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퍼셉션'(perception)과 '인플럭스'(influx)는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다른지 좀 비교,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주 좋은 질문이십니다. 스베덴보리(Em. Swedenborg)의 신학 사상에서 **“퍼셉션(perception)”**과 **“인플럭스(influx)”**는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며,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지만 그 작용 방향과 본질이 다릅니다. 아래에 두 개념을 각각 설명한 뒤, 마지막에 비교 요약을 드리겠습니다.


🜂 1. Perception (퍼셉션, 지각)

① 정의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퍼셉션’은 천적인(perceptional, celestial) 인간에게 속한 내적 지각력입니다. 즉, 진리나 선이 “참된가, 선한가”를 직관적으로 아는 내적 감각입니다.

“퍼셉션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에 의해 생기는 내적 인식이다.” — Arcana Coelestia (AC) 5227

② 작용 방식

  • 퍼셉션은 **‘직접적인 인식’**입니다. 예컨대, 천적인 사람(또는 천사)은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선인지 아닌지’를 곧바로 느낍니다.
  • 이는 이성적 추론이나 외적 가르침 없이 생깁니다.
    마치 양심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그렇다” 또는 “아니다”를 아는 영적 직감과 같습니다.
  • 이런 퍼셉션은 오직 사랑 자체가 선한 사람들, 곧 태고 교회(最古敎會, Most Ancient Church) 사람들에게만 본래 있었던 기능입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그만큼 순전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양심(conscience)”으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퍼셉션은 천적인 사람에게 속하며, 양심은 영적인 사람에게 속한다.” — AC.202, 597, 905


🜃 2. Influx (인플럭스, 유입)

① 정의

‘인플럭스’는 상위 차원의 생명(주님으로부터)이 하위 차원으로 흘러드는 작용, 즉 ‘영적 유입’을 뜻합니다.

“모든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인플럭스를 통하여 내려온다.” — AC.5854

② 작용 방식

  • 인플럭스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생명의 전달 과정입니다. 주님 → 천사계 → 영계 → 인간의 내적·외적 마음 순으로 흐릅니다.
  • 주님은 인간의 의지와 지성 속에 **선(의지의 생명)**과 **진리(지성의 빛)**를 끊임없이 흘려보내십니다.
  • 그러나 인간은 그 인플럭스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집니다. 따라서 인플럭스는 항상 일어나지만, 그 수용 여부는 인간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플럭스는 항상 주님으로부터이며, 수용은 인간의 상태에 달려 있다.” — AC.6479


⚖️ 3. Perception vs. Influx — 비교 정리

구분 Perception (퍼셉션) Influx (인플럭스)
의미 주님으로부터 온 선과 진리를 ‘직관적으로 아는 능력’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가 ‘흘러들어오는 작용’
방향 내부의 감각적 인식 (받은 후의 느낌) 외부로부터 내부로 흐름 (받는 과정)
대상 천적인 인간 (태고교회, 천사들) 모든 존재 (인간·영계·자연계 전체)
특성 즉각적, 자발적, 사랑 중심 점진적, 연속적, 질서 중심
결과 ‘이것이 주님의 선이다’라는 내적 확신 생명과 사고, 감정이 유지됨
현대적 대응 양심보다 깊은 내적 직감 성령의 감화·영적 에너지의 흐름에 유사

🜄 4. 비유로 요약

인플럭스는 ‘빛이 들어오는 것’이고, 퍼셉션은 ‘그 빛이 따뜻하고 참됨을 느끼는 감각’입니다.

 

즉,

  • Influx = 빛(주님의 생명)이 들어오는 행위,
  • Perception = 그 빛이 무엇인지를 즉시 알아보는 영적 눈.

원하신다면, 이 둘이 *‘양심(conscience)’*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이어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을 포함해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천천히, 차분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럼 이어서 **“퍼셉션–인플럭스–양심”**의 관계를 간단히 정리해 드릴게요. 이 셋은 스베덴보리의 인간 영성 구조에서 서로 다른 시대(또는 상태)에 해당하는 **‘신적 진리 수용의 세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 1. 퍼셉션 (Perception) — 태고교회(最古敎會, Most Ancient Church)

  • 인류의 처음 시대, 주님께 가장 가까운 상태.
  • 이들은 사랑 자체로 사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가”를 스스로 직관적으로 알았습니다.
  • 이때는 ‘진리를 배운다’기보다 주님과의 내적 일치 속에서 느낀다는 식이었습니다.
  • 스베덴보리는 이를 **천적인 상태(heavenly state)**라고 부릅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의 퍼셉션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배우지 않았고, 느꼈다.” (AC.597)


