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국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The God of Heaven Is the Lord
HH.5
교회에 속한 자들은 주님이 천국의 하나님이심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Those who are of the church cannot doubt that the Lord is the God of heaven, for he himself taught,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11:27);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요16:15);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17:2) That all things of the Father are his (Matt. 11:27; John 16:15; 17:2).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8) And that he hath all power in heaven and on earth (Matt. 28:18).
‘하늘과 땅에서’라고 하신 것은, 하늘을 다스리는 분은 땅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주15)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는 것은, 사랑에 속한 모든 선과 신앙에 속한 모든 진리, 곧 모든 지성과 지혜, 그 결과로서의 모든 행복, 한마디로 영원한 생명을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주님께서도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He says “in heaven and on earth,” because he that rules heaven rules the earth also, for the one depends upon the other.15 “Ruling heaven and earth” means to receive from the Lord every good pertaining to love and every truth pertaining to faith, thus 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in consequence all happiness, in a word, eternal life. This also the Lord taught when he said: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He that believeth on the Son hath eternal life; but he that believeth not the Son shall not see life (John 3:36).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 26)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that believeth on Me, though he die yet shall he live;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on Me shall never die (John 11:25,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John 14:6).
주15. 천국 전체가 주님의 것이다. The entire heaven is the Lord’s (n. 2751, 7086).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다. He has all power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s (n. 1607, 10089, 10827). 주님이 천국을 다스리시므로 주님은 또한 천국에 의존하는 모든 것, 곧 지상의 모든 것도 다스리신다. As the Lord rules heaven He rules also all things that depend thereon, thus all things in the world (n. 2026, 2027, 4523, 4524). 주님 홀로 지옥들로부터 떨어트리시고, 악에서 떠나 선 가운데 있게 하시며, 그렇게 해서 구원하시는 권세가 있으시다. The Lord alone has power to remove the hells, to withhold from evil and hold in good, and thus to save (n. 10019).
해설
HH.5는 앞선 글들의 논지를 성경 말씀으로 확증하는 부분입니다. HH.2와 HH.3에서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는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으로 인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교회에 속한 자들’이라면 이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 자신의 말씀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회에 속한 자들’이란 단순히 교적에 이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알고 읽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말씀 안에서 주님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만일 아버지의 모든 것이 아들의 것이라면, 신성은 분리된 두 중심으로 나뉘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그는 ‘하늘을 다스리는 분은 땅도 다스린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은 분리된 체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영적 원인이고, 땅은 그 결과인 외적 표현입니다. 영적 세계가 자연 세계에 유입하고, 자연 세계는 영적 세계에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주권자가 곧 땅의 주권자입니다. 주님이 하늘의 주이시라면, 동시에 우주의 주이십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실질적으로 풀이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통치 권한을 행사하는 왕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하늘을 다스린다는 것은, 사랑에 속한 모든 선과 신앙에 속한 모든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천사들이 지혜롭고 행복한 이유는 그들 안으로 주님의 생명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선과 진리, 지성과 지혜,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행복과 영원한 생명은 모두 주님에게서 유래합니다. 이것이 ‘다스림’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표현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은 단순히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 동의를 뜻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믿음은 주님과의 결합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분에게서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분의 생명이 내 안에 흐르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생명과 연결됩니다. 주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가진다는 것은, 그가 이미 주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선언은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에 담고 있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이를 수 없다는 뜻이며, 진리라는 것은 모든 참된 인식이 그분 안에 있다는 뜻이고, 생명이라는 것은 존재의 근원이 그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교리적 선택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HH.5는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단지 중개자가 아니라, 생명 자체이시며, 사랑과 진리의 근원이시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심이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은 그분과의 결합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천국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은 천국 이해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인간 생명의 근원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 글은 설교적으로도 매우 힘이 있습니다. ‘다스림’을 권위가 아니라 ‘생명의 유입’으로 설명하면, 성도들이 주님 통치의 의미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화
1.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HH.5에서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는 것이 곧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 모든 지성과 지혜, 행복, 영원한 생명을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여기서 ‘받는다’는 말은 오해하기 쉬운 표현입니다. 마치 없던 능력이 갑자기 주입되는 것처럼, 혹은 아이큐가 올라가듯 지적 능력이 증가하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받음’은 그런 외적, 기계적 주입이 아닙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전제부터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생명의 ‘자체 소유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생명의 수용체입니다. 즉, 생명은 본질적으로 주님께 속해 있고,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그는 자주 이런 비유를 씁니다. 태양이 빛과 열을 발할 때, 식물은 그 빛과 열을 받아 자랍니다. 식물은 빛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식물이 기계처럼 자동으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수용 능력과 상태에 따라 성장의 질이 달라집니다.
