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2.심화

 

4. ‘24:29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4:29)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Matt. 24:29).

 

 

이 구절이 AC.32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장 넷째 날의 해와 달과 별이 자연계의 천체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과 진리의 지식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신약에서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1에서 스베덴보리는 이미 구약의 여러 예언서를 통해 해는 사랑, 달은 신앙, 별은 진리의 지식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AC.32에서는 그 해석이 주님 자신의 말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마태복음 24장을 인용합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서 세상 끝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우주의 물리적 종말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습니다. 만일 문자 그대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그것은 자연계의 붕괴를 의미하겠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본질은 교회의 영적 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실제로 천체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인간의 신앙 상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사랑과 신앙과 진리의 지식들이 사라지는 것은 교회의 종말과 정확히 관련됩니다.

 

그래서 해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주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이 식어 버리면 사람은 더 이상 선 자체를 원하지 않게 됩니다.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한다’는 것은 신앙이 그 빛을 잃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이 사라지면 신앙도 결국 살아 있는 빛을 잃고 단순한 지식이나 교리로 변하게 됩니다. 또한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진리의 지식들이 소멸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씀을 읽고, 종교 용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진리들이 본래의 의미와 생명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AC.32의 문맥에서는 넷째 날에 세워진 해와 달과 별이 사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의 질서를 형성하는 광명체들이었는데,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바로 그 광명체들이 어두워지고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는 거듭남의 반대 상태, 곧 교회와 인간 안에서 사랑과 신앙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를 보여 줍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해와 달과 별이 영적인 것들을 의미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또한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늘의 권능들은 천국과 교회를 지탱하는 진리와 선의 질서들을 의미합니다. 사랑과 신앙이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진 모든 영적 질서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의 마지막 상태를 묘사하시면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영적 황폐의 상태를 해와 달과 별의 어두워짐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결국 AC.32에서 마24:29가 인용된 이유는, 주님께서 직접 해는 사랑, 달은 신앙, 별은 진리의 지식들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셨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세상의 물리적 종말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 사랑이 사라지고, 신앙이 빛을 잃으며, 진리의 지식들이 무너지는 교회의 영적 종말을 묘사하는 말씀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바로 그것이 AC.32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핵심 이유입니다.

 

 

 

AC.32, 심화 5, ‘마17:2’

AC.32.심화 5. ‘마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17:2) His face did shine as the sun, and his raiment was white as the light (Matt. 17:2). 이 구절이 AC.32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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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 심화 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AC.32.심화 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위 AC.32 본문,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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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AC.32 본문,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합니다.’(The most ancient church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love itself. The celestial angels also do not know what faith is except that which is of love.) 말인데요, 제가 알기로 태고교회도 그 후대로 갈수록 황폐해져서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되는데, 그러면 이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표현을 태고교회 전체를 향해 쓰면 안 되지 않나요? 그리고 바로 천적 천사들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태고교회의 후손들일지라도 모두 천적 천사가 되었을 리는 없을 텐데, 이렇게 일반화해도 되는 건지요?

 

목사님 질문은 아주 정확한 지점을 짚으신 것입니다. AC.32의 그 문장은 문자 그대로 읽으면 ‘태고교회 전체가 항상 사랑만을 신앙으로 알았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고, 또 이어서 ‘천적 천사들’을 말하니 마치 태고교회 사람들이 전부 천적 천사가 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이런 표현을 사용할 때는 보통 ‘개별 사람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본래적 상태 혹은 지배적 성격’’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질문하신 두 가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먼저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표현부터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설명할 때 거의 항상 두 가지 상태를 구분합니다. 하나는 ‘초기 상태’, 곧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의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쇠퇴와 황폐의 상태’입니다. 태고교회의 초기 사람들은 ‘퍼셉션(perception), 곧 주님에게서 오는 직접적인 내적 지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따로 교리처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진리는 사랑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들의 신앙을 ‘사랑 자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신앙이 사랑과 분리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곧 진리를 보는 눈이었고, 사랑 속에서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별도의 ‘신앙 체계’라는 의식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목사님 말씀처럼 태고교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타락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가인의 후손’, ‘라멕’,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피림’ 같은 상징으로 설명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태고교회 사람들도 사랑에서 벗어나 자기 지혜와 자기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 교회는 홍수 이전에 완전히 종말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태고교회는 사랑만을 신앙으로 알았다’는 표현은 ‘그 교회의 전체 역사 상태가 아니라 그 교회의 본래적 성격’, 다시 말해 ‘주님이 처음 세우신 교회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어떤 민족을 말할 때 그 민족의 이상적인 상태나 본래적 성격을 기준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두 번째 질문, 곧 ‘천적 천사’와의 관계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천적 인간(celestial man)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그들이 천국의 ‘천적 천사’들과 같은 성격의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고교회 사람들 모두가 실제로 천적 천사가 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도 사람들의 상태가 다양하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천적 천국에, 어떤 사람은 영적 천국에, 또 어떤 사람은 더 낮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 사람들 가운데서도 타락한 사람들은 당연히 천적 천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가 ‘교회의 성격과 개인의 운명을 구분하여 말한다’는 것입니다. 태고교회는 그 본질이 사랑 중심의 교회였기 때문에 ‘사랑 자체가 신앙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본래 상태는 천적 천사들의 상태와 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이어서 천적 천사들을 예로 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교회의 원형적 상태와 천국의 한 계층이 서로 대응한다는 설명’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이런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학교가 ‘사랑과 봉사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학교의 모든 학생이 항상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의 분위기가 변하고, 학생들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학교의 본래 정신을 설명할 때는 여전히 ‘이 학교는 사랑과 봉사를 중심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태고교회를 말할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AC.32의 문장은 사실 이렇게 이해하면 가장 정확합니다. 태고교회의 본래 상태에서는 신앙이 사랑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랑 자체가 곧 진리를 아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상태는 오늘날 천국의 천적 천사들의 상태와도 같은 성격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바로 이어서 천적 천사들의 상태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문장은 태고교회 사람들 전부의 개인적 상태를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라는 교회의 본래적 성격과 그에 대응하는 천국의 상태를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런 식의 표현은 AC 전체에서 매우 자주 나타나는데, 교회를 설명할 때 항상 ‘본래 상태  쇠퇴  종말’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읽어야 문맥이 정확하게 보입니다.

