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겔31:3에서‘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를 왜‘꼭대기가 구름에 닿은’으로 번역했을까요?
짚으신 대로입니다.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는 직역하면‘그 가지(새순)가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었다’는 뜻인데,개역개정의‘꼭대기가 구름에 닿은’은 원문을 그대로 옮긴 번역이라기보다‘문맥 전체를 고려해‘의미 중심으로 재구성한 의역’’에 가깝습니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은‘그 꼭대기(혹은 높은 부분)가 구름(혹은 빽빽함)가운데 있었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합니다.여기서‘구름’에 해당하는 단어가 실제 하늘의 구름을 가리킨다기보다, ‘두터움’, ‘빽빽함’을 뜻하는 말에서 온 것이어서,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번역이 갈립니다.영어 번역은 이 점을 따라‘thick boughs’,곧‘빽빽한 가지들’로 풀었고,개역개정은 그 이미지를‘높이 솟아 구름에 닿는 것’으로 이해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느냐 하면,번역에는 두 가지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는 단어 하나하나를 최대한 그대로 옮기는 방식이고,다른 하나는 그 장면이 주는‘전체 이미지와 인상을 살리는 방식’입니다.개역개정은 여기서 후자를 택해, ‘레바논 백향목의 압도적인 높이’를 강조하는 쪽으로 번역을 선택했습니다.그래서‘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다’는 구조적 묘사보다, ‘구름에 닿을 만큼 높다’는 인상적 표현으로 바뀐 것입니다.
다만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 관점에서는,영어 번역처럼‘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다’는 표현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왜냐하면 그는 이 구절을 통해‘이성(앗수르)이 기억 지식(많은 가지들)속에서 작동한다는 구조’를 읽기 때문입니다.즉,이성은 공중에 떠 있는 능력이 아니라,수많은 개념과 지식 속에서 자라나는 기능이라는 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은 틀린 번역이라기보다‘높이’를 강조한 의역이고, ‘among the thick boughs’는‘구조와 관계’를 드러내는 직역에 가깝습니다.그래서 일반 독자에게는 개역개정이 더 장엄하게 들릴 수 있지만,상응이나 내적 의미를 읽을 때는 영어 표현이 더 정밀하게 작동하는 번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겔31:3, 4)Behold,Asshur was a cedar in Lebanon,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and lofty in height;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The waters made her grow,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이 구절이AC.119에 인용된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앗수르=이성’이라는 상응을 단순 정의가 아니라‘말씀 자체의 증언’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스베덴보리는 개념을 먼저 제시한 뒤,반드시 예언서의 장면을 통해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데,이 에스겔의 백향목 환상은 그 가운데서도 이성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내는 본문입니다.
먼저 이 구절은‘이성이 무엇인가’를 형상적으로 보여줍니다.앗수르가‘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묘사된 것은,이성이 가진 높이와 구조적 힘,그리고 사유를 조직하는 능력을 나타냅니다.곧고 높이 자라며 가지가 넓게 퍼지는 백향목처럼,이성은 인간 정신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이며,생각과 지식을 체계로 묶어 주는 중심 역할을 합니다.이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구절이 선택된 것입니다.
그러나AC.119에서 더 핵심적인 이유는‘이성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본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물들이 그것을 기르고’,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둘러 흐른다’고 합니다.이것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이성의 생명은 자기 안에 있지 않고‘위로부터 오는 유입’에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표현입니다.스베덴보리가AC.118-119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이성은 스스로 빛나는 능력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흘러들어올 때만 명석해집니다.이 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이 에스겔 구절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이성이‘기억 지식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는 가지’(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라는 표현은,이성이 추상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억 지식과 개념들 속에서 자라고 작용한다는 뜻입니다.다시 말해,앗수르(이성)는 애굽(기억 지식)위에 서서 그것을 조직하지만,동시에 그 재료에 의존하는 존재입니다.AC.119에서 애굽,앗수르,이스라엘의 삼중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이 구절이 매우 적절한 근거가 됩니다.
