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techism or Decalogue Explained in Its External And Its Internal Sense
해설
이 짧은 제목 안에는 스베덴보리 신학의 핵심 구조가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먼저 ‘Catechism’(교리문답서)이라는 말은 단순한 설명서가 아니라 ‘신앙의 가장 기본을 가르치는 틀’을 의미합니다. 전통 교회에서도 교리문답은 신앙의 입문서 역할을 하는데, 스베덴보리는 바로 그 자리에 ‘십계명’을 둡니다. 즉, 신앙의 시작은 어떤 교리 체계나 신학적 논증이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와 같은 삶의 규범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미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신앙은 ‘무엇을 믿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Decalogue’(십계명)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열 가지 명령이라는 뜻을 넘어서, ‘하나님이 직접 주신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래 TCR.282에서도 보듯, 이 계명들은 이미 인간 사회가 알고 있는 도덕이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주심으로써 ‘종교의 법’, 곧 ‘구원과 연결된 법’이 됩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단순한 윤리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접점’이며, 인간이 실제로 변화되는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이 제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외적 의미와 내적 의미’입니다. 외적 의미는 누구나 아는 그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내적 의미에서는 ‘미움, 증오, 복수심과 같은 것들도 모두 살인의 본질’로 봅니다. 마찬가지로 ‘간음하지 말라’는 외적으로는 육체적 행위를 금하지만, 내적으로는 ‘선과 진리를 더럽히는 모든 상태’, 또는 ‘사랑의 질서를 깨뜨리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이렇게 보면 십계명은 단순한 행동 규칙이 아니라 ‘인간 내면 전체를 다루는 말씀’이 됩니다.
결국 이 제목이 말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십계명은 겉으로는 사회를 유지하는 법이지만, 속으로는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십계명을 단순히 설명하지 않고, ‘외적 의미 → 내적 의미’로 점점 깊이 들어가며 풀어냅니다. 이것은 곧 독자를 ‘겉 사람의 도덕’에서 ‘속 사람의 변화’로 이끄는 과정이며, 바로 그 점에서 이 부분 전체가 하나의 ‘거듭남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는 스베덴보리 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라틴 Arcana Coelestia, 영어 Secrets of Heaven, 天界秘義, 1749-1756, 창, 출 속뜻 주석, 총 10,837개 글)의 라틴어 제목의 약어입니다. 창세기의 약어가 ‘창’인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지난 2017년에 스베덴보리를 처음 알게 되었고, 2019년부터 그의 저서 중 위 AC 영역 번역을 시작, 지금까지 창1, 2, 3만 대략 10회 정도 반복했습니다. 하다 보면 놓쳤던 부분들이 새롭게 발견되어 ‘다시 처음부터!’를 반복, 또 반복했기 때문인데, 총 10,837개나 되는 글, 일단 시작하면 기본이 10년 치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련곰퉁이스러움에 따른 영적, 내적 보상도 결코 적지 않았고, 그래서 후회는 전혀 없으며, 지금은 오히려 나름 제 역량에 맞는 터를 잘 닦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지난 수년간 몸부림치며 안타까워했던 것은 진도가 안 나간다는 것보다 어떤 특별한 개념들이 또렷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표현과 표현 사이 뭔가 잘 모르겠는 빈틈들, 허전함들이 느껴지지만 그걸 명료하게 설명을 잘 못하겠는 겁니다. 분명 번역은 갈수록 매끄러워지는데 말입니다. 이 AC라는 저작은 그 제목만큼이나 정말 ‘감추어진’ 책이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거듭 강조하는 대로, 제가 번역과 함께 ‘선을 실천’하는 일에도 힘썼더라면 내면이 활짝 열려 퍼셉션(perception)으로 알 수 있었을까요?
