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35.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25) Amen, amen, I say to you, that an hour comes, and now is, when the dead sha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ey who hear shall live (John 5:2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사람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 곧 주님뿐이심을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직접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AC.290의 중심 메시지인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들’은 무엇보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육체의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와 거짓 가운데 있어 주님의 생명과 분리된 사람들을 가리키십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말씀에서 죽음’은 먼저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고 반복하여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영적 생명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라는 표현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삶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곧 신적 진리이며,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 안으로 주님의 생명이 흘러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는 것은 사람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그 말씀 안에 있는 신적 생명입니다.

 

이어지는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말씀은 AC.290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주님의 음성이 있고, 그 음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살아납니다. 생명의 시작은 언제나 주님에게 있으며,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계속 강조하는 인플럭스(influx)의 원리입니다.

 

이 구절은 바로 앞 절들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5:21에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하시고, 이어서 26절에서는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 하십니다. 따라서 25절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에게 생명을 전달하시는 분이심을 설명하는 문맥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AC.290의 논지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마4:16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고 하였고, 여기서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 말씀합니다. 빛은 신적 진리를, 음성은 그 진리의 전달을 의미하며, 두 본문 모두 주님께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동일한 역사를 서로 다른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호6:2와 시85:6에서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며’,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고 말한 예언과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께서 살리신다 선포되었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음성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신다 선언하십니다. 이는 여호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동일한 생명의 주님이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요5:25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본래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과, 오직 주님의 음성과 신적 진리를 받아들일 때만 참된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가장 권위 있게 선언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직접 확증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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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34.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4:16) the people who sat in darkness saw great light; and to them who sat in the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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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34.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4:16) the people who sat in darkness saw great light; and to them who sat in the country and shadow of death, light has risen (Matt. 4:16).

 

 

이 말씀은 사9:2의 예언을 마태가 주님의 오심과 연결하여 인용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가장 아름답게 증언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흑암’은 진리의 결핍이나 거짓 가운데 있는 상태를, ‘사망’은 무엇보다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단순히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AC.290에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의 출발점과도 연결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큰 빛을 보았다’, ‘빛이 비치었다’고 말씀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에서 ‘’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를 의미하며, 그 신적 진리는 언제나 신적 선과 함께 사람에게 생명을 전달합니다. 다시 말해, 이 빛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라 사람을 영적으로 살리는 주님의 생명 자체의 역사입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는 사람들이 먼저 빛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빛이 그들에게 비추었습니다. 이는 AC.290의 중심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생명은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수용자이며, 주님께서 먼저 빛과 생명을 보내실 때, 비로소 영적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호6:2와 시85:6을 더욱 완성하는 말씀입니다. 호세아는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며’라고 말하고, 시편은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고 기도합니다. 마태복음은 그 약속과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곧 주님 자신이 세상에 오셔서 영적 죽음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앞에서 인용된 사26:14와 겔32의 여러 구절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사야와 에스겔에서는 주님의 생명을 거부한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묘사되었다면, 마태복음에서는 바로 그 죽음의 그늘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빛을 비추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생명을 잃은 상태를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그 생명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 이 구절은 주님 자신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드러냅니다. 주님은 단순히 생명에 대해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분으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계신 곳에는 빛이 있고, 그 빛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이 있는 곳에는 거듭남과 천국이 있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AC.290 전체에서 설명하려는 핵심 진리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마4:16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오직 주님뿐이심을 직접적으로 증언합니다. 사람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 가운데 앉아 있을 뿐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낼 수도, 생명을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신적 진리와 신적 선이 사람에게 비칠 때, 비로소 참된 생명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가장 희망차고 복음적인 언어로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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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28-31

 

28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29거기에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30거기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간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31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28-31) And thou shalt be broken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and shalt lie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There is Edom, her kings, and all her chiefs, which with their might are put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they shall lie with the uncircumcised, and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There be the princes of the north, all of them, and all the Zidonians, who have gone down with the slain; by their dismay they are ashamed of their might; and they lie uncircumcised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and bear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Pharaoh shall see them, and shall comfort himself over all his crowd; Pharaoh and all his host are slain by the sword, says the Lord Jehovih (Ezek. 32:28–31).

 

 

32:28-31은 애굽 왕 바로와 함께 에돔, 북방의 방백들, 시돈 사람들이 모두 구덩이로 내려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심판 예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인 국가들의 멸망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핵심은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것이며, 이 본문은 그 반대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칼에 죽임을 당한 자’,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는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죽임을 당함’은 영적 생명의 상실을, ‘할례받지 못함’은 사랑과 신앙으로 정결하게 되지 않은 상태를, ‘구덩이’는 주님과 분리된 영적 죽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육체적인 죽음보다 훨씬 깊은 영적 죽음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할례를 받지 못한 자’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할례는 마음의 정결과 악의 제거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할례받지 못한 자는 단순히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버리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살아 있을지라도 주님의 생명이 그 안에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AC.290의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에돔과 북방의 방백들, 시돈 사람들도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에돔은 사랑이 타락한 상태를, 북방은 진리의 빛이 없는 상태를, 시돈은 진리에 대한 지식을 잘못 사용하는 상태를 대표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악과 거짓의 모습들이 결국 모두 동일한 결말,  구덩이’와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놓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떠난 모든 상태의 종착점이 같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바로가 그들을 보고 위안을 얻으리라’는 말씀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악한 영들은 비슷한 악 가운데 있는 자들과 함께 있을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평안이 아니라 동일한 악이 서로를 확인하며 얻는 거짓된 만족입니다. 참된 생명과 평안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므로, 이러한 위안은 생명 없는 상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본문 전체는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겔32:23-26의 연속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앗수르, 엘람, 메섹, 두발 등이 언급되었고, 여기서는 에돔과 북방의 방백들, 시돈, 그리고 바로가 추가됩니다. 이는 특정 민족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는 모든 종류의 악과 거짓을 포괄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중심은 역사적 민족이 아니라 영적 상태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호6:2와 시85:6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며’,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는 말씀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호세아와 시편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 살아나는 사람들을 보여 준다면, 에스겔은 그 생명을 거부하여 영적 죽음 가운데 머무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본문과 부정적인 본문이 함께 사용됨으로써,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뿐이라는 진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스베덴보리가 겔32:28-31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떠난 사람은 권세와 지식, 명예를 가졌더라도 결국 영적으로는 할례받지 못한 자’,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로 묘사됩니다. 반대로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며,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부정적인 예를 통하여 강력하게 증언하며,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더욱 깊고 엄숙하게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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