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9.심화

 

1.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58:11) Jehovah shall satisfy thy soul in droughts, and make thy bones alert,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Isa. 58:11)

 

 

이 구절이 AC.149에 인용된 이유는, ‘물 댄 동산(a watered garden)이 단순 풍요로운 자연 풍경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받는 인간의 영적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49의 흐름은 계속해서 에덴동산과 물과 강과 생명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사58:11은 바로 그 구조를 예언서의 언어로 다시 확인해 주는 대표 구절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동산(garden)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진리와 지성이 살아 있는 인간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에덴동산은 주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성이 질서 있게 흘러 들어오는 천적 인간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동산이 살아 있으려면 반드시 ‘’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서 물(water)은 대체로 진리, 특히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 댄 동산’이라는 표현은, 인간 안의 진리와 지성과 애정들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유입으로 계속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반대로 물이 끊어진 동산은, 겉으로는 구조가 남아 있어도 실제 생명이 마른 상태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한다’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상태가 아니라, 외적으로는 메마르고 부족해 보여도 주님으로부터 계속 생명이 공급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생명의 근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뼈(bones)는 가장 바깥의 지지 구조, 곧 인간 안의 외적 진리들과 삶의 틀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 내적 감동만이 아니라, 삶 전체의 구조까지도 주님의 진리 안에서 강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AC.1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되는 이유는, 에덴동산의 물과 강들이 상징하는 영적 생명의 질서가 단지 창세기의 시적 묘사가 아니라, 예언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보편적 영적 원리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계속 유입되는 진리와 선 안에서 살아나는 존재이며, 그 상태가 바로 ‘물 댄 동산’으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AC 전체의 흐름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proprium 안에 갇힌 인간은 결국 스스로 메마르게 되지만, 주님으로부터 받는 인간은 바깥 환경이 어떠하든 안에서 계속 물이 흐릅니다. 그래서 ‘물 댄 동산’은 단순 풍요의 비유가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regenerated state, 곧 거듭난 인간 상태의 상징입니다.

 

 

 

AC.149, 심화 2, ‘사66:14’

AC.149.심화 2. ‘사66: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사66:14) Then shall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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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창2:21, ‘갈빗대’와 ‘뼈’라는 인간의 own이 어떻게 ‘주님에 의해 살아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9 말씀에서도 사람의 own은 ‘뼈’(bones)를 의미하며, 이는 주님에 의해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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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1)

 

AC.149

 

말씀에서도 사람의 own(bones)를 의미하며, 이는 주님에 의해 살아나게 된 own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서에 이르기를, In the Word also, man’s own is signified by “bones,” and indeed an own vivified by the Lord, as in Isaiah: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58:11) Jehovah shall satisfy thy soul in droughts, and make thy bones alert,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Isa. 58:11)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66:14) Then shall ye see, and your heart shall rejoice, and your bones shall sprout as the blade. (Isa. 66:14)

 

시편에서도 In David: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시35:10) All my bones shall say, Jehovah, who is like unto thee? (Ps. 35:10)

 

이것은 에스겔서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거기서는 뼈들이 살을 입고 영을 받는다고 합니다. This is still more evident from Ezekiel, where he speaks of bones receiving flesh, and having spirit put into them: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37:1, 4-6) The hand of Jehovah set me in the midst of the valley, and it was full of bones; and he said to me, prophesy upon these bones, and say unto them, O ye dry bones, hear the word of Jehovah; thus saith the Lord Jehovih to these bones, Behold, I bring breath [spiritus] into you, and ye shall live, and I will lay sinews upon you, and will make flesh come upon you, and cover you with skin, and I will put breath in you, and ye shall live, and ye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Ezek. 37:1, 4–6)

 

