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4:10)

 

AC.375

부르짖는 소리(voice crying) 부르짖음의 소리(voice of a cry) 말씀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으로, 어떤 소음이나 소동이나 혼란이 있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며, 또한 어떤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사용됩니다(32:17-18; 1:9-10; 65:19; 48:3). A voice crying and the voice of a cry are common forms of expression in the Word, and are applied to every case where there is any noise, tumult, or disturbance, and also on the occasion of any happy event (as in Exod. 32:1718; Zeph. 1:910; Isa. 65:19; Jer. 48:3).

 

17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32:17, 18)

 

9그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10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구역에서는 울음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1:9, 10)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65:19)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폐와 파멸이로다 (48:3)

 

그러나 여기서는 죄책의 고발을 의미합니다. In the present passage it denotes accusation.

 

해설

AC.375는 바로 앞 AC.373에서 피들이 부르짖는 죄책의 고발을 의미한다고 한 해석을 보충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부르짖는 소리라는 표현 자체가 언제나 죄책이나 고발을 뜻한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에서 부르짖는 소리부르짖음의 소리는 매우 넓게 사용되며, 소음이나 소동이나 혼란이 있을 때뿐 아니라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사용된다고 먼저 밝힙니다. 그런 다음 그러나 여기서는 죄책의 고발을 의미한다고 범위를 한정합니다. 이것은 말씀의 상응과 속뜻을 읽는 데 매우 중요한 해석 원리를 보여 줍니다. 어떤 단어나 표현에 하나의 뜻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놓인 문맥과 그것이 결합하고 있는 다른 표상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출32:17-18을 인용하는 이유는 소리가 반드시 한 종류의 영적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산에서 내려올 때 진영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가 있었고, 여호수아는 그것을 싸우는 소리로 생각했지만 모세는 승리하거나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아니라 노래하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소리는 어떤 집단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한 상태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입니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소리 자체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무엇 때문에 그 소리가 일어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1:9-10과 렘48:3에서는 소리가 재앙과 파괴와 혼란에 연결됩니다. 심판과 황폐의 상태가 부르짖는 소리로 표현됩니다. 반면 사65:19에서는 정반대의 문맥이 나타납니다. 새롭게 된 예루살렘에서는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소리와 부르짖음은 어떤 내적 상태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는 문맥에 따라 결정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네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각각의 구절에 독립적인 새로운 교리를 붙이려는 것이 아니라, ‘소리부르짖음이라는 표현이 말씀에서 여러 상태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4:10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죄책의 고발을 의미하는 이유도 단어 하나만 떼어 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는 것은 바로 아벨의 피들입니다. 앞의 AC.374에서 보았듯이 피들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 특히 미움과 그 미움에서 솟아나는 온갖 불의하고 가증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피들이 부르짖는다는 것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이 그 자체로 죄책을 드러내고 고발한다는 뜻이 됩니다.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부인했지만, 그가 소멸시킨 아벨의 피들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행해진 악의 영적 성질 자체가 그 죄책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고발역시 주님께서 어떤 외부의 증언을 들어야 비로소 가인의 죄를 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표현합니다. 주님 앞에서는 인간의 내적 상태가 이미 드러나 있으며,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은 그 자체의 결과와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들의 부르짖음은 주님께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고발이라기보다, 가인이 부인하고 감추려 한 악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는 감추어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말로 알지 못합니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사랑하고 의도하며 행한 것은 그의 영적 상태 안에 남아 있습니다.

 

AC.375는 짧지만 스베덴보리의 상응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중요한 점도 가르쳐 줍니다. ‘소리 = 고발’, ‘부르짖음 = 죄책이라고 사전식으로 외워서는 안 됩니다. 같은 표현도 문맥에 따라 싸움이나 소동, 혼란, 슬픔, 기쁨 등 서로 다른 상태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상응은 단어와 뜻을 일대일로 기계적으로 치환하는 암호표가 아니라, 말씀 전체의 연결과 그 안에서 표현되는 영적 상태를 함께 살피는 것입니다. AC.375에서 스베덴보리 자신이 말씀에서는 여러 경우에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죄책의 고발을 의미한다고 구별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잘 보여 줍니다.

 

결국 AC.375의 핵심은 마지막 한 문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죄책의 고발을 의미합니다.4:10에서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체어리티에 폭력을 가하여 흘리게 된 아벨의 피들이 부르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AC.373피들의 부르짖음 = 죄책의 고발이라는 뜻을 먼저 제시하고, AC.374피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했다면, AC.375는 이제 부르짖는 소리가 왜 이 문맥에서 고발이 되는지를 확인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지만,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결과 자체가 그의 죄책을 드러냅니다.

