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5:9)

 

AC.501

 

시간의 경과 속에서 서로 이어서 나타난 교회들, 곧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태어났다고 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비유하자면, 열매나 그 씨앗의 경우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 한가운데, 곧 가장 안쪽에는 마치 열매 속의 열매, 씨앗 속의 씨앗과 같은 것이 있어, 거기서부터 연속적인 부분들이 마치 질서 있게 살아 나옵니다. 이 가장 안쪽으로부터 둘레를 향해 멀어질수록, 그 안에는 열매나 씨앗의 본질이 점점 더 적게 남아 있다가, 마침내는 열매나 씨앗이 끝나는 껍질이나 외피만 남게 됩니다. 또한 뇌의 경우와도 같은데, 그 가장 안쪽 부분에는 피질 물질이라 불리는 미묘한 유기적 형태들이 있으며, 혼(soul)의 작용은 거기서부터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나옵니다. 그로부터 질서에 따라 더 순수한 막(coverings)이 차례로 뒤따르고, 그 다음에는 더 치밀한 것들이, 그리고 마침내는 수막이라 불리는 일반적인 막이 나타나며, 이것들은 다시 더 일반적인 막으로 끝나고, 마지막에는 가장 일반적인 것인 두개골로 끝납니다. As regards the churches that in course of time succeeded one another, and of which it is said that one was born from another, the case with them was the same as it is with fruits, or with their seeds. In the midst of these, that is, in their inmosts, there are as it were fruits of the fruits, or seeds of the seeds, from which live as it were in regular order the successive parts. For the more remote these are from the inmost toward the circumference, the less of the essence of the fruit or of the seed is there in them, until finally they are but the cuticles or coverings in which the fruits or seeds terminate. Or as in the case of the brain, in the inmost parts of which are subtle organic forms called the cortical substances, from which and by which the operations of the soul proceed; and from which in regular order the purer coverings follow in succession, then the denser ones, and finally the general coverings called meninges, which are terminated in coverings still more general, and at last in the most general of all, which is the skull.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 이후에 이어진 여러 교회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매우 강력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열매와 씨앗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뇌 구조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는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영적 원리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중심에서부터 시작되어 바깥으로 질서 있게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먼저 열매와 씨앗의 비유에서, 스베덴보리는 교회들이 서로에게서 태어난다는 말이 단절이나 복제의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열매 안에는 다시 씨앗이 있고, 그 씨앗 안에는 또 다른 생명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 ‘씨앗 속의 씨앗’이 바로 가장 안쪽, 곧 본질이 자리한 자리입니다.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가장 안쪽에는 주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핵심이 있으며, 그것이 다음 교회들로 전달됩니다.

 

그러나 이 전달은 균등하지 않습니다. 가장 안쪽에서 멀어질수록, 곧 시간이 흐르고 단계가 내려갈수록, 본질은 점점 더 희석됩니다. 이는 타락이나 실패의 언어라기보다, ‘확장과 외화, 즉 겉을 향한, 밖을 향한 결과’입니다. 생명이 바깥으로 퍼질수록, 그것은 더 많은 형식과 외피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본질 자체보다 그것을 감싸는 껍질이 더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 비유는 왜 후대의 교회들이 점점 덜 천적으로 보이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생명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이 더 바깥쪽에서 작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의 중심적 퍼셉션은 씨앗의 가장 깊은 핵과 같았고, 이후의 교회들은 그 핵에서 나온 층층의 구조들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바깥층에 있다고 해서 생명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생명의 작동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두 번째 비유인 뇌의 구조는 이 점을 더욱 정밀하게 보여 줍니다. 뇌의 가장 안쪽에 있는 피질 물질은 혼의 작용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미묘하고 섬세하여, 외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안쪽에서부터 모든 작용이 시작되어, 점차 더 외적인 피복들, 그러니까 막으로 전달됩니다. 이 막들은 안쪽의 작용을 보호하고 질서 있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교회 역시 이와 같습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안쪽 퍼셉션은 혼의 작용에 해당하고, 그로부터 이어진 교회들은 점차 더 많은 외적 구조와 형식을 갖추게 됩니다. 수막과 두개골이 뇌를 보호하듯이, 후대 교회의 교리와 제도, 예식들은 안쪽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문제는 외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피만 남고 안쪽의 생명이 끊어질 때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스베덴보리는 교회사의 쇠퇴를 단순한 퇴락으로 보지 않게 합니다. 그는 쇠퇴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이동’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중심에 가까울수록 퍼셉션은 즉각적이고 충만하지만, 바깥으로 갈수록 퍼셉션은 더 매개, 즉 무언가의 설명이 필요하고, 더 형식화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단계는 하나의 생명 흐름 안에 있습니다.

