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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올바른 삼위일체 축도

 

저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 스베덴보리의 설명,  한 분 주님 안의 세 가지 인격적 나타나심을 알고 나서는 그동안 오랜 세월 사용해 오던 개신교 전통적 축도 표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대신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가 만든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표현 중 성령에 대한 언급이 없어 늘 어딘가 좀 아쉬운데요, 혹시 이 스베덴보리식 삼위일체를 요약한, 더 좋은 무슨 축도 표현이 없을까요?

 

 

지금 사용하고 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이미 핵심을 잘 잡고 계신 것입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느끼신 것처럼, 거기에 성령의 역사’에 해당하는 부분, 곧 주님의 실제 작용과 임재가 언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방향은 하나입니다. ‘‘성령을 별도의 위격처럼 다시 넣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 진리, 역사하심을 표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입니다.

 

먼저 원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즉, ‘아버지-아들-성령’이라는 구조를 주님(한 분)-그분의 사랑-그분의 진리와 역사하심’으로 풀어내는 것이지요.

 

이 원리에 따라 실제로 사용하실 수 있는 축도 표현을 몇 가지 제안드리겠습니다. (모두 한 분 주님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첫째, 가장 균형 잡힌 형태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혜와 생명의 역사하심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표현에는 사랑’(아버지), ‘지혜, 진리’(아들), ‘생명의 역사’(성령)가 자연스럽게 포함됩니다.

 

둘째, 조금 더 성경적 어감을 살린 형태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와 그 거룩한 역사하심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표현은 신적 사랑-신적 진리-거룩한 역사’로 구조가 또렷합니다.

 

셋째, ‘성령’의 뉘앙스를 가장 직접적으로 살린 표현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와 그 생명의 숨결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생명의 숨결’은 AC.96에서 보신 콧김, , 성령 개념을 그대로 살린 표현입니다.

 

넷째, 조금 더 간결하고, 설교 현장에서 쓰기 좋은 형태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와 그 살아 있는 임재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임재’라는 표현으로 성령의 실제 체험적 측면을 담았습니다.

 

다섯째, 목사님 스타일에 가장 가까운 확장형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그 거룩한 역사하심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존 은혜-사랑-성령 구조를 유지하면서, ‘성령’을 거룩한 역사하심’으로 풀어낸 형태입니다.

 

이 중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구조는 사랑-진리-역사하심’, 또는 사랑-지혜-생명’, 이 두 가지 축입니다.

 

성령을 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살아 있는 역사로 풀어 넣는 것이 스베덴보리식 표현입니다.’

 

 

 

AC.96, 창2:7,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 오해 바로잡기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6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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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6, 심화 4, ‘제3위격’

AC.96.심화 4. ‘제3위격’ 위 심화 3 설명 중 ‘제3위격’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 좀 부탁합니다. 특히 ‘위격’이라는 게 뭔가요? ‘삼위일체’ 할 때, 그 ‘위’ 같은 거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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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위격

 

위 심화 3 설명 중 3위격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 좀 부탁합니다. 특히 위격이라는 게 뭔가요? 삼위일체 할 때,   같은 거죠?

 

 

네, 정확히 보신 것처럼 3위격’의 위격’은 삼위일체’에서 말하는 그 (位)’와 같은 개념입니다. 다만 이 용어가 일상 언어가 아니라 신학적 번역어이다 보니, 정확히 풀어 이해해 두시면 이후 논의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먼저 위격(位格)’이라는 말의 원어는 라틴어 persona’이고, 영어로도 그대로 person’이라고 번역됩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person’은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한 사람, 한 개인’이라는 뜻과는 조금 다릅니다. 신학에서의 위격’은 스스로 인식하고 관계할 수 있는 주체’, 또는 독립된 인격적 중심’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생각하고, 의지, 의도하고, 관계 맺는 주체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에서 말하는 세 위격’은 이렇게 설명됩니다.