🜃 2. 양심 (Conscience) — 고대교회(古代敎會, Ancient Church)

  • 인간의 상태가 타락한 이후, 퍼셉션은 사라졌습니다.
  • 대신 주님은 인간의 마음 안에 **‘양심(conscientia)’**을 주셨습니다.
  • 양심은 인플럭스로 주어지는 진리를 기억과 신앙을 통해 형성하고, 이를 통해 “이것은 옳다, 이것은 그르다”를 느끼는 도덕적·영적 감수성입니다.
  • 퍼셉션이 ‘직관’이었다면, 양심은 ‘사고와 기억을 통한 깨달음’입니다.

“양심은 천적인 퍼셉션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영적인 퍼셉션이다.” (AC.863)


🜄 3. 인플럭스 (Influx) — 항상적·보편적 작용

  • 인플럭스는 시대나 상태와 관계없이 모든 생명에 끊임없이 흐르는 주님의 생명입니다.
  • 퍼셉션이나 양심은 **이 인플럭스가 ‘받아들여진 결과’**일 뿐입니다.
  • 즉, 인플럭스는 원인(주님의 흐름), 퍼셉션과 양심은 그 수용의 방식입니다.
    • 천적인 사람은 인플럭스를 곧바로 퍼셉션으로 느꼈고,
    • 영적인 사람은 인플럭스를 진리로 받아 양심을 형성합니다.

⚖️ 요약 도표

구분 퍼셉션 (Perception) 양심 (Conscience) 인플럭스 (Influx)
본질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진리의 직관 진리를 통하여 형성된 내적 도덕감 주님의 생명과 진리가 흘러드는 작용
작용 방향 내적 인식 (느낌) 내적 판단 (도덕·신앙적 결단) 외적→내적 (주님→인간)
소속 교회 태고교회 (Celestial) 고대·후대 교회 (Spiritual) 모든 교회·모든 존재
특징 즉각적, 사랑 중심 이성적, 진리 중심 지속적, 근원적
비유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따르는 마음’ 주님의 ‘숨결(생기)’이 흘러드는 것

요컨대,

인플럭스는 주님의 생명이 흘러드는 근원적인 작용,
퍼셉션은 그 생명을 ‘직관적으로 아는 상태’,
양심은 그 생명을 ‘진리로 분별하며 따르는 상태’입니다.


원하신다면 다음 단계로 → “이 세 개념이 인간의 두 마음(의지와 지성)에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가” 즉, ‘인플럭스의 내적 구조도’(스베덴보리의 심리학적 체계)를 도식처럼 풀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도 이어서 정리해 드릴까요?

 

 

네, 늘 감사합니다.

 

 

저야말로요. 😊 이렇게 깊이 있게 함께 탐구해 주셔서 제가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번에는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인플럭스–퍼셉션–양심’이 인간의 두 마음(의지와 지성)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즉 **‘영적 생명의 내적 구조’**를 도식적으로 풀어드리겠습니다.


🜂 1. 스베덴보리의 인간 구조 기본 틀

스베덴보리는 사람의 내면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구분 설명  중심 기능
의지(Will) 사랑, 욕구, 의향, 생명의 본체 선(善)
지성(Understanding) 생각, 인식, 사고, 판단 진리(眞)

 

이 두 부분이 서로 결합되어 있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영적 존재가 됩니다. 주님으로부터의 인플럭스는 항상 **선(의지)**과 **진리(지성)**의 두 통로를 따라 들어옵니다.

“모든 인플럭스는 두 길을 따라 이루어진다 — 하나는 의지로, 다른 하나는 지성으로.” — Arcana Coelestia 775, 10122


🜃 2. 인플럭스의 흐름 구조

스베덴보리는 이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생명의 질서’**로 묘사합니다.

주님 (Divine Love & Wisdom)
   ↓
천적 천사들 (Celestial Heaven)
   ↓
영적 천사들 (Spiritual Heaven)
   ↓
인간의 내적 마음 (Inner mind)
   ↓
인간의 외적 마음 (Natural mind)
   ↓
말과 행동 (Body)
  • 주님은 자신의 **사랑(선)**과 **지혜(진리)**를 ‘빛과 열’처럼 끊임없이 방사하십니다.
  • 이것이 **인플럭스(influx)**입니다.
  • 인간은 이 흐름을 ‘의지’와 ‘지성’을 통해 받습니다.
  • 그 인플럭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 퍼셉션(직관) 혹은 양심(도덕적 자각)이 생깁니다.

