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10:7)In the days of the voice of the seventh angel the mystery of God shall be consummated(Rev. 10:7).
이 구절을AC.219에서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음성’(voice)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와 진리의 선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3:8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거니시는 음성’을 설명하면서, ‘음성’이 말씀 전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여러 구절을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계10:7을 인용하며, ‘일곱째 천사의 음성’ 역시 단순한 발성 행위가 아니라 신적 진리의 계시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곱째 천사의 음성’과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음성이 단순한 소리라면, 왜 그 음성과 함께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되겠습니까?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을 근거로, 음성이란 계시의 전달, 진리의 선포, 주님의 뜻이 드러나는 작용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또한 ‘일곱째’라는 표현은 스베덴보리의 상응 체계에서 완성이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곱째 천사의 음성’은 하늘의 진리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마지막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은 주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미리 알려 주셨던 구원의 계획과 교회의 참된 상태가 밝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AC.219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창3의 내적 의미와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들은 ‘여호와의 음성’은 자기들의 상태를 깨닫게 하는 내적 지시, 딕테이트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계10:7의 ‘일곱째 천사의 음성’도 진리를 드러내고 숨겨진 것을 밝히는 계시의 음성입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음성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드러내며 깨닫게 하는 작용입니다.
특히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비밀’은 결코 사람들에게서 영원히 숨겨져 있는 비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적절한 때가 되면 계시되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음성’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신적 작용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AC.219에서 이 구절은 ‘음성’이 곧 계시와 내적 딕테이트를 의미한다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창세기에서는 그 음성이 양심과 퍼셉션의 형태로 들렸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천사의 선포와 비밀의 성취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둘 다 본질적으로는 주님께서 인간에게 진리를 알리시고, 숨겨진 것을 드러내시며, 사람을 깨우시는 동일한 신적 작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핵심 이유는, 말씀의 ‘음성’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계시와 진리의 전달이며, 사람의 내면에서는 양심과 내적 딕테이트로, 교회 전체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는 선포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창3:8의 ‘여호와의 음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들은 것도 결국 그들의 상태를 비추어 주는 주님의 계시의 음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계10:3)The angel cried with a loud voice,as a lion roareth,and when he had cried seven thunders uttered their voices(Rev. 10:3),
이 구절을AC.219에서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음성’(voice)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 진리의 선포, 그리고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3:8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거니시는 음성’을 설명하면서, 말씀 전체에서 ‘여호와의 음성’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여러 구절을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계10:3입니다.
여기서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친다’는 것은 단순한 발성 행위가 아닙니다. 천사는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와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자를 의미합니다. 또한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라는 표현은 신적 진리가 강력하게 선포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사자는 말씀에서 종종 진리의 능력과 권세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일곱 우레가 자기 음성을 발한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우레(thunder)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하늘의 진리가 외적으로는 강력한 소리처럼, 내적으로는 계시와 깨달음처럼 작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AC.219에서는 이 구절을 가리켜 ‘외적 음성과 내적 음성이 함께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천사의 외침은 외적 계시를, 우레의 음성은 그 계시가 사람의 내면에 울리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외부에서 진리가 선포될 뿐 아니라, 그것이 내면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 구절은 창3:8과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들은 ‘여호와의 음성’도 단순한 외부의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상태를 깨닫게 하는 내적 딕테이트였습니다. 계10:3의 우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소리 자체가 아니라, 그 소리가 전달하는 영적 의미와 내적 각성입니다.
또한 숫자 ‘일곱’도 의미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에서 ‘일곱’은 충만함,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곱 우레’는 진리의 충만한 선포, 또는 하늘로부터 오는 완전한 증언을 상징합니다.
