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9.심화

 

3. ‘3: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3:3) The horseman mounting, and the flame of the sword, and the flash of the spear, and a multitude of the slain. (Nahum 3:3)

 

 

스베덴보리가 AC.309에서 나3:3을 인용하는 이유 역시 앞에서 인용한 에스겔과 같은 맥락입니다. 곧 ‘’이 말씀의 속뜻으로는 진리를 대적하고 파괴하는 ‘거짓’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일관되게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훔의 예언은 니느웨의 멸망을 묘사하고 있지만, 말씀의 속뜻으로는 거짓과 악이 극에 달한 교회의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구절은 ‘기병’, ‘’, ‘’, 그리고 ‘죽임당한 자의 떼’를 차례로 묘사합니다. 겉으로는 전쟁의 참상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군사적 표현들을 모두 영적 싸움의 상징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은 진리를 베어 쓰러뜨리는 거짓을, ‘’은 그 거짓을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확증하는 거짓된 논증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칼과 창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거짓이 단순히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진리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구절 첫머리에 나오는 ‘기병’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능력 또는 지성의 능력을 의미하며, ‘기병’은 그 이해하는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그 능력을 움직이는 사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니느웨의 심판을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의 ‘기병’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거짓을 위하여 지성을 사용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지성이 진리의 인도를 받을 때는 천국을 섬기지만,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복종할 때는 거짓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이어지는 ‘죽임당한 자의 떼’ 역시 문자적인 전사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영적 생명을 잃는 것을 의미하며, 특별히 진리와 선이 거짓과 악에 의해 소멸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죽임당한 자의 떼’는 거짓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황폐하게 된 사람들과 교회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AC.309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거짓 때문에 선과 진리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상태’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인용한 겔21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에스겔에서는 ‘’이 번개처럼 번뜩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성문마다 두려움을 두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면, 나훔에서는 ‘’과 ‘’이 수많은 죽임을 가져오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두 예언 모두 공통적으로 거짓이 교회를 황폐하게 하고, 영적 생명을 파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여러 예언들을 나란히 인용, ‘’이 거짓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어느 한 구절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상응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C.309에서 나3:3을 인용하는 이유는, ‘’과 ‘’으로 대표되는 거짓과 거짓된 논증이 사람들의 영적 생명을 죽이고, 교회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전쟁의 무기들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거짓이 이해하는 능력을 왜곡하고 진리를 공격, 마침내 영적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언으로 인용된 것입니다.

 

 

 

AC.309, 창3:24, ‘두루 도는 불 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9 ‘두루 도는 불 칼’(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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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9, 심화 2, ‘겔21:9-10, 14-15’

AC.309.심화 2. ‘겔21:9-10, 14-15’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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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1:9-10, 14-15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21:9-10, 14-15) Prophesy and say, Thus saith Jehovah, Say a sword, a sword, it is sharpened, and also burnished to make a sore slaughter; it is sharpened that it may be as lightning. Let the sword be doubled the third time, the sword of his slain; the sword of a great slaughter,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that their heart may melt, and their offenses be multiplied, I have set the terror of the sword in all their gates. Alas! it is made as lightning (Ezek. 21:9–10, 14–15).

 

 

