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4:21)

 

AC.420

말씀에는 여러 가지 악기가 언급되며, 악기에는 저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적절한 곳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편이 말한 것만을 인용하겠습니다. In the Word mention is made of various instruments, each having its own signification, as will be shown,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its proper place; here however we shall adduce only what is said in David: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27:6) I will sacrifice in the tent of Jehovah sacrifices of shouting, I will sing, yea, I will sing praises unto Jehovah, (Ps. 27:6)

 

여기서 장막(tent) 천적인 것을 표현하고, 즐거운 외침(shouting), 노래함(singing), 찬송함(singing praises)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표현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re bytentis expressed what is celestial, and byshouting,” “singing,andsinging praises,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Again:

 

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바로다 2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4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진실하시도다 (33:1-4) Sing unto Jehovah, O ye righteous, for his praise is comely for the upright; confess ye to Jehovah on the harp, sing unto him with the psaltery, an instrument of ten strings. Sing unto him a new song, play skillfully with a loud noise; for the Word of Jehovah is right, and all his work is in the truth, (Ps. 33:14)

 

말씀은 신앙의 진리들을 나타내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진리들에 관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denoting the truths of faith, concerning which these things are said.

 

[2] 영적인 것들,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은 수금과 비파, 노래와 그와 비슷한 악기들로 찬양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거룩한 것들, 천적인 것들은 나팔과 같은 관악기들로 찬양되었습니다. 때문에 성전에서는 그렇게 많은 악기가, 그렇게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주제나 주제를 각각 특정한 악기로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과 악기들은 그것들로 찬양되는 대상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되게 되었습니다. Spiritual things, or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the harp and psaltery, with singing and analogous instruments, but the holy or celestial thing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wind instruments, such as trumpets and the like; and this was why so many instruments were used about the temple and so often, in order that this or that subject might be celebrated with certain instruments; and in consequence of this the instruments came to be taken and understood for the subjects that were celebrated with them.

 

[3]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gain:

 

2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3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71:22, 23) I will confess to thee with the psaltery, even thy truth, O my God; unto thee will I sing praises with the harp, O thou holy one of Israel; my lips shall sing when I sing praises unto thee, and my soul which thou hast redeemed, (Ps. 71:2223)

 

여기서도 신앙의 진리들이 의미됩니다.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re also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Again: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147:7) Answer to Jehovah in confession, sing praises upon the harp unto our God; (Ps. 147:7)

 

감사(confession) 신앙의 천적인 것들과 관련되므로 여호와(Jehovah) 언급됩니다. 반면 수금으로 찬송함(sing praises upon the harp) 신앙의 영적인 것들과 관련되므로 하나님(God) 언급됩니다.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confessionhas respect to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and therefore mention is made ofJehovah”; and tosing praises upon the harp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whereforeGodis spoken of. Again: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149:3) Let them praise the name of Jehovah in the dance, let them sing praises unto him with the timbrel and harp, (Ps. 149:3)

 

여기서 소고(timbrel) 선을, 수금(harp) 진리를 의미하며, 그들은 이것들로 찬양합니다. where thetimbrelsignifies good, and theharptruth, which they praise.

 

[4]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gain:

 

3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150:3-5) Praise God with the sound of the trumpet; praise him with the psaltery and harp; praise him with the timbrel and dance; praise him with stringed instruments and the organ; praise him upon the loud cymbals; praise him upon the cymbals of shouting. (Ps. 150:35)

 

악기들은 찬양의 대상이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을 나타냅니다. 각각의 악기에 고유한 의미가 없다면,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악기가 여기에 언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됩니다. 다른 곳에서는 선과 진리의 지식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These instruments denote the goods and the truths of faith which were the subjects of praise; for let no one believe that so many different instruments would have been here mentioned unless each had a distinct signification. Again, referring to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43:3, 4) O send out thy light and thy truth, let them lead me, let them bring me unto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and to thy habitations, and I will go in to the altar of God, unto God, the gladness of my exultation; yea, I will confess unto thee upon the harp, O God, my God. (Ps. 43:3, 4)