‘받는다’는 것은 바로 이 수용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사랑과 진리, 곧 선과 지혜를 끊임없이 발하고 계십니다. 천국에서 ‘다스림’은 강압적 통치가 아니라, 이 선과 진리의 지속적 유입입니다. 천사들이 지혜롭고 행복한 이유는, 그들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자유롭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받는다’는 것은 갑자기 지능 지수가 상승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이큐는 자연적 사고 능력의 측면에 속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성(intelligence)과 지혜(wisdom)는 영적 차원의 능력입니다. 진리를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선과 결합된 진리를 보는 능력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이해하는 상태입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천국에서 지혜가 증가한다는 것은 정보를 많이 암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진리를 더 밝게 이해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랑이 중심이 되고, 그 사랑이 주님을 향할 때, 그에 상응하여 이해도 밝아집니다. 그래서 ‘받는다’는 것은 능력의 외적 증가라기보다, 존재의 투명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인간은 수동적 파이프가 아닙니다. 주님의 생명은 끊임없이 흘러오지만,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가 지상 생애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천국에 있는 자들은 그들의 사랑이 이미 주님과 일치해 있기 때문에, 그 유입을 막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더 큰 기쁨과 더 밝은 이해를 ‘받게’ 됩니다.
정리하면, ‘받는다’는 것은 없던 두뇌 기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인간이 수용하도록 창조된 생명과 지혜가 방해 없이 흐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창문이 깨끗해질수록 햇빛이 더 잘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빛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림이 줄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HH.5의 ‘받는다’는 말은 이렇게 풀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과 진리의 근원이 아니며, 주님으로부터 그것을 끊임없이 받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수용이 깊어질수록 지혜와 행복도 깊어진다.
※아래는 위 심화 해설 중 ‘인간은 생명의 수용체’라는 표현을 중심으로 한 번 더 해설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 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리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인간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수용체입니다. 이 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주님으로부터 받는다’는 말도 오해하게 되고, 천국의 지혜와 행복이 무엇인지도 왜곡되기 쉽습니다.
먼저 근원에 대한 문제부터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십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독립적 근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생명은 순간순간 주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옵니다. 마치 전구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류를 받아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전류가 끊기면 전구는 어두워집니다. 전구가 빛의 근원이 아니듯, 인간도 생명의 근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기계적 통로가 아닙니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체’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진리가 끊임없이 유입되지만,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유 때문에 인간은 책임 있는 존재가 됩니다. 수용체이되, 능동적 수용체입니다.
이제 ‘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더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능력이 덧붙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없던 두뇌 기능이 새로 생기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인간이 본래 수용하도록 창조된 구조가 점점 더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이 정화될수록, 이해는 더 밝아집니다. 자기 중심성이 줄어들수록, 진리를 왜곡 없이 보게 됩니다. 이것이 지성과 지혜가 ‘증가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이큐와 같은 자연적 지능은 두뇌 기능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성(intelligence)과 지혜(wisdom)는 영적 차원입니다. 그것은 선과 결합된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참으로 선한지 보고, 그것을 사랑하며, 그에 따라 사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외적 정보 축적이 아니라, 존재의 투명성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태양은 항상 빛과 열을 발합니다. 그러나 창문이 더럽거나 닫혀 있으면 빛은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창문을 닦고 열면 방은 밝아집니다. 방이 스스로 빛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빛을 더 잘 받게 된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는 항상 흘러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 자기 사랑, 왜곡된 관념이 그것을 가립니다. 거듭남이란 결국 창문이 맑아지는 과정입니다.
천국에서 ‘받는다’는 것은 창문이 거의 완전히 투명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점점 더 깊은 사랑과 더 밝은 이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정지된 완성이 아니라, 무한하신 주님으로부터 무한히 더 깊이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수용도 끝이 없습니다.
결국 이 원리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주님은 근원이시고, 인간은 수용체입니다. 생명, 사랑, 진리, 지혜, 행복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수용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더 인간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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