내적 일치의 세계이며, 하나님 이해에서도 동일한 일치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제시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전통적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배제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진리와 선을 분리하지 않은 자들’, 곧 ‘신앙과 사랑을 분리하지 않은 자들’은 사후에 가르침을 받아 천국의 관념을 받아들인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음으로 선을 사랑했고, 삶 속에서 계명을 따르려 했던 사람은 더 깊은 진리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내적 구조가 이미 하나됨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신앙을 말로만 고백하고 삶에서는 따르지 않았던 사람, 곧 신앙을 삶과 분리한 사람은 천국의 관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합니다. 문제는 지적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사랑 없는 신앙은 분리된 상태이며, 분리는 곧 천국과 어긋나는 구조입니다.
결국 HH.2의 중심 메시지는 삼위일체 논쟁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됨’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한 분이 주님 안에 계시고, 천국은 그 한 분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인간 역시 진리와 선, 신앙과 사랑, 생각과 말, 고백과 삶이 하나가 될 때, 그 질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단지 신학적 선택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분열된 사고와 분열된 삶 속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주님 안에서 점점 하나로 통합될 것인가. 스베덴보리는 천국을 본 사람으로서, 천국의 질서는 철저히 ‘하나’의 질서라고 증언하며, 그 하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가 완전히 결합된 인격, 곧 주님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심화
1. ‘무엇보다 먼저,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위에 다른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단순히 신학적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묻는 선언입니다. 왜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인가’가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 이해가 곧 현실 이해, 인간 이해, 행복 이해,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장 단순한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나라의 법과 질서는 그 나라의 최고 권위자가 어떤 존재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정의로운 왕인가, 폭군인가, 무관심한 통치자인가에 따라 나라의 분위기와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중심이 누구인가’에 대한 관념은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이 멀리 떨어진 추상적 절대자인지, 세 인격으로 분리된 권위 구조인지, 아니면 사랑과 지혜가 하나로 결합된 인격적 중심인지에 따라 인간의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천국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로 알지 못하면, 천국을 잘못 상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지배적 권력자로 생각하면 천국도 권력의 질서로 상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비인격적 원리로 생각하면 천국도 감정 없는 철학적 상태로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과 진리의 완전한 인격이라면, 천국은 그 사랑과 진리 안에서의 공동체가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궁극적 기준으로 삼느냐가 삶의 방향을 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궁극적 기준으로 삼고,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인정과 명예를 삼습니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선택과 판단이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는 하나님이 그 궁극적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 인간의 행복 이해와 윤리, 삶의 목표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궁극적 중심을 하나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아일 수도 있고, 사회적 성공일 수도 있고, 어떤 이념일 수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중심이 주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과 진리가 완전히 하나 된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심이 분열되어 있다면, 삶도 분열됩니다. 하나님을 셋으로 나누어 사고하면, 인간의 내면도 쉽게 분리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한 중심으로 이해하면, 인간의 내적 통합도 가능해집니다.
신앙이 없는 분들에게는 ‘천국’이라는 말을 빼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인생의 마지막 기준을 무엇으로 두고 있는지가 당신의 삶 전체를 결정합니다. 그 기준이 흔들리면 모든 판단이 흔들립니다. 스베덴보리는 하나님이 그 기준이며, 그 하나님이 주님이라는 점을 바로 세우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다른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 있다’는 말은 교리적 위계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 문제입니다. 하나님 이해는 단순한 종교 정보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구조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근원적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 아래는 ‘아직 신앙생활을 안 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해설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려면, 먼저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 인생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중심을 하나 두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성공을 중심에 두고, 어떤 이는 돈을, 어떤 이는 인정과 명예를 중심에 둡니다. 겉으로는 여러 가치를 말하지만, 실제 선택의 순간마다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어떤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곧 그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꼭 종교적 의미의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가장 궁극적인 판단 기준이 그 사람의 신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실 ‘내 삶의 궁극적 중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중심이 권력이라면, 삶은 경쟁과 비교로 흐릅니다. 만약 중심이 인정이라면, 타인의 시선이 나의 기쁨과 절망을 좌우합니다. 만약 중심이 물질이라면, 소유의 증감이 곧 존재 가치의 증감이 됩니다. 중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생각이 조직되고, 감정이 반응하고,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다른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단지 교리 선택이 아니라, 삶 전체의 구조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떨어진 추상적 존재로 이해하면, 신앙은 철학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심판자로만 이해하면, 종교는 불안과 복종의 체계가 됩니다. 하나님을 세 권위의 분리 구조처럼 상상하면, 인간의 내면도 쉽게 분열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과 진리가 완전히 하나 된 인격적 중심이라면, 인간도 그 안에서 통합을 배웁니다. 사랑과 진리가 갈라지지 않고, 믿음과 삶이 분리되지 않으며, 생각과 말이 점점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해는 인간 이해와 직결됩니다.
