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39.심화

 

2. ‘33: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33:28) Israel hath dwelt confidently alone (Deut. 33:28).

 

 

이 구절이 AC.139에 인용된 이유는, 바로 앞의 렘49:31 홀로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홀로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같은 표현이라도, 문맥과 표상하는 대상에 따라 정반대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자주 보여 주는데, 여기의 홀로’는 proprium의 독립 상태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안전히 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겉으로는 둘 다 alone’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서는 나는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자기중심의 고립을 뜻했고, 여기 신33:28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스베덴보리의 상응에서 지성(intelligence),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 안에서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홀로 거한다’는 것은, 세상적 의존이나 자기 확신 속에 산다는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의지하며 안전히 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여기의 홀로’는 고립’이 아니라 순수성(innocence)에 가깝습니다. 다른 것에 섞이거나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힘을 근원으로 삼지 않고, 오직 주님 안에서만 평안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 ‘하늘의 이슬 같은 표현도 모두 생명과 축복의 유입을 뜻합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위로부터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 점이 AC.139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혼자 있음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무엇으로부터 홀로 있느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자기 자신 안에 홀로 있으면 그것은 안 좋은 proprium의 상태가 됩니다. 반대로 세상과 자기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오직 주님 안에서 홀로 있으면 그것은 천적 평안의 상태,  innocence가 유입된 proprium의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같은 alone’이라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는 나는 내 힘으로 충분하다’는 독립의 홀로 있음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신뢰의 홀로 있음입니다. 전자는 닫힌 상태이고, 후자는 열린 상태입니다.

 

이 구절이 AC.139에 인용된 이유는 바로 이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홀로 있음’이 언제는 부정적이고 언제는 긍정적인지를 통해, 인간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외적 형태가 아니라, ‘생명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임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신33:28 홀로 거함’은 proprium 안에 갇힌 독립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 안에서 안전히 거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AC.139에서 이 구절은, ‘혼자 있음’이라는 표현조차도 그 내적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인용된 것입니다.

 

 

 

AC.139, 심화 3, ‘민23:9’

AC.139.심화 3. ‘민23: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민23:9) Lo, the people dwelleth alone,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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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9, 심화 1, ‘렘49:31’

AC.139.심화 1. ‘렘49: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렘49:31) Arise, get you up to a quiet nation that dwelleth 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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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9.심화

 

1. ‘49: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49:31) Arise, get you up to a quiet nation that dwelleth confidently, saith the Lord, which hath neither gates nor bar; they dwell alone (Jer. 49:31).

 

 

이 구절이 AC.139에 인용된 이유는, ‘홀로 사는 것(dwell alone)이 단순한 외적 고립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상태’,  proprium 안에 머무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 예레미야서 말씀은 평안히 사는 어떤 민족에 대한 예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을 내적 의미로 읽습니다. 여기서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군사적 상태가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경계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스스로 안전하다’, ‘나는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자기 확신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AC.138–139에서 말하는 혼자 사는 것’과 연결됩니다.

 

원래 천적 인간의 상태는 주님과 깊이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그 결합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proprium이 점점 자기중심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인간 안에 나도 혼자 설 수 있다’, ‘나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방향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홀로 사는 국민’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상태는 처음에는 매우 안정되고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판단, 자기 확신, 자기 만족 안에서 사람은 오히려 더 편안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바로 그 지점을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그것은 참된 평안이 아니라, ‘주님 없이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평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파괴 명령이 아니라, 자기 독립의 환상이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존재’이지, 스스로 생명의 근원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AC.139의 흐름 속에서 보면, 이 말씀은 혼자 사는 것’의 영적 의미를 확증하는 예언서의 증거로 사용됩니다. 곧, 인간이 더 이상 주님과 함께 사는 존재’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 안에 머물며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겉으로는 평안해 보여도, 실제로는 생명의 근원과 점점 멀어지는 방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홀로 사는 것’이 단순히 자립이나 개인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혼자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근원으로 삼느냐’입니다. 천국의 천사들도 각자 매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끊임없이 주님으로부터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기쁨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이 예레미야의 구절은 AC.139에서 혼자 사는 것’이란 곧 주님 없이도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proprium의 상태를 뜻하며, 그것이 겉으로는 평안해 보여도 결국 참된 생명과는 분리된 상태임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된 것입니다.

