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은 자기 제사를 여호와께서 받지 않으시자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합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그 이유를 말씀하셨으나 결국 그는 들에 있을 때 아우 아벨을 쳐죽이지요. 이 정도로도 그의 악은 충분한데 심지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시는 여호와 앞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 대답하는 등 정말 뻔뻔하기까지 합니다.

 

그랬던 그가, 여호와의 설명, 곧 그가 자초한, 앞으로 전개될 삶의 무게 앞에 절망하며,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자 여호와께서는 ‘네가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하시는 대신, 오히려 그에게 표를 주시며, 사람들이 그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여러분, 이 부분이 이해가 되십니까?

 

다음은 말씀을 속뜻, 즉 내적 의미로 읽는 천사들이 이해하는 내용입니다. 천사들은 내적 존재여서 이렇게 밖에는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아벨은 체어리티(charity, 仁愛, 이웃 사랑) 신앙, 가인은 체어리티 없는 신앙(faith without charity)을 말합니다. 가인의 제사는 체어리티 없는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하며, 그래서 주님이 결코 받으실 수 없으셨던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인류의 역사는 결국 이 가인의 역사로 흐를 걸 아시고는 이 가인이라는 신앙을 통해서 아벨이라는 신앙을 일으키실 것을 섭리하셨으며, 그래서 이 가인 신앙을 보호하기로 하시고, 그래서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이 신앙을 건드리면 그걸 신성모독(神性冒瀆, sacrilege)으로 보겠다 하신 것입니다.

 

타인의 신앙이 나와 다르다 하여 함부로 말로, 행동으로 그의 신앙에 폭행을 가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 역시 주님이 공을 들이시는 사람이며, 나만 가만히 있으면, 즉 훼방을 놓지 않으면, 그는 어쩌면 주님의 인도대로 체어리티의 사람, 아벨 신앙의 후손이 될 수도, 그러니까 지금은 신앙 따로, 사랑 따로의 신앙인이지만, 그의 안에 신앙심이라는 게 남아있기만 하면 주님은 그걸 가지고 일을 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창세기 1장부터 쭉 읽다 보면, 아직 지상에 사람은 가인까지 셋뿐인데, 아벨은 죽었으므로, 갑자기 가인의 입에서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는 말이 나옵니다. 나중엔 놋 땅에 거주하며 아내까지 얻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요?

 

천사들은 창세기 11장 아브람 전까지는 그 등장인물들을 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그 이름으로 부르던 교회로 봅니다. 다른 말로는 그 이름으로 부르던 신앙이나 교리로 보지요. 참고로 아브람 전까지는 실제 역사가 아니며, 그 전까지의 장구한 역사(※ 참고로, 저는 지질학적 지구 나이인 45, 6억 년을 받아들입니다)를 일종의 스토리처럼 엮은 것입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AC.66, 창1 뒤, ‘말씀의 네 가지 스타일’

※ 말씀(the Word)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스타일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 스타일입니다. 66 말씀(the Word)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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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아담, 가인, 아벨 등은 모두 교회를 말합니다. 즉 아담이라는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서 두 종류의 신앙이 일어났는데, 그 하나가 가인이라는 신앙을 가진 교회, 다른 하나는 아벨이라는 신앙을 가진 교회라는 말입니다. 앞으로도 특별히 에벨(창11) 전까지 등장하는 인명(人名)들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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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눅22:63-65)

 

영어 성경에는 주님의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얼굴을 가리고 때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서 주님의 얼굴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에는 주님께서 아론에게 명하시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할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하십니다. 즉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4-26)

 

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사랑과 자비는 모든 악과 거짓을 이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주님의 얼굴을 가리고 때리는 것은, 타락한 교회들이 말씀을 왜곡, 말씀의 생명인 사랑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교리가 바로 사랑 없는 믿음만의 교리, 오직 믿음의 교리입니다. (이상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 설교에서 인용)

 

이 ‘오직 믿음’(Faith Alone) 교리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주님은 스베덴보리를 통해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심판의 대상이 모두 이 ‘오직 믿음’ 교리에 함몰된 교회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저는 이 교리가 왜 이토록 위험한 교리일까 좀 생각해 봤는데요, 그것은... 천국은 속 사람의 상태로 가는 곳인데, 이 ‘오직 믿음’ 교리로는 이런 사실을 가볍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즉 평소 속 사람의 상태 관리에 소홀,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1, 22)

 

즉, 우리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속 사람의 상태 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 교리에 취해 속 사람의 상태에 소홀히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없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얘깁니다.  

 

참고로, 이 ‘오직 믿음’ 교리, 다른 말로  이신칭의’(以信稱義)라 해도 될까요?, 이 교리의 출처는 로마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디모데전서 등 주로 사도들, 특히 바울의 서신들입니다만, 그러나 이들은 사실은 ‘말씀’(The Word)이 아닙니다. ‘말씀’은 오직 주님, 그러니까 사람이 아닌 신(, The Divine)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속뜻, 그러니까 내적 의미(다른 말로는 아르카나 Arcana 라틴)가 있어야만 말씀이기 때문이며, 신이 아닌 사람이 쓴 글에는 이게 없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성경 66권 중 말씀(The Word)은...

성경 66권 중에서 속뜻(internal sense, inner meaning)이 있는 성경을 '말씀'(The Word, 총 34권)이라 하며,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 : 창, 출, 레, 민, 신, 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시, 사, 렘, 애, 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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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눅22:63-65)

 

아타나시우스 신조(the Athanasian Faith)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제작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와 함께 초대교회 3대 신경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신조의 주된 내용은 삼위일체와 성육신입니다.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스웨덴)는 그의 유작,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첫 라틴 출간 1785-1789, 쓰기는 1757, 계19:10에서 멈춤)에서 이 신조를 다루고 있는데, 아래 내용은 그중 어떤 게 ‘말씀을 더럽히는 것’인지 당시 종교, 특히 교황 교회(the papal church, 스베덴보리식 표현, the papal religion이라고도 함)의 부패상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의 뼈와 무덤에 거룩함이 있다는 것, 시체가 기적을 행한다는 것, 사람이 자신의 부를 우상이나 수도원에 성별(聖別)하지 않으면 나중에 연옥에서 고통을 당한다는 것, 천국과 지옥의 권세를 가졌으므로 사람이 신이라는 것 even that there is holiness in the bones of the dead and in sepulchers, that carcasses perform miracles, that man will be tormented in purgatory if he does not consecrate his wealth to idols or to monasteries, that men are gods because heaven and hell are in their power

 

위 하나하나의 사례는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듯 당시 아주 지독하게 부패한 교황 교회의 폐단들이며, 결국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사례들입니다.

 

위 본문은 또한 교회의 마지막 때, 타락한 교회의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니까 말씀을 앞세우는 목적이 주님 사랑이 아닌, 저들 교황 교회들처럼 말씀을 그저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삼는 일체의 종교적 행위가 곧 말씀을 더럽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전체가 이런 건 아닙니다. 기독교 안에 정교회, 카톨릭, 개신교 (발생순) 등 여러 기독 신앙이 있는데, 그중 삶은 소홀히 하고, ‘오직 믿음’에 치우친 나머지 그 사고와 언행이 매우 세속화된 모든 교회를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오직 믿음’의 뿌리는 의외로 그 기원이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표현만 마틴 루터 때 생겨났을 뿐, 그 본질은 아벨을 죽인 가인한테까지 올라갑니다. 아벨의 속뜻이 사랑과 신앙이 하나 된 교회, 곧 신앙고백이라면, 가인은 사랑 따로 신앙 따로의 교회요,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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