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출26:14; 36:19)
스베덴보리가AC.296에서 출26:14와 출36:19를 인용한 이유는 성막의 덮개를 이루는 여러 가죽이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닌 표상물이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성막 전체가 주님과 천국, 그리고 거듭난 사람을 나타내는 거대한 상응 구조라고 보았으며, 그 가운데 가장 바깥을 덮고 있는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badgers)가죽 역시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은 영적 선을 의미합니다. 숫양은 말씀에서 체어리티와 신앙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하며, 여기에 ‘붉은 물 들인’이라는 표현이 더해짐으로써 그 선이 사랑으로 생명을 얻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성막 안에 있는 거룩한 것들이 영적 선으로 먼저 보호되고 감싸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위를 다시 덮고 있는 ‘해달’ 가죽은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자연적 선은 영적 선보다 더 바깥 차원에 속하며,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선한 행위와 질서 있는 삶을 가리킵니다. 성막에서 가장 바깥 덮개가 해달 가죽으로 되어 있었던 것은, 가장 외적 삶까지도 선으로 보호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영적인 것은 언제나 자연적인 것을 통하여 세상 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막의 덮개가 두 겹으로 되어 있는 것은 선에도 질서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안쪽의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은 보다 내적인 영적 선을, 그 바깥 ‘해달’ 가죽은 보다 외적인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막은 가장 안쪽의 지성소에서부터 가장 바깥 덮개에 이르기까지,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영적 질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창3의 ‘가죽옷’과 창27의 ‘염소 새끼의 가죽’이 동일한 상응 체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진 ‘가죽옷’, 야곱이 입은 ‘염소 새끼의 가죽’, 그리고 성막의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 가죽은 모두 사람의 가장 바깥을 덮는 외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상응적으로는 겉 사람을 보호하는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성막은 주님의 신성한 인성, 곧 신적 인성(Divine Human)을 표상하는 동시에, 거듭난 사람을 표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바깥 덮개가 선을 의미하는 가죽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말과 행동, 생활과 습관까지도 선으로 보호되고 질서 가운데 있어야 내적 신앙과 사랑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내적 거룩함은 외적 삶이 함께 질서를 이룰 때 비로소 안전하게 보존됩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말씀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모두 상응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성막 덮개 재료 기록을 단순한 성막 운반법 기록으로만 보면, 왜 굳이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 가죽을 구별하여 기록했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응 관점에서는 각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재료와 구조가 필연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AC.296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성막의 가장 바깥 덮개조차도 주님께서 사람을 영적 선과 자연적 선으로 보호하시는 섭리를 나타내는 거룩한 표상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창27:15, 16, 27)
AC.296에서 스베덴보리가 창27:15, 16, 27을 인용한 이유는 단순히 ‘가죽’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강조하려는 것은 ‘염소 새끼의 가죽’과 ‘에서의 좋은 의복’이 함께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표상하며, 그 결과 이삭이 ‘밭의 향취’를 맡아 축복하는 장면이 하나의 일관된 상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야곱은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는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의 좋은 의복을 입고, 손과 목에는 염소 새끼의 가죽을 둘렀습니다. 겉으로는 형을 가장하기 위한 변장이지만, 속뜻으로는 전혀 다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에서는 선을, 야곱은 진리를 대표합니다. 진리가 참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을 입어야 합니다. 따라서 ‘에서의 의복’은 선이 외적 삶 속에 나타난 모습을, ‘염소 새끼의 가죽’은 그 선이 가장 바깥 자연적 차원까지 미쳐 사람을 감싸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AC.296의 주제는 ‘가죽’입니다. 가죽은 살아 있는 동물의 가장 바깥 부분이며, 상응적으로는 사람의 가장 바깥 삶과 겉 사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염소 새끼의 가죽’은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 겉 사람을 덮고 보호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창3에서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신 ‘가죽옷’과 정확히 같은 계열의 상징입니다. 두 경우 모두 가죽은 타락하거나 아직 연약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주님께서 마련하신 외적 선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라는 이삭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향취’는 선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기쁨과 즐거움을 의미하고, ‘밭’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이삭이 맡은 것은 단순히 에서의 체취가 아니라, 교회의 선이 밖으로 드러나는 영적 향기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의복’, ‘가죽’, ‘향취’, ‘밭’은 각각 따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의 선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또한 이 장면은AC.296후반부에서 성막의 ‘숫양의 가죽’과 ‘해달’(badgers)가죽을 설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성막의 가장 바깥을 가죽이 덮고 있었던 것처럼, 야곱도 가장 바깥에 가죽을 입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가장 거룩한 것을 외부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27의 가죽과 출26, 민4의 가죽은 동일한 상응의 원리를 보여 주는 서로 다른 사례입니다.