이런 저에게 주님은 한 줄기 빛, 그러니까 이 시대 유용한 도구인 AI 사용에 대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이쪽 일하는 저희 큰아들의 권면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일체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신성한 일에 대한 뭐랄까... 좀 불경한 접근 같아서 말이지요. 그러다 작년 가을, 오랜 신앙 지인들의 모임을 통해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ChatGPT였습니다. 저는 현재 ChatGPT 5.3 유료 버전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bygrace.kr)에 오시면 관련 이야기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선뜻 받아들인 건 아니고, 아주 조심스러운, 그리고 철저한 나름의 검증을 통해 ‘이만하면 주님이 인도하신 도구가 맞는 것 같다’ 컨펌(confirm)하게 되었고, 그 후 쓰면 쓸수록 주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주셔서 결국 지금의 ‘AC 해설 심화 버전’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대략 보면, 혼자 하면 1, 2년 걸릴 일을 얘와 함께하면 달포, 그러니까 한 달이 조금 넘는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작년, 그러니까 2025년 가을인 11, 12월 두 달간 나름의 검증 기간 후, 어느 날 주님은 이 AC 글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 곧 해설을 달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동안 저는 번역만 좀 현대어, 요즘 구어체로 매끄럽게 잘하면 사람들이 읽지 않을까 싶어 번역 다듬는 데만 전념했었거든요. 그런데 번역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이 AC는 아예 글의 출발점이 달라 여간해서는 이해가 잘 안되거나 불가능한 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이 세상 글은 지상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이 AC 글은 천국 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분명 한글인데, 그리고 신앙 관련 글인데, 읽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 희한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설’을 통해 그 간극을 좀 메꿔주고자 했는데, 이 부분을 ChatGPT가 나름 괜찮게 해주더군요. 이 해설 버전은 2026년 1월부터 달포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해설 버전조차도 좀 읽다 보니 뭐랄까, 군데군데 징검다리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이런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말이지요. 분명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서 글 하나하나를 그런 관점에서 재작업, 지난 2월 하순부터 시작, 오늘 마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만하면 완성도가 매우 높다, 초보자들도 큰 어려움 없이 읽으실 수 있겠다 싶지만, 모르죠. 이마저도 혹시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주님이 또 다른 새 아이디어로 보완해 주실 줄 믿습니다.
프롬프트(prompt)를 충분히 자세히 작성, ChatGPT에게 건네주면, 그 난이도에 따라 답을 하는데, 이걸 그대로는 쓸 수 없어 초벌이라 하고, 제가 좀 전반적으로 다듬어 원고와 블로그에 올리지요. 기특한 건, ChatGPT 역시 저를 학습, 갈수록 마치 천생 듀엣처럼 서로에게 편안해져 가네요. 저는 얘를 통해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고, 그리고 얘를 통해 제가 사실은 좀 극단적 사고를 하며, 참 비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에 비해 얘는 정말 합리적이더군요. 저는 얘를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게 많습니다. 신령한 일을 하는 사람이 이런 AI를 가지고 하는 거에 대해 좀 부정적인 분들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건 뭐 몇 마디 설명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본인이 경험하고, 본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AI를 ‘주님이 허락하신 이 시대 도구’로 가까이할지, 아니면 이 AI에게 ‘잡아먹힐지’를 말이지요. 본인이 늘 주님의 생생하신 인도 가운데 있다면, 글쎄요... 이런 ‘도구’에게 ‘잡아먹힐’ 수 있을까요? 제 경우, 어떨 때는 얘가 절더러 주님을 의뢰하시라고 살짝 꾸짖기도 하더라고요... 거 참!
그동안 창1 작업 전 과정을 통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이제 계속해서 창2, 창3... 진도를 나가면 되겠습니다. 한 달에 한 장씩 가능할까요? 갈수록 그 내적 의미, 곧 속뜻의 깊이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말이지요. 오직 주님의 빛 비추심만 구합니다. 아무리 AI가 초벌 결과물을 턱턱 내어도 그걸 살피고 어루만지려면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는 천국의 빛이 있어야 하거든요. 오직 이 빛 아래서만 이 모든 작업이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주님의 격려에 힘입어 아래 이 심화 버전을 공유합니다. 부디 말씀의 빛을 힘써 구하시는 모든 분께 이 ‘창1AC 번역 및 해설에 관한 심화 버전’이 나름 도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4, ‘왕 되신 주’,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161, ‘할렐루야 우리 예수’입니다.
오늘은 창1 일곱 번째, 창1 마지막 시간으로, 본문은 26절로 31절, AC 글 번호로는 51번에서 66번입니다. 오늘로 창1 AC 리딩을 마칩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은 2026년 부활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리딩 역시 ‘주님의 부활로 본 창1’ 관점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26-31)
이 본문을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 (3), 주님의 부활로 본 창1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본문 및 해설,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시작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창2 시작합니다. 오늘도 분량이 제법 되지요? 양면으로 60장이니 말입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다루어야 할 기초들이 좀 있어 어쩔 수 없지 싶습니다만, 그러나 이 말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시기 바라며, 다만 향후 진도를 쭉쭉 빼기 위해서는 창1, 2, 3을 하는 지금, 그 기초들, 특히 심화에서 다루는 내용들을 정독 및 학습을 통해 정말 제대로 해 놓으셔야 합니다. 특별히 이 ‘심화’에서 다루는 이슈들은 제가 ‘만일 이 글을 완전 처음 접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어떤 점들이 걸리실까, 어떤 데서 어리둥절해들 하실까’ 기도하며 선정한 이슈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심화 부분들을 철저히 해두시면 앞으로 진도 뺄 때, 큰 어려움들 없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