 

 

 

AC.139, 심화 2, ‘신33:28’

AC.139.심화 2. ‘신33: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신33:28) Israel hath dwelt confidently alone (Deut. 33:28).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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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9, 창2:18, ‘혼자 사는 것’(dwell alone)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AC.139 고대에는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의 인도 아래에 있던 이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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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8)

 

AC.139

 

고대에는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의 인도 아래에 있던 이들을 홀로 거한다(dwell alone)고 말하였는데, 이는 그러한 이들이 더 이상 악이나 악한 영들로부터 침해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유대 교회에서, 그들이 민족들을 몰아낸 뒤 홀로 거하였던 것으로 표상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말씀에서는 때때로 주님의 교회를 가리켜 홀로 있다(alone)고 말하는데, 예레미야에서는 In ancient times those were said to “dwell alone” who were under the Lord’s guidance as celestial men, because such were no longer infested by evils, or evil spirits. This was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also by their dwelling alone when they had driven out the nations. On this account it is sometimes said of the Lord’s church, in the Word, that she is “alone,” as in Jeremiah: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49:31) Arise, get you up to a quiet nation that dwelleth confidently, saith the Lord, which hath neither gates nor bar; they dwell alone (Jer. 49:31).

 

라고 하였고, 모세의 예언에서는 In the prophecy of Moses: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33:28) Israel hath dwelt confidently alone (Deut. 33:28).

 

라고 하였으며, 발람의 예언에서는 더욱 분명히 And still more clearly in the prophecy of Balaam: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23:9) Lo, the people dwelleth alone, and shall not be reckoned among the nations (Num. 23:9),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민족들(nations)은 악(evils)을 뜻합니다. 그러나 태고교회의 이 후손은 홀로 거하고자 하지 않았으니, 곧 천적 인간으로 있기를 원하지 않았고,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의 인도함을 받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유대 교회와 같이 민족들 가운데에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것을 원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라고 말해지는데, 왜냐하면 원하는 자는 이미 악 안에 있으며, 그것이 그에게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where “nations” signify evils. This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not disposed to dwell alone, that is, to be a celestial man, or to be led by the Lord as a celestial man, but, like the Jewish church, desired to be among the nations. And because they desired this, it is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for he who desires is already in evil, and it is granted him.

 

 

해설

 

이 단락은 창2:18의 ‘혼자 사는 것’이라는 표현을 ‘정반대의 의미’로 재정의해 줍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을 결핍이나 고립으로 이해하지만, 스베덴보리에게서 ‘혼자 사는 것’은 오히려 ‘가장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직접적인 인도 아래에 있어, 더 이상 악이나 악한 영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천적 인간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홀로 거한다’는 말은 부정이 아니라 찬사였습니다. 유대 교회가 민족들을 몰아내고 홀로 거한 것은, 그 자체로는 그들이 천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천적 상태를 가리키는 외적 표상’이었습니다. 말씀에서 교회를 ‘홀로 있다’고 말할 때마다, 그것은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악의 질서로부터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발람의 예언에서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라는 말은 결정적입니다. 여기서 ‘여러 민족’은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라, 악을 의미합니다. 즉, 홀로 거한다는 것은 악의 질서와 섞이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이 본래 태고교회가 지녔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방향을 틀어 말합니다. 태고교회의 이 후손은 더 이상 이렇게 홀로 거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만 인도받는 천적 상태에 머물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 교회가 나중에 그러했듯이, ‘민족들 가운데에 있기를’, 곧 세상 질서와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창2:18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선언은, 인간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의 의지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원리를 밝힙니다. 인간은 먼저 ‘원하고’, 그다음에 그 원하는 것이 허락됩니다. 다시 말해, 허락은 원인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내면에서 선택된 방향의 결과’입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문장은 특히 날카롭습니다. ‘원하는 자는 이미 악 안에 있으며, 그것이 그에게 허락된다’는 말은, 악이 외부에서 강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에 응답하는 형태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자유 없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시기에, 인간이 주님 아닌 다른 인도를 원할 때, 그 선택의 결과를 경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AC.139는 이렇게 말합니다. ‘홀로 있음’은 본래 천국의 상태였으나, 인간이 그 상태를 원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 홀로 있음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고, 그 결과가 이후의 모든 분리와 타락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심화

 

1. ‘49:31

 

 

AC.139, 심화 1, ‘렘49:31’

AC.139.심화 1. ‘렘49: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렘49:31) Arise, get you up to a quiet nation that dwelleth 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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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3:28

 

 

AC.139, 심화 2, ‘신33:28’

AC.139.심화 2. ‘신33: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신33:28) Israel hath dwelt confidently alone (Deut. 33:28).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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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3:9

 

 

AC.139, 심화 3, ‘민23:9’

AC.139.심화 3. ‘민23: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민23:9) Lo, the people dwelleth alone,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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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0, 창2:18,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AC.140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 as with him)이 사람의 proprium을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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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8, 창2:18, ‘proprium에 의한 내적 방향 변화의 시작’(AC.138-141)

창2:18-25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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