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9)



AC.278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by returning to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의 의미가 교회가 거듭나기 이전 상태와 같은 겉 사람(the external man)으로 되돌아감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ground)이 겉 사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분명합니다. 또한 (dust)의 의미가 정죄를 받음과 지옥이라는 사실도, 저주를 받은 결과 흙을 먹을지니라라고 한 뱀에 대하여 이미 설명한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거기서 보여준 의 의미에 덧붙여, 시편의 다음 말씀들도 있습니다. That by “returning to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 is signified that the church would return to the external man such as it was before regeneration,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ground” signifies the external man, as previously stated. And that “dust” signifies what is condemned and infernal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serpent, which in consequence of being cursed is said to “eat dust.” In addition to what was there shown as to the signification of “dust,” we may add the following passages from David: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22:29) All those who go down to the dust shall bow before Jehovah, and those whose soul he hath not made alive (Ps. 22: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104:29) Thou hidest thy faces, they are troubled; thou takest away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Ps. 104:29),

 

이 말씀들은 사람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 숨이 끊어지고 죽게 되며, 그리하여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곧 정죄를 받아 지옥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which means that when men turn away from the face of the Lord, they expire or die, and thus “return to the dust,” that is, are condemned and become infernal.

 

 

해설

 

AC.278은 창3:19의 마지막 말씀인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마무리하는 대목입니다. 일반적인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육체적 죽음의 기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도 자연적 의미보다 영적 의미를 우선합니다. 그의 관점에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가 흙으로 분해되는 현상이 아니라, 교회와 인간이 거듭남 이전의 외적 상태로 퇴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는 ‘(dust)이라는 단어에 주목합니다. 앞서 AC.255 이하에서 뱀이 ‘흙을 먹을지니라’ 한 것처럼, 흙은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 곧 주님과 분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흙 자체는 생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은 주님의 생명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 곧 정죄(condemnation)와 지옥 상태(infernal state)를 상징합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시편 두 구절을 인용합니다. 시22에서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가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와 나란히 언급됩니다. 이는 흙이 단순한 무덤의 흙이 아니라 영적 생명을 상실한 상태라는 걸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시104에서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라는 말씀도 단순한 육체적 죽음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호흡은 생명의 유입을 의미하며, 주님의 생명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인간은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러한 상태를 주님의 적극적인 형벌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본문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사람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설 때’라고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 사람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주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생명의 근원과 연결이 끊어지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주님의 얼굴’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생명의 유입을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얼굴은 내면의 현현을 뜻하기 때문에, 주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이고,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선다는 것은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단순한 죽음의 선언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결과를 묘사하는 영적 표현입니다.

 

AC.278은 창3의 심판 선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인간의 비극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돌아서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분리의 최종 결과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함으로써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와 지옥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주님 없이 자기 자신만으로 살고자 하는 인간 상태의 상징인 것입니다.

 

 

심화

 

1. ‘22:29

 

 

AC.278, 심화 1, ‘시22:29’

AC.278.심화 1. ‘시22: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시22:29) All those who go down to the dust shall 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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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4:29

 

 

AC.278, 심화 2, ‘시104:29’

AC.278.심화 2. ‘시104: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104:29) Thou hidest thy faces, they are troubled; thou takest away their breath,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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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죄(condemnation)

 

 

AC.278, 심화 3, ‘정죄’(condemnation)

AC.278.심화 3. ‘정죄’(condemnation)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정죄’(condemnation)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화를 내시거나 벌을 선고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기독교에서는 정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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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옥 상태(infernal state)

 

 

AC.278, 심화 4, ‘지옥 상태’(infernal state)

AC.278.심화 4. ‘지옥 상태’(infernal state)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옥 상태’(infernal state)는 단순히 사람이 죽은 뒤 가는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과 삶이 지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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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9, 창3:19, ‘창3:14-19 절별 요약’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9그러므로 이 모든 구절을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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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7, 창3:19, ‘내적 의미, 곧 말씀의 속뜻’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7이것이 내적 의미, 곧 말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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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9)



AC.277

이것이 내적 의미, 곧 말씀의 속뜻입니다. 문자에만 머무는 사람은, 사람이 수고와 얼굴의 땀으로 땅에서 빵을 얻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man)은 어떤 한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의미하며, ‘(ground)은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bread)도 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동산(garden)도 동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미 충분히 보여준 바와 같습니다. This is the internal sense. He who keeps close to the letter, understands no other than that man must procure bread for himself out of the ground by labor, or by the sweat of his face. “Man” however does not here mean any one man, but the most ancient church; nor does “ground” mean ground, nor “bread” bread, nor “garden” garden, but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s has been sufficiently shown.

