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3.심화

 

7. ‘28:42-43

 

42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43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28:42, 43)

 

 

이 구절을 AC.213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벌거벗음(nakedness)이 단순한 신체 노출이 아니라 영적 결핍과 인간 자신의 own을 의미하며, 거룩한 것 앞에서는 반드시 그것이 덮여 있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것은 제사장 복장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제사장의 모든 의복이 상응에 의해 영적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제사장은 주님을 표상하고, 제사장의 옷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와 신적 선을 표상합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벌거벗음을 드러낸 채 거룩한 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은 단순한 예절이나 품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AC.213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창3의 벌거벗음과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 후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게 되었고, 그 벌거벗음을 가리려 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벌거벗음은 선과 진리의 보호를 잃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 들어갈 때 벌거벗음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의 own이 드러난 상태로는 주님의 거룩함에 접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특히 본문은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육체적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보면 인간의 own만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은 곧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own 안에는 사랑 자체가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있으며, 진리 자체가 아니라 왜곡된 이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로 덮여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속바지가 (linen)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세마포나 베는 깨끗한 진리, 특히 선에서 나온 진리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베 속바지로 벌거벗음을 가리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것과 자신의 own을 주님께서 주시는 순수한 진리로 덮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계3:18 흰옷을 사서 입으라’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의와 지혜로는 자신의 벌거벗음을 덮을 수 없습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주시는 옷, 곧 진리와 선이 필요합니다. 출애굽기의 제사장 복장은 바로 그 원리를 의식적으로 보여 주는 표상입니다.

 

그래서 AC.213에서 출28:42-43을 인용하는 이유는, 벌거벗음이 영적으로는 인간의 own과 그로 인한 결핍을 의미하며, 거룩한 것 앞에서는 반드시 그것이 덮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제사장의 베 속바지는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자기 자신의 own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으로 덮이는 데 있음을 상징하는 매우 깊은 표상인 것입니다.

 

 

 

AC.213, 창3:7,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bygrace.kr

 

AC.213, 심화 6, ‘계16:15’

AC.213.심화 6. ‘계16:15’ 보라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계16:15) Blessed is he who watcheth, and keepeth his garments, le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13.심화

 

6. ‘16:15

 

보라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15) Blessed is he who watcheth, and keepeth his garments, lest he walk naked and they see his shame (Rev. 16:15).

 

 

이 구절을 AC.213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garments)은 진리와 선을, ‘벌거벗음(nakedness)은 그것들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벌거벗음’이 단순히 결핍의 상태를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적 경계와 깨어 있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과 영적 심판을 다루는 문맥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서 깨어 있으라 하시며, 동시에 자기 옷을 지키라 하십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의 상응에 따르면, 사람이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경계하며, 진리 안에 머무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옷을 지킨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와 선을 보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많은 진리를 배우고 깨닫지만, 그것을 삶 속에서 지키지 않으면 점차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벌거벗게 됩니다. 즉 선과 진리의 보호를 잃고 자신의 own이 드러나게 됩니다.

 

AC.213의 문맥에서 보면, 이것은 창3의 아담과 하와와 직접 연결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 알게 되었고, 급히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계16:15에서는 인간이 만든 무화과 나뭇잎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을 지키는 것이 강조됩니다. 즉 영적 안전은 자기 변명이나 자기 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 안에 머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부끄러움(shame)이라는 표현은 AC.213의 핵심 개념과 일치합니다. 2:25에서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순진무구함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벌거벗음이 곧 수치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악에 대한 의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란, 자신의 악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선과 진리 안에서 보호받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더 깊이 보면, 이 구절은 모든 신앙인의 평생 과제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깨어 있으라’, ‘옷을 지키라’는 말씀은 단순히 마지막 날을 준비하라는 뜻이 아니라, 매일 자신의 사랑과 생각을 살피며, 주님께 받은 진리를 잃지 말라는 권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own은 끊임없이 진리의 옷을 벗기려 하고, 자신을 중심에 두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C.213에서 계16:15를 인용하는 이유는, ‘벌거벗음’이 영적 수치와 결핍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음’과 옷을 지킴’, 곧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와 선 안에 머무는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음을 깨달은 장면이 인간 타락의 시작을 보여 준다면,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은 그 반대로 영적 경계와 보존의 길을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213, 심화 7, ‘출28:42-43’

AC.213.심화 7. ‘출28:42-43’ 42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43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

bygrace.kr

 

AC.213, 심화 5, ‘계3:18’

AC.213.심화 5.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계3:18) I counsel thee to buy of me white raiment that thou mayest be clothed, and that the shame of thy nakedness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14, 창3:7, ‘벌거벗음’(naked)  (0) 2026.06.18
AC.213, 심화 7, ‘출28:42-43’  (0) 2026.06.18
AC.213, 심화 5, ‘계3:18’  (0) 2026.06.17
AC.213, 심화 4, ‘겔23:29’  (0) 2026.06.17
AC.213, 심화 3, ‘겔16:22’  (1) 2026.06.17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13.심화

 

5.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3:18) I counsel thee to buy of me white raiment that thou mayest be clothed, and that the shame of thy nakedness do not appear (Rev. 3:18).

 

 

이 구절을 AC.213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벌거벗음(nakedness)이 선과 진리를 상실한 영적 상태를 의미하고, 반대로 (raiment)은 그 상태를 덮어 주는 진리와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는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외적으로는 풍요롭고 종교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지만, 내적으로는 진리와 선이 결핍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권하십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에 따르면 ’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옷으로 가리듯, 영혼은 진리로 덮여 보호받습니다. 특히 흰옷’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옷을 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진리를 받아들이라는 초청입니다.

 

AC.213의 문맥에서 보면 이것은 창3:7과 직접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덮개였습니다. 반면 계3:18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 만든 변명과 자기 의로는 벌거벗음을 덮을 수 없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진리만이 그것을 덮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서 벌거벗은 수치(shame of thy nakedness)라는 표현은 AC.213의 핵심을 잘 보여 줍니다. 2:25에서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순진무구함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3 이후에는 벌거벗음이 수치가 되었습니다. 선과 진리의 보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그 상태를 가리켜 벌거벗은 수치’라고 부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스베덴보리의 구원관을 잘 보여 줍니다. 주님은 단순히 너는 벌거벗었으니 부끄러운 존재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십니다. 즉 주님은 인간의 결핍을 폭로하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라, 동시에 그것을 채우시는 분입니다. 벌거벗음을 드러내시면서도 그 벌거벗음을 덮을 옷도 함께 주십니다.

 

그래서 AC.213에서 계3:18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벌거벗음’이 영적 수치와 결핍을 의미하고, ‘흰옷’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벌거벗음을 깨닫고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을 엮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이 두 본문 사이에는 인간의 모든 종교적 노력과, 그 노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님의 은혜가 함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AC.213, 심화 6, ‘계16:15’

AC.213.심화 6. ‘계16:15’ 보라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계16:15) Blessed is he who watcheth, and keepeth his garments, le

bygrace.kr

 

AC.213, 심화 4, ‘겔23:29’

AC.213.심화 4. ‘겔23:29’ 그들이 너를 벌거벗은 몸으로 두어서 네 벗은 몸을 드러낼 것이라 (겔23:29) They shall leave her naked and bare, and the nakedness shall be uncovered (Ezek. 23:29). 이 구절을 AC.213에서 인용하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