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2:7)

 

AC.96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라고 하는 것에 관한 설명입니다. 고대와 말씀에서 (nostrils, 콧구멍)는 그 향기로 인해 기쁨을 주는 모든 것을 뜻하였으며, 이것은 곧 퍼셉션(perception)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호와께서 번제물 및 그분과 그분의 나라를 표상하는 것들로부터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셨다(smelled an odor of rest)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이 그분께 가장 기쁨이 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 곧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를 가리켜 콧김(the breath of the nostrils)이라 하는데, 이는 예레미야 애가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4:20). As to its being said that “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case is this: In ancient times, and in the Word, by “nostrils” was understood whatever was grateful in consequence of its odor, which signifies perception. On this account it is repeatedly written of Jehovah, that he “smelled an odor of rest” from the burnt offerings, and from those things which represented him and his kingdom; and as the things relating to love and faith are most grateful to him, it is said that “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Hence the anointed of Jehovah, that is, of the Lord, is called the “breath of the nostrils” (Lam.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4:20)

 

또한 주님 자신도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하심으로 같은 걸 의미하셨습니다 (20:22). And the Lord himself signified the same by “breathing on his disciples,” as written in John: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22)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ye the Holy Spirit (John 20:22).

 

 

해설

 

이 글은 창세기 27절의 가장 섬세하고도 오해되기 쉬운 표현, 곧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라는 말을 풀어 주는 대목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을 생물학적 행위나 신체 묘사로 읽지 않습니다. 그는 고대인의 언어 감각과 말씀의 상응 구조 속에서 이 표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대에 ‘’, 즉 ‘콧구멍’은 단순히 호흡 기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향기를 느끼는 자리였고, 곧 ‘기쁨을 분별하는 감각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콧구멍’을 퍼셉션과 직접 연결합니다. 퍼셉션이란,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걸 즉각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이는 논리나 추론이 아니라, 향기를 맡듯이 자연스럽게 분별되는 인식입니다.

 

이 배경 위에서, 성경에 반복해서 나오는 ‘여호와께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셨다’는 표현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실제 냄새를 맡으셨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것들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번제물과 희생 제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표상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 상징이 사랑과 신앙에서 나올 때, 그것은 ‘향기’가 됩니다.

 

그래서 ‘코로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은, 주님께서 사람에게 생물학적 생명을 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바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사랑과 신앙의 생명을 퍼셉션의 차원에서 주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사람에게 무엇이 선하고 참된지를 느끼고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가 ‘콧김의 숨’이라 불린다는 표현이 이해됩니다. 이는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과 퍼셉션의 흐름을 가리킵니다. 기름 부음은 사랑의 상징이며, 그 사랑이 퍼셉션을 통해 살아 움직일 때, 그것은 ‘’으로 표현됩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요한복음의 장면을 연결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 장면은, 바로 이 창세기적 의미를 다시 실현한 사건입니다. 이는 새로운 교회, 새로운 인간에게 ‘퍼셉션의 생명’이 주어지는 순간입니다.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나 열정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내적 감각입니다.

 

AC.96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의 숨은 폐로 들어가는 공기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을 기쁨으로 인식하는 퍼셉션의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이 숨이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주님의 생명을 자기 안에서 살아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퍼셉션이야말로,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가장 본래적이었고, 천적 인간의 가장 깊은 특징이었습니다.

 

 

 

AC.95, 창2:7, 겉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사랑의 생명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5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이 다루어집니다. 앞의 두 절에서 그의 신앙,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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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2:7)

 

AC.95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이 다루어집니다. 앞의 두 절에서 그의 신앙, 그러니까 이해의 생명이 다루어졌다면, 이 절에서는 그의 사랑, 곧 의지의 생명이 다루어집니다. 지금까지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는 걸 마음 내켜 하지 않았고, 대신 그와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으므로, 이때에는 겉 사람은 사람(man)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천적 상태가 되면서,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 이로 인해 겉 사람 또한 이제 사람이 됩니다. 이는 신앙의 생명과 사랑의 생명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생명은 그를 준비시키지만, 그를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생명입니다. The life of the external man is here treated of—the life of his faith or understanding in the two former verses, and the life of his love or will in this verse. Hitherto the external man has been unwilling to yield to and serve the internal, being engaged in a continual combat with him, and therefore the external man was not then “man.” Now, however, being made celestial,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it also becomes “man,” being so rendered by the life of faith and the life of love. The life of faith prepares him, but it is the life of love which causes him to be “man.”

 

 

해설

 

이 글은 창세기 27절을 둘러싼 설명을 한 단계 더 깊이 밀어 넣습니다. AC.94에서 겉 사람이 생명의 숨을 받아 살아나게 되었음을 말했다면, AC.95는 그 생명이 ‘어떤 질서로 겉 사람 안에 자리 잡는가’를 분명히 구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생명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겉 사람의 생명 안에서도, 신앙의 생명과 사랑의 생명을 분리하여 설명합니다.

