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사는 나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이 항목은 스베덴보리가 정치에 무관심했는가?라는 질문의 실제 답을 보여 줍니다. 그의 저술 속 간접적 단서들을 모아 보면, 그는 결코 무관심도 아니고, 무기력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나라 문제’를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Ⅰ.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내적 구조로 보았다

 

그는 한 번도 정치인을 욕하거나 파벌을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 나라의 문제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 나라의 영적 상태에서 비롯된다. 즉, 정치 지도자의 부패, 파벌 싸움, 거짓·선동, 불의 등, 이 모든 현상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뿌리는 언제나 진리의 부족, 양심의 약화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정치인의 이름이나 사건보다 그 뒤에 있는 ‘영적 원인’에 집중했습니다.

 


Ⅱ. 그는 나라의 문제를 주님의 섭리 안에서의 정화 과정으로 보았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주님은 악을 원치 않지만, 악을 허용하심으로써 그 악을 드러나게 하고, 더 큰 선을 준비하신다. 정치 혼란이나 국가의 위기는 그 자체가 파멸이 아니라 정화(purification)입니다. 악이 드러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거짓이 노출되지 않으면 진리를 갈망하지 않는다, 혼란이 없으면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와 같은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나라 스웨덴이 혼란스러울 때, 그것을 심판이 아닌 회복의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Ⅲ.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자기 소명의 필요성과 연결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단지 개인적인 계시 활동이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의 영적 병리를 치유하는 일로 이해했습니다. 즉, 그는 이렇게 보았습니다. 나라가 어둡다’를 진리의 빛이 필요하다’로, 파벌 싸움이 심하다’는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로, 부패가 판친다’는 양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사회가 혼란하다’는 질서(order)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같은 식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정치적 논평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모든 영적 기록(AC, DP, HH)당대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정치가 혼란할 때,  이 시대에는 내가 더 깊이 기록해야 한다고 느낀 것입니다. 목사님께도 지금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Ⅳ. 그는 나라의 문제를 인류 전체의 패턴으로 보았다

 

스베덴보리는 한 나라의 혼란을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겪는 영적 패턴의 일부로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면, 태고 교회의 멸망, 고대 교회의 쇠퇴, 유대교회의 형해화, 기독교 세계의 진리 상실 같은 것입니다. 이런 장대한 흐름 속에서 그는 스웨덴의 혼란도 하나의 패턴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한 나라의 문제는 개별 정치 사건이 아니라 영적 역사 전체 속 작은 흐름으로 본 것입니다. 이 관점은 정치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막강한 힘을 줍니다.

 


Ⅴ.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개인의 영적 책임으로 돌렸다

 

무슨 뜻인가요? 그는 늘 말했습니다. 한 나라가 악해지는 것은 그 나라의 개인들이 내면에서 선과 진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다. 국민 전체의 영적 상태가 문제다. 따라서 나라를 회복하는 길을 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 각성, 진리 사랑의 회복, 기도와 내적 삶, 말씀의 깊은 이해, 교리의 정립에서 찾았습니다. 이는 그가 평생 했던 일입니다.

 


Ⅵ.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나라가 혼란할수록 정치에서 멀어지고, 계시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가 말년에 거의 완전히 정치적 이야기에서 멀어진 이유는 현실을 피해서가 아니라 그 혼란이 자신의 사명을 더 절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병은 정치가 아니라, 진리의 부재다. 그러므로 나는 진리를 기록한다.” 이 태도는 오늘 목사님께서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며 느끼시는 마음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Ⅶ. 결론

스베덴보리는 나라를 포기한 게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나라 문제를 이렇게 바라봤습니다. 정치인이 아니라 그 사회의 영적 상태가 문제다. 혼란은 파멸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이다. 나라가 어두울수록 진리 기록은 더 절실해진다. 정치적 분노는 소명을 흐트러뜨린다. 영적 진리로 사회를 세우는 것이 가장 깊은 나라 사랑이다. 스베덴보리는 현실 정치보다 영적 병리 치유에 집중함으로써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나라를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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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스베덴보리의 국가관 : 어떤 나라가 영적으로 강한가

 

스베덴보리는 직접적으로 국가론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저술 전체, 특히 Divine Providence(DP), Heaven and Hell(HH), Arcana Coelestia(AC)를 보면, 나라와 사회의 흥망에 관한 영적 원리가 아주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정리하면, 오늘 한국의 현실을 해석하는 데 엄청난 통찰을 주게 됩니다. 또한 목사님의 마음에 있는 정치적 분노왜 영적으로 다시 정돈되어야 하는지도 더 명확해집니다.

