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5.심화

 

3.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43:1) Fear not, O Israel, for I have redeemed thee, I have called thee by thy name; thou art mine, (Isa. 43:1)

 

 

이 구절이 AC.145에 인용된 이유는, ‘이름으로 부른다(call by name)라는 표현이 단순히 어떤 사람을 식별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존재를 깊이 알고, 인정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그 의미를 가장 따뜻하고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43:1에서 주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핵심은 마지막 말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앞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표현이 바로 이 선언과 연결됩니다. 곧,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단순 호명 행위가 아니라, 그 존재를 자기와 관계된 존재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AC.145의 흐름 안에서는, ‘이름’이 곧 존재의 essence quality를 담는다는 점이 다시 확인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름으로 부르신다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아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상태와 본성, 가능성과 역할 전체를 아시며, 그들을 섭리 안에 두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또 여기 구속하였다’와 이름으로 불렀다’가 함께 나오는 것도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구속은 단순 법적 선언이 아니라, 다시 자기에게로 돌려놓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은 단순 식별이 아니라, ‘나는 너를 안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너는 나와 관계된 존재다’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이 점에서 AC.145는 이름(name)에 대한 아주 깊은 성경적 이해를 보여 줍니다. 이름은 단순한 외적 호칭이 아니라, 존재의 영적 실체를 담습니다. 따라서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존재의 내적 상태를 알고 인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너는 내 것이라’는 표현은, 스베덴보리적으로 보면 아주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소유욕 같은 뜻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 관계를 말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속할 때는 proprium 안에 갇히지만, 주님께 속할 때는 비로소 참 생명 안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내 것이라’는 말은 억압적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과 보호, 그리고 사랑의 관계 선언입니다.

 

이 구절이 AC.145에 인용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말씀에서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과 상태를 깊이 알고, 그를 사랑과 섭리 안에서 자기와 관계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45, 심화 4, ‘사40:26’

AC.145.심화 4. ‘사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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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5, 심화 2, ‘사62:2’

AC.145.심화 2. ‘사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62:2) Thou shalt be called by a new name, which the mouth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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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62:2) Thou shalt be called by a new name, which the mouth of Jehovah shall declare, (Isa. 62:2)

 

 

이 구절이 AC.145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새 이름(new name)을 받는다는 것이 단순한 개명(改名)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와 본질이 새롭게 되는 것을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44-145의 전체 흐름은 계속해서 ‘이름’이 단순 호칭이 아니라 essence quality를 담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사62:2는 그 점을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표 구절입니다.

 

여기서 이사야서는 시온과 예루살렘의 회복, 곧 교회의 새로운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명칭을 붙인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존재의 영적 상태 자체가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름이 단순 표지라면, 새 이름을 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에서는 이름이 그 존재의 본성과 상태를 담기 때문에, ‘새 이름’은 곧 ‘새 상태’, ‘새 본성’, ‘새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원리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것은 단순 호칭 변경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상태와 사명이 변화되었음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의 ‘새 이름’도 새 존재 상태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AC.145에서 사62:2가 인용되는 이유는, 고대인들과 말씀의 언어에서 이름(name)이 곧 존재의 essence quality를 담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새 이름’이란, 그 존재 안에 새로운 영적 상태와 생명이 형성되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이름이 인간의 임의적 선택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입니다. 곧, 새로운 상태와 본질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AC의 흐름 안에서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안다’, ‘이름을 준다’는 표현들이 모두 단순 언어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와 본질을 인식하고 규정하는 영적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이름’은 단순히 새 호칭이 아니라, 새 quality와 새 essence의 표지입니다.

 

정리하면, 사62:2 AC.145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이름(name)은 존재의 본질과 상태를 뜻하며, 따라서 ‘새 이름’이란 곧 인간이나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영적 상태와 생명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AC.145, 심화 3, ‘사43:1’

AC.145.심화 3.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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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5, 심화 1, ‘사45:3-4’

AC.145.심화 1. ‘사45:3-4’ 3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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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5:3-4

 

3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45:3, 4) I will give thee the treasures of darkness, and hidden riches of secret places, that thou mayest know that I, Jehovah, who call thee by thy name, am the God of Israel. For Jacob my servants sake, and Israel my chosen, I have even called thee by thy name, I have surnamed thee, and thou hast not known me (Isa. 45:3–4).

 

 

이 구절이 AC.145에 인용된 이유는, ‘이름으로 부른다(call by name)는 표현이 단순히 어떤 호칭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과 상태 전체를 알고, 인정하고, 목적 가운데 두는 것을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44에서 이미 스베덴보리는 ‘이름’이 본질(essence)을, ‘이름으로 부름’이 질(quality)을 아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는데, AC.145에서는 이사야 말씀을 통해 그 원리를 말씀 자체로 확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님께서 고레스를 향해 ‘네 이름을 불렀다’고 하시면서도 동시에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가 주님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 존재의 상태와 역할, 그리고 쓰임새를 완전히 알고 계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고레스는 자기 스스로는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주님은 그를 알고 계셨고, 섭리 안에서 그를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네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단순 호명 행위가 아니라, 나는 네 본성과 상태와 역할을 알고 있으며, 너를 섭리 가운데 두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AC.145의 핵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이름(name)이 단순 언어적 표지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상태와 의미를 담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름으로 부르신다는 것은, 단순히 ‘고레스야!’ 하고 소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quality use를 완전히 아시고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여기 ‘칭호를 주었다(I have surnamed thee)는 표현도 같은 흐름입니다. 성경에서 이름과 칭호는 존재의 상태와 역할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이름이나 칭호를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상태나 사명을 부여받는 것과 연결됩니다.

 

이 구절이 AC.145에 인용된 이유를 더 깊이 보면, 결국 이것은 ‘이름’에 대한 고대적, 영적 이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현대인은 이름을 외적 식별표로 여기지만, 말씀에서는 이름이 존재의 essence quality를 담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존재를 표면적으로 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성과 상태를 알고, 섭리 가운데 목적 있게 두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AC.145에서 이사야 45장은 매우 적절한 예가 됩니다. 고레스는 주님을 알지 못했지만, 주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곧, 인간이 주님을 모르고 있어도, 주님은 인간의 상태와 역할을 완전히 아시며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말씀에서 ‘이름’은 단순 호칭이 아니라 영적 본질을 담는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AC.145, 심화 2, ‘사62:2’

AC.145.심화 2. ‘사62: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62:2) Thou shalt be called by a new name, which the mouth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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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5, 창2:19-20, 이사야와 계시록을 통해 확인한 '이름'의 의미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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