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70.심화

 

1.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

 

이와 같이 저는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I was thus removed from communication with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AC.171)

 

여기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communication with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이라는 말이 왜 나오나요? 평소에도 영적 실상은 사람들이 이 영들과의 교통 가운데 있다는 말인가요?

 

 

네, 바로 그 뜻입니다. AC.171에서 갑자기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스베덴보리에게 인간은 평소에도 완전히 고립된 독립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의 생각과 affection과 내적 상태 뒤에는 항상 영적 세계와의 연결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영들의 세계(world of spirits)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영들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중간 영역으로, 죽은 후 대부분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바로 그 세계를 통해 천국과 지옥 양쪽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그는 유명하게 ‘모든 인간에게는 두 천사와 두 영이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꼭 숫자 계산이 핵심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늘 어떤 영적 공동체와 연결된 influx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혼자 생각하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affection과 상태를 가진 영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 인간은 육체 감각과 세상 의식 안에 깊이 잠겨 있기 때문에, 이런 communication을 거의 의식하지 못합니다. 마치 우리가 공기 속에 살면서도 평소 공기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죽음 가까운 상태나 특별한 영적 상태에서는, 이 평소의 연결 구조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AC.171 문맥에서 스베덴보리가 ‘나는 영들의 세계의 영들과의 communication으로부터 물러나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죽음 체험 과정 속에서 평소의 일반적 영적 연결 상태와 다른 특별한 상태 안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즉 그는 일반 영들과의 ordinary communication에서 분리되어, 더 높은 천사적 influx 안으로 옮겨졌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천적 천사들이 심장 영역과 연결되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흐름입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 인간론 전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thought는 완전히 자기 독립 생성물이 아니라, 영계와의 연결 속에서 흘러들어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이 단순 꼭두각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느끼며,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늘 어떤 spiritual communication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거듭남도 단순 개인 심리 변화가 아닙니다. 인간이 점점 다른 영적 공동체와 연결되는 과정입니다. 자기 사랑과 지옥적 affection 쪽과 공명하던 상태에서, 점차 천국적 affection과 공명하는 상태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따라 이미 어떤 영적 society와 연결되어 삽니다.

 

그리고 이것이 왜 무서우면서도 중요한가 하면, 인간은 자기 생각을 완전히 자기 alone의 것으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생각과 affection 뒤에는 늘 더 큰 영적 연결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랑을 붙드느냐가 곧 어떤 영계와 연결되느냐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AC.171의 ‘communication with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는 단순 특별 현상 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가 원래 영적 교통 구조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평소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이미 살아 있는 동안부터 영계와 끊임없이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AC.171, 심화 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AC.170.심화 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그들은 제가 육체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who supposed that I had departed from the life of the body. (AC.171)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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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1, 창2 뒤,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남’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1 이와 같이 저는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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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1

 

이와 같이 저는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그들은 제가 육체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I was thus removed from communication with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who supposed that I had departed from the life of the body.

 

 

해설

 

이 단락은 사후 이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전환’을 아주 짧지만 결정적으로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더 이상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 교통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고립이나 단절이 아니라, 교통의 층위가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아직 완전히 영계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상적 상태에 머문 것도 아닌, 그 중간의 매우 특수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들의 세계에 있던 영들이 ‘그가 육체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생각했다’는 대목입니다. 이는 죽음이 본질적으로 ‘관계적으로 인식되는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실제로는 아직 육체와 연결된 상태였지만, 영들의 세계에서 그와의 교통이 끊어지자 그들은 그를 ‘이미 죽은 자’로 인식한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의 상태보다, 어떤 차원의 존재들과 교통하고 있는가에 의해 판단됩니다.

