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진리 자체를 위하여 사랑한다는 게 뭔가요?

 

진리를 진리 자체를 위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진리가 나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나의 입장을 강화해 주기 때문에, 나를 높여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참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진리가 나를 기쁘게 하든 아프게 하든, 나를 드러내 주든 낮추든,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빛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진리를 ‘수단’으로 쓰지 않고, 진리를 ‘목적’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말씀이 나의 습관이나 생각을 바로잡을 때, 그것이 불편하더라도 ‘그래도 이것이 참이라면 나는 배우겠다’라고 반응하는 것이 진리를 진리로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반대로, 말씀을 읽으면서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면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라고 접근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성경을 읽어도, 속으로는 자기를 확증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표현으로 말하면, 이는 ‘자기 사랑’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의 빛’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해도 진리를 존중합니다. 그는 진리를 통해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곧 삶으로 이어집니다. 진리를 진리로 사랑하는 사람은 ‘옳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옳은 대로 살고자’ 합니다. 여기서 이해와 삶이 연결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겸손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우기를 기뻐합니다. 그는 진리를 자기 소유물로 만들려 하지 않고, 진리 앞에서 배우는 자로 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진리를 진리 자체를 위하여 사랑하는 자가 곧 주님에 의해 인도되는 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방향이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니라 진리, 곧 주님 쪽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매우 단순하지만 깊은 질문으로 드러납니다. ‘나는 왜 이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가?’ 내가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인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정말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알고 싶어서인가? 진리를 진리로 사랑하는 마음은 조용하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 하늘의 빛이 스며듭니다. 그런 마음에서 말씀을 읽을 때, 비로소 내면의 열림(enlightenment)이 시작됩니다.

 

 

 

SC.15, ‘노아의 홍수’의 속뜻

‘노아의 홍수’의 속뜻을 설명해 주세요. 노아의 홍수는 실제 역사적으로 있었던 게 아니라는 말에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저도 그랬고, 거의 모든 개신교인, 기독교인들이 마음이 철컹 닫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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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그 영적, 즉 내적 의미

The Word, and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AC에서 인용

From Arcana Coelestia

 

WH.6

 

말씀의 필요성과 탁월성 The necessity and excellence of the Word.

 

자연의 빛으로는 주님에 관하여,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인간이 죽은 후의 생명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이 영적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신적 진리들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n. 8944, 10318–10320).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면 분명해집니다. 곧 많은 사람들, 심지어 학식 있는 사람들까지도, 말씀이 있는 곳에서 태어나 그것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n. 10319). 인간이 천국을 위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n. 1775), 하늘로부터의 어떤 계시가 반드시 필요하였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시대마다 계시가 있었습니다 (n. 2895). From the light of nature nothing is known concerning the Lord, concerning heaven and hell, concerning the life of man after death, nor concerning the Divine truths by which man acquires spiritual and eternal life (n. 8944, 10318, 10319, 10320). This may appear manifest from the consideration, that many, and among them men of learning, do not believe those things, although they are born where the Word is, and are thereby instructed concerning them (n. 10319). Therefore it was necessary that there should be some revelation from heaven because man was born for heaven (n. 1775). Therefore in every age of the world there has been a revelation (n. 2895).

 

