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5.심화

 

1. ‘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25:18)

 

 

이 구절이 AC.115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된 ‘하윌라’라는 상응이 단순한 지명 해석이 아니라, 말씀 전체에서 일관되게 사용되는 ‘내적 상태의 표지’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윌라 땅’은 마음, 곧 내적 영역을 의미하며, 그 안에 ‘’이 있다는 것은 그 마음 안에 사랑의 선이 존재함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5장에서는 같은 ‘하윌라’가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 놓인 영역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애굽’은 기억 지식, ‘앗수르’는 이성 또는 추론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하윌라’는 그 둘 사이에 위치한 인간의 내적 자리, 곧 마음의 영역을 다시 한번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지리 설명이 아니라 ‘배치’입니다. 기억 지식과 이성이라는 두 외적 기능 사이에 ‘마음’이 놓여 있다는 것은, 인간의 진짜 중심이 바깥 정보나 논리 자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내적 자리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즉 사람은 단순히 아는 존재도 아니고, 생각하는 존재만도 아니며,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자리하는 마음’이 있다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다’는 표현은, 이 상태가 단순히 중립적인 위치가 아니라 ‘대면하고 선택하는 자리’임을 암시합니다. 마음은 기억 지식과 이성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사이에서 방향을 정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구절은 이렇게 사용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상징적으로 제시된 ‘하윌라’의 의미를, 창세기 25장의 역사적 서술 속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함으로써, ‘하윌라 = 마음’이라는 상응이 임의적 해석이 아니라 말씀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구조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AC.115, 심화 2, ‘출28:11’

AC.115.심화 2. ‘출28: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이 구절이 AC.115에서 참조되는 이유는, ‘보석에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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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천적 인간의 인식 : 의미만 봄'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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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가나안 땅과 시온산이 하늘을 의미한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지명이 언급될 때 어떤 땅이나 산을 떠올리기보다는,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윌라 땅(land of Havilah)도 그러합니다. 이 땅은 창세기 25 18절에서도 다시 언급되는데, 거기서는 이스마엘의 아들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술까지 거주하였다(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고 말합니다. 술은 애굽 앞에 있으며,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25:18)

 

천적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들에서 지성(intelligence) 외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으며, 또한 지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들을 지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두르다(compass), 곧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는 표현에서, 그들은 흘러들어감(flowing in)을 지각합니다. 또한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 보석들이 금 테로 둘러싸여 있는 것에서도, 그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가야 함을 지각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다른 많은 경우들에서도 동일합니다. 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28:11)

 

 

해설

 

이 글은 앞선 AC.110–114에서 전개된 상응 논의를 ‘인식의 방식 자체’로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태고의 사람들과 천적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명이나 사물 자체를 보지 않고, 그것이 가리키는 실재를 곧바로 보았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오늘날의 예를 듭니다. 가나안 땅이나 시온산이 언급될 때, 그것을 하늘의 상징으로 아는 사람은 실제 지리적 장소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상응을 ‘해석의 기술’이 아니라, ‘인식의 차원’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곧, 무엇을 떠올리느냐가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이 원리가 ‘하윌라 땅’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윌라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앞서 AC.110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 곧 지성이 자리한 영역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5장에서 다시 등장하는 하윌라 역시, 역사적 정보로 읽을 경우에는 지리 설명에 불과하지만, 천적 관념 안에서는 ‘지성과 그 흐름의 범위’를 말하는 표현이 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표현은 ‘두르다(compass)입니다.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는 말은, 지혜가 지성을 에워싸고 흐른다는 뜻입니다. 이는 외부에서 억지로 덧씌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감싸며 스며드는 유입’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지혜는 지성을 압도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온전히 적시며 둘러쌉니다.

 

이 인식은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 보석과 금 테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보석은 신앙의 진리를, 금은 사랑의 선을 의미합니다. 보석들, 곧 진리가 금테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사랑의 선이 진리 안으로 흘러 들어가 진리를 살리고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앞서 AC.112에서 말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진리는 가짜’라는 선언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모든 인식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천적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자마자 지각합니다. 이것이 태고 사람들의 언어 방식이었고, 또한 천적 인간의 사고방식입니다. 상응은 해석의 결과가 아니라, ‘지각의 상태’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이런 방식은 다른 많은 경우들에서도 동일하다고 말입니다. 이는 곧, 창세기 2장의 에덴 이야기 전체가 이런 눈으로 읽혀야 한다는 암묵적 초대이기도 합니다. 땅과 강, 금과 보석은, 더 이상 외적 사물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생명의 지도’가 됩니다.

 

AC.115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관념 안에서는 지명은 사라지고, 지각이 남으며, 말씀은 설명이 아니라 곧바로 흐르는 생명이 된다고 말입니다.  

 

 

심화

 

1. ‘25:18

 

 

AC.115, 심화 1, ‘창25:18’

AC.115.심화 1. ‘창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이 구절이 AC.115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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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8:11

 

 

AC.115, 심화 2, ‘출28:11’

AC.115.심화 2. ‘출28: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이 구절이 AC.115에서 참조되는 이유는, ‘보석에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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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6,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사랑에서 나온 것을 알아보는 능력'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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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4, 창2:11-12, ‘금은 생명과 선, 보석은 빛과 진리 : 천적 인간의 내적 질서’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 말씀에서 신앙의 진리는 귀한 ‘보석들’(stones)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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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4.심화

 

3. ‘유대인의 상태

 

판결 흉패나 에봇에 있는 보석들의 의미를 이렇게 좀 명료하게 말씀하여 주셨더라면 유대인들이 저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보셔야 정확합니다. ‘왜 이렇게 명료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는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사람의 상태에 맞게 주어집니다. 당시 이스라엘, 곧 유대교회는 이미 내적인 것을 직접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태고교회처럼 퍼셉션으로 즉각 알아차리는 상태도 아니었고, 천적 인간처럼 사랑에서 진리를 보는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직접 설명’이 아니라 표상과 상응’의 형태로 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판결 흉패나 에봇의 보석들이 그렇게 복잡한 형식으로 주어진 이유는, 그들이 그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형식 자체를 통해 하늘과의 연결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은 뜻을 아는 교회’가 아니라 뜻을 담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보석의 의미를 몰랐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그 의식과 형식을 지킬 때, 하늘에서는 그 상응이 그대로 작동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유대교회를 표상 교회’라고 부릅니다. 이해해서가 아니라, ‘표상함으로써 연결되는 교회였다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만일 그들에게 지금처럼 내적 의미가 명료하게 드러났다면,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중심은 이미 외적인 것, 곧 권력, 민족적 우월감, 의식의 형식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적 의미는 언제나 사랑과 겸손’의 상태에서만 열리는데, 그 상태가 아닐 때에는 오히려 그것을 왜곡하거나 거부하게 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가려진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표상과 상응은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열리게 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열리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닫혀 있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것은 제한이 아니라 보호에 가깝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저렇게까지 된 이유’는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가’의 문제입니다. 같은 말씀도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문자에 갇힌 규례가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문제는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상태’입니다.

 

 

 

AC.114, 창2:11-12, ‘금은 생명과 선, 보석은 빛과 진리 : 천적 인간의 내적 질서’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 말씀에서 신앙의 진리는 귀한 ‘보석들’(stones)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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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4, 심화 2, ‘겔28:12-13, 15’

AC.114.심화 2. ‘겔28:12-13, 15’ 12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네가 옛적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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