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8)



AC.274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to eat the herb of the field), 곧 거친 음식(wild food)을 먹는다는 것은, 들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니엘에 느부갓네살에 대하여 말씀하신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o “eat the herb of the field” (that is, wild food) denotes to live like a wild animal,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of Nebuchadnezzar in Daniel: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4:25) They shall drive thee from man, and thy dwelling shall be with the beast of the field; they shall make thee to eat grass as oxen, and seven times shall pass over thee (Dan 4:25).

 

그리고 이사야에 And in Isaiah:

 

26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37:26, 27) Hast thou not heard how I have done it long ago, and from the days of old have I formed it; now have I brought it to pass, and it shall be to lay waste bulwarks, fenced cities, in heaps; and their inhabitants, short of hand, were dismayed and put to shame; they were made the grass of the field, and the green [olus] of the herb, the grass of the housetops, and a field parched before [coram] the standing corn (Isa. 37:26–27).

 

여기서는 들의 풀(the grass of the field), ‘푸른 나물(the green of the herb), ‘지붕의 풀(the grass on the housetops), 그리고 자라지 못한 곡초(a field parched)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홍수 이전 시대이며, 그걸 태초부터(long ago)상고부터(the days of old)라는 말로 표상하고 있습니다. Here it is explained what is signified by the “grass of the field,” the “green of the herb,” the “grass on the housetops,” and a “field parched”; for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time before the flood, which is meant by “long ago,” and the “days of old.”

 

 

해설

 

AC.274에서 스베덴보리는 앞글인 AC.272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라는 말씀을 계속 설명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음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변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따라 살 때 비로소 참된 사람이 되지만, 그 생명을 거부하고 겉 사람만을 따라 살아가면 결국 들짐승과 같은 삶의 수준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따라서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들짐승처럼 살아가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스베덴보리는 먼저 단4:25의 느부갓네살을 인용합니다. 느부갓네살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사람에게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신 질환이나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교만으로 인하여 인간다운 영적 생명을 잃고, 본능적인 삶의 수준으로 떨어진 사람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어서 스베덴보리는 사37:26-27을 인용합니다. 여기에는 ‘들의 풀’, ‘푸른 나물’, ‘지붕의 풀’, ‘자라지 못한 곡초’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는 이러한 식물들이 모두 서로 다른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설명합니다. 풀은 쉽게 자라고 쉽게 마르며, 뿌리가 깊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식물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자연적 생명과 일시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특히 ‘지붕의 풀’은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는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흙이 거의 없는 지붕에서는 풀이 잠시 자랄 수는 있지만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의 내적 연결 없이 외적 지식이나 감각만으로 유지되는 신앙은 잠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 시련과 유혹을 만나면 쉽게 말라 버립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징을 통하여 홍수 이전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라지 못한 곡초’는 열매를 맺기도 전에 생명이 끊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곡식은 본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자라야 하지만, 충분히 성장하기도 전에 말라 버리면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 안에 심어진 선과 진리가 거듭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own과 자기 사랑 때문에 중도에 소멸되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마지막에서 이사야의 ‘태초부터’와 ‘상고부터’라는 표현이 단순히 먼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홍수 이전 시대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곧 이사야는 당시의 역사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 말기 사람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황폐해졌는지를 상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예언은 창3의 타락과 노아 홍수 이전의 교회 상태를 함께 조명하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AC.274는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라는 말씀이 인간이 자연적 생명만을 따라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함을 여러 성경 본문을 통하여 증명하는 글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상태를 잃은 모습을, 이사야의 ‘들의 풀’, ‘푸른 나물’, ‘지붕의 풀’, ‘자라지 못한 곡초’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잃고, 쉽게 시들어 버리는 영적 상태를 각각 보여줍니다. 이를 통하여 스베덴보리는 창3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라는 말씀이 인간의 영적 타락과 그로 인한 생명의 쇠퇴를 나타내는 깊은 상징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화

 

1. ‘4:25

 

 

AC.274, 심화 1, ‘단4:25’

AC.274.심화 1. ‘단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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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7:26-27

 

 

AC.274, 심화 2, ‘사37:26-27’

AC.274.심화 2. ‘사37:26-27’ 26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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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5, 창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AC.275-27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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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창3:18, ‘가시덤불과 엉겅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8)AC.273‘가시덤불과 엉겅퀴’(the thorn and the thistle)가 저주와 황폐(vastation)를 의미한다는 것은, 추수(harvest)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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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심화

 

5. ‘28:24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28:24) There shall be no more a pricking brier unto the house of Israel, nor a painful thorn from all that are round about them (Ezek. 28:24).

