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白馬)

The White Horse Mentioned in Revelation 19

(1758, 1769)

 

 

말씀과 그 영적, 즉 내적 의미

The Word and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sections 1–5)

 

WH.1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은 그 영적, 곧 내적 의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In the book of Revelation the Word is thus described as to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9:11-14, 16) I saw heaven opened, and behold a white horse, and he that sat upon him was called faithful and true, and in justice he doth judge and make war. His eyes were as a flame of fire; and upon his head were many diadems; and he hath a name written that no one knew but he himself. And he was clothed with a vesture dipped in blood; and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And the armies which were in the heavens followed him upon white horses, clothed in fine linen white and clean. And he hath upon his vesture and upon his thigh a name written,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19:11–14, 16).

 

이 표현들 각각이 무엇을 포함하는지는 내적 의미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표현은 어떤 점에서든 표상적이며 상징적입니다.하늘이 열렸다(heaven was opened)는 것, ‘백마(白馬, a white horse)가 있었다는 것, ‘그 위에 앉으신 이가 있었다(there was one sitting upon him)는 것, ‘의로 심판하고 싸운다(in justice he doth judge and make war)는 것, ‘그 눈이 불꽃 같다(his eyes were as a flame of fire)는 것, ‘그 머리 위에 많은 면류관이 있다(on his head were many diadems)는 것, ‘자기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 있다(he had a name that no man knew but he himself)는 것, ‘피에 적신 옷을 입었다(he was clothed with a vesture dipped in blood)는 것, ‘하늘의 군대들이 백마를 타고 따른다(the armies which were in heaven followed him upon white horses)는 것,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they were clothed in fine linen white and clean)는 것, ‘그 옷과 넓적다리에 이름이 기록되었다(on his vesture and on his thigh he had a name written)는 것 등은 모두 어떤 점에서든 표상적이며 상징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묘사된 것은 분명히 말씀(the Word)이며, 또한 말씀이신 주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고 하였고, 이어서 그 옷과 그 넓적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he hath on his vesture and on his thigh a name written,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No one can know what each of these expressions involves, except from the internal sense. It is manifest that every expression is in some respect representative and significative: as when it is said, that “heaven was opened”; that there was “a white horse”; that “there was one sitting upon him”; that “in justice he doth judge and make war”; that “his eyes were as a flame of fire”; that “on his head were many diadems”; that “he had a name that no man knew but he himself”; that “he was clothed with a vesture dipped in blood”; that “the armies which were in heaven followed him upon white horses”; that “they were clothed in fine linen white and clean”; and that “on his vesture and on his thigh he had a name written.” It is expressly said, that it is “the Word” which is here described, and the Lord who is the Word; for it is said,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and afterwards, “he hath on his vesture and on his thigh a name written,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각각의 표현을 해석해 보면, 여기서는 말씀이 그 영적 또는 내적 의미에 관하여 묘사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늘이 열렸다(heaven being opened)는 것은 말씀의 내적 의미가 하늘에서 보이며, 하늘이 열리는 자들에게는 세상에서도 보인다(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is seen in heaven, and thence by those in the world to whom heaven is opened)는 것을 표상하고 상징합니다. ‘(The horse),백마(a white horse)는 말씀의 내면에 관한 이해(the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to its interiors)를 표상하며 상징합니다. ‘그 위에 앉으신 이(he that sat upon him)는 말씀에 관한 주님, 곧 말씀이신 주님(the Lord as to the Word, thus the Word)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선으로부터는 충신, 그리고 의로 심판하시는(faithful and judging in justice) 분이라 불리시며, 진리로부터는 진실, 그리고 의로 싸우시는(true, and who maketh war in justice) 분이라 불리십니다. 주님 자신이 곧 의이시기 때문입니다. From the interpretation of each expression it evidently appears that the Word is here described as to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By “heaven being opened” is represented and signified that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is seen in heaven, and thence by those in the world to whom heaven is opened. “The horse,” which was white, represents and signifies the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to its interiors; that this is the signification of “a white horse,” will be shown presently. That “he that sat upon him” is the Lord as to the Word, thus the Word, is manifest, for it is said,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who, from good, is called “faithful and judging in justice”; and from truth, is called “true, and who maketh war in justice”; for the Lord himself is justice.

