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4:21)

 

AC.420

 

말씀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는데요, 저마다 나름의 상응을 가지지요. 이 저마다의 상응에 대해서는 주님의 신성한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를 따라 적절한 데서 보시게 됩니다. 여기선 단지 시편에 언급된 것들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In the Word mention is made of various instruments, each having its own signification, as will be shown,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its proper place; here however we shall adduce only what is said in David: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27:6) I will sacrifice in the tent of Jehovah sacrifices of shouting, I will sing, yea, I will sing praises unto Jehovah, (Ps. 27:6)

 

여기 ‘장막’(tent)은 천적인 것을, ‘즐거운’(shouting), ‘노래하며’(singing), 그리고 ‘찬송하리로다’(singing praises)는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걸 표현합니다. 계속해서 where by “tent” is expressed what is celestial, and by “shouting,” “singing,” and “singing praises,” 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Again:

 

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4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33:1-4) Sing unto Jehovah, O ye righteous, for his praise is comely for the upright; confess ye to Jehovah on the harp, sing unto him with the psaltery, an instrument of ten strings. Sing unto him a new song, play skillfully with a loud noise; for the Word of Jehovah is right, and all his work is in the truth, (Ps. 33:1–4)

 

신앙의 진리들을 가리키는데요,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denoting the truths of faith, concerning which these things are said.

 

[2] 영적인 것들, 즉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은 하프와 수금 및 노래와 비슷한 악기들을 가지고 축하한 반면, 신앙의 거룩한 것들, 곧 천적인 것들은 관악기, 그러니까 트럼펫 같은 걸로 축하했는데요, 이것이 성전에서, 그리고 왜 그렇게나 자주, 그렇게나 많은 악기가 사용되었는지 하는 이유, 즉 이런저런 주제를 해당 특정 악기로 축하하기 위해서였으며, 그 결과 ‘아, 이런 주제를 축하하기 위해 이런 악기를 선택한 것이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Spiritual things, or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the harp and psaltery, with singing and analogous instruments, but the holy or celestial thing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wind instruments, such as trumpets and the like; and this was why so many instruments were used about the temple and so often, in order that this or that subject might be celebrated with certain instruments; and in consequence of this the instruments came to be taken and understood for the subjects that were celebrated with them.

 

[3] 계속해서 Again:

 

2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3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71:22, 23) I will confess to thee with the psaltery, even thy truth, O my God; unto thee will I sing praises with the harp, O thou holy one of Israel; my lips shall sing when I sing praises unto thee, and my soul which thou hast redeemed, (Ps. 71:22–23)

 

여기 또한 신앙의 진리들과 상응하는 내용입니다. 계속해서 where also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Again: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147:7) Answer to Jehovah in confession, sing praises upon the harp unto our God; (Ps. 147:7)

 

‘감사함’(confession)은 신앙의 천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고, 그래서 그 언급에 ‘여호와’(Jehovah)가 나오는 것이며,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sing praises upon the harp)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God)이 나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confession” has respect to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and therefore mention is made of “Jehovah”; and to “sing praises upon the harp”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wherefore “God” is spoken of. Again: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149:3) Let them praise the name of Jehovah in the dance, let them sing praises unto him with the timbrel and harp, (Ps. 149:3)

 

여기 ‘소고’(timbrel, 탬버린)는 선에, ‘수금’(harp)은 진리, 곧 그들이 찬양하는 진리에 각각 상응합니다. where the “timbrel” signifies good, and the “harp” truth, which they praise.