 

 

 

AC.32, 심화 4, ‘마24:29’

AC.32.심화 4. ‘마24:29’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29)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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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 심화 2, ‘아르카나, 세대의 종말, 사랑도 신앙도 거의 없는’

AC.32.심화 2. ‘아르카나, 세대의 종말, 사랑도 신앙도 거의 없는’ 위 AC.32 본문, ‘이 아르카나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가려져 있는 이유는, 지금이 세대의 종말이기 때문이며, 이때에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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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르카나, 세대의 종말, 사랑도 신앙도 거의 없는

 

 AC.32 본문, 이 아르카나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가려져 있는 이유는, 지금이 세대의 종말이기 때문이며, 이때에는 사랑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The reason why these arcana are more especially concealed in this end of days is that now i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en there is scarcely any love, and consequently scarcely any faith,) 말인데요, 이 셋이 서로 무슨 상관이지요? 그러니까 아르카나가 가려져 있는 이유와 세대의 종말 및 사랑도, 신앙도 거의 없는 것이 서로 무슨 상관인가요? 제가 너무 초보적이고 유치한 질문을 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만...

 

목사님 질문은 전혀 유치하거나 초보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AC.32의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아주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세 가지가 서로 떨어진 말처럼 보입니다. ‘아르카나가 가려져 있다’, ‘지금이 세대의 종말이다’, ‘사랑이 거의 없고 그래서 신앙도 거의 없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사상에서는 이 세 가지가 하나의 질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 고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아르카나가 무엇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말씀의 아르카나, 곧 내적 의미는 단순히 지적 해석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상태와 연결된 지각(perception)’을 통해 이해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 안에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이 살아 있을 때, 그 사랑을 통해 진리를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곳에서 ‘사랑이 진리를 이해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람은 여전히 지식을 배울 수는 있지만, 진리의 깊은 의미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마치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두 번째 요소인 ‘세대의 종말’을 생각해 보면 연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의 종말을 ‘사랑이 사라지는 상태’로 설명합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는 사랑과 신앙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랑이 약해지고, 결국 교리는 남아 있지만 삶 속의 사랑은 사라지는 상태가 됩니다. 그는 이것을 특히 ‘신앙만 있고 사랑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도 실제로는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니라 ‘지식이나 교리로만 남은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AC.32의 문장은 사실 이렇게 이어지는 논리입니다. 교회의 종말에는 사랑이 거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신앙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살아 있는 신앙이 없으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이해할 능력도 사라집니다.’ 그 결과 아르카나는 여전히 말씀 안에 존재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아르카나가 가려져 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실제적인 예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 속에 어떤 깊은 의미가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묵상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 그 사람의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열려 있다면, 같은 말씀을 읽어도 점점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단지 논쟁을 하거나 지식을 쌓기 위해 말씀을 읽는다면, 그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어도 그 말씀 속의 생명이나 깊은 의미는 거의 보지 못하게 됩니다. 말씀은 같지만, ‘사람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중세 이후의 교회가 점점 이런 상태에 들어갔다고 보았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전히 성경이 있었고, 신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삶이 점점 약해지고, 신앙이 교리 논쟁 중심이 되면서 말씀을 보는 눈이 점점 외적인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계속 읽혔지만, 그 안에 있는 상응과 내적 의미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르카나가 가려져 있는 시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르카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태양이 구름 뒤에 가려져 있을 때 태양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랑이 약해지고 신앙이 형식이 되면, 말씀의 깊은 의미를 보는 눈이 가려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 시대를 ‘세대의 종말’이라고 부르면서 동시에 ‘그때 아르카나를 다시 드러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AC.32의 세 요소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교회의 종말에는 사랑이 거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신앙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신앙이 없으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아르카나는 말씀 안에 여전히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가려져 있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말씀의 내적 의미를 다시 밝히는 것이 주님의 섭리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목사님 질문은 사실 AC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지금 이 아르카나가 밝혀지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여기와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교회가 완전히 어두워진 때에 주님은 다시 빛을 주십니다. 그래서 종말과 계시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말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빛이 나타나는 준비가 된다’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32, 심화 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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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 심화 1, ‘세대의 종말’(the consummation of th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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