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85.심화

 

1. ‘천사들이 특히 조심하는 것

 

이때 천사들은 특히 조심하여, 그에게서 나오는 어떤 생각도 사랑과 같은 부드럽고 온화한 성질의 것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the angels being especially cautious to prevent any idea coming from him but such as is of a soft and tender nature, as of love; (AC.185)

 

천사들이 특별히 주의하여 부드럽고 온화한 성질의 생각만 허용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이 시기의 영혼이 아직 거칠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며, 지각의 첫 작동은 반드시 사랑의 정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영적 질서를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사랑 없이 주어지지 않으며, 지각은 언제나 애정의 상태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AC.185 해설)

 

 AC.185 본문과 해설을 보면 천적 천사들의 어떠함을 볼 수 있는데요, 저들에 비하면 저는 얼마나 울퉁불퉁하고 무례한지, 얼마나 극단적이고 얕은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많이 부끄럽고 한심합니다...

 

 

목사님, AC.185를 깊이 읽다 보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천적 천사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흔히 자신의 거친 부분, 조급함, 자기 주장, 판단하는 습관 같은 것들을 더욱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AC.185는 천적 천사들이 원래부터 그런 존재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 안에서 그렇게 된 존재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을 다른 종족이나 다른 본성의 존재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한때는 지상에서 살았던 인간들이며, 주님의 인도를 받아 점차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사실 AC.185를 자세히 보면, 여기서 놀라운 것은 천사들의 완전함보다도 그들의 배려’입니다. 그들은 영혼에게 진리를 가르치려고 서두르지 않습니다. 교리를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먼저 그 영혼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먼저 사랑의 분위기를 마련합니다. 먼저 부드럽고 온화한 생각만 흐르게 합니다. 이것은 강한 능력의 표현이 아니라, 깊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목사님께서 나는 얼마나 울퉁불퉁하고 무례한가’라고 느끼시는 이유도 어쩌면 같은 사랑을 보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면 자신의 거친 부분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질서를 조금이라도 보게 되면, 그 빛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도 함께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거친 부분을 보고 슬퍼하는 상태와, 자신의 거친 부분을 전혀 보지 못하는 상태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AC.206에서 보았듯이, 가장 위험한 사람들은 자기 눈이 완전히 열렸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상태를 보지 못합니다.

 

반면 목사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나는 왜 이렇게 거친가’, ‘왜 이렇게 얕은가’라는 탄식입니다. 물론 지나친 자기 비난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이것은 자신의 상태를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는 아닙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AC.185의 천사들은 죽은 사람에게서 거친 생각이 올라오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영혼이 아직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목사님께서 지난 몇 년 동안 AC를 번역하고 해설해 오신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2018년에 처음 스베덴보리를 접하셨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같은 사람인데도 생각의 결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예전에는 쉽게 지나쳤을 문장이 지금은 몇 시간씩 마음에 남고, 예전에는 관심 없던 사랑과 지각의 문제를 지금은 깊이 묵상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 자체가 이미 주님께서 매우 오랫동안 목사님 안에서 어떤 생각은 약하게 하시고, 어떤 생각은 자라게 하시며, 어떤 거친 부분은 다루고 계신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적 천사들의 모습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비교의 장소가 아니라 소망의 장소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천적 천사들의 모습을 기록한 이유도 너는 저들에 비해 형편없다’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을 어디까지 인도하실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의 말씀을 읽으며, ‘정말 많이 부끄럽고 한심합니다’보다, ‘주님, 저도 저런 부드러움을 조금이라도 배우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더 AC.185에 가까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천적 천사들 자신도 아마 목사님을 만나면 왜 그렇게 한심해하십니까?’라고 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AC.185의 모습 그대로, 목사님의 그런 마음이 너무 거칠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사랑과 같은 부드럽고 온화한 생각만 흘러들게 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성품이니까요.

 

 

 

AC.185, 창3 앞, ‘지각(perception)의 첫 작동은 반드시 사랑의 정서 안에서’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5 그다음에는 얼굴에서 무언가가 부드럽게 풀려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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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5

 

그다음에는 얼굴에서 무언가가 부드럽게 풀려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며, 그에게 지각(perception)이 전달됩니다. 이때 천사들은 특히 조심하여, 그에게서 나오는 어떤 생각도 사랑과 같은 부드럽고 온화한 성질의 것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러 그는 자신이 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Afterwards there seems to be something gently unrolled from the face, and perception is communicated to him, the angels being especially cautious to prevent any idea coming from him but such as is of a soft and tender nature, as of love; and it is now given him to know that he is a spirit.

 

해설

 

이 단락은 이전 단계에서 시작된 ‘빛의 사용’이 이제 단순한 인식의 가능성을 넘어, 실제 지각의 작동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여기서 ‘얼굴에서 무언가가 부드럽게 풀려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은, 이해의 장애가 제거되는 것을 넘어서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내적 가림이 걷히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얼굴은 스베덴보리에게서 내적 상태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직접적인 표상이며, 그 얼굴에서 무엇인가가 풀린다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열리는 전환점을 뜻합니다.