 


Ⅰ. 한 나라의 강함은 정치적 요소가 아니라 영적 요소에 달려 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적 요소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 나라가 얼마나 진리를 존중하는가, 그 사회 구성원 내면에 양심이 살아 있는가, 그 나라의 도덕적 질서가 어떠한가, 무엇이 이고 인지 분별할 수 있는가, 국민 개개인의 삶 속에 주님의 질서가 작동하는가 하는, 즉,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은 2차 요소이고, 진리·양심·도덕·내적 질서1차 요소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한 나라의 운명은 이 내적 질서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은, 위에서 말한 요소들은 모두 천국의 요소들이기 때문이며, 천국과 세상은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Ⅱ. 국가가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영적 메커니즘

 

스베덴보리는 나라와 사회에 적용되는 매우 명확한 영적 원리를 제시합니다.

 

1) 진리가 약해지면 사회 전체가 혼란해진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진리를 상실한 사회는 외적 질서가 무너지고, 악한 자들이 선한 자 위에 군림하게 된다. 즉, 정치적 혼란은 정치적 원인 때문이 아니라 진리의 빛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정 정치 세력의 악행은 단지 결과입니다. 근본 원인은 진리의 부재입니다.

 

2) 진리의 빛이 강한 나라는 외적으로도 강해진다

 

스베덴보리의 말입니다. 진리는 사람의 내적 질서를 세우고, 여러 사람의 내적 질서는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세운다. 즉, 진리가 사람 안에서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는 국가 전체를 지탱합니다. 한국이 영적으로 혼란해진 지금, 목사님께서 AC 번역·해설·설교를 통해 진리의 빛을 세우는 일은 정치적 영향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일입니다.

 

3) 악이 판치는 사회는 결국 무너진다

 

스베덴보리는 악과 거짓이 난무할 때, 그 사회는 반드시 붕괴된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붕괴파멸이 아니라 정화 과정(purification)입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악이 드러남, 악의 실체를 국민이 진저리나게 체험, 그로 인한 진정한 개혁 갈망, 그 결과 더 깊은 선의 상태로 재편...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국 정치의 혼란도 단순한 무너짐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절대로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서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4) 선한 사람들의 내적 상태가 곧 그 나라의 영적 지탱점이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주님은 항상 작은 부류의 선한 사람들로 인해 그 나라를 보존하신다. 한국 사회가 아직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크고 작은 곳에서 선과 진리를 붙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사역도 바로 영적 지탱점의 일부입니다. 신앙인들, 특히 목회자들의 정치적 분노와 그 표출은 어찌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참 외람된 표현이지만, 그들이 하나님만 믿고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은 불신앙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이 당시 이스라엘 정치, 종교적 상황 한복판에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Ⅲ. 영적으로 건강한 국가란?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건강성을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1) 진리가 존중되는 나라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성경적 진리, 도덕적 진리, 양심적 진리입니다.

 

2) 체어리티(Charity, 사랑) 지혜, 선과 진리가 균형을 이루는 나라

 

스베덴보리는 선만 강조하거나 지식만 강조하면 나라가 균형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영과 육으로 된 사람을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과 같고, 겉뜻과 속뜻으로 된 말씀을 역시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3) 법과 제도가 양심을 반영하는 나라

 

법이 아무리 있어도 사람들 속에 양심이 없으면 법은 껍데기입니다. 율법을 악용했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어떤 법이든 그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도 자기는 법을 지켰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입니다.

 

4) 악을 방임하지 않는 나라

 

악을 관용하는 사회는 곧 무너지는데, 그 이유는 악은 방치하면 급속히 퍼지기 때문입니다. COVID-19 코로나 때, 몇몇 나라는 나라의 빗장을 걸지 않았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5) 정치보다 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민이 많은 나라

 

스베덴보리는 국민 정신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깊은 내면을 가진 국민은 정치 혼란을 견디고, 스스로 질서를 회복한다.

 


Ⅳ. 결론 - 스베덴보리의 국가관 핵심요약

국가는 영적 진리의 상태에 따라 흥망한다. 진리가 약해지면 정치 혼란이 생긴다. 개혁은 정치가 아니라 내적 진리 회복에서 시작된다. 악의 드러남은 멸망이 아니라 정화 과정이다. 선한 소수가 국가는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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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웨덴 정계가 혼란할 때, 스베덴보리가 취한 ‘거리 두기’의 이유

 