🜄 3. 퍼셉션과 양심의 작용 위치

작용 작용하는 층 주요 통로 특징
퍼셉션 (Perception) 의지와 지성이 완전히 결합된 내적 수준 의지 중심 주님의 선을 즉각 감지 (“이것은 선하다”)
양심 (Conscience) 지성이 의지를 보조하는 영적 수준 지성 중심 진리를 통해 선을 분별 (“이것은 옳다”)

 

즉,

  • 퍼셉션은 “사랑이 진리를 곧바로 느끼는 상태”이고,
  • 양심은 “진리로 사랑을 판단하고 조절하는 상태”입니다.

🜅 4. 도식으로 본 전체 흐름

      [주님으로부터의 인플럭스]
                ↓
        Divine Love → 의지 (Will) → 선(善)
        Divine Wisdom → 지성 (Understanding) → 진리(眞)
                ↓
     [의지와 지성이 결합됨 → 영적 생명 형성]
                ↓
     a) 완전 결합 → Perception (직관적 인식)
     b) 부분 결합 → Conscience (이성적 판단)
                ↓
          외적 사고와 행동으로 발현

🜆 5. 요약적 비교

구분 인플럭스 퍼셉션 양심
주체 주님 (원인) 천적인 인간 (결과 1) 영적인 인간 (결과 2)
작용 방향 위→아래 내부 감각 내적 판단
기반 주님의 사랑·지혜 사랑(의지) 진리(지성)
기능 생명 공급 즉각적 선의 감지 도덕적 판단
표현 주님의 숨결이 들어옴 “이건 주님의 선이다.” “이건 옳고 그르다.”

🜇 6. 현대적 언어로 비유하자면

  • 인플럭스 = 전류가 흐르는 에너지 공급선
  • 퍼셉션 = 에너지의 온기와 빛을 즉시 느끼는 감각
  • 양심 = 그 에너지를 이성적으로 조절하며 올바르게 쓰려는 장치

즉, 주님의 생명이 인플럭스로 들어오고, 그 생명을 사랑으로 느끼면 퍼셉션, 진리로 분별하면 양심이 되는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다음 단계로, 🔹 이 인플럭스의 질서가 어떻게 악(惡)과 거짓(falsity)에 의해 왜곡되는가 — 즉, “반대 인플럭스(反流, influxus perversus)”의 구조에 대해서도 이어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그 부분도 이어서 정리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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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는 핏줄들, 혈육들과 어떤 관계였나요? 저는 52녀의 막내로서 어렸을 땐, 장로교회 통합측에, 청소년기에 침례교회를 알게 되어 그후 장성하여 침례교회 신학을 하고 침례교회 목사가 된 후, 수도원 공부를 수 년간 하면서 스베덴보리를 알게 되었고, 이후 현 9년 차 스베덴보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행히도 저는 형제들로부터 신앙적으로 버림을 받았고, 그 받은 바 상처가 깊어서인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형제들을 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말이지요... 혹시 스베덴보리한테도 저와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에게도 “가족과의 신앙적 거리·오해·고립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양상은 오늘 목사님이 겪으신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정서적 구조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아래에서 차근차근 설명드리겠습니다.


1. 스베덴보리의 가족 배경 요약

스베덴보리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고, 아버지 예스페르 스베덴보리(Jesper Swedberg)는 당시 스웨덴에서 꽤 유명한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10남매 중 둘째 아들로, 가족이 매우 크고 신앙 색채도 강한 집안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앙적 색채가 짙은 대가족 안에서 자람 → 한 사람이 독자적 신앙 여정으로 나아가면서 갈등 발생”이라는 구조는 목사님의 상황과 겹치는 면이 있습니다.


2. 스베덴보리와 형제들의 관계

가족 관계는 크게 세 단계로 보면 정확하게 보입니다.