 

 

 

AC.376, 창4:10, ‘피들이 부르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 체어리티에 가한 폭력이 드러내는 죄책’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6이로부터 ‘피들이 부르짖는 것’(crying of bloods)은 죄책의 고발을 의미한다는 것이 따라 나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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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4, 창4:10, ‘왜 아벨의 피가 부르짖는가? - 미움은 체어리티에 가하는 폭력입니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4‘피들의 소리’(voice of bloods)가 체어리티에 폭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많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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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4:10)

 

AC.374

피들의 소리(voice of bloods) 체어리티에 폭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많은 구절에서 분명합니다. 구절들에서 소리(voice) 고발하는 어떤 것을, (blood) 온갖 종류의 , 특히 미움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그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십니다. That the voice of bloods signifies that violence had been done to charity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Word, in which voice denotes anything that accuses, and blood any kind of sin, and especially hatred; for whosoever bears hatred toward his brother, kills him in his heart; as the Lord teaches:

 

21 사람에게 말한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1-22)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m of old, thou shalt not kill, and whosoever shall kill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but I say unto you, that whos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rashly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and whosoever shall say to his brother, Raca, shall be in danger of the council; but whosoever shall say, thou fool, shall be in danger of the hell of fire, (Matt. 5:2122)

 

말씀은 미움의 여러 정도를 의미합니다. 미움은 체어리티와 반대되는 것이며,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죽입니다. 손으로 죽이지 못하더라도 영으로는 죽이며, 외적인 제약에 의해서만 손으로 행하는 것이 억제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미움은 (blood)입니다.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by which words are meant the degrees of hatred. Hatred is contrary to charity, and kills in whatever way it can, if not with the hand, yet in spirit, and is withheld only by external restraints from the deed of the hand. Therefore all hatred is blood, as in Jeremiah:

 

33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 옷단에는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모든 때문이니라 (2:33-34) Why makest thou thy way good to seek love? Even in thy skirts are found the bloods of the souls of the needy innocent ones. (Jer. 2:3334)

 

[2] 그리고 (blood) 미움을 의미하므로, 마찬가지로 온갖 종류의 불의를 의미합니다. 미움은 모든 불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nd as hatred is denoted by blood, so likewise is every kind of iniquity, for hatred is the fountain of all iniquities. As in Hosea:

 

2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그러므로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2-3) Swearing falsely, and lying, and killing, and stealing, and committing adultery, they rob, and bloods, in bloods have they touched; therefore shall the land mourn, and everyone that dwelleth therein shall languish. (Hos. 4:23)

 

무자비함에 관하여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nd in Ezekiel, speaking of unmercifulness:

 

2인자야 네가 심판하려느냐 흘린 성읍을 심판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이 알게 하라 3너는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4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날이 가까웠고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6이스라엘 모든 고관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가운데에 있었도다, 9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가운데에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가운데에 음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22:2-4, 6, 9) Wilt thou judge the city of bloods, and make known to her all her abominations, a city that sheddeth bloods in the midst of it? Thou art become guilty through thy blood that thou hast shed. (Ezek. 22:24, 6, 9)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흘리는 죄가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성읍에 찼음이라 (7:23) The land is full of the judgment of bloods, and the city is full of violence. (Ezek. 7:23)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nd in Jeremiah:

 

13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없도다 (4:13-14) For the sins of the prophets of Jerusalem, and the iniquities of her priests, that have shed the blood of the righteous in the midst of her, they wander blind in the streets, they have been polluted with blood. (Lam. 4:1314)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In Isaiah: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4:4) When the Lord shall wash away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purged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with the spirit of judgment, and with the spirit of burning. (Isa. 4:4)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59:3) Your palms are defiled in blood, and your fingers in iniquity. (Isa. 59:3)

 

예루살렘의 가증한 것들을 피들(bloods)이라고 부르는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In Ezekiel, speaking of the abominations of Jerusalem, which are called bloods:

 

6내가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22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16:6, 22) I passed by thee, and saw thee trampled in thine own bloods, and I said unto thee, Live in thy bloods, yea, I said unto thee, Live in thy bloods. (Ezek. 16:6, 22)

 

[3] 마지막 때의 무자비함과 미움 역시 계시록에서는 (blood) 묘사됩니다(16:3-4). The unmercifulness and hatred of the last times are also described by blood in the Revelation (16:3, 4).

