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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11은 교회 이야기?’

 

그렇다면... 창세기, 특히 1-11 내용을 인류 전체에게 적용하는 건 좀 무리가 있겠네요. ‘교회를 향한 말씀이니까요!

 

 

네, 바로 그 점이 스베덴보리의 창세기 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통 우리는 창세기 1-11장을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인류 전체의 역사’로 읽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인류 최초의 개인, 에덴은 인류 최초의 거주지,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 노아 홍수는 인류 전체의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읽으면 자연스러운 접근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훨씬 다른 관점에서 읽습니다. 그에게 창세기 1-11장은 무엇보다 ‘교회의 역사’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과 연결되어 있던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쇠퇴하고,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보존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의미하고, 가인은 태고교회 안에서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 상태를 의미하며, 노아는 홍수 이후 보존된 새로운 교회를 의미합니다. 중심은 언제나 인류 전체가 아니라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 말씀처럼 창1-11을 곧바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스베덴보리의 해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AC를 읽어보면, 스베덴보리는 반복해서 ‘교회’에 초점을 맞춥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주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책이며, 그 관계가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1-11이 교회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나머지 인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에게 ‘교회’는 언제나 인류 전체를 위한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태고교회는 당시 모든 인류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통해 천국과 인간 세계가 연결되었고, 그 결과 교회 밖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치 심장이 몸 전체는 아니지만, 몸 전체에 생명을 공급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창1-11은 직접적으로는 교회의 역사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상태가 결국 인류 전체의 영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스베덴보리가 창1-11을 해석할 때 ‘교회의 역사’로만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개인의 영적 역사’로도 읽습니다. 예를 들어, 아담의 창조는 한 사람 안에서 새로운 영적 생명이 시작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선악과 사건은 우리 각자가 자기 own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홍수는 우리 안에서 거짓과 악이 범람하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창1-11은 세 겹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역사입니다. 둘째는 한 인간의 영적 역사입니다. 셋째는 천국과 인간 사이의 보편적 영적 원리입니다.

 

따라서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창1-11을 곧바로 ‘인류 전체의 외적 역사’로 읽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 중심은 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교회의 역사는 우리 각자의 영혼 안에서도 반복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결국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창1-11은 ‘모든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주님과 연결된 인간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기록한 책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교회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우리 각자의 영적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AC.201, 심화 5, ‘균형과 신중’

AC.201.심화 5. ‘균형과 신중’ 음... 이런 결론은 좀 위험할 것 같아요. 다른 기독교인들이 이 결론을 읽으면 몹시 힘들어할 것 같은데요? 네, 목사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방금의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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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1, 심화 3, ‘태고교회 = 인류 전체?’

AC.201.심화 3. ‘태고교회 = 인류 전체?’ 태고교회 시대에는 천적 상태가 인류 전체의 일반적인 상태에 가까웠지만, (AC.201 심화 1) 전에 언젠가 제가 ‘태고교회도 지금처럼 그 시대 인류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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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고교회 = 인류 전체?’

 

태고교회 시대에는 천적 상태가 인류 전체의 일반적인 상태에 가까웠지만, (AC.201 심화 1)

 

전에 언젠가 제가 태고교회도 지금처럼 그 시대 인류 중 일부를 가리키는 거죠? 비록 태고 시대라 해도 그 시대 인류 전체가 태고교회는 아닌 거죠?’라고 물었더니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위 내용과 충돌하는 거 아닌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이 둘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표현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필요는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태고교회(Most Ancient Church)는 언제나 ‘인류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말씀에서 ‘교회’란 특정 조직이나 국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고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태고교회 역시 당시 지상에 존재하던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교회가 있는 곳과 교회가 없는 곳을 구분합니다. 태고교회 시대에도 주님과 연결된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께서 전에 질문하셨을 때의 ‘그 시대 인류 전체가 태고교회는 아니다’라는 답변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왜 ‘태고교회 시대에는 천적 상태가 인류 전체의 일반적인 상태에 가까웠다’는 표현이 나왔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그 표현은 ‘인류 전체’보다 ‘교회 전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즉,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천적 상태가 일반적이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태고교회라는 공동체 자체가 천적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개신교 안에도 신앙 수준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양심을 통한 신앙’, ‘말씀을 배우는 신앙’이 일반적입니다. 마찬가지로 태고교회 안에도 개인차는 있었겠지만, 전체적인 성향은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하는 천적 성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태고교회 시대에는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천적 상태가 일반적이었다’가 됩니다. 반면 홍수 이후의 교회들에서는 영적 상태가 일반적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스베덴보리가 태고교회를 말할 때, 종종 거의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태고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광범위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AC를 계속 읽다 보면 태고교회 안에서도 점차 쇠퇴가 일어납니다. 가인 계열, 셋 계열, 라멕, 그리고 결국, 노아 이전 세대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이미 태고교회 내부에서도 상태의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태였다면, 그런 구분 자체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목사님께서 기억하시는 이전 답변과 AC.201의 설명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당시 인류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일반적 성향은 천적 성향이었다.’