 

그의 눈이 불꽃 같다(his eyes, as a flame of fire)는 것은 그분의 신적 사랑의 신적 선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the Divine truth, from the Divine good of his Divine love)를 뜻합니다. ‘그 머리 위의 많은 면류관(The many diadems upon his head)은 신앙의 모든 선과 진리(all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를 뜻합니다. ‘자기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 있다(Having a name written that no one knew but he himself)는 것은 말씀의 내적 의미 안에 있는 그 본질과 성질이 주님과, 주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자들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음(the quality of the Word in the internal sense is seen by no one but himself, and those to whom he reveals it)을 뜻합니다. ‘피에 적신 옷을 입었다(Clothed in a vesture dipped in blood)는 것은 문자적 말씀에 가해진 폭력(Word in the letter, to which violence has been offered)을 뜻합니다. ‘하늘의 군대들이 백마를 타고 따랐다(The armies in the heavens which followed him upon white horses)는 것은 말씀의 내면에 관한 이해 안에 있는 자들(those who are in the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to its interiors)을 뜻합니다.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Clothed in fine linen, white and clean)는 것은 선에서 나온 진리 안에 있는 같은 사람들(the same persons in truth from good)을 뜻합니다. ‘그 옷과 그 넓적다리에 이름이 기록되었다(Upon his vesture and upon his thigh a name written)는 것은 진리와 선, 그리고 그것들의 본질과 성질(truth and good, and their quality)을 뜻합니다. his eyes, as a flame of fire,” signify the Divine truth, from the Divine good of his Divine love. “The many diadems upon his head,” signify all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Having a name written that no one knew but he himself,” signifies that the quality of the Word in the internal sense is seen by no one but himself, and those to whom he reveals it. “Clothed in a vesture dipped in blood,” signifies the Word in the letter, to which violence has been offered. “The armies in the heavens which followed him upon white horses,” signify those who are in the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to its interiors. “Clothed in fine linen, white and clean,” signify the same persons in truth from good. “Upon his vesture and upon his thigh a name written” signifies truth and good, and their quality.

 

이러한 세부 사항들과 그 장의 앞뒤에 있는 내용들로부터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 즈음에 말씀의 영적 곧 내적 의미가 열릴 것이 그 안에서 예언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또한 그곳(19:17-21)에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말들의 의미가 그러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신적 진리이시기 때문에 말씀이심(the Lord is the Word because he is the Divine truth)이 밝혀져(n. 2533, 2803, 2884, 5272, 7835) 있습니다. 또한 말씀이 곧 신적 진리임(the Word is the Divine truth)도 설명되어(n. 4692, 5075, 9987) 있습니다. From these particulars, and from those which precede and follow in that chapter, it is evident, that therein is predicted that about the last time of the church the spiritual or internal sense of the Word would be opened; but what would come to pass at that time is also described there (verses 17–21). It is unnecessary to prove in this place that this is the signification of the words mentioned, as they are particularly explained in Arcana Coelestia, where it is shown that the Lord is the Word because he is the Divine truth (n. 2533, 2803, 2884, 5272, 7835). That the Word is the Divine truth (n. 4692, 5075, 9987).

 

17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19:17-21)

 

