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0.심화
1. ‘그저 악과 거짓이 될 뿐’(become mere evil and falsity)
사람은 이렇게 함으로써 그저 악과 거짓이 될 뿐이며, In this way men become mere evil and falsity, (AC.210)
이 문장은 처음 읽으면 매우 충격적으로 들립니다. 마치 스베덴보리가 인간 안에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인간 존재 자체를 정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주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 곧 own 안에만 머무는 인간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장의 앞부분에 있는 ‘이렇게 함으로써’(In this way)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갑자기 악과 거짓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앞에서 그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중심에 두고,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며,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시작하면, 사람은 점차 모든 것을 자기 own의 관점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은 악과 거짓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은 사랑의 왜곡을 의미하고, ‘거짓’은 이해의 왜곡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왜곡되면 악이 되고, 이해가 왜곡되면 거짓이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인간 안의 의지와 이해가 모두 own에 의해 지배될 때, 사람 전체가 악과 거짓의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표현은 인간에게서 주님께 속한 것을 제거하고 생각해 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인간 안에 있는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인간 안에 있는 모든 진리도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만일 사람이 그것들을 모두 자기 것으로 돌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거부한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바로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나오는 악과 거짓뿐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AC.210의 이 문장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생명과 진리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달과 같아서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받아 비추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달이 태양과의 연결을 끊고 자기 스스로 빛을 내겠다고 하면 결국 어둠만 남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그런 상태를 ‘그저 악과 거짓일 뿐’(mere evil and falsity)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말은 동시에 주님의 자비를 더욱 크게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힘으로 선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희망은 자기 own에 있지 않고, 주님께 있습니다. AC.210의 강한 표현은 인간을 절망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인간이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한 말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사람은 그저 악과 거짓이 될 뿐입니다’라는 말은 ‘인간은 본래 쓸모없는 존재다’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분리된 own만 남게 되면, 결국 악과 거짓밖에 남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의도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인간의 own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주님의 인플럭스와 자비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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