 

[4] 계속해서 Again:

 

3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150:3-5) Praise God with the sound of the trumpet; praise him with the psaltery and harp; praise him with the timbrel and dance; praise him with stringed instruments and the organ; praise him upon the loud cymbals; praise him upon the cymbals of shouting. (Ps. 150:3–5)

 

이 악기들은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모두 찬양에 관한 여러 주제였습니다. 굳이 이렇게 죽 나열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각각의 악기들이 무슨 저마다 구별되는 상응 없이도 이렇게 쓸데없이 언급되었다고 믿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속해서 다음은 선과 진리의 지식에 관한 언급입니다. These instruments denote the goods and the truths of faith which were the subjects of praise; for let no one believe that so many different instruments would have been here mentioned unless each had a distinct signification. Again, referring to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43:3, 4) O send out thy light and thy truth, let them lead me, let them bring me unto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and to thy habitations, and I will go in to the altar of God, unto God, the gladness of my exultation; yea, I will confess unto thee upon the harp, O God, my God. (Ps. 43:3, 4)

 

[5] 이사야에서는, 신앙과 그 지식에 속한 것들을 언급하면서 In Isaiah, referring to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23:16) Take a harp, go about the city, play well, sing many songs, that thou mayest be called to remembrance. (Isa. 23:16)

 

같은 내용이 계시록에서는 좀 더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The same is expressed still more plainly in John: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5:8) The four animals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 fell down before the lamb, having every one of them harps, and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which are the prayers of the saints, (Rev. 5:8)

 

여기서 분명한 건, 생물들과 장로들이 가진 건 거문고가 아니라 ‘거문고’(harps)가 상응하고 있는 신앙의 진리들과, 그리고 ‘향이 가득한 금 대접’(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이 상응하고 있는 신앙의 선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시편에서는 악기 연주를 일컬어 ‘찬송’(praises)과 ‘감사함’(confessions)이라 하고 있습니다. where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that the animals and elders had not harps, but that by “harps” are signified the truths of faith, and by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the goods of faith. In David the performances on the instruments are called “praises” and “confessions.” (Ps. 42:5; 69:3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42:5)

 

30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69:30, 31)

 

계시록 또 다른 데서는 And in another place in John:

 

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14:2, 3) I heard a voice from heaven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I heard the voice of harpers harping with their harps, and they sang a new song. (Rev. 14:2–3)

 

계속해서 또 다른 데서 And in another place: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15:2) I saw them standing by the sea of glass having the harps of God. (Rev. 15:2)

 

다음 사실도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천사들과 영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자신들의 차이점을 따라 소리를 구분하는데요, 노래와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뿐 아니라 목소리에서 나오는 소리로도 구별합니다. 그들은 조화를 이루는 소리만 받아들이는데요, 그렇게 해서 소리의 일치, 그리고 그 결과 악기의 일치가 있게 됩니다. 선과 진리의 본성(nature)과 본질(essence)을 유지하면서 말이지요. It is worthy of mention that angels and spirits distinguish sounds according to their differences with respect to good and truth, not only those produced in singing and by instruments, but also those of voices; and they admit none but such as are in accord, so that there may be a concord of the sounds, and consequently of the instruments, with the nature and essence of the good and the true.

 

 

해설

 

AC.420에서 스베덴보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악기들이 결코 우연적이거나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각각 서로 다른 영적 실재를 표상하고 있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먼저 다윗의 시편(27:6)을 인용하여, ‘여호와의 장막(the tent of Jehovah)에서 드려지는 제사와 노래를 통해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별을 제시합니다. ‘장막(tent)은 사랑의 거룩한 것, 곧 천적인 영역을 표상하고, 그 장막 안에서 터져 나오는 ‘즐거운(shouting), ‘노래하며(singing), ‘찬송하리로다(singing praises)는 그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의 영적인 표현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근원이 되고, 신앙의 진리와 선은 그 사랑을 노래로 표현하는 결과가 됩니다.

 