신앙이 없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당신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흔들리는 것을 중심에 두면 삶도 함께 흔들립니다. 변하는 것을 중심에 두면 결국 허무에 이릅니다. 스베덴보리는 변하지 않는 중심, 사랑과 진리가 하나로 결합된 중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이 바로 주님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중심을 따라 살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중심이 바뀌면 가치 판단이 바뀌고, 가치 판단이 바뀌면 삶의 방향이 바뀌며, 삶의 방향이 바뀌면 존재의 상태가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가 서두에서 이 문제를 먼저 세우는 이유는, 중심이 바로 서지 않으면 그 위에 쌓는 모든 설명이 결국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문장은 이렇게 풀 수 있습니다.
‘당신 인생의 최종 기준이 누구인가, 무엇인가가 당신의 생각과 선택과 행복을 모두 결정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주님일 때, 인간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경쟁이 아니라 유익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2.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각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는 말은 생각이 직접 나오는 거, 즉 말하는 생각(the thought speaking)이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Heaven and Hell’ 전체에서 반복되는 영계의 기본 법칙 가운데 하나입니다. 겉으로는 단순한 묘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천국 존재 방식의 핵심 구조’를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먼저 가장 기본 원리부터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계는 ‘내면이 곧 외면으로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지상에서는 생각과 말이 분리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예의, 계산, 두려움, 체면 등 여러 이유로 생각을 감추고 말로는 다른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지상에서는 말이 반드시 생각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말이 곧 생각의 직접적 발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은 생각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할 때, 이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태를 말합니다. 천사들은 먼저 문장을 조립해서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 그대로 소리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the thought speaking’, 곧 ‘말하는 생각’이라고 표현합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생각입니다. 둘 사이에 간격이 없습니다.
왜 이런 구조가 가능한가? 그 이유는 천국에서는 내적 인간, 즉 속 사람과 외적 인간, 즉 겉 사람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는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 사이에 간극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존재 전체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진리와 선이 분리되지 않고, 의지와 이해가 조화를 이루며, 사랑과 사고가 일치합니다. 이런 통합 상태에서는 생각이 왜곡 없이 바로 표현됩니다.
이것이 HH.2에서 왜 중요한가 하면, ‘셋을 생각하면서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 천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논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상에서는 삼위를 각각 다른 신적 존재처럼 상상하면서도,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만약 내면에서 세 존재를 따로 떠올리고 있다면 그것이 즉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셋을 생각하고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그 세계의 질서와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도 있습니다. 천국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세계가 아니라, ‘내적 진실성과 존재의 일치가 완성된 세계’입니다. 생각과 말이 하나라는 것은 도덕적 정직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존재 전체가 통합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말하는 것을 그대로 사는 상태입니다.
반대로 생각과 말이 분리되는 것은 아직 내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지상의 삶을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이 하나로 결합되어 가는 과정’으로 봅니다. 거듭남이란 결국 이 분리를 점점 줄여 가는 과정입니다. 천국에서는 그 과정이 완성됩니다.
따라서 ‘말은 생각이 직접 나오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언어학적 묘사가 아니라, 천국의 존재론을 설명하는 선언입니다. 천국은 생각과 말이 하나인 세계이며, 그래서 하나님 이해 역시 분열될 수 없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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