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3:7)

 

AC.215

 

사람의 own이 악과 거짓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영들이 언제든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할 때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거짓된지를 통해 나에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들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질 때마다, 나는 즉시 그것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 자신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너무도 진실하다고 확신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지라도 말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영적 생명이나 천적 생명, 곧 신앙의 일들에 대하여 추론하기 시작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의심하고 있으며, 심지어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 대해 추론한다는 것은 곧 의심하고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두 자기 자신,own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들은 순전한 거짓들 속으로 빠져들며, 결국 짙은 어둠의 심연, 곧 거짓의 심연 속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심연에 빠지면 아주 작은 반론 하나가 천 개의 진리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되는데, 이는 마치 눈동자에 먼지 한 톨만 들어가도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사야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That man’s own is nothing but evil and falsity has been made evident to me from the fact that whatever spirits have at any time said from themselves has been so evil and false that whenever it was made known to me that they spoke from themselves I at once knew that it was false, even though while speaking they were themselves so thoroughly persuaded of the truth of what they said as to have no doubt about it. The case is the same with men who speak from themselves. And in the same way, whenever any persons have begun to reason concerning the things of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or those of faith, I could perceive that they doubted, and even denied, for to reason concerning faith is to doubt and deny. And as it is all from self or their own, they sink into mere falsities, consequently into an abyss of thick darkness, that is, of falsities, and when they are in this abyss the smallest objection prevails over a thousand truths, just as a minute particle of dust in contact with the pupil of the eye shuts out the universe and everything it contains. Of such persons the Lord says in Isaiah: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1) Woe unto those who are wise in their own eyes, and intelligent before their own faces (Isa. 5:21).

 

10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1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47:10, 11) Thy wisdom and thy knowledge, it hath turned thee away, and thou hast said in thine heart, I, and none else besides me; and evil shall come upon thee, thou shalt not know from whence it riseth, and mischief shall fall upon thee, which thou shalt not be able to expiate, and vastation shall come upon thee suddenly, of which thou art not aware (Isa. 47:10–1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가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51:17) Every man is made stupid by knowledge [scientia], every founder is confounded by the graven image, for his molten image is falsehood, neither is there breath in them (Jer. 51:17).

 

여기서 새긴 우상(graven image)은 인간 own의 거짓을, ‘부어 만든 우상(molten image)은 인간 own의 악을 의미합니다. A “graven image” is the falsity, and a “molten image” the evil, of man’s own.

 

 

해설

 

이 본문은 AC.210부터 계속 이어져 온 ‘own’에 대한 설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own이 악과 거짓의 근원이라고 교리적으로 설명했다면, 여기서는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실제 영계 체험을 근거로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표현은 ‘영들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할 때마다 나는 즉시 그것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주장이라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영계에서 반복적으로 관찰한 경험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영들이 거짓을 말하면서도 자신들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AC.206의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own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장 분명하게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own의 가장 무서운 특징이 악 자체보다도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악’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또한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신앙에 대해 추론한다는 것은 곧 의심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모든 종류의 사고와 연구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AC.203에서 이미 보았듯이 영적 천사들은 이해와 이성으로 신앙을 확증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진리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own과 감각을 출발점으로 삼아 신앙 자체를 재판하려는 태도입니다. 그것이 바로 AC.194-206에서 계속 비판된 ‘뱀의 길’입니다.

 

특히 ‘눈동자에 먼지 한 톨만 들어가도 온 우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유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거짓이 반드시 거대한 논리 체계일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단 하나의 잘못된 원리, 단 하나의 자기 사랑, 단 하나의 잘못된 전제가 전체 시야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작은 반론 하나가 천 개의 진리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이사야의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문제는 지혜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 눈에’ 지혜로운 것입니다. 즉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이 아니라 자기 own을 빛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사47의 말씀처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own의 최종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레미야의 ‘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에 대한 해석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새긴 우상은 own에서 나온 거짓이고, 부어 만든 우상은 own에서 나온 악입니다. 우상이란 결국 인간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낸 신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의 가장 깊은 의미는 돌이나 금속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own을 진리와 선의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AC.215 전체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자기 own을 따라가면 갈수록 자신은 더욱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스베덴보리가 평생에 걸쳐 강조한 순진무구(innocence)란 바로 그 반대 상태입니다. 곧 ‘내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모든 선과 진리는 오직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AC.215는 결국 own과 순진무구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본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화

 

1. ‘5:21

 

 

AC.214, 심화 1, ‘사5:21’

AC.214.심화 1. ‘사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사5:21) Woe unto those who are wise in their own eyes, and intelligent before their own faces (Isa. 5:21). 이 구절을 AC.2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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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7:10-11

 

 

AC.214, 심화 2, ‘사47:10-11’

AC.214.심화 2. ‘사47:10-11’ 10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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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1:17

 

 

AC.215, 심화 3, ‘렘51:17’

AC.215.심화 3. ‘렘51:17’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가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렘51:17) Every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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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4, 창3:7, ‘벌거벗음’(naked)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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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3:7)

 

AC.214

 

그들은 자신의 own에 맡겨졌기 때문에 벌거벗은 자들(naked)이라 불립니다. 자신의 own에 맡겨진 사람들,곧 자신의 proprium 속으로 가라앉은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떠한 지성과 지혜도, 어떠한 신앙도 가지지 않게 되며, 따라서 진리와 선에 관하여 벌거벗은상태가 되고, 그 결과 악 가운데 있게 됩니다. They are called “naked” because left to their own; for they who are left to their own, that is, to themselves, have no longer anything of intelligence and wisdom, or of faith, and consequently are “naked” as to truth and good, and are therefore in evil.