 

3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죽은 자의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16:3, 4)

 

피들(bloods) 복수형으로 언급되는 것은 사랑에서 모든 선하고 거룩한 것들이 솟아 나오듯이, 미움에서는 모든 불의하고 가증한 것들이 솟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미워하는 사람은 수만 있다면 그를 죽일 것이며, 실제로 자기가 있는 모든 방식으로 그를 죽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여기서 피들의 소리(voice of bloods) 본래 의미하는 것입니다. “Bloods are mentioned in the plural, because all unjust and abominable things gush forth from hatred, as all good and holy ones do from love. Therefore he who feels hatred toward his neighbor would murder him if he could, and indeed does murder him in any way he can; and this is to do violence to him, which is here properly signified by the voice of bloods.

 

해설

AC.374는 바로 앞 AC.373에서 제시한 피들의 소리는 체어리티에 폭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입증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의 논증을 따라가 보면 의 속뜻이 단순히 살인이나 유혈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가 온갖 종류의 죄, 특히 미움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그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창4에서 가인이 아벨의 피를 흘린 사건은 속뜻에서 신앙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사건이며, 그 뿌리에는 체어리티와 정반대되는 미움이 있습니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스베덴보리가 가장 먼저 인용하는 말씀이 마5:21-22입니다. 주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단순히 육체적인 살인 행위에만 한정하지 않으시고, 형제를 향한 분노와 멸시와 모욕의 내적 상태까지 들어가십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미움의 여러 정도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살인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내적 원인 없이 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체어리티가 이웃의 선을 바라는 사랑이라면 미움은 그 반대입니다. 이웃에게 선이 있기를 바라지 않고, 그의 선을 싫어하며, 더 나아가 그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살인이 실행되지 않았더라도 그 내적 의지 안에는 이미 살인의 본질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미움은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죽인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뜻입니다. 이것을 모든 순간적인 화나 불쾌감까지 곧바로 영적인 살인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에게는 자연적인 분노가 일어날 수 있고, 불의에 대한 정당한 분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이웃의 악을 미워하는 것과 이웃이라는 사람 자체를 미워하여 그의 선과 행복을 원하지 않는 상태를 구별하지 않은 채 모든 분노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이웃을 향한 악의가 의지 안에서 자리 잡아 그를 해치고 제거하기를 원하는 미움입니다. 외적인 법과 체면과 두려움 때문에 손으로 실행하지 않을 뿐, 기회가 주어지면 해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미움 안에는 살인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모든 미움은 라고 말합니다. 2:33-34에서 옷단에 가난하고 죄 없는 자들의 피가 발견된다는 말씀은 바로 그러한 내적 악이 외적인 삶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어 호4:2-3에서는 거짓 맹세, 거짓말, 살인, 도둑질, 간음과 함께 피가 피를 뒤잇는상태가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가 미움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불의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미움은 모든 불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체어리티가 이웃의 선을 원하여 여러 형태의 선한 행위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미움은 이웃의 선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불의와 가증한 것으로 흘러나옵니다.

 

22장과 겔7:23을 인용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 흘린 성읍’, ‘ 흘리는 죄가 가득한 ’, ‘포악이 가득한 성읍이라는 표현에서 피와 포악이 함께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히 실제 살인 사건의 통계로 읽는 것이 아니라 무자비함과 미움이 지배하는 영적 상태로 읽습니다. 체어리티가 사라지면 이웃은 더 이상 사랑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위해 이용하거나 방해가 되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 AC.372신앙은 체어리티를 섬겨야 한다는 질서와도 연결됩니다. 체어리티를 섬기기를 거부한 신앙은 결국 이웃을 향한 살아 있는 사랑을 잃고, 그 자리에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무자비함과 미움이 들어설 수 있습니다.

 

4:13-14와 사4:4, 59:3 역시 같은 논증 안에 있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의인의 피를 흘렸다는 것, 예루살렘의 피가 씻겨야 한다는 것, 손과 손가락이 피와 죄악으로 더러워졌다는 것은 가 단순한 육체적 유혈보다 넓은 영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특히 사4:4에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를 씻으신다는 표현은 피가 제거되어야 할 죄악과 불의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들은 각각 별개의 주제를 말하는 인용들이 아니라 =미움과 거기서 나오는 불의라는 하나의 상응을 여러 방향에서 입증하는 증거들입니다.

