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8)

 

AC.132

 

사람은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 곧 자기의 프로프리움(proprium, own)에 의해서도 인도받고자 하는 존재이므로, 여기서는 사람에게 허락된 그 프로프리움이 다루어집니다 (18).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해설

 

이 단락은 창세기 2장 후반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어 하나’를 정확히 집어냅니다. 바로 ‘자기의 것(own), 곧 ‘proprium’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문제를 무지나 연약함에서 찾지 않고, 훨씬 더 근원적인 성향에서 찾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주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만 인도받는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프리움’이 갑자기 죄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허락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인간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로봇처럼 전적으로 외부에서만 조종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느끼고 선택하는 주체로 창조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자기성(自己性) 자체가 아니라, ‘그 자기성이 중심이 되려는 경향’입니다.

 

이 단락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이동을 포착합니다. 이전까지의 천적 인간은 주님의 인도 안에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나도 함께 인도하고 싶다’, ‘나도 판단하고 싶다’, ‘나도 선택의 주체이고 싶다’는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AC.131에서 말한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짐’의 구체적 내용입니다.

 

그래서 창2:18에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외로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순수한 내적 일치 상태로만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주님과의 직접적인 결합만으로는 더 이상 인간의 의식 구조가 유지되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의 것’, 곧 ‘프로프리움’이 하나의 구조로 등장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과정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현실을 매우 정직하게 묘사합니다. 인간은 주님께만 인도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기 자신과 세상도 함께 끌어안고 싶어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후의 모든 분리, 대응, 결합의 서사가 시작됩니다.

 

AC.132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프로프리움’은 타락의 씨앗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기도 하며, 창세기 2장 후반부는 바로 이 긴장 위에서 전개된다고 말입니다.

 

 

심화

 

1. 주님의 인도에 무슨 2프로 부족함이?

 

 

AC.132, 심화 1, 주님의 인도에 무슨 2프로 부족함이?

AC.132.심화 1. 주님의 인도에 무슨 2프로 부족함이? 위 본문에 ‘사람은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 곧 자기의 ‘프로프리움’(proprium, own)에 의해서도 인도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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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때그때 야단치고 바로잡아야?

 

 

AC.132, 심화 2, 그때그때 야단치고 바로잡아야?

AC.132.심화 2. 그때그때 야단치고 바로잡아야? 오히려 그때그때 야단치고, 강압적으로 하면 사람은 고분고분, 빙 돌아갈 길을 질러갈 수 있을 텐데...? 겉으로 보면 그 방법이 더 빠르고 확실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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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로프리움은 고유 본성’(固有 本性)?

 

 

AC.132, 심화 3, 프로프리움은 ‘고유 본성’(固有 本性)?

AC.132.심화 3. 프로프리움은 ‘고유 본성’(固有 本性)? 이 ‘프로프리움’을 누구는 ‘고유 본성’(固有 本性)으로 번역하더군요. 그래도 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유 본성’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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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로프리움은 자아’?, ‘자기(9:23)?

 

 

AC.132, 심화 4, 프로프리움은 ‘자아’?, ‘자기’(눅9:23)?

AC.132.심화 4. 프로프리움은 ‘자아’?, ‘자기’(눅9:23)? 그럼 이 proprium과 ‘자아’는요? 가장 맞는 한역은 뭔가요? 눅9:23, ‘자기를 부인하고’의 ‘자기’가 바로 이 proprium을 말하는 거죠?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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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3, 창2:18-25 개요,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과 진리, 그럼에도 자신의 프로프리움으로’(19-20절)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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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1, 창2:18-25 개요, '창2 후반부 :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진 태고교회의 후손들'(AC.131-137)

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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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국에서는?’

 

천적 인간한테도 이런 기울어짐이 나타네요... 천국에서는 안 일어나지요? 이런 일은 지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죠?

 

 

결론부터 분명히 말씀드리면, ‘천국에서는 그런 프로프리움으로의 기울어짐’,  내 것으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상태는 본질적으로 지상에서의 과정에 속합니다. 왜 그런지는 다음 구조를 보시면 더 명확해집니다.

 

지상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처럼 느끼는 상태’ 속에 두어집니다. 이것이 프로프리움의 토양입니다. 사람은 생각도, 판단도, 선택도 모두 ‘내가 한다’고 느낍니다. 이 감각이 있어야 자유가 있고, 그 자유 안에서 ‘내 것인가, 주님의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이라 해도 지상에 있는 동안에는, 아주 미세한 형태로나마 ‘자기 쪽으로 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에덴 이야기가 바로 그 가능성의 시작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상태는 다릅니다. 천국에서는 이 선택의 싸움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곳의 사람들 역시 여전히 ‘자기 자신처럼 느끼는 감각’, 곧 proprium의 느낌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와 기쁨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이것입니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주님에게 돌립니다’. 다시 말해, ‘내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 것이 아님을 동시에 아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내 것으로 붙잡으려는 움직임’ 자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사랑의 질서가 완전히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이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만일 아주 미세하게라도 ‘내가 했다’는 방향으로 기울려는 순간이 생기면, 그것은 곧바로 불편함으로 느껴지고, 자연스럽게 거부됩니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싸움’과 천국에서의 ‘자연스러운 질서’의 차이입니다.