 

홍수 이후에는 그러한 천적 성향이 일반적이지 않게 되었고, 대신 영적 성향이 일반적이 되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두 설명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전체 사상을 따라가면, 주님께서는 어느 시대든 ‘남은 자(remnant)를 보존하십니다. 태고교회 시대에도 교회 밖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오늘날에도 천적 성향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대나 집단 자체보다, 주님께서 각 사람 안에 어떤 사랑과 어떤 상태를 형성하고 계시는가입니다.

 

그래서 AC.201의 핵심은 ‘그 시대 모든 사람이 천적이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태고교회라는 교회의 본질적 성향이 천적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 가장 균형 잡힌 이해일 것 같습니다.

 

 

 

AC.201, 심화 4, ‘창1-11은 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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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1, 심화 2, ‘천적 천사들을 이해하려면 태고 사람들을 보라’

AC.201.심화 2. ‘천적 천사들을 이해하려면 태고 사람들을 보라’ 천적(celestial)이라 불리는 천사들과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홍수 이전에 거듭났던 태고 사람들과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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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적 천사들을 이해하려면 태고 사람들을 보라

 

천적(celestial)이라 불리는 천사들과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홍수 이전에 거듭났던 태고 사람들과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the angels and angelic spirits who are called celestial are of the same genius as the most ancient people who were regenerate before the flood; (AC.201)

 

위 내용은, 그러면 지금은 더 이상 천적 천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천적 천사는 오직 홍수 이전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결코 ‘천적 천사는 홍수 이전 사람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AC.201의 뜻은 ‘홍수 이전 태고교회 사람들의 성향(genius)이 오늘날 천적 천사들의 성향과 같다’는 것이지, 천적 천국의 구성원이 모두 홍수 이전 사람들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출신 시대’가 아니라 ‘성향’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 사람들을 설명하면서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하는 존재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천적 천사들도 마찬가지로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지각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둘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즉, 태고교회 사람들과 천적 천사들은 같은 종류의 내적 구조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천국은 계속 채워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모두 한때 지상에서 살던 인간들이며, 지금도 사람들이 죽어 천국에 들어간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천적 천국 역시 홍수 이전 사람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태고교회 시대에는 천적 상태가 인류 전체의 일반적인 상태에 가까웠지만, 홍수 이후에는 그런 상태가 매우 드물어졌다는 점입니다. 인간 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conscience)을 통해 인도되는 영적 인간의 길을 걷게 되었고, 직접 지각(perception)을 통해 인도되는 천적 인간은 매우 드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 독자들 가운데는 ‘오늘날 천적 천사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여전히 천적 천국이 존재하고, 그 천국은 계속 살아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종합하면, 천적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시대가 아니라 사랑의 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즉, 주님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되고, 선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런 상태는 매우 높은 상태이므로 흔하지는 않습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궁금해하시는 핵심은 아마 이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 구조가 홍수 이후 바뀌었다면, 태고교회와 같은 천적 상태는 이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해서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고교회 전체가 가졌던 집단적 천적 상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별 인간이 천적 사랑 안으로 인도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다만 그 과정은 태고교회 사람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아래 매우 깊은 거듭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AC.201의 문장은 ‘천적 천사는 홍수 이전 사람들뿐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홍수 이전 태고교회 사람들의 성향을 이해하고 싶다면 오늘날 천적 천사들을 생각하면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는 오히려 조금 위로가 되는 사실도 있습니다. AC.182-189를 보면 주님께서는 죽은 직후의 모든 사람을 먼저 천적 천사들에게 맡기십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최종적으로 천적 천국에 갈지, 영적 천국에 갈지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천적 상태는 인간에게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천국의 가장 깊은 보호와 사랑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01은 ‘천적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천적 삶의 원형은 지금도 천국 안에 살아 있다’는 증언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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