이 지상에서 차례로 주어진 여러 종류의 계시에 대하여는 n.10355,10632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홍수 이전, 이른바 황금시대라 불리던 태고인들에게는 직접적인 계시(an immediate revelation)가 있었고, 그로부터 신적 진리(Divine truth)가 그들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n. 2896). 홍수 이후에 존재하였던 고대 교회들에는 역사적이고 예언적인 말씀(a historical and prophetical Word)이 있었습니다 (n. 2686, 2897). 그 교회들에 관하여는 새 예루살렘과 그 천적 교리’(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n. 247)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역사적 부분은 여호와의 전쟁들(the Wars of Jehovah)이라 하였고, 예언적 부분은 선포들(Enunciations)이라 하였습니다 (n. 2897). 그 말씀은 영감(inspiration)에 있어서 우리 말씀과 같았으나, 그 교회들에 맞게 조정되어 있었습니다 (n. 2897). 그 말씀은 모세에 의하여 언급되었으나 (n. 2686, 2897), 지금은 잃어버려졌습니다 (n. 2897). 또한 발람의 예언들(the prophecies of Balaam)에서 보이는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예언적 계시(Prophetical revelations)가 주어졌습니다 (n. 2898). Of the various kinds of revelation which have successively been made on this earth (n. 10355, 10632). To the most ancient men, who lived before the flood, whose time was called the golden age, there was an immediate revelation, and thence Divine truth was inscribed on their hearts (n. 2896). The ancient churches, which existed after the flood, had a historical and prophetical Word (n. 2686, 2897): concerning which churches see 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n. 247). Its historical parts were called the Wars of Jehovah, and its prophetical parts, Enunciations (n. 2897). That Word as to inspiration was like our Word, but accommodated to those churches (n. 2897). It is mentioned by Moses (n. 2686, 2897). But that Word is lost (n. 2897). Prophetical revelations were also made to others, as appears from the prophecies of Balaam (n. 2898).

 

말씀은 그 모든 부분과 각각의 세부(particular part)에 이르기까지 신적(Divine)입니다 (n. 639, 680, 10321, 10637). 말씀은 점 하나와 획 하나(every point and iota)에 이르기까지 신적이며 거룩하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n. 1349). 오늘날 말씀이 획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되었다고 설명되는 방식에 관하여는 n.1886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e Word is Divine in all and every particular part (n. 639, 680, 10321, 10637). The Word is Divine and holy as to every point and iota, from experience (n. 1349). How it is explained at this day that the Word is inspired as to every iota (n. 1886).

 

교회는 특별히 말씀이 있는 곳,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알려지고 신적 진리들이 계시되는 곳에 존재합니다 (n. 3857, 10761). 그러나 말씀이 있는 곳에서 태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주님이 알려지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곧 교회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속하는 자들은 말씀에서 나온 진리들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거듭난 자들, 곧 그 안의 진리들에 따라 사는 자들, 따라서 사랑과 신앙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n. 6637, 10143, 10153, 10578, 10645, 10829). The church is especially where the Word is, and where the Lord is thereby known, and Divine truths are revealed (n. 3857, 10761). But it does not follow from thence, that they are of the church, who are born where the Word is, and where the Lord is thereby known; but they who, by means of truths from the Word, are regenerated by the Lord, who are they who live according to the truths therein, consequently who lead a life of love and faith (n. 6637, 10143, 10153, 10578, 10645, 10829).

 

 

해설

 

이 글은 ‘백마’라는 상징 논의를 넘어, 왜 말씀이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근본 문제로 나아갑니다. 자연의 빛, 곧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주님, 천국, 사후 생명,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진리를 알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이는 이성의 부정이 아니라, 이성의 한계 규정입니다. 인간은 천국을 위하여 태어났으나, 천국에 관한 지식은 하늘로부터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여기서 계시의 역사적 연속성이 제시됩니다. 태고교회에는 직접 계시가 있었고, 진리가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에 따라 외적 말씀이 필요해졌고, 홍수 이후의 고대교회에는 역사적, 예언적 형태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 말씀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언급은, 계시가 한 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시대마다 주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계시의 점진성과 섭리적 질서를 강조합니다.

 

말씀이 ‘점 하나와 획 하나까지’ 신적이라는 선언은 내적 의미 교리의 토대입니다. 만일 말씀의 일부만 신적이라면, 내적 의미도 부분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세부가 신적이라면, 모든 세부가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문자 자체를 경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무한한 깊이가 있음을 말합니다. 내적 의미는 문자와 분리된 다른 책이 아니라, 문자 속에 내재한 차원입니다.

