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57.심화

 

3. ‘9: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9:2) Remember that I am your bone and your flesh. (Judges 9:2) (AC.157)

 

 

이 구절이 AC.157에 인용된 이유도, 말씀에서 뼈와 살’이라는 표현이 단순 혈연관계를 넘어, 같은 본성과 같은 생명 질서 안에 속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9:2에서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의 골육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과 그들 사이의 친밀성과 동일성을 강조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혈연 호소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을 영적 상응의 관점에서 읽습니다.

 

AC.157의 문맥에서 ’는 보다 외적이고 지탱하는 진리 구조를, ‘’은 살아 있는 선과 affection을 뜻합니다. 그래서 뼈와 살’은 단순 육체 조합이 아니라, 진리와 선이 결합된 살아 있는 인간 전체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너는 내 뼈요 살이다’라는 말은, ‘너와 나는 같은 생명 안에 속한다’, ‘같은 사랑과 같은 질서 안에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9장의 경우는 조금 더 의미심장합니다. 아비멜렉은 이 표현을 이용해 사람들의 affection과 결속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합니다. 다시 말해, ‘같은 골육’이라는 표현은 원래는 생명의 친밀한 결합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자연적, 정치적 목적에 사용됩니다. 스베덴보리식으로 보면 이것은 외적 결합이 내적 결합을 흉내 내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말씀에서 뼈와 살’이라는 표현 자체는 본래 선과 진리, 사랑과 이해의 결합을 뜻하는 깊은 상징인데, 인간은 그것을 자연적 유대나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 혈연 언급이 아니라, 인간이 같은 생명’의 언어를 어떻게 자기편 만들기의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창2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과 연결됩니다. 2에서는 그것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본질적 결합을 뜻했다면, 여기서는 그 표현이 겉 사람 수준으로 내려와 정치적 설득과 자연적 연대의 언어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경우에도 여전히 그 표현 속의 본래 영적 의미를 읽어 냅니다. 곧, 인간은 본능적으로 같은 생명 안에 속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며, 진짜 천국적 결합은 혈연이 아니라 같은 선과 진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AC.157, 심화 4, ‘삼하5:1’

AC.157.심화 4. ‘삼하5: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삼하5:1) Behold, we are thy bone and thy flesh. (2 Sam. 5:1) (AC.157) 이 구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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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7, 심화 2,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결합’

AC.157.심화 2.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결합’ 야곱은 이후 교회의 외적 차원과 연결되는 인물인데,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에도 결합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AC.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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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결합

 

야곱은 이후 교회의 외적 차원과 연결되는 인물인데,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에도 결합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AC.157 심화 1)

 

 

스베덴보리에게서 창세기의 인물들은 단순 역사 인물이 아니라, 인간 안의 여러 영적 상태들과 교회의 여러 차원을 표상합니다. 그 가운데 야곱은 특별히 ‘겉 사람’ 혹은 교회의 외적 차원과 깊이 연결되는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보다 천적인 상태, 이삭은 내적, 합리적 차원, 야곱은 실제 삶과 행위, 자연적 인간의 차원과 많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야곱은 ‘삶의 현장 속 인간’을 대표합니다. 아직 완전히 속 사람과 하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님의 질서 안으로 이끌릴 수 있는 겉 사람입니다.

 

그래서 라반이 야곱에게 ‘너는 참으로 내 뼈요 살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 친척 확인 이상의 뜻을 가집니다. AC.157의 흐름 속에서 ‘’는 외적 진리 구조를, ‘’은 그 안에 살아 있는 선과 affection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단순 혈연이 아니라, 서로 같은 생명 질서 안에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곱이 완전히 천적 인간도 아니고, 아직 많은 자연성과 자기 중심성을 가진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겉 사람 자체를 악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겉 사람은 속 사람과 결합될 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문제는 겉 사람이 자기 자신만으로 독립하려 할 때입니다.

 

그래서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야곱 같은 겉 사람 안에도 속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겉 사람은 ‘’처럼 비교적 단단하고 외적인 구조를 가집니다. 반면 속 사람은 ‘’처럼 생명과 affection을 공급합니다. 둘은 서로 다른 차원이지만, 결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남(regeneration)이란 바로 이 결합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상태는 아직 겉 사람 수준에 머무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가 사랑과 결합해 실제 삶이 되기 시작하면, 속 사람의 생명이 겉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때 겉 사람은 더 이상 단순 껍데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 구조가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야곱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 인간은 처음부터 천적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자연적이고 계산적이며, 자기 보호적인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런 겉 사람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점차 속 사람과 결합시키십니다.

 

따라서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우리는 친척이다’라는 말이 아니라, 겉 사람도 속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자연적 삶도 주님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이것이 AC.157에서 이 표현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AC.157, 심화 3, ‘삿9:2’

AC.157.심화 3. ‘삿9: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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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6, 심화 1, ‘창29:14’

AC.156.심화 1. ‘창29: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29:14)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Gen. 29:14) (AC.157) 이 구절이 AC.157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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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29:14)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Gen. 29:14) (AC.157)

 

 

이 구절이 AC.157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내 혈육(my bone and my flesh)이라는 표현이 단순 혈연관계를 넘어, 같은 본성과 같은 생명에 속한 결합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AC.157의 흐름에서 스베덴보리는 ‘’와 ‘’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데, 특별히 ‘’는 보다 외적이고 지탱하는 진리 구조를, ‘’은 그 안에 살아 있는 선과 affection을 뜻합니다. 따라서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는 말은 단순 친척 확인이 아니라, ‘너와 나는 같은 생명 질서 안에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29:14에서 라반은 야곱을 단순 외부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와 같은 혈육, 곧 자기 생명권 안에 속한 자로 인정합니다. 스베덴보리식 속뜻에서는 이것이 단순 가족 관계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야곱은 이후 교회의 외적 차원과 연결되는 인물인데,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 사이, 곧 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에도 결합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특히 AC.149 이후 스베덴보리는 계속 ‘’와 ‘’을 영적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에서는 죽은 상태의 인간이 주님의 breath로 살아나는 모습이 나오고, 주님의 부활 장면에서는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하심으로써, 신적 인성의 실제성과 충만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뼈와 살’은 단순 육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 전체 구조를 뜻합니다.

 

그래서 AC.157에서 이 구절이 인용되는 이유는, 참된 결합은 단순 외적 접촉이 아니라 같은 선과 진리, 같은 생명 질서 안에 속하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만 있으면 차갑고 딱딱한 구조에 불과하지만, ‘’이 함께할 때 거기에 살아 있는 affection과 생명이 들어옵니다. 즉, 진리와 선의 결합이 완전한 인간을 이룹니다.

 

또 이 표현은 앞선 창2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와도 연결됩니다. 거기서도 핵심은 단순 육체적 동일성이 아니라, 서로 같은 생명과 본질 안에서 결합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라반의 말 역시, 말씀 전체의 상응 체계 안에서는 ‘같은 생명 안에 속함’, ‘같은 affection과 진리 안에서 연결됨’을 뜻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AC.157, 심화 2,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결합’

AC.157.심화 2.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결합’ 야곱은 이후 교회의 외적 차원과 연결되는 인물인데, ‘뼈와 살’이라는 표현은 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에도 결합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AC.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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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7, 창2:23,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 고대 세계에 통용되던, own 관련 언어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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