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PR.001 | 개신교인의 무의식 속 오류와 뒤섞인 신앙 100선
‘예수님을 영접했으니 나는 구원받았다’ - 영접은 끝이 아니라 거듭남의 시작입니다
개신교 신앙생활에서 가장 익숙한 표현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영접했으니 나는 구원받았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전도자는 그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축하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십 년 전 부흥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날 이후 신앙생활에 많은 어려움과 실패가 있었더라도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소중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자신의 공로나 종교적 성취가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오며, 주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구원의 길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접이라는 한 번의 사건을 그 이후의 삶과 관계없이 영원한 구원이 확정되는 순간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거듭남의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요1:12는 주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영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러한 신앙고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요14:21에서 자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시고, 23절에서는 자신을 사랑하여 자신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 오셔서 거처를 함께하시겠다고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분에 관한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실제로 주님과 결합해 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셨다고 말하는 것과, 주님께서 실제로 그 사람의 사랑과 생각과 삶을 다스리시도록 자신을 여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TCR, 1771)는 구원하는 신앙이 주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고 밝히면서, 참된 믿음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합니다. TCR.340–342에서는 올바르게 믿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주님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며, TCR.343–348에서는 주님께 나아가고, 말씀에서 진리를 배우며,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이 세 가지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표현은 ‘주님에 의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선하게 살아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과 진리의 근원은 오직 주님이시며, 인간은 그것들을 자신의 자유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접은 단순한 종교적 결단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자신 안에서 역사하도록 마음과 삶을 여는 일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일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원은 법적 신분이 바뀌는 사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의지와 이해가 주님에 의해 새로워지고, 악을 사랑하던 사람이 점차 선을 사랑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이웃을 향한 사랑과 쓰임의 기쁨을 배워 가는 실제적 변화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내면을 강제로 바꾸지 않으시며, 인간이 진리를 배우고, 자신의 악을 발견하며, 그 악에서 돌아서도록 끊임없이 인도하십니다. 스베덴보리의 ‘신적 섭리’(Divine Providence, DP, 1764) 71–99항은 인간이 자유와 합리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영적 질서를 설명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자유를 보존하시면서 인간을 새롭게 하십니다. 따라서 영접의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자신이 받아들인 진리가 실제 삶 속에서 사랑과 선으로 나타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엡2:8-9의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말씀은 구원이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10절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은혜와 선한 삶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믿음은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체어리티는 그 진리가 사랑의 생명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받아들이고도 그 진리를 따라 살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이 실제로 어떠한 생명을 지니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약2:17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와 선이 분리되면, 믿음은 인간의 기억과 이해 속에 머무를 수는 있어도 아직 그의 온전한 생명이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영접의 경험이 자기 자신에 대한 영적 보증서로 바뀌는 일입니다. 사람이 ‘나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했으므로 구원받았다’는 확신만을 붙들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점차 피할 수 있습니다. 자기 욕망과 교만을 정당화하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인간의 ‘프로프리움’(proprium), 곧 자신을 중심에 놓으려는 성향은 신앙의 언어까지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의 확신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확신은 오히려 주님께 대한 감사와 겸손, 악을 멀리하려는 결심을 깊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확신 자체가 아니라 그 확신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신뢰인가, 아니면 자신이 이미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구원의 지위에 대한 안심인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7:21에서 자신을 향하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구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지배적인 사랑과 내면 상태를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인간의 외적 신앙고백과 실제 내면의 생명을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영접기도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천국에 간다고 단정해서도 안 되며, 영접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주님의 진리를 배우고, 자신의 악을 죄로 인정하며,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이러한 삶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연약하고 때로는 실패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거듭남으로 인도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을 영접했으니 나는 구원받았다’는 말에서 보존해야 할 진리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 오직 주님이시며, 주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접이라는 한 번의 사건만으로 거듭남의 모든 과정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단지 죽은 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주시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안에 천국의 생명을 이루시고,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받아들여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존재로 새롭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언제 예수님을 영접했는가?’라는 질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는 오늘도 주님을 영접하고 있는가? 그분의 진리가 내 생각을 바꾸고, 그분의 사랑이 내 의지를 바꾸며, 그분의 생명이 내 삶에서 나타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주님을 참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그분께 문을 열어 드렸다는 기억만이 아니라, 오늘도 그분과 함께 살아가며 그분의 생명으로 새롭게 되어 가는 일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참된 신앙의 중요한 시작이지만, 영접 선언 자체가 거듭남의 완성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 오며, 인간은 믿음과 체어리티가 결합되는 삶을 통해 그 구원하시는 역사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의 확신은 과거의 영접 경험만이 아니라 오늘도 자신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신뢰하는 데서 깊어집니다.
(SL.PR.001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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