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창4:22)
AC.426
‘쇠’(iron)가 자연적 진리를 뜻한다는 사실은 에스겔이 두로에 관해 말한 다음 말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That “iron” signifies natural truth is further evident from what Ezekiel says of Tyre:
12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거래하였음이여 은과 철과 주석과 납을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19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로 네 물품을 거래하였음이여 가공한 쇠와 계피와 대나무 제품이 네 상품 중에 있었도다 (겔27:12, 19) Tarshish was thy trader by reason of the multitude of all riches; in silver, iron, tin, and lead, they gave thy traffickings. Dan, and Javan, and Meusal furnished bright iron in thy tradings; cassia and calamus were in thy mart. (Ezek. 27:12, 19)
이 말씀과 같은 장의 앞뒤에 나오는 내용에서 천적·영적 부요함을 뜻한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각각의 표현은 물론 언급된 이름들까지도 저마다 고유한 의미를 지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순히 문자적인 말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From these words, as well as from what is said both previously and subsequently in the same chapter, it is very evident that celestial and spiritual riches are signified; and that every particular expression, and even the names mentioned, have some specific signification, for the Word of the Lord is spiritual, and not verbal.
[2]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n Jeremiah:
12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렘15:12-13) Can one break iron, even iron from the north, and brass? Thy substance [facultates] and thy treasures will I give for a spoil without price, and this for all thy sins, (Jer. 15:12–13)
여기서 ‘쇠’(iron)와 ‘놋’(brass)은 자연적 진리와 선을 뜻합니다. 그것들이 ‘북방’(north)에서 왔다고 한 것은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자연적인 것은 영적·천적인 것에 비하면 짙은 어둠이 빛에 비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곧 ‘북방’이 ‘남방’(south)에 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그늘이 빛에 비하는 것과도 같은데, 여기서는 ‘어머니’(mother)인 ‘씰라’(Zillah)도 이러한 그늘을 나타냅니다. ‘재산’(substance)과 ‘보물’(treasures)이 천적·영적 부요함을 뜻한다는 사실도 매우 분명합니다. where “iron” and “brass” signify natural truth and good; that it came from the “north” 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natural; for what is natural, relatively to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is like thick darkness (that is, the “north”) relatively to light or the “south”; or like shade, which is also signified here by “Zillah,” who is the “mother.” That the “substance” and “treasures” are celestial and spiritual riches is also very evident.
[3] 에스겔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gain in Ezekiel:
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겔4:3) Take thou unto thee a pan of iron, and set it for a wall of iron between thee and the city, and set thy faces toward it, and let it be for a siege, and thou shalt straiten against it, (Ezek. 4:3)
여기서도 ‘쇠’가 진리를 뜻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진리에는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으므로, 힘은 진리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진리, 곧 신앙의 진리를 뜻하는 쇠에 관해 ‘산산이 부순다’(breaks in pieces), ‘짓부순다’(crushes)고 말합니다. 다니엘서에서도 그러하며(단2:34, 40), 계시록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re also it is evident that “iron” signifies truth. Strength is attributed to truth, because it cannot be resisted, and for this reason it is said of iron—by which is signified truth, or the truth of faith—that it “breaks in pieces” and “crushes”; as in Daniel (2:34, 40), and in John: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40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단2:34, 40)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2:26–27) He that overcometh, to him will I give sovereign power over the nations, that he may pasture them with a rod of iron; as the vessels of a potter shall they be broken to shivers. (Rev. 2:26–27)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12:5) The woman brought forth a man child, who should pasture all nations with a rod of iron. (Rev. 12:5)
[4] ‘쇠 지팡이’(rod of iron)가 주님의 말씀에 속한 진리라는 사실은 계시록의 다음 말씀에서 설명합니다. That a “rod of iron” is the truth which is of the Word of the Lord, is explained in John: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5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19:11, 13, 15) I saw heaven open, and behold a white horse, and he that sat upon him was called faithful and true, and in righteousness he doth judge and fight; He was clothed with a vesture dipped in blood, and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out of his mouth goeth a sharp sword, that with it he should smite the nations; and he shall pasture them with a rod of iron. (Rev. 19:11, 13, 15)
해설
AC.426은 앞의 AC.425에서 밝힌 금속의 속뜻 가운데 특별히 ‘쇠’에 집중합니다. 앞 번호에서 놋이 자연적 선을 뜻한다는 사실을 여러 말씀으로 확인했다면, 이번 번호에서는 쇠가 자연적 진리를 뜻한다는 사실을 살펴봅니다. 스베덴보리는 에스겔과 예레미야, 다니엘과 계시록을 차례로 인용하면서 쇠가 나타내는 진리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자연적 진리와 영적·천적 부요함의 관계,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 그리고 진리가 지닌 힘입니다.