 

이 점에서 천국은 ‘시험이 없는 곳’이라기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험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태’입니다. 지상에서는 프로프리움과 주님 사이에서 선택하고 정렬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천국에서는 그 정렬이 이미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시 뒤집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프로프리움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가능성, 곧 ‘내 것이라 하고 싶어지는 상태’는 본질적으로 지상에서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질서가 확정되면, 천국에서는 동일한 ‘자기감(自己感), 곧 프로프리움’은 유지되되, 그것이 더 이상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항상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는 상태’로 영원히 지속됩니다.

 

결국 지상은 ‘내 것인가, 주님의 것인가’를 배우는 자리이고, 천국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기쁨으로 사는 자리’라고 보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AC.131, 창2:18-25 개요, '창2 후반부 :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진 태고교회의 후손들'(AC.131-137)

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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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1, 심화 1, ‘프로프리움’(proprium)

AC.131.심화 1. ‘프로프리움’(proprium)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은 원전 용어로, 이곳과 다른 곳들에서는 영어 ‘오운’(ow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형용사 ‘프로피우스’(propius)의 사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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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프리움(proprium)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은 원전 용어로, 이곳과 다른 곳들에서는 영어 오운(ow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형용사 프로피우스(propius)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개가 소유한(one’s own), 적절한(proper), 아무개 본인한테만 속한(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special), 특정한(particular), 특유한(peculiar)입니다. 이 형용사의 중성 표현, 그게 바로 이 프로프리움인데, 이게 명사로 사용될 때는 그 의미가 소유(possession), 재산(property)이며,  어떤 특이점(a peculiarity), 특징(characteristic mark), 구별점(distinguishing sign), 특징(characteristic)입니다. 영어 형용사 오운(own)은 웹스터에 보면 그 의미가 ...에 속한(belonging to), ...에 배타적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정한(peculiar)인데, 그래서 우리가 채택한 이 오운이라는 말은 프로피우스에 정말 딱 맞는 말이며, 만약 라틴어 프로프리움을 대신하기 위해 이 오운을 명사로 사용한다 해도 정말 아주 근접한 번역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이렇게 ‘프로프리움’이 길게 설명되어 있지만, 한 문장으로 잡으면, 이렇게 이해하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내 것이라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 내 것이라는 감각에서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입니다.

 

조금 더 풀어보면, 프로프리움은 단순히 재산이나 소유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내 생각’, ‘내 판단’, ‘내 의지’, ‘내 공로’, ‘내 신앙’까지 포함해서 ‘‘이건 나한테서 나온 것이다라고 느끼는 모든 것의 중심 감각’을 말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서 proprium은 ‘소유’라기보다, ‘자기에게 귀속시키는 의식 전체’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스베덴보리의 핵심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본질적으로 생명이 아니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만이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유입된 것을 그대로 ‘받아 쓰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합니다’. 바로 그 착각 상태가 proprium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훨씬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합니다. 겉으로 보면 훌륭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속으로 ‘이건 내가 한 거야’, ‘내가 옳았어’, ‘내 능력이지’라고 느끼는 순간, 그 전체는 proprium 안으로 들어옵니다. 반대로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이건 주님이 주신 것이고, 나는 그걸 사용했을 뿐이다’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proprium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proprium은 ‘나쁜 것’이라기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근원으로 삼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사람의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모입니다. 생각도, 판단도, 신앙도 결국 자기 확증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AC.129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원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면, 모든 지식이 그것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proprium의 작용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더 나아가 말하는 점은, 인간에게는 두 종류의 ‘프로프리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자기에서 나온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자기중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자는 ‘새로 주어지는 프로프리움(regenerate proprium)이라고도 부를 수 있고, 후자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타락한 자기중심입니다. 겉으로는 둘 다 ‘내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구분이 잘 안되지만, 근원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인간은 proprium을 완전히 없애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proprium 안에 사느냐 하는 존재’입니다. 자기중심의 proprium 안에 살면 모든 것이 왜곡되지만,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 것처럼 쓰되 그 근원을 인정하는 상태로 들어가면, 그때는 ‘살아 있는 proprium’, 곧 자유롭게 주님의 것을 누리는 상태가 됩니다.

 

정리하면, ‘프로프리움’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내가 근원이다라고 느끼는 내적 중심 감각 전체’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은 그 중심을 ‘’에서 ‘주님’으로 옮기는 데 있습니다.

 

 

 

AC.131, 심화 2, ‘천국에서는?’

AC.131.심화 2. ‘천국에서는?’ 천적 인간한테도 이런 기울어짐이 나타네요... 천국에서는 안 일어나지요? 이런 일은 지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죠? 결론부터 분명히 말씀드리면, ‘천국에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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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1, 창2:18-25 개요, '창2 후반부 :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진 태고교회의 후손들'(AC.131-137)

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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