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4.심화

 

2. 선과 진리는 인간과 천국, 그리고 말씀 전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축

 

위 심화 1최하단 AC가 처음부터 끝까지 선과 진리를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천국과 말씀 전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축이기 때문입니다.’에 나오는, 그것이 인간과 천국과 말씀 전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축이기 때문’,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깊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을 한 번 제대로 붙들면 AC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결론을 먼저 또렷하게 말씀드리면, ‘‘선과 진리가 두 축이라는 말은, 존재하는 모든 것, 곧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 그것을 받아 사는 인간, 그리고 그것을 담아 놓은 말씀이 동일한 구조,  사랑(선)과 그 사랑을 드러내는 빛(진리)’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교리 항목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 자체’에 대한 설명입니다.

 

먼저 ‘주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 안에는 ‘신적 선(Divine good)과 신적 진리(Divine truth)’가 있으며, 이 둘은 분리된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면서도 구별되는 두 측면’입니다. 신적 선은 사랑 자체, 곧 ‘살리고자 하는 의지’이고, 신적 진리는 그 사랑이 드러나는 빛, 곧 ‘무엇이 옳은지 알게 하는 형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랑이 내용이고, 진리는 그 사랑의 표현과 질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에게서 무엇이 나오든, 그것은 항상 ‘사랑으로 살게 하고, 진리로 비추는 두 작용을 함께’ 가지고 나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이제 ‘천국’을 보면, 이 구조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천국은 단순히 장소가 아니라 ‘사랑과 진리로 이루어진 질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을 크게 ‘천적 천국(사랑 중심)’과 ‘영적 천국(진리 중심)’으로 나누지만, 실제로는 둘 다 항상 함께 있습니다. 천사들은 단순히 ‘많이 아는 존재’도 아니고, ‘많이 느끼는 존재’도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진리로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사랑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 나오는 생명감’입니다. 이 점에서 천국 자체가 이미 ‘두 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이제 ‘인간’을 보면, 동일한 구조가 더 분명해집니다. 인간은 스베덴보리 식으로 말하면 두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의지(will), 곧 사랑하고 원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understanding), 곧 알고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의지는 ‘’의 자리이고, 이해는 ‘진리’의 자리입니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이 둘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보려면, 그가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사랑하느냐(의지)’와 ‘무엇을 옳다고 보느냐(이해)’를 보면 됩니다. 이 둘이 분리되면 사람이 무너지고, 결합되면 사람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인간 자체가 이미 ‘선과 진리의 결합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보면, 이것이 왜 계속 ‘선과 진리’로 읽혀야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말씀은 단순한 역사나 교훈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담고 전달하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모든 부분에는 반드시 이 두 요소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건, 인물, 자연물로 보이지만, 속뜻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어떤 것은 선을, 어떤 것은 진리를, 혹은 그 결합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같은 구절이라도 한쪽은 사랑의 측면에서, 한쪽은 진리의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고, 두 해석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계속해서 같은 구조로 풀어가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통찰이 나옵니다. ‘왜 이것이 두 축인가?’ 그것은 이것이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생명이 작동하는 최소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만 있고 진리가 없으면, 그것은 방향 없는 열정이 됩니다. 진리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차갑고 움직이지 않는 지식이 됩니다. 그러나 이 둘이 결합되면,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존재, 곧 생명’이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도 계속 말합니다. ‘사랑과 신앙’, ‘의지와 이해’, ‘행함과 들음’ 등, 전부 같은 구조입니다. 이름만 다를 뿐, ‘생명의 이중 구조’를 반복해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은 진리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천국은 그 사랑과 진리가 하나 된 곳이고, 인간은 그것을 받아 사는 존재이며, 말씀은 그것을 담아 전달하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가 결국 사랑과 진리 이야기입니다.’

 

‘‘선과 진리는 하나의 무슨 교리 주제가 아니라, 주님, 천국, 인간, 말씀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의 기본 구조이기 때문에, AC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두 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AC.44, 심화 1, ‘처음부터 끝까지 선, 진리 얘기만’

AC.44.심화 1. ‘처음부터 끝까지 선, 진리 얘기만’ 이 질문은 너무 초보스러워서 오히려 창피하기까지 한데요... 이 AC.44에도 ‘선과 진리’, ‘이해와 의지’, ‘들음과 행함’의 구도가 여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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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심화

 

1. 처음부터 끝까지 선, 진리 얘기만

 

이 질문은 너무 초보스러워서 오히려 창피하기까지 한데요...  AC.44에도 선과 진리’, 이해와 의지’, 들음과 행함의 구도가 여전하네요... 전에 어느 나이 드신 여 목사님에게 이 AC 1권 리딩을 권했더니, 좀 보시다가 하시는 말씀, 무슨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선, , , 진리, 진리, 진리 얘기만 하느냐시며 더는 안 읽으시더군요... 개신교 목사님조차 이러시니 일반 교인들은... 도대체 왜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관점으로만 말하는 건가요?