 

 

스베덴보리가 AC.273에서 겔28:24을 인용하는 이유는, 앞에서 호세아와 이사야를 통하여 ‘가시’, ‘찔레’, ‘가시덩굴’,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영적 황폐(vastation)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설명한 데 이어, 이 구절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제거되는 모습을 통하여 교회의 회복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예언들이 황폐의 상태를 묘사한다면, 에스겔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회복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There shall be no more a pricking brier unto the house of Israel, nor a painful thorn from all that are round about them)라는 말씀은, 자연 속 가시나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를 괴롭히던 악과 거짓의 세력이 더 이상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는 영적 생명을 상하게 하는 악과 거짓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족속’은 단순히 역사적 이스라엘 민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참된 교회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는 교회 밖에서 끊임없이 참된 신앙을 대적하고 무너뜨리려는 악과 거짓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주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어 그러한 세력이 더 이상 교회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라는 표현은 악과 거짓의 성질을 잘 보여줍니다. 가시는 사람을 찌르고 상처를 남기듯이, 거짓은 사람의 이해를 왜곡하고, 악은 사람의 의지를 병들게 합니다. 그 결과 선과 진리는 자라지 못하고, 영적 생명은 점차 메말라 갑니다. 그러므로 가시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영적 황폐를 일으키는 원인을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AC.273에서 이 구절을 마지막에 인용, 매우 아름다운 대조를 보여줍니다. 호세아에서는 찔레와 가시덩굴이 장막을 덮고, 또 가시와 찔레가 제단 위에 나며, 이사야에서는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돋아납니다. 그러나 에스겔에서는 마침내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게 됩니다. 이는 말씀 전체가 타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회복과 새 교회의 소망까지 함께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겔28:24은 창3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창세기에서는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지만, 에스겔에서는 주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괴롭히던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는 타락의 결과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회복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 전체에서 ‘가시’, ‘찔레’, ‘가시덩굴’,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모두 악과 거짓, 그리고 영적 황폐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주님께서 교회를 회복하실 때에는 그러한 것들이 완전히 제거되어 다시 선과 진리가 평안 가운데 열매를 맺게 됨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겔28:24 AC.273의 결론을 이루는 말씀으로, 영적 황폐보다 더 크신 주님의 회복의 능력을 증언하는 중요한 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273, 창3:18, ‘가시덤불과 엉겅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8)AC.273‘가시덤불과 엉겅퀴’(the thorn and the thistle)가 저주와 황폐(vastation)를 의미한다는 것은, 추수(harvest)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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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심화 4, ‘사32:12-13’

AC.273.심화 4. ‘사32:12-13’ 12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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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심화

 

4. ‘32:12-13

 

12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13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32:12, 13) Mourning upon the paps for the fields of desire, for the fruitful vine; upon the ground of my people shall come up the briery thorn (Isa. 32:12–13).

 

 

스베덴보리가 AC.273에서 사32:12-13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시’와 ‘찔레’가 선과 진리의 결핍, 곧 영적 황폐(vastation)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본문은 본래 열매가 풍성해야 할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의 자리에 ‘가시와 찔레’가 나는 상태를 말하고 있으므로,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같은 영적 의미를 다른 예언서의 표현으로 보여줍니다.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Mourning upon the paps for the fields of desire, for the fruitful vine)라는 말씀에서 ‘좋은 밭’은 선이 자라야 할 교회의 상태를, ‘열매 많은 포도나무’는 진리로부터 맺히는 영적 열매를 의미합니다. 밭과 포도나무는 본래 축복과 번성,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 안에서 열매 맺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upon the ground of my people shall come up the briery thorn)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내 백성의 땅’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교회와 사람의 겉 사람, 곧 선과 진리가 심기고 자라야 할 삶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난다는 것은, 본래 선과 진리의 열매가 있어야 할 곳에 악과 거짓이 자라기 시작했음을 뜻합니다.

 

이 구절이 중요한 이유는, 황폐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빈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영적 황폐는 열매가 사라진 자리에 곧바로 가시와 찔레가 자라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own과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과 악으로 채워집니다.

 

스베덴보리는 AC.273에서 여러 본문을 나란히 인용하면서, ‘가시’, ‘찔레’, ‘가시덩굴’ 같은 표현들이 모두 같은 계열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호9에서는 찔레와 가시덩굴이 장막과 은을 덮고, 호10에서는 가시와 찔레가 제단 위에 나며, 사32에서는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납니다. 표현은 본문마다 다르지만, 모두 선과 진리가 물러난 자리에 악과 거짓이 자라는 영적 황폐를 가리킵니다.

 

특히 사32의 경우,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가 먼저 언급된 뒤 곧바로 ‘가시와 찔레’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대조가 매우 선명합니다. 본래 교회는 열매 맺는 밭과 포도나무 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잃으면, 같은 땅이라도 더 이상 열매를 내지 못하고, 가시와 찔레를 내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창3 이후 겉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타락의 결과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사32:12-13을 인용하는 이유는, ‘가시’와 ‘찔레’가 말씀 전체에서 영적 황폐를 나타내는 일관된 상징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는 축복과 번성을, 가시와 찔레는 저주와 황폐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창3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단순한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과 교회 안에서 선과 진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악과 거짓이 차지하게 된 영적 상태를 의미한다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AC.273, 심화 5, ‘겔28:24’

AC.273.심화 5. ‘겔28:24’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겔28:24) There 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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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심화 3, ‘모독’(profanation)

AC.273.심화 3. ‘모독’(profanation)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상태를 ‘모독’(profa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독이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own과 자기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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