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창3:8)
AC.219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는 그들이 두려워한 내적 딕테이트(an internal dictate)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음성’(voice)이 갖는 의미로부터 분명합니다. 말씀에서 ‘여호와의 음성’(voice of Jehovah)은 말씀 자체(the Word itself), 신앙의 교리(the doctrine of faith), 양심(conscience) 또는 내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a taking notice inwardly),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책망(reproof)을 의미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천둥(thunders)도 ‘여호와의 음성들’(voices of Jehovah)이라고 불립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르기를, That by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s meant an internal dictate of which they were afrai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voice” in the Word, where the “voice of Jehovah” is used to designate the Word itself, the doctrine of faith, conscience or a taking notice inwardly, and also every reproof thence resulting; whence it is that thunders are called the “voices of Jehovah,” as in John: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계10:3) The angel cried with a loud voice, as a lion roareth, and when he had cried seven thunders uttered their voices (Rev. 10:3),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때 외적 음성과 내적 음성이 함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denoting that there was then a voice both external and internal. Again: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계10:7) In the days of the voice of the seventh angel the mystery of God shall be consummated (Rev. 10:7).
또 시편은 말하기를, In David:
32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33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시68:32, 33) Sing unto God, sing praises unto the Lord, who rideth upon 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 lo, he shall send out his voice, a voice of strength (Ps. 68:32–33).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옛적 하늘들의 하늘’(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은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의 지혜를 의미하고, ‘음성’(voice)은 계시(revelation)와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를 의미합니다. 또, 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 denote the wisdom of the most ancient church; “voice,” revelation, and also an internal dictate. Again: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7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시29:3-5, 7-9) The voice of Jehovah is upon the waters; the voice of Jehovah is in power; the voice of Jehovah is in glory; the voice of Jehovah breaketh the cedars; the voice of Jehovah divideth the flames of fir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wilderness to shak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hinds to calve and uncovereth the forests (Ps. 29:3–5, 7–9).
또 이사야서에는, And in Isaiah:
30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1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 (사30:30, 31) Jehovah shall cause the excellency of his voice to be heard, for through the voice of Jehovah shall Asshur be beaten down (Isa. 30:30–31).
라고 하였습니다.
해설
AC.219의 핵심은 창세기 3장 8절의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이 실제 귀로 들리는 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여기서의 ‘음성’(voice)은 양심의 소리, 내적 깨달음, 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책망과 경고를 의미합니다.
타락 이전의 태고교회 사람들은 퍼셉션(perception), 곧 직접적인 영적 지각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주님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느끼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이 시작되자 그들은 더 이상 그 퍼셉션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었다’는 것은, 주님의 내적 말씀과 양심의 경고가 여전히 들리기는 했지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보다 두려워하고 피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같은 음성이 평안과 기쁨이었지만, 죄를 지은 후에는 책망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 전체에서 ‘여호와의 음성’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신적 진리의 발출, 주님의 계시, 양심의 역사, 내적 깨달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여호와의 음성이 백향목을 꺾고 광야를 흔들며 숲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의 진리가 인간 안의 교만과 거짓을 드러내고 흔들어 놓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 구절은 양심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양심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진리가 사람 안에서 울리는 내적 음성입니다. 선한 상태에 있을 때는 그 음성이 위로와 인도처럼 느껴지지만, 악한 상태에 있을 때는 불편함과 두려움으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창세기 3장 8절에서 아담과 하와가 숨은 이유는 주님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변한 것은 인간의 상태였습니다. 같은 태양이 건강한 눈에는 빛이 되지만 병든 눈에는 고통이 되는 것처럼, 같은 주님의 음성이 순수한 상태에서는 기쁨이지만 타락한 상태에서는 두려움으로 경험된 것입니다.
결국 AC.219는 타락의 가장 깊은 결과 가운데 하나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사랑하던 주님의 음성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 난 후 가장 먼저 주님에게서 숨으려 하고, 양심의 소리를 피하려 하며, 내적 책망을 외면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영적 의미라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심화
1. ‘계10:3’
AC.219, 심화 1, ‘계10:3’
AC.219.심화 1. ‘계10:3’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계10:3) The angel cried with a loud voice, as a lion roareth, and when he had cried seven t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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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10:7’
AC.219, 심화 2, ‘계10:7’
AC.219.심화 2. ‘계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계10:7) In the days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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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68:32-33’
AC.219, 심화 3, ‘시68:32-33’
AC.219.심화 3. ‘시68:32-33’ 32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33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시68:32, 33) Sing un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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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29:3-5, 7-9’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7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시29:3-5, 7-9) The voice of Jehovah is upon the waters; the voice of Jehovah is in power; the voice of Jehovah is in glory; the voice of Jehovah breaketh the cedars; the voice of Jehovah divideth the flames of fir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wilderness to shak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hinds to calve and uncovereth the forests (Ps. 29:3–5, 7–9).