먼저 겔27:12, 19는 두로의 무역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스는 은과 쇠와 주석과 납을 가져오고, 단과 야완과 므우살은 빛나는 쇠와 향료를 제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뿐 아니라 같은 장의 앞뒤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 이 모든 것이 천적·영적 부요함에 관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앞의 AC.425에서도 두로는 영적·천적 부요함을 지닌 사람들을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두로의 무역품 가운데 등장하는 쇠 역시 단순한 금속을 넘어 자연적 진리를 뜻합니다. 다만 이번 번호는 주석과 납, 향료, 각각의 지명에 대한 구체적인 속뜻까지 밝히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각각의 표현뿐 아니라 이름들까지도 저마다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말씀은 영적이며, 단순히 문자적인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말씀의 문자적 기록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로의 무역에 관한 기록은 문자적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 천적·영적 부요함에 관한 속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을 때 특정한 단어나 이름 하나만 떼어 내어 의미를 정하기보다, 앞뒤 문맥과 함께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렘15:12-13에서는 쇠와 놋이 함께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쇠가 자연적 진리를, 놋이 자연적 선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북방의 쇠’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북방이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나타낸다고 밝힙니다. 자연적인 것은 영적·천적인 것에 비하면 짙은 어둠이 빛에 비하는 것과 같으며, 북방이 남방에 비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둠은 자연적 진리가 곧 거짓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연적인 것과 영적·천적인 것의 관계를 밝음의 차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은 창4장의 씰라와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어머니’인 씰라가 그늘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앞의 AC.421에서 씰라는 새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의미했습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씰라의 의미를 북방과 그늘의 이미지에 연결하여, 자연적인 것이 영적·천적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적인 차원에 있음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씰라가 그늘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근거로 씰라 자체가 악이나 거짓을 뜻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재산’과 ‘보물’은 천적·영적 부요함을 뜻합니다. 예레미야의 문자적 말씀에서는 죄로 인해 재산과 보물이 노략물로 넘어간다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에서 재산과 보물이 단순한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천적·영적 부요함을 나타낸다고 밝힙니다. 다만 이번 번호는 그 부요함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상실되는지까지 상세히 풀이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쇠와 놋, 북방, 재산과 보물의 의미를 함께 살피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겔4:3에서는 에스겔이 쇠판을 가져다가 자신과 성읍 사이에 쇠벽으로 세우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에서도 쇠가 진리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진리에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으므로 힘은 진리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이 설명은 이번 번호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앞에서는 쇠가 어떤 차원의 진리를 나타내는지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왜 쇠가 진리를 나타내는지, 특히 진리의 힘이 말씀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단2:34, 40을 언급합니다. 다니엘의 신상 환상에서 쇠는 부수고 깨뜨리는 힘을 지닌 것으로 묘사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러한 표현을 진리의 힘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이번 번호는 다니엘의 네 나라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손대지 않은 돌과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이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인용의 직접적인 목적은 다니엘의 환상 전체를 풀이하는 데 있지 않고, 쇠에 ‘부수고 깨뜨리는’ 힘이 부여되는 이유를 밝히는 데 있습니다.
계2:26-27과 계12:5에서는 ‘쇠 지팡이’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들을 진리가 지닌 힘을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인용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인용한 영어 본문이 ‘다스린다’는 표현을 ‘목양한다’(pasture)고 옮긴다는 사실입니다. 쇠 지팡이는 문자적으로 강한 통치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키지만, 스베덴보리가 이 번호에서 밝히는 속뜻은 진리의 힘에 관한 것입니다. 다만 ‘토기장이의 그릇’이나 계12장의 ‘남자아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번 번호에서 따로 풀이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계19:11, 13, 15는 앞의 철장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백마를 타신 분은 ‘충신과 진실’이라 불리고,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명시됩니다. 그분의 입에서는 예리한 검이 나오며, 그분은 쇠 지팡이로 민족들을 목양하십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통해 ‘쇠 지팡이’가 주님의 말씀에 속한 진리라는 사실이 설명된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이번 번호의 마지막 인용은 단순히 쇠가 강하다는 사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주님의 말씀의 진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결국 AC.426의 핵심은 쇠가 자연적 진리를 뜻하며, 진리에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로의 무역은 자연적 진리가 천적·영적 부요함에 관한 말씀 안에 등장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북방의 쇠는 자연적인 것과 영적·천적인 것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쇠벽과 다니엘의 쇠는 진리의 힘을 드러내며, 계시록의 쇠 지팡이는 그 힘이 주님의 말씀에 속한 진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두발가인이 다루는 쇠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자연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AC.426 해설)
심화
1. ‘철장은 왜 주님의 말씀의 진리를 의미하는가?’
AC.426 심화 1, ‘놋뱀은 왜 주님의 감각적·자연적 선을 표상하는가?’
AC.426 심화1. ‘철장은 왜 주님의 말씀의 진리를 의미하는가?’ AC.426에서 스베덴보리는 쇠가 자연적 진리를 뜻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진리에는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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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7, 창4:23, ‘라멕은 왜 신앙과 체어리티를 소멸시켰다고 고백하는가?’ (AC.427-431)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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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창4:22) AC.425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놋’(brass)이 자연적 선을 뜻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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