흥미롭게도 요한은 이어서 그 우레들이 말한 내용을 기록하려 하자 기록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계10:4). 스베덴보리는 이런 부분들을 통해, 어떤 영적 진리들은 단순히 문자로 기록되거나 자연적 언어로 완전히 표현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고 보았습니다. 천사들의 언어와 내적 의미의 세계에는 문자적 언어를 초월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AC.21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음성’이 단순한 청각적 소리가 아니라 신적 진리의 전달이며, 외적으로는 계시로, 내적으로는 양심과 퍼셉션, 내적 딕테이트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의 아담이 들은 ‘여호와의 음성’과 요한계시록의 ‘일곱 우레의 음성’은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영적 원리를 가리킵니다. 곧 주님께서 인간에게 진리를 알리시고, 그 진리가 인간의 내면을 흔들고 깨우는 작용인 것입니다.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창3:8)
AC.219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는 그들이 두려워한 내적 딕테이트(an internal dictate)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음성’(voice)이 갖는 의미로부터 분명합니다. 말씀에서 ‘여호와의 음성’(voice of Jehovah)은 말씀 자체(the Word itself), 신앙의 교리(the doctrine of faith), 양심(conscience) 또는 내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a taking notice inwardly),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책망(reproof)을 의미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천둥(thunders)도 ‘여호와의 음성들’(voices of Jehovah)이라고 불립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르기를, That by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s meant an internal dictate of which they were afrai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voice” in the Word, where the “voice of Jehovah” is used to designate the Word itself, the doctrine of faith, conscience or a taking notice inwardly, and also every reproof thence resulting; whence it is that thunders are called the “voices of Jehovah,” as in John: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계10:3) The angel cried with a loud voice, as a lion roareth, and when he had cried seven thunders uttered their voices (Rev. 10:3),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때 외적 음성과 내적 음성이 함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denoting that there was then a voice both external and internal. Again: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10:7) In the days of the voice of the seventh angel the mystery of God shall be consummated (Rev. 10:7).
또 시편은 말하기를, In David:
32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33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시68:32, 33) Sing unto God, sing praises unto the Lord, who rideth upon 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 lo, he shall send out his voice, a voice of strength (Ps. 68:32–33).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옛적 하늘들의 하늘’(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은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의 지혜를 의미하고, ‘음성’(voice)은 계시(revelation)와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를 의미합니다. 또, 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 denote the wisdom of the most ancient church; “voice,” revelation, and also an internal dictate. Again: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7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8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시29:3-5, 7-9) The voice of Jehovah is upon the waters; the voice of Jehovah is in power; the voice of Jehovah is in glory; the voice of Jehovah breaketh the cedars; the voice of Jehovah divideth the flames of fir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wilderness to shak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hinds to calve and uncovereth the forests (Ps. 29:3–5, 7–9).
또 이사야서에는, And in Isaiah:
30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1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 (사30:30, 31) Jehovah shall cause the excellency of his voice to be heard, for through the voice of Jehovah shall Asshur be beaten down (Isa. 30:30–31).
라고 하였습니다.
해설
AC.219의 핵심은 창세기 3장 8절의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이 실제 귀로 들리는 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여기서의 ‘음성’(voice)은 양심의 소리, 내적 깨달음, 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책망과 경고를 의미합니다.
타락 이전의 태고교회 사람들은 퍼셉션(perception), 곧 직접적인 영적 지각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주님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느끼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이 시작되자 그들은 더 이상 그 퍼셉션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었다’는 것은, 주님의 내적 말씀과 양심의 경고가 여전히 들리기는 했지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보다 두려워하고 피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같은 음성이 평안과 기쁨이었지만, 죄를 지은 후에는 책망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 전체에서 ‘여호와의 음성’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신적 진리의 발출, 주님의 계시, 양심의 역사, 내적 깨달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여호와의 음성이 백향목을 꺾고 광야를 흔들며 숲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의 진리가 인간 안의 교만과 거짓을 드러내고 흔들어 놓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 구절은 양심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양심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진리가 사람 안에서 울리는 내적 음성입니다. 선한 상태에 있을 때는 그 음성이 위로와 인도처럼 느껴지지만, 악한 상태에 있을 때는 불편함과 두려움으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창세기 3장 8절에서 아담과 하와가 숨은 이유는 주님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변한 것은 인간의 상태였습니다. 같은 태양이 건강한 눈에는 빛이 되지만 병든 눈에는 고통이 되는 것처럼, 같은 주님의 음성이 순수한 상태에서는 기쁨이지만 타락한 상태에서는 두려움으로 경험된 것입니다.
결국 AC.219는 타락의 가장 깊은 결과 가운데 하나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사랑하던 주님의 음성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 난 후 가장 먼저 주님에게서 숨으려 하고, 양심의 소리를 피하려 하며, 내적 책망을 외면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영적 의미라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