[2] 사람의 own은 하늘에서 볼 때 전적으로 뼈와 같은 어떤 것으로 보이며, 생명 없고 매우 흉측하여 본질상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에 의해 살아나게 될 때에는 살과 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own은 그 자체로는 순전히 죽은 것이지만, 사람에게는 어떤 것, 곧 모든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님의 생명에서 온 것이며, 만일 이것이 제거된다면 그는 돌처럼 쓰러져 죽게 됩니다. 사람은 생명의 기관에 불과하며, 그 기관의 성질에 따라 생명의 애정이 그러한 것입니다. 참으로 자신의 Own을 가지신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Own으로 사람을 구속하셨고,Own으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Own은 곧 생명이며,Own에서 사람의 own, 곧 본질상 죽은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주님의 Own은 또한 누가복음 다음 주님 말씀으로도 전해집니다. The own of man, when viewed from heaven, appears like a something that is wholly bony, inanimate, and very ugly, consequently as being in itself dead, but when vivified by the Lord it looks like flesh. For man’s own is a mere dead thing, although to him it appears as something, indeed as everything. Whatever lives in him is from the Lord’s life, and if this were withdrawn he would fall down as dead as a stone; for man is only an organ of life, and such as is the organ, such is the life’s affection.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The Lord’s own is life, and from his own, man’s own, which in itself is dead, is made alive. The Lord’s own is also signified by the Lord’s words in Luke: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39) A spirit hath not flesh and bones as ye see me have. (Luke 24:39)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라 하신 것도 같은 뜻이었습니다 (12:46). It was also meant by not a bone of the paschal lamb being broken (Exod.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12:46)



해설

 

AC.149는 ‘갈빗대’와 ‘’가 왜 인간의 own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own이 어떻게 ‘주님에 의해 살아나는지’를 결정적으로 밝혀 주는 단락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 own’이라는 등식 자체가 아니라, ‘살아 있지 않은 것이 어떻게 생명을 입는가’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성경 전반에서 ‘’가 긍정적으로 쓰이는 예들을 제시합니다. 이는 own이 무조건 제거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 살아날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는 표현은, own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때 인간 전체가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은 이 교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뼈는 본래 완전히 죽은 상태입니다. 거기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마지막으로 영이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산 존재’가 됩니다. 이는 인간의 own이 단계적으로 질서를 입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own은 스스로는 결코 살아날 수 없으며, ‘주님의 생명이 주입될 때에만’ 생명이 됩니다.

 

특히 중요한 문장은 ‘사람은 생명의 기관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가장 근본적인 정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은 생명의 원천이 아니라 ‘생명을 받아들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own이 생명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며, 실제 생명은 전적으로 주님에게서 옵니다.

 

이 지점에서 ‘주님의 Own’과 ‘사람의 own’이 대비됩니다. 사람의 own은 본질상 죽은 것이지만, 주님의 Own은 곧 생명 그 자체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Own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생명으로 사람의 own을 살아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구조이며, 자유가 가능해지는 이유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의 Own이 인간의 own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도, 주님의 신적 생명이 결코 손상되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AC.149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인간의 own은 뼈와 같아 죽어 있으나, 주님의 생명이 그것을 덮을 때 살이 되고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own을 없애는 데 있지 않고, ‘누구의 생명이 그 own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심화

 

1. ‘58:11

 

 

AC.149, 심화 1, ‘사58:11’

AC.149.심화 1. ‘사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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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6:14

 

 

AC.149, 심화 2, ‘사66:14’

AC.149.심화 2. ‘사66: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사66:14) Then shall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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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5:10

 

 

AC.149, 심화 3, ‘시35:10’

AC.149.심화 3. ‘시35:10’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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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7:1, 4-6

 

 

AC.149, 심화 4, ‘겔37:1, 4-6’

AC.149.심화 4. ‘겔37:1, 4-6’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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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4:39

 

 

AC.149, 심화 5, ‘눅24:39’

AC.149.심화 5. ‘눅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24:39) A spirit hath not flesh and bones as ye see me have. (Luke 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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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46

 

 

AC.149, 심화 6, ‘출12:46’

AC.149.심화 6. ‘출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출12:46) 이 구절이 AC.149에 인용된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명령이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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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deemed, saves

 

 

AC.149, 심화 7, ‘redeemed, saves’

AC.149.심화 7. ‘redeemed, saves’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본문에 나오는 위 문장에서 ‘redeemed’와 ‘saves’를 해설해 주세요. 그 차이가 무엇이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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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속 사람, , 영혼, own(proprium), 자아

