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7)



AC.271

네 평생에(all the days of thy life)라는 말이 그 교회의 날들의 끝, 곧 교회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대상이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와 그 상태라는 점으로부터 분명합니다. 그 교회의 날들의 끝은 홍수의 때였습니다. That “all the days of thy life” signifies the end of the day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not an individual man, but the church and its state. The end of the days of that church was the time of the flood.

 

 

해설

 

AC.271은 창3:17 끝부분에 나오는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글입니다. 문자적으로 읽으면, 이것은 아담 개인의 남은 생애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초반부의 아담과 하와를 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를 대표하는 표상으로 보기 때문에, 여기서도 ‘평생에’는 개인의 수명이 아니라 교회의 존속 기간 전체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점은 창3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창1과 창2은 태고교회의 형성과 완성을, 창3은 그 교회의 타락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담’은 개인 아담이 아니라 태고교회이며, ‘네 평생’ 역시 한 사람의 일생이 아니라 그 교회가 존재하는 전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은 아담 개인이 죽을 때까지 고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타락한 태고교회가 종말에 이를 때까지 점점 더 영적 수고와 비참함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균열로 시작되었던 자기 사랑과 자기 지혜가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커졌고, 결국 교회 전체가 무너지는 지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종말을 ‘홍수(the Flood)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홍수는 단순한 자연재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악이 인간 정신을 완전히 압도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원래 퍼셉션 가운데 살았지만, 후손들이 점차 자기 지성을 신뢰, 감각을 따라 살게 되면서 마침내 속 사람과 겉 사람 간 연결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창6과 창7에서 묘사되는 홍수의 영적 의미입니다.

 

따라서 AC.271은 앞의 AC.267-270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 위치시켜 줍니다. ‘땅이 저주를 받고’,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비참함과 불안이 계속되는 상태’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종말에 이를 때까지 지속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바로 홍수였습니다.

 

더 깊이 보면,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말씀의 독특한 시간 개념도 보여줍니다. 말씀에서 ‘(days)은 흔히 시간 자체보다 상태(states)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네 평생에’는 단순한 연대기적 기간이 아니라, 그 교회가 겪어야 할 영적 상태 전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타락이 시작된 이후부터 완전한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상태를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AC.271의 핵심은, 창3의 심판 선언들이 아담 개인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태고교회 전체의 쇠퇴와 종말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네 평생에’는 한 사람의 남은 생애가 아니라, 타락한 교회가 홍수라는 최종 종말에 이를 때까지의 전 역사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창3이 개인의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거대한 영적 역사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AC.272,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AC.272-274)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창3:18)AC.272‘가시덤불과 엉겅퀴’(the t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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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0, 창3:17,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70‘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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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7)



AC.270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eat of the ground in great sorrow)는 것이 비참한 삶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뒤 문맥으로부터 분명하며, 더구나 먹는다는 것은 내적 의미, 곧 속뜻으로는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이러한 삶의 상태는 악한 영들이 공격하기 시작하고, 함께 있는 천사들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애쓰게 될 때 뒤따른다는 사실로도 분명합니다. 이러한 삶의 상태는 악한 영들이 점차 우세해지기 시작할 때 더욱 비참해집니다. 그들은 겉 사람을 지배하게 되고, 천사들은 속 사람만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속 사람 안에는 이미 남아 있는 것이 너무 적어서, 천사들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을 그곳에서 거의 찾아낼 수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사람 안에는 비참함과 불안이 생겨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이러한 비참함과 불안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참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짐승들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 역시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땅의 것만 바라보고, 세상 것만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own만을 사랑하며, rational까지 완전히 동의한 가운데 자기 욕망과 감각을 마음껏 따릅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 싸움이나 유혹을 거의 경험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한 유혹에 노출된다면, 그들의 생명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더욱 깊이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하고, 더욱 깊은 지옥의 정죄 속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상태를 이 세상에서는 겪지 않도록 허락하십니다. 대신 그들은 다른 삶, 곧 영계에 들어간 뒤에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유혹이나 고난 때문에 영적으로 죽을 위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매우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상태가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으로 뜻하는 바입니다. That to “eat of the ground in great sorrow” signifies a miserable state of life is evident from what precedes and follows, not to mention that to “eat,” in the internal sense, is to live.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fact that such a state of life ensues when evil spirits begin to fight, and the attendant angels to labor. This state of life becomes more miserable when evil spirits begin to obtain the dominion; for they then govern the external man, and the angels only the internal man, of which so little remains that they can scarcely take anything thence with which to defend the man; hence arise misery and anxiety. Dead men are seldom sensible of such misery and anxiety, because they are no longer men, although they think themselves more truly so than others; for they know no more than the brutes of what is spiritual and celestial, and what is eternal life, and like them they look downward to earthly things, or outward to worldly ones; they favor only their own, and indulge their inclinations and senses with the entire concurrence of the rational. Being dead, they sustain no spiritual combat or temptation, and were they exposed to it their life would sink under its weight, and they could thereby curse themselves still more, and precipitate themselves still more deeply into infernal damnation: hence they are spared this until their entrance into the other life, where, being no longer in danger of dying in consequence of any temptation or misery, they endure most grievous sufferings, which likewise are here signified by the ground being cursed, and eating of it in great sorrow.