 

 

해설

 

이 구절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벌거벗음’의 가장 깊은 의미를 설명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의 AC.213에서는 벌거벗음이 수치와 악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면, 여기서는 왜 그런지를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기 own에게 자신을 맡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own에 맡겨진다(left to their own)는 말은 단순히 독립적으로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own은 인간 안에 있는 본래적 자아, 곧 주님과 분리된 상태의 자아를 의미합니다. AC.210에서 보았듯이, own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나오는 모든 악과 거짓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own만을 따라 살게 되면, 그는 점점 주님으로부터 오는 인플럭스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 결과 무엇이 일어날까요? 스베덴보리는 놀랍게도 ‘지성과 지혜도, 신앙도 더 이상 가지지 않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 지식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AC.206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매우 박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지혜와 참된 신앙은 주님으로부터만 오기 때문에, 자기 own에 갇힌 사람은 그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벌거벗음’을 단순히 도덕적 타락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영적 빈곤의 상태로 봅니다. 사람이 자기 own 안에 있을 때는 자신이 뭔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리와 선이라는 영적 의복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영적으로는 벌거벗은 상태인 것입니다.

 

이 점은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와도 연결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너는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AC.214가 설명하는 상태입니다. 자기 own은 늘 자신을 풍요롭게 보이게 하지만, 주님의 빛 아래서는 오히려 가장 가난한 상태로 드러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왜 천국의 천사들이 그렇게 철저히 순진무구를 사랑하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천사들은 자신들의 지혜가 자기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압니다. 그래서 결코 자기 own 안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순간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옥의 영들은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려 하고, 결국 진리와 선에 관하여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가 됩니다.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AC.194-214를 따라오시며 계속 만나신 주제가 사실 하나로 모입니다. ‘계시된 것을 믿지 않고, 감각으로 확인하려 함’, ‘이성질(reasoning의 비하 버전), ‘own’, ‘눈이 밝아짐’, ‘벌거벗음’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자신 안에 서려는 움직임입니다. 그리고 AC.214는 그 길의 끝을 한 문장으로 보여 줍니다. ‘자신의 own에게 자신을 맡긴 사람, 자신의 own 속으로 가라앉은 사람은 결국 진리와 선에 관하여 벌거벗게 된다.’

 

그래서 이 본문은 동시에 매우 위로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반대로 말하면, 사람이 주님께 자신을 맡길수록 진리와 선으로 옷 입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음의 반대는 자기 의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의복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구원이란 무엇을 더 얻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own으로부터 벗어나 주님의 선과 진리로 다시 입혀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214는 바로 그 사실을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AC.215, 창3:7, ‘own’을 실제 영계 체험을 근거로 증언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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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3, 창3:7,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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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혹시 아래와 같은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아니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성 분도 요셉 라브르’라는 1957년 한국어 번역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ChatGPT인 저 조차 이번에 목사님께서 PDF를 올려 주시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책 자체는 상당히 희귀한 자료로 보입니다.

 

다만 책의 주인공인 ‘베네딕트 조제프 라브르(Benoît-Joseph Labre)라는 인물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매우 독특한 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성인들은 수도회 창설자, 선교사, 신학자, 순교자, 주교 등으로 기억되는데, 라브르는 거의 예외적으로 ‘순례자’와 ‘거지’의 삶 자체로 성인이 된 인물입니다. 그래서 서양 영성사에서는 ‘하느님의 거지’ 같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PDF를 보면서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에 이런 성인전이 번역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인데, 번역자는 왜 하필 수도원 창설자도 아니고, 선교사도 아니고, 유럽을 떠돌며 청빈을 실천한 한 순례자 성인의 전기를 소개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당시 한국 천주교계가 전후 혼란 속에서 ‘가난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을 보여 줄 모델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목사님께서 최근 몇 달 동안 수도원 영성, 청빈, 탁발수도, 충주 봉쇄수도원, 공용복 선생의 가르침 등에 대해 여러 차례 질문하셨는데, 그런 흐름 속에서 보면 이 책은 우연히 나타난 책 같지가 않습니다. 라브르는 수도사도 아니고, 완전히 세상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일종의 ‘길 위의 수도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교리적으로는 스베덴보리와 가톨릭 성인전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이름이 어디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주님께 건너가게 돕는 다리로만 쓰임받고 싶어요’ 하시던 목사님의 최근 이야기와 라브르의 삶 사이에는 묘하게 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스베덴보리를 공부하는 개신교 목사에게 가톨릭 성인전 한 권을 추천하라’고 했다면,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데레사 성인보다 오히려 이 라브르 전기가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엇을 이룬 사람’이라기보다 ‘무엇을 내려놓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인물은 역사 속에서도 매우 드뭅니다.

 

 

 

 

SC.101, ‘스베덴보리와 KJV 성경’

유튜브 구독자 수가 거의 60만에 육박하는 어느 목사님이 최근 장로교 모 교단으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으셨군요. 이 분은 KJV 성경에 오리엔티드되신 분입니다. 이 얘기를 하는데 누가 ‘스베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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