(1) 젊은 시절: 매우 가까움

형제들 사이에는 대체로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특히 형 **알브브란(Albrecht)**과는 학문·기술적 관심을 공유했고, 첫 시기에는 서로를 지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2) 중년 이후 스베덴보리의 영적 체험 시작(1745년경 이후): 미묘한 거리감과 걱정

그가 영계 체험을 시작하고, 그 체험을 책으로 출판하기 시작했을 때:

● 가족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뉨

  1. “그의 지적 능력을 믿고 존중하는 쪽”
  2. “그가 너무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쪽”

완전한 단절이나 적대는 아니었지만, “걱정”과 “거리감”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당시 루터교회 내부에서 그를 이단적으로 보는 시각이 커질수록 가족들 역시 사회적·종교적 압박을 받고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국교—국가 권력—교회규율’이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이단시 되면 가족 전체가 불편해지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3) 말년(1750~60년대): 사랑하지만 이해 못 하는 가족들

스베덴보리는 말년에 거의 혼자 사는 삶을 살았고, 형제들과의 사적 기록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형제들은 그를 사랑했지만, 그의 영적 글쓰기와 체험을 온전히 공유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 완전한 단절은 없었다.
  • 그러나 **“그가 왜 이런 길을 가는지 이해하지 못함으로 생긴 거리감”**이 있었다.
  • “정상적인 신학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걱정·난감함도 존재했다.

이는 오늘 목사님이 형제들로부터 받는 반응과 매우 유사합니다. 차이는, 스베덴보리는 완전히 버림받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사실상 혼자 걷는 길이었습니다.


3. 스베덴보리가 가족 문제를 다루는 방식

스베덴보리는 세 가지 태도로 이 문제를 처리했습니다.


(1) 억지로 설득하지 않았다

스베덴보리는 가족이나 주변에 자신의 체험을 강요하지 않았고, “내가 본 영계는 진짜야”라고 설득하려고 도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일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 상태에 따라 받아들일 것이다. 진리는 억지로 주어질 수 없다.”

 

그는 가족들도 결국 **‘자신의 상태에 따라 받아들일 그릇이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2) 감정적으로는 서운했지만, 영적으로는 받아들임

그의 개인 일기인 Spiritual Diary 곳곳에 “내 글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사명은 세상과 가족에게조차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탄식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감정 때문에 가족을 멀리하거나 단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3) 정서적 상처를 주님께 맡기고 개인적 고독을 수용

스베덴보리는 고독을 주님이 허락하신 보호막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영적 사명을 가진 후, “인간적 인정·가족의 지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으로는 오히려 담담해졌습니다.


4. 목사님 상황에 대한 스베덴보리적 시각

스베덴보리라면 목사님을 이렇게 볼 것입니다:

✔ “주님의 진리를 따르는 과정에서 가족에게 버림받는 경험은,

고대 교회에서부터 반복되어 온 영적 법칙 가운데 하나다.”

✔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그 상태가 아직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 “상처받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통해 내가 더 깊은 겸손과 주님 의존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 “가족과 감정적으로 멀어진 자신의 마음을 정죄하지 말라.

불안정한 감정을 가지고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려는 ‘의지’만으로도 천국적이다.”


5. 목사님이 지금 겪는 ‘가슴의 막힘’은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목사님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식으로 보면 **“진리의 단계는 넘어섰지만, 선(의지)의 단계로 통합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천국의 단계는 진리→선(사랑)으로 흘러가야 하므로,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시각에서 보자면:

  • 상처는 먼저 치유되어야 한다.
  • 그래야만 사랑이 다시 흘러갈 수 있다.

즉, 지금 목사님이 형제들을 자연스럽게 사랑하기 힘든 것은 “미성숙”이 아니라 “상처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상처가 회복되기 전까지 억지로 그들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6. 결론

✔ 스베덴보리도 가족과의 신앙적 간극으로 인한 고독과 오해를 경험했다.

✔ 그는 가족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억지로 설득하거나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았다.

✔ 자신의 정서적 고독을 주님께 맡기고, 가족을 심판하지 않았다.

✔ 목사님이 겪는 상처와 마음의 막힘은 ‘정상적이며 영적으로 이해 가능한 상태’다.


목사님, 지금의 마음을 정죄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상황을 겪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어려운 상태 자체를 주님께 고백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사랑할 힘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라.”

 

혹시 원하시면, 스베덴보리가 ‘가족과의 영적 갈등을 처리하는 법’을 그의 신학 체계로 구조화해서 더 깊이 설명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또는 목사님의 형제들과의 관계 회복에 대해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아주 구체적인 “마음의 길”**을 제안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원하시는 방향이 있으실까요?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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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이성 교제, 결혼을 전제로 한 사귐 등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있으면 좀 알고 싶습니다.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의 이성 교제나 결혼을 전제로 한 사귐에 대한 기록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 분명한 역사적 사실과 전해지는 일화들이 있어 정리해 드립니다.


