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22.심화

 

3. ‘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4:6) There be many that say, Who will show us any good? Jehovah, lift thou up the light of thy faces upon us (Ps. 4:6).

 

 

이 구절을 AC.222에서 인용한 이유는, 참된 선(good)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며, ‘주의 얼굴의 빛(the light of thy faces)은 그 선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편의 앞부분을 보면 사람들이 ‘누가 우리에게 선을 보여 줄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복이나 세상적 성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보면 인간이 참된 행복과 평화, 선한 삶의 근원을 찾는 질문입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얼굴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연결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은 선을 찾고 있지만, 다윗은 선 자체를 달라고 하지 않고, 주님의 얼굴빛을 구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얼굴빛이 비추어질 때, 선도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AC.222의 문맥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호와의 얼굴’이 자비와 평화와 모든 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주님의 얼굴이 진노나 심판을 의미한다면, 다윗이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고 기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가장 큰 복으로 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얼굴의 빛(light of thy faces)이라는 표현은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인간에게 흘러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표현을 빌리면, 천국의 모든 빛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이며, 그 빛 속에는 신적 사랑의 열이 함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얼굴빛은 단순한 호의의 표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을 살리는 영적 생명 자체입니다.

 

이 점에서 시4:6은 창3의 장면과 깊은 대조를 이룹니다. 다윗은 ‘주의 얼굴빛을 비추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얼굴을 피해 숨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겼고,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주님의 얼굴에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차이는 인간의 상태에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얼굴은 평화와 기쁨이지만, 자기 악을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치 같은 태양이 건강한 눈에는 즐거움이지만, 아픈 눈에는 고통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스베덴보리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를 잘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흔히 ‘무엇이 선인가?’를 묻지만, 스베덴보리는 참된 선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고 주님에게서 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을 직접 찾기보다 주님의 얼굴빛을 구해야 합니다. 빛이 오면 선도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222에서 시4:6을 인용한 이유는, 사람들이 찾는 모든 참된 선의 근원이 주님의 얼굴빛 안에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창3장의 의미를 더욱 깊게 드러냅니다. 아담과 하와가 피해 숨은 것은 바로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곧 모든 선과 평화의 근원인 주님의 얼굴빛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 얼굴빛을 거두지 않으시고, 숨은 인간을 끝까지 찾아 나서셨습니다. 이것이 AC.222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따뜻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222, 심화 4, ‘사63:7-9’

AC.222.심화 4. ‘사63:7-9’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그가 말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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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2, 심화 2, ‘시67:1’

AC.222.심화 2. ‘시67: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시67:1) God be merciful unto us, and bless us, and cause his faces to shine upon us (Ps. 67:1). 이 구절을 AC.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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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7: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67:1) God be merciful unto us, and bless us, and cause his faces to shine upon us (Ps. 67:1).

 

 

이 구절을 AC.222에서 인용한 이유는, ‘여호와의 얼굴(the faces of Jehovah)이 자비(mercy), 축복(blessing), 평강(peace), 그리고 모든 선(good)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3:8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다’는 말씀을 해설하면서, 먼저 ‘여호와의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경 전체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증거 구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67:1입니다.

 

이 시편을 보면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을 비추사’라는 표현이 나란히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말씀 자체가 이미 ‘주의 얼굴빛’과 ‘은혜’, ‘’을 같은 의미권 안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얼굴은 인간을 정죄하거나 멀리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고 복을 주며 생명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얼굴빛을 비추사’라는 표현은 태양의 빛을 연상시킵니다. 자연계에서 태양이 빛과 열을 보내듯이, 영계에서는 주님께서 사랑과 진리를 끊임없이 보내십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국 전체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의 열과 진리의 빛으로 유지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얼굴빛’은 단순한 미소나 호의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시67 AC.222의 논증에 매우 중요한 본문이 됩니다. 만일 주님의 얼굴이 진노와 심판을 의미한다면, 어찌하여 시편 기자가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오히려 그는 그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얼굴이 곧 은혜와 축복의 근원임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창3의 장면도 다시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피한 것은 무서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가장 따뜻하고, 가장 자비로운 얼굴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을 의식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랑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빛은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에 햇빛이 들어오면 먼지와 어지러움이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햇빛은 악한 것이 아니지만, 그 빛은 숨겨져 있던 것을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빛 자체를 피하려 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AC.222에서 시67:1을 인용한 이유는, ‘여호와의 얼굴’이 무엇인지를 긍정적으로 정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얼굴이며, 은혜의 얼굴이며, 복의 얼굴입니다. 주님의 얼굴빛이 비친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인간 안에 흘러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창3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인간은 바로 그 얼굴빛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구절은 희망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얼굴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숨더라도 주님은 여전히 얼굴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67:1 AC.222의 맥락에서 보면 단순한 축복 기도가 아니라, 숨은 인간을 향해 여전히 사랑과 은혜를 비추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AC.222, 심화 3, ‘시4:6’