시편 33편에서 ‘수금(harp), ‘비파(psaltery), ‘새 노래(new song), ‘즐거운 소리(loud noise)가 언급되는 것은, 예배의 풍성함을 단순히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백되고 찬양됨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the Word of Jehovah is right)라는 구절과 함께 음악이 언급되는 점에서, 이 악기들은 신앙의 진리와 그 질서를 표상합니다. 즉, 악기는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진리와 선이 조화롭게 배열된 상태를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중요한 구분을 합니다. 현악기와 노래는 주로 영적인 것들, 곧 신앙의 진리와 선을 기념하는 데 사용되었고, 나팔과 같은 관악기는 천적인 것들, 즉 사랑의 거룩함을 기념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 때문에 성전 예배에는 매우 다양한 악기들이 사용되었으며, 각각의 악기는 기념되는 주제에 따라 선택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악기 자체가 곧 그것으로 기념되던 영적 실재의 표상으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이는 상응의 질서가 예배 문화 속에 깊이 스며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시편 71편과 147편에서는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confess to thee with the psaltery),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sing praises upon the harp)는 표현이 반복되는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여호와(Jehovah)와 ‘하나님(God)이라는 명칭의 차이에 주목합니다. ‘여호와’는 사랑의 천적인 것을 가리키고, ‘하나님’은 신앙의 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고백(confession)이 여호와를 향할 때는 천적인 것을, 수금으로 노래하며 하나님께 찬송할 때는 영적인 신앙의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이 미묘한 구분은 성경 언어가 얼마나 정밀한 상응의 체계 위에 놓여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시편 149편과 150편은 이러한 구조를 극적으로 확장합니다. ‘소고(timbrel), ‘(dance), ‘수금(harp), ‘현악(stringed instruments), ‘퉁소(organ), ‘큰 소리 나는 제금(loud cymbals), ‘높은 소리 나는 제금(cymbals of shouting)까지 나열되는 것은, 예배의 흥을 돋우기 위한 장황한 수사가 아니라, 선과 진리의 모든 종류가 주님을 찬양하는 상태를 총체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만일 각각의 악기가 서로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면, 성경이 이렇게 많은 악기를 굳이 구분하여 언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말씀의 모든 세부가 의미 없는 장식이 아님을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이사야 23장과 시편 43편에서도 수금은 신앙의 진리, 빛과 진리는 영적 인도를 표상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르면 이 상징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four animals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가 각기 ‘수금(harps)을 들고 있으며, ‘향이 가득한 금 대접(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을 가진 장면은, 문자 그대로 천상 존재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향을 들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수금은 신앙의 진리, 향은 신앙의 선, 곧 체어리티의 기도를 표상합니다. 이는 상응을 모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증언을 덧붙입니다. 천사들과 영들은 소리를 단순한 음향으로 듣지 않고, 그 소리 안에 담긴 선과 진리의 성질에 따라 즉각적으로 분별합니다. 노래의 음성, 악기의 울림, 말의 소리까지도 그 배후의 영적 상태에 따라 받아들여지며, 선과 진리에 합당하지 않은 소리는 자연스럽게 배제됩니다. 그래서 하늘에는 언제나 소리의 조화, 곧 선과 진리의 조화가 있으며, 이 조화가 곧 하늘의 질서입니다.

 

결국 AC.420은 음악과 악기가 단순한 예배 도구가 아니라, 천적인 사랑과 영적인 신앙이 어떻게 표현되고 결합되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표상임을 밝혀 줍니다. 성경에 나오는 악기 하나하나는, 교회와 인간 내면에서 사랑과 신앙이 울리는 방식을 드러내는 상응의 언어이며, 이를 통해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AC.421, 창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AC.421-426)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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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9, 창4:21, '영적인 것' - 신앙의 진리와 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9 천적인 것이 사랑의 거룩한 것과 그로 인한 선이듯, 영적인 것은 신앙의 진리와 선입니다. 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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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4:21)

 

AC.419

 

천적인 것이 사랑의 거룩한 것과 그로 인한 선이듯, 영적인 것은 신앙의 진리와 선입니다. 참되고 선한 걸 이해하는 건 신앙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지식은 이 둘을 포함하지만, 그러나 신앙이 가르치는 바대로 되는 거, 그 결과 주님 사랑의 사람이 되어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는 건 천적입니다. 즉 이해하고 그 안에 머무르는 건 영적이지만, 이해한 걸 실천에 옮겨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천적이라는 말입니다. 신앙이 이들 두 가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두 악기, 곧 ‘수금과 퉁소’(the harp and organ)로 상응하고 있습니다. 하프는, 다들 아시듯 현악기이며, 그래서 영적 진리를, 그리고 오르간은 현악기와 관악기 사이 중간, 곧 영적 선을 상응합니다. As celestial things are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so spiritual things are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for it belongs to faith to understand not only what is true, but also what is good. The knowledges of faith involve both. But to be such as faith teaches is celestial. As faith involves both of these, they are signified by two instruments, the harp and the organ. The harp, as everyone knows, is a stringed instrument, and therefore signifies spiritual truth; but the organ, being intermediate between a stringed instrument and a wind instrument, signifies spiritual good.

