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5:2)

 

AC.476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라는 표현이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선언되고 증명되었습니다. 곧 남자, 또는 사람(vir)은 이해력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하고, 여자 또는 여인은 의지와 그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며, 따라서 사랑과 관련된 모든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이름을 생명을 의미하는 이름인 하와라고 했는데, 생명은 오직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교회도 의미하며, 이는 이미 앞에서 보인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교회의 사람(vir)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교회가 영적 상태에 있었고, 그 후에 천적 상태로 만들어진 때의 상태이므로, ‘여자’(female)보다 ‘남자’(male)가 먼저 언급되는데, 이는 창세기 126, 27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영적 인간과 관련되지만, 그 후 결혼이 이루어질 때, 곧 교회가 천적 상태가 될 때에는 더 이상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라고 하지 않고, 그들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둘을 함께 의미하는 ‘사람’(homo)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and he called their name man)는 말이 뒤따르는데, 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That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was declared and proved above, where it was shown that the male or man [vir] signifies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belongs to it, consequently everything of faith; and that the female or woman signifies the will, or the things appertaining to the will, consequently whatever has relation to love; wherefore she was called Eve, a name signifying life, which is of love alone. By the female therefore is also signified the church, as has been previously shown; and by the male, a man [vir] of the church. The subject here is the state of the church when it was spiritual, and which was afterwards made celestial, wherefore “male” is mentioned before “female,” as also in chapter 1:26–27. The expression to “create” also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man; but afterwards when the marriage has been effected, that is, when the church has been made celestial, it is not said “male and female,” but “man” [homo], who, by reason of their marriage, signifies both; wherefore it presently follows, “and he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church.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6, 27)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6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을 통해 교회의 내적 구조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앞서 ‘남자와 여자’가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의미한다는 점을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고 말하면서, 이제 그 이유를 인간 내면의 구조로부터 풀어냅니다. 남자, 곧 사람(vir)은 이해력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하며, 이는 곧 신앙의 영역입니다. 반면에 여자, 곧 여인은 의지와 그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하며, 이는 사랑의 영역입니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한 쌍이며, 교회의 생명은 바로 이 결합에서 나옵니다.

 

이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남자와 여자를 역할이나 지위의 차이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이해력(understanding)과 ‘의지(will)라는 두 근본 기능으로 나누고, 그 각각이 신앙과 사랑에 상응한다고 말합니다. 이해력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분별하는 능력이고, 의지는 선을 사랑하고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인간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이해하되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머리에 머무는 지식이 되고, 사랑은 있으나 진리가 없으면 그것은 방향 없는 열정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말하며, 교회를 이 둘의 결혼으로 표현합니다.

 

이 맥락에서 여자가 ‘하와’라 불린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하와라는 이름은 ‘생명’을 뜻하는데, 스베덴보리는 생명이 오직 사랑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진리는 생명을 비추는 빛이지만, 생명 자체는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생명을 상징하고, 나아가 교회 자체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지만, 그 진리가 생명이 되려면 사랑 안에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이 때문에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고, 남자는 교회의 사람(vir), 곧 그 교회 안에서 신앙의 역할을 맡은 자를 의미합니다.

 

AC.476은 또한 성경의 표현 순서에 주목하게 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시점은 교회가 아직 영적 상태에 있었고, 그 후에 천적 상태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가 먼저 언급됩니다. 이것은 창세기 126, 27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영적 상태에서는 진리를 통해 선으로 나아가는 질서가 먼저 나타나기 때문에, 이해력과 신앙이 앞서 언급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 사랑보다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 성장의 순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다시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을 끌어옵니다. 이 말은 영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받아 새롭게 세워질 때, 그는 ‘창조’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 신앙과 사랑의 결혼이 이루어질 때, 곧 교회가 천적 상태로 만들어질 때에는 표현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고 하지 않고, ‘사람(homo)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두 기능, 곧 이해력과 의지, 신앙과 사랑이 하나로 결합,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는 말이 뒤따릅니다. 여기서 ‘사람’은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혼된 상태, 이해력과 의지가 하나로 작동하는 상태가 바로 참된 인간이며, 참된 교회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신앙이 따로 말하지 않고, 사랑이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이 인간 안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나타납니다.

 

AC.476은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남자와 여자’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사람’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신앙과 사랑을 말로는 함께 이야기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가 바로 이 ‘사람’의 상태를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생명이었고, 신앙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AC.476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교회는 신앙만으로도, 사랑만으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신앙과 사랑이 결혼한 상태에서만 존재하며, 그 결혼이 완성될 때 성경은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 하지 않고, 하나의 이름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창세기 5장의 짧은 표현 하나하나가 교회의 깊은 비밀을 드러내는 언어로 살아나게 됩니다.

 

 

 

AC.477, 창5:2, 주님을 닮은 상태여야 ‘사람’(man)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7 ‘사람’(man)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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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5, 창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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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5:2)

 

AC.475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는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calling their name man)는 그들이 교회였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특별한 의미에서 ‘사람’(man, homo)이라고 불립니다.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by “calling their name man,” is signified that they were the church, which, in an especial sense, is called “man” [homo].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5에서 창세기 52절의 짧은 표현 속에 담긴 교회의 본질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말은 생물학적 성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남자는 신앙, 곧 진리를 의미하고, 여자는 사랑, 곧 선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열이나 역할 분담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발생하는 영적 구조에 관한 말입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합하지 않으면, 그곳에는 교회도, 생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결혼은 단순한 협력 관계가 아닙니다. 신앙과 사랑의 결혼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결합이며, 어느 한쪽이 빠지면 다른 한쪽도 그 본래의 성격을 잃습니다. 사랑 없는 신앙은 차갑고 메마른 지식으로 남고, 신앙 없는 사랑은 방향을 잃은 감정으로 흩어집니다. 태고교회는 바로 이 결합이 가장 온전하게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언제나 사랑 안에 있었고, 사랑은 신앙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라는 표현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단순히 인간 개체를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사람(homo)은 ‘신앙과 사랑이 결혼한 상태’, 곧 교회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람’이라 부르셨다는 것은, 그들이 단지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곧 교회 자체였다’는 선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신앙과 사랑이 하나로 결합한 상태입니다.

