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7.심화

 

4. ‘72:7, 10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스바와 시바’, 그리고 ‘왕들이 예물을 드린다’는 표현을 통해 ‘인식과 진리의 영역이 주님께로 돌아와 바르게 질서 지어질 때의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이 시편은 주님의 나라, 곧 참된 왕의 통치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의인이 흥왕하고 평강이 풍성하다’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이 올바른 질서 안에서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때의 ‘평강’은 외적 평화가 아니라, 의지와 이해가 조화를 이루는 내적 평화입니다.

 

이어 ‘다시스와 섬의 왕들’, ‘스바와 시바 왕들’이 등장합니다. 상응에서 ‘왕들’은 진리, 특히 이해 안에 있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스바와 시바’는 앞선 여러 구절들에서 보았듯이, ‘사랑의 선과 그것에 속한 것들,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인식과 풍요’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여러 차원의 진리와 인식들이 주님께로 나아와 예물을 드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물질적 헌납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진리와 인식, 이해의 모든 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상태’, 곧 그것들이 더 이상 자기 소유나 자랑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 점에서 이 구절은 앞서 인용된 다른 본문들과 대비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두로의 상업 장면에서는 보석과 금이 ‘거래’되었습니다. 즉, 인식과 진리가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같은 영역의 것들이 ‘예물’로 드려집니다. 다시 말해, ‘인식과 진리가 주님께 종속되고, 올바른 질서로 회복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혼이 의미하는 ‘인식의 영역’은 타락하면 거래의 도구가 되지만, 회복되면 이렇게 ‘주님께 드려지는 예물, 곧 참된 신앙의 표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같은 ‘금과 보석’, 같은 ‘인식과 진리’라도, 그것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인용입니다.

 

 

 

AC.117, 심화 5, ‘왕상10:1-2’

AC.117.심화 5. ‘왕상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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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심화 3, ‘겔27:22’

AC.117.심화 3. ‘겔27: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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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심화

 

3. ‘27: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스바와 라아마’, 그리고 ‘보석과 금’이라는 표현을 통해 ‘인식(기혼의 영역)이 어떻게 참되게도, 왜곡되게도 사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이 본문은 두로에 대한 말씀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로는 상응에서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지식과 인식, 곧 진리들을 다루는 영역’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이 ‘상인들’에 의해 거래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상인은 사고파는 자이므로, 이는 진리와 인식이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익과 목적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제 ‘스바와 라아마’가 등장합니다. 스바는 앞선 AC.113에서도 보았듯이, 본래는 ‘사랑의 선과 그로부터 나온 좋은 것들’과 연결되는 긍정적 상응을 갖습니다. 라아마 역시 그 계열에 속한 것으로, 선과 진리의 영역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오는 물품이 ‘향 재료, 보석, ’입니다. 이것들은 각각 ‘사랑에서 나온 것들의 기쁨, 신앙의 진리, 사랑의 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상업’, 곧 거래의 맥락 안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즉, 본래 주님으로부터 유입되어 생명을 살리는 데 쓰여야 할 선과 진리, 인식들이, ‘외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상태’로 전락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왜곡된 인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 점이 AC.117의 흐름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기혼은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 곧 이해의 영역을 의미하지만, 그 인식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사용될 때는 살아 있는 것이 되지만, 외적 목적과 자기 중심성에 종속될 때는 이렇게 ‘거래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보석과 금’ 같은 거룩한 상응들조차, 그 출처와 사용이 바뀌면 ‘참된 생명의 요소가 아니라, 외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인식과 진리는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나오고,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인용입니다.

 

 

 

AC.117, 심화 4, ‘시72:7, 10’

AC.117.심화 4. ‘시72:7, 10’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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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심화 2, ‘단11:43’

AC.117.심화 2. ‘단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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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애굽’과 ‘구스’가 각각 ‘외적 지식과 내적 인식의 영역’을 뜻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종속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이 말씀에서 ‘애굽의 금과 은, 모든 보물’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말씀의 상응에 따라 ‘외적 지식과 그 안에 담긴 선과 진리의 요소들’, 곧 기억 지식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애굽은 늘 외적 인간, 특히 감각과 경험에서 모은 지식을 상징하는데, 그 지식 안에도 본래는 선과 진리의 흔적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이 ‘권세 아래 놓인다’고 말합니다. 이는 외적 지식이 본래의 질서를 잃고, 다른 힘에 의해 지배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어 ‘리비아와 구스’가 나옵니다. 스베덴보리의 용법에서 구스는 단순한 민족이 아니라, ‘마음의 기능, 특히 이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의 영역’, 곧 AC.116에서 말한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cognitio)’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구스가 ‘그의 시종이 된다’, 곧 ‘발 아래 놓인다’고 표현됩니다. 이는 이해의 기능, 인식의 능력이 본래 주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중심에 종속되어 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이 구조를 함께 보면 분명해집니다. 외적 지식(애굽)과 내적 인식(구스)이 모두 하나의 잘못된 중심 아래 놓이게 되는 상태, 곧 ‘질서가 뒤집힌 상태’가 묘사되고 있습니다. 본래의 질서에서는 사랑에서 신앙으로, 신앙에서 이해와 인식으로 흐르며,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유입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반대로, 외적 지식과 인식이 주님이 아닌 다른 중심에 의해 지배됩니다. 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반복해서 말하는 ‘거꾸로 된 질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117에 인용된 이유는, 기혼이 의미하는 ‘인식의 영역’이 항상 선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중심 아래 놓일 때는 왜곡되고 종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이해와 인식 자체는 중립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유입을 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인용입니다.

 

 

 

AC.117, 심화 3, ‘겔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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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심화 1, ‘습3:5, 9-10’

AC.117.심화 1. ‘습3:5, 9-10’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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