주님께서 (, justice)이시기 때문에 말을 타신 이가 의로 심판하고 싸우신다(he who sat upon the horse in justice doth judge and make war)고 하신 것이며, 주님께서 라 불리시는 이유는 그분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인류를 구원하셨기 때문임도 설명되어(n. 1813, 2025–2027, 9715, 9809, 10019, 10152) 있습니다. 또한 는 오직 주님께만 속한 공로(merit)임도 밝혀져(n. 9715, 9979) 있습니다. ‘그의 눈이 불꽃 같다(his eyes, as a flame of fire)는 것이 신적 사랑의 신적 선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the Divine truth from the Divine good of the Divine love)를 뜻한다는 것은, ‘(the eyes)이 이해와 신앙의 진리(the understanding and the truth of faith)를 상징하기(n. 2701, 4403–4421, 4523–4534, 6923, 9051, 10569) 때문이며, ‘불꽃(a flame of fire)이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상징하기(n. 934, 4906, 5215, 6314, 6832) 때문입니다. That because the Lord is justice, therefore it is said that “he who sat upon the horse in justice doth judge and make war”; and that the Lord is called “justice” for this reason, because of his own power he has saved the human race (n. 1813, 2025–2027, 9715, 9809, 10019, 10152). And that “justice” is the merit which belongs to the Lord alone (n. 9715, 9979). That “his eyes, as a flame of fire,” signify the Divine truth from the Divine good of the Divine love is that “the eyes” signify the understanding and the truth of faith (n. 2701, 4403–4421, 4523–4534, 6923, 9051, 10569); and “a flame of fire” signifies the good of love (n. 934, 4906, 5215, 6314, 6832).

 

그 머리 위의 면류관들(the diadems which were upon his head)이 신앙의 모든 선과 진리(all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를 뜻한다는 것도 설명되어(n. 114, 3858, 6335, 6640, 9863, 9865, 9868, 9873, 9905) 있습니다. ‘자기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 있다(he hath a name written which no one knew but he himself)는 것이 말씀의 내적 의미 안에 있는 그 본질과 성질이 주님과, 주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자들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음(the quality of the Word in the internal sense is seen by no one but himself, and those to whom he reveals it)을 뜻한다는 것은, ‘이름(a name)이 어떤 것의 성질(the quality of a thing)을 상징하기(n. 144, 145, 1754, 1896, 2009, 2724, 3006, 3237, 3421, 6674, 9310) 때문입니다. ‘피에 적신 옷을 입었다(clothed in a vesture dipped in blood)는 것이 문자적 말씀에 가해진 폭력(the Word in the letter to which violence has been offered)을 뜻한다는 것은, ‘(a vesture)이 선을 입히는 진리(truth because it clothes good)를 상징하며(n. 1073, 2576, 5248, 5319, 5954, 9212, 9216, 9952, 10536), 특히 가장 바깥 진리, 곧 문자적 말씀(truth in the ultimates, thus the Word in the letter)을 뜻하기(n. 5248, 6918, 9158, 9212) 때문입니다. 또한 (blood)가 거짓이 진리에 가하는 폭력(violence offered to truth by falsity)을 뜻하기(n. 374, 1005, 4735, 5476, 9127) 때문입니다. That “the diadems which were upon his head” signify all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n. 114, 3858, 6335, 6640, 9863, 9865, 9868, 9873, 9905). That “he hath a name written which no one knew but he himself” signifies that the quality of the Word in the internal sense is seen by no one but himself, and those to whom he reveals it, is that “a name” signifies the quality of a thing (n. 144, 145, 1754, 1896, 2009, 2724, 3006, 3237, 3421, 6674, 9310). That “clothed in a vesture dipped in blood” signifies the Word in the letter to which violence has been offered is that “a vesture” signifies truth because it clothes good (n. 1073, 2576, 5248, 5319, 5954, 9212, 9216, 9952, 10536); especially truth in the ultimates, thus the Word in the letter (n. 5248, 6918, 9158, 9212); and because “blood” signifies violence offered to truth by falsity (n. 374, 1005, 4735, 5476, 9127).

