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사66:14)Then shall ye see,and your heart shall rejoice,and your bones shall sprout as the blade. (Isa. 66:14)
이 구절이AC.149에 인용된 이유는, ‘뼈’(bones)가 단순 육체의 뼈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인간 안의 가장 바깥에 있는 지지 구조,곧 겉 사람과 그 안의 진리들을 뜻하며,그것마저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안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AC.149는 에덴의 강들과 물과 동산을 통해,주님으로부터 생명이 인간 전체에 어떻게 흘러 들어오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사66:14는 그 생명이 가장 바깥층까지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뼈’는 매우 중요한 상응입니다.몸에서 뼈는 가장 단단하고 가장 바깥의 구조이며,몸 전체를 지탱하는 틀입니다.마찬가지로 영적 의미에서 뼈는 인간 안의 가장 외적인 것들,특히 삶의 구조를 이루는 외적 진리들과 기억 지식들,실천의 틀 등을 뜻합니다.그래서 말씀에서 뼈가 살아난다,강건해진다,마른 뼈가 회복된다는 표현들은 단순 건강 비유가 아니라,인간의 외적 삶 전체가 다시 생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라는 표현은 특히 아름답습니다.뼈처럼 단단하고 메마른 것조차,마치 새싹이 돋듯 살아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즉,주님의 생명은 인간 안의 가장 깊은 사랑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가장 외적이고 굳어진 층까지도 새롭게 합니다.
또 이 구절은AC.149의 핵심 주제인‘생명의 유입’과도 연결됩니다.앞에서‘물 댄 동산’이 인간 안의 내적 생명 상태를 보여 주었다면,여기서는 그 생명이 겉 사람의 구조까지 흘러 내려가 실제 삶을 살아 있게 만드는 모습이 강조됩니다.다시 말해,진리와 선의 유입은 단순 내면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삶의 가장 바깥 구조까지 변화시킵니다.
그리고‘마음이 기뻐한다’와‘뼈가 살아난다’가 함께 나오는 것도 중요합니다.마음(heart)은 사랑과 의지의 중심을,뼈는 외적 구조를 뜻합니다.곧,안쪽의 사랑과 기쁨이 살아날 때,바깥의 삶의 구조도 함께 살아난다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참된regeneration,곧 거듭남의 구조입니다.
그래서AC.1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인간 안의 가장 깊은 층뿐 아니라 가장 외적인 층,곧‘뼈’로 상징되는 삶의 구조와 외적 진리들까지도 살아 있게 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즉,거듭남은 단순 내적 감정 변화가 아니라,인간 전체가 생명의 흐름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가너를 항상 인도하여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Jehovah shall satisfy thy soul in droughts,and make thy bones alert,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Isa. 58:11)
이 구절이AC.149에 인용된 이유는, ‘물 댄 동산’(a watered garden)이 단순 풍요로운 자연 풍경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받는 인간의 영적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AC.149의 흐름은 계속해서 에덴동산과 물과 강과 생명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사58:11은 바로 그 구조를 예언서의 언어로 다시 확인해 주는 대표 구절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동산’(garden)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진리와 지성이 살아 있는 인간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에덴동산은 주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성이 질서 있게 흘러 들어오는 천적 인간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동산이 살아 있으려면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서 물(water)은 대체로 진리, 특히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 댄 동산’이라는 표현은, 인간 안의 진리와 지성과 애정들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유입으로 계속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반대로 물이 끊어진 동산은, 겉으로는 구조가 남아 있어도 실제 생명이 마른 상태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한다’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상태가 아니라, 외적으로는 메마르고 부족해 보여도 주님으로부터 계속 생명이 공급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생명의 근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뼈(bones)는 가장 바깥의 지지 구조, 곧 인간 안의 외적 진리들과 삶의 틀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 내적 감동만이 아니라, 삶 전체의 구조까지도 주님의 진리 안에서 강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AC.1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되는 이유는, 에덴동산의 물과 강들이 상징하는 영적 생명의 질서가 단지 창세기의 시적 묘사가 아니라, 예언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보편적 영적 원리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계속 유입되는 진리와 선 안에서 살아나는 존재이며, 그 상태가 바로 ‘물 댄 동산’으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AC전체의 흐름과도 깊이 연결됩니다.proprium안에 갇힌 인간은 결국 스스로 메마르게 되지만, 주님으로부터 받는 인간은 바깥 환경이 어떠하든 안에서 계속 물이 흐릅니다. 그래서 ‘물 댄 동산’은 단순 풍요의 비유가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regenerated state, 곧 거듭난 인간 상태의 상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창2:21)
AC.149
말씀에서도 사람의 own은 ‘뼈’(bones)를 의미하며, 이는 주님에 의해 살아나게 된 own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서에 이르기를, In the Word also, man’s own is signified by “bones,” and indeed an own vivified by the Lord, as in Isaiah: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11)Jehovah shall satisfy thy soul in droughts, and make thy bones alert,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Isa. 58:11)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사66:14)Then shall ye see, and your heart shall rejoice, and your bones shall sprout as the blade. (Isa. 66:14)
