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HH.13-19)

 

17. 천국에서의 저의 모든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주님으로부터 나와서 천사들을 적시고 affects angels, 천국을 만드는 주님의 신성 the Divine은 사랑입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사랑과 체어러티의 형상들 forms of love and charity(자선, 너그러움, 관용)이며,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리고 그 얼굴과 말, 그리고 생활과 삶 모든 구석구석에서 빛처럼 뿜어져 나오는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더욱이 모든 천사와 영들로부터 나와 그들을 감싸는 emanating from and surrounding 무슨 영적 생명 영역들이 있는데 there are spiritual spheres of life, 이것을 보면, 그들이 가진 사랑에 대한 애정들의 퀄러티 their quality in respect to the affections of their love 를 알 수 있으며, 때로 그 거리가 어마어마합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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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28, 2월 마지막 주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 22절로 3절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3)

 

오늘은 이 본문과 함께 마침 꼭 기억해야 할 두어 가지가 더 있어 한 설교, 세 주제라는 좀 특별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주께서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묶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어제는 우리 교회가 지난 201391일 첫 예배를 드린 후부터 꼭 이천 번째 예배를 드린 날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숫자를 세는 것은 혹시라도 주님의 공로를 가로채게 될까 봐 무척 조심스럽습니다만 저는 지금까지 다른 건 거의 금했어도 이 예배만큼은 모든 예배에 번호를 붙여가며 정성을 다했습니다. 주님의 오심이요, 함께 하심, 열납하심이었기 때문이며, 매 예배마다 다 다른, 나름의 생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동행하심과 붙드심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래 영혼의 근육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작은 있으나 끝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이런 제가 신대원을 나와 목회자가 되면서 이후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들이 있습니다.

 

두어 가지인데, 하나는 제가 개척 전 부사역자로 섬기던 교회에서 교회 건축 관련 1000일 동안 진행된 천일예배 덕분입니다. 당시 교회 미디어 담당자로서 외부 광고 없이 조용히 진행된 이 천일예배 뒷바라지가 무슨 의무도, 책임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제 안에 자원하는 심령이 생기면서 저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일을 1000일 동안 녹음, 녹화로, 웹서비스로, 또 모든 메시지들 딕테이션으로 정성을 다해 섬겼습니다. 이 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개인적인 기적과 함께 저는 제 안에 영혼의 근육이 생겼음을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 근육은 이후 개척 및 수도원 영성에 큰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천일예배를 인도하신,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윤경숙 사모님과 당시 함께 했던, 지금은 사모님이 되신 권윤미 전도사님, 그리고 딕테이션팀으로 섬겼던 이십여 분의 집사님들께 오래전 기억이지만 새삼 진심 어린 감사가 생생하게 일어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다른 하나는, 수도원 영성으로 부름 받아 수도사 공부를 하던 중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접한 것입니다.

 

사막은 물이 없어 사막입니다. 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부터 지금으로 치면 한 10키로 쯤 떨어진 수도원에서 90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해가 지면 물동이를 들고 그 왕복 20키로의 길을 물을 길으러 다녔습니다. 그는 지쳤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 물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다...’ 그때 무슨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사막의 밤, 자기 말고 누가 있을 리 없는데 말입니다. 그 인기척은 발소리였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천사가 자기를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엎드리며 소리칩니다. ‘주여, 어찜이신지요?’ 천사가 말합니다. ‘나는 너의 발걸음을 세고 있노라...’ 이 수도사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는 자기가 머물던 곳으로부터 8키로를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일화는 제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여 행하는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이 주님과, 그래서 당연히 천국과 연결되어 있음을 제 안에 깊이 각인시켜 준 이야기이며, 이후 결정적일 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주었던 참 고마운 격려의 일화입니다.

 

목회자가 예배 한 번 준비하는 일이 사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특히 설교를 해 본 적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것은 정말이지 영혼의 일이며, 심령을 불태우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2000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실로 오직 주님의 붙드심과 힘주심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늦게 목회의 길을 걷게 된 저 같은 사람 말고 일찍 헌신하여 묵묵히 걸어오신 선배 목회자들 앞에서는 소위 명함도 못 내밀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저 이만큼이 제 역량이며, 저를 이만큼 키워주신 주님께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함께 한 저희 사모와 자녀들에게도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감사하지요.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주제입니다.