 

하늘의 군대들이 백마를 타고 그를 따랐다(the armies in heaven followed him upon white horses)는 것이 말씀의 내면에 관한 이해 안에 있는 자들(those who are in the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to its interiors)을 뜻한다는 것은, ‘군대들(armies)이 하늘과 교회의 선과 진리 안에 있는 자들(those who are in the truths and goods of heaven and the church)을 상징하기(n. 3448, 7236, 7988, 8019) 때문입니다. ‘(a horse)이 이해(the understanding)를 상징한다는(n. 3217, 5321, 6125, 6400, 6531, 6534, 7024, 8146, 8318) 것도 설명되어 있으며, ‘흰색(white)이 하늘의 빛 안에 있는 진리, 곧 내적 진리(truth which is in the light of heaven, consequently interior truth)를 뜻한다는 것도 설명되어(n. 3301, 3993, 4007, 5319) 있습니다.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clothed in fine linen white and clean)는 것이 같은 사람들이 선에서 나온 진리 안에 있음(the same persons in truth from good)을 뜻한다는 것은, ‘세마포(fine linen) 또는 아마포(linen)가 천적 기원에서 나온 진리, 곧 선에서 나온 진리(truth from a celestial origin, which is truth from good)를 상징하기(n. 5319, 9469) 때문입니다. That “the armies in heaven followed him upon white horses” signify those who are in the understanding of the Word as to its interiors is that “armies” signify those who are in the truths and goods of heaven and the church (n. 3448, 7236, 7988, 8019). And “a horse” signifies the understanding (n. 3217, 5321, 6125, 6400, 6531, 6534, 7024, 8146, 8318). And “white” signifies truth which is in the light of heaven, consequently interior truth (n. 3301, 3993, 4007, 5319). That “clothed in fine linen white and clean” signifies the same persons in truth from good is that “fine linen,” or “linen,” signifies truth from a celestial origin, which is truth from good (n. 5319, 9469).

 

그 옷과 그 넓적다리에 이름이 기록되었다(a name written upon the vesture and upon the thigh)는 것이 진리와 선, 그리고 그것들의 성질(truth and good, and their quality)을 뜻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a vesture)이 진리(truth), ‘이름(a name)이 성질(quality)을 상징하며, ‘넓적다리(the thigh)가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을 상징하기(n. 3021, 4277, 4280, 9961, 10485)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는 주님을 신적 진리와 신적 선에 관하여 가리키는(the Lord as to the Divine truth and as to the Divine good) 표현입니다. 주님은 신적 진리로 말미암아(from the Divine truth)(King)이라 불리시며(n. 3009, 5068, 6148), 신적 선으로 말미암아(from the Divine good)(Lord)라 불리십니다(n. 4973, 9167, 9194). 그러므로 말씀의 영적 곧 내적 의미 안에 있는 말씀의 성질(the quality of the Word)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안에 영적이지 않은 표현이 하나도 없으며, 모든 표현이 곧 하늘과 교회에 속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That “a name written upon the vesture and upon the thigh” signifies truth and good, and their quality, is that “a vesture” signifies truth, and “a name” quality, as observed above, and “the thigh” signifies the good of love (n. 3021, 4277, 4280, 9961, 10485).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is the Lord as to the Divine truth and as to the Divine good; the Lord is called “King” from the Divine truth (n. 3009, 5068, 6148). And he is called “Lord” from the Divine good (n. 4973, 9167, 9194). Hence it appears what is the quality of the Word in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and that there is no expression therein which does not signify something spiritual, that is, something of heaven and the church.

 

 

해설

 

이 긴 본문은 단순히 상징 하나하나를 풀이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영적 의미가 열리는 사건’이 교회의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를 선언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요한계시록 19장의 환상이 곧 ‘교회의 마지막 때’와 직결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곧 외적 문자에 머물러 있던 교회가 그 생명을 상실해 갈 때, 주님께서 친히 말씀의 내적 의미를 여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단순한 환시가 아니라, 계시의 질서가 바뀌는 순간을 뜻합니다. 이제 하늘에서 보이던 것이 땅에서도 보이도록 허락되는 시점, 곧 계시의 새 단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굳이 여기서 다시 증명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서 충분히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반복 회피가 아니라, 이 계시가 임의적 상상이나 신비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태도입니다. 모든 상징은 이미 창세기와 출애굽기 해설 속에서 일관되게 설명된 동일한 법칙에 따라 해석됩니다. ‘주님은 신적 진리이시므로 말씀이시다’, ‘말씀은 곧 신적 진리다’, ‘의는 주님께만 속한 공로다’라는 일련의 교리는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중심 진리, 곧 주님 중심의 계시관으로 연결됩니다.

