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창3:2, 3)
AC.202
태고교회, 곧 천적 인간은 단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곧 신앙에 속한 것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 지식들로부터 배우는 것을 삼갔을 뿐만 아니라, 그 나무를 만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이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 지식들로부터 신앙에 속한 어떤 것이라도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천적 생명에서 영적 생명으로,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은 천적 천사들의 삶도 그러한데, 그들 가운데서 더욱 내적으로 천적인 이들은 ‘신앙’이라는 말조차도 듣기를 허용하지 않으며, 영적인 것에 속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견디지 못합니다. 만일 다른 이들에 의해 그런 말이 언급되면, 그들은 신앙 대신 사랑의 지각(a perception of love)을 가지게 되는데, 그 차이는 그들 자신만이 압니다. 이처럼 그들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로부터 얻게 됩니다. 더더욱 그들은 신앙에 대한 어떤 추론(reasoning)도 듣기를 견디지 못하며, 특히 그것에 관한 어떤 기억 지식의 말은 더욱 견디지 못합니다. 이는 그들이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을 가지기 때문이며, 이 퍼셉션으로부터 어떤 것이 그러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즉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관해 무엇이든 말을 하면, 그들은 단순히 그것이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다고만 대답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것을 주님으로부터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a celestial man, was of such a character as not only to abstain from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that is, from learning what belongs to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but was not even allowed to touch that tree, that is, to think of anything that is a matter of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lest they should sink down from celestial life into spiritual life, and so on downward. Such also is the life of the celestial angels, the more interiorly celestial of whom do not even suffer faith to be named, nor anything whatever that partakes of what is spiritual; and if it is spoken of by others, instead of faith they have a perception of love, with a difference known only to themselves; thus whatever is of faith they derive from love and charity. Still less can they endure listening to any reasoning about faith, and least of all to anything of memory-knowledge respecting it; for, through love, they have a perception from the Lord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from this perception they know instantly whether a thing is so, or is not so. Therefore when anything is said about faith, they answer simply that it is so, or that it is not so, because they perceive it from the Lord. This is what is signified by the Lord’s words in Matthew: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5:37) Let your communication be Yea, yea; nay, nay; for whatsoever is more than these cometh of evil (Matt. 5:37).
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곧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만지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만일 그것을 만졌다면 그들은 악 안에 있게 되었을 것이며, 곧 그 결과로 ‘죽었을’(die)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적 천사들도 다른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주제에 대해 서로 대화하지만, 그것은 사랑으로부터 형성되고 파생된 천적 언어로 이루어지며, 영적 천사들의 언어보다 더욱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This then is what was meant by their not being allowed to touch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for if they touched it, they would be in evil, that is, they would in consequence “die.” Nevertheless the celestial angels converse together on various subjects like the other angels, but in a celestial language, which is formed and derived from love, and is more ineffable than that of the spiritual angels.
해설
이 단락은 ‘만지지도 말라’는 금지가 얼마나 철저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태고교회의 천적인 사람들에게 금지된 것은 잘못된 결론이나 오류가 아니라, 신앙을 감각과 기억 지식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사고방식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내용을 감각적으로 검토하거나 지적으로 다루는 단계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곧 생명의 차원 하락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천적 생명에서 영적 생명으로 내려간다’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중립적 변화로 보지 않습니다. 태고교회에게는 영적인 단계조차도 이미 하강이었으며, 그 아래로 더 내려갈 위험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간의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이며, 바로 이 점 때문에 태고교회의 성향이 현대인에게 거의 이해되지 않는다고 앞 단락에서 말한 것입니다.
천적 천사들의 삶에 대한 설명은 이 상태가 단지 역사적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하늘에서 살아 있는 질서임을 보여 줍니다. 더욱 내적으로 천적인 천사들은 ‘신앙’이라는 말조차 허용하지 않는데, 이는 신앙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신앙이 개념이나 고백이 아니라 사랑의 퍼셉션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말로 분리해 부르는 순간, 이미 그들의 생명 방식과 어긋나게 됩니다.
그들이 신앙 대신 ‘사랑의 퍼셉션’(perception of love)을 가진다는 설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신앙과 사랑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뜻하며, 진리는 언제나 사랑 안에서 즉각적으로 인식됩니다. 이 차이는 외부에서는 거의 구별할 수 없고, 오직 그들 자신만이 압니다. 이는 퍼셉션의 어떠함이 언어로 완전히 전달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이 때문에 천적 천사들은 신앙에 대한 추론(reasoning, 이성질)을 견디지 못합니다. 추론은 진리를 외부에서 판단하려는 시도이며, 그들에게 진리는 이미 내적으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억 지식에 근거한 신앙 논의는 그들에게 거의 폭력에 가까운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는 진리가 부정확해서가 아니라, 그 접근 방식 자체가 생명의 질서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들의 응답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이는 무지의 표시가 아니라, 완전한 퍼셉션의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천적 상태를 가리키며, 그 이상을 덧붙이려는 모든 시도는 이미 악으로부터 난 것이라고 설명됩니다. 여기서 ‘악’은 도덕적 악이 아니라, 질서를 벗어난 사고 작용을 뜻합니다.
‘만지지 말라’는 명령의 참된 의미는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신앙을 탐구하지 말라는 금지가 아니라, 신앙을 감각과 지식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절대적 경계선이었습니다. 만일 그 경계선을 넘는 순간, 그들은 천적 생명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며, 그것이 바로 ‘죽음’으로 표현됩니다.
마지막으로 천적 천사들의 대화에 대한 언급은 오해를 방지합니다. 그들은 침묵 속에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도 다른 천사들처럼 풍부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 언어는 사랑에서 직접 형성된 천적 언어이며, 영적 천사들의 언어보다 훨씬 더 말로 옮길 수 없는 성격을 가집니다. 이는 진리의 가장 깊은 차원은 언제나 사랑의 언어로만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AC.202는 결국, 창3의 금지가 단순한 도덕 규율이 아니라, 생명의 차원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깊은 영적 경계였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 인간의 신앙 구조가 왜 더 이상 천적일 수 없는지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질서 안에 보존될 수 있는지를 대비적으로 보여 주는 결정적 단락입니다.
심화
1. ‘마5:37’
AC.202, 심화 1, ‘마5:37’
AC.202.심화 1. ‘마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5:37) Let your communication be Yea, yea; nay, nay; for whatsoever is more than these cometh of ev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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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심은 영적 인간의 퍼셉션’
AC.202, 심화 2, ‘양심은 영적 인간의 퍼셉션’
AC.202.심화 2. ‘양심은 영적 인간의 퍼셉션’ 우리도 저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저런 퍼셉션을 회복할 수 없나요? 우리도 이 세상을 저런 퍼셉션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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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3, 창3:2-3, ‘신앙’ 관련, 영적 천사들의 경우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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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1, 창3:2-3, ‘홍수 이전 태고 사람들의 성향(genius) 이해의 어려움’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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