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0

 

네 번째 상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게 되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그 이전에도 경건하게 말하고 선한 일들을 행하였지만, 그것은 그가 겪는 시험과 곤궁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지,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앙과 체어리티가 사람의 속 사람 안에서 타오르게 되며, 말씀에서는 이 둘을 두 ‘광명체’(luminaries)라고 부릅니다. The fourth state is when the man becomes affected with love, and illuminated by faith. He indeed previously discoursed piously, and brought forth goods, but he did so in consequence of the temptation and straitness under which he labored, and not from faith and charity; wherefore faith and charity are now enkindled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alled two “luminaries.”

 

 

해설

 

AC.10은 거듭남의 네 번째 상태를 설명하는데, 이는 인간의 내적 변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전환점이며, 창세기 1장의 ‘넷째 날(해, 달, 별)’에 대응되는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상태를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으로 비추임을 받는 때”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전 단계들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전혀 다른 내적 생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상태(회개의 단계)에서는 사람이 경건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시험과 슬픔, 내적 압박 속에서 나온 것으로, 진정한 사랑과 신앙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선을 이루고자 하는 고투(苦鬪)적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상태에 접어들면, 주님에 의해 속 사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이 실제로 불붙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enkindled”—불이 붙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단순한 감정적 열심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선의 애정과 진리의 빛이 인간 내부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건으로 봅니다. 이 상태는 사람이 더 이상 ‘해야 해서 하는’ 경건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선과 진리가 생겨나는 단계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 실제로 감동되고, 진리의 조명 속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별과 이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사랑과 신앙의 내적 작용을 창세기 속 ‘두 광명체’—해와 달—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해는 사랑(특히 체어리티)을, 달은 신앙을 상징합니다. 이전 단계의 선행과 경건이 햇빛 없이 자란 식물과 같았다면, 이제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해의 빛과 신앙이라는 달의 질서가 속 사람 안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은 주님의 선을 느끼고, 진리의 빛을 보며, 그에 따라 삶의 방향을 조정하기 시작합니다. 이 상태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의 선행이 더 이상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주님이 자신 안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점차 자각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거듭남의 본격적 내부화 단계이며, 주님이 인간 안에서 왕국을 세우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따라서 AC.10의 네 번째 상태는 거듭남의 과정에서 ‘내적 빛의 시대’가 열리는 단계로, 주님의 사랑과 신앙이 속 사람 안에서 전인적인 생명력을 갖기 시작하는 성스러운 시점이며, 이후 단계(다섯째, 여섯째 날)의 모든 영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토대를 형성합니다.

 

 

 

AC.11, 창1, '다섯 번째 상태' (AC.6-15)

AC.11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부터 말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때 그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갖게 되는데, 말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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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 창1, '세 번째 상태' (AC.6-15)

AC.9 세 번째 상태는 회개(repentance)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고 진지하게 말하며, 체어리티의 행위 같은 선을 행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선들을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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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

 

세 번째 상태는 회개(repentance)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고 진지하게 말하며, 체어리티의 행위 같은 선을 행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선들을 자신에게서 나온 걸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선들은 아직은 생기가 없는(inanimate) 선들입니다. 이러한 선들을 말씀에서는 ‘풀’(tender grass), ‘씨 맺는 채소’(herb yielding seed), ‘열매 맺는 나무’(tree bearing fruit)라고 합니다. The third state is that of repentance, in which the man, from his internal man, speaks piously and devoutly, and brings forth goods, like works of charity, but which nevertheless are inanimate, because he thinks they are from himself. These goods are called the “tender grass,” and also the “herb yielding seed,” and afterwards the “tree bearing fruit.”

 

 

해설

 

AC.9은 거듭남의 세 번째 상태를 설명하며, 인간이 처음으로 ‘의식적 회개’에 들어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이 단계는 속 사람이 어느 정도 열리고, 주님의 빛이 마음에 스며들어 자신의 상태를 보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상태를 “회개의 상태”라고 부르며, 사람은 이때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고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하고, 체어리티의 행위와 같은 선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그는 하나님을 향한 말과 태도에서 더 깊은 진실성을 갖게 되며, 이전보다 선한 일을 행하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실제 행동으로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의 선들은 아직 ‘생기 없는 선(inanimate good)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여전히 그 선이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선한 일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주님의 역사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력, 자신의 경건함,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단계의 선은 아직 살아 있는 선이 아니라, ‘(tender grass)과 같은 초기적, 유아적 선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 셋째 날의 식물 묘사를 사용해 이 단계를 설명하는데, ‘’은 막 돋아난 선의 싹이며, ‘씨 맺는 채소(herb yielding seed)는 선 속에 진리의 씨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함을 뜻하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tree bearing fruit)는 이 초기적 선이 후일 완전한 선으로 성숙하게 될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회개의 단계는 아직 미성숙하지만 필수적입니다. 사람은 이 단계에서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선을 지향하며, 경건하게 살려는 의지를 가지지만, 아직 선의 근원을 주님께 돌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러한 초기적 선을 기뻐하시며, 이를 통해 이후 단계에서 더 깊은 신앙과 체어리티가 깨어날 수 있는 토양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AC.9의 ‘회개의 상태’는 거듭남의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과도기적 단계로서, 인간 안에 자라날 선의 씨앗과 진리의 씨앗을 주님이 심으시는 시점이며, 비록 아직은 미숙하고 자기중심적 요소가 섞여 있으나, 이후 영적 생명이 성장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는 성스러운 시작 단계입니다.