 

오늘은 저의 선친 33주기 기일입니다. 내일은 마침 장인 6주기 기일이고요. 어떻게 양가 바깥 사돈의 기일이 하루 상간이 되었습니다 ^^

 

저희 모친의 경우는 작년이 40주기였습니다. 어느덧 40년이 지나 52녀 대부분의 자녀들이 그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되어버렸지요. 지금은 증손까지 다 합쳐 팔십! 그렇다 보니 이제는 형제모임 한번 하기가 보통 일이 아닌 게 되어서 지난 40년 동안 모였던 친가쪽 형제모임을 작년을 끝으로 마치기로 하였습니다. 처가쪽은 이제 6주기라 여전히 모일 수 있지만 마침 코로나로 인해 작년과 올해, 이 마저 여의치 않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선친 기일이 다가오면, 그리고 사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오히려 더 늘 생각나는 생전 말씀 한 마디, ‘사람은 제 할 도리만 다 하면 된다...’ 이 말씀이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사실 저희 선친께서는 어린 시절 궁핍한 삶에 배움이 없으셨습니다. 선친의 생전 삶에 관해 어린 시절 토막토막 들었던 것이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감탄케 하셨던 선친의 생전 모습들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부산에서 육이오 피난살이를 하던 중 동네 권사님을 통해 교회 출석을 시작하셨던 아버지... 그러나 사실은 평양 대부흥의 때인 1907년에 출생, 황해도 황주 및 해주 사시며, 젊어서 평양 갔다가 무슨 집회에 참석, 그때 무슨 시냇가에서 이미 침례를 받으셨던 아버지이십니다.

 

배움은 없으셨으나 세상 경험과 타고난 눈썰미가 남다르셔서 독일서 건너온 무슨 중장비마저 대충 보고 조립해 내실 정도였습니다.

 

생전 보시던 두꺼운 신구약 성경이 아직도 서재 한쪽에 꽂혀 있는데요, 어머니 먼저 보내시고 8년 동안 늘 소리 내어 읽으시던 성경입니다.

 

한창 혈기왕성하여 세상을 비판하며 어둡고 부정적이었던 저에게, 나지막히 타이르시며 늘 권하시던 말씀, ‘얘야, 세상 이렇다 저렇다, 사람 이렇다 저렇다 할 거 없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기 할 도리만 다하면 된다...’ 그 말씀을 듣는 청년 시절 저는 말씀 그대로 사시는 아버지 모습에 아무 대꾸도, 반박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늘 새기는 말씀이 있습니다.

 

단에 오를 땐 산 만큼만 말하고, 단에서 내려올 땐 말한 만큼 살아라...’

 

선친께서는 무슨 배움도, 아무 신학도 안 하신 분이 이런 걸 어떻게 깨우치셨을까요! 이제 육십에 접어드는 저는 여전히 한참 멀었음을 깨닫습니다.

 

세 번째, 오늘 본문입니다.

 

창세기 첫 장들은 전통적으로 실제 천지창조의 기술로 이해했습니다. 글자 그대로로, 겉뜻 그대로로 이해한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이 영과 육으로 되어 있듯 말씀 또한 그렇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말씀 또한 그렇게 이해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도 옷처럼 입고 있는 이 육보다 그 안의 영이 진짜인 것처럼, 말씀도 겉뜻인 글자, 문자의 뜻보다 그 안에 담긴 속뜻이 참 의미인 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씀의 속뜻, 영어로는 인터널 센스 internal sense 라고 하는 이 속뜻을 가리켜 라틴어로 아케이나라 하며, 그 의미는 천계비의(天界秘義)’, ‘천국의 비밀정도가 되겠습니다.

 

아케이나로 본 창세기의 첫 장들은, 아니 성경 전체는 사실,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내용이며, 그래서 창조 첫 육일간의 기록을 한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여섯 단계로 나눈 것으로 이해합니다. 특별히 창세기 1장은 영적 인간을, 창세기 2장은 천적 인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선 거듭남의 관점으로 본 세 종류의 사람, 혹은 사람의 세 가지 상태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데요, 이미 몇 번 말씀을 드려서 어느 정도 이해들을 하시겠지만 잠깐 다시 상기시켜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죽은 사람 a dead man 입니다. 죽은 사람은 진리와 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acknowledges nothing to be true and good 사람, 대신 오직 육체와 세상 the body and the world 에 속한 것만 잘 아는 사람, 그런 걸 아주 좋아하는 adores 사람입니다.

 

다음은 영적 인간 a spiritual man 입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 천적 진리와 선을 아는 acknowledges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원리 a principle of faith 로만 압니다. 그의 모든 행위의 기반은 이런 신앙 원리 같은 거에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고 말입니다.

 

끝으로, 천적 인간 a celestial man 입니다. 천적 인간은 영적, 천적 진리와 선을 믿고, 지각하는 perceives 사람입니다. 이 지각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으로만, 행위가 뒤따르는 신앙으로만 주님을 신앙하고, 그런 신앙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또 이렇게도 구분합니다.

 

죽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직 육체적, 세상적인 목표만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삶이 무엇인지도, 주님이 누구신지도 모릅니다. 혹시 알게 되어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영적 인간들의 경우는 영원한 삶, 영생입니다. 영생을 추구하다 보니 그 결과,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천적인 사람들은 바로 처음부터 주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알다 보니 그 결과, 주님의 나라와 영원한 삶, 영생을 선물로 받는 사람들입니다.

 

천적 인간들의 삶의 목표와 순서는 영적 인간들의 삶의 목표 및 순서랑 정확히 정반대입니다.