 

이 점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영적 세계와 끊임없이 교통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교통의 대상과 방식이 바뀔 뿐입니다. 여기서는 하위의 영들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보다 내적이고 높은 질서의 천사들과의 결합이 이루어지면서, 외부에서 볼 때 그는 ‘이미 떠난 자’가 됩니다. 즉, 죽음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교통의 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이 단락은, 사후의 첫 단계에서 인간이 혼란 속에 던져지는 존재가 아니라, 질서 있게 보호받는 상태에 놓인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하위의 영들과의 교통이 차단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보호의 한 형태입니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영적 영향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교통의 문을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이 짧은 문장은, ‘죽음 이후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정확한 답을 줍니다. 그는 갑자기 천국이나 지옥으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통이 정리되고, 관계가 재배치되며, 존재의 중심이 재정렬되는 상태를 거칩니다. AC.171은 바로 그 ‘관계의 재정렬’이 시작되는 지점을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화

 

1.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

 

 

AC.171, 심화 1,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과의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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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AC.171, 심화 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AC.170.심화 2.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걸 어떻게?’ 그들은 제가 육체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who supposed that I had departed from the life of the body. (AC.171) 영들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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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2, 창2 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소생 과정’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2 심장 영역에 해당하는 천적 천사들 외에도, 제 머리맡에는 두 천사가 앉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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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0, 창2 뒤, ‘천적 천사들이 와 있는 상태’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0 천적 천사들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심장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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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0.심화

 

4.  몇 시간이나?

 

그 결과 마침내 제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오직 생각과 그에 따른 지각뿐이었고, 이러한 상태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and so that at length scarcely anything was left to me except thought, and the consequent perception, and this for some hours. (AC.170)

 

 몇 시간이나 지속되는 걸까요?

 

 

AC.170의 ‘몇 시간’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흥미롭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죽음을 단순 ‘순간적 소멸’이 아니라, 실제로는 단계적 전이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를 벗는 순간 곧바로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확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감각과 연결이 점차 풀리면서 영적 의식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실제로 어떤 ‘transition period’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몇 시간’이 꼭 지상 시간 개념 그대로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계에서는 상태(state)가 시간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몇 시간’이라고 말할 때는, 인간이 자연적 의식에서 영적 의식으로 옮겨가는 일정한 상태 지속을 인간 언어로 표현한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는 실제로 그것이 전혀 찰나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시간이 필요한가? 스베덴보리 흐름에서는, 인간은 평생 육체 감각과 자연적 사고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그것이 완전히 제거되면, 인간 존재 전체에 너무 큰 충격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을 점진적으로 자연적 층위에서 영적 층위로 옮기십니다. 마치 아주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강한 빛을 보면 눈이 견디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죽음 직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살아 있는 동일한 인간’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갑자기 모든 감각과 자기 의식이 끊겨 버린다면, 인간은 자기 연속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나는 여전히 나다’라고 느끼는 가운데 점차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몇 시간은 그런 부드러운 이행 과정과 관련됩니다.

 

그리고 AC.170 문맥을 보면,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심장과 호흡의 분리 과정에 주목합니다. 그는 인간 자연 생명의 중심이 심장과 호흡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단순히 심장이 멈추는 기계적 사건이 아니라, 자연적 호흡과 영적 의식 사이의 연결이 점차 풀리는 과정처럼 설명됩니다. 이 과정이 완전히 instantaneous하지 않기 때문에, ‘thought consequent perception만 남는 상태’가 얼마간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주님의 자비와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 전체에서 주님은 인간을 abrupt하게 다루지 않으십니다. 천천히, 상태에 맞게,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죽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갑자기 낯선 우주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연 세계 감각을 놓고 영계 의식 안으로 옮겨집니다.

 

사실 이 설명은 매우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찰나의 절단’이 아니라, 주님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는 매우 세심한 transition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죽을 때, 혼자 통과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이 함께하며, 주님이 인간 의식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음 상태로 이끄신다고 봅니다. 그래서 ‘몇 시간’이라는 표현은 단순 시간 정보 이상으로, 죽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드러운 전이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AC.170, 창2 뒤, ‘심장 관련, 천적 천사들과 결합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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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0, 심화 3, ‘요즘 유튜브나 임사체험 등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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