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50.심화

 

3. ‘therefore in what is false,’

 

The man who supposes that he lives from himself is therefore in what is false, and by believing that he lives from himself appropriates to himself everything evil and false, which he would never do if his belief were in accordance with the real truth of the case.

 

 

이 문장은 AC 초기 부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중 하나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단순히 겸손해야 한다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착각 하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나는 나 스스로 산다(he lives from himself)고 느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느낌 자체가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은 누구나 내가 생각한다’, ‘내가 결정한다’, ‘내가 살아간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주님도 그렇게 느끼도록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기감이 없으면 자유도, 사랑도, 책임도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처럼 느끼지 않으면 사랑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가 문제 삼는 것은 느낌 자체가 아니라, 그 느낌을 절대적 사실로 믿어 버리는 상태입니다. 즉, ‘나는 실제로 나 자신 안에서 생명을 만들어 내는 존재다’, ‘선도 진리도 내 것이다’, ‘내 지혜와 내 힘으로 산다’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바로 여기서 proprium이 굳어집니다.

 

그래서 문장 앞부분의 The man who supposes that he lives from himself’는 단순 자의식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상태를 뜻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단순 교리 오류가 아닙니다. 존재 방향 자체의 왜곡입니다. 왜냐하면 실제(real truth)는 인간이 순간순간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문장이 아주 중요합니다. ‘by believing that he lives from himself appropriates to himself everything evil and false’. 즉, 인간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믿는 순간, 그는 악과 거짓을 자기 자신에게 appropriates’, 곧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기 appropriates는 굉장히 강한 말입니다. 단순히 영향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존재 속으로 끌어안아 내 것’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 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자기 사랑과 자기 판단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과 진리조차도 점점 자기 영광과 자기 만족을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결국 악과 거짓이 단순 외부 유혹이 아니라, 자기 존재 일부처럼 굳어집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appropriating evil and falsity’입니다.

 

반대로 마지막 문장, ‘which he would never do if his belief were in accordance with the real truth of the case’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 인간이 실제 진리,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진리 안에 살았다면, 그는 악과 거짓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닫힌 독립 존재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받는 존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악이 들어와도 이것이 진짜 나 자신은 아니다’라고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 인간론의 아주 깊은 특징입니다. 그는 인간 안에 떠오르는 모든 악한 충동 자체를 곧바로 진짜 자기 자신’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자기 정체성으로 삼을 때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산다’는 믿음은 단순 교만 문제가 아니라, 악과 거짓을 자기 존재 중심에 귀속시키는 문이 됩니다.

 

결국 이 문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마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처럼 느껴야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실제 독립 생명으로 착각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굳어지고, 그 결과 악과 거짓을 자기 존재 안에 자기 것으로 정착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구원이란 단순 도덕 개선 이전에, ‘생명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다시 바로잡는 일입니다.

 

 

 

AC.150, 심화 4, ‘For a number of years’

AC.150.심화 4. ‘For a number of years’ For a number of years I have been permitted in an especial manner to know how the case is with what is man’s own, and it has been granted to me to perceive clearly that I could think nothing from myself, but t

bygrace.kr

 

AC.150, 심화 2, ‘렘51:57’

AC.150.심화 2. ‘렘51:57’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50.심화

 

2. ‘51:57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 (51:57)

 

 

이 구절이 AC.150에 인용된 이유는, ‘잠든다’는 표현이 단순 육체적 수면이나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선에 대한 영적 지각(perception)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단순 일시적 무감각이 아니라, 자기 지성과 proprium 안에 완전히 갇혀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강조됩니다.

 

예레미야서 51장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인데, 스베덴보리는 바벨론을 단순 고대 국가로만 읽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을 높이고 주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상태’, 곧 자기 사랑과 지배욕이 극대화된 영적 상태로 봅니다. 따라서 여기서 고관, 지혜 있는 자, 용사들이 취하게 되고 영원히 잠든다는 것은, 단순 정치 몰락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기능 전체가 영적으로 마비된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지혜 있는 자들’까지 잠든다고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순 무식함이나 정보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가장 위험한 상태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proprium을 섬기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런 경우 인간은 오히려 자기 지성 안에 더 깊이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은 무지보다 더 깊은 상태, 곧 진리를 거부하는 영적 혼미 상태를 뜻합니다.

