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31)

 

AC.63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움의 시간은 곧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며, 그래서 예언자들 가운데서는 거듭난 인간을 하나님의 손가락의 일(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하기 전까지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는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인간은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습니다. Meanwhile the Lord continually fights for him against evils and falsities, and by combats confirms him in truth and good. The time of combat is the time of the Lord’s working;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the regenerate man is called 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 Nor does he rest until love acts as principal; then the combat ceases. When the work has so far advanced that faith is conjoined with love, it is called “very good”; because the Lord then actuates him, as his likenes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the evil spirits depart, and good spirits take their place, and the man is introduced into heaven, or into the celestial paradise; concerning which in the following chapter.

 

 

해설

 

이 글은 거듭남의 여섯째 날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그 상태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거듭남의 전 과정에서 싸움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싸움을 겪지만, 실제로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그 싸움의 현장에 서 있을 뿐이며, 주님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역사하십니다.

 

싸움’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윤리적 갈등이나 심리적 고민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는 악과 거짓, 곧 인간 본성에 뿌리내린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진리와 선에 저항하는 영적 충돌을 의미합니다. 이 충돌이 반복되는 동안 인간은 진리와 선을 더 이상 개념으로만 붙잡지 않고, 삶의 실제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싸움들은 인간을 소모시키는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확증하는’ 과정입니다.

 

이 글에서 매우 인상적인 표현은, 이 싸움의 시간이 ‘주님의 역사하심의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혼란과 불안, 실패와 흔들림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주님께서 가장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때라는 뜻이며, 그래서 예언자들이 거듭난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가락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손가락은 세밀하고 정교한 작용을 상징합니다. 즉, 거듭남은 거칠고 강압적인 개입이 아니라, 가장 미세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또 하나의 핵심은, 주님께서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할 때까지’ 쉬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삶을 이끄는 중심 원리입니다. 신앙이 먼저 작동하던 단계에서는 진리가 인간을 이끌지만, 그 진리는 여전히 노력과 긴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주가 되면, 선한 행위는 더 이상 억지로 행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이때 비로소 싸움은 멈춥니다.

 

그래서 신앙이 사랑과 결합했을 때,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여섯째 날에만 사용된 표현으로, 거듭남의 완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좋았더라’라는 표현은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질서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는 상태, 곧 인간이 주님의 닮음이 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날이 끝날 때 일어나는 변화는 매우 결정적입니다.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은, 인간의 내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더 이상 악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선이 삶의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이때 인간은 ‘하늘(heaven), 곧 ‘천적 낙원(the celestial paradise)으로 인도됩니다. 이는 사후 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는 하늘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결국 거듭남을 하나의 완성된 사건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싸움, 인내, 주님의 지속적인 역사,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평화까지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보여 줍니다. 여섯째 날은 끝이 아니라, 참된 안식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문턱이며, 그 문을 여는 분은 언제나 주님이십니다.  

 

 

심화

 

1.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AC.63.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위 AC.63 본문,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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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 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AC.63.심화 2.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위 AC.63 본문 중,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이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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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AC.63, 심화 3,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AC.63.심화 3.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위 AC.63 본문 중,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말인데요, 여기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의 의미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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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됨

 

 

AC.63, 심화 4,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됨’

AC.63.심화 4.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됨’ 위 AC.63 본문 중, ‘인간은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되는데’ 말인데요, 여기 ‘하늘, 곧 천적 낙원’의 의미가 뭔가요? 거듭남의 완성 단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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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3, 창1:31, 여섯째 날의 상태,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3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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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창1:31, '여섯째 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2 인간의 거듭남에 속한 시간들과 상태들은, 일반적으로도, 그리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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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

 