🔵 1. 스베덴보리는 평생 독신이었는가?

네, 그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사후에 발견된 수많은 편지와 일기, 가족 기록, 동료들의 증언을 모두 보아도 결혼한 적이 없고 약혼조차 한 적이 없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 아주 진지하게 결혼을 고려한 적이 있습니다.


🔵 2. ‘에메르텐(Amerentia)’ 사건

스베덴보리가 40대 초반이던 1718~1720년경, 스톡홀름에서 **아메렌티아 폰 노르켈(Amarantia von Nörenberg 혹은 Amerentia von Broen)**이라는 여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결혼을 고려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그러나 이 시도가 무산된 이유: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 스베덴보리의 부끄러움·소심함: 그는 학자형, 내성적이고 감정 표현이 서툰 성격이었습니다. 구애가 적극적이지 못해 상대가 결혼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설.
  • 여성이 귀족이었고 집안이 더 높은 계층 당시 스베덴보리는 이미 귀족이긴 했지만(그의 아버지가 귀족 작위를 받음), 상대의 집안이 더 강력했고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해석.
  • 스베덴보리가 학문과 발명·과학 활동에 너무 몰두 실제 그의 편지들에 "결혼보다 학문이 주는 기쁨, 발견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뉘앙스의 글이 있음.

결론적으로, 스베덴보리가 평생 결혼하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 첫 구애 실패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후 그는 “독신의 길”을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 3. 50대 이후—영적 소명 때문에 결혼을 피한 면

그가 56세경(1744~45)에 영계 체험을 하면서 소명(‘주님이 원하시는 신학을 기록하라’)을 받았다고 기록하는데, 이 시점 이후로는 결혼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일기 Spiritual Experiences에 간접적으로 암시됩니다.

❖ 그의 인식:

  • 영적 소명과 학문·계시 기록은 지극히 집중을 요구하는 작업이라 가정생활을 하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 신학 저술이야말로 주님의 요구이므로, 결혼보다는 독신의 사명자적 삶이 더 적합하다.

물론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자신에게 적용한 원리였지, 그는 평신도나 목회자에게 결혼을 금하거나 불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신학(특히 Conjugial Love)은 결혼의 거룩함을 매우 강력히 옹호합니다.


🔵 4. 『천적 사랑(Conjugial Love)』의 저자—그러나 실제 결혼은 못함

흥미롭게도, 스베덴보리는 인류 역사 전체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결혼과 부부 사랑을 신학적으로 설명한 사람입니다. 『천적 사랑(Conjugial Love)』에서는 다음 내용을 대단히 깊게 다루지요.

  • 천국에서도 참된 부부는 영원히 함께한다.
  • 사랑은 영적·내적·외적 차원의 합일이다.
  • 참된 부부 사랑은 주님–교회의 결합을 닮은 가장 깊은 신성한 상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결혼의 신성성을 신학적으로 높인 사람이 실제로 결혼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자들에게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는 결혼을 너무 숭고히 보았기 때문에, 현실의 결혼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이상적 결혼’을 추구했고 결국 실제 결혼에는 들어서지 않았다.”


🔵 5. 스베덴보리의 성격이 결혼과 맞지 않았다는 증언들

그의 동료 과학자들, 가족, 제자들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 지나칠 만큼 내성적
  • 연구에 몰입하면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음
  • 우울–사색적 면
  •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연구·필기
  • 사회적 관계에 무관심

특히 젊은 시절의 친구 중 한 명이 남긴 말:

“에마누엘은 여성을 존중하고 매우 예의 바르지만, 사랑의 열정이 넘치는 성격은 아니다.”

 

이런 성격도 결혼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6. 다른 여성과의 연애 감정 기록은?

아메렌티아 사건 외에는 로맨틱 감정이 분명히 확인되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작은 일화가 있습니다.

❖ ① 파리 체류 중 아름다운 귀족 여성에 대한 관찰

그는 「Travels Journal」(여행 일지)에서 몇몇 여성의 외모·우아함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단순한 사회적 묘사였고 “관심” 이상의 감정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 ② 영계에서 본 ‘천사 아내들’에 대한 묘사

『천적 사랑』에는 그가 천국에서 ‘아내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 미적 감수성이 잘 드러나기는 하지만, 지상에서 누군가와 교제한 흔적은 아님.