 

16:6, 22피투성이가 되어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인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예루살렘의 가증한 것들을 피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도 피는 한 가지 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증한 악들이 한꺼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AC.374 마지막에서 피가 복수형 bloods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에서 모든 선하고 거룩한 것들이 솟아 나오듯이 미움에서는 모든 불의하고 가증한 것들이 솟아 나오기 때문에 피들이라고 복수형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AC.373에서는 이 복수형의 이유를 아직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제 AC.374에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그 이유를 밝혀 줍니다.

 

이 대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쪽에는 사랑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미움이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의 내적 근원이지만 거기에서 자비, 용서, 섬김, 정직, 인내, 선한 행위와 같은 수많은 선하고 거룩한 것들이 흘러나옵니다. 반대로 미움 역시 하나의 내적 근원이지만 거기에서 거짓, 모욕, 보복, 기만, 폭력, 무자비함과 같은 수많은 불의하고 가증한 것들이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단수 가 아니라 복수 피들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가한 폭력은 단 하나의 잘못으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체어리티의 반대인 미움에서 흘러나오는 악의 전체 계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6:3-4을 인용하여 마지막 때의 무자비함과 미움 역시 로 묘사된다고 하는 것도 이 원리를 말씀 전체에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에서 시작된 의 상응이 선지서에 나타나고 다시 계시록에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에게 창4:10의 아벨의 피는 고립된 고대 살인 사건의 이미지가 아니라, 체어리티가 파괴될 때 말씀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영적 표상입니다. 사랑이 사라지고 미움이 지배할 때 그 결과는 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선과 체어리티의 근원이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랑에서 모든 선하고 거룩한 것이 솟아 나온다고 할 때 그 사랑의 최초 근원은 인간의 proprium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만큼 체어리티 안에 있게 되고, 그 체어리티에서 여러 선한 쓰임이 흘러나옵니다. 반대로 인간이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 사랑을 중심에 놓을수록 이웃을 경쟁자나 방해물로 보기 쉬워지고, 그 상태가 굳어지면 미움과 거기서 나오는 여러 불의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사랑과 미움의 대조는 단순한 감정의 대조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근원과 질서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AC.374는 앞의 가인 이야기를 더욱 내면으로 가져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쉽게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으므로 말씀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5:21-22에서 계명을 마음의 상태까지 가져가십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 말씀을 통해 미움 자체가 체어리티에 대한 폭력임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지 나는 누구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는가?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누구의 선을 원하지 않고 있는가? 누구의 실패를 기뻐하고 있는가? 누구를 마음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가?가 됩니다. 다만 이런 자기 성찰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잣대가 아니라 자기 안의 미움을 주님 앞에서 발견하고 피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결국 AC.374의 마지막 문장이 전체를 압축합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그를 죽이며, 실제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를 죽입니다. 이것이 이웃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피들의 소리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벨의 피가 부르짖는다는 것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지만, 피들은 부르짖습니다. 체어리티를 거부하는 교리가 아무리 자신을 정당화해도 그 안에서 발생한 미움과 불의는 그 자체로 죄책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단지 손으로 살인하지 않는 데 머무르지 않고, 주님께서 마음속의 미움까지 보게 하실 때 그것을 죄로 인정하고 피하며, 그 자리에 주님에게서 오는 체어리티가 자리 잡도록 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AC.375, 창4:10, ‘부르짖는 소리는 왜 죄책의 고발을 뜻하는가?’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5‘부르짖는 소리’(voice crying)와 ‘부르짖음의 소리’(voice of a cry)는 말씀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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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3, 창4:10, ‘네 아우의 핏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 -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과 죄책의 고발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창4:10) AC.373‘네 아우의 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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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4:10)

 

AC.373

아우의 피들의 소리(voice of thy brothers bloods) 체어리티에 폭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하고, 피들이 부르짖는 (crying of bloods) 죄책의 고발을 의미하며, (ground) 분열 또는 이단을 의미합니다.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signifies that violence had been done to charity; the crying of bloods is the accusation of guilt, and ground signifies a schism or heresy.

 

해설

AC.373은 창4:10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의 속뜻을 아주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앞에서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이어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속뜻에서는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키고, 나아가 신앙은 체어리티를 섬겨야 한다는 질서 자체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아우의 피들의 소리가 내게 부르짖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AC.373부터는 단순히 체어리티가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그 소멸이 가져오는 죄책과 그 죄책이 드러나는 상태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먼저 아우의 피들의 소리체어리티에 폭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아벨은 계속해서 체어리티를 표상하므로 아벨의 피는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의 흔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것은 신앙이 체어리티를 분리하고 마침내 소멸시켰다는 것이며, 이제 흘려진 아벨의 피는 바로 그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을 나타냅니다. ‘폭력이라는 표현은 중요합니다. 체어리티가 저절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이고, 신앙이 체어리티를 지배해야 한다는 가인의 교리적 원리가 결국 체어리티를 밀어내고 소멸시키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피는 사랑과 체어리티의 질서가 침해되고 파괴된 결과를 보여 줍니다.