 

 

해설

 

AC.419에서 스베덴보리는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이 둘이 어떻게 신앙 안에서 결합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정리합니다. ‘천적인 것(celestial things)은 사랑의 거룩한 것과 그로부터 파생된 선이고, ‘영적인 것(spiritual things)은 신앙의 진리와 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앙이 단지 참된 것을 아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이란 무엇이 참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선한지까지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지식, 곧 ‘신앙의 앎’ 속에는 진리와 선이 함께 포함됩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중요한 구분을 덧붙입니다. 신앙이 진리와 선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은 영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그 이해한 바를 존재 자체로 살아내는 것, 곧 그 사람 자체가 그렇게 되는 것은 천적인 영역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선이라고 아는 것은 신앙의 일이고, 그 선 안에 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랑의 일입니다. 이 구분은 신앙과 사랑,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의 관계를 오해 없이 이해하게 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베덴보리는, 영적인 것들이 두 악기, 수금과 퉁소(오르간)로 표상된다고 설명합니다. 신앙 안에는 진리와 선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악기가 아니라 두 악기가 필요합니다. 수금은 현악기로서, 줄의 진동을 통해 소리를 냅니다. 이는 분명하고 구별되는 음, 곧 진리의 성격과 상응합니다. 진리는 구분하고, 밝히며, 질서를 세웁니다. 그래서 수금은 영적 진리를 표상합니다.

 

반면 퉁소, 혹은 오르간은 성격상 현악기와 관악기 사이의 중간적 성질을 지닙니다. 공기의 흐름이 관을 통해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는 일정한 구조와 질서 안에서 형성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중간성’을 근거로, 오르간이 영적 선을 표상한다고 말합니다. 영적 선은 진리처럼 날카롭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사랑처럼 즉각적인 생명력만으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진리에 의해 형성되고,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음악의 물리적 특성을 억지로 영적 의미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응의 질서를 따라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리는 분별과 명료성을 지니고, 선은 온화함과 유익함을 지닙니다. 현악기의 또렷한 음은 진리의 성격과 상응하고, 공기의 흐름 속에서 조화롭게 울리는 오르간의 소리는 선의 성격과 상응합니다. 이 둘이 함께 연주될 때, 비로소 신앙의 전체, 곧 진리와 선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표현됩니다.

 

결국 AC.419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신앙은 결코 단일한 차원이 아니며, 진리와 선의 이중 구조를 지닙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음악이라는 표상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수금만 있다면 신앙은 차갑고 분석적인 지식에 머물고, 오르간만 있다면 신앙은 방향 없는 선의 감정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이 함께 있을 때, 신앙은 진리를 알고 선을 행하며,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살아 있는 질서가 됩니다.

 

따라서 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으로 불린 것은, 교회 안에서 신앙이 진리와 선의 균형 속에 자리 잡았음을 알리는 표상입니다. 이는 천적인 사랑(야발)에서 출발하여, 영적인 신앙(유발)으로 질서 있게 전개되는 새 교회의 구조를 완성하는 중요한 한 조각이며, 스베덴보리가 음악의 상응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한 깊은 영적 통찰입니다.

