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창3:24)
AC.285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후손에 대하여. 이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기억 지식(memory-knowledge)마저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의 더럽고 추한 사랑과 그릇된 확신(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속에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신앙의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않도록 하시려는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이것을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해설
AC.285는 태고교회 후손들의 영적 쇠퇴가 마침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앞선 AC.284에서는 다섯 번째 후손이 모든 선과 진리를 잃고 거듭나기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후손에 이르러서는 그보다 더 심각한 상태에 빠집니다. 그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기억 지식마저 잃어버리고, 오직 자기 사랑과 거짓된 확신 속에서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뜻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기억 지식을 사람이 배우고 기억하는 모든 외적 진리와 지식 저장소로 설명합니다. 말씀의 내용, 신앙의 교리, 선과 악의 구별, 하나님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기억 지식은 거듭남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바탕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사람의 기억 속에 진리를 심으시고, 그것을 통하여 점차 그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후손은 이러한 기억 지식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경을 잊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선과 진리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존중마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모든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욕망과 자기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더럽고 추한 사랑과 그릇된 확신’ 속에 남겨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더럽고 추한 사랑’(filthy loves)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을 돌보는 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과 심지어 주님까지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랑입니다. 또한 ‘그릇된 확신’(persuasions)은 거짓을 단순히 믿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리 진리가 제시되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굳어진 거짓된 신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사람의 rational까지 지배, 거짓을 진리처럼 보이게 만들고, 악을 선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러한 상태조차도 주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다고 설명하는 점입니다. 그는 ‘이것은 그들이 신앙의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지 않도록 하시려는 주님의 섭리였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진리를 주시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알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모독(profanation)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룩한 진리를 충분히 알고 인정한 뒤, 그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악과 결합시키면, 단순히 무지한 상태보다 훨씬 더 깊은 영적 파괴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한 것을 때로는 알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더 큰 멸망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이러한 보호를 창3:24에서는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로 나타냅니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죄인을 막아 세우시는 심판의 장면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 그룹은 심판의 상징이 아니라 보호의 상징입니다. 그룹은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존재입니다. 또한 ‘두루 도는 불칼’은 거룩한 진리를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신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천국에서 쫓아내시는 장면이 아니라, 사람을 모독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하여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시는 장면입니다.
AC.285는 태고교회의 마지막 후손들이 가장 낮은 영적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주님의 자비가 그곳에서도 여전히 역사하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은 선과 진리를 잃고, 자기 사랑과 거짓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까지도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한 것을 억지로 주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것을 보호하심으로써 장차 다시 회복될 가능성을 남겨 두십니다. 그러므로 창3:24의 그룹과 불칼은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보여주는 마지막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화
1. ‘filthy loves’
AC.285, 심화 1, ‘filthy loves’
AC.285.심화 1. ‘filthy loves’ AC.285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마지막 후손들이 ‘자기 자신의 더럽고 추한 사랑’(filthy loves) 속에 남겨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더럽다’(filthy)는 단순히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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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ersuasions’
AC.285, 심화 2, ‘persuasions’
AC.285.심화 2. ‘persuasions’ AC.285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마지막 후손들이 ‘더럽고 추한 사랑’(filthy loves)과 ‘그릇된 확신’(persuasions) 속에 남겨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persuasions’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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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4, 창3:20-24, ‘창3:23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창3:23) AC.284 다섯 번째 후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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