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5.심화

 

8. ‘단순 예정론처럼 읽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것을 단순 예정론처럼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자들이 미리 버림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그들의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어떤 방향에 놓여 있는가를 뜻합니다.

 

윗글은 위 심화 6에 나오는 내용인데, 여기 나오는 예정론이 뭔가요? 칼빈은 왜 이런 얘길 한 건가요? 그리고 이게 왜 여기서 갑자기 언급되나요?

 

 

여기서 말한 예정론’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누가 구원받고 누가 버림받을지가 하나님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사상입니다. 특히 존 칼빈과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이것이 강하게 발전했는데, 흔히 이중 예정’이라고 해서,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선택되고(election), 어떤 사람들은 심판으로 남겨진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칼빈 자신은 이것을 단순 냉혹한 운명론처럼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모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려 했습니다. 당시 중세 후기의 공로주의적 신앙, 곧 인간 행위나 교회 제도를 통해 구원을 확보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칼빈은 구원의 시작도 끝도 하나님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상이 어떤 성경 구절들과 결합될 때입니다. 예를 들어 방금 나온 계13:8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 같은 표현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마치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채 태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즉, 이미 영원 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결정되었다는 식으로 읽히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예정론처럼 읽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이런 구절들을 미리 확정된 운명 명단’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생명책은 어떤 천상 행정 문서가 아니라, 인간 안에 실제로 형성된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어떤 존재가 주님의 생명 질서와 결합된 상태를 뜻하고,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 그 상태가 자기 사랑과 거짓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 차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정론적 독해에서는 중심이 하나님이 미리 누구를 선택했는가’에 놓이기 쉽습니다. 반면 스베덴보리의 독해에서는 중심이 인간이 지금 어떤 사랑 안에 살고 있는가’에 놓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궁극적 생명은 언제나 주님께로부터 오지만, 인간은 자유 안에서 그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존재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는 처음부터 버림받도록 창조된 인간’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시며, 인간이 스스로 자기 사랑과 proprium 안에 머무르기를 고집할 때 스스로 천국 질서와 멀어진다고 봅니다. 즉, 지옥도 억지로 보내진 형벌 장소’라기보다, 자기 사랑의 상태가 끝까지 굳어진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정론 이야기가 갑자기 나온 이유는, 13:8 같은 표현이 역사적으로 예정론과 자주 연결되어 읽혀 왔기 때문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연스럽게 ,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구나’라고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그 구절을 그렇게 읽지 않고, 인간 안의 실제 영적 상태와 사랑의 방향을 설명하는 말씀으로 읽는다는 점을 구분해 드리기 위해 그 이야기를 언급한 것입니다.

 

 

 

AC.145, 창2:19-20, 이사야와 계시록을 통해 확인하는 '이름'의 의미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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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5, 심화 6,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AC.145.심화 7.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삶의 질(quality)’입니다. 위 문장은 위 해설에 나오는 문장인데, 여기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는, 이게 무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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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삶의 질(quality)입니다.

 

위 문장은 위 해설에 나오는 문장인데, 여기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이게 무슨 말인가요?

 

 

여기서 소리’는 문자 그대로의 이름 발음, 곧 외적인 호칭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삶의 질(quality)이다’라는 말은,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단순히 ○○’, ‘○○’ 같은 언어적 이름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실제 삶의 상태와 사랑의 방향이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AC.145 전체의 핵심을 아주 압축적으로 요약한 문장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계속해서, 말씀에서 이름(name)은 단순한 발음이나 문자 조합이 아니라, 존재의 essence quality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도, 문자 몇 자가 천국 장부에 적힌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존재의 영적 상태가 주님 앞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천국에서 주님이 인간을 아신다는 것은, 그 사람 주민등록 이름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사랑하며, 어떤 진리 안에서 살며, 삶 전체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이름의 발음 자체는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상에서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수천 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각 존재의 quality가 전부 다릅니다. 스베덴보리의 표현을 빌리면, 천국에서는 각 천사가 자기 사랑과 신앙의 상태에 따라 일종의 영적 이름’을 가집니다. 즉, 존재 상태 자체가 그 이름입니다.

 

그래서 소리’는 외적 표지이고, ‘quality’는 실제 존재 상태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어떤 이름 발음이 적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존재의 사랑과 신앙과 삶의 방향 전체가 천국 질서 안에 새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실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 이름을 들을 때, 단순 발음만 떠오르지 않고,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분위기와 기억 전체가 함께 떠오르지요.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훨씬 더 깊고 영적인 차원으로 가져갑니다. 천국에서는 이름이 곧 상태(state) quality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삶의 질이다’라는 문장은,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단순 호적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실제로 형성된 사랑과 진리의 상태라는 뜻입니다.

 

 

 

AC.145, 심화 8, ‘단순 예정론처럼 읽지 않는다’

AC.145.심화 8. ‘단순 예정론처럼 읽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것을 단순 예정론처럼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자들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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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5, 심화 6, ‘계13:8’

AC.145.심화 6.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13:8)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lamb’s book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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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13:8)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lamb’s book of life (Rev. 13:8).

 

 

이 구절이 AC.145에 인용된 이유는, 앞의 계3:4-5와 마찬가지로, ‘이름(name)이 단순한 문자상의 명단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상태와 본질을 뜻한다는 점을 다시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표현을 통해, 이름이 곧 천국적 생명과의 결합 여부를 나타낸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만약 이름이 단순 호칭이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말은 단순 등록 여부 정도의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서 생명책’은 주님 앞에 있는 인간의 생명 상태 전체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안에 어떤 사랑과 신앙과 삶의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지가 기록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히 주님이 그 사람을 모르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가 천국적 생명과 결합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곧, 그 존재의 essence quality가 어린 양, 즉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질서와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어린 양(Lamb)은 주님의 신적 인성, 특히 순결한 사랑과 구속의 측면을 뜻합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종교 명부에 오른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생명 안에 그 존재의 상태가 결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하는 것도 같은 구조입니다. 말씀에서 짐승(beast)은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여기서는 자기 사랑과 왜곡된 신앙 체계에 속한 상태를 뜻합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결국 그 존재가 주님의 질서보다 자기중심 질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AC.145의 문맥 안에서는, 이 구절이 이름(name)의 영적 의미를 매우 강하게 드러내는 예가 됩니다. 이름은 단순 호칭이 아니라 존재의 영적 상태 전체를 뜻하기 때문에,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천국 질서 안에 있다는 뜻이고,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상태가 그 질서와 결합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것을 단순 예정론처럼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자들이 미리 버림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그들의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어떤 방향에 놓여 있는가를 뜻합니다. 생명책은 단순 외적 명단이 아니라, 존재의 실제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13:8 AC.145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이름(name)은 인간의 essence quality를 뜻하며, 따라서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존재가 주님의 생명 질서 안에 결합되어 있음을,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상태가 그 질서와 일치하지 않음을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45, 심화 6, ‘기록된 것은 소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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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5, 심화 5, ‘계3:4-5’

AC.145.심화 5. ‘계3:4-5’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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