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4.심화

 

5. 아르카나가 없는 성경을 천사들이 읽을 때

 

그럼 아르카나가 없다 알려진 성경들, 곧 구약 룻기’, 역대서’, 욥기 등이나 신약 사도들의 서신서 등을 천사들이 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그러니까 천사들한테는 어떻게 보이나요? 읽을 수는 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르카나(전면적인 속뜻의 연속 구조)가 없는 책들—예를 들면, ‘룻기’, ‘역대서’, ‘욥기’, 사도 서신들—도 천사들이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말씀을 읽을 때처럼’ 하늘과 직접 연결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즉, 읽히기는 하나 ‘같은 층위의 작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구분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사들이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방식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의미’입니다. 인간이 글자를 읽으면, 그 안의 의미가 즉시 영적 의미로 변환되어 천사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런데 이때 ‘말씀’은 특별합니다. 그 이유는 그 문자 안에 ‘연속적인 속뜻(내적 의미)의 구조’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읽을 때, 그 흐름이 그대로 천국까지 이어지고, 천사들은 그에 상응하는 깊은 진리를 즉시 지각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고유한 성격입니다.

 

그런데 ‘룻기’, ‘욥기’, 사도 서신 등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 안에도 물론 선한 내용, 진리, 교훈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읽고 이해하면, 그 ‘의미’ 자체는 천사들에게 전달됩니다. 예를 들어 사랑, 인내, 신앙, 섭리 같은 내용은 천사들도 분명히 인식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씀’처럼 한 절 한 절, 단어 하나하나까지 천국과 직접 연결된 상응 구조를 따라 깊은 속뜻으로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차이를 이렇게 정리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말씀’은 읽는 순간 그 문자 자체가 하늘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가 되고, ‘아르카나가 없는 책들’은 그 내용의 의미가 천사들에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통로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구조적으로 연결된 텍스트’이고, 후자는 ‘내용적으로 유익한 텍스트’입니다.

 

이걸 조금 더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창세기나 복음서를 읽으면, 그 안의 표현 하나하나가 천사들에게는 영적 의미로 살아 움직이며, 그 흐름이 그대로 천국과 연결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사도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 그 안의 ‘신앙’, ‘사랑’, ‘’, ‘구원’ 같은 내용은 천사들에게 전달되어 기쁨과 공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텍스트 자체가 동일한 방식으로 ‘속뜻의 연속 구조’를 펼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읽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 의미를 통해 읽는다’가 답이고,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질문에는 ‘내용은 이해되지만, 말씀처럼 깊은 상응 구조로 열리지는 않는다’가 답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목회적 균형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책은 쓸모 있고, 어떤 책은 쓸모 없다’는 구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각 책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주님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이고, 다른 성경책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도록 돕는 교훈과 증언’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둘 다 필요하지만, 기능이 다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아르카나가 없는 성경도 천사들에게 의미로 전달되지만, 말씀처럼 문자 자체가 천국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AC.64, 심화 4, ‘말씀’(the Word)

AC.64.심화 4. ‘말씀’(the Word) AC를 보면, 보통, 아니 거의 ‘말씀’(the Word)이라고 하네요. ‘성경’이라 하지 않고 말입니다. 저 역시 ‘성경’ 66권 중 아르카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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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말씀(the Word)

 

AC를 보면, 보통, 아니 거의 말씀(the Word)이라고 하네요. 성경이라 하지 않고 말입니다. 저 역시 성경 66권 중 아르카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의도적으로 성경보다는 말씀을 쓰고 있습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C에서 ‘성경’ 대신 ‘말씀(the Word)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용어 선택이 아니라, ‘그 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책의 외형과 범위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말씀’은 ‘그 안에 실제로 주님이 임재하시고, 속뜻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신적 진리의 그릇’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의도적으로 거의 항상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왜 ‘성경’이라는 표현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지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거룩한 책들의 집합’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AC의 관점에서는 모든 성경 66권이 동일한 방식으로 ‘주님과 직접 연결된 말씀’인 것은 아닙니다. 즉, 어떤 책들은 역사적, 교훈적 가치가 큰 반면, ‘속뜻이 전면적으로 연결된 구조’, 곧 주님과 천국과 직접적으로 상응하는 구조를 가진 책들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말씀’이라는 용어를 더 엄밀하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말씀’이라는 말 속에는 세 가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첫째, 주님 자신과의 직접적인 연결, 둘째, 문자 속에 감추어진 속뜻의 존재, 셋째, 그 속뜻을 통해 천국과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진 것을 스베덴보리는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실제로 주님의 생명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이미 감지하신 것처럼, ‘성경 66권 중 아르카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인식 이후에 ‘말씀’이라는 표현을 선택하신 것은 매우 정확한 방향입니다. 왜냐하면 ‘아르카나가 있다’는 것은 곧 ‘속뜻이 있다’는 뜻이고, 속뜻이 있다는 것은 곧 ‘말씀’의 구조를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경건한 표현이 아니라, ‘이 텍스트는 주님과 직접 연결된 텍스트다’라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천사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경인 것이지요. 그 안에 아르카나가 없는 성경은 천사들은 읽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읽을 수는 있어도 방금 언급한 세 가지가 없어 주님의 생명을 느낄 수 없으며, 그래서 얼른 물러납니다.

