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1.심화

 

2. 그 안에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AC.41 그 안에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왜 이 두 가지가 함께 나오나요? 주님의 신성이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인가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함께 나오는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자체가 항상 이 두 가지, 곧 진리와 선, 이해와 의지를 함께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병렬 표현이 아니라, ‘생명의 구조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영적(spiritual)인 것은 주로 ‘진리, 신앙, 이해’에 속한 것을 가리키고, ‘천적(celestial)인 것은 ‘, 사랑, 의지’에 속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둘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짝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사랑 없이 살아 있을 수 없고, 사랑은 진리 없이 방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언제나 ‘‘진리로 비추고, 사랑으로 살게 하는 두 작용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AC.41의 문맥을 다시 보면, 사람의 ‘자기 것(proprium)은 생명이 없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반면, 주님에게서 오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안에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 하나가 아니라, 진리와 사랑이 함께 들어 있는 살아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영계에서는 ‘‘사람다운 형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 쪽의 구조가 아니라, ‘주님의 신성 자체에서 오는 질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 안에는 신적 선(Divine good)과 신적 진리(Divine truth)가 있으며, 이 둘이 완전히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거듭남을 통해 이 질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 안에서도 이 두 가지, 곧 사랑과 진리가 하나로 결합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상태’, 곧 인간다운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AC.41에서 이 표현이 나오는 것은 매우 의도적입니다. 단순히 ‘좋은 것이 들어 있다’가 아니라,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함께 들어 있다’, 즉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이 함께 작동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옳은 생각을 해도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좋은 감정을 가져도 그것 역시 방향 없는 것이 됩니다. 둘이 함께 있을 때만 비로소 생명이 됩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은 항상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깨닫게 하는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살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 둘이 함께 있을 때, 그것이 진짜 생명입니다.’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함께 나온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생명은 진리와 사랑, 이해와 의지가 결합된 상태로 온다는 뜻이며, 바로 그 결합이 사람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AC.41, 창1:20, ‘참된 생명의 근원 : 주님에게서 오는 것만이 살아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1:20) AC.41 사람의 본성(own, proprium)에 속한 것은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으며, 그것을 눈으로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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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 심화 1, ‘천사적 영’

AC.41.심화 1. ‘천사적 영’ AC.41에 ‘천사적 영’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이건... 그러니까 ‘천사’라는 건가요, ‘영’이라는 건가요? ‘‘천사적 영’(angelic spirit)은 ‘중간 존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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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심화

 

1. 천사적 영

 

AC.41 천사적 영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이건... 그러니까 천사라는 건가요, 이라는 건가요?

 

‘‘천사적 영(angelic spirit) 중간 존재가 아니라, ‘천국에 속한 영’,  천사와 같은 성질을 가진 영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존재의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존재를 어떤 관점에서 부르느냐의 차이’입니다.

 

제가 처음에 ‘천사도 아니고, 단순한 영도 아닌, 그 사이 상태’라고 말씀드린 것은 부정확했습니다. 그렇게 들으면, 마치 ‘천사’와 ‘’ 사이에 ‘3의 존재 계층이 따로 있는 것처럼’ 오해가 생깁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 체계에서는 그런 ‘중간 종(種)’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두 범주입니다. 하나는 ‘(spirits), 곧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태의 존재들이고, 다른 하나는 ‘천사(angels), 곧 천국에 정착된 상태의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천사적 영’은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존재의 종류가 아니라 상태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곧, 어떤 존재가 이미 선과 진리 안에 있어 천국에 속해 있고, 그 성질이 천사와 같을 때, 그러나 문맥상 ‘영적 존재로서의 작용’이 강조될 때, 그를 ‘천사적 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천사이면서도, 영적 존재로서 사람과 함께 작용하는 측면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조금 더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어떤 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어떤 때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존재가 다른 것이 아니라, 관계와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존재를 ‘천사’라고 부를 때는 그 ‘완성된 천국 상태’를 강조하는 것이고, ‘천사적 영’이라고 할 때는 그가 ‘영적 존재로서 작용하는 측면’, 특히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작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AC.41 문맥에서는 왜 ‘천사’가 아니라 ‘천사적 영’이라고 했느냐 하면, 거기서 말하는 것이 단순히 천국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종종 ‘영들’과 ‘천사들’을 함께 말하면서, 그중에서도 천국 쪽에 속한 존재들을 ‘천사적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그들이 ‘천국에 속했으면서도, 여전히 영적 교류의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입니다.

 

‘‘천사적 영은 별도의 중간 존재가 아니라, 천국에 속한 존재를 영적 작용의 관점에서 부른 이름이며, 본질적으로는 천사와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AC.41, 심화 2, ‘그 안에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AC.41.심화 2. ‘그 안에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AC.41에 ‘그 안에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왜 이 두 가지가 함께 나오나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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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 창1:20, ‘참된 생명의 근원 : 주님에게서 오는 것만이 살아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1:20) AC.41 사람의 본성(own, proprium)에 속한 것은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으며, 그것을 눈으로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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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0.심화

 

8. ‘2:18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2:18) And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beast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s of heaven, and with the moving thing of the ground (Hos. 2:18).

 

 

이 구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들짐승’, ‘공중의 새’, ‘땅의 곤충’(또는 기는 것들)이 단순한 동물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 안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생명 활동들, 곧 애정과 사유와 보다 외적인 생명의 작용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0은 창세기 1 20절의 물들은 생물을 내고 새들은 하늘을 날라’는 말씀을 해설하면서, 물고기와 새와 여러 생물들이 인간 안의 살아 있는 영적 기능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호세아 2 18절은 바로 그러한 상응을 한 구절 안에 함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주님께서 장차 들짐승과 새와 곤충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 동물들과 계약을 체결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언급되는 모든 생물들을 사람 안의 영적 요소들로 봅니다. ‘들짐승’은 의지와 애정에 속한 것들을, ‘공중의 새’는 이해와 사유에 속한 것들을, ‘땅의 곤충 또는 기는 것’은 보다 외적이고 자연적인 차원의 생명 활동들을 의미합니다.

 

특히 AC.40의 주제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공중의 새’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새를 이해력과 영적 사유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새들과 언약을 맺으신다는 것은, 사람의 이해와 사유가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고 그분의 평화 가운데 놓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을 통해 생각과 이해가 더 이상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주님의 진리에 의해 다스려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본문은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국가 간의 전쟁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사이에 벌어지던 영적 싸움이 주님의 승리로 평화를 얻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로 앞에 언급된 들짐승과 새와 기는 것들도 이제 서로 충돌하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창세기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의 창조가 지향하는 목표와도 연결됩니다. 물고기와 새와 짐승이 창조되는 것은 단순히 생명체의 출현이 아니라, 인간 안의 이해와 의지와 애정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그 살아난 기능들이 결국 주님의 언약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호세아 2 18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공중의 새’가 이해력과 영적 사유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러한 이해와 사유가 주님의 언약과 평화 안으로 들어가는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새와 짐승들이 단순한 자연계 생물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영적 기능들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인 것입니다.

 

 

 

AC.40, 창1:20, ‘지식과 지성이 살아나는 순간 : 물고기와 새로 나타나는 거듭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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