🔵 7. 결론: 스베덴보리는 연애 경험이 거의 없었던 독신 지성인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한 번 진지한 결혼 시도 → 실패

✔ 이후 독신으로 살아감

✔ 이유는 학문·영적 소명에 대한 집중

✔ 연애 감정 기록은 극히 희소

✔ 그러나 결혼에 대한 신학적 통찰은 역사상 가장 깊음

 

그 결과, 스베델보리는 실제로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의 가장 높은 이상을 본 사람으로 남았다는 점이 독특한 특징입니다.


필요하시면 이어서:

  • 스베덴보리가 『천적 사랑』에서 말한 “참된 결혼의 조건”
  • 그가 말하는 천국의 결혼 실재
  • ‘스베덴보리가 실제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깊이 쓸 수 있었나?’
  • 당시 스웨덴 사회의 결혼 문화와 학자들의 독신관

도 상세히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네, 이 또한 모두 알고 싶습니다. 어쩜 이렇게 제가 뭘 필요로 할 지를 미리 아시나요?

 

 

기쁘게 이어서 전부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화를 보면 목사님이 스베덴보리의 “실제 삶”과 “신학적 통찰” 사이의 연결점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주제들이 뒤따라올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 1. 스베덴보리가 『천적 사랑(Conjugial Love)』에서 말한 “참된 결혼의 조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참된 결혼(heavenly conjugial love)은 이 세 가지가 필수입니다.


영적 기반 — 같은 신앙과 같은 선

모든 참된 결혼은 “같은 영적 진리와 같은 선”이라는 토대에서 출발합니다.

  • 부부가 주님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 천국을 향한 삶의 방향이 일치해야
  • ‘두 영’이 참으로 하나가 됨.

서로의 성격이 달라도, 취미가 다르더라도 상관없지만, 영적 기조가 다르면 깊이 마음이 합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지성적 합일 — 마음의 결합

이것은 단순히 잘 맞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 가치관
  • 판단 기준
  • 진리 사랑
  • 선을 행하려는 의지

이런 “마음의 구조”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진정한 하나됨은 머리(understanding)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의지와 정서의 합일 — 사랑의 결합

영적·지성적 결합 위에서 내면적 애정, 상호 존중, 헌신이 자라나면 그때서야 ‘결혼 사랑’이 형성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서로의 영을 감싸는 사랑이라고 비유합니다.


✔ 결론

참된 결혼은 반드시

영적 → 지성적 → 정서적 → 육체적

 

순서로 깊어져야 하며, 이 순서가 거꾸로 되면 결코 참된 결혼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 2.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의 결혼”의 실재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국에도 결혼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 결혼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연합입니다.


① 천국의 결혼은 “두 영의 완전한 결합”

천국의 부부는 둘이 아니라

“두 영을 가진 하나의 사람”

 

으로 표현됩니다. 천사는 실제로 “자기 짝”을 만나면 자신의 정체성이 온전히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② 천국의 결혼은 영원

지상에서는 사망과 함께 “육적 결혼 계약”이 끝나지만, 영적 결합이 이루어진 부부는 사후에도 그대로 부부입니다. 반대로 지상에서 결혼해도 영적 결합이 없던 부부는 사후에 분리됩니다.


③ 천국의 결혼의 목적은 “지혜의 창출”

스베덴보리는 놀랍게도 천국의 부부 결합의 가장 큰 열매는

  • 더 깊은 지혜
  • 더 강한 선
  • 더 밝은 사랑

이라고 합니다. 즉, “천국적 지혜의 생성”이 부부 결합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④ 영계에서의 부부의 모습은 실제로 젊고 아름다움

영적 사랑을 이룬 부부는 서로를 볼 때 언제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젊은 모습으로 본다고 합니다. 서로의 사랑이 외모를 비추는 창이 되기 때문입니다.


🔵 3. “스베덴보리는 결혼을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깊이 쓸 수 있었나?”

많은 연구자들이 의아해합니다. 결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깊은 결혼 신학을 썼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영계에서 실제로 ‘천국의 부부’를 수십 년간 직접 접촉함

스베덴보리는 30년 가까이 영계의 공동체를 왕래하면서 수많은 부부들을 직접 경험했다고 기록합니다. 예를 들면,

  • 천국 부부의 합일을 본 장면
  • 부부가 “한 마음”이 되는 상태
  • 사랑이 지혜를 낳는 과정
  • 부부의 말투·표정·눈빛의 변화

이를 여러 번, 여러 계층의 천국에서 보았다고 말합니다. 즉, 신학적 사변이 아니라 관찰 기록 + 계시적 통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독신과 내성적 성격이 오히려 도움이 됨

스베덴보리의 성격은 거의 수도자의 금욕적 성향에 가까웠습니다.