 

이 점에서 태고교회는 매우 독특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태고교회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삶, 사고, 사랑, 인식 전체가 교회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교회에 ‘출석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살면서 곧 교회였고, 사랑하며 곧 예배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 하는 말에 담긴 깊은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지점에서 ‘특별한 의미에서 교회를 사람이라고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인간성은 신앙과 사랑의 결합에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단지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혹은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참된 의미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인간은 주님을 향한 신앙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결혼한 상태에서만 나타납니다. 이 결합이 깨어지면, 인간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성경적 의미에서의 ‘사람’은 더 이상 아닙니다.

 

이 원리는 창세기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인간을 둘로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 구조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신앙과 사랑의 결합으로 존재하며, 이 결합이 있을 때만 ‘사람’이라는 이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이 결합이 가장 온전했던 시대였기에,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하나의 이름, 곧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직접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사랑과 결혼한 상태인가, 아니면 분리된 상태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말하면서도 사랑을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신앙의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우리로 하여금 돌아보게 합니다. 신앙과 사랑이 다시 결합할 때, 교회는 다시 ‘사람’이 됩니다. 그때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생명이 되고, 제도가 아니라 관계가 됩니다.

 

결국 AC.475는 교회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줍니다. ‘교회란 신앙과 사랑이 결혼한 상태이며, 그 상태가 곧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태고교회는 이 정의가 가장 완전하게 실현된 교회였고, 그래서 창세기 5장은 그들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남자와 여자’라는 성경의 표현은 단순한 창조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의 생명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 주는 영원한 언어로 살아나게 됩니다.

 

 

 

AC.476, 창5:2,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 ‘사람’(homo)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6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로 말하는 것이 신앙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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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4, 창5:1, 태고교회의 ‘번성’(propagation)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태고교회의 출생, 곧 ‘번성’(propagation)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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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5:1)

 

AC.474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태고교회의 출생, 곧 ‘번성’(propagation)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먼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르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번성과 계승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4에서 창세기 5장의 전체 흐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단순한 ‘사람의 출생’이 아니라, ‘태고교회의 출생’, 곧 교회가 어떻게 생겨나고 이어졌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번성(propagat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번성이란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영적 상태가 다음 상태로 이어지는 계승의 원리’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5장은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시작이 어떤 질서를 따라 확장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장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교회의 출생을 ‘먼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르는 것’으로 묘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태고교회의 출발점은 이미 완성된 천적 상태가 아니라, ‘영적 상태에서 시작하여 천적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태고교회의 인간도 처음부터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지각, 즉 퍼셉션으로 아는 존재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받아 영적 인간으로 세워진 다음, 그 영적 상태가 성숙하여 천적 상태로 이르렀습니다. 이 질서가 먼저 분명히 제시되지 않으면,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번성’과 ‘계승’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모든 번성과 계승은 상태의 질서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제도를 통해 퍼지는 것이 아니고, 혈통을 통해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언제나 ‘내적 상태의 전달’을 통해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먼저 영적 상태로 세워지고, 그 영적 상태가 천적 상태로 성숙될 때, 비로소 그 상태는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번성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단정합니다.

 

이 원리는 태고교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태고교회의 ‘’, ‘가문’, ‘민족’은 우연히 생겨난 사회적 단위가 아니라, ‘이 영적 질서가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였습니다. 한 집은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인식이 천적 상태에 이른 공동체였고, 그 집의 영적 성향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가문과 민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만일 영적 상태가 천적 상태로 성숙되지 못했다면, 번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교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474는 ‘왜 창세기 5장이 먼저 형상과 모양, 곧 영적 상태와 천적 상태를 말하는가’를 분명히 설명해 줍니다. 성경은 곧바로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이야기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먼저 인간이 어떤 상태로 만들어졌는지를 밝히고, 그 상태가 어떤 완성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준 다음에야 비로소 번성과 계승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서술 순서가 아니라, ‘교회가 이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보여 주는 질서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를 향한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의 성장을 숫자나 활동의 확장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교회의 참된 번성은 언제나 ‘영적 상태의 성숙’에서 시작됩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방향을 향해 자라지 않는다면, 외적인 확장은 있어도 내적인 계승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적 상태가 주님 안에서 깊어질 때, 교회는 비록 작아 보여도 살아 있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 구절은 개인의 신앙 여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열매’와 ‘전달력’은 노력의 많고 적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먼저 영적 상태로 세워지고, 그 영적 상태가 사랑 안에서 성숙해 가는 데서 나옵니다. 다시 말해, ‘천적 방향을 향해 가지 않는 영성은 머무를 수는 있어도 퍼질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번성’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킵니다.

 

결국 AC.474는 창세기 5장을 읽는 하나의 큰 관점을 제시합니다. 태고교회의 출생과 계승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이 정하신 질서의 결과였습니다. 먼저 영적 인간이 세워지고,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상태로 완성되며, 그 완성된 상태에서 교회의 번성과 계승이 흘러나옵니다. 이 질서를 이해할 때, 창세기 5장은 더 이상 족보의 나열이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살아서 이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지도’가 됩니다.

 

 

 

AC.475, 창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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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3, 창5:1,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 ‘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형상’(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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