 

 

해설

 

이 글은 창3:17의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을 영적 차원에서 설명하면서, 유혹과 영적 죽음의 차이를 매우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먹는다’는 것이 말씀에서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산다’, 곧 어떤 상태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것은 고통스럽고 비참한 영적 상태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이러한 비참함은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떠날수록 점점 심해집니다. 악한 영들은 겉 사람을 더욱 강하게 지배하려 하고, 천사들은 속 사람을 통하여 사람을 보호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사람이 오랫동안 own과 감각만을 따라 살아오면, 속 사람 안에서 천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속 사람을 떠나시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이 그 생명의 흐름을 계속 거부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리메인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암시합니다. 천사들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속 사람 안에 주님께서 보존해 두신 선과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끊임없이 그것을 거부하면, 천사들이 작용할 수 있는 기반은 점점 약해집니다. 그래서 영적 싸움은 점점 더 힘겨워지고, 사람은 깊은 불안과 공허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스베덴보리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평안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영적 생명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병이 너무 깊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듯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현명하다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관심이 오직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나 천국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의 own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rational까지 동의한 가운데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창3에서 rationalown에 동의한 결과이며, 스베덴보리가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타락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깊은 유혹을 거의 겪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강한 영적 유혹을 받게 되면, 그것을 이겨 낼 리메인스와 영적 생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은 악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의 상태에 맞추어 유혹을 허락하시며,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유혹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러한 섭리가 사후에도 계속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세상에서 유혹을 충분히 겪지 않았던 사람들은 영계에서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면서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의 고통은 더 이상 거듭남을 위한 유혹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과 사랑의 결과를 온전히 마주하는 과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창3:17의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의 더 깊은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AC.270은 영적 유혹과 영적 죽음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중요한 글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유혹을 통하여 괴로움을 겪지만, 그 유혹은 거듭남을 위한 주님의 역사입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그러한 유혹조차 거의 느끼지 못하는데, 그것은 건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은 단순한 육체적 노동의 어려움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비참한 영적 삶과, 동시에 그 가운데서도 사람을 끝까지 보존하시려는 주님의 깊은 섭리를 함께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271, 창3:17, ‘네 평생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71‘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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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9, 창3:17,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9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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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7)



AC.269

여호와 하나님, 곧 주님께서 (ground), 곧 겉 사람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겉 사람이 스스로 속 사람으로부터 돌아서고 분리됨으로써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AC.245 참조). That Jehovah God (that is, the Lord) did not “curse the ground,” or the external man, but that the external man averted or separated itself from the internal, and thus cursed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hown (n. 245).

 

 

해설

 

이 글은 매우 짧지만, 창3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원리를 다시 한번 선언하는 중요한 결론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까지 반복해서 강조해 온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곧, 사람의 타락과 저주의 원인은 주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섭리론과 구원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입니다.

 

3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고, 땅을 저주하시며,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는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고 설명합니다. 주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선 자체이시므로, 누구에게도 악을 행하시거나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에 ‘주님께서 저주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인간 편에서 일어난 영적 상태의 변화를 인간의 언어에 맞추어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여기서 ‘겉 사람이 스스로 속 사람으로부터 돌아섰다’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속 사람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통로입니다. 반면 겉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실제 삶으로 나타내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겉 사람이 own과 감각을 따라 독립하려 할 때, 주님께서 관계를 끊으시는 것이 아니라, 겉 사람이 스스로 그 생명의 흐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돌아섬(aversion)입니다.

 

따라서 ‘저주’도 하나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주는 주님께서 적극적으로 내리시는 형벌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마치 햇빛을 등지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어둠을 경험하는 것은 태양이 어둠을 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등졌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창3의 모든 저주를 이러한 원리로 이해합니다.

 

이 점에서 AC.269는 앞의 AC.267AC.268을 자연스럽게 이어 줍니다. AC.267에서는 rationalown과 감각에 동의함으로써 겉 사람이 타락하였다고 설명하였고, AC.268에서는 그 결과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제 AC.269에서는 그 상태를 ‘저주’라고 부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저주는 주님의 행동이 아니라, 분리의 결과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45를 다시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이미 AC.245에서 주님은 아무도 저주하지 않으시며, 악인은 스스로 악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AC.269는 그 원리를 다시 적용하여, 창3:17의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는 말씀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말씀은 사람의 입장에서 표현되었지만, 실제 영적 원인은 언제나 사람 자신의 돌아섬에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흔히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셨다’거나 ‘하나님께서 복을 거두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은 언제나 같은 사랑으로 사람에게 생명을 흘려보내십니다. 변하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면 그 생명을 더욱 풍성히 받고, 스스로 등을 돌리면 그 생명을 충분히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 세계의 변하지 않는 질서입니다.

 

AC.269는 창3의 ‘저주’를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라 영적 인과관계로 이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겉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겉 사람이 own과 감각을 따라 스스로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될 때, 그 결과로 생명의 흐름이 막히고 영적 황폐가 찾아옵니다. 이것이 성경이 ‘저주’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창3의 심판 기사를 하나님의 진노의 기록이 아니라, 사랑이신 주님의 질서를 떠난 사람이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영적 결과에 대한 계시로 읽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AC.270, 창3:17,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70‘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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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8, 창3:17, ‘땅’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8‘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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