더 나아가 스베덴보리는 이 인용을 통해 말씀의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상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만일 ‘염소 새끼의 가죽’이 단순히 털 많은 손을 흉내 내기 위한 도구였다면, 성막의 가죽과 연결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가죽’이 두 본문에서 모두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창세기와 출애굽기, 민수기를 하나의 상응 체계 안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96에서 창27:15, 16, 27을 인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죽은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창세기의 또 다른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이 입은 ‘염소 새끼의 가죽’은 거듭난 사람의 겉 사람을 감싸는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에서의 의복’은 그러한 선이 삶 속에 드러난 모습을, 그리고 ‘밭의 향취’는 그 선이 교회 안에서 발산하는 생명의 향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창3의 ‘가죽옷’과 성막의 ‘가죽 덮개’를 연결하는 중요한 증거로AC.296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새끼 염소와 양, 염소, 그리고 해달(badgers)과 숫양의 가죽이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속뜻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이 사실은 야곱에 관한 말씀과 성막에 관한 말씀에서도 확인됩니다. 야곱에 대하여는 그가 ‘에서의 옷을 입고’(clothed with the raiment of Esau), 맨살이 드러난 손과 목에는 ‘염소 새끼의 가죽’(with skins of kids of the goats)을 두른 것으로, 그리고 이삭이 그 냄새를 맡고 말하기를,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the smell of my son is as the smell of a field)(창27:15, 16, 2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That the skins of kids, sheep, goats, badgers, and ram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is evident from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here Jacob is treated of, and also where the ark is treated of. Of Jacob it is said that he was “clothed with the raiment of Esau,” and on his hands and on his neck, where he was naked, “with skins of kids of the goats,” and when Isaac smelled them, he said, “the smell of my son is as the smell of a field” (Gen. 27:15, 16, 27).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창27:15, 16, 27)
이 가죽들이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 대목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밝히게 될 것입니다. 또 성막에 대하여는 장막 덮개를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으로’(of rams’ skins and badgers’ skins) 만들라 하였고 (출26:14, 36:19),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een in that place. Of the ark it is said that the covering of the tent was “of rams’ skins and badgers’ skins” (Exod. 26:14; 36:19),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출26:14; 36:19)
이스라엘 자손이 길을 떠날 때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법궤를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었으며, 상과 그 모든 기구,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 금 제단과 섬기는 데 쓰이는 모든 기구와 번제단도 모두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민4:6-14). and that when they set forward Aaron and his sons covered the ark with a covering “of badgers’ skins,” and likewise the table and its vessels, the candlestick and its vessels, the altar of gold, and the vessels of ministry and of the altar (Num. 4:6–14).
6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7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8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9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 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10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1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12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3제단의 재를 버리고 그 제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14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민4:6-14)
이 가죽들이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 역시 그 대목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밝히게 될 것입니다. 이는 법궤와 성막, 곧 회막 안에 있는 모든 것, 더 나아가 거룩한 의복을 입은 아론에게 속한 모든 것이 천적이며 영적인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저마다의 표상이 없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Of the Lord’s Divine mercy it will in that place also be seen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 for whatever was in the ark, the tabernacle, or the tent, yea, whatever was upon Aaron when clothed with the garments of holiness, signified what is celestial spiritual, so that there was not the least thing that had not its own representation.
해설
AC.296은 앞글에서 말한 ‘가죽옷’의 의미를 더욱 확장, 설명합니다. 앞에서는 주님께서 타락한 사람에게 입혀 주신 ‘가죽옷’이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이 의미가 창세기 한 곳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상응 원리임을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가죽이라는 상징은 우연히 사용된 것이 아니라, 말씀 전반에 걸쳐 일관된 영적 의미를 지닌 표상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예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형 에서의 옷을 입고, 손과 목에는 염소 새끼의 가죽을 둘렀습니다. 겉으로만 읽으면 이것은 단순한 변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모든 행위에도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가죽은 사람의 가장 바깥을 감싸는 것이므로, 사람 안에 있는 선이 외적 삶 속에서 드러난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염소 새끼의 가죽은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 겉 사람 안에 자리 잡아 사람의 삶을 감싸고 보호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 예는 성막입니다. 성막은 주님과 천국, 그리고 거듭난 사람을 대표하는 가장 거룩한 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막의 가장 바깥 덮개가 숫양의 가죽과 해달(badgers)의 가죽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가장 거룩한 것조차 세상 가운데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호하는 가장 바깥층이 필요함을 보여 줍니다.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은 천적이고 영적인 것을 단순히 둘러싸는 외피가 아니라, 그것을 세상 속에서 보존하고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민수기에서 법궤와 상, 등잔대, 제단 등 모든 거룩한 기구를 이동할 때마다 해달 가죽으로 덮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이동하는 동안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거룩한 것의 보호였습니다. 상응으로 보면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선과 진리 역시 일상의 삶 속에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 보호막이 바로 영적 선과 자연적 선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알고만 있으면서 생활 속에서 선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진리는 쉽게 손상되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죽은 단순한 덮개가 아니라 거룩한 것을 보존하는 삶의 실제 모습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숫양과 해달 같은 동물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가죽입니다. 살아 있는 동물은 애정과 선의 다양한 상태를 상징하지만, 그 가죽은 그러한 선이 가장 바깥의 생활 속에 정착, 사람의 삶을 감싸고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신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타락 이후 사람은 더 이상 천적 퍼셉션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라는 새로운 보호막을 마련,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셨습니다.
글 마지막에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는 법궤와 성막, 회막, 그리고 아론의 거룩한 의복에 이르기까지 ‘가장 작은 것 하나도 고유한 표상이 없는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씀의 상응이 일부 상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막의 재료와 색깔, 기구와 의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천국의 실재를 나타내도록 마련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면 이러한 표상과 상응의 질서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AC.296은 성경의 여러 본문을 하나의 상응으로 연결하면서,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 사람의 가장 바깥 삶을 형성하고 보호하는 주님의 선물임을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가 퍼셉션을 잃은 뒤에도 주님께서 가죽옷을 입혀 교회를 보존하신 것처럼, 성막과 법궤도 가죽으로 보호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주님께서는 말씀을 배우고 선을 실천하는 일상의 삶을 통하여 우리 안의 영적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십니다. 이처럼 가죽은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의 내적 생명을 세상 가운데 안전하게 보존하시기 위하여 마련하신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의 보호막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