AC.309에서 스베덴보리가 겔21의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의 영적 의미를 더욱 강하게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은 문자적인 전쟁 무기가 아니라, 말씀의 속뜻으로는 진리를 파괴하는 거짓, 특히 자기 사랑과 거짓된 설득에서 나오는 거짓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예언 전체는 거짓이 인간의 내면과 교회를 어떻게 철저히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매우 생생한 상징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먼저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라는 표현들은 모두 거짓의 파괴력이 극도로 증대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여러 곳에서 ‘’이 진리와 싸우는 거짓, 또는 거짓으로 인해 진리가 파괴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칼이 반복하여 언급되고,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는 것은 거짓이 점점 더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어 사람의 선과 진리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깊은 곳까지 침입하는 칼’, 또는 개역개정의 ‘사람들을 둘러싸고’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번역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표현 모두 거짓의 파괴력이 사람의 가장 깊은 삶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침실’이나 ‘내실’ 자체의 상응을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거짓이 인간을 부분적으로만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장악, 황폐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라는 표현은 바로 AC.309의 논지를 직접 뒷받침합니다. ‘낙담’은 선에 대한 의지와 진리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많이 엎드러지게’라는 것은 거짓으로 인해 악과 오류가 계속 증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성문’은 말씀의 속뜻으로는 사람의 마음에 진리가 들어오고 나가는 입구, 곧 교리와 이성의 출입구를 의미하는데, 모든 성문에 칼이 놓였다는 것은 진리가 들어올 통로 자체가 거짓에 의해 점령된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이 인간의 전 존재를 황폐하게 만드는 영적 상태를 단계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AC.309 전체의 결론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그들이 낙담하여’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앞에서 거짓이 사람을 황폐하게 하여 ‘더 이상 선과 진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거짓과 그것을 확증하는 것들만 보게 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은 바로 이러한 영적 황폐함을 예언자의 언어로 묘사한 대표적인 본문인 것입니다. 칼이 번개처럼 번뜩이고, 살육이 커지고, 마음이 녹으며, 넘어짐이 많아지고, 성문마다 칼의 공포가 놓이는 일련의 모습은 모두 거짓이 인간의 영적 생명을 철저히 파괴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에스겔의 ‘’에 관한 예언이 그가 설명하고 있는 ‘거짓으로 인한 황폐함’의 가장 강력한 성경적 증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칼의 물리적 움직임이나 전쟁 장면 자체가 아니라, 거짓이 사람의 마음과 이성, 그리고 진리가 드나드는 모든 통로를 점령, 영적 생명을 무너뜨리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AC.309에서 겔21을 길게 인용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AC.309, 심화 3, ‘나3:3’

AC.309.심화 3. ‘나3: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나3:3) The horseman mounting, and the flame of th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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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9, 심화 1,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AC.309.심화 1.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Potts역에는 있는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표현이 개역개정에는 안 보이는 이유 개역개정에는 Potts 영어본의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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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Potts역에는 있는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표현이 개역개정에는 안 보이는 이유

 

 

개역개정에는 Potts 영어본의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에 해당하는 ‘침실’이나 ‘은밀한 방’이라는 표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개역개정이 어떤 말을 빠뜨린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히브리어 표현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여 번역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절 번호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AC.309의 영어본은 이 대목을 겔21:14-15로 표시하지만, 유대교식 히브리어 성경의 장절 체계에서는 겔21:19-20에 해당합니다. 기독교 성경에서는 앞 장 끝부분의 다섯 절을 겔21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절 번호가 다섯 절씩 차이 납니다. 개역개정의 겔21:14에 나오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라는 부분이 바로 Potts 영어본의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와 대응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도 해당 표현 자체는 존재하며, 개역개정은 그것을 ‘사람들을 둘러싸고’로 번역한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히브리어는 ‘הַחֹדֶרֶת לָהֶם’, 곧 ‘하호데레트 라헴’입니다. ‘하호데레트’는 동사 ‘חדר’에서 나온 여성 단수 분사형인데, 이 동사는 ‘안으로 들어가다’, ‘꿰뚫고 들어가다’라는 방향으로도 이해될 수 있고, 문맥에 따라 ‘둘러싸다’, ‘사방에서 죄어 오다’라는 뜻으로도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일부 영어 역본은 칼이 그들의 내실 또는 은밀한 방 안으로 들어간다고 번역한 반면, 여러 현대 역본은 칼이 그들을 에워싸거나 사방에서 들이닥친다고 번역합니다. 실제로 KJV는 ‘privy chambers’로, Young의 직역본은 ‘inner chamber’로 옮기지만, 다른 현대 역본들은 ‘surrounds them’ 또는 ‘closing in on every side’로 처리합니다.