마지막으로,이 구절은‘이성의 양면성’을 암시하기 때문에 인용됩니다.겉으로는 아름답고 크며 위엄 있는 나무이지만,그 생명은 물의 흐름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이 흐름이 유지될 때는 이성이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지만,끊어질 때는 같은 이성이 교만과 왜곡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스베덴보리가 앗수르를 두고 긍정과 경계를 동시에 말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하면,이 에스겔 구절은 세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에AC.119에 인용됩니다.곧,이성이 얼마나 높고 강력한 기능인지,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유입에 의존하는 존재라는 점,그리고 기억 지식과 연결된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이 세 가지를 한 장면 안에 모두 담고 있는 대표적인 본문이기 때문에,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앗수르=이성’이라는 해석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입니다.
‘앗수르’(Asshur)가 사람의 이성적 마음(the rational mind),곧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예언서들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에스겔에서 말하기를,That “Asshur” 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겔31:3, 4)Behold,Asshur was a cedar in Lebanon,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and lofty in height;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The waters made her grow,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여기서 이성(the rational)은‘레바논 백향목’(cedar in Lebanon)이라 불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개역개정 번역이 좀 이상함,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는 가지)은 기억 지식(the knowledges of the memory)을 의미하는데,이들이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은 이사야에서 훨씬 더 명료합니다.The rational is called a “cedar in Lebanon”;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19:23-25)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and Egypt into Asshur,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saying,Blessed be Egypt my people,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이 구절과 다른 많은 곳에서‘애굽’(Egypt)은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을 의미하고, ‘앗수르’(Asshur)는 이성(reason)을 의미하며, ‘이스라엘’(Israel)은 지성을 의미합니다.By “Egypt” 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 “Asshur” reason, and by “Israel” intelligence.
해설
이 글은AC.118에서 제시된 ‘힛데겔 강=이성의 명석함’, ‘앗수르=이성적 마음’이라는 정의를, 예언서 전체를 가로지르는 상응의 증언으로 확증하는 자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개념 설명으로 끝내지 않고, 말씀이 스스로 이 해석을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에서 앗수르가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백향목은 곧고 높으며,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나무입니다. 이는 이성이 가진 구조적 힘과 통찰력을 나타냅니다. 이성은 인간 정신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능력이며, 사유의 높이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나무가 자라는 조건은 분명히 제시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라지 않았고, ‘물들’과 ‘깊은 물’, 그리고 ‘강들’로 인해 자랐습니다. 다시 말해, 이성은 유입에 의해 살아납니다.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개역개정 번역이 좀 이상함,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는 가지)이 기억 지식들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성이 작동하는 실제 내부 구조를 보여 줍니다. 기억 지식들은 이성의 토양이자 재료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방향을 갖지 못합니다. 이성은 이 기억 지식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고 연결하지만, 그 이성 자체도 위로부터의 흐름 없이는 왜곡되기 쉽습니다.
이사야의 인용은 이 질서를 더 넓은 구조 속에 배치합니다. 애굽, 앗수르, 이스라엘이 서로 왕래하며 하나의 복을 이룬다는 그림은, 인간 정신의 삼중 구조를 매우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애굽은 기억 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입니다. 이 셋이 서로 단절되지 않고 연결될 때, 곧 기억 지식이 이성으로 정리되고, 이성이 지성으로 밝혀질 때, 그 전체가 ‘복’이 됩니다.
특히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라는 표현은, 기억 지식이 이성을 섬겨야 한다는 질서를 말합니다. 정보와 경험은 이성을 지배해서는 안 되며, 이성의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또한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하는 대목은, 이성 자체도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작품’임을 분명히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나의 기업’으로 불리는 것은, 지성이 주님의 목적과 직접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지성은 단순한 이해 능력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분별하고 살아내는 능력이며, 이는 인간 안에서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영역입니다.
AC.119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높고 강력하지만, 근원은 아니다. 기억 지식과 지성을 잇는 중간에 서서 섬길 때에만 참되며, 이 삼중 질서가 하나로 움직일 때, 인간 전체가 복이 된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