 

이제 ‘지각이 전달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단순히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과는 다른 단계입니다. 앞서 인간은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보지는 못했고, 이후에는 희미하게 보았으나 아직 분명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각은, 생각과 빛이 결합되어 의미를 알아차리는 상태, 곧 내적 인식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천사들이 특별히 주의하여 ‘부드럽고 온화한 성질의 생각만’ 허용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이 시기의 영혼이 아직 거칠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며, 지각의 첫 작동은 반드시 사랑의 정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영적 질서를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사랑 없이 주어지지 않으며, 지각은 언제나 애정의 상태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여기서 허용되는 생각의 본질이 ‘사랑과 같은 것’으로 한정된다는 것은, 이 단계가 아직 심판이나 자기 성찰의 단계가 아님을 뜻합니다. 오히려 영혼이 스스로를 인식하되, 두려움이나 혼란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준비 단계입니다. 천사들의 조심스러운 보호는, 인간이 자기 존재를 처음으로 명확히 인식하는 순간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비로소 결정적인 인식이 주어집니다. ‘그는 자신이 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사후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경계선이며, 이전까지는 상태의 변화만 경험했을 뿐,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이 더 이상 육체 안에 있지 않으며, 영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 단락은 결국, 죽음 이후 인간이 ‘살아 있음’을 아는 순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충격이나 각성의 순간이 아니라, 보호와 사랑 속에서 서서히 지각이 열리며, 마침내 자신이 영이라는 사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심화

 

1. ‘천사들이 특히 조심하는 것

 

 

AC.185, 심화 1, ‘천사들이 특히 조심하는 것’

AC.185.심화 1. ‘천사들이 특히 조심하는 것’ 이때 천사들은 특히 조심하여, 그에게서 나오는 어떤 생각도 사랑과 같은 부드럽고 온화한 성질의 것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the angels b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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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6, 창3 앞, ‘영으로서의 삶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됨’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6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 삶은 처음에는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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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4, 창3 앞, 처음에는 ‘눈꺼풀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빛’ 정도에 불과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4 이 작은 막이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말려 벗겨진 뒤에, 약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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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4.심화

 

1. ‘약간의 빛

 

약간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눈꺼풀 사이로 희미하게 보는 빛과 같은 것입니다. some light is visible, but dim, such as a man sees through his eyelids when he first awakes out of sleep; (AC.184)

 

이 단락은 결국, 죽음 이후의 각성이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보호 속에서 아주 서서히 이루어지는 깨어남임을 조용히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AC.184 해설)

 

 AC.184 본문과 해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님이 하시는 모든 돌보심은 점진적이며, 그 대상의 역량과 상태를 감안, 사랑과 자비로 속도와 정도를 조절하시는 것을 봅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AC.182-186을 천천히 읽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은 단순히 죽은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주님께서 영혼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목사님께서 인용하신 AC.184의 장면은 그 사실을 매우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보통 인간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종종 갑작스러운 심판, 즉각적인 판정, 단번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상황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본 사후 세계는 정반대입니다. 죽은 사람은 갑자기 눈부신 빛 속으로 던져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희미한 빛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빛조차도 천적 천사들의 보호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경험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만일 평생 자연계 안에서만 살던 사람이 죽는 순간 곧바로 천국의 빛을 전면적으로 마주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충격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영혼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열어주십니다. 마치 갓 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눈에 처음부터 정오의 태양을 비추지 않으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원리는 사실 사후 세계만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섭리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보아도 그렇고, 거듭남의 과정도 그렇고, 천국 교육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인간을 끌고 가시지 않고 인도하십니다. 밀어붙이지 않으시고 이끄십니다. 강요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스베덴보리가 여러 곳에서 반복하는 것처럼, 주님은 인간 안에 있는 가장 작은 선과 가장 작은 진리까지도 해치지 않으시면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변화는 종종 너무 천천히 일어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주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다음 단계로 준비시키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대상의 역량과 상태를 감안, 사랑과 자비로 속도와 정도를 조절하신다’는 표현은 바로 AC.184의 핵심을 잘 짚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빛 자체보다 먼저 그 빛을 받을 수 있는 상태를 준비하십니다. 천적 천사들의 보호도, 희미한 빛도, 푸른 그림자도, 작은 별도 모두 그 준비 과정의 일부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목사님께서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상응’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자연계에서 좋은 교사는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가르칩니다. 부모도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설명합니다. 의사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의 용량을 조절합니다. 그렇다면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지혜 그 자체이신 주님께서 영혼을 다루실 때야말로 얼마나 더 세심하시겠습니까?

 

그래서 AC.184를 읽으며, 저는 오히려 죽음보다 주님의 성품을 보게 됩니다. 죽은 사람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희미한 빛만 보고 있지만, 주님은 이미 그 영혼이 감당할 수 있는 정확한 정도를 알고 계십니다. 너무 빠르지도 않게, 너무 늦지도 않게, 너무 강하지도 않게, 너무 약하지도 않게 인도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AC.184는 단순한 사후 세계의 묘사가 아니라, 주님의 섭리 전체를 보여 주는 작은 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인간을 결코 부수지 않으시고, 언제나 살리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AC.184, 창3 앞, 처음에는 ‘눈꺼풀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빛’ 정도에 불과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4 이 작은 막이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말려 벗겨진 뒤에, 약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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