 

 취하게 하리니’라는 표현도 상응적으로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술 취함은 종종 거짓과 왜곡된 추론에 의해 정신이 흐려진 상태를 뜻합니다. 즉, 인간이 자기 지성과 자기 사랑 안에 빠져 진리의 질서를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깊은 잠’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곧, 영적 현실에 대한 감각 자체가 닫혀 버립니다.

 

이것이 AC.150과 연결되는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지금 퍼셉션의 상실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태고교회의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선과 진리를 지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proprium을 원하고 자기 지성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적 시야가 닫히고 결국 영적 잠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51:57은 바로 그 최종적 상태를 강렬하게 보여 주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여기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리라’는 표현도 문자 그대로 영원한 무의식 상태를 뜻한다기보다, 자기 사랑과 거짓 안에 끝까지 머물기를 원하는 상태가 굳어졌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지옥은 주님이 강제로 잠재워 버린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기 proprium 안에 머물기를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이 AC.150에 인용된 이유는, 인간이 자기 지성과 proprium 안에 깊이 빠질 때 결국 퍼셉션과 영적 지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깊은 잠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50, 심화 3, ‘therefore in what is false,’

AC.150.심화 3. ‘therefore in what is false,’ The man who supposes that he lives from himself is therefore in what is false, and by believing that he lives from himself appropriates to himself everything evil and false, which he would never do if his

bygrace.kr

 

AC.150, 심화 1, ‘사29:10’

AC.150.심화 1. ‘사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사29:10) 이 구절이 A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50.심화

 

1. ‘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29:10)

 

 

이 구절이 AC.150에 인용된 이유는, ‘깊이 잠들게 하는 영(spirit of deep sleep)이 단순 육체적 잠이나 피곤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지각(perception)과 영적 인식이 닫혀 버린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50의 흐름은 인간 안에서 퍼셉션이 어떻게 약화되고, 결국 주님으로부터 직접 지각하던 상태가 사라져 가는지를 설명하는데, 사29:10은 바로 그 영적 혼미 상태를 예언자의 언어로 묘사하는 대표 구절입니다.

 

29:10에서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으셨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이 일부러 사람들을 어둡게 만드신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들을 항상 상응으로 읽습니다. 즉, 주님께서 직접 악이나 무지를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proprium과 자기 지성 쪽으로 기울어질 때, 그 결과로 내적 시야가 닫히는 상태를 허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sleep)은 매우 중요한 상응입니다. 말씀에서 잠은 종종 영적 무감각 상태, 곧 진리와 선에 대한 내적 지각이 멈춘 상태를 뜻합니다. 반대로 깨어 있음은 영적 각성과 지각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깊은 잠’은 단순 무지가 아니라, 영적 감각 자체가 무뎌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눈을 감기셨다’,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을 덮으셨다’는 표현도 같은 흐름입니다. 말씀에서 눈은 이해와 통찰을, 선지자와 선견자는 진리를 보는 기능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 육체적 시각 문제가 아니라, 인간 안의 영적 이해 기능이 어두워진 상태를 말합니다. 곧, 진리가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주님의 것이 드러나 있어도 지각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AC.150과 연결되는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지금 태고교회의 퍼셉션 상실 과정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거의 즉각적으로 지각했습니다. 그러나 proprium이 커지고 자기 자신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인간은 점점 그 퍼셉션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외적 지식과 추론뿐이고, 결국 내적 시야는 ‘잠든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사29:10은 단순 심리 상태 묘사가 아니라, 퍼셉션이 사라지고 영적 감각이 닫힌 인간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으로 AC.150에 인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경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든 상태라는 것은 다시 깨어날 가능성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 전체에서 거듭남은 결국 이 잠든 인간이 다시 주님의 생명 안에서 깨어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AC.150, 심화 2, ‘렘51:57’

AC.150.심화 2. ‘렘51:57’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고관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도백들과 태수들과 용사들을 취하게 하리니 그들이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

bygrace.kr

 

AC.150, 창2:21, ‘깊은 잠’, 자신의 own으로 산다 여기는 상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50 사람이 own 안에 있을 때, 곧 자신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여길 때의 상태는 ‘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