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4:3-5)

 

AC.326

 

각각의 예배가 묘사됩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예배는 가인의 제물(offering of Cain), 체어리티의 예배는 아벨의 제물(offering of Abel)로 묘사됩니다. (3-4)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는 받아들여졌으나, 분리된 신앙에서 비롯된 예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4-5) The worship of each is described, that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by the “offering of Cain”; and that of charity, by the “offering of Abel.” (verses 3–4) That worship from charity was acceptable, but not worship from separated faith. (verses 4–5)

 

 

해설

 

AC.326은 앞의 AC.325에서 제시된 ‘가인’과 ‘아벨’의 의미를 이제 ‘예배’의 문제로 발전시킵니다. AC.325에서 가인은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아벨은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단지 사람 안에 있는 두 가지 관념이나 교리로 머물지 않습니다. 각각 자기에게 맞는 예배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창4:3-4에서 가인도 제물을 드리고, 아벨도 제물을 드립니다. 겉으로 보면, 둘 다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사람이며, 둘 다 제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AC.326은 그 차이가 제물의 외적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표현은 ‘worship from charity’, 곧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입니다. 주님께 받아들여지는 예배는 단순히 예배의 형식이 바르고, 교리가 정확하며, 기도와 찬송과 헌물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예배 안에 체어리티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의 선을 바라는 내적 생명이 외적 예배 안으로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325에서 살펴본 태고교회의 본래 질서와 같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습니다. 사랑이 먼저였고,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예배 역시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예배는 사랑과 별개로 주님께 무엇인가를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사랑과 선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가인의 제물’은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에서 나오는 예배입니다. 이것은 가인이 주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거나 예배 자체를 거부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가인도 제물을 드립니다. 즉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도 얼마든지 종교적일 수 있고,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교리를 말하고 주님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 안에 체어리티가 없다면, 겉으로는 주님을 향한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생명의 근원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었듯이, 예배도 삶에서 분리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두 형제가 가져온 물건을 비교하시고, 하나는 좋아하시고 다른 하나는 싫어하셨다는 식으로 읽어서는 속뜻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제물 그 자체보다 그것을 드리는 사람의 내적 상태입니다. 아벨의 제물은 체어리티에서 나온 예배이므로 받아들여졌고, 가인의 제물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에서 나온 예배이므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도 주님께서 임의로 거부하셨다는 뜻이라기보다, 사랑에서 분리된 것은 그 자체로 주님의 사랑과 결합할 수 없다는 영적 질서를 나타냅니다.

 

이 점에서 ‘가인의 제물’은 매우 엄중한 표상입니다. 사람은 교리적으로 옳은 말을 하면서도 가인의 제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을 드리며, 심지어 열심히 신앙을 변호하면서도 체어리티를 삶에서 밀어낼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어떤 진리를 알고 있는가’, ‘내 교리가 얼마나 정확한가’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나는 이웃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알고 있는 진리에 따라 실제로 살아가는가’, ‘나의 신앙은 다른 사람의 선을 바라는 사랑으로 나타나는가’와 분리된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가인의 원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AC.326을 ‘교리는 중요하지 않고,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뜻으로 읽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앞의 AC.325에서도 매우 중요했던 구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문제 삼는 것은 ‘faith’ 자체가 아니라 ‘faith separated from love’, 곧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과 체어리티는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사람이 무엇이 선인지 알게 하고, 선은 그 진리를 삶으로 살아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다시 하나를 이룹니다. 아벨의 예배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신앙을 버리고 사랑만 남기라는 뜻이 아니라, 신앙이 본래의 생명인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AC.326이 ‘아벨의 제물’을 단순히 ‘체어리티’라고만 하지 않고 ‘체어리티에서 비롯된 예배’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체어리티 자체와 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예배는 구별됩니다. 참된 예배의 근원은 예배 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에서 형성됩니다. 이웃을 속이고 미워하며 자기 이익만 추구하다가 예배 시간에 거룩한 형식을 갖춘다고 해서 그 형식 자체가 내적 예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주님의 계명에 따라 살고, 악을 죄로 여기며 피하고, 이웃의 선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그 삶에서 나온 사랑이 기도와 찬송과 말씀 읽기와 헌물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예배의 내적 질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의 질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제물’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주님께 무엇인가를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을 바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랑과 신앙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사람에게 있는 참된 선과 진리는 본래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라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제물은 ‘제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라는 proprium의 행위라기보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선과 진리가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다시 주님께 돌려드립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체어리티에서 나온 예배에는 이러한 인정이 있지만,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은 점차 ‘내가 안다’, ‘내가 믿는다’, ‘내가 드린다’는 자기의 공로와 자기 의로 기울 위험이 있습니다.

