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17. ‘26:20 끝부분의 한, 영 차이

 

26:20 끝부분에 대한 한글과 영어가 아래와 같이 다른 이유

 

한글 :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

 

영어 : I shall put elegance in the land of the living.

 

 

얼핏 보면 두 번역은 정반대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는 개역개정이 히브리어 원문을 다르게 번역했기 때문이 아니라, 문장의 연결 방식을 다르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원문 마지막은 וְנָתַתִּי צְבִי בְּאֶרֶץ חַיִּים(ve-natatti tsevi be'erets chayyim)으로,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산 자의 땅에 영광(아름다움)을 둘 것이다’입니다. 여기에는 얻지 못하리라’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앞부분의 부정문인 네가 다시는 거주하지 못하게 하리라’의 영향을 마지막 절까지 이어서 읽을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새로운 문장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라틴어와 KJV ‘...thou shalt not be inhabited. And I will set glory in the land of the living.’처럼 새 문장을 시작합니다. 따라서 의미는 두로는 심판을 받지만, 주님께서는 산 자의 땅에 자신의 영광을 세우신다’가 됩니다.

 

반면 개역개정은 앞의 부정을 끝까지 이어 ‘...네가 다시는 거주하지 못하게 하리니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영광을 얻지 못하게 하리라’로 번역하였습니다.  너는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영광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도록 문장을 연결한 것입니다.

 

따라서 원문 자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문장 구조를 어떻게 끊어 읽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AC.290을 보면 스베덴보리의 이해가 어느 쪽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이 구절을 the land of the living’이라는 표현의 증거로 사용하면서 마지막을 I shall put elegance in the land of the living.’으로 인용합니다. 즉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히브리어와 라틴어 전통에서는 이 부분을 앞 문장의 계속이 아니라 독립된 새 문장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번 경우에는 개역개정보다 KJV와 스베덴보리의 번역이 AC.290의 논리에도, 히브리어 원문의 흐름에도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앞부분은 두로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마지막은 그 심판과 대조적으로 주님께서 산 자의 땅’에 자신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세우신다는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대조는 에스겔서의 문맥에도 잘 어울릴 뿐 아니라, AC.290이 강조하는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AC.290, 심화 18, ‘겔32:23-27’

AC.290.심화 15. ‘겔32:23-27’ 23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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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16, ‘겔26:20’

AC.290.심화 16. ‘겔26:20’ 내가 너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내려가서 옛적 사람에게로 나아가게 하고 너를 그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땅 깊은 곳 예로부터 황폐한 곳에 살게 하리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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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6:20

 

내가 너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내려가서 옛적 사람에게로 나아가게 하고 너를 그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땅 깊은 곳 예로부터 황폐한 곳에 살게 하리라 네가 다시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되지 못하리니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 (26:20) and I shall bring thee down with those who go down into the pit, to the people of an age, and shall cause thee to dwell in the lower earth, as in waste places of an age, with those who go down into the pit, so that thou not be dwelt in; and I shall put elegance in the land of the living (Ezek. 26:20);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구덩이’와 살아 있는 자의 땅’을 서로 대조하면서 참된 생명이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AC.290의 핵심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생명 없는 상태와 생명이 충만한 상태를 극명하게 대비하여 그 진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26은 두로(Tyre)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역사적 두로 자체보다 그 영적 의미를 중요하게 봅니다. 두로는 말씀의 지식과 진리에 대한 지식을 상징하지만, 그것이 주님과 분리되면 생명을 잃고 황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두로가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하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국가 멸망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분리된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구덩이’와 땅 깊은 곳’은 말씀에서 흔히 생명이 결핍된 상태, 또는 지옥과 그에 가까운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곳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유입을 거부하는 상태이므로 예로부터 황폐한 곳’이라고도 불립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생명의 근원을 떠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 생명을 스스로 가진 존재는 아무도 없으며,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질 때 영적 황폐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구절의 마지막은 영어 표현으로는 and I shall put elegance in the land of the living.’ 즉, ‘나는 산 자의 땅에 영광을 세우리라’고 선언합니다. 바로 이 표현 때문에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90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사38:11과 사53:8에서도 산 자의 땅’이 언급되었는데, 여기서는 그 땅에 주님께서 친히 영광’을 두신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에서 영광’은 주님의 신적 진리와 신적 임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산 자의 땅’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세상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진리가 충만한 영역을 뜻합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여러 말씀과도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36:9에서는 주님을 생명의 원천’이라 하였고, 17:13에서는 생수의 근원’이라 하였으며, 38:11과 사53:8에서는 산 자의 땅’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에스겔에서는 그 산 자의 땅’에 주님께서 영광을 두시지만, 생명의 근원을 떠난 자들은 구덩이’와 땅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고 선언합니다. 이처럼 생명과 죽음, 빛과 황폐, 주님과의 연합과 분리가 뚜렷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에서 천국과 지옥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장소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유입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있습니다. 천국은 주님의 생명이 자유롭게 흘러드는 상태이고, 지옥은 그 생명을 거부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산 자의 땅’과 구덩이’는 단순히 서로 다른 장소가 아니라, 생명의 유입을 받아들이는 상태와 거부하는 상태를 각각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스베덴보리가 겔26:20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연결된 상태를 산 자의 땅’으로, 그분을 떠난 상태를 구덩이’와 땅 깊은 곳’으로 대조하여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인용된 생명의 원천’, ‘생수의 근원’, ‘산 자의 땅’이라는 말씀들과 함께,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며, 그 생명에서 분리되는 것이 곧 영적 황폐와 죽음이라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또 하나의 강력한 성경적 증거로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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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53: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53:8) From restraint and from judgment He was taken; and who shall contemplate His generation? For He was severed from the land of the living; on account of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a plague was upon Him (Isa. 53:8);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살아 있는 자들의 땅(the land of the living)과 직접 연결되어 계신 분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중심 교리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의 고난을 받으셨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특히 주목하는 표현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사38:11에서는 히스기야가 산 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이제 사53:8에서는 메시아에 대하여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을 말합니다. 두 구절 모두 살아 있는 자들의 땅’이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의미는 훨씬 더 깊어집니다. ‘살아 있는 자들의 땅’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흘러나오는 영역, 곧 참된 생명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바로 그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그 땅에서 끊어지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주님의 신성 자체가 생명을 잃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성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음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생명 자체이신 분께서 죽음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이 이 예언의 핵심입니다.

 

또한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는 말씀도 AC.290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목적은 단순히 고통을 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끊어진 인류를 다시 주님과 연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는 사람을 생명의 근원에서 분리시키고, 주님의 구속은 그 끊어진 연결을 회복시키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구속 사역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스베덴보리가 인용한 여러 말씀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36:9에서는 주님을 생명의 원천’이라 하였고, 17:13에서는 생수의 근원’이라 하였으며, 38:11에서는 산 자의 땅’의 중심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53:8에서는 바로 그 생명의 주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지셨다’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인용의 흐름은 모두 하나의 진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곧 주님은 생명 자체이시며, 그 생명을 사람들에게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친히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에서 구속은 단순히 형벌을 대신 받으신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지옥의 모든 세력을 이기시고, 인성을 완전히 영화롭게 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생명이 다시 흘러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따라서 사53:8은 단순히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는 말씀을 넘어, 생명 자체이신 주님의 구속 사역을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사53:8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지는 고난을 받으셨음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인용된 생명의 원천’, ‘생수의 근원’, ‘산 자의 땅’이라는 말씀들과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오직 주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시고, 그 생명을 잃어버린 인류를 다시 살리기 위하여 구속을 이루셨다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더욱 완전하게 확증해 주는 중요한 예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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