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2
‘사람’(man), ‘셋’(Seth), ‘에노스’(Enosh)라 하는 이 세 교회는 태고교회를 이루지만, 퍼셉션의 완전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교회의 퍼셉션 능력은 뒤이어 나타난 교회들에서 점차 감소하여 더 일반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는 앞서 열매나 그 씨앗에 대해, 또 뇌에 대해 말한 바와 같습니다. 완전성은 분명하게 퍼셉션하는 능력, 곧 또렷함에 있으며, 퍼셉션이 덜 분명하고 더 일반적일수록 그 능력은 감소합니다. 그러면 이전에 더 분명하던 퍼셉션을 대신하여 더 어두운 퍼셉션이 뒤따르게 되고, 이로써 그것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These three churches, “man,” “Seth,” and “Enosh,” constitute the most ancient church, but still with a difference of perfection as to perceptions: the perceptive faculty of the first church gradually diminished in the succeeding churches, and became more general, as observed concerning fruit or its seed, and concerning the brain. Perfection consists in the faculty of perceiving distinctly, which faculty is diminished when the perception is less distinct and more general; an obscurer perception then succeeds in the place of that which was clearer, and thus it begins to vanish away.
해설
이 글은 태고교회 내부의 구조를 한 문장으로 종합하는 매우 핵심적인 진술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man), ‘셋’(Seth), ‘에노스’(Enosh)를 각각 독립된 교회로 부르면서도, 동시에 이 셋이 함께 태고교회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는 태고교회가 단일하고 균질한 실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퍼셉션의 완전성을 지닌 여러 상태들의 연합체’였음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완전성’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의 완전성을 외적 거룩함이나 도덕적 무결성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완전성은 오직 하나, ‘얼마나 분명하게 퍼셉션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퍼셉션이 분명할수록 교회는 더 완전하며, 퍼셉션이 흐려질수록 완전성은 감소합니다. 이 기준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급진적입니다.
첫 번째 교회, 곧 ‘사람’(man, 아담)으로 불리는 교회는 가장 분명한 퍼셉션을 지녔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거의 즉각적으로 인식되었고, 혼의 작용과 삶의 행위 사이에 간극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퍼셉션은 뒤이은 교회들에서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셋의 교회에서도 여전히 퍼셉션은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이전보다 덜 즉각적이었고, 에노스의 교회에서는 더욱 일반적인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이 세 교회 중에서 비교하자면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변화를 ‘일반화’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퍼셉션이 일반화된다는 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분별이 줄어들고, 보다 포괄적이고 흐릿한 인식으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이는 열매와 씨앗의 비유에서, 중심의 핵이 바깥층으로 갈수록 희석되는 과정과 같습니다. 본질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선명도는 점차 낮아집니다.
뇌의 비유 역시 이 점을 보강합니다. 혼의 작용이 가장 미묘하게 일어나는 피질 물질에서 멀어질수록, 작용은 점점 더 매개되고 둔해집니다. 이는 기능의 상실이 아니라, ‘작동 방식의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계속될 때, 어느 순간에는 작용 자체가 더 이상 분명히 인식되지 않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지점을 ‘퍼셉션의 소멸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봅니다.
중요한 점은, 퍼셉션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퍼셉션의 소멸이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임을 분명히 합니다. 먼저 덜 분명해지고, 그다음에 더 일반적이 되며, 마침내 더 어두운 퍼셉션이 이전의 밝은 퍼셉션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퍼셉션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한순간의 붕괴가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소멸입니다.
※ 퍼셉션이 어두워진다는 건 어떤 상황, 당면한 문제에 관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래서 그 대안으로 금식기도, 백일, 또는 천일기도, 안수기도, 그리고 기도원을 가거나 수도원을 가거나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어두운 사람들이며, 그런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천사들은 주님의 뜻을 알려고 금식기도 같은 거 안 하거든요...
목회적으로 이 문단은 매우 날카로운 자기 성찰의 기준을 제공합니다. 신앙이 여전히 존재하고, 말과 형식이 유지되고 있을지라도, 퍼셉션이 점점 더 일반적이고 흐릿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완전성의 감소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문제는 퍼셉션이 ‘있느냐 없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얼마나 분명하냐’의 문제입니다.
또한 이 글은 태고교회의 쇠퇴를 비극으로만 보지 않게 합니다. 이 변화는 인간 조건 안에서 불가피한 것이었고, 주님께서는 각 단계에 맞는 교회 상태를 허락하셨습니다. 셋과 에노스의 교회는 첫 번째 교회보다 덜 완전했지만, 여전히 태고교회의 일부였고, 그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완전성의 차이는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상태의 차이’입니다.
개인의 신앙 여정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떤 시기에는 신앙이 매우 분명하고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더 일반적이고 덜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책이나 절망이 아니라, 퍼셉션의 흐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퍼셉션이 흐려질수록, 우리는 더 의식적인 선택과 훈련을 통해 주님과의 연결을 붙들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AC.502는 태고교회의 구조와 쇠퇴를 하나의 명확한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교회의 완전성은 퍼셉션의 분명함에 있으며, 퍼셉션이 일반화되고 어두워질수록 그 완전성은 감소합니다. 이 감소가 누적될 때, 퍼셉션은 마침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통찰은 창세기 5장을 넘어, 모든 시대의 교회와 모든 개인의 신앙을 평가하는 깊은 기준을 제공합니다.
AC.501, 창5:9, '이어지는 교회들 간의 관계'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1 시간의 경과 속에서 서로 이어서 나타난 교회들, 곧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태어났다고 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비유하자면, 열매나 그 씨앗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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