 

[5] 이사야에서는 신앙에 속하는 것들과 지식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n Isaiah, referring to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잊어버린 되었던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23:16) Take a harp, go about the city, play well, sing many songs, that thou mayest be called to remembrance. (Isa. 23:16)

 

같은 내용이 요한계시록의 글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표현됩니다. The same is expressed still more plainly in John: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대접을 가졌으니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5:8) The four animals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 fell down before the lamb, having every one of them harps, and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which are the prayers of the saints, (Rev. 5:8)

 

여기서 생물들과 장로들이 실제로 거문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거문고(harps) 신앙의 진리들을, 향이 가득한 대접(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신앙의 선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누구에게나 분명해야 합니다. 다윗은 악기 연주를 찬송(praises) 감사(confessions)라고 부릅니다(42:5, 69:31). where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that the animals and elders had not harps, but that byharpsare signified the truths of faith, and by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the goods of faith. In David the performances on the instruments are calledpraisesandconfessions.” (Ps. 42:5; 69:31)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42:5)

 

30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이것이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것이라 (69:30, 31)

 

요한계시록의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nd in another place in John:

 

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거문고를 타는 같더라 3그들이 보좌 앞과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14:2, 3) I heard a voice from heaven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I heard the voice of harpers harping with their harps, and they sang a new song. (Rev. 14:23)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nd in another place: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15:2) I saw them standing by the sea of glass having the harps of God. (Rev. 15:2)

 

가지 언급할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천사들과 영들은 소리들이 선과 진리에 관련하여 어떻게 다른지에 따라 소리들을 구별합니다. 노래와 악기에서 나는 소리뿐 아니라 목소리도 그렇게 구별합니다. 그리고 서로 일치하는 소리만 받아들입니다. 이는 소리들, 따라서 악기들의 소리가 선과 진리의 성질 본질과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It is worthy of mention that angels and spirits distinguish sounds according to their differences with respect to good and truth, not only those produced in singing and by instruments, but also those of voices; and they admit none but such as are in accord, so that there may be a concord of the sounds, and consequently of the instruments, with the nature and essence of the good and the true.

 

해설

AC.420은 앞의 AC.418-419에서 설명한 악기의 속뜻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확인합니다. AC.419에서 스베덴보리는 수금이 영적 진리를, 퉁소가 영적 선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그 설명을 한 악기에만 한정하지 않고, 말씀에 등장하는 여러 악기가 저마다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악기의 뜻을 여기서 밝히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악기와 노래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보여 주는 것이 이번 번호의 중심입니다.

 

먼저 시27:6에서 장막은 천적인 것을, ‘즐거운 외침노래함찬송함은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표현합니다. 앞서 야발의 장막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관련되고, 유발의 악기가 신앙의 영적인 것들과 관련된다고 설명한 내용이 이 시편 안에서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장막과 노래가 단순히 예배 장소와 예배 행위를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천적인 것과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의 관계를 표현한다고 봅니다. 이어 인용한 시33:1-4에서는 수금과 열 줄 비파, 새 노래가 등장한 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모든 일은 진실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이 신앙의 진리들에 관한 말씀이라고 밝힙니다. 악기와 노래가 언급되는 문맥 자체가 말씀의 정직함과 주님이 행하시는 일의 진실함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스베덴보리는 표상적 예배에서 악기들이 구별되어 사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은 수금과 비파, 노래와 그와 비슷한 악기들로 찬양되었고, 신앙의 거룩한 것들, 곧 천적인 것들은 나팔과 같은 관악기들로 찬양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많은 악기가 사용된 것은 단순히 음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찬양하는 대상에 따라 특정한 악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 결과 악기 자체가 그것으로 찬양되는 영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악기가 같은 뜻을 지닌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악기들이 서로 다른 것을 표상한다는 뜻입니다.

