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9.심화

 

8. ‘속 사람, , 영혼, own(proprium), 자아

 

속 사람, , 영혼, own(proprium), 자아 등 이런 것들이 다 다른 건가요, 아니면 그냥 한 가지에 대한 서로 다른 명칭인가요?

 

 

이것은 스베덴보리를 읽을 때, 거의 반드시 한 번은 크게 헷갈리게 되는 지점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어에서는 영혼’, ‘자아’, ‘내면’, ‘ 같은 말을 굉장히 느슨하게 섞어 쓰는데, 스베덴보리는 인간을 훨씬 더 층위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들은 서로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의 인간 안에 서로 다른 층과 기능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먼저 가장 큰 틀에서 보면, ‘속 사람(internal man)은 인간 안의 주님 쪽으로 열릴 수 있는 내적 인간 전체’를 뜻합니다. 반대로 겉 사람(external man)은 세상과 몸과 감각을 통해 살아가는 바깥 인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은 항상 이 두 층으로 설명됩니다. 속 사람은 천국 쪽을 향하고, 겉 사람은 세상 쪽을 향합니다. 거듭남이란 결국 속 사람이 겉 사람 안으로 질서를 흘려보내는 과정입니다.

 

그다음 (spirit)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인간이 육체를 벗은 뒤에도 계속 살아 있는 실제 인간 자신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은 죽으면 영이 됩니다가 아니라, 사실은 이미 지금도 영적인 존재이며, 단지 육체를 입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영은 몸 없는 유령 같은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살아 있는 내적 실체에 가깝습니다.

 

반면 영혼(soul)은 스베덴보리에게서 비교적 더 깊고 미묘한 층입니다. 영혼은 인간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가장 직접 생명을 받는 가장 안쪽(inmost)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영혼은 인간 전체의 가장 깊은 생명 접점 같은 개념입니다. 다만 스베덴보리는 전통 철학처럼 영혼을 인간 전체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 물질처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영혼에서 영으로, 영에서 몸으로 생명이 흘러간다고 봅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가장 오래 붙들고 계신 own’,  proprium은 또 전혀 다른 범주의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어떤 기관’이 아닙니다. 인간 안에서 내가 나로 느껴지는 자기감’, ‘내 것이라 여기는 중심성’, ‘자기 스스로 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proprium은 인간 존재의 방향성과 중심 의식을 설명하는 말이지, 영혼이나 영 같은 실체 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영혼, 영, 몸은 인간 존재의 층 구조에 가깝고, proprium은 그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중심 삼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도 일종의 proprium은 있지만, 그것은 주님께 열린 proprium입니다. 반면 지옥적 인간의 proprium은 자기 자신에게 닫혀 있습니다.

 

그리고 자아’는 사실 가장 애매한 현대어입니다. 문맥에 따라 ego 비슷하게도 쓰이고, self 비슷하게도 쓰이며, 어떤 때는 그냥 나 자신 정도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 번역에서는 자아라는 말을 너무 넓게 써 버리면 proprium soul spirit이 다 뒤섞여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proprium을 그냥 자아’라고 번역하기 망설이시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아주 단순화해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속 사람은 주님 쪽으로 열릴 수 있는 내적 인간’, 영은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 있는 실제 인간 자신’, 영혼은 주님으로부터 가장 직접 생명을 받는 가장 깊은 층’, proprium 내가 나 자신으로 느껴지는 자기 중심성’, 자아는 현대 한국어의 넓고 애매한 표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의 핵심은 이 모든 층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데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이 전체를 질서 있게 흐르느냐에 있습니다. 그래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연결되고, 영이 살아 있으며, proprium이 주님께 열릴 때, 인간 전체가 비로소 하나의 살아 있는 질서가 됩니다.

 

 

 

AC.149, 창2:21, ‘갈빗대’와 ‘뼈’라는 인간의 own이 어떻게 ‘주님에 의해 살아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9 말씀에서도 사람의 own은 ‘뼈’(bones)를 의미하며, 이는 주님에 의해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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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심화 7, ‘redeemed, saves’

AC.149.심화 7. ‘redeemed, saves’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본문에 나오는 위 문장에서 ‘redeemed’와 ‘saves’를 해설해 주세요. 그 차이가 무엇이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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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deemed, saves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본문에 나오는 위 문장에서 redeemed saves를 해설해 주세요. 그 차이가 무엇이며, 시제도 다른 이유가 뭔가요?

 

 

이 문장은 짧지만, 스베덴보리의 구원 이해가 아주 깊게 들어 있는 문장입니다. 특히 목사님께서 보신 것처럼, 왜 하나는 redeemed’이고 다른 하나는 saves’인지, 왜 시제가 다르게 쓰였는지는 그냥 우연이 아닙니다.