 

 

 

AC.420, 창4:21, '말씀에 나오는 다양한 악기들이 가지는 상응'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20 말씀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는데요, 저마다 나름의 상응을 가지지요. 이 저마다의 상응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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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8, 창4:21, '수금과 퉁소' -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들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8 앞 절에서는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다면, 본 절에서는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들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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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4:21)

 

AC.418

 

앞 절에서는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다면, 본 절에서는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들을 다루면서, 이를 ‘수금과 퉁소’(harp and organ)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프 같은 현악기가 신앙의 영적인 것들과 상응한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면 분명한데요, 표상 교회(the representative church)의 예배에서 볼 수 있는 비슷한 악기들과 찬양이 상응하는 바가 이것 말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 예배에 그렇게나 많은 싱어와 뮤지션이 있었던 건데요, 그 모든 것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바로 천국의 모든 기쁨은 마음의 즐거움을 낳는다(all heavenly joy produces gladness of heart), 즉 천국의 기쁨을 즐거운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함이며, 그걸 찬양, 즉 성가대와 이를 돕는 현악단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노래(singing), 즉 찬양이라는 게 시작되었고, 계속해서 뭔가 이 찬양을 도울 수 있는 걸 고안하다 보니 현악기(stringed instruments)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의 애정(The affection of the heart)은 천적이지만, 그로 인한 찬양은 영적입니다. 노래, 즉 찬양과 이와 유사한 것들은 영적인 걸 가리킨다는 사실이 천사 성가대들(the angelic choirs)을 통해 제게 분명해졌는데요, 이 천사 성가대는 두 종류, 곧 천적 성가대와 영적 성가대가 있습니다. 영적 성가대는 천적 성가대와 쉽게 구별되는데, 그들이 찬양할 때 내는 바이브레이션 [sono canoro alato] 때문이지요. 이는 현악기 소리와 비슷한데요, 이런 내용에 대한 더 깊은 언급은 주님의 신성한 자비(the Divine mercy of the Lord)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태고인들(太古, The most ancient people)은 천적인 건 심장 영역(the province of the heart)과, 영적인 건 폐(the lungs) 영역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고, 그 결과 폐에 관한 걸 노랫소리와 그 유사한 것들로 상응하는 것이며, 그래서 목소리나 그런 악기들의 사운드로 그런 상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은 단지 심장과 폐가 일종의 결혼, 그러니까 사랑과 신앙의 결혼 같은 그런 결혼을 표현할 뿐 아니라, 또한 천적 천사들은 심장 영역에, 영적 천사들은 폐 영역에 속한다는 것도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이 구절에서 의미하는 것이 이런 거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도 또한 알 수 있는데요, 이는 주님의 말씀(the Word of the Lord)이며, 그저 유발이 그런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라는 의미밖에 뭐 더 다른 아무것도 없다면 거기엔 무슨 생명이라는 게 없으며, 이런 건 알아도 아무한테도 아무 소용도 없는 거라는 사실입니다. The former verse treated of celestial things which are of love, but this verse treats of spiritual things which are of faith, and these are expressed by the “harp and organ.” That by stringed instruments, such as harps and the like, are signified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is evident from many considerations. Similar instruments, and also the singing, in the worship of the representative church, represented nothing else, and it was on this account that there were so many singers and musicians, the cause of this representation being that all heavenly joy produces gladness of heart, which was expressed by singing, and in the next place by stringed instruments that emulated and exalted the singing. Every affection of the heart is attended with this: that it produces singing, and consequently what is connected with singing. The affection of the heart is celestial, but the consequent singing is spiritual. That singing and that which resembles it denote what is spiritual has been evident to me from the angelic choirs, which are of two kinds, celestial and spiritual. The spiritual choirs are easily distinguished from the celestial by their vibrant singing tone [sono canoro alato], comparable to the sound of stringed instruments, of which,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we shall speak hereafter. The most ancient people referred what was celestial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what was spiritual to that of the lungs, and consequently to whatever pertains to the lungs, as do the singing voice and things like it, and therefore the voices or sounds of such instruments. The ground of this was not merely that the heart and lungs represent a kind of marriage, like that of love and faith, but also because the celestial angels belong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the spiritual angels to that of the lungs. That such things are meant in the passage before us, may also be known from the fact that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and that it would be destitute of life if nothing more were implied than that Jubal was the father of such as play upon the harp and the organ; nor is it of any use to anyone to know this.