 

특별히 ‘의로 심판하고 싸우신다’는 구절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전환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주님께만 속한 구속의 공로를 뜻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라 불리십니다. 따라서 이 싸움은 인간의 싸움이 아니라, 신적 진리가 거짓과 맞서는 싸움입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가 열리는 것은 곧 이 신적 전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란 단순한 시간적 종말이 아니라, 진리가 가려지고 왜곡된 상태가 극에 달한 시점을 뜻합니다.

 

눈은 불꽃 같다’는 표현에서 스베덴보리는 이해와 사랑의 결합을 보여 줍니다. 눈은 이해, 불꽃은 사랑입니다. 진리는 사랑에서 나올 때만 살아 있습니다. 사랑 없는 진리는 차갑고, 진리 없는 사랑은 맹목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내적 의미란 단순한 교리 체계가 아니라, 신적 사랑에서 발하는 신적 진리의 빛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빛이며, ‘흰색’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피에 적신 옷’은 교회 역사 전체를 압축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자적 말씀은 거룩하지만, 인간의 거짓 해석과 권력적 오용으로 인해 상처 입었습니다. 교리 논쟁, 문자주의, 왜곡된 교권은 말씀의 옷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옷을 입고 계신 분은 여전히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은 왜곡되었으나,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내적 의미의 개방은 문자 폐기가 아니라 문자 회복입니다.

 

하늘의 군대’가 백마를 타고 따른다는 것은, 내적 의미가 열릴 때 그것을 이해하는 자들이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군대는 진리와 선 안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은 이해입니다. 흰색은 하늘의 빛입니다. 곧 이해된 진리가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는 새 교회의 씨앗을 암시합니다. 개인적 깨달음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의 새로운 이해입니다.

 

세마포’는 선에서 나온 진리를 뜻합니다. 진리가 선에서 나오지 않으면 교만과 분열을 낳지만, 선에서 나오면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그러므로 내적 의미를 이해하는 자의 표지는 지적 우월감이 아니라, 선에서 나온 진리의 삶입니다. 이는 매우 목회적인 기준입니다. 누가 내적 의미를 이해하는가를 판별하는 기준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진리의 상태입니다.

 

옷과 넓적다리에 기록된 이름’은 진리와 선, 그리고 그 본질을 뜻합니다. 넓적다리는 사랑의 선을 상징합니다. 진리와 선이 결합되어 있을 때, 주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드러납니다. 왕은 신적 진리, 주는 신적 선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본질입니다. 말씀은 단지 진리 모음이 아니라, 사랑과 결합된 진리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본문은 단 하나의 표현도 영적 의미 없이 존재하지 않음을 단정합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는 상징 몇 개의 조합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된 하늘의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문자로만 읽는 것은 껍질만 보는 것이고, 내적 의미가 열릴 때 비로소 그 생명과 질서가 보입니다. 이 선언은 단순한 해석 방법론이 아니라, 교회의 새 시대를 여는 신학적 선포입니다.

 

 

 

WH.2, ‘말’(a horse)은 이해(the understanding)를, ‘말 탄 자’(rider)는 지혜로운 사람(one who is intelligent

말씀과 그 영적, 즉 내적 의미The Word and its spiritual or internal sense (sections 1–5) 2 말씀의 예언서들에는 ‘말’이 매우 자주 언급되지만, 지금까지 ‘말’(a horse)이 이해(the understanding)를 뜻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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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후 심판의 날은 세상 파괴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The destruction of the world is not meant by the day of the last judgment

 

5

 

말씀의 영적 의미(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에 관해서는,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백마(白馬, the white horse)에 관한 소저작을 보세요. Concerning 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 see in the small work on the white horse mentioned in Revelation.

