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8.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었는데,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C.208)

 

각 후손이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지?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각 후손이 정확히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가?’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AC.194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3:1을 해설하면서 ‘여기서는 태고교회의 세 번째 후손(the third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이 다루어진다’고 직접 말합니다. 따라서 세 번째 후손은 적어도 창3:1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AC.208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3:6을 해설하면서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네 번째 후손은 적어도 창3:6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입니다. 앞서 우리가 확인했듯이 AC.190의 ‘첫 번째 상태’, ‘두 번째 상태’, ‘세 번째 상태’를 그대로 ‘첫 번째 후손’, ‘두 번째 후손’, ‘세 번째 후손’으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state(상태)와 posterity(후손)를 서로 다른 범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읽은 AC.67-208 범위 안에서 본다면, 우리는 ‘세 번째 후손 = 3:1’, ‘네 번째 후손 = 3:6’은 확인할 수 있지만, ‘첫 번째 후손 = 2 몇 절’, ‘두 번째 후손 = 2 몇 절’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정직한 정리는 이렇습니다. 스베덴보리는 AC.194에서 이미 세 번째 후손을 언급하므로, 첫 번째와 두 번째 후손은 반드시 그 이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창2:7인지, 창2:8인지, 창2 전체의 어느 구간인지, 혹은 AC.67 이후의 어느 상태에 해당하는지는 AC 본문 속에서 직접 확인해야 하며,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질문에 대한 현재의 가장 안전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 번째 후손은 창3:1에서 시작하며(AC.194), 네 번째 후손은 창3:6에서 시작한다(AC.208). 그러나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의 시작 지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그것을 AC.190의 첫째, 둘째 상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검토한 결과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는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AC.209 이하를 계속 읽다 보면, 또는 AC.67-193 구간을 다시 추적하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first posterity, second posterity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아는 것’과 ‘추정하는 것’을 구분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입니다.

 

 

 

AC.208, 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AC.208.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이 각각의 후손이 실제로는 몇백, 몇천,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을까요?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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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8, 창3:6,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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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3:6)

 

AC.208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었는데, 자기 사랑(self-love, [amor proprius])에 스스로를 미혹되도록 내어주었으며, 감각과 기억 지식에 속한 것들로 확증되는 걸 보지 않는 한, 계시된 걸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o suffered themselves to be seduced by self-love [amore proprio] and were unwilling to believe what was revealed, unless they saw it confirmed by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해설

 

AC.208은 창세기 3장의 타락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태고교회 안에서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진행된 영적 쇠퇴의 결과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특별히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창세기 3장이 인류 최초의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가 점차 본래의 순수한 상태를 잃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자기 사랑(amore proprio)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자기 사랑은 단순한 자존감이나 자기 보존 본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보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사랑이며, 진리가 참인 이유를 주님께 두지 않고 자기 판단에 두는 상태입니다. 태고교회의 초기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각(perception)을 통해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자기 own이 강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지각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시된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계시 자체를 전면 부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런가?’, ‘내가 직접 납득할 수 있는가?’, ‘감각과 경험, 지식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3에서 뱀이 제안한 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감각의 것들(the things of sense)과 ‘기억 지식의 것들(the things of memory-knowledge)을 함께 언급합니다. 감각의 것들, 곧 감각에 속한 것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외적 경험을 말합니다. 기억 지식(scientificum)은 인간이 축적한 학문, 논리, 정보, 경험 등을 말합니다. 이 둘은 본래 유익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신앙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은 더 이상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참이다’라고 하지 않고, ‘내가 확인했기 때문에 참이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AC.208은 따라서 창3 전체의 핵심을 매우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타락의 본질은 선악과를 먹었다는 외적 행위가 아니라, 자기 사랑이 주님에 대한 신뢰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은 계시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감각과 기억 지식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문제를 ‘지식이 많음’에서 찾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는 학문과 이성을 높이 평가합니다. 문제는 지식을 사용하는 위치입니다. 진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은 영적 인간의 길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은 창3의 길입니다.