 

따라서 Potts 영어본의 ‘bed chambers’는 히브리어 본문에 ‘’을 뜻하는 별도의 명사가 명백하게 적혀 있기 때문에 생긴 번역이라기보다, ‘하호데레트’라는 동사의 의미를 안쪽으로 침입한다는 방향으로 이해한 전통적인 번역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개역개정의 ‘사람들을 둘러싸고’는 같은 동사를 칼이 그들을 사방에서 둘러싸며 몰아붙이는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는 원문이 있고, 다른 쪽에는 원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난해한 히브리어 표현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 것입니다.

 

여기서 AC 연구상 더욱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는 스베덴보리가 직접 작성한 영어가 아니라 Potts 영어 번역에 들어 있는 문구입니다. AC 원전은 라틴어이므로, 영어 문구만 보고 스베덴보리의 라틴 원문에도 반드시 ‘침실’이나 ‘내실’에 해당하는 명사가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Potts가 라틴 문장을 그대로 직역했을 수도 있지만, 성경 인용 부분을 당시 영어 독자들에게 익숙한 전통적 성경 문구에 맞추어 표현했을 가능성도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정확한 비교 순서는 ‘AC 라틴 원문’, ‘Potts 영어 번역’, ‘히브리어 성경 본문’, ‘개역개정’이어야 합니다. AC.309의 라틴 원문이 존재하는 것은 확인되지만, 현재 확보한 온라인 자료에서는 해당 라틴 인용문의 세부 문구까지 안정적으로 열람되지 않아, 라틴 원문에 ‘침실’이라는 명사가 실제로 들어 있다고 여기서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AC.309의 한국어 번역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요?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목적은 칼이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다는 공간적 세부를 특별히 해설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AC.309에서 그가 직접 밝히는 핵심은 칼이 사람을 황폐하게 하여 선과 진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거짓과 그 반대되는 것들만 보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표현을 존중하여 ‘크게 살육하는 칼이 사람들을 에워싼다’고 옮겨도 AC.309의 논지는 손상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뒤의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라는 문맥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다만 Potts 영어본을 직접 번역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면, ‘크게 살육하는 칼이 그들의 깊은 곳까지 침입한다’로 옮기는 절충안도 가능합니다. 이 번역은 영어의 ‘bed chambers’를 문자적으로 ‘침실’이라고 옮겨 독자에게 불필요한 공간 이미지를 주는 대신, 그 전통적 번역이 담고 있는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는 뜻을 살립니다. 그러나 AC.309 해설에서 그들의 ‘침실’이나 ‘내실’을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이라고 곧바로 상응 풀이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글에서 그 문구를 따로 해석하지 않았고, 바로 뒤에서 설명하는 것은 ‘’과 ‘넘어짐’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가 ‘은밀한 방’을 사람의 내면이라고 단정적으로 확장한 것은 본문이 직접 말한 범위를 넘어간 해설이었습니다.

 

심화 원고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Potts 영어본의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는 개역개정에서 ‘사람들을 둘러싸고’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는 개역개정이 어떤 구절을 생략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하호데레트 라헴’을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일부 역본은 이를 ‘그들의 내실까지 들어간다’는 뜻으로 이해하였고, 현대의 여러 역본은 ‘그들을 에워싸거나 사방에서 몰아붙인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AC 원전은 라틴어이므로 Potts의 영어 표현을 곧바로 스베덴보리 자신의 문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AC.309에서 이 인용의 핵심은 칼이 어느 물리적 장소로 들어가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거짓과 persuasion이 사람을 철저히 황폐하게 하여 더 이상 선과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어 번역에서는 개역개정의 ‘사람들을 둘러싸고’라는 표현을 따르거나, Potts의 뉘앙스를 보존, ‘그들의 깊은 곳까지 침입하는 칼’이라고 옮기는 것이 적절합니다.

 

 

 

AC.309, 심화 2, ‘겔21:9-10, 14-15’

AC.309.심화 2. ‘겔21:9-10, 14-15’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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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9, 창3:24, ‘두루 도는 불 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9 ‘두루 도는 불 칼’(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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