 

 

해설

 

LJ.5는 분량으로 보면 매우 짧지만, 내용상으로는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를 지탱하는 핵심 전제를 독자에게 명확히 상기시킵니다. 스베덴보리는 ‘새 하늘’, ‘새 땅’, ‘창조’, ‘심판’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임의적이거나 상징적 상상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의 기준점으로 ‘말씀의 영적 의미’를 다시 호출합니다. 즉, 지금까지 제시된 모든 설명은 오직 영적 의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위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요한계시록에 나온 백마에 관한 소저작’은 스베덴보리의 독립 저작인 ‘The White Horse’(白馬)를 가리킵니다. 이 책에서 ‘백마’는 요한계시록 19장에 등장하는 상징으로, 말씀의 영적 의미가 다시 열리는 상태, 곧 참된 이해가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말은 이해를, 흰색은 진리를 의미하므로, 흰말, 곧 백마는 ‘정화된 이해’, ‘영적 진리로 밝아진 말씀 이해’를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마지막 심판의 시대가 바로 이 백마의 시대라고 봅니다.

 

이 한 문장은 사실상 독자에게 하나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만일 영적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LJ 전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의미가 실제로 존재하며, 주님에 의해 지금 이 시대에 열리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지금까지 논의된 모든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질서 있게 연결됩니다. 즉 마지막 심판은 우주적 파괴가 아니라 영적 세계의 정리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로운 교회의 설립이고, 창조는 인간과 교회의 거듭남이라는 하나의 큰 흐름이 형성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고 ‘보라’고만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참고 문헌 안내가 아니라, 독자가 직접 그 전제를 충분히 숙지하지 않으면 이후 논의를 온전히 따라올 수 없다는 암묵적 경고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LJ는 ‘영적 의미 입문서’가 아니라, 이미 그 기초를 이해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심화 논의입니다.

 

목회적으로 보면 이 구절은 매우 정직한 태도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주장을 단절된 계시처럼 제시하지 않고, 언제나 말씀 자체로 되돌아가도록 인도합니다. 마지막 심판, 최후의 심판을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말씀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가 정립되어야 합니다. 문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더 깊은 의미로 들어갈 것인가가 여기서 갈립니다.

 

따라서 LJ.5는 단순한 각주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논의를 지탱하는 ‘열쇠 안내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마가 달리는 곳에서만, 마지막 심판은 공포의 종말이 아니라 질서의 회복과 교회의 새출발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LJ.4, ‘창조’(creating)의 속뜻

1. 최후의 심판 날이 세상 파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4 말씀의 영적 의미로 ‘창조하다’(to create)는 또한 형성하다(to form), 세우다(to establish), 거듭나게 하다(to regenerate)를 의미하는데요, 그러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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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후 심판의 날은 세상 파괴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LJ.4

 

말씀의 영적 의미로 창조하다(to create)는 또한 형성하다(to form), 세우다(to establish), 거듭나게 하다(to regenerate)를 의미하는데요,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creating a new heaven and a new earth)는 것은 하늘과 땅에 새 교회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이는 다음 구절들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To create” in 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 also signifies to form, to establish, and to regenerate; so by “creating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signifies to establish a new church in heaven and on earth, as may appear from the following passages: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102:18) The people who shall be created shall praise Jah (Ps. 102:18).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104:30) Thou sendest forth the spirit, they are created; and thou renewest the faces of the earth (Ps. 104:30).

 

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7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43:1, 7) Thus said Jehovah, thy Creator, O Jacob, thy Former, O Israel, for I have redeemed thee, and I have called thee by thy name, thou art mine; everyone called by my name, and for my glory I have created,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1, 7, and in other places).

 

그러므로 인간의 새 창조(the new creation)란 그의 개혁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람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곧 자연적인 상태에서 영적 상태로 변화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ure)이란 개혁된 사람(a reformed man)을 뜻합니다. Hence it is, that “the new creation” of man is his reformation, since he is made anew, that is, from natural he is made spiritual; and hence it is that “a new creature” is a reformed man.60

 

60.창조하다(to create)는 새롭게 창조하는 것, 곧 개혁하고 거듭나게 하는 걸 의미합니다. To create” is to create anew, or to reform and regenerate (n. 16, 88, 10373, 10634).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to create a new heaven and a new earth)는 것은 새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To create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is to institute a new church (n. 10373). 창세기 첫 장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창조(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역시 내적 의미, 즉 속뜻으로는 태고교회, 곧 가장 오래된 천적 교회의 설립이라는 말입니다. By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in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in the internal sense, is described the institution of the celestial church, whi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n. 8891, 9942, 10545).