 

이걸 목회적으로 보면 더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성경을 읽는다’고 하면 주로 ‘지식을 얻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는다’고 하면,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난다’, ‘주님의 뜻이 나에게 온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즉, 독서의 태도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설교에서도 ‘말씀’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용어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말씀’이라는 표현이 ‘문자만이 아니라 그 안의 속뜻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뜻이 열리기를 구하며 읽는 것’이 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말씀’이라는 표현은 AC 전체의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성경’은 책의 범주를 가리키는 말이고, ‘말씀’은 그중에서도 주님과 직접 연결되어 속뜻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신적 진리를 담은 텍스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AC에서 말씀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성경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주님과 직접 연결되고 속뜻을 통해 살아 작용하는 신적 진리의 그릇을 가리키는 신학적 용어입니다.’

 

 

 

AC.64, 심화 5, ‘아르카나가 없는 성경을 천사들이 읽을 때’

AC.64.심화 5. ‘아르카나가 없는 성경을 천사들이 읽을 때’ 그럼 아르카나가 없다 알려진 성경들, 곧 구약 ‘룻기’, ‘역대서’, ‘욥기’ 등이나 신약 사도들의 서신서 등을 천사들이 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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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4, 심화 3, ‘속 사람’(internal man)

AC.64.심화 3. ‘속 사람’(internal man) ‘속 사람’(internal man)이 뭔가요? ‘영’, 또는 ‘영혼’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마음’ 같은 건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C.64에서 말하는 ‘속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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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속 사람(internal man)

 

속 사람(internal man)이 뭔가요? ’, 또는 영혼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마음 같은 건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C.64에서 말하는 ‘속 사람(internal man)은 ‘영혼’이나 ‘마음’ 같은 하나의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주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그로부터 생각과 의지와 삶 전체를 이끄는 전체 구조의 안쪽 사람’입니다. 즉, 어떤 ‘부분’이 아니라 ‘한 층위의 인간 전체’입니다.

 

먼저 흔히 떠올리기 쉬운 개념들과 구분해 보겠습니다. ‘영혼’이라고 하면 보통 ‘몸과 대비되는 보이지 않는 본체’를 떠올리는데, 스베덴보리의 ‘속 사람’은 그것보다 더 ‘기능적이고 구조적인 개념’입니다. 또 ‘마음’이라고 하면 감정이나 생각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것도 정확히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각과 감정은 속 사람에도 있고, 겉 사람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해하면 가장 정확하냐 하면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사람은 두 겹으로 되어 있다속 사람과 겉 사람.’ 그리고 이 둘은 각각 ‘완전한 인간처럼 작동하는 두 층위’입니다. 속 사람은 주님과 연결되어 있고, 겉 사람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속 사람은 ‘위로부터 받는 자리’이고, 겉 사람은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이제 AC.64의 문맥에서 보면 더 또렷해집니다. 거듭남이 일어날 때, 먼저 속 사람이 열립니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그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즉, 변화는 항상 ‘  ’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속 사람이 열리지 않으면, 겉 사람만 바꾸려 해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걸 아주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겉 사람은 우리가 일상에서 드러내는 말, 행동, 습관, 반응입니다. 속 사람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가’를 결정하는 더 깊은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친절한 행동’을 해도, 겉으로는 똑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 사람이 열려 있는 경우에는 그것이 진심에서 나오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황이나 계산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곳이 바로 속 사람입니다.

 

그래서 ‘속 사람 = 영혼인가?’라고 물으시면,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정확히는 더 넓은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속 사람은 단순히 ‘존재하는 본체’가 아니라, ‘주님과 연결되어 작용하는 인간 전체의 안쪽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또 ‘속 사람 = 마음인가?’라고 하면, 이것도 ‘일부는 맞고, 전부는 아니다’입니다. 마음(생각과 감정)은 속 사람에도 있고, 겉 사람에도 있습니다. 차이는 ‘출처’입니다. 속 사람의 마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과 선에 연결되어 있고, 겉 사람의 마음은 감각과 세상 경험에 더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정확한 정의는 이렇게 됩니다. ‘속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들어오는 자리이며, 그로부터 겉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안쪽 인간 전체입니다.’

 

이걸 한 문장으로 더 쉽게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겉 사람은 내가 밖으로 사는 나이고, 속 사람은 내가 안에서부터 살아지는 나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속 사람은 영혼이나 마음의 일부가 아니라, 주님과 연결되어 사람의 삶 전체를 안에서부터 이끄는 내적 인간 전체를 의미합니다.’

 

 

 

AC.64, 심화 2, ‘아르카나’(arcana)

AC.64.심화 2. ‘아르카나’(arcana) ‘아르카나’(arcana)가 뭔가요? ‘속뜻’(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을 말하는 건가요? ‘퍼셉션’(perception) 같은 건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르카나’(ar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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