 

목회적으로 이 글은 매우 중요한 균형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종종 ‘처음 교회가 가장 좋았다’거나 ‘후대 교회는 본질을 잃었다’는 식으로 단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렇게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각 교회가 ‘그 위치에 맞는 역할과 구조를 지녔다’고 봅니다. 열매의 껍질이 불필요하지 않듯이, 외적 형식의 교회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 비유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껍질만 남고 씨앗이 사라질 수 있고, 두개골은 남아 있지만 혼의 작용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진정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교회가 얼마나 중심에 가깝냐가 아니라, ‘그 중심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 사람 안에도 씨앗의 핵심에 해당하는 퍼셉션이 있고, 그 주위로 생각과 말과 행위라는 층들이 형성됩니다. 이 층들이 살아 있으려면, 반드시 안쪽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AC.501은 교회와 개인 모두에게, 생명의 방향이 언제나 안쪽에서 바깥으로 흘러야 함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결국 이 글은 태고교회 이후의 교회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게 합니다. 각 교회는 이전 교회의 열매이며, 동시에 다음 교회를 위한 씨앗입니다. 이 연속성의 중심에는 퍼셉션이 있으며, 그 퍼셉션이 유지되는 한, 교회의 생명은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AC.502, 창5:9, ‘사람’(아담), ‘셋’, ‘에노스’, 첫 세 교회와 이후 교회들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2 ‘사람’(man), ‘셋’(Seth), ‘에노스’(Enosh)라 하는 이 세 교회는 태고교회를 이루지만, 퍼셉션의 완전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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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00, 창5: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C.500-503)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창5:9) AC.500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에노스’(Enosh)는 ‘셋’(Seth)이라는 교회보다 더 덜 천적(still less celestial)인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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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5:9)

 

AC.500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에노스’(Enosh)는 ‘셋’(Seth)이라는 교회보다 더 덜 천적(still less celestial)인 세 번째 교회를 의미하지만, 그래도 역시 여전히 태고교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게난’(Kenan)은 네 번째 교회, 그러니까 앞선 교회들을 계속해서 계승하는 교회입니다. By “Enos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a third church, still less celestial than the church “Seth,”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by “Kenan” is signified a fourth church, which succeeded the former ones.

 

 

해설

 

이 글은 태고교회 내부의 ‘연속적 분화’를 한눈에 보여 주는 요약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에노스(Enosh)와 ‘게난(Kenan)을 개인의 이름으로 취급하지 않고, ‘각각 고유한 교회 상태’로 명확히 규정합니다. 특히 ‘여전히 태고교회들 가운데 하나’라는 반복은, 변화가 곧 단절을 의미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태고교회의 생명은 한순간에 끊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상태 변화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먼저 에노스는 셋의 교회보다 ‘더 덜 천적(still less celestial)인 세 번째 교회로 설명됩니다. 이는 사랑의 선이 중심이던 초기 상태에서, 신앙의 이해가 점차 더 전면에 나서는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퍼셉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퍼셉션은 존재하지만, 그 즉각성과 충만함은 약화되었고, 더 많은 반성과 매개를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단계는 태고교회의 내부에서 일어난 ‘질적 변화의 축적’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게난(Kenan)은 네 번째 교회로 제시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긴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앞선 교회들을 계승했다’고만 말합니다. 이 간결함은 의도적입니다. 이미 확립된 원리, 곧 교회는 이전 교회의 상태로부터 ‘연속적으로 파생된다’는 점을 다시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난의 교회는 에노스의 교회가 지닌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또 하나의 다른 상태를 형성합니다.

 

이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덜 천적’이라는 표현이 반복되지만, 그것이 가치 판단이나 도덕적 낙인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어느 단계도 ‘거짓 교회’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각 단계를 ‘주님의 섭리 안에서 허용되고 인도된 상태’로 봅니다. 태고교회의 변화는 실패의 연속이 아니라, 인간 상태에 맞추어 조정된 인도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단계적 분화는 유전적 악의 누적과도 연결됩니다. 세대를 거치며 유전적 악이 더해질수록, 초기의 즉각적 퍼셉션, 즉 맑고 또렷한 퍼셉션은 유지되기 어려워집니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덜 천적인 형태를 띠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변화 속에서도 주님은 각 단계에 맞는 교회 상태를 일으키십니다. 에노스의 교회가 그러했고, 게난의 교회도 그러했습니다.

 

설교적으로 보면, 이 문단은 교회의 역사를 ‘정체성의 상실’이 아니라 ‘형태, 곧 퍼셉션 형태의 변화’로 읽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처음이 가장 순수했고, 이후는 계속 나빠졌다’는 식으로 단순화하지만, 스베덴보리는 훨씬 섬세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각 교회는 그 시대와 상태에 맞는 방식으로 주님과 연결되어 있었고, 퍼셉션 역시 그에 상응하는 형태로 유지되었습니다.

 

개인의 신앙 여정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 사람의 신앙 안에서도 ‘셋의 상태’, ‘에노스의 상태’, ‘게난의 상태’와 같은 단계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사랑이 중심이 되고, 어떤 시기에는 이해와 분별이 더 전면에 나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단계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 단계 안에서도 여전히 퍼셉션이 살아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글은 교회 간의 비교를 경계하게 합니다. 더 천적이냐, 덜 천적이냐 하는 것은 상대적 표현일 뿐, 우열의 판단 기준이 아닙니다. 각 교회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고유한 역할과 위치를 지닙니다. 에노스의 교회와 게난의 교회는 태고교회의 부모 교회와 동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섭리 밖에 있지도 않습니다. 점점 종말, 곧 노아의 홍수를 향해 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결국 AC.500은 태고교회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상태들의 연속체였음’을 다시 한번 확증합니다. 이 연속체의 중심에는 퍼셉션이 있으며, 그 퍼셉션은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가능한 한 오래 유지되도록 인도되었습니다. 비록 갈수록 희미해졌지만 말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창세기 5장의 족보는 더 이상 낯선 이름의 나열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모했는지를 보여 주는 지도’로 읽히게 됩니다.