 

 

해설

 

AC.418에서 스베덴보리는 본문이 다루는 주제가 앞 절과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앞선 절이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다면, 이 절은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것들이 ‘수금과 퉁소’로 표현됩니다. 이는 성경이 음악적 도구를 언급할 때, 결코 문화사나 예술사의 기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 상태를 표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현악기, 곧 수금과 같은 악기들이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뜻한다는 점을 여러 각도에서 설명합니다. 구약의 대표적 교회, 곧 표상적 교회에서 음악과 노래가 예배의 핵심을 이루었던 이유는, 그것들이 하늘의 기쁨을 자연계에서 상응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기쁨은 곧 마음의 즐거움으로 나타나고, 이 즐거움은 먼저 노래로 표현되며, 이어서 노래를 북돋우고 고양하는 현악기로 확장됩니다. 이 질서 자체가 이미 천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흘러가는 구조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나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마음의 애정 자체는 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애정이 소리와 음성, 곧 노래로 표현될 때, 그것은 영적인 영역에 속합니다. 즉, 사랑은 내적인 불이며, 노래는 그 불이 밖으로 울려 퍼지는 진동입니다. 그러므로 음악은 사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표현, 곧 영적인 상태의 표상입니다. 이 때문에 음악과 노래는 언제나 신앙의 진리와 선, 그 감응과 기쁨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체험을 덧붙여, 이 사실이 단지 추론이 아니라 영계의 실제 질서임을 밝힙니다. 그는 천사들의 합창을 관찰했으며, 그 합창이 천적인 합창과 영적인 합창으로 구분됨을 증언합니다. 특히 영적인 합창은 ‘날개 달린 듯한 진동하는 노랫소리’를 내며, 이는 현악기의 울림과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적인 합창이 더 깊고 내적인 감동을 주는 반면, 영적인 합창은 분명한 음성, 질서 있는 진동, 전달되는 진리의 성격을 띤다는 점입니다. 이는 신앙의 영적 차원이 갖는 특성과 정확히 상응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태고교회 사람들이 이해하던 심장과 폐의 질서와도 연결됩니다. 그들은 천적인 것을 심장의 영역, 영적인 것을 폐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심장은 사랑과 생명의 중심이며, 폐는 호흡과 음성의 기관입니다. 노래와 말, 소리는 모두 폐의 작용에 속합니다. 따라서 노래와 악기는 자연스럽게 영적인 것, 곧 신앙의 영역을 표상합니다. 이 질서는 단순한 생리학적 비유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의 결합이 인체 안에서 상응적으로 드러난 구조입니다. 사랑이 심장이라면, 신앙은 폐이며, 둘은 분리될 수 없으나 구별됩니다.

 

이 모든 설명을 통해 스베덴보리는, “‘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라는 표현이 만일 문자적 사실에 그친다면, 성경은 생명 없는 기록이 되고 만다”고 말합니다. 누가 최초의 음악가였는지를 아는 것은 영혼의 구원이나 신앙의 삶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주님의 말씀인 이상, 그 안에는 반드시 교회와 인간 내면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생명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생명이, 음악이라는 표상을 통해 신앙의 영적인 기쁨과 진리의 조화로 드러납니다.

 

결국 AC.418의 요지는 분명합니다. 새 교회가 회복될 때, 사랑의 거룩함(천적인 것)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의 영적인 질서도 함께 회복됩니다. 그 영적인 질서는 차갑고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노래처럼 울리고, 음악처럼 조화를 이루는 신앙입니다. 수금과 퉁소는 바로 그 상태를 표상하며,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지 않고, 사랑의 기쁨을 진리의 언어로 노래하는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AC.419, 창4:21, '영적인 것' - 신앙의 진리와 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9 천적인 것이 사랑의 거룩한 것과 그로 인한 선이듯, 영적인 것은 신앙의 진리와 선입니다. 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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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7, 창4: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AC.417-420)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창4:21) AC.417 ‘그의 아우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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