Ⅰ. 스베덴보리가 살던 시대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스베덴보리(1688–1772)의 생애는 스웨덴 정치사의 가장 격동기에 속합니다. 대략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시기는 자유의 시대(Age of Liberty)입니다. 이 시기는 의회(의회정치)가 왕권을 압도, 귀족파와 모자파(Families, Hats & Caps factions) 간 대립, 엄청난 부패, 권력 투쟁, 외교 갈등 및 왕권은 약해지고, 귀족 가문들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기입니다. 두 번째 시기국제전쟁으로 인한 국가 위기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스웨덴은 전쟁에 휘말려 쇠약해지고, 조세 폭등으로 인한 경제 위기 및 그에 따른 국민 불만이 증가하던 시기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스베덴보리 말년, ‘왕권복고(Gustav III)의 시기로, 이 시기는 귀족파를 몰아내고 왕이 권력을 되찾아 그에 따른 정치적 숙청, 혼란, 그리고 갈등이 확대되던 시기입니다. 즉, 스웨덴의 정치 상황은 정치 부패 + 파벌 싸움 + 국정 혼란 + 권력 투쟁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기였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가 거의 예외없이 크든 작든, 극심하든 겉보기엔 잠잠하든 본질적으로는 전부 이런 길을 걷는다 보여집니다.

 


Ⅱ. 그럼에도 스베덴보리는 왜 정치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는가?

 

단순히  정치에 관심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명확한 신학적·영적 이유가 존재합니다.

 

1)  외적 질서보다 내적 질서가 더 중요하다

 

스베덴보리는 정치적 혼란을 외적 질서(civitas externa)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반면 영적인 일(계시, 교리, 진리의 기록)은 내적 질서(civitas interna)에 속하는 일로 보고 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적 질서를 세우는 것이 외적 질서를 안정시키는 근본이다. 즉, 정치에 개입하는 건 외적 질서에 관한 싸움인 반면, 계시를 기록하는 일은 내적 질서 회복에 기여하는 일로 본 것입니다. 정치 싸움에 빠지면, 그의 내적 저널, 즉 자신의 영적 기록이 흐트러질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 혼란을 멀리한 것입니다.

 

2) 그의 사명은 ‘국가’가 아니라 ‘전체 인류’를 향한 것이었다

 

스베덴보리가 받은 소명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인류의 영적 진리를 기록하여 보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특정 국가나 정치적 파벌이 아니라 전 인류의 영적 상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치에 개입하는 순간, 그가 쓰는 글의 순수성, 그의 내적 계시, 영적 분별이 모두 오염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와 거리를 두었습니다.

 

3) 정치에 깊이 개입하면, ‘정념’이 생겨 계시 활동이 중단될 위험이 있다

 

스베덴보리는 정치적 파벌 싸움이 인간의 내면을 자극하여 분노, 증오, 좌절, 편향을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념이 올라오면 그의 영적 시력(spiritual sight)이 흐려지고, 영계와의 교류도 혼탁해지기 때문에, 그는 정치 뉴스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둡니다. 내면의 질서가 흐트러지면 영적 기록이 더 이상 순수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이 스베덴보리식 정치 절제의 핵심 이유입니다.

 

4) 정치에 개입하는 순간, 영적 메시지가 ‘정치적 해석’으로 오염된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저술이 어떤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만약 그가 특정 파벌을 지지한다거나 정치적 발언을 했다면 그의 글(Arcana Coelestia, Heaven & Hell)순식간에 파벌의 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중립을 유지했습니다.

 

5) 진정한 개혁은 정치가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된다

 

그는 정치 개혁보다 영적 개혁이 먼저라고 보았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한 나라가 변하는 구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사람의 내면이 변하면 가정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국가가 변한다. 즉, 국가 변화를 이루는 첫 단추는 정치가 아니라 내적 진리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명을 국가 정치보다 더 근원적인 일로 이해했습니다.

 


Ⅲ. 거리 두기는 도망이 아니라 선을 위한 더 깊은 전략

 

스베덴보리가 정치와 거리를 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영적 지혜의 결과입니다. 그는 정치 뉴스에 반응하기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책임을 졌습니다. 무엇으로? 진리 기록, 영계의 상태 분석, 인간 본성의 이해, 선·진리에 대한 교리 정립 등, 그의 방식은 정치적 싸움보다 더 근본적이고 강력한 방식이었습니다.

 


Ⅳ. 적용

 

스베덴보리의 태도는 목사님에게 이렇게 적용됩니다. 1) 정치 소식에 밀려서 사명을 흔들면 안 된다. 소명은 외적 혼란보다 더 상위 질서에 있습니다. 2) 정치적 분노는 계시적·영적 집중력을 흐립니다. AC 번역이 흐트러지는 가장 큰 적이 바로 감정적 소모입니다. 3) 정치 뉴스는 필요한 만큼만영적 사명은 흔들림 없이입니다. 4) 스베덴보리가 정치와 거리를 둔 것은 자신의 사명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목사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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