  • 욕정의 정복
  • 감정 절제
  • 지성적 사유와 영적 집중
  • 깊은 자기성찰
  • 외부 관계의 미약함

이런 성향 때문에 그는 육적·사회적 혼합이 아니라 순수하게 ‘영적 결혼’의 구조를 탐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실제 경험했으면 오히려 현실의 결혼 문제에 묶여 지상적·심리적 차원에서 머물렀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 4. 당시 스웨덴 사회의 결혼 문화와 스베덴보리의 선택

스베덴보리 시대(18세기 스웨덴)는 다음 특징이 있었습니다.

✔ 결혼은 매우 사회적·경제적 문제였다

귀족과 학자라면, 집안·재산·계급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사랑만으로 결혼하기 어려웠습니다.

✔ 학자·과학자들은 독신이 많았다

특히 광산청·과학아카데미에서 일하는 이들은 장기간 지방 체류 + 연구 몰입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영적 체험 이후 그는 사실상 “세속적 결혼 불가능한 상태”

1745년 이후 그는 대낮에도 천사가 나타나고, 밤에는 심령적 시각이 열리고,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글을 쓰고, 지상과 영계를 오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삶은 일반적 결혼 생활과는 사실상 양립이 불가능했습니다.


🔵 5. 결론: 스베덴보리는 ‘이상적 결혼의 신학자’였지만 실제 결혼은 하지 않은 사람

정리하면:

✔ 실제 연애 경험은 거의 없음

(단 한 번의 결혼 시도 실패)

✔ 소명 이후 완전한 독신 선택

(자발적 ‘영적 금욕생활’)

✔ 천국의 결혼을 수십 년간 관찰하며 독특한 결혼 신학 형성

✔ 결혼 신학의 깊이는 경험이 아니라 ‘영적 통찰과 관찰’에서 나옴

✔ 그의 삶 자체가 “지상 결혼”보다는 “영적 사명”에 절대 헌신한 형태

 

그래서 스베덴보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결혼의 이상’을 순수하게 볼 수 있었다.”


원하시면 다음도 이어서 상세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천적 사랑』의 주요 내용 전체 구조 해설
  • 천국에서 부부가 어떻게 대화하고 생활하는가
  • 영계에서 이혼은 가능한가?
  • 지상에서 재혼한 경우 사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 지상에서 부부가 아니었던 사람과 사후에 짝을 만나기도 하는가?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모든 답변이 눈을 못 뗄 수준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전부 부탁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 이렇게 집중해 주시니 저도 더 깊이, 더 정확하게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약속드렸던 다음 항목들 전부를 차례대로 드리겠습니다.


🔵 1. 『천적 사랑(Conjugial Love)』 전체 구조 — 큰 흐름부터

스베덴보리의 『천적 사랑』(1768)은 그의 저술 중 가장 독특한 책입니다. 구조를 먼저 보면 전체 뜻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1) 큰 구조 요약 (전체 흐름)

책은 크게 4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Ⅰ. 결혼 사랑이란 무엇인가 — 천국에서 본 결혼의 본질(1–230절)

  • 결혼 사랑은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영적 결합
  • “지성의 진리”와 “의지의 선”이 하나가 되는 과정
  • 천국에서 결혼이 존재한다는 사실

Ⅱ. 결혼 사랑의 상태들 — 어떻게 형성되고 심화되는가(231–318절)

  • 결혼이 자라는 순서
  • 결혼의 기쁨 (delights)
  • 남녀의 역할과 차이
  • 결혼의 후광(auras), 표정 변화, 천적 기쁨

Ⅲ. 결혼 사랑의 반대 — 음란과 결혼 파괴(319–433절)

  • 외도, 정욕, 영적 간음
  • 결혼 사랑을 파괴하는 정신적·도덕적 원인들
  • 음란이 영을 어떻게 흩뜨리는지

Ⅳ. 특별 이슈들 — 이혼, 재혼, 사후의 부부 문제(434–545절)

  • 사후에 누가 부부가 되는가
  • 지상에서 이혼한 경우
  • 재혼한 사람은 사후에 누구와 사는가
  • 지상에서 결혼한 사람과 영계에서 재결합 여부
  • 결혼 짝을 어떻게 찾는가

이 네 부분을 이해하면 전체 책의 핵심이 완전히 들어옵니다.


