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10, 11)
AC.505
‘에노스’(Enosh)는 앞서 관찰한 바와 같이 세 번째 교회를 의미하는데, 여전히 태고교회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셋’(Seth)의 교회보다 덜 천적이며, 그 결과 퍼셉션도 더 적습니다. 또한 이 셋의 교회 역시 ‘사람’(man)이라 불리는 부모 교회만큼 천적이지도 않고 퍼셉션이 풍성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세 교회가 태고교회를 이루는 것들이며, 이들은 뒤이어 나타난 교회들에 비하면 열매나 씨앗의 알맹이와 같고, 그 이후의 교회들은 이에 비해 막질로 된 부분들과 같습니다. “Enosh,” as before observed, is a third church,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but less celestial, and consequently less perceptive, than the church “Seth”; and this latter was not so celestial and perceptive as the parent church, called “man.” These three are what constitute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relatively to the succeeding ones, was as the kernel of fruits, or seeds, whereas the succeeding churches are relatively as the membranaceous parts of these.
해설
이 글은 태고교회의 내부 구성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정리해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에노스, 셋, 사람(아담)이라는 이름을 통해 세 교회를 구분하지만, 동시에 이 셋이 함께 태고교회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는 태고교회가 하나의 동일한 상태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퍼셉션의 정도가 서로 다른 여러 상태들이 함께 존재하며 형성되었음을 뜻합니다.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아들 부부, 딸 부부 세대, 그리고 손주 세대가 같이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이라 불리는 부모 교회는 가장 천적인 상태였고, 퍼셉션이 가장 분명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인식되었고, 그 인식은 삶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습니다. 셋의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의 범주에 속하지만, 이미 퍼셉션은 이전보다 덜 즉각적이 되었고, 조금 더 매개된 방식, 그러니까 뭔가 보조 설명이 필요한 방식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노스의 교회에 이르러서는 퍼셉션이 더욱 일반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고, 선과 진리를 인식하는 분명함도 더 줄어들었습니다.
이 차이는 가치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의 차이를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어느 교회도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는 각 교회가 주님의 섭리 안에서 허락된 고유한 위치를 지니며, 그 위치에 맞는 퍼셉션과 역할을 지녔다고 봅니다. 덜 천적이고 덜 퍼셉션적이라는 말은, 생명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생명이 작동하는, 즉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열매와 씨앗의 비유를 다시 사용합니다. 태고교회의 세 교회는 이후 교회들과 비교할 때 알맹이에 해당합니다. 알맹이는 생명의 중심이 자리한 곳이며, 이후의 모든 전개는 이 중심으로부터 나옵니다. 반면, 이후에 나타난 교회들은 막질과 같은 부분으로 비유되는데, 이는 알맹이를 감싸고 보호하며 생명이 바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요. 여기에는 각기 다른 쓰임새가 있을 뿐, 우열의 판단은 없습니다.
이 비유는 교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균형 있게 잡아 줍니다. 태고교회의 알맹이적 상태는 가장 분명한 퍼셉션을 지녔지만, 그것만으로 인류 전체의 영적 여정을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더 많은 외적 구조와 매개가 필요해졌고, 그에 따라 교회의 형태도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락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 상태에 맞추어진 섭리의 전개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볼 때, 이 글은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을 다시 묻게 합니다. 교회가 알맹이에 해당하는 상태에 있느냐, 막질에 해당하는 상태에 있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그 막질이 여전히 알맹이를 품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외적인 제도와 형식이 중심이 되더라도, 그 안에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생명의 핵심이 살아 있다면, 그 교회는 여전히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신앙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떤 시기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퍼셉션이 매우 분명하게 느껴질 수 있고, 어떤 시기에는 더 많은 생각과 규칙, 형식을 통해 신앙을 유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형식들이 여전히 안쪽의 생명을 보호하고 있는지, 아니면 형식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는지입니다.
결국 이 글은 태고교회의 세 교회를 하나의 연속된 생명 흐름으로 보게 합니다. 사람, 셋, 에노스는 서로 다른 퍼셉션의 정도를 지녔지만, 함께 태고교회를 이루었고, 이후 교회들의 생명적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 연결이 유지되는 한, 교회는 형태가 달라져도 생명을 잃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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