 

먼저 redeemed’는 과거형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결정적 역사, 곧 인간을 지옥의 지배와 단절 상태로부터 다시 되찾으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redemption(구속)은 단순 법적 면죄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지옥들을 제압하시고, 인간과 천국 사이의 길을 다시 여신 우주적, 영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redeemed’는 완료된 역사입니다.

 

반면 saves’는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금도 계속 인간 각 사람 안에서 행하고 계시는 구원의 작용을 뜻합니다. 곧, 인간을 실제로 거듭나게 하고, 악과 거짓에서 벗어나게 하며, 천국 질서 안으로 인도하시는 ongoing process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salvation(구원)은 단순히 언젠가 천국 입장권을 받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실제로 사랑과 진리가 형성되는 현재적 과정입니다. 그래서 saves는 현재형으로 쓰입니다.

 

즉,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redeemed’는 주님께서 인류 전체를 위해 이미 이루신 객관적, 우주적 구속의 역사이고, ‘saves’는 주님께서 지금 각 인간 안에서 계속 행하고 계시는 개인적, 실제적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둘은 연결되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식으로 말하면, 주님께서 먼저 구속(redemption)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인간이 실제로 구원(salvation)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지옥들을 제압하시고 천국 질서를 회복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아예 구원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redemption은 구원의 가능성을 연 사건이고, salvation은 그 가능성이 각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문맥상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proprium은 본래 죽은 것이며, 오직 주님만이 참된 Own, 곧 생명 자체를 가지고 계신다고 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자신의 신적 Own으로 인간을 redeem하셨고, 같은 신적 Own으로 지금도 인간을 save하시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는 생명을 만들 수 없고, 오직 주님의 신적 Proprium, 곧 신적 생명만이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사실 시간 구조까지 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결정적 구속(redemption)과 현재 진행 중인 구원(salvation)이 하나의 문장 안에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AC.149, 심화 8, ‘속 사람, 영, 영혼, own(proprium), 자아’

AC.149.심화 8. ‘속 사람, 영, 영혼, own(proprium), 자아’ 속 사람, 영, 영혼, own(proprium), 자아 등 이런 것들이 다 다른 건가요, 아니면 그냥 한 가지에 대한 서로 다른 명칭인가요? 이것은 스베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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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심화 6, ‘출12:46’

AC.149.심화 6. ‘출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출12:46) 이 구절이 AC.149에 인용된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명령이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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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12:46)

 

 

이 구절이 AC.149에 인용된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명령이 단순한 제사 규정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신적 인성 안에 있는 가장 외적인 것까지도 완전하고 손상되지 않은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통해, ‘(bones)가 인간 안의 가장 바깥층, 곧 외적 진리들과 외적 인간의 구조를 뜻한다는 점을 다시 보여 줍니다.

 

12:46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문자적으로는 어린양 제사의 규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서 유월절 어린양은 궁극적으로 주님 자신, 특히 인간을 구속하시는 주님의 신적 인성을 표상합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각 세부 규정들도 단순 의식법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는 앞에서 계속 설명된 것처럼, 가장 외적이고, 그걸 지지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사람 몸에서 뼈가 몸 전체를 지탱하듯, 영적 의미에서 뼈는 인간 안의 가장 바깥 진리들, 외적 삶의 구조, 말씀의 문자적 층 등을 뜻합니다. 따라서 뼈를 꺾지 않는다는 것은, 그 외적 층이 파괴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 점은 특별히 주님의 영화(glorification)와 연결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주님은 가장 안쪽 신성만이 아니라, 가장 바깥의 인성까지도 완전히 신적 질서 안으로 영화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린양의 뼈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인성 안의 가장 외적인 것까지도 완전하게 보존되고 신적 생명 안에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이것은 말씀 자체와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종종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같은 것으로 봅니다. 즉, 가장 바깥 구조이지만 전체를 지탱하는 층입니다. 그래서 뼈가 꺾인다는 것은 외적 진리의 파괴와 왜곡을 뜻할 수 있고, 반대로 뼈가 온전하다는 것은 진리의 외적 구조가 보존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병사들이 주님의 다리는 꺾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바로 이 유월절 규례의 성취로 이해됩니다. 즉, 유월절 어린양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처럼, 참 어린양이신 주님의 가장 바깥 인성까지도 완전히 보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1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가 뜻하는 가장 외적이며, 또 그걸 지지하는 진리와 구조가 주님 안에서 완전히 보존되고 살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인간 안에서도 외적 인간, 곧 겉 사람까지도 주님의 생명 질서 안에 들어와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49, 심화 7, ‘redeemed, saves’

AC.149.심화 7. ‘redeemed, saves’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본문에 나오는 위 문장에서 ‘redeemed’와 ‘saves’를 해설해 주세요. 그 차이가 무엇이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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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심화 5, ‘눅24:39’

AC.149.심화 5. ‘눅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24:39) A spirit hath not flesh and bones as ye see me have. (Luke 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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