이 구절을 AC.219에서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여호와의 소리’(voice of Jehovah)가 단순한 음향이나 천둥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작용하는 신적 진리와 계시, 그리고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시편은 폭풍우가 지나가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천둥이 울리고, 백향목이 꺾이고, 광야가 흔들리고, 불꽃이 갈라지는 장엄한 자연 현상이 묘사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자연 현상에 대한 시적 묘사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에 인간의 영혼과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신적 진리의 작용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먼저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다’는 말에서 ‘물’은 말씀의 진리와 신앙의 지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음성이 물 위에 있다는 것은 신적 진리가 인간의 이해와 신앙 위에 역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위엄차도다’라는 것은 진리 자체가 가진 능력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진리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적 힘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음성은 언제나 힘 있고 영광스럽습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신다’는 표현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백향목은 말씀에서 흔히 인간의 높은 지성과 자랑스러운 이성적 능력을 상징합니다.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은 인간이 자랑하는 지혜와 학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음성이 그것을 꺾는다는 것은, 주님의 진리가 인간 own의 교만한 지혜와 자기 확신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신다’는 말에서 화염은 사랑과 욕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진리가 인간 안의 사랑과 욕망을 분별하고 드러내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무엇이 천국적 사랑이고, 무엇이 자기 사랑인지를 밝혀 줍니다.
또한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시킨다’라는 것은 영적으로 황폐한 상태를 흔들어 깨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는 진리와 선이 부족한 상태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음성은 죽어 있는 양심을 흔들고, 잠든 영혼을 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AC.219의 문맥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벗기신다’는 구절입니다. 오늘날 번역으로는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출산의 이미지로 읽습니다. 암사슴은 선한 애정과 순수한 정서를 상징하며, 새끼를 낳게 한다는 것은 선한 것들이 실제 삶 속에 태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숲을 벗긴다는 것은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시29 전체는 폭풍의 시가 아니라, 여호와의 음성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 주는 시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 위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교만한 백향목을 꺾고, 광야를 흔들고,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며, 숨겨진 것들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AC.21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창3:8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거니시는 음성’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음성은 아담과 하와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지각, 곧 퍼셉션의 흔적을 깨우는 내적 딕테이트였으며, 시29의 여호와의 음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을 비추고, 흔들고, 드러내고, 때로는 책망하는 신적 진리의 작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여호와의 음성’은 귀로 듣는 소리라기보다, 영혼이 듣는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AC.219는 바로 그 사실을 시29를 통해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사30:30-31’
30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1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 (사30:30, 31) Jehovah shall cause the excellency of his voice to be heard, for through the voice of Jehovah shall Asshur be beaten down (Isa. 30:30–31).
이 구절을 AC.219에서 인용한 이유는, ‘여호와의 목소리’(voice of Jehovah)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신적 진리의 계시와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를 의미하며, 그 진리가 인간 own에서 나온 거짓된 추론을 무너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19의 전체 목적은 창3:8의 ‘동산에서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음성을 단순한 청각적 소리로 보지 않고, 양심과 퍼셉션 속에 울리는 주님의 내적 부르심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말씀 전체에서 ‘여호와의 음성’이 언제나 계시와 진리의 작용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0장의 경우, 특히 ‘앗수르’(Asshur)가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에서 앗수르는 흔히 이성적 능력, 추론 능력, 지성(intellectual reasoning)을 의미합니다. 원래 이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 own 안에 머물면서 이성을 주님 위에 두게 되면, 앗수르는 진리를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진리를 재판하는 주인이 됩니다.
바로 AC.194-206에서 본 뱀의 길이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는다’가 아니라, ‘내 감각과 내 이성이 납득해야 믿겠다’는 태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신앙의 신비를 판단하려는 상태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라는 말은, 신적 진리가 인간 own의 교만한 추론을 무너뜨린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진리 앞에서는 인간의 가장 정교한 논리도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마치 AC.215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지혜를 절대화한 사람은 결국 거짓의 심연으로 빠지게 되지만, 여호와의 음성은 그 거짓을 드러내고 깨뜨립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화염’, ‘폭풍’, ‘폭우’, ‘우박’ 역시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런 표현들은 진리가 인간 안의 거짓과 악을 심판하고 정화하는 다양한 작용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음성은 부드러운 위로의 음성일 뿐 아니라, 때로는 인간의 자기 확신과 교만을 무너뜨리는 음성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창3의 아담과 하와가 들은 음성과도 연결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음성이 자기들의 상태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숨겨진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자기 own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빛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AC.219에서 사30:30-31을 인용한 이유는, ‘여호와의 음성’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역사하는 신적 진리이며, 특히 인간 own의 추론과 자기 지혜를 꺾고 진리 앞에 복종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면 AC.215의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와 이 구절은 서로 짝을 이루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전자는 자기 지혜를 의지하는 인간의 상태를 보여 주고, 후자는 그런 인간적 지혜를 무너뜨리는 여호와의 음성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창3의 이야기 전체는 바로 그 두 길, 곧 자신의 음성을 따르는 길과 주님의 음성을 따르는 길 사이의 갈림길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218,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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