 

AC.326은 그래서 창4의 비극이 더욱 깊어지는 두 번째 단계를 보여 줍니다. AC.325에서 첫 번째 분리는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제 AC.326에서는 그 내적 분리가 예배에까지 나타납니다. 사랑과 신앙이 갈라지면 예배도 둘로 갈라집니다. 겉으로는 둘 다 제물을 드리지만, 하나는 체어리티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에서 나옵니다. 결국 창4가 묻는 것은 ‘당신은 예배를 드리는가?’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질문은 ‘당신의 예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입니다.

 

 

심화

 

1. ‘왜 가인의 제물은?’

 

 

AC.326, 심화 1, ‘왜 가인의 제물은?’

AC.326.심화 1. ‘왜 가인의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이 대목은 AC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문자 그대로, 그러니까 겉으로만 읽으면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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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5, 창4:1-2, ‘가인, 아벨의 속뜻’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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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5.심화

 

1.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다

 

 

AC.325에서 특히 깊이 살펴볼 표현은 ‘태고교회는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다’는 첫 문장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먼저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고, 믿음에 따라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순서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에게는 그 순서가 달랐습니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깊은 생명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그 사랑에서 진리를 지각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먼저 논증하여 믿은 뒤 선을 행한 것이 아니라, 선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 선에 속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이것이 퍼셉션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퍼셉션은 외부에서 배운 교리를 논리적으로 검토하여 결론을 내리는 능력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 안에서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내적으로 지각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에서는 사랑과 신앙을 서로 떼어 놓는 것 자체가 본래의 질서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랑 안에 진리가 있었고, 진리 안에는 그 진리를 낳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을 통하여 신앙하였다’는 말은 바로 이 하나 됨을 뜻합니다.

 

그런데 후손들에게서 이 천적 질서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지각하기보다, 진리를 사랑과 별개로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신앙에 관한 교리’가 독립적인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교리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퍼셉션이 약해지는 사람에게는 진리를 가르치고 보존하기 위한 교리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교리가 사랑과 삶에서 분리되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는가’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는가’보다 우위에 서기 시작하는 데 있습니다. AC.325는 이 최초의 분리를 ‘가인’이라는 이름으로 표상합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를 돌아보게 하는 매우 강한 말씀입니다. 교리가 아무리 정교하고, 성경 지식이 아무리 풍부하며, 신앙 고백이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을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끌지 않는다면 가인의 원리가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것은 교리를 가볍게 여기라는 뜻도 아닙니다. 아벨만 남기고, 가인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참된 질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선을 섬기고, 신앙은 사랑을 표현하며, 사람이 아는 것은 그가 살아가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창4의 첫 비극은 살인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아벨이 들에서 죽기 전에 이미 사랑과 신앙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갈라졌습니다. 외적인 살인은 그보다 앞서 일어난 내적인 분리의 결과입니다. 이 점에서 AC.325는 창4 전체의 출발점을 매우 깊은 곳에 둡니다. 교회의 파괴는 밖에서 누군가 교회를 공격할 때, 먼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진리가 선으로부터, 교리가 삶으로부터 분리될 때 이미 시작됩니다. 그리고 창4는 이제 그 작은 분리가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는지를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하여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AC.325, 창4:1-2, ‘창4 본문, 개요, 배경’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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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4:1-2)

 

개요

 

AC.325

 

태고교회는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가인(Cain)이라 하였고,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를 아벨(Abel)이라 하였습니다. (1-2) The most ancient church had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 but there arose some who separated faith from love. The doctrine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was called “Cain”; and charity, which is love toward the neighbor, was called “Abel.” (verses 1–2)

 

 

해설

 

AC.325는 창4의 속뜻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열쇠를 제시합니다. 창4의 가인과 아벨을 단순히 인류 최초의 두 형제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 데 머물지 않고, 태고교회 안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영적 분리를 보여 주는 표상으로 읽게 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가인’은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아벨’은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후 전개되는 가인과 아벨의 관계는 단순한 형제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본래 하나였던 신앙과 사랑이 어떻게 분리되고, 마침내 신앙이 체어리티를 밀어내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교회의 영적 역사입니다.

