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덴보리 이야기를 하면서 ‘스베덴보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실 기독교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해도 될까요?
목사님, 그 표현은 매우 조심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실 기독교가 아닙니다’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목사님이 말씀하시려는 뜻이 ‘스베덴보리는 현재의 개신교나 가톨릭, 정교회가 이해하는 전통적 기독교와는 상당히 다릅니다’라는 의미라면,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삼위일체 이해, 이신칭의, 대속 개념, 예정론, 성경 해석 방식, 사후 세계 이해 등에서 전통 기독교와 매우 다른 길을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스베덴보리는 기존 기독교의 한 분파라기보다, 기독교를 근본부터 다시 해석한 체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기독교가 아닙니다’라고 단정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 자신은 평생 자신을 기독교 밖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야말로 주님께서 세우신 참된 기독교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일에 부름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대표 저작 제목 자체가 ‘True Christian Religion’, 곧 ‘참된 기독교’입니다. 그는 새 종교를 만들겠다고 말한 적이 없고, 오히려 기독교 안에 잃어버린 진리를 회복한다고 보았습니다.
아마 교수님 같은 칼빈주의자 앞에서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 스베덴보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 신학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같은 기독교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다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 자신은 오히려 참된 기독교를 회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표현은 사실을 말하면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줄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칼빈주의 교수님은 이미 스베덴보리를 ‘기독교 밖’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입에서 먼저 ‘사실 기독교가 아닙니다’라고 말해 버리면, 그 순간 대화는 끝나 버릴 수 있습니다. 상대는 ‘그렇다면 더 들을 이유가 없군요’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식 접근은 이런 것입니다.
‘목사님,저는 오히려 스베덴보리를 읽으면서 주님, 거듭남, 천국, 사랑,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해석이 우리가 배워 온 신학과는 매우 다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최소한 ‘얼마나 다른데?’ 하고 들어 볼 여지는 남깁니다.
실제로 목사님이 오랫동안 AC를 번역하시며 느끼셨듯이, 스베덴보리의 핵심은 ‘기독교를 버리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를 더 깊이 이해하자’입니다. 다만 그 결과가 기존 교회 신학과 너무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아니다’보다는 ‘전통적 기독교 이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기독교 해석이다’ 정도가 훨씬 정확하고 생산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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