 

71:22-23은 이러한 설명을 다시 확인합니다. 비파와 수금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말씀 안에 주의 진리가 직접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147:7에서는 한층 세밀한 구별이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감사가 신앙의 천적인 것들과 관련되므로 여호와가 언급되고, ‘수금으로 찬송함은 신앙의 영적인 것들과 관련되므로 하나님이 언급된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구절 안에서도 감사와 수금 찬양,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149:3에서는 소고가 선을, ‘수금이 진리를 의미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기들의 소리를 감상하여 의미를 추측하는 일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해당 말씀에서 구별하여 밝힌 선과 진리의 의미를 살피는 일입니다.

 

150:3-5에는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기, 퉁소, 제금 등 여러 악기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각각에 고유한 의미가 없다면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악기가 말씀에 언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번 번호에서 이 모든 악기의 개별 의미를 하나씩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밝혀진 의미들을 바탕으로 이 시편이 신앙의 여러 선과 진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이해하되, 아직 설명되지 않은 악기의 뜻까지 임의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시43:3-4주의 빛과 주의 진리로 시작하여 거룩한 산과 처소, 하나님의 제단과 수금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선과 진리의 지식들에 관한 구절로 인용합니다. 여기서는 수금이 등장하는 찬양이 주님의 빛과 진리에 의한 인도라는 문맥 안에 놓여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23:16은 앞의 찬양 시편들과 성격이 다릅니다. 이사야 23장은 두로에 관한 예언이며, 인용된 구절은 잊힌 음녀에게 수금을 가지고 성읍을 돌아다니며 노래하라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도 신앙에 속하는 것들과 그 지식들에 관한 말씀으로 인용합니다. 따라서 수금과 노래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 장면을 곧바로 선한 예배나 진리의 회복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이 여기서 사용된 이유는 수금과 노래가 신앙의 지식과 관련된 표현이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해당 예언 전체의 속뜻을 설명하려면 두로와 음녀에 관한 문맥을 별도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인용에서는 진리와 선의 구별이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5:8에서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가진 거문고는 신앙의 진리들을, ‘향이 가득한 대접은 신앙의 선들을 의미한다고 스베덴보리는 밝힙니다. 같은 예배 장면 안에 진리와 선이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어 시42:5와 시69:31을 통해 다윗이 악기 연주를 찬송감사라고 부르는 용례를 제시합니다. 14:2-3에서는 하늘의 거문고 소리와 새 노래를, 15:2에서는 유리 바닷가에 선 이들이 가진 하나님의 거문고를 인용합니다. 이 구절들은 앞서 설명한 현악기와 신앙의 진리 사이의 관계를 뒷받침합니다. 다만 이번 번호는 새 노래나 유리 바다의 세부적인 속뜻까지 풀어 주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천사들과 영들이 소리를 선과 진리의 차이에 따라 구별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노래와 악기 소리뿐 아니라 목소리도 구별하며, 서로 일치하는 소리만 받아들입니다. 소리와 악기가 선과 진리의 성질 및 본질에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은 앞서 제시한 악기의 상응이 단순한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이해한 영계의 질서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 번호는 어떤 음높이나 악기 소리가 어떤 선과 진리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목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음악을 듣고 사람의 영적 상태를 판정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결국 AC.420은 말씀의 악기들이 단순한 음악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각각 신앙의 선과 진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여러 구절로 설명합니다. 시편의 장막과 노래는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관계를, 소고와 수금은 선과 진리의 구별을,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신앙의 진리와 선이 함께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천사와 영들에 관한 설명은 소리의 조화가 선과 진리의 성질과 관련된다는 점을 밝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찬양의 외적 소리만이 아니라, 그 찬양이 표현하는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를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AC.420 해설)

 

심화

1. 147:7에서 여호와와 하나님, 감사와 수금 찬양이 구별되는 이유는?’

 

AC.420 심화 1, ‘시147:7에서 여호와와 하나님, 감사와 수금 찬양이 구별되는 이유는?’

AC.420 심화1. ‘시147:7에서 여호와와 하나님, 감사와 수금 찬양이 구별되는 이유는?’ 시147:7은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응답하며 수금으로 우리 하나님께 찬송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문자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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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50:3-5에는 이렇게 많은 악기가 등장하는가?