 

결국 AC.208은 태고교회 네 번째 후손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동시에, 오늘날 인간이 빠지기 쉬운 영적 위험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믿기 위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바로 그 지점에서 자기 own은 조용히 주님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AC.208, 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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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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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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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8.심화 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스베덴보리 본인도 학자였으면서 천국을 왕래하며 어떻게 이런 걸 일절 다루질 않았을까요? 마치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천국은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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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9, 창3:6, ‘창3의 표현들이 의지, 애정의 언어들인 이유’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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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7,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AC.207-2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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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7.심화

 

1. ‘AC.265

 

남편(man [vir])이 이성(the rational, 합리적 능력)을 말한다는 게 본 장 6절에 나오는데요, 거기 보면, 여자는 자기와 함께 있는 자기의 남자(her man)에게 주었고, 그는 먹었는데, 이는 그도 동의했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내용이 158번 글에 나오는 남자(the man)에 대한 말로도 분명한데요, 거기서 그는 지혜와 지성의 사람(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남자(man)는 그와는 달리 이성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지식의 나무, 곧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지혜와 지성이 파괴된 결과,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성이라는 건 지성의 모방, 말하자면 겉모습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That by “man” [vir] is signified the rational appears from verse 6 of this chapter, in that the woman gave to her man with her, and he did eat, by which is meant his consent; and the same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man in n. 158, where by him is meant 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 Here however “man” denotes the rational, because in consequence of the destruction of wisdom and intelligence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nothing else was left, for 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 (AC.265)

 

AC.207에서 위 AC.265를 인용하는 이유

 

 

AC.207에서 스베덴보리가 AC.265를 인용하는 이유는, 창세기 3 6절의 ‘남편도 함께 먹었다’는 표현이 단순히 아담이라는 한 개인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이성 파트(rational)가 유혹에 동의한 사건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3장의 내적 의미를 따라가면, 뱀은 감각 파트(sensuous part), 여자는 own, 곧 자신의 proprium에 속한 애정과 의지를, 남자는 이성 파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타락은 감각이 제안하고, own이 그것을 좋아하며, 마지막으로 이성이 그것에 동의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AC.207이 ‘남편이 먹었다는 것은 이성의 동의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근거가 바로 AC.265입니다.

 

특히 AC.265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은 지성의 모방물이며, 마치 그것의 형상 같은 것(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이라는 설명입니다. 원래 인간의 이성은 지성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지성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의 빛 안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이고, 이성은 그 지성을 표현하고 정리하며 적용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이성이 지성을 섬깁니다.

 

그러나 창3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음으로 인해 지혜와 지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성만 남게 되었다(AC.265)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원래 태고교회 사람들은 지각(perception)을 통해 진리를 알았습니다. 사랑 안에서 직접 진리를 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는 그 지각과 지성이 약해지고, 대신 이성이 앞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AC.265는 ‘남자’라는 단어가 창2와 창3에서 미묘하게 다르게 사용된다고 설명합니다. 창2에서는 아직 지혜와 지성이 살아 있으므로 ‘남자’가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창3에서는 이미 지혜와 지성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남자’는 더 이상 그런 높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고, 단지 이성적 부분만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AC.207 AC.265를 인용하여, 선악과 사건의 마지막 단계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감각의 유혹이나 own의 욕망이 아닙니다. 인간 안의 이성이 그것을 승인하는 순간입니다. 감각은 제안할 수 있고, 욕망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직 완전한 타락은 아닙니다. 그런데 ‘남편도 먹었다’는 것은 이성이 마침내 자기 own의 편에 섰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인간 경험에서도 매우 익숙한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욕망이 생깁니다. 그다음에는 그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이 등장하여 ‘이 정도는 괜찮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 이것이 더 옳다’고 정당화합니다. 이 순간 욕망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하나의 확정된 선택이 됩니다.

 

그래서 AC.207 AC.265를 인용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창3의 타락은 감각이나 애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까지 그것에 동의한 사건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원래 지성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지만, 지성이 무너지면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비극적 전환을 ‘남편도 먹었다’는 짧은 표현 속에서 읽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AC.207,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AC.207-2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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