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8.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이 각각의 후손이 실제로는 몇백, 몇천,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을까요?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각 후손 사이에 실제로 몇백 년, 몇천 년, 혹은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AC.194에서 ‘세 번째 후손’을, AC.208에서 ‘네 번째 후손’을 언급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이 서로 얼마만큼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존재했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연대기보다 영적 상태의 변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재까지 확인한 본문들 가운데는 ‘세 번째 후손과 네 번째 후손 사이에는 몇 년이 흘렀다’거나, ‘첫 번째 후손부터 네 번째 후손까지는 몇 세기에 걸친 변화였다’는 식의 진술이 없습니다. 따라서 AC 본문만으로는 수백 년인지, 수천 년인지, 혹은 그보다 더 긴 기간인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추론은 가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인류 최초의 교회로 설명하며, 그 쇠퇴 또한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이었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또한 창3:1-6의 몇 절 속에 세 번째 후손과 네 번째 후손이라는 서로 다른 후손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스베덴보리의 눈에는 창세기 본문이 단순한 하루의 사건 기록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영적 역사를 압축한 기록으로 보였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 세대’라는 말이 곧 ‘수천 년’이나 ‘수만 년’을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몇십 년’에 불과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AC 본문은 그 어느 쪽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질문에 대한 현재의 가장 안전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 번째 후손과 네 번째 후손의 존재는 AC.194 AC.208을 통해 확인되지만, 그들 사이의 실제 시간 간격은 스베덴보리는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수백 년인지 수천 년인지 수만 년인지는 알 수 없으며, 현재로서는 추정의 영역에 속한다.’

 

어쩌면 여기서도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시간적 거리보다 영적 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가’보다, ‘주님으로부터 직접 지각하던 상태가 어떻게 감각과 자기 판단을 신뢰하는 상태로 변해갔는가’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정직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후손들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AC 본문은 그 기간을 알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영적 상태의 변화는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을 연대기적 숫자로 환산할 수는 없다.’ 이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AC 자료에 가장 충실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AC.208, 심화 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AC.208.심화 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스베덴보리 본인도 학자였으면서 천국을 왕래하며 어떻게 이런 걸 일절 다루질 않았을까요? 마치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천국은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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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8, 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AC.208.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었는데,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C.208) 각 후손이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지? 현재까지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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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8.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었는데,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C.208)

 

각 후손이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지?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각 후손이 정확히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가?’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AC.194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3:1을 해설하면서 ‘여기서는 태고교회의 세 번째 후손(the third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이 다루어진다’고 직접 말합니다. 따라서 세 번째 후손은 적어도 창3:1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AC.208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3:6을 해설하면서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네 번째 후손은 적어도 창3:6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입니다. 앞서 우리가 확인했듯이 AC.190의 ‘첫 번째 상태’, ‘두 번째 상태’, ‘세 번째 상태’를 그대로 ‘첫 번째 후손’, ‘두 번째 후손’, ‘세 번째 후손’으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state(상태)와 posterity(후손)를 서로 다른 범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읽은 AC.67-208 범위 안에서 본다면, 우리는 ‘세 번째 후손 = 3:1’, ‘네 번째 후손 = 3:6’은 확인할 수 있지만, ‘첫 번째 후손 = 2 몇 절’, ‘두 번째 후손 = 2 몇 절’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정직한 정리는 이렇습니다. 스베덴보리는 AC.194에서 이미 세 번째 후손을 언급하므로, 첫 번째와 두 번째 후손은 반드시 그 이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창2:7인지, 창2:8인지, 창2 전체의 어느 구간인지, 혹은 AC.67 이후의 어느 상태에 해당하는지는 AC 본문 속에서 직접 확인해야 하며,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질문에 대한 현재의 가장 안전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 번째 후손은 창3:1에서 시작하며(AC.194), 네 번째 후손은 창3:6에서 시작한다(AC.208). 그러나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의 시작 지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그것을 AC.190의 첫째, 둘째 상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검토한 결과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는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AC.209 이하를 계속 읽다 보면, 또는 AC.67-193 구간을 다시 추적하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first posterity, second posterity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아는 것’과 ‘추정하는 것’을 구분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입니다.

 

 

 

AC.208, 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AC.208.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이 각각의 후손이 실제로는 몇백, 몇천,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을까요?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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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8, 창3:6,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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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3:6)

 

AC.208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었는데, 자기 사랑(self-love, [amor proprius])에 스스로를 미혹되도록 내어주었으며, 감각과 기억 지식에 속한 것들로 확증되는 걸 보지 않는 한, 계시된 걸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o suffered themselves to be seduced by self-love [amore proprio] and were unwilling to believe what was revealed, unless they saw it confirmed by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해설

 

AC.208은 창세기 3장의 타락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태고교회 안에서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진행된 영적 쇠퇴의 결과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특별히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창세기 3장이 인류 최초의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본래의 순수한 상태를 잃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자기 사랑(amore proprio)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자기 사랑은 단순한 자존감이나 자기 보존 본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보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사랑이며, 진리가 참인 이유를 주님께 두지 않고 자기 판단에 두는 상태입니다. 태고교회의 초기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각(perception)을 통해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자기 own이 강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지각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시된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계시 자체를 전면 부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런가?’, ‘내가 직접 납득할 수 있는가?’, ‘감각과 경험, 지식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3에서 뱀이 제안한 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감각의 것들(the things of sense)과 ‘기억 지식의 것들(the things of memory-knowledge)을 함께 언급합니다. 감각의 것들, 곧 감각에 속한 것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외적 경험을 말합니다. 기억 지식(scientificum)은 인간이 축적한 학문, 논리, 정보, 경험 등을 말합니다. 이 둘은 본래 유익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신앙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은 더 이상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참이다’라고 하지 않고, ‘내가 확인했기 때문에 참이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AC.208은 따라서 창3 전체의 핵심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타락의 본질은 선악과를 먹었다는 외적 행위가 아니라, 자기 사랑이 주님에 대한 신뢰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은 계시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감각과 기억 지식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문제를 ‘지식이 많음’에서 찾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는 학문과 이성을 높이 평가합니다. 문제는 지식을 사용하는 위치입니다. 진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은 영적 인간의 길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은 창3의 길입니다.

 

결국 AC.208은 태고교회 네 번째 후손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동시에, 오늘날 인간이 빠지기 쉬운 영적 위험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믿기 위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바로 그 지점에서 자기 own은 조용히 주님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AC.208, 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AC.208.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었는데,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C.208) 각 후손이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지? 현재까지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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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AC.208, 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AC.208.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이 각각의 후손이 실제로는 몇백, 몇천,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을까요?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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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AC.208, 심화 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AC.208.심화 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스베덴보리 본인도 학자였으면서 천국을 왕래하며 어떻게 이런 걸 일절 다루질 않았을까요? 마치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천국은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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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9, 창3:6, ‘창3의 표현들이 의지, 애정의 언어들인 이유’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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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7,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AC.207-2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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