AC.222.심화 3. ‘시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4:6) There be many that say, Who will show us any good? Jehovah, lift thou up the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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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2, 심화 1, ‘민6:25-26’

AC.222.심화 1. ‘민6:25-26’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6:25, 26) Jehovah make 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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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25-26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25, 26) Jehovah make his faces to shine upon thee, and be merciful unto thee; Jehovah lift up his faces upon thee, and give thee peace (Num. 6:25–26).

 

 

이 구절을 AC.222에서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여호와의 얼굴(the faces of Jehovah)이 자비(mercy), 평화(peace), 사랑(love), 그리고 모든 선(good)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3:8의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다’는 구절을 해설하면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주님의 얼굴이 진노와 심판을 의미한다면, 아담과 하와가 숨은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오히려 정반대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은 자비와 평강의 얼굴입니다.

 

그래서 그는 민수기 6장의 축복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인간에게 흘러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태양이 빛을 비추듯이,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선과 진리를 보내십니다. 따라서 ‘얼굴을 비춘다’는 것은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과 나란히 사용됩니다.

 

또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평강(peace)은 단순한 마음의 안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국의 가장 깊은 상태이며, 주님 안에 있는 모든 질서와 조화가 인간 안에 흘러 들어오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얼굴은 평강의 근원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창3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담과 하와는 진노의 얼굴을 피해 숨은 것이 아닙니다. 자비와 평강의 얼굴을 피해 숨었습니다. 문제는 주님의 얼굴이 아니라 자기들의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벌거벗음을 알게 되었고, 악을 의식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주님의 빛 앞에 서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마치 병든 눈이 햇빛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햇빛 자체는 따뜻하고 생명을 주는 것이지만, 눈에 병이 있으면 그 빛이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얼굴은 언제나 자비와 평화이지만, 악을 의식하는 사람은 그 빛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또한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것은 ‘얼굴(face)이 아니라 히브리어 원문의 복수형인 ‘얼굴들(faces)입니다. 영어 본문도 ‘his faces’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무수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여호와의 얼굴’이라는 표현을 단순한 외형적 얼굴이 아니라, 주님의 신적 사랑과 자비가 인간에게 드러나는 모든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AC.222에서 민6:25-26을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창3에서 아담과 하와가 피한 ‘여호와의 얼굴’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얼굴은 심판의 얼굴이 아니라 은혜의 얼굴이며, 진노의 얼굴이 아니라 평강의 얼굴입니다.

 

결국 이 축복의 말씀은 창3의 장면을 거꾸로 비추어 줍니다. 아담은 그 얼굴을 피해 숨었지만, 주님은 여전히 그 얼굴을 비추고 계셨습니다. 인간은 도망쳤지만, 주님의 자비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수기의 축복은 단순한 제사장의 축도가 아니라, 창세기 이후 모든 인류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마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는 말씀 속에는, 숨은 아담을 찾아 나서신 주님의 사랑이 이미 담겨 있는 것입니다.

 

 

 

AC.222, 심화 2, ‘시67:1’

AC.222.심화 2. ‘시67: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시67:1) God be merciful unto us, and bless us, and cause his faces to shine upon us (Ps. 67:1). 이 구절을 AC.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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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2,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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