 

 

해설

 

AC.277은 지금까지 창3에 대해 스베덴보리가 전개해 온 해석 전체를 짧게 요약하는 결론과 같은 글입니다. 그는 ‘이것이 내적 의미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문자적 의미와 내적 의미의 차이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창3은 인간이 죄를 지은 후 농사를 지으며 힘들게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는다’는 말씀도 단순히 노동의 고통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말씀의 가장 바깥 껍질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은 자연적인 표현 속에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내적 의미를 통해 교회와 인간 영혼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창세기 초반부의 인물들을 역사 속의 개인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람’(아담)은 단순한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창3은 한 개인의 범죄 기록이라기보다 태고교회의 타락과 쇠퇴를 묘사하는 영적 역사입니다.

 

마찬가지로 ‘’도 단순한 흙이나 토양이 아니라 인간의 외적 인간, 그러니까 겉 사람, 또는 진리와 선이 심어지는 삶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 그러니까 ‘먹을 것’은 육체의 음식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영적 생명이며, ‘동산’은 나무와 꽃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지혜와 퍼셉션이 가득한 교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스베덴보리는 창3의 거의 모든 요소를 상응(correspondence)에 따라 해석합니다. 뱀은 감각적 인간, 즉 인간의 감각 파트를, 여자는 교회의 애정과 의지를, 남자는 이성을, 나무는 지각과 인식을, 빵은 천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문자에만 머무르면 농업과 노동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내적 의미에서는 인간 정신의 구조와 교회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매우 깊은 계시가 됩니다.

 

AC.277은 바로 이러한 스베덴보리의 성경 해석 원리를 독자에게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즉 말씀은 문자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속에 감추어진 천적, 영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 ‘’, ‘동산’과 같은 단어들을 자연적 의미로만 이해하면 말씀의 가장 깊은 의도를 놓치게 됩니다.

 

이 글은 창3 전체에 대한 하나의 해석 원칙을 제시합니다. 말씀은 역사와 자연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는 교회와 인간 영혼,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가 끊임없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미 충분히 보여준 바와 같다’고 말하며, 독자가 이제 문자 너머의 내적 의미를 보는 시각을 갖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78, 창3:19,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8‘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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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6, 창3:19, ‘먹을 것’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6‘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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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6.심화

 

3. ‘21:5-6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21:5, 6)

 

 

AC.276에서 스베덴보리가 민21:5-6을 인용하는 이유는, 사람이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싫어하게 될 때 어떤 영적 상태에 빠지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앞에서 ‘먹을 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영적 생명의 양식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부르며 싫어한 사건은 바로 그러한 천적 양식에 대한 혐오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됩니다.

 

만나는 단순한 광야의 식량이 아니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만나는 주님 자신과, 주님에게서 나오는 천적 선과 영적 진리를 표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6에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만나와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만나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하늘에서 주어지는 양식보다 감각적이고 세상적인 만족을 더 원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음식 불평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 사건은 인간이 영적 생명을 거부하고 자연적, 세속적 삶만을 원하게 되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홍수 직전 태고교회의 마지막 후손들이 신앙의 진리와 장차 오실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했던 것처럼, 유대인들도 천국의 것보다 세상의 것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만나를 혐오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등장하는 것이 불뱀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에서 뱀은 감각적 인간(sensuous man)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불뱀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타오르는 욕망과 거짓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불뱀이 백성을 무는 것은 주님께서 임의로 벌을 내리셨다는 뜻이라기보다, 천적인 것을 거부한 결과 감각적 욕망과 자기 사랑이 더욱 강하게 사람을 지배하게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특히 AC.276의 문맥에서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라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이 구절이 사용됩니다. 본래 천적인 것은 기쁨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타락한 사람은 그것을 부담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의 양식조차 싫어하게 됩니다. 만나는 변한 것이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가 변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천적인 것에 대한 혐오와 거부가 얼마나 심각한 영적 상태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거부한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창3에서 말하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라는 상태, 곧 천적 생명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싫어하게 된 인간의 타락한 상태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인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AC.276, 창3:19, ‘먹을 것’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6‘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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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6, 심화 2, ‘마4:4’

AC.276.심화 2.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4:4) Man shall not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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