 

 

해설

 

LJ.4는 종말론 이해를 한층 더 깊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글입니다. 지금까지 ‘하늘’과 ‘’이 교회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는 ‘창조’라는 단어 자체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우리는 보통 창조를 무(無)에서의 물질적 생성으로 생각하지만, 스베덴보리에게 창조는 무엇보다 ‘영적 형성’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단지 만드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라 인간을 끊임없이 새롭게 빚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다고 말할 때, 그 핵심은 존재의 시작보다 ‘상태의 변화’에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선언은 이것입니다. 자연적인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바뀌는 것이 곧 새 창조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거듭남’의 언어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지막 심판, 새 하늘, 새 땅이라는 거대한 표현들은 결국 한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갱신은 개인의 갱신 없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먼저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그 새로워진 사람들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시편에서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라는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백성이 아니라 ‘새 마음을 받은 백성’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새 의지에서 흘러나오는 삶의 태도입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는 이미 창조의 열매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은 채 예배만 반복된다면 그것은 아직 ‘창조 이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라는 표현은 창조가 성령의 역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영이 임할 때 인간의 내면 질서가 재구성되고, 그 결과 ‘지면’이 새로워집니다. 여기서 ‘’(地), 곧 땅은 다시 교회를 뜻하므로, 교회의 참된 쇄신은 제도 개편이 아니라 영의 흐름에서 시작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의 모든 깊은 부흥은 외적 전략보다 내적 각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에서 ‘내가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는 삼중 표현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영적 형성이 한 순간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 과정임을 암시합니다. 주님은 인간을 단번에 완성하지 않으시고, 자유 속에서 서서히 빚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폭발적 체험이라기보다 평생에 걸친 창조입니다.

 

60이 밝히듯,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조차 내적 의미에서는 ‘태고교회의 설립’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통찰입니다. 즉 성경의 첫 장부터 이미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세우시는지가 기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은 진리가 밝혀지는 것이고, 물과 땅이 나뉘는 것은 내적 삶과 외적 삶의 질서가 세워지는 것이며, 인간 창조는 사랑과 지성을 갖춘 영적 존재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 전체는 반복해서 ‘창조 → 타락 → 재창조’의 리듬을 보여 줍니다.

 

목회적으로 이 글은 매우 강력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며 구조나 숫자를 먼저 생각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지금도 사람들을 새롭게 창조하고 계신다면 교회의 미래는 이미 준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위기는 종종 ‘창조의 전 단계’일 뿐입니다.

 

또 하나 깊이 묵상할 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옛사람을 수리하지 않으시고 새 사람을 만드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 개선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 전환입니다. 자기 사랑 중심에서 이웃 사랑 중심으로 이동할 때 우리는 실제로 ‘새 피조물’이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구원은 법적 선언이라기보다 존재론적 변화입니다. 사람이 실제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LJ.4가 전하는 가장 따뜻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창조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 역시 이 창조 사역의 일부이며, 그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새로움입니다. 주님은 낡은 교회를 끝내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더 깊이, 더 새롭게 교회를 세우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새 교회는 언제나 ‘새 사람이 된 이들’ 안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LJ.5, 먼저 ‘The White Horse’(白馬, 계19, 1758)부터 보기를

1. 최후 심판의 날은 세상 파괴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The destruction of the world is not meant by the day of the last judgment 5 말씀의 영적 의미(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에 관해서는,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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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3, 천사들은 '땅'(earth)을 어떤 의미로 읽는가

1. 최후의 심판 날이 세상 파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3 ‘새 땅’(the new earth)이 지상의 새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말씀에서 ‘땅’(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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