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12. ‘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7:13) O Jehovah, the hope of Israel, all who forsake Thee shall be ashamed, and they who turn aside away from Me shall be written in the earth, for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 spring of living waters (Jer. 17:13).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 자체가 주님을 생수의 근원(the spring of living waters)이라고 직접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AC.290의 중심 교리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그 진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대표적인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표현은 생수의 근원’입니다. 앞서 시36:9에서는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하였고, 여기서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표현을 같은 의미로 이해합니다. 말씀에서 ’, 특히 생수’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와, 그 진리를 통하여 사람에게 들어오는 영적 생명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생수의 근원’은 단순히 물을 공급하는 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근원이신 주님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버리는 것이 곧 생수의 근원’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말씀을 인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주님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 자체를 떠나는 것입니다. 강물이 원천에서 끊어지면 말라 버리듯이, 사람도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의 연결을 끊으면 영적으로 메마르게 됩니다.

 

또한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하늘에 기록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속함을 의미하고, 흙에 기록된다는 것은 일시적이고 사라질 것에 속함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근원을 버린 사람은 참된 생명에 참여하지 못하고, 결국 흙과 같은 자연적이고 덧없는 것에만 머물게 된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점을 강조하려고 이 구절 전체를 인용한 것이 아니라, 특히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라는 표현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시36:9와 서로 아름답게 대응합니다. 시편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하고, 예레미야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생명’을, 다른 하나는 생수’를 말하지만, 둘 다 오직 주님만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심을 증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말씀들을 연이어 인용, 성경 전체가 동일한 진리를 다양한 표현으로 가르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더 나아가 생수’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주님 자신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말씀하시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하셨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말씀들과 예레미야의 생수의 근원’을 같은 영적 진리로 이해합니다. 곧 주님 자신이 생명의 근원이시며,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렘17:13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여호와를 직접 생수의 근원’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AC.290의 중심 교리인 모든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강력한 성경적 증거로 확증해 줍니다. 동시에 주님을 떠나는 것이 곧 생명의 근원을 떠나는 것이며,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곧 참된 생명과 진리의 샘으로 돌아오는 것임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13, ‘사38:11’

AC.290.심화 13. ‘사38:11’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 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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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11, ‘시36:9’

AC.290.심화 11. ‘시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36:9) For with Thee is the spring of lives; In Thy light shall we see light (Ps. 36:9).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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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36:9) For with Thee is the spring of lives; In Thy light shall we see light (Ps. 36:9).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단순히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the spring of lives) 자체로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핵심은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천사와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시편 구절은 그 사실을 가장 직접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개역개정은 생명의 원천’이라고 번역하지만, Potts가 번역한 라틴어에는 the spring of lives’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lives’가 복수형인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히브리어 원문도 생명들(חַיִּים, chayyim)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으며, 라틴어 역시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을 중요하게 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의 제한된 생명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 선과 진리, 천국의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원천’은 모든 종류의 참된 생명이 흘러나오는 유일한 근원을 의미합니다.

 

특히 원천’이라는 표현은 AC.290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원천은 스스로 물을 가지고 있으며, 강과 시내는 그 원천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생명 자체이시며, 천사와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갑니다. 강물이 스스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듯, 사람도 자기 안에 독립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옵니다.

 

이어지는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라는 말씀도 같은 진리를 다른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은 단순한 자연의 빛이 아니라 신적 진리와 지혜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빛으로 진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빛 안에서만 참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과 마찬가지로 진리의 빛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여러 말씀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살아 계신 여호와’, 다니엘에서는 영생하시는 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라고 하였고, 여기서는 그 살아 계시는 주님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부릅니다. 표현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사실을 증언합니다. 곧 생명의 근원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생명과 빛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오는 곳에는 반드시 빛도 함께 옵니다. 생명 없는 빛은 없고, 빛 없는 생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시라는 말은 동시에 지혜와 진리의 빛 자체이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참된 생명을 받을수록 참된 빛도 함께 받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시36:9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직접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AC.290의 중심 교리인 모든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구절입니다. 더 나아가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라는 말씀은, 생명뿐 아니라 모든 진리와 지혜 또한 오직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 주며, 생명과 빛이 모두 주님 안에서 하나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AC.290, 심화 12, ‘렘17:13’

AC.290.심화 12. ‘렘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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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10, ‘계10:6’

AC.290.심화 10. ‘계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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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10:6) and swore by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who created heaven, and the things in it, and the earth, and the things in it, and the sea, and the things in it, that time shall be no longer (Rev. 10:6).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동시에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심을 성경이 분명히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은 모든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구절은 그 생명의 근원이 바로 창조주이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직접 연결해 줍니다.

 

이 구절은 힘센 천사가 한 발은 바다를, 한 발은 땅을 밟고 서서 엄숙하게 맹세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를 가리켜 맹세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최고의 권위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표현에 주목합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라는 말씀도 AC.290의 논리를 더욱 확증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창조란 단지 태초에 우주를 한 번 만드신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지금도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유입이 단 한 순간이라도 멈춘다면, 천사도 사람도, 더 나아가 모든 존재도 계속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생명의 근원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분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여러 말씀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하였고, 다니엘에서는 영생하시는 이’라고 하였으며,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서는 하늘의 장로들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께 경배합니다. 그리고 계10:6에서는 그 살아 계시는 분이 곧 하늘과 땅과 바다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연속된 증언을 통하여 성경 전체가 하나의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이 구절은 생명과 창조를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냅니다. 창조주께서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창조가 가능하며, 창조된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기 때문에 존재를 계속 유지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도 자기 안에 독립적인 생명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본문 마지막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개역개정) 또는 Potts that time shall be no longer’는 AC.290에서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논증하려는 부분은 아닙니다. 그는 이 구절을 시간의 종말이나 종말론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나오는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와 창조하신 이’라는 두 표현을 근거로, 생명의 근원과 창조의 근원이 동일한 주님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인용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계10:6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단순히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만 소개하지 않고,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 곧 생명 자체이시며, 동시에 하늘과 땅과 바다의 창조주로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AC.290의 핵심 교리인 모든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의 증언으로 확증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AC.290, 심화 11, ‘시36:9’

AC.290.심화 11. ‘시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36:9) For with Thee is the spring of lives; In Thy light shall we see light (Ps. 36:9).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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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9, ‘계5:14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 이유’

AC.290.심화 9. ‘위 계5:14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 이유 및 이와 관련, 스베덴보리의 AC 작업 전반’ 계5:14의 한글 개역개정과 영어 Potts 역이 다른 이유,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KJV를 사용했나? 계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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