 

영적 전투라는 측면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삶 가운데 전투가 있을 때, 즉 선악 간 싸움이나 진리, 거짓 간 싸움으로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면 거진 다 매번 집니다. 그렇지 않을 때, 즉 전투가 없을 때는 악과 거짓이 그를 지배하며, 그래서 그는 그들의 종이 됩니다. 그의 묶임은 겉으로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 목숨, , 소득, 명성 등 소위 안전한 삶을 위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그런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심지어 자기는 거듭남 가운데 있다고 믿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되시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소위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사실은 위와 같은 묶임 가운데 있으시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보셔야 합니다. ‘내가 과연 정말 거듭남의 여정 가운데 있는 건지, 내 삶에 참된 회심, 진정한 거듭남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영적 인간은 전투가 있어도 늘 승리합니다. 이 경우가 참된 회심 가운데, 진정한 거듭남 가운데 있으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영적 인간에게 있어서 묶임은 내적 묶임이며, 양심의 묶임, 속박이 있습니다.

 

천적 인간에게는 전투가 없습니다. 악과 거짓의 무슨 난폭한 공격이 있어도 그는 그것들을 경멸, 무시해 버리며, 그래서 그는 정복자, 이긴 자라 불립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이긴 자가 바로 이들입니다. 그는 정말 그 무엇도 그를 속박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유하며, 그에게 있어 굳이 속박이라 하면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지각능력이지 싶습니다. 차원이 다른 속박이요, 묶임입니다.

 

, 이 정도의 배경이 있으면 창세기 첫 장들의 아케이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이라이트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입니다. 안식은 히브리어로 싸바스 a sabbath 이며, 그 뜻은 입니다. 곧 주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다, 쉬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이제야 주님이 쉬실 수 있게 된 건가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유전 악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악한 영들이 찾아옵니다. 마치 악취 나는 배설물에 똥파리 꼬이듯 말이지요. 이때 찾아오는 악한 영들은 각 개인의 악의 특성에 따라 다 다릅니다. 소위 주파수가 맞아야 하고, 코드가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악한 영들은 이 사람 모르게 은밀히 활동하면서 한순간도 쉬지 않으면서 이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당깁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이런 실상 가운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이번에는 선한 영들과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악한 영들이 지옥으로 끌어당기는 딱 그만큼 이번에는 이들을 통해서 천국으로, 주님한테로 끌어당기십니다. 사람은 딱 그 중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에 영적 전투, 곧 선악 간 싸움과 진리, 거짓 간 전투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영적 전투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선천적으로 싸울 능력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주님이 대신 싸워 주셔야 하며, 우리가 하는 것은 그저 늘 주님 편에 서는 것, 늘 주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는 정도입니다. 다음 주님 말씀은 영적 전투에 관한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 안에서 치러지는 영적 전투를 대신 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덕지덕지 붙은 악을 주님이 대신 떼어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한테로 가는 것뿐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하기만 하면, 바로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천사들도 항상 주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린다고 합니다. 천국 천사들도 늘 그렇다고 한다면 하물며 지상에 사는 우리는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듭남의 단계가 진행될수록 처음엔 우리를 좌지우지했던 악한 영들이 점점 맥을 못 씁니다. 우리의 의지가 점점 더 주님 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며, 점점 더 주님을 사랑하여 무슨 선택을 하며, 말을 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 깊어져서 더욱 성숙해져 가면 우리는 그만큼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며, 즐겁게 선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는 악한 영들이 무슨 말로 우리를 꾀어도 더 이상 안 통합니다. 이쯤 되면 이제 악한 영들은 우리를 포기합니다. ‘, 이 사람은 더 이상 되돌릴 가망이 없다. 이미 선을 넘었다. 괜히 헛수고 말고 그만 철수하자...’

 

할렐루야! , 이때가 바로 악한 영들이 물러가는 때이며, 이때가 바로 평생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모든 매임에서 풀려나는 때입니다. 더 이상 싸움을 거는 상대가 없어지니 이제 더 이상 싸울 일도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때 비로소 주님은 우리 안에서 안식하십니다. 쉬실 수 있게 되신 겁니다. 우리를 믿고 안심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안식일의 아케이나입니다. 일곱째 날의 비밀입니다. 안식일은 그래서 비밀이며, 말할 수 없는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맨 처음 혼돈과 공허, 흑암 가운데 있던 인생을 주님은 그 사람 일평생 포기하지 않으시고, 힘주시며, 끝없이 품으시고 격려하셔서 결국 이 안식의 상태, 일곱째 날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공로는 홀로 주님의 것이며, 그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주님의 권면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58:13-14)

 

십계명, 십성언 중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20:8-11)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28)

 

안식일의 아케이나를 기억하여 먼저 힘써 우리 자신 일곱째 날, 곧 안식일 되기를 힘쓰며, 또 이 일곱째 날을 거룩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유튜브 바로가기 : youtu.be/sxrC3JliQ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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