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사50:1)Where is the bill of your mother’s divorcement(Isa. 50:1)?
스베덴보리가AC.289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말씀에서‘어머니’가 실제 육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이사야가 말하는‘너희의 어미’는 이스라엘 백성 각자의 어머니가 아니라,그들을 영적으로 낳고 길러야 했던 이스라엘 교회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주님과 교회의 관계는 흔히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나타납니다.주님은 교회에 사랑과 선,진리와 생명을 주시고,교회는 그것을 받아들여 사람들 안에 신앙과 체어리티의 열매가 맺히게 합니다.그러므로 교회를‘아내’라고 할 때에는 주님과 결합, 그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측면을 강조하고, ‘어머니’라고 할 때에는 그 생명을 사람들에게 전달, 영적으로 낳고 기르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사50:1의‘이혼 증서’는 주님과 교회의 결합이 끊어진 상태를 나타냅니다.그러나 이 구절은 주님께서 까닭 없이 교회를 버리셨다 말하지 않습니다.오히려‘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물으심으로써,주님께서 먼저 교회를 내버리신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이어지는 말씀처럼,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원인은 그들 자신의 죄악과 허물에 있었습니다.교회가 선과 진리를 거부,스스로 주님과의 결합을 끊은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어머니의 이혼’은 교회 조직이 외적으로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성전과 제사,율법과 종교적 형식은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교회가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잃고,말씀의 진리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맞게 왜곡하면,외형은 남아 있어도 내적으로는 주님과 분리됩니다.이것이 영적 의미에서의 이혼입니다.
이 구절은‘어머니’라는 표현이 교회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특별히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개인의 육신의 어머니에게 주님이 이혼 증서를 주신다는 것은 문맥상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나‘어머니’를 교회로 이해하면,주님과 교회의 언약 관계,그 관계의 파괴,그리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바로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어머니’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성경적 증거로 인용합니다.
또한 이 말씀에는 심판과 함께 주님의 자비도 담겨 있습니다.주님께서는 교회가 타락했다고 해서 먼저 관계를 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오히려 교회가 스스로 떠난 뒤에도 계속 돌아오라고 부르시며,자신의 악과 거짓을 인정,다시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십니다.그러므로‘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는‘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았다’는 주님의 뜻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사50:1을 인용하는 이유는,말씀에서‘어머니’가 사람을 영적으로 낳고 기르는 교회를 의미하며,교회가 주님과 분리되는 것은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선과 진리를 거부했기 때문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이 구절은 교회가‘어머니’라는 사실뿐 아니라,교회의 생명은 오직 주님과의 결합에 있으며,그 결합을 잃으면 외적 종교 형식이 남아 있어도 참된 교회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 줍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89
‘아내’(wife)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또한 가장 넓은 의미에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것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mother)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말씀에서는 교회를 매우 자주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사야에 보면, It has also been shown above that by “wife” is meant the church, and in the universal sense the kingdom of the Lord in the heavens and on earth; and from this it follows that the same is meant by “mother.” In the Word the church is very frequently called “mother,” as in Isaiah: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사50:1) Where is the bill of your mother’s divorcement (Isa. 50:1)?
예레미야에는In Jeremiah: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 보라 그가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과 광야와 마른 땅과 거친 계곡이 될 것이며 (렘50:12) Your mother is greatly ashamed; she that bare you was suffused with shame (Jer. 50:12).
에스겔에는In Ezekiel: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겔16:45) Thou art thy mother’s daughter that loathed her man and her sons; your mother was a Hittite, and your father an Amorite (Ezek. 16:45),
여기서 ‘남편’(man, vir)은 주님과 천적인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자녀’(sons)는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헷 사람’(Hittite)은 거짓을, ‘아모리 사람’(Amorite)은 악을 의미합니다. where “man” [vir] denotes the Lord and all that is celestial; “sons,” the truths of faith; a “Hittite,” what is false: and an “Amorite,” what is evil.
역시 에스겔에In the same:
네 피의 어머니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겔19:10) Thy mother is like a vine in thy likeness, planted near the waters; she was fruitful and full of leaves because of many waters (Ezek. 19:10).
여기서 ‘어머니’(mother)는 고대교회를 의미합니다. 특히 ‘어머니’(mother)라는 이름은 태고교회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태고교회는 최초의 교회였으며, 유일한 천적 교회였기 때문에,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Here “mother” denotes the ancient church. The term “mother” is more especially applicable to the most ancient church, because it was the first church, and the only one that was celestial, and therefore beloved by the Lord more than any other.