 

AC.420 심화 2, ‘시150:3-5에는 왜 이렇게 많은 악기가 등장하는가?’

AC.420 심화2. ‘시150:3-5에는 왜 이렇게 많은 악기가 등장하는가?’ 시150:3-5에는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기, 퉁소, 제금 등 여러 악기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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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3:16 잊힌 음녀에 관한 말씀인데 신앙의 지식을 설명하는 인용되었는가?

 

AC.420 심화 3, ‘사23:16은 잊힌 음녀에 관한 말씀인데 왜 신앙의 지식을 설명하는 데 인용되었는가

AC.420 심화3. ‘사23:16은 잊힌 음녀에 관한 말씀인데 왜 신앙의 지식을 설명하는 데 인용되었는가?’ AC.420에서 스베덴보리는 수금과 노래가 신앙에 속하는 것들과 그 지식들에 관련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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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1, 창4:22, ‘두발가인과 나아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AC.421-426)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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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9, 창4:21, ‘수금은 신앙의 진리를, 퉁소는 신앙의 선을 의미하는 이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9천적인 것들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인 것처럼, 영적인 것들은 신앙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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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9 심화

1. 신앙의 선을 아는 것과 선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AC.419에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에 관한 지식들이 진리와 선을 모두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천적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두 문장을 함께 읽으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신앙에 선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면, 그 선대로 살아가는 일을 왜 다시 천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스베덴보리가 무엇이 선한지 이해하는 선대로 살아가는 을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이 참된지 배울 수 있고, 무엇이 선한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해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선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신앙에 관한 지식에 속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신앙의 지식들이 진리와 선을 모두 포함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은 참된 명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려 줍니다.

 

그러나 무엇이 선한지 아는 것과 실제로 그 선대로 살아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동의하면서도 정작 이웃을 대할 때에는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만을 앞세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웃에게 선하게 대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경우의 차이는 선에 관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천적인 이라고 구별한 이유를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구별을 신앙은 지식에 불과하고 사랑만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AC.419는 신앙에 진리와 선이 모두 포함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를 이해하는 일은 그 자체로 신앙에 속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다만 그러한 이해가 실제 삶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선을 가르친다는 사실과, 사람이 그 선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의 AC.418에서 스베덴보리는 마음의 애정이 천적이고 그 결과로 나오는 노래가 영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신앙에 관한 지식이 진리와 선을 포함하지만,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은 천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호는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관계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애정과 그 표현의 관계를, 여기서는 신앙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일과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일을 설명합니다. 이 두 설명을 하나의 기계적인 공식으로 합치기보다는, 각각의 문맥에서 스베덴보리가 무엇을 구별하는지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이 구별은 신앙생활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어떤 교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귀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그 교리가 자신의 삶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실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진리와 선을 배우는 일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신앙은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 가르치며, 사람은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AC.419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천적인 것이라는 설명을, 사람이 자신의 힘만으로 선을 실천하면 천적인 상태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전체적인 가르침에서 참된 선의 근원은 주님이십니다. 이번 번호 역시 인간의 독립적인 선행 능력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관한 지식과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일을 구별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을 때에는 선한 삶의 근원을 자신에게 돌리기보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선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AC.419는 신앙의 선을 아는 것과 그 선대로 살아가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신앙은 진리와 선을 모두 가르치지만, 그 가르침을 이해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은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지식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 지식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신앙이 가르치는 선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여 그 선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AC.419 심화 1)

 

 

 

AC.419, 창4:21, ‘수금은 신앙의 진리를, 퉁소는 신앙의 선을 의미하는 이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9천적인 것들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인 것처럼, 영적인 것들은 신앙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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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4:21)

 

AC.419

천적인 것들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인 것처럼, 영적인 것들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입니다. 신앙에는 무엇이 참된 것인지만이 아니라 무엇이 선한 것인지도 이해하는 일이 속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관한 지식들은 둘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천적인 것입니다. 신앙에는 가지가 모두 포함되므로, 그것들은 수금과 퉁소라는 악기로 의미됩니다. 수금은 누구나 알듯이 현악기이므로 영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퉁소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중간에 해당하므로 영적 선을 의미합니다. As celestial things are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so spiritual things are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for it belongs to faith to understand not only what is true, but also what is good. The knowledges of faith involve both. But to be such as faith teaches is celestial. As faith involves both of these, they are signified by two instruments, the harp and the organ. The harp, as everyone knows, is a stringed instrument, and therefore signifies spiritual truth; but the organ, being intermediate between a stringed instrument and a wind instrument, signifies spiritual good.