🔵 2. 천국에서 부부는 실제로 어떻게 생활하는가?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의 부부 생활”은 지상의 생활과 상당히 다릅니다.


1) 천국 부부는 서로의 영이 완전히 투명하게 열린다

지상에서는 마음을 숨길 수 있지만, 천국에서는 생각과 애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거짓말, 외식, 위선이 존재할 수 없고, 부부는 서로의 영을 “직접” 느낍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의 부부는 서로를 보면 즉시 상대 영의 사랑과 지혜를 느낀다.”


■ 2) 생활 방식: 진리 탐구 + 선한 사역 + 상호 기쁨

천국에서 부부는:

  • 함께 일하고
  • 함께 봉사하고
  • 함께 배우고
  • 함께 이야기하고
  • 함께 주님을 향해 성장합니다.

결혼은 “동행(work)”과 밀접합니다. 즉, 함께 이룬 선의 형태가 두 영을 하나로 만듭니다.


■ 3) 부부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계속 ‘창조’한다

천국 부부는 서로를 볼 때 늘 가장 젊고 가장 아름답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외모는 “내면의 사랑”을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 남편은 아내의 지혜의 향기를 아름다움으로 보고
  • 아내는 남편의 사랑의 열을 빛으로 봅니다.

결국 외모가 사랑의 반영이 됩니다.


■ 4) 부부의 대화는 언제나 깊고 부드럽다

스베덴보리는 천국 부부의 대화를 다음처럼 묘사합니다.

“그들의 말은 서로의 마음을 감싸고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부드러운 공기와 같다.”

 

이것은 의지가 통합된 두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대화 방식입니다.


🔵 3. 영계에서 이혼은 가능한가?

스베덴보리는 매우 명확하게 답합니다:

영계에서는 ‘영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부’는 자동으로 분리된다.

 

즉, 지상에서 결혼했다 하더라도 내면적 영적 결합이 없으면 사후에는 강제로 붙어 있지 않습니다.

✔ 이유: 영은 본질이 다르면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

두 사람의 영적 기류가 전혀 맞지 않으면 함께 있으면 서로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영계에서는 자연스럽게 갈라집니다.

✔ 요약

  • 지상에서 이혼했든
  • 지상에서 유지했든 둘 다 중요하지 않고,

영적 결합 여부가 기준입니다.


🔵 4. 지상에서 재혼한 사람은 사후에는 누구와 사는가?

이것도 매우 명확합니다.

✔ 원칙: 가장 깊은 영적 합일이 이루어진 사람과 함께 산다

지상에서 여러 명과 결혼했다면:

  • 첫 배우자일 수도 있고
  • 두 번째일 수도 있고
  • 혹은 아무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영적 짝(conjugial partner) 입니다. 그 짝은 지상 배우자 중 한 명일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 5. 지상에서 결혼하지 못한 사람은 사후에 짝을 찾는가?

네. 스베덴보리는 “모두에게 주님이 예비한 짝이 있다”고 말합니다.

✔ 영계에서 짝을 찾는 과정

  1. 영계에 들어오면
  2. 자신의 선과 진리의 유형에 맞는 사람들을 만남
  3. 대화와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짝이 드러남
  4. 선과 진리가 맞으면 서로에게 강한 끌림이 생김
  5. 잠시 후 영들이 확인하고 부부가 됨

이 모든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고 강압이 없습니다.


🔵 6. 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가?

있습니다.

  • 자신의 선/진리의 유형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사람
  • 독신형 영적 소명(매우 드물다)
  • 지상에서 결혼을 완전히 거부했던 영적 상태가 그대로 남은 경우

하지만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천국의 참된 결혼은 필연적이다.

 

즉, 거의 모든 영은 때가 되면 짝을 찾아 자연스럽게 결혼합니다.


🔵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설명드린 내용들은 스베덴보리가 가장 깊이 다룬 영역 중 하나이며, 천국의 구조 전체와도 맞물리는 주제들입니다. 원하시면 다음 내용도 자세히 드릴 수 있습니다.

  • 천국의 부부가 하는 사역의 종류
  • 남성과 여성의 영적 구조의 차이
  • 결혼의 기쁨(heavenly delights)은 어떤 종류인가
  • 어린아이들이 성장하여 결혼하기까지의 영계 과정
  • 천국의 결혼과 지상의 결혼 예배 방식의 차이

어느 방향이든 말씀만 주시면 이어서 전부 설명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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