 

 

AC.149, 심화 8, ‘속 사람, 영, 영혼, own(proprium), 자아’

AC.149.심화 8. ‘속 사람, 영, 영혼, own(proprium), 자아’ 속 사람, 영, 영혼, own(proprium), 자아 등 이런 것들이 다 다른 건가요, 아니면 그냥 한 가지에 대한 서로 다른 명칭인가요? 이것은 스베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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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0, 창2:21, ‘깊은 잠’, 자신의 own으로 산다 여기는 상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50 사람이 own 안에 있을 때, 곧 자신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여길 때의 상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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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8, 창2:21, 더 깊은 상응으로 본 '갈빗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8 사람의 own(proprium), 곧 그에게 매우 소중하게 여겨지는 own을 ‘갈빗대’(r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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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1)

 

AC.148

 

사람의 own(proprium), 곧 그에게 매우 소중하게 여겨지는 own갈빗대(rib), 곧 가슴뼈라고 하는 이유는,태고 사람들에게 가슴은 체어리티(charity)를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슴에는 심장과 폐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뼈는 생명력이 극히 적기 때문에 더 낮은 것들을 뜻하였고,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뜻하였습니다. 이러한 뜻, 의미들의 근거는 태고교회의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로, 이것에 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뒤에서 더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The reason why what is man’s own (and indeed an own which is dear to him) is called a “rib,” which is a bone of the chest, is that among the most ancient people the chest signified charity, because it contains both the heart and the lungs; and bones signified the viler things, because they possess a minimum of vitality; while flesh denoted such as had vitality. The ground of these significations is one of the deepest arcana known to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해설

 

이 단락은 AC.147에서 설명된 ‘갈빗대’의 의미를 ‘한 단계 더 깊은 상응의 층위’로 끌어내립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왜 하필 ‘갈빗대’이며, 왜 그것이 가슴뼈인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상징의 선택이 전혀 임의적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 가슴이 체어리티를 뜻한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가슴에는 심장과 폐가 함께 있습니다. 심장은 사랑을, 폐는 신앙의 호흡, 곧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가슴은 사랑과 신앙이 함께 작용하는 자리이며, 이것이 바로 체어리티의 자리입니다. 태고 사람들에게 인간의 중심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었고, 생각보다 ‘사랑의 질서’가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슴에서 나온 것이 ‘갈빗대’입니다. 갈빗대는 심장과 폐를 보호하지만, 그 자체는 뼈이며 생명력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인간의 own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정확히 보여 줍니다. own은 사랑의 자리 가까이에서 나오지만, ‘사랑 그 자체는 아닙니다’. 중심을 보호하는 구조이지만, 중심의 생명을 직접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뼈는 ‘더 낮은 것들’을 뜻합니다. 이는 악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명의 정도가 가장 낮은 층위’라는 뜻입니다. 반면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을 뜻합니다. 갈빗대 자리에 살이 채워졌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성이 여전히 낮은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덮이고 관통되어 살아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자기성은 사랑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사랑 그 자체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자리 가까이에서 나오되, 생명은 없고, 그러나 주님께서 그 자리에 생명을 덧입히심으로써 인간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허락된 구조입니다. 이 미묘한 위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의 것, 곧 own은 무조건 제거해야 할 것으로 오해되거나, 반대로 생명의 주인으로 착각되기 쉽습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일부러 설명을 멈춥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질서의 배려’입니다. 이 아르카나는 인간의 구조 전체, 특히 사랑과 신앙, 자유와 생명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이후 더 넓은 맥락 속에서 다시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AC.148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own은 사랑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중심 그 자체도 아니며, 생명 없는 뼈와 같은 것이지만, 주님의 섭리 안에서는 생명으로 덮여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가장 섬세한 구조라고 말입니다.

 

 

 

AC.149, 창2:21, ‘갈빗대’와 ‘뼈’라는 인간의 own이 어떻게 ‘주님에 의해 살아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9 말씀에서도 사람의 own은 ‘뼈’(bones)를 의미하며, 이는 주님에 의해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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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7, 창2:21, '갈빗대, 살, 깊은 잠'(AC.147-15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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