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3.심화

 

2. (blessing)

 

AC.43 본문 중 말씀에서 주님의 축복(blessing)은 열매 맺음과 번성을 뜻하는데에 나오는 (blessing)에 대해 조금만 더 와닿게 설명해 주세요.

 

AC.43에서 말하는 ‘(blessing)을 제대로 이해하면, 말씀 전체에서 ‘’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론부터 또렷하게 말씀드리면, ‘말씀에서 은 단순히 무엇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자라나도록 하시는 주님의 작용’, 곧 선과 진리가 계속 열매 맺고 번성하도록 하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은 건강, 형통, 보호, 성공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것들을 본질적인 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 안의 생명과 직접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말하는 복은 훨씬 깊어서,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가 실제로 자라고,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AC.43에서는 복을 설명하면서 바로 ‘열매 맺음’과 ‘번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이 복의 본체입니다.

 

이걸 조금 더 와닿게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작은 진리를 하나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남을 진심으로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아직 ‘씨앗’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복이 그 안에 작용하면, 이 하나의 생각이 그대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점점 ‘행동으로 이어지고, 습관이 되고, 더 깊은 이해로 확장되며, 다른 선과 진리들과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 안에 ‘여러 가지 선한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열매 맺음’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계속 이어지고 확장되는 것이 ‘번성’입니다.

 

그래서 복은 ‘하나 더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는 작용’입니다. 그리고 이 증가는 외적인 양이 아니라, ‘내적인 생명의 확장’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그대로 있고, 어떤 사람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 차이가 바로 ‘복이 작용하는가’의 차이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복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은 씨앗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실제로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복을 받는다’는 말은, ‘주님이 그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를 자라게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복은 무엇을 더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있는 좋은 것이 계속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이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를 끊임없이 자라나게 하여 열매 맺고 번성하게 하는 작용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도 단순한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영적 생명의 확장에 대한 선언’입니다.

 

 

 

AC.43, 창1:22-23, ‘살아 있는 생명의 증식 : 사랑의 열매와 신앙의 번성’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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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 심화 1, ‘놀라울’(amazing)

AC.43.심화 1. ‘놀라울’(amazing) AC.43 본문 중, ‘이것은 사람이 육신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삶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그러합니다’(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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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심화

 

1. 놀라울(amazing)

 

AC.43 본문 중, 이것은 사람이 육신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삶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그러합니다(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ody, but to an amazing degree in the other life.)라고 하는데, 혹시 그런 실제 사례를 좀 들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amazing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C.43에서의 ‘놀라울(amazing)은 ‘지상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던 선과 진리의 증가가, 영계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즉, 질적인 드러남도 포함되지만, 이 문맥에서는 특히 ‘양적 번성과 증식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느냐가 핵심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사람이 육신 안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시간, 공간, 감각, 육체 조건’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해도, 진리를 배워도, 그것이 자라는 속도나 범위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마치 작은 화분에 심긴 나무처럼, 자라긴 하지만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자랍니다. 그런데 사람이 영계로 들어가면, 이 제한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그 안에 있던 선과 진리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실제적인 예로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쉬우십니다. 어떤 사람이 지상에서 말씀을 사랑하고, 작은 선을 꾸준히 행하며 살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큰 변화도 없고, 열매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미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계에 들어가면, 그 씨앗이 더 이상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그 안의 선과 진리가 계속 연결되고, 결합되고, 확장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히 ‘많아진다’가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번성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이 증가는 단순한 ‘개수 증가’가 아니라, ‘연결의 증가’입니다. 하나의 진리가 다른 진리와 연결되고, 하나의 선한 의도가 더 많은 선한 결과로 이어지면서, 전체가 살아 있는 구조처럼 확장됩니다. 그래서 그 증가는 선형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퍼져 나갑니다.’ 이 점에서 ‘amazing’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반대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 안에 선과 진리가 없다면, 영계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는 비슷해 보이던 두 사람이, 영계에서는 한 사람은 계속 풍성해지고, 다른 한 사람은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이 차이 역시 매우 ‘놀라운’ 수준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AC.43의 이 문맥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육신 안에 있을 때는 선과 진리의 성장이 제한되어 있지만, 다른 삶에서는 그것이 방해 없이 결합되고 확장되어, 놀라울 정도로 풍성하게 증가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작은 선과 배움은 겉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그것은 영원히 자라날 씨앗입니다.’

 

 

 

AC.43, 심화 2, ‘복’(blessing)

AC.43.심화 2. ‘복’(blessing) AC.43 본문 중 ‘말씀에서 주님의 ‘축복’(blessing)은 열매 맺음과 번성을 뜻하는데’에 나오는 ‘복’(blessing)에 대해 조금만 더 와닿게 설명해 주세요. AC.43에서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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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 창1:22-23, ‘살아 있는 생명의 증식 : 사랑의 열매와 신앙의 번성’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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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심화

 

6. ‘51:3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51:34) Nebuchadnezzar the king of Babylon hath devoured me, he hath troubled me, he hath made me an empty vessel, he hath swallowed me as a whale, he hath filled his belly with my delicacies, he hath cast me out (Jer. 51:34),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앞서 이사야 27장의 리워야단이나 에스겔의 큰 악어와 마찬가지로, ‘고래(whale) 또는 큰 물고기’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큰 물고기들’이 원래는 지식과 이해의 큰 체계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지만, 그것들이 주님에게서 분리되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섬기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느부갓네살 왕’과 바벨론’은 말씀에서 단순한 역사적 국가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바벨론은 거룩한 것들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상태, 곧 자기 사랑이 종교와 신앙까지 지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느부갓네살은 그러한 자기 사랑의 지배력을 대표합니다.

 

본문은 그가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라고 말합니다. 영어 원문에는 고래처럼 나를 삼켰다(swallowed me as a whale)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고래는 방대한 지식과 추론 능력을 가진 자연적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를 섬기는 지식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목적을 위해 흡수하고 이용하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고래는 먹고 삼키고 배를 채우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특히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음식은 선과 진리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벨론적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여 주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영광과 자기 권세를 위해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소유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음식’을 먹지만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기 사랑의 연료로 사용합니다.

 

AC.42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큰 물고기’의 가장 위험한 형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스겔의 바로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는 자연적 인간을 나타내고, 이사야의 리워야단은 진리를 왜곡하는 교만한 추론을 나타낸다면, 예레미야의 고래는 거룩한 진리들까지도 자기 사랑을 위해 삼켜 버리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즉 단순한 무지나 오류가 아니라, 진리를 소유하고도 그것을 왜곡하여 자기 자신을 섬기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이 자신을 빈 그릇이 되게 하였다’고 탄식합니다. 진리가 자기 사랑에 삼켜질 때, 사람은 겉으로는 많은 지식과 교리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비어 있게 됩니다. 그릇은 가득 찬 것 같지만, 생명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51 34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 또는 고래’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경우, 방대한 지식과 진리들을 자기 사랑과 권세욕을 위해 삼켜 버리는 상태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큰 물고기들’이 단순한 자연 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거대한 구조를 의미하며, 그것이 주님을 섬길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섬길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인 것입니다.

 

 

 

AC.42, 창1:21, ‘지식을 살리는가 삼키는가 : 큰 바다짐승들로 드러나는 일반 원리의 방향’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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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 심화 5, ‘사27:1’

AC.42.심화 5. ‘사27: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사27:1) In that day Jehovah, with his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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