 

해설

AC.419는 앞의 AC.417-418에서 밝힌 유발의 속뜻을 한층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번호에서 스베덴보리는 두 악기를 함께 언급한 이유를 밝히고, 수금과 퉁소가 각각 무엇을 나타내는지 구별합니다. 수금은 영적 진리를, 퉁소는 영적 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유발의 기록은 신앙을 단순히 참된 것을 아는 일로만 이해하지 않도록 이끕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을 구별합니다. 천적인 것들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이며, 영적인 것들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입니다. 이는 앞서 야발과 유발을 구별한 설명과 이어집니다. 야발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선들에 관한 교리를, 유발은 같은 교회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나타냅니다. 두 형제의 기록을 함께 읽으면 사랑에 관한 교리와 신앙에 관한 교리가 각각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문장은 신앙에는 무엇이 참된 것인지만이 아니라 무엇이 선한 것인지도 이해하는 일이 속한다는 설명입니다. 우리는 신앙에 관한 지식이라고 하면 흔히 교리의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일부터 떠올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신앙에 관한 지식들이 참된 것과 선한 것을 모두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이 선한지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에서 선에 관한 지식을 제외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곧이어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천적인 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신앙의 선을 이해하는 일과 실제로 선하게 살아가는 일을 구별합니다. 무엇이 선한지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신앙에 속하지만,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은 천적인 것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선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그 선을 삶에서 실현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앎과 삶을 구별하면서도, 신앙이 가르치는 선이 실제 삶과 무관한 지식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수금과 퉁소라는 두 악기가 등장하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신앙에 관한 지식들이 진리와 선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두 악기로 의미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수금이 현악기이므로 영적 진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퉁소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중간에 해당하므로 영적 선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 악기 구분은 이번 번호에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제시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현대 악기 분류에 맞추어 퉁소를 특정 악기로 확정하거나, 그 악기의 구조에서 새로운 상응을 만들어 내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앞의 AC.418에서는 마음의 애정이 천적이고 그 결과로 나오는 노래가 영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번호는 그 설명을 이어받아 영적인 것 안에도 진리와 선이 함께 있음을 밝힙니다. 노래와 악기가 영적인 것을 나타낸다는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금과 퉁소가 각각 영적 진리와 영적 선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유발에 관한 짧은 기록은 신앙의 내용을 더욱 세밀하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성도들이 이 말씀을 읽을 때에는 나는 무엇이 참된지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나는 무엇이 선한지도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천적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진리와 선을 이해하는 일은 그 가르침을 삶에서 받아들이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다만 이번 번호는 앎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거듭남의 전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관한 지식과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일을 구별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결국 AC.419의 핵심은 신앙에 진리와 선이 모두 포함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진리와 선을 아는 일과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일이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수금과 퉁소는 신앙의 두 측면을 나타내며, 유발은 이러한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을 참된 것을 아는 데에만 한정하지 않고, 선을 이해하며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일까지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AC.419 해설)

 

심화

1. 신앙의 선을 아는 것과 선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AC.419 심화 1, ‘신앙의 선을 아는 것과 그 선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AC.419 심화1. ‘신앙의 선을 아는 것과 그 선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AC.419에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에 관한 지식들이 진리와 선을 모두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신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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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0, 창4:21, ‘말씀에 여러 악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20말씀에는 여러 가지 악기가 언급되며, 각 악기에는 저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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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8, 창4:21, ‘수금과 퉁소는 왜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의미하는가?’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8앞 절은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지만, 이 절은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다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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