 

 

 

AC.10, 창1, '네 번째 상태' (AC.6-15)

AC.10 네 번째 상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게 되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그 이전에도 경건하게 말하고 선한 일들을 행하였지만, 그것은 그가 겪는 시험과 곤궁 때문에 그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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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 창1, '두 번째 상태' (AC.6-15)

AC.8 두 번째 상태는, 주님께 속한 것들과 사람에게 고유한 것들 사이에 구별이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주님께 속한 것들은 말씀에서 ‘리메인스’(remains)라 불리는데, 여기서 리메인스란 특히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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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

 

두 번째 상태는, 주님께 속한 것들과 사람에게 고유한 것들 사이에 구별이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주님께 속한 것들은 말씀에서 ‘리메인스’(remains)라 불리는데, 여기서 리메인스란 특히 유아기부터 배워 저장되어 온 신앙의 지식들입니다. 이 지식들은 저장되어 있으나, 사람이 이 두 번째 상태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상태가 거의 항상 시험이나 불행, 혹은 슬픔 없이 존재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을 통해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 곧 사람에게 고유한 것들이 고요해지고, 마치 죽은 것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겉 사람에 속한 것들이 속 사람에 속한 것들과 분리됩니다. 그리고 속 사람 안에는 리메인스가 있는데, 이 리메인스는 지금까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주님에 의해 저장되어 온 것입니다. The second state is when a distinction is made between thos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nd those which are proper to man. Th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re called in the word “remains,” and here are especially knowledges of faith, which have been learned from infancy, and which are stored up, and are not manifested until the man comes into this state. At the present day this state seldom exists without temptation, misfortune, or sorrow, by which the things of the body and the world, that is, such as are proper to man, are brought into quiescence, and as it were die. Thus the things which belong to the external man are separated from those which belong to the internal man. In the internal man are the remains, stored up by the Lord unto this time, and for this use.

 

 

해설

 

AC.8은 거듭남의 두 번째 상태를 설명하며, 인간 영적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를 나타냅니다. 첫 번째 상태가 주님의 자비가 어둠 속에서 처음 움직이시는 준비의 단계라면, 두 번째 상태는 인간 내부에서 주님의 것과 ‘자기 고유한 것(proprium, own), 즉 고유 본성이 처음으로 분별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별이 영적 삶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선과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한 결코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께 속한 것들은 성경에서 ‘남은 자(remains, 리메인스)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유아기부터 주님이 사람 안에 조용히 저장해 두신 선과 진리의 씨앗들, 즉 신앙의 지식들, 선한 분위기와 감정, 기도와 예배 경험, 사랑받고 사랑한 경험 등 모든,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한 흔적을 말합니다. 이것들은 평소에는 감춰져 있지만, 주님은 필요한 때에 이것들을 깨워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리메인스가 의식적으로 작동하려면 먼저 사람 안의 ‘자기 고유한 것’, 즉 몸과 세상에 속한 욕망과 집착이 조용해져야 하는데,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오늘날 이 두 번째 상태는 거의 항상 ‘시련, 슬픔, 불행, 내적 갈등’과 함께 온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인데요, 소위 모태신앙이라 하는 저였지만, 3 때 어머니 교통사고로 갑자기 별세하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고 나서야 그동안 천방지축, 교회 안 다니는 사람과 별 다를 바 없었던 인생의 세속적 추구로부터 한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겨우 시작이었고, 비록 대기업도 다니고, 대형 교회의 중요 스태프로 섬겼어도 여전히 큰 교만과 자만의 세속적 괴물이었던 저는 이후 권고사직이라는 내침을, 그것도 신학을 하기 전 한 번, 신학을 하고 난 다음 또 한 번 등 두 번이나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겉으로는 신앙의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 본모습은 여전히 주님의 것을 가로채려는 자였던 것이었죠. 저는 저를 부단히도 스스로 높이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나이는 먹어가면서, 그러나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말할 수 없는 비참 가운데 있다가, 드디어 진심으로 저 둘째의 고백,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15:17-19)

 

하는 고백이 터져 나왔는데, 그러면서 뭔가 제 삶에 영적 전환이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제게 이 전환이 가능했던 이유가 이제 보니 바로 저 리메인스, 곧 주님이 저의 어린 시절, 제 안에 차곡차곡 쟁여놓으셨던 리메인스였던 것이지요.

 

이러한 고통은 주님이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겉 사람(외적 인간)을 잠잠하게 하여 속 사람(내적 인간)을 열어 주시는 섭리적 허용입니다. 고난을 통해 외적 욕망은 약해지고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게 되며, 그 자리에 속 사람 안에 저장된 리메인스가 떠오를 여지가 생깁니다. 이때 처음으로 사람은 내적 차원에서 주님에게 속한 것과 자기에게 속한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으며, 이는 거듭남의 본격적인 시작을 뜻합니다. 이렇게 겉 사람에 속한 것들이 속 사람과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내적 세계를 향한 관문을 열게 되고, 주님이 이제껏 저장해 두신 리메인스가 이 시기에 사용되도록 깨어납니다. 따라서 AC.8이 말하는 두 번째 상태는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이 인간을 재창조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게 하시는 성스러운 분별의 과정이며, 겉 사람의 소리가 조용해질 때 비로소 속 사람의 진짜 생명이 깨어나는 전환의 시점입니다.

 

 

 

AC.9, 창1, '세 번째 상태' (AC.6-15)

AC.9 세 번째 상태는 회개(repentance)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고 진지하게 말하며, 체어리티의 행위 같은 선을 행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선들을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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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 창1, '첫 번째 상태' (AC.6-15)

AC.7 첫 번째 상태는, 거듭남에 앞서 존재하는 상태인데, 여기에는 어린 시절(유아기) 부터의 상태와, 거듭남 직전에 있는 바로 그 상태가 모두 포함됩니다. 이 상태는 ‘혼돈’, ‘공허’,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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