천적 인간’,  일곱째 날에 대한 위와 같은 생각은 AC.13, 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태까지만 이르고, 어떤 이들은 두 번째 상태까지만, 또 다른 이들은 세 번째,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상태에도 이르지만, 이렇게 여섯 번째 상태까지 이르는 이는 적고(few),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라는 글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C.13의 ‘일곱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 없다(scarcely)’는 말씀은 ‘천적 인간은 극히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해당된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의 거듭남이 그만큼 깊고 어려운 과정이며, 실제로 완전한 안식의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가 드물다’는 현실적 진술입니다. 즉, ‘배제의 선언’이 아니라 ‘과정의 난이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먼저 이 문장의 무게를 정확히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없다’라고 하지 않고 ‘거의 없다(scarcely)라고 합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문을 닫는 표현이 아니라, ‘열려 있지만, 매우 깊고 어려운 상태’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그 상태로 이끄시지만, 인간 쪽에서 거기까지 온전히 응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AC 전체 흐름으로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여섯째 상태까지는 ‘싸움과 선택의 과정’입니다. 여기까지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곱째 상태는 ‘싸움이 끝나고, 사랑이 완전히 중심이 되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 이르려면, 단순히 몇 가지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의 중심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희귀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하나 더 있습니다. AC.13에서 말하는 ‘일곱째 상태’는 매우 ‘강한 의미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즉, 거의 흔들림이 없는, 깊이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조금이라도 평안을 경험하면 일곱째인가?’처럼 낮춰 보면 혼선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완전히 정착된 안식 상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드물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제 목사님 질문과 연결하면 핵심이 또렷해집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이 극히 적은 것 아닌가?’—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처음부터 정해진 소수’로 이해하면 균형이 깨집니다. AC의 흐름에서는 언제나 ‘열려 있음’이 유지됩니다. 누구든지 그 길로 인도받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그 깊이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꼭 보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적다(few), 거의 없다(scarcely)’는 표현은 종종 ‘영적 질서의 기준’에서 말한 것이지, 우리가 통계적으로 셀 수 있는 숫자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즉, ‘인간의 상태가 그만큼 깊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걸 목회적으로 풀어보면 오히려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대부분은 여기까지밖에 못 갑니다’라는 낙심의 메시지가 아니라, ‘이 길은 깊고 긴 길이지만, 주님이 끝까지 이끄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일곱째 상태를 완전히 이룬 사람’을 찾기보다, ‘지금 이 사람이 그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체를 이렇게 정리하시는 것이 가장 균형 잡힙니다. ‘일곱째 상태, 곧 천적 상태는 실제로 깊고 어려운 단계이기 때문에 드물게 보이지만, 그것은 닫힌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도받고 있는 방향이며, 각 사람은 그 길 위에서 자기 정도만큼 그 안식에 참여하게 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AC.13 거의 없다는 표현은 천적 상태가 배제된 소수의 영역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깊고 완전한 거듭남의 상태가 실제로는 드물게 성취된다는 현실적 진술입니다.’

 

 

 

AC.62, 창1:31, '여섯째 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2 인간의 거듭남에 속한 시간들과 상태들은, 일반적으로도, 그리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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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심화 4,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네요?’

AC.62.심화 4.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네요?’ 그러면...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어요. 천성적으로 ‘사랑스런’ 사람, 처음부터 사랑으로 출발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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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네요?

 

그러면...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어요. 천성적으로 사랑스런 사람, 처음부터 사랑으로 출발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어서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사님 생각처럼 천적 인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맞지만,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극단적으로 희귀한 존재로만 볼 필요는 없다’가 더 정확한 균형입니다. 왜냐하면 천적’이라는 것을 흔히 말하는 성격 좋은 사람’이나 착한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먼저 중요한 오해부터 풀어야 합니다. ‘천적 인간 = 타고나기를 사랑스러운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온순함, 다정함, 눈물 많음, 배려심 같은 것은 자연적 애정일 수도 있고, 영적 과정 중의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은 그런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의지의 가장 깊은 중심이 주님과 직접 결합된 상태’,  선 자체를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이건 단순한 기질 문제가 아니라 거듭남의 깊이’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부드럽지 않은 사람도 천적일 수 있고, 반대로 매우 따뜻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도 아직 자연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먼저 분명히 하셔야 천적 인간은 극소수일 것 같다’는 느낌이 조금 정리됩니다.

 

그 다음으로, 왜 천적 인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느냐를 보면,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리를 통해 자라기 때문입니다. 즉, ‘이게 옳다’를 배우고, 그걸 따라 살면서 점점 변화됩니다. 이것이 영적 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대부분은 이 길을 걷습니다. 설교도, 교훈도, 교육도 대부분 이 구조를 전제로 합니다.

 

반면 천적 상태는 사랑이 먼저’인 상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이 따뜻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따지기 전에 이미 선을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는 인간이 타락 이후 일반적으로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드물게 느껴지는 것이 맞습니다. 스베덴보리도 태고교회를 바로 이 천적 상태’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습니다. ‘천적 인간이 적다’는 것을 특별한 몇 사람만의 영역’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AC의 흐름과 어긋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사람을 결국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랑’이 어떤 구조 위에서 형성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영적 인간도 결국 사랑에 이르지만, 그것은 진리를 통해 형성된 사랑’입니다.

 

이걸 목회적으로 풀어보면 훨씬 편안해집니다. 어떤 성도는 계속 이게 맞나요?’를 묻고, 고민하고, 분별하며 자랍니다. 또 어떤 성도는 복잡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선한 방향을 택합니다. 둘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둘 다 주님께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누가 더 높다’가 아니라 각 사람이 어떤 길 위에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목사님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는 것이 맞지만, 그것은 소수 엘리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보통 진리를 통해 거듭나는 구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각자의 길 위에서 결국 사랑 중심의 상태로 인도됩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천적 인간은 드물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거듭남의 방식의 차이이며, 모든 사람은 자기 방식 안에서 사랑 중심의 완성으로 인도됩니다.’

 

 

 

AC.62, 심화 5,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

AC.62.심화 5.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에 대한 위와 같은 생각은 AC.13, ‘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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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심화 3, ‘변화의 가능성, 완성의 방식’

AC.62.심화 3. ‘변화의 가능성, 완성의 방식’ 음... 위 설명은 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구조와 본질은 여전히 영적 방식 위에 있다’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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