 

특히 원문이 blood가 아니라 bloods’, 곧 복수형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AC.373 자체는 아직 왜 복수형인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피들의 소리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을 의미한다고만 밝힙니다. 따라서 이 번호에서 복수형의 세부적인 상응을 미리 단정하여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번역에서는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붙들고 있는 복수형을 보존하고, 그 의미가 이어지는 번호들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 지켜 온 원칙과도 맞습니다. 현재 번호가 직접 말하는 범위는 분명히 말하되, 뒤의 설명을 앞당겨 과도하게 넣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피들이 부르짖는 죄책의 고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주님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시다가 땅에 흘린 피의 소리를 듣고 범죄를 발견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르짖음은 이미 행해진 악 자체가 그 악의 성질과 죄책을 드러내는 것을 나타냅니다.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지만, 아벨의 피는 부르짖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행한 악을 부인하고 합리화하며 감추려 할 수 있지만, 영적 질서 안에서는 그 악이 실제로 무엇을 파괴했는지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은 그 자체로 죄책을 드러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피들의 부르짖음은 죄책의 고발입니다.

 

여기서 고발이라는 말을 주님께서 인간의 죄를 찾아내어 처벌할 근거를 모으신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큰 틀에서 주님은 인간을 파멸시키려는 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악에서 건져 선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 가운데 실제로 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교리 안에 굳히면 그 악에는 그에 따른 결과가 있습니다. 그 결과가 드러나는 것을 말씀은 마치 피가 소리를 내어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따라서 죄책의 고발은 변덕스러운 신적 분노가 새롭게 일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악의 실상이 더 이상 감추어질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ground)분열 또는 이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에서부터 이어져 온 ground의 의미를 가인의 상태에 맞추어 읽어야 하는 대목입니다. 가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신앙과 체어리티를 구별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둘을 분리하고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여 마침내 신앙이 체어리티를 지배해야 한다는 교리를 만든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분열 또는 이단을 의미한다는 것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이 단순히 한 사람의 개인적 감정이나 행동 안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시킨 교리적 토대 안에서 일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AC.370의 마지막 문장 그들의 교리는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여기서 이단이라는 표현 역시 오늘날의 교파적 의미로 성급하게 옮겨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AC.373이 말하는 heresy는 이 문맥에서 신앙과 체어리티의 살아 있는 결합에서 떨어져 나와 한 부분을 독립시키고 그것을 절대화하는 교리적 왜곡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정 교단이나 사람에게 곧바로 가인의 이단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이 번호의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어떤 진리 하나를 전체 질서에서 떼어 내어 절대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앙의 정확성을 강조하면서 그 신앙의 생명인 체어리티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게 하는 말씀으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AC.373은 이렇게 앞의 흐름을 세 단어로 압축합니다. ‘피들’, ‘부르짖음’, ‘입니다. ‘피들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력을, 부르짖음은 죄책의 고발을, ‘은 그러한 폭력이 일어난 분열 또는 이단을 의미합니다. 앞에서는 가인의 교리가 신앙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 아벨이 죽었습니다. 이제 그 결과가 사라지지 않고 피들의 소리가 되어 부르짖습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체어리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그렇게 함으로써 생긴 영적 파괴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결국 창4:10 아우의 핏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는 말씀은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뒤에도 그 일이 주님 앞에서 감추어질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지만 피들은 부르짖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교리와 논리로 체어리티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도 있지만, 주님의 질서 안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를 분리하여 사랑을 훼손한 결과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참된 신앙은 아벨의 피를 흘리는 신앙이 아니라 아벨을 아우로 인정하고 그의 지키는 가 되는 신앙입니다. 곧 체어리티를 섬기고 보호하며, 그 안에서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얻는 신앙입니다.

 

 

 

AC.374, 창4:10, ‘왜 아벨의 피가 부르짖는가? - 미움은 체어리티에 가하는 폭력입니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AC.374‘피들의 소리’(voice of bloods)가 체어리티에 폭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많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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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2, 창4:9,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 신앙은 체어리티를 섬겨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4:9) AC.372‘지키는 자’(keeper)가 된다는 것은 섬기는 것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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