시편에서도In David: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시35:10) All my bones shall say, Jehovah, who is like unto thee? (Ps. 35:10)
이것은 에스겔서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거기서는 뼈들이 살을 입고 영을 받는다고 합니다. This is still more evident from Ezekiel, where he speaks of bones receiving flesh, and having spirit put into them: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1, 4-6)The hand of Jehovah set me in the midst of the valley, and it was full of bones; and he said to me, prophesy upon these bones, and say unto them, O ye dry bones, hear the word of Jehovah; thus saith the Lord Jehovih to these bones, Behold, I bring breath [spiritus] into you, and ye shall live, and I will lay sinews upon you, and will make flesh come upon you, and cover you with skin, and I will put breath in you, and ye shall live, and ye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Ezek. 37:1, 4–6)
[2]사람의 own은 하늘에서 볼 때 전적으로 뼈와 같은 어떤 것으로 보이며, 생명 없고 매우 흉측하여 본질상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에 의해 살아나게 될 때에는 살과 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own은 그 자체로는 순전히 죽은 것이지만, 사람에게는 어떤 것, 곧 모든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님의 생명에서 온 것이며, 만일 이것이 제거된다면 그는 돌처럼 쓰러져 죽게 됩니다. 사람은 생명의 기관에 불과하며, 그 기관의 성질에 따라 생명의 애정이 그러한 것입니다. 참으로 자신의 Own을 가지신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Own으로 사람을 구속하셨고, 이 Own으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Own은 곧 생명이며, 그 Own에서 사람의 own, 곧 본질상 죽은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주님의 Own은 또한 누가복음 다음 주님 말씀으로도 전해집니다. The own of man, when viewed from heaven, appears like a something that is wholly bony, inanimate, and very ugly, consequently as being in itself dead, but when vivified by the Lord it looks like flesh. For man’s own is a mere dead thing, although to him it appears as something, indeed as everything. Whatever lives in him is from the Lord’s life, and if this were withdrawn he would fall down as dead as a stone; for man is only an organ of life, and such as is the organ, such is the life’s affection.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The Lord’s own is life, and from his own, man’s own, which in itself is dead, is made alive. The Lord’s own is also signified by the Lord’s words in Luke: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 A spirit hath not flesh and bones as ye see me have. (Luke 24:39)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라 하신 것도 같은 뜻이었습니다(출12:46). It was also meant by not a bone of the paschal lamb being broken (Exod.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출12:46)
해설
AC.149는 ‘갈빗대’와 ‘뼈’가 왜 인간의 own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own이 어떻게 ‘주님에 의해 살아나는지’를 결정적으로 밝혀 주는 단락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뼈 = own’이라는 등식 자체가 아니라, ‘살아 있지 않은 것이 어떻게 생명을 입는가’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성경 전반에서 ‘뼈’가 긍정적으로 쓰이는 예들을 제시합니다. 이는 own이 무조건 제거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 살아날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는 표현은, own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때 인간 전체가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은 이 교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뼈는 본래 완전히 죽은 상태입니다. 거기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마지막으로 영이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산 존재’가 됩니다. 이는 인간의 own이 단계적으로 질서를 입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own은 스스로는 결코 살아날 수 없으며, ‘주님의 생명이 주입될 때에만’ 생명이 됩니다.
특히 중요한 문장은 ‘사람은 생명의 기관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가장 근본적인 정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은 생명의 원천이 아니라 ‘생명을 받아들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own이 생명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며, 실제 생명은 전적으로 주님에게서 옵니다.
이 지점에서 ‘주님의 Own’과 ‘사람의 own’이 대비됩니다. 사람의 own은 본질상 죽은 것이지만, 주님의 Own은 곧 생명 그 자체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Own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생명으로 사람의 own을 살아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구조이며, 자유가 가능해지는 이유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의 Own이 인간의 own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도, 주님의 신적 생명이 결코 손상되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AC.149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인간의 own은 뼈와 같아 죽어 있으나, 주님의 생명이 그것을 덮을 때 살이 되고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own을 없애는 데 있지 않고, ‘누구의 생명이 그 own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