 

먼저 앞의 두 절에서 다루어진 것은 신앙, 곧 이해의 생명입니다. 이는 겉 사람이 무엇이 참인지 알고 분별할 수 있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겉 사람은 여전히 속 사람과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그는 진리를 알지만, 그것 따르기를 즐거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때까지 겉 사람은 아직 ‘사람’이라 불리지 않습니다. 지식과 이해만으로는, 아직 사람의 본질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이 절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사랑의 생명, 곧 의지의 생명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겉 사람이 더 이상 속 사람과 싸우지 않고, 대신 그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순종이 강요가 아니라, 의지의 움직임이 됩니다. 이때 비로소 겉 사람은 속 사람과 하나의 방향을 갖게 되고, 그래서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스베덴보리는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겉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이는 충격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의미는 분명합니다. 겉 사람은 생명의 질서에 참여하지 않는 한, 단지 기능과 형식일 뿐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사람’이 되는 순간은, 속 사람의 사랑이 그의 의지를 움직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여기서 신앙과 사랑의 관계가 명확히 정리됩니다. 신앙의 생명은 준비합니다. 이해를 열고, 길을 닦고, 질서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준비 위에 사랑의 생명이 와야 합니다. 사랑의 생명이 겉 사람의 의지를 사로잡을 때, 사람은 더 이상 분열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마지막 문장에서 결론을 압축합니다. 신앙의 생명은 그를 준비시키지만, 그를 ‘사람’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스베덴보리 인간학의 핵심 원리 중 하나입니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느냐’입니다.

 

AC.95는 이렇게 창세기 2장의 ‘사람 형성’을 마무리합니다. 겉 사람은 신앙으로 빚어지고, 사랑으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일 때, 비로소 겉 사람과 속 사람은 하나의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AC.96,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의 속뜻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6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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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4,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AC.94-9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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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2:7)

 

AC.94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to form man, dust from the ground)는 그의 겉 사람을 형성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 이전에는 겉 사람이 아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앞 절(5)에서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no man to till the ground)라고 한 것입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to 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는 그에게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셨다는 뜻이며,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man became a living soul)는 그의 겉 사람 또한 살아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To “form man, dust from the ground” is to form his external man, which before was not man; for it is said (verse 5)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To “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is to give him the life of faith and love; and by “man became a living soul” is signified that his external man also was made alive.

 

 

해설

 

이 글은 창세기 27절을 둘러싼 가장 핵심적인 오해를 바로잡는 자리입니다. 흔히 이 구절을 ‘인류 최초 인간의 육체적 창조’로 읽어 왔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형성’은 육체의 시작이 아니라, ‘겉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되는 과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표현을 겉 사람의 형성으로 해석합니다. 이는 매우 결정적인 전환입니다. 겉 사람은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앞 절을 다시 불러옵니다. 거기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말은, 단순히 노동 인구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겉 사람이 아직 주님의 질서 안에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겉 사람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직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라는 표현은 겉 사람의 가장 외적이고 낮은 차원을 가리킵니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생명이 형성되어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겉 사람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 자체로는 생명을 가지지 않지만, 속 사람으로부터 생명이 주어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형성되었다’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이는 목적과 질서가 주어졌다는 뜻이지, 생명이 이미 충만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제 핵심은 ‘생명의 숨’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생물학적 호흡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과 사랑의 생명’입니다. 즉, 생명의 숨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내적 생명이며, 속 사람의 생명입니다. 이 숨이 불어넣어질 때, 비로소 겉 사람은 단순한 외적 구조를 넘어, 속 사람과 연결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속 사람만 살아난 것이 아니라, ‘겉 사람 또한 살아나게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이전까지 겉 사람은 도구였고, 형체였으며,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속 사람의 생명이 그 안에 흐르면서, 겉 사람도 함께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람’입니다.

 

이 구조는 앞서 반복적으로 설명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를 다시 한번 명확히 합니다. 겉 사람이 먼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의 생명이 먼저 주어지고, 그 생명이 겉 사람을 살립니다. 그래서 천적 상태에서는 겉 사람이 억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살아 있기 때문에, ‘기쁘게 섬깁니다’.

 

AC.94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흙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숨을 받아 겉 사람까지 살아났기 때문에 사람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는 인간 존재를 육체 중심으로 이해하는 모든 사고를 근본에서부터 전환시키는 설명입니다.

 

이 단락에 이르면, 창세기 2장의 ‘사람 창조’는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겉 사람이 아직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실 때, 사람은 다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겉 사람과 속 사람은 하나의 생명 안에서 함께 숨 쉬게 됩니다.

 

 

 

AC.95, 창2:7, 겉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사랑의 생명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5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이 다루어집니다. 앞의 두 절에서 그의 신앙,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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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3, 창2:5-6,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천적 인간의 상태’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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