 

 

 

AC.501, 창5:9, '이어지는 교회들 간의 관계'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1 시간의 경과 속에서 서로 이어서 나타난 교회들, 곧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태어났다고 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비유하자면, 열매나 그 씨앗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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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99, 창5:7-8,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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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5:7, 8)

 

AC.499

 

‘날’(days)과 ‘해’(years)의 숫자들은 여기서도 앞에서와 같이 시간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녀들’(sons and daughters) 또한 앞에서와 같은 의미를 가지며, 그가 ‘죽었더라’(died)는 진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The “days” and numbers of “years” signify here as before the times and states. “Sons and daughters” too have the same signification as before; and so likewise as the statement that he “died.”

 

 

해설

 

이 글은 AC.492에서 AC.498까지 이어진 해석을 하나로 묶어 주는 정리 문장과 같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기보다, 이미 확립된 해석 원리가 여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창세기 5장의 족보가 부분적으로만 상징적이거나, 어떤 구절은 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식의 혼합 해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먼저 ‘(days)과 ‘(years)의 숫자들이 다시 언급됩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연대적 시간 해석으로 되돌아가려는 유혹을 차단합니다. 앞에서 충분히 밝혀졌듯이, 날과 해는 교회의 지속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거쳐 간 ‘상태의 흐름과 질서’를 말합니다. AC.499는 이 원리가 예외 없이 계속 적용됨을 확인합니다.

 

자녀들(sons and daughters)에 대한 언급도 동일합니다. 여기서도 그것들은 생물학적 자녀가 아니라, 그 교회 상태 안에서 퍼셉션된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진리와 선이 ‘항상 교회의 상태에 상응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어떠한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그 교회가 낳는 진리와 선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자녀들을 낳았으며’라는 말은, 그 교회가 여전히 영적으로 생산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그가 ‘죽었더라(died)는 진술 역시 앞에서 설명된 의미와 동일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생물학적 죽음을 뜻하지 않고, ‘그 교회 상태를 특징짓던 퍼셉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AC.499는 이 점을 반복함으로써, 창세기 5장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퍼셉션의 유지와 소멸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반복은 불필요한 중언부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독자가 한 번이라도 문자적 이해로 되돌아가 이 족보를 읽지 않도록, 같은 원리를 여러 번 확인시킵니다. 특히 ‘죽었다’는 표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육체의 죽음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앞선 해석을 그대로 다시 적용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 문단은 교회의 생명과 죽음을 판단하는 기준을 명확히 고정합니다. 교회의 생명은 제도의 존속이나 인원의 지속이 아니라, ‘퍼셉션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퍼셉션이 살아 있을 때, 교회는 날과 해의 상태를 지나며 자녀들, 곧 진리와 선을 낳습니다. 그러나 퍼셉션이 사라질 때, 성경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이 원리는 태고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AC.499를 통해,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교회들에도 동일한 해석 원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즉, 교회사는 외형의 흥망이 아니라, ‘퍼셉션 변화사’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교회든, 퍼셉션이 살아 있으면 그 교회는 살아 있고, 퍼셉션이 소멸되면 그 교회는 죽은 것입니다.

 

설교적으로 이 문단은 매우 강한 메시지를 지닙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의 죽음을 출석 감소나 사회적 영향력 상실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퍼셉션이 사라지고, 선과 진리가 더 이상 주님으로부터 살아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을 때, 그때가 바로 교회의 죽음입니다. 반대로 외적으로는 미약해 보여도, 퍼셉션이 살아 있다면 그 교회는 여전히 생명 가운데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신앙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 사람 안에도 날과 해, 자녀들, 그리고 죽음에 해당하는 상태들이 있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진리와 선이 풍성히 퍼셉션되지만, 어떤 시기에는 그것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AC.499는 이러한 변화를 도덕적 실패로만 해석하지 않고, ‘상태의 변화’로 읽도록 인도합니다.

 

결국 AC.499는 창세기 5장의 족보를 읽는 독자에게 하나의 안정된 해석 틀을 제공합니다. 날과 해, 자녀들, 그리고 죽음은 모두 같은 언어 체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 중심에는 퍼셉션이 있습니다. 이 틀을 붙들 때, 우리는 족보의 반복 속에서 지루함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 리듬을 읽게 됩니다.

 

 

 

AC.500, 창5: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C.500-503)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창5:9) AC.500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에노스’(Enosh)는 ‘셋’(Seth)이라는 교회보다 더 덜 천적(still less celestial)인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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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98, 창5:6, ‘에노스를 낳았고’(begat Enosh)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 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말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다른 교회가 이어졌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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