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7.심화

 

1.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

 

 AC.37 본문에 이 말 속에는 지금 당장 다 펼쳐 보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아르카나가 담겨 있지만(In these words are contained more arcana than can at present be unfolded)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현 역량과 상태가, 펼쳐 보여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역량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럼에도 혹시 한두 가지만 좀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는 말씀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라는 창8:22 말씀을 좀 더 와닿게 이해하고 싶어서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지금 당장 다 펼쳐 보일 수 없다’고 한 것은 어떤 비밀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라, 이 말씀이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생명 전체의 리듬과 질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만 풀어 보아도, 단순한 ‘시간 표시’가 아니라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먼저 ‘징조(signs)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표식이나 신호가 아니라, ‘상태를 알아보게 하는 표지’입니다. 인간의 영적 삶에서도 이런 ‘징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말이나 행동이 어느 날 마음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혹은 말씀을 들을 때, 전에는 들리지 않던 내용이 갑자기 깊이 와닿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외적으로 보면 작은 일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상태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것을 ‘징조’로 봅니다. 주님이 사람 안에서 일하고 계실 때, 반드시 이런 표지들이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계절(seasons)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계절’은 단순한 자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사람의 영적 상태의 변화 주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기에는 말씀이 잘 이해되고,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나 ‘여름’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시기에는 마음이 메마르고, 기도도 잘 되지 않고, 의욕도 떨어집니다. 이것은 ‘겨울’과 같은 상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단번에 완성시키지 않으시고, ‘이런 계절의 반복을 통해 서서히 변화시키십니다.’

 

(days)과 ‘(years)도 같은 맥락입니다. ‘’은 비교적 ‘짧은 상태의 변화’, 즉 하루하루 속에서 겪는 기쁨과 침체, 깨달음과 혼란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는 더 긴 흐름, 곧 ‘삶 전체의 큰 단계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신앙이 몇 년에 걸쳐 깊어지는 과정, 혹은 오랜 시간에 걸친 방황과 회복 같은 것들이 ‘’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히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성장의 리듬 전체를 설명하는 구조’입니다.

 

이제 창8:22를 보면 이 구조가 더 분명해집니다. ‘심음과 거둠’은 너무나 중요한 상응입니다. ‘심음’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 곧 말씀을 듣고 배우고 마음에 두는 상태입니다. ‘거둠’은 그 진리가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담는 것이 ‘심음’이라면, 실제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거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둘 사이에 시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심자마자 거두기를 원하지만, 주님의 질서에서는 반드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은 조금 더 깊은 상태를 말합니다. ‘더위’나 ‘여름’은 ‘사랑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상태’, 곧 마음이 뜨겁고 주님과 가까이 있는 느낌이 있는 상태입니다. 반대로 ‘추위’나 ‘겨울’은 ‘사랑이 식고, 신앙이 약해지고, 시험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이 둘을 모두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여름’만으로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겨울’ 같은 시기를 통해 자기 사랑이 약해지고, 더 깊은 의존을 배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낮과 밤’입니다. ‘’은 ‘진리가 분명히 보이는 상태’, ‘’은 ‘혼란과 어둠 속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반복됩니다. 우리는 늘 밝은 상태에만 있고 싶지만, 실제로는 낮과 밤이 번갈아 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중요한 원리로 설명합니다. ‘밤이 있어야 낮이 더 분명해지고, 낮이 있어야 밤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으면, 이 두 구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적 삶은 직선이 아니라 ‘리듬과 순환 속에서 자라는 생명’입니다. 기쁨과 침체, 깨달음과 혼란, 사랑과 냉담, 심음과 거둠 등, 이 모든 것이 교차하며,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땅이 있을 동안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이 질서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내가 겨울 상태에 있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며, 괜찮습니다. 지금은 심는 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질서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AC.37, 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위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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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창1:14-17, ‘영적 생명의 리듬 : 낮과 밤, 계절처럼 반복되는 거듭남의 질서’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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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6.심화

 

4. ‘22:37-40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2:37-40)

 

 

이 구절이 AC.36에 인용된 이유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단순히 많은 계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계명이 아니라, 사실상 말씀 전체와 신앙 전체를 떠받치는 기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가복음의 인용이 신앙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면, 마태복음의 이 구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교리와 모든 말씀의 내용이 결국 이 두 사랑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AC.36에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을 단순한 생각이나 교리 체계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신앙을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어떻게 사랑하는가’의 문제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첫째 계명으로 하나님 사랑을, 둘째 계명으로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고, 그다음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단순히 구약성경의 두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말씀 전체, 그리고 신앙의 모든 보편적 교리를 뜻하는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수많은 계명과 교훈, 예언과 역사, 교리와 진리가 결국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AC.36의 핵심 주장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신앙은 사랑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가르치는 모든 내용이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리를 많이 알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신학적으로 정교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말씀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둘째 계명에 대해 ‘그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분리된 두 종류의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둘은 하나의 생명의 안과 밖, 원인과 결과와 같은 관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36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의 모든 교리는 사랑을 위해 존재합니다. 진리는 사랑으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지고, 신앙은 사랑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신앙은 목적 없는 수단과 같고,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결국 마22:37-40 AC.36에 인용된 이유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신앙의 일부가 아니라 신앙 전체의 중심이며, 더 나아가 말씀 전체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는 말씀은 모든 진리와 모든 교리가 결국 사랑을 향해 매달려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사랑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가장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AC.36, 창1:14-17, '신앙은 순종이다 : 사랑 없는 믿음은 신앙이 아니다'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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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6, 심화 3, ‘막12:29-31’

AC.36.심화 3. ‘막12:29-31’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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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6.심화

 

3. ‘12:29-31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12:29-31) The foremost of all the commandments 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therefore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and with all thy strength: this is the foremo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namely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there is none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Mark 12:29–31).

 

 

이 구절이 AC.36에 인용된 이유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36에서 스베덴보리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단순한 생각이나 교리 지식, 혹은 주님에 대한 관념 정도로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은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며, 특별히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바로 그 점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말씀이 마가복음 12장의 이 구절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 어떤 교리나 신학 체계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특정한 의식이나 신앙 고백을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이어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께서 직접 밝히신 신앙생활의 중심은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AC.36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이란 어떤 내용을 믿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교리를 알고, 신앙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없다면 그 신앙은 아직 본래 목적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사랑 안에 있지 않다면 그는 신앙 안에 있지 않다’고까지 말합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 존재 전체가 사랑 안에서 주님께 향해야 함을 뜻합니다. 또한 이어지는 이웃 사랑은 그 사랑이 실제 삶 속에서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두 개의 독립된 계명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 안과 밖으로 나타나는 두 모습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신앙은 언제나 사랑에서 살아납니다. 사랑은 신앙의 생명이고, 신앙은 사랑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실 때 신앙을 따로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참된 신앙이 이미 사랑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신앙은 살아 있고, 사랑이 없으면 신앙은 죽은 것이 됩니다.

 

결국 AC.36에서 막12:29-31이 인용된 이유는, 신앙의 본질이 교리 지식이나 지적 동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주님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모든 신앙의 가르침과 모든 교리가 결국 이 두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며, 따라서 사랑과 분리된 신앙은 본래의 신앙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AC.36, 심화 4, ‘마22:37-40’

AC.36.심화 4. ‘마22:37-40’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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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6, 심화 2,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AC.36.심화 2.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AC.36 참조 구절인 마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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