 

 아버지’: 신성의 근원적 위격

 아들’: 성육신하신 위격(예수 그리스도)

 성령’: 역사하시는 위격

 

이 셋이 각각 위격’이며, 동시에 본질(신성)은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세 위격이지만 한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위격’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됩니다. 만약 이것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세 사람’처럼 받아들이면, 사실상 세 하나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많은 신학자들이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고심해 왔습니다. ‘셋이지만 하나’라는 표현 자체가 인간 언어로는 완전히 풀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설명을 제시합니다. 그는 세 위격’이라는 개념을 유지하기보다, 그것을 한 분 주님 안의 세 측면으로 재정리합니다. 곧,

 

 아버지’ = 보이지 않는 신성(존재 자체)

 아들’ = 보이는 신성(성육신하신 주님)

 성령’ = 그 한 분 주님에게서 나와 역사하는 신적 작용

 

이렇게 이해합니다. 그래서 세 위격’이 아니라, ‘한 분 주님의 세 측면 또는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아주 단순하게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전통 설명으로는 한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있다’이지만, 스베덴보리 설명으로는 한 주님이 세 방식으로 나타나고 역사하신다’라고 말이지요.

 

여기서 다시 목사님 질문으로 돌아오면, ‘제3위격’이라는 말은 전통 신학에서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곧, ‘삼위일체 가운데 세 번째 위격’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위격’이라는 말 자체는 그냥 자리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적 주체’를 뜻합니다. 그래서 제3위격’이라고 하면, 단순히 순서가 세 번째라는 의미를 넘어서, ‘세 번째 인격적 주체’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위격이란 하나님 안에서 누구처럼 말해지고 관계되는 인격적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 인격적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표현입니다.’

 

 

 

AC.96, 심화 5, ‘올바른 삼위일체 축도’

AC.96.심화 5. ‘올바른 삼위일체 축도’ 저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 스베덴보리의 설명, 곧 ‘한 분 주님 안의 세 가지 인격적 나타나심’을 알고 나서는 그동안 오랜 세월 사용해 오던 개신교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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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6, 심화 3, ‘성령은 내적 감각?’

AC.96.심화 3. ‘성령은 내적 감각?’ 위 AC.96 해설 끝부분에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나 열정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내적 감각입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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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령은 내적 감각?

 

 AC.96 해설 끝부분에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나 열정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내적 감각입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런 설명은 특히 개신교인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할 것 같아요. 세 분 하나님 중 한 분인 성령 하나님을 감히... 하면서 말이죠.

 

 

그 반응, 충분히 예상되는 지점입니다. 특히 전통적인 개신교 신앙 안에서는 성령’이 성령 하나님(제3위격)’으로 확고히 이해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내적 감각’이라고 표현하면 격하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단순히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부정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가의 문제’로 풀어 주셔야 오해가 풀립니다.

 

핵심부터 분명히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는 성령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실제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전통 신학이 성령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성령의 신적 근원’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반면 스베덴보리는 그다음 질문,  그렇다면 그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실제로 작용하시는가?’를 끝까지 밀고 들어갑니다. 그 결과 나온 설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의 발출’, 그리고 그것이 인간 안에서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내적 감각’으로 경험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하나 있습니다. 전통 표현인 성령은 하나님이시다’라는 표현은 존재에 대한 선언인 반면, 스베덴보리 설명인 성령은 주님으로부터 나와 인간 안에서 역사하는 방식이다’라는 설명은 작용과 경험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즉, 둘은 서로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설명’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는 누구인가’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걸 조금 더 안전하게 풀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실까요? 스베덴보리는 그 역사하심이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선을 분별하고, 주님을 향해 마음이 움직이는 내적 감각으로 경험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성령 = 내적 감각’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내적 감각으로 경험된다’는 구조가 됩니다.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개신교 안에서도 사실 이와 유사한 경험 언어는 이미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다

 마음에 확신이 온다

 깨달음이 온다

 양심에 찔린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가 인간 안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부분을 더 정교하게, 더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 역사하심은 결국 우리가 진리를 분별하고 선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것을 내적 감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성령을 내적 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역사하심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실제로 경험되는지를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AC.96, 심화 4, ‘제3위격’

AC.96.심화 4. ‘제3위격’ 위 심화 3 설명 중 ‘제3위격’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 좀 부탁합니다. 특히 ‘위격’이라는 게 뭔가요? ‘삼위일체’ 할 때, 그 ‘위’ 같은 거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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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6, 심화 2, ‘요20:22’

AC.96.심화 2.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20:22)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ye the Holy Spirit (John 20:22). 이 구절은 Gospel of John 20:22로, AC.96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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