 

목사님, 이 질문은 전혀 초보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AC 전체를 이해하는 ‘문을 여는 질문’입니다. 그 여 목사님의 반응도 사실 매우 자연스럽고, 많은 분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끝까지 선과 진리 얘기만 하느냐?’라는, 이 질문에 답이 되면, 스베덴보리가 왜 그렇게 썼는지도 동시에 풀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요소인 선과 진리, 그러니까 의지와 이해를 계속 다른 각도에서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반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영적 현실을 설명하는 두 개의 축을 계속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필 이 두 가지냐가 핵심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원하는가(의지, 선)’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는가(이해, 진리)’입니다. 사람의 모든 삶은 이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행동도, 선택도, 신앙도, 심지어 기쁨과 고통도 다 이 두 축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설명할 때, 이 둘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걸 조금 더 현실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아무리 많은 진리를 알고 있어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좋은 마음은 있어도, 무엇이 옳은지 모르면 방향 없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선만 있어도 안 되고, 진리만 있어도 안 됩니다.’ 이 둘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삶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계속해서 ‘선과 진리’, ‘의지와 이해’, ‘사랑과 신앙’, ‘행함과 들음’을 반복합니다. 다 다른 말 같지만, 사실은 ‘같은 구조를 다른 언어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반복하느냐 하면, 우리가 평소에는 이 둘을 하나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나는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은 전혀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착하게 산다’고 하지만, 진리에 대한 이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분리된 상태’를 깨뜨리고, ‘‘이 둘은 반드시 하나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반복은 단순한 강조가 아니라, ‘계속 다른 본문, 다른 상황, 다른 상징 속에서 같은 원리를 확인시키는 작업’입니다. 창세기 1장의 빛, 물, 땅, 식물, 광명체 등, 이 모든 것도 사실은 전부 이 구조로 풀립니다. 처음에는 진리가 주어지고(빛), 그다음 구별이 생기고(궁창), 그다음 삶으로 나오고(식물), 그다음 그것이 빛으로 작동합니다(광명체). 전부 선과 진리의 관계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보통 ‘믿음’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행함’은 그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과 진리’라는 이중 구조가 계속 반복되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처음부터 ‘신앙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구조적으로 하나로 묶어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것이 ‘여러 주제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주제의 뿌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설명하는 두 가지, 곧 선과 진리를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AC가 처음부터 끝까지 선과 진리를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천국과 말씀 전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반복이 아니라,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AC.44, 심화 2, ‘선과 진리’는 인간과 천국, 그리고 말씀 전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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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 창1:24-25, ‘지식에서 생명으로 : 이해와 의지가 하나 될 때 나타나는 참된 신앙’(AC.44-48)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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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심화

 

2. (blessing)

 

AC.43 본문 중 말씀에서 주님의 축복(blessing)은 열매 맺음과 번성을 뜻하는데에 나오는 (blessing)에 대해 조금만 더 와닿게 설명해 주세요.

 

AC.43에서 말하는 ‘(blessing)을 제대로 이해하면, 말씀 전체에서 ‘’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론부터 또렷하게 말씀드리면, ‘말씀에서 은 단순히 무엇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자라나도록 하시는 주님의 작용’, 곧 선과 진리가 계속 열매 맺고 번성하도록 하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은 건강, 형통, 보호, 성공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것들을 본질적인 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 안의 생명과 직접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말하는 복은 훨씬 깊어서,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가 실제로 자라고,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AC.43에서는 복을 설명하면서 바로 ‘열매 맺음’과 ‘번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이 복의 본체입니다.

 

이걸 조금 더 와닿게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작은 진리를 하나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남을 진심으로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아직 ‘씨앗’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복이 그 안에 작용하면, 이 하나의 생각이 그대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점점 ‘행동으로 이어지고, 습관이 되고, 더 깊은 이해로 확장되며, 다른 선과 진리들과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 안에 ‘여러 가지 선한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열매 맺음’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계속 이어지고 확장되는 것이 ‘번성’입니다.

 

그래서 복은 ‘하나 더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는 작용’입니다. 그리고 이 증가는 외적인 양이 아니라, ‘내적인 생명의 확장’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그대로 있고, 어떤 사람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 차이가 바로 ‘복이 작용하는가’의 차이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복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은 씨앗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실제로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복을 받는다’는 말은, ‘주님이 그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를 자라게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복은 무엇을 더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있는 좋은 것이 계속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이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를 끊임없이 자라나게 하여 열매 맺고 번성하게 하는 작용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도 단순한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영적 생명의 확장에 대한 선언’입니다.

 

 

 

AC.43, 창1:22-23, ‘살아 있는 생명의 증식 : 사랑의 열매와 신앙의 번성’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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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 심화 1, ‘놀라울’(amazing)

AC.43.심화 1. ‘놀라울’(amazing) AC.43 본문 중, ‘이것은 사람이 육신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삶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그러합니다’(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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