 

첫 문장인 ‘태고교회는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습니다’는 특히 중요합니다. 여기서 ‘through love’를 단순히 ‘주님을 사랑하면서 믿었다’ 정도로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에게 사랑은 신앙에 덧붙여지는 하나의 덕목이 아니라 신앙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주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 안에서 무엇이 선이며 진리인지를 퍼셉션으로 지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먼저이고, 신앙이 그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신앙은 두 개의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진리이므로 믿고, 그러므로 사랑해야 한다’는 순서보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그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지각한다’는 천적 질서가 있었습니다.

 

이 점은 앞에서 살펴본 태고교회의 본성과 그대로 연결됩니다. 천적 인간에게는 의지와 이해가 하나를 이루고 있었으며, 선을 사랑하는 의지 안에서 진리를 지각하는 이해가 나왔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신앙은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교리 내용을 지적으로 동의하고 인정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살아 있는 인식이었습니다. 그래서 AC.325의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는 태고교회의 신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러나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창4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신앙이 거짓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신앙 자체는 참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생명의 근원인 사랑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나무에서 가지를 떼어 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가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줄기와 뿌리에서 분리되면서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리와 신앙은 선과 사랑 안에 있을 때는 살아 있지만, 그것들이 사랑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것이 되면 본래의 생명을 잃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것이 ‘가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가인을 단순히 ‘신앙’이라고 하지 않고,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라고 매우 정확하게 규정합니다. 이 구별은 앞으로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창4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 자체가 아니라 ‘분리된 신앙’입니다. 따라서 가인을 ‘악한 신앙’이라고 처음부터 단순화해서도 안 됩니다. 본래 교회 안에 있던 참된 신앙의 요소가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어 자기 스스로 서려 하기 시작한 상태가 가인입니다. 이후 그것이 점점 자신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면서, 체어리티를 억압하고, 마침내 ‘아벨을 죽이는’ 단계까지 나아갑니다.

 

반면 ‘아벨’은 ‘체어리티, 곧 이웃을 향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체어리티는 단순한 친절이나 구제 활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을 이웃에게 행하려는 사랑이며, 신앙이 실제 생명이 되게 하는 내적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의 관계는 ‘교리와 선행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단순한 경쟁 관계가 아닙니다. 본래 두 형제는 함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체어리티 안에서 살아 있고, 체어리티는 진리를 통하여 무엇이 참된 선인지 분별합니다. 문제는 가인이 아벨과 함께 있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독립하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AC.324에서 말한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리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처음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태고교회가 쇠퇴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새로운 거짓 교리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본래 교회 안에 있던 하나의 요소인 신앙이 전체 생명인 사랑에서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타락은 언제나 노골적인 거짓에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것의 일부를 전체에서 떼어 내어 그것만을 절대화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참된 것이지만, ‘신앙만’이 되면 질서가 뒤집힙니다. 진리는 참된 것이지만, 사랑과 삶에서 떨어진 진리가 되면 점차 자기 지성과 자기 의를 섬기는 수단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proprium의 문제도 연결됩니다. 태고교회의 사람은 선과 진리가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퍼셉션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점차 ‘자기의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나는 진리를 안다’, ‘나는 옳은 교리를 가지고 있다’, ‘나는 믿는다’는 의식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보다 앞서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은 주님께로 이끄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 지성과 자기 의를 세우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가인의 길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을 단순히 ‘악과 선’으로 대응시키는 것은 아직 너무 이릅니다. 처음의 가인은 본래 교회의 신앙에서 나온 것이며, 아벨 역시 같은 교회 안의 체어리티입니다. 비극은 둘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데 있지 않고, 본래 하나여야 할 것이 분리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점을 붙들어야 앞으로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말씀의 속뜻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악이 선을 죽였다는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자신을 교회의 본질로 높이면서 마침내 체어리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심화

 

1.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다

 

 

AC.325, 심화 1,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다’

AC.325.심화 1.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다’ AC.325에서 특히 깊이 살펴볼 표현은 ‘태고교회는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신앙하였다’는 첫 문장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생활에 익숙한 사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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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6, 창4:3-5, ‘가인의 제물, 아벨의 제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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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4, 창4, ‘창4 본문, 개요, 배경’(AC.324-337)

창4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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