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27.심화
1. ‘믿기 위해 살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
이 표현은 굉장히 날카로운 구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기 위해 산다’는 것은 ‘선과 사랑을 먼저 살고, 그 안에서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하고,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 한다’는 것은 ‘먼저 이해하고 판단한 다음, 그 기준으로 진리와 삶을 통제하려는 상태’를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둘 다 ‘진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먼저 ‘믿기 위해 산다’는 상태를 보겠습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 곧 사랑의 방향을 먼저 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실제 삶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 진리가 서서히 열립니다. 이때의 이해는 ‘내가 따져서 얻은 결론’이 아니라, ‘살다 보니 보이게 되는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에서는 진리가 사람을 부드럽게 이끌고, 사람은 그 진리를 따라 살면서 더 깊은 이해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믿기 위해 사는’ 질서입니다. 사랑이 먼저이고, 이해는 그 뒤에 따라옵니다.
반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 한다’는 상태는 순서가 뒤집힌 경우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이렇게 서 있습니다. ‘이게 맞는지 내가 먼저 이해해야 한다. 납득이 되어야 받아들인다.’ 겉으로 보면 합리적이고 신중한 태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사람의 중심이 이미 ‘주님’이 아니라 ‘자기 판단’으로 옮겨 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받아들이더라도 ‘내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리는 더 이상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다루는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지배하려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해한 것’을 통제하려 합니다. 이해했다는 것은 ‘내 안에 넣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 중심의 신앙으로 가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 ‘이건 맞다’, ‘이건 틀리다’, ‘이건 받아들인다’, ‘이건 거부한다’ 등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진리가 더 이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리한 체계’로 굳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지배’입니다.
이걸 아주 단순한 예로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접했다고 하겠습니다. ‘믿기 위해 사는’ 사람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일단 그렇게 살아보겠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실천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왜 이게 맞는지’가 안에서 열립니다. 반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지?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그러면서 분석하고, 조건을 붙이고, 결국은 ‘이건 이상적인 말일 뿐이다’라고 정리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진리는 삶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걸 그렇게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이 태도가 결국 ‘신앙을 죽이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해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서 진리를 재단하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사랑이 뒤로 밀리고, 진리는 점점 ‘머리 안의 내용’으로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은 살아 있는 힘을 잃고, 점점 차갑고 비판적인 형태로 변합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작업과도 이 부분이 깊이 연결됩니다. 목사님은 지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주는 일’을 하고 계시지만, 그 목적은 ‘이해 자체’가 아니라 ‘삶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방향만 분명히 유지하시면,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태도’로 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기 위해 살 수 있도록 돕는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믿기 위해 사는 것은 사랑을 먼저 살며 그 안에서 진리가 열리는 것이고, 이해하기 위해 지배하려는 것은 이해를 기준으로 진리와 삶을 통제하려는 태도이다.’
AC.127, 창2:17, ‘선악과 :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AC.127 감각적인 것과 기억 지식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는 욕망은, 다음 장에서 다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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