 

교회의 정의도 재정의됩니다. 교회는 지리적 공간이나 제도적 조직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주님이 알려지고 그 진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진리로 거듭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백마’는 단지 이해의 상징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 조건입니다. 이해가 열릴 때 교회가 살아 있습니다.

 

이 글은 계시, 말씀, 교회, 거듭남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합니다. 계시는 인간이 천국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주어졌고, 말씀은 그 계시의 기록이며, 교회는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자들의 공동체이며, 거듭남은 그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탁월성은 단지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 있습니다.

 

 

 

WH.7, '말씀은 열린 사람이 아니면 이해가 안 된다'

7 말씀은 열린 사람이 아니면 이해가 안 된다 The Word is not understood except by those who are enlightened. 인간의 이성적 능력(rational faculty)은 주님에 의해 열리지(enlightened) 않으면 신성(Divine)은 물론,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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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5, ‘백마’(the White Horse),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the Arcana Coelestia)를 기록한 방식

말씀과 그 영적, 즉 내적 의미The Word and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sections 1–5) 5 ‘백마’(the White Horse)가 말씀의 영적 곧 내적 의미에 관한 이해를 뜻하기 때문에, 말씀과 그 내적 의미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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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그 영적, 즉 내적 의미

The Word and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sections 1–5)

 

WH.5

 

백마(the White Horse)가 말씀의 영적 곧 내적 의미에 관한 이해를 뜻하기 때문에, 말씀과 그 내적 의미에 관하여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the Arcana Coelestia)에서 밝혀진 몇 가지 사항들을 여기에 덧붙입니다. 왜냐하면 그 저작에서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모든 내용이 말씀의 영적 곧 내적 의미에 따라 해설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Since “the White Horse” signifies the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to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those particulars concerning the Word and that sense, which are shown in the Arcana Coelestia, are here subjoined: for in that work the whole contents of Genesis and Exodus are explained according to the spiritual or internal sense of the Word.

 

 

해설

 

이 글은 ‘백마’ 전체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지금까지는 ‘말 = 이해’라는 상응을 성경과 영계의 표상으로 증명해 왔다면, 이제는 그 이해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주겠다는 선언입니다. 곧 ‘백마’는 단순한 상징 해설이 아니라, 이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안에서 실천적으로 구현된 해석 방법의 이름입니다. 이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말씀 전체를 꿰뚫어 보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절제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는 새로운 체계를 제시한다고 말하지 않고, 이미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내적 의미로 해설한 작업을 참고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백마’의 교리가 단지 상징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방대한 본문 주해 작업 속에서 검증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전체가 영적 의미에 따라 설명될 수 있었다면, 말씀 전체도 동일한 법칙 아래 이해될 수 있다는 전제가 서 있습니다.

 

목회적으로 보아도 이 문장은 의미심장합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는 몇 구절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비밀이 아니라, 성경 전반에 흐르는 질서라는 점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백마라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그 말이 실제로 달린 길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백마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말씀을 새롭게 읽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WH.5는 일종의 연결 고리입니다. 상징의 증명에서 실제 해석으로, 선언에서 실천으로 넘어가는 지점입니다. ‘백마’가 말씀의 내적 의미에 대한 이해라면, 이제 독자는 그 이해가 어떻게 본문 전체를 열어 가는지를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교회의 마지막 때에 열릴 새 이해가 추상적 계시가 아니라, 구체적 본문 해석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 주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결정적인 문장입니다.

 

 

 

WH.6, '말씀의 필요성과 탁월성'

The Word, and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From Arcana Coelestia 6 말씀의 필요성과 탁월성 The necessity and excellence of the Word. 자연의 빛으로는 주님에 관하여,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인간이 죽은 후의 생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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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4, '말, 병거 등 상응 지식은 인류 공통 유산'

말씀과 그 영적, 즉 내적 의미The Word and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sections 1–5) 4 ‘병거’(chariots)와 ‘말’(horses)이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은 고대 교회들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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