해설
AC.289은 왜 말씀에서 교회를 ‘어머니’라고 하는지를 설명하는 단락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에서 ‘아내’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머니’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씀에서 여인이나 어머니를 단순한 가족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교회의 상징으로 이해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말씀에서 ‘어머니’는 영적으로 사람을 낳고 기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육신의 어머니가 자녀를 낳아 기르듯이, 교회는 말씀과 진리를 통하여 사람을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따라서 ‘어머니’라는 이름은 단순히 출생의 근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에게 전달되는 통로를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말씀은 교회를 자주 ‘어머니’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보여 주기 위하여 여러 예언서를 인용합니다. 먼저 사50:1에서는 ‘너희 어미의 이혼 증서’가 언급됩니다. 여기서 ‘어미, 곧 어머니’는 이스라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혼은 주님께서 교회를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주님을 떠나 언약을 깨뜨린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와 주님 사이의 영적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렘50:12에서도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어머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거짓과 악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영광을 잃었기 때문에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이처럼 한 나라나 한 민족을 단순한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교회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겔16:45에서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헷 사람’은 거짓을, ‘아모리 사람’은 악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편’(man, vir)은 주님과 천적인 모든 것을, ‘자녀’는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거짓과 악을 받아들인 교회가 주님과 신앙의 진리마저 싫어하게 된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겔19:10에서는 ‘네 어머니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고대교회를 의미합니다. 포도나무는 영적 교회를, 많은 물은 풍성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고대교회가 한때 주님의 진리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던 상태를 보여 줍니다. 같은 ‘어머니’라는 표현이라도 문맥에 따라 태고교회, 고대교회, 이스라엘 교회 등 여러 교회를 가리킬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언제나 교회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어머니’라는 이름은 무엇보다 태고교회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태고교회는 인류 최초의 교회였을 뿐 아니라, 유일한 천적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퍼셉션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진리를 직접 받아들이며 살았고, 이후의 모든 참된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고교회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표현은 주님께서 어떤 교회는 더 사랑하시고 다른 교회는 덜 사랑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모든 사람과 모든 교회를 향하여 동일합니다. 다만 태고교회는 그 사랑을 가장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상태입니다.
AC.289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왜 교회를 의미하는지를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교회는 사람에게 영적 생명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그 생명의 근원은 언제나 생명 자체이신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어머니’를 만날 때에는 단순한 가족 관계를 넘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교회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88
‘아담’(man, homo)이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또한 오직 주님만이 사람(man)이시며, 모든 천적 인간이 사람인 것도 그들이 주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역시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속한 사람은 예외 없이, 그리고 어떤 구별도 없이 모두 ‘사람’이었습니다. 후에는 이 이름이 겉으로 사람처럼 보이는 모든 존재에게까지 확대, 사람을 짐승과 구별하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습니다. That by “man” is meant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celestial man, was previously shown; and at the same time it was also shown that the Lord alone is man, and that from him every celestial man is man, because in his likeness. Hence every member of the church, without exception or distinction, was called a “man,” and at length this name was applied to anyone who in body appeared as a man, to distinguish him from beasts.
해설
AC.288은 ‘사람’이라는 말의 가장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해 주는 중요한 단락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히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사람’이라는 이름은 원래 훨씬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름은 처음부터 육체를 기준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 주님을 닮은 존재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아담’(man, homo)은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 인간을 의미합니다. 개역개정은 창3:20에서 ‘아담’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괄호 안에 homo를 덧붙임으로써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이름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아담’은 한 개인인 동시에, 주님과 가장 가까이 교통하던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을 대표하는 표상입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오직 주님만이 사람(man)이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만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랑과 지혜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천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생명과 사랑, 그리고 지혜를 받아 살아가는 존재일 뿐, 그 모든 것을 자기 안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이름은 본래 주님께만 완전하게 속합니다.
그렇다면 천적 인간도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베덴보리는 그들이 주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육체의 모습, 곧 겉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천적 인간은 주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살며, 퍼셉션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직접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형상을 가장 충만하게 반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태고교회에서는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남녀의 차별도, 신분의 차별도, 능력의 차별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는 이름은 사회적 신분이나 외적 조건이 아니라, 주님과의 영적 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점차 타락, 이 이름의 의미도 함께 희미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는 이름에 담긴 영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이 말은 단순히 몸의 모습, 곧 겉모습이 사람처럼 생긴 존재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본래 영적 이름이었던 ‘사람’이 점차 자연적 이름, 평범한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의 영적 상태가 변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닮은 존재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던 ‘사람’이라는 이름이, 시간이 흐르면서 단지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는 말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내적 의미를 잃고 외적인 것만 남게 된 과정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AC.288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외모도, 지식도, 사회적 지위도 아닙니다. 사람은 주님의 형상을 받아들이는 만큼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사람이시며, 모든 천적 인간은 주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이것이 말씀에서 ‘아담’, 곧 ‘사람’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가장 깊은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