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7.심화

 

1. 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47:12)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th up every tree of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2).

 

이 구절은 AC.57의 문맥에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 들어올 때, 그 사람의 이해와 의지, 그리고 삶 전체가 어떻게 살아나고 지속적인 열매를 맺게 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47:12의 강과 나무와 열매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와 선이 사람 안에 흘러들어와, 그 사람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고, 이해와 삶에서 지속적인 유익과 치유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먼저 ’입니다. 성경에서 ’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흐르는 진리’, 곧 주님으로부터 사람에게 계속 공급되는 생명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물이 성소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 진리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 곧 가장 거룩한 근원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입니다. 즉,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사람의 노력이나 생각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흐름’입니다.

 

이제 강 좌우 가에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란다’입니다. ‘나무’는 사람 안에 자리 잡은 상태, 특히 진리와 선이 결합되어 안정된 구조를 이룬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각종 먹을 과실나무’라는 것은, 그 상태가 단일하지 않고, 매우 풍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선과 진리를 낳는다는 뜻입니다. 즉, 한 가지 변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열매가 맺히는 상태입니다.

 

이제 핵심 표현들입니다.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에서 ’은 이해, 곧 생각과 인식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잎은 나무의 바깥에 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잎이 시들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이해가 더 이상 어두워지거나 메마르지 않고, 항상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즉,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계속 새롭게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다’에서 열매’는 삶에서 나타나는 선, 곧 실제 행위와 결과를 의미합니다.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선한 삶이 일시적이거나 간헐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된다는 뜻이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같은 선이라도 계속 새롭게, 더 깊고 풍성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즉, 반복이 아니라 새로움이 있는 지속’입니다.

 

이제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삶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열매는 단순히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유익이 되는 선입니다. 즉,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 곧 이해와 진리가 단순히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왜곡된 생각, 상처, 혼란 등을 바로잡고 회복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진리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AC.57의 흐름과 연결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앞에서 말한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는 상태’는, 바로 이런 생명의 흐름 속에 있을 때 나타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 그 사람의 이해는 계속 살아 있고, 삶에서는 선한 열매가 끊이지 않으며,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과 치유를 줍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따라 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변화였지만, 점점 그의 생각은 더 맑아지고, 삶에서는 선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도움이 됩니다. 바로 그 상태가 열매가 끊이지 않고’, ‘잎이 시들지 않으며’, ‘잎이 약재가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한 축복의 그림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흐르고,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47:12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와 선이 사람 안에 지속적으로 흘러들어와, 이해는 살아 있고, 삶은 열매 맺으며, 그 모든 것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유익과 치유를 주는 거듭남의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AC.57, 심화 2, ‘시23:1-2’

AC.57.심화 2. ‘시23:1-2’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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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창1:29,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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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tree in which is fruit)는 신앙의 선입니다. ‘열매(fruit)는 주님께서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고, ‘열매를 맺게 하는 씨(seed producing fruit)는 주님께서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 가진 나무가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적 음식을 나무의 열매로 부른다는 사실은, 다음 장에서 천적 인간을 다룰 때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서는 에스겔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만 인용합니다. The “herb bearing seed” is every truth which regards use; the “tree in which is fruit” is the good of faith; “fruit” is what the Lord gives to the celestial man, but “seed producing fruit” is what he gives to the spiritual man; and therefore it is said,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That celestial food is called fruit from a tree, is evident from the following chapter, where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In confirmation of this we will here cite only these words of the Lord from Ezekiel: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47:12)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th up every tree of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2).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waters issuing out of the sanctuary)성소(sanctuary)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과 자비를 뜻합니다. ‘열매(fruit)는 그들에게 음식이 될 지혜이고, ‘(leaf)은 쓰임을 위한 지성입니다. 이 쓰임을 (medicine)이라 합니다. 반면 영적인 음식을 (herb)이라 한다는 점은 시편에서도 분명합니다. Waters issuing out of the sanctuary,” signify the life and mercy of the Lord, who is the “sanctuary.” “Fruit” is wisdom, which shall be food for them; the “leaf” is intelligence, which shall be for their use, and this use is called “medicine.” But that spiritual food is called “herb,” appears from David: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down in pastures of herb (Ps. 23:1–2).

 

 

해설

 

이 글은 앞선 AC.56에서 말한 ‘영적 인간의 음식’을 한층 더 정밀하게 풀어 줍니다. 핵심은 ‘같은 생명이라도 인간의 상태에 따라 주어지는 양식의 형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풀, 나무, 씨, 열매라는 식물의 세부 이미지를 통해 영적, 천적 차이를 구분합니다.

 

먼저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라고 정의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쓰임’입니다. 진리가 진리로 머무르지 않고, 삶에 적용되고 이웃과 교회를 향해 나아갈 때, 그 진리는 더 이상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영적 양식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이라고 합니다. 풀은 먹을 수 있고 생명을 유지하게 하지만, 아직 열매를 맺는 나무만큼 깊은 근원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반면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이라고 합니다. 선은 더 이상 쓰임을 향한 방향성에 머무르지 않고, ‘삶 그 자체로 굳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선은 나무이고, 그 결과는 열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분명히 구분합니다. 열매 자체는 천적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영적 인간에게는 아직 ‘열매를 맺게 하는 씨’가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 영적 인간은 선의 가능성을 지닌 상태이지, 선 그 자체에 완전히 거한 상태는 아닙니다.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본문이 바로 에스겔 47 12절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본문은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으로 인해 온 땅이 회복되고 생명이 충만해지는 환상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AC의 관점에서 성소는 언제나 주님 자신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과 자비입니다. 이 물로 인해 자라는 나무들은 인간 안에서 자라는 생명의 원리들입니다.

 

이 본문에서 열매와 잎이 구분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열매는 ‘지혜’로 해설되고, 잎은 ‘지성’으로 해설됩니다. 지혜는 삶 그 자체와 결합한 진리이며, 그래서 ‘음식’이 됩니다. 반면 지성은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으로, 삶을 직접 살게 하지는 않지만, 삶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잎을 ‘’이라고 합니다. 즉 지성은 생명을 낳기보다는, 생명이 병들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천적 인간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음식은 ‘열매’입니다. 그는 진리를 이해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지혜로 삽니다. 그래서 그의 양식은 나무에서 맺힌 열매이며, 그 열매는 달마다 새로워집니다. 이는 천적 상태의 생명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영적 인간의 음식이 ‘’로 불린다는 점은 시편 23편에서 확인됩니다. ‘푸른 풀밭’은 단순한 위로의 이미지가 아니라, 영적 인간이 진리의 양식을 공급받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풀밭은 방목지이며, 여기서 양은 인도함을 받습니다. 이는 영적 인간이 여전히 인도를 필요로 하며, 진리를 통해 방향을 잡아 가는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결국 이 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이라도, 영적 인간에게는 , 천적 인간에게는 열매로 주어집니다. 풀은 쓰임을 향한 진리이고, 열매는 삶이 된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차이입니다.

 

영적 인간은 여전히 성장 중이고, 천적 인간은 사랑 안에 거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각 사람의 상태에 맞는 음식을 주십니다.  

 

 

심화

 

1.47:12

 

 

AC.57, 심화 1, ‘겔47:12’

AC.57.심화 1. ‘겔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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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1-2

 

 

AC.57, 심화 2, ‘시23:1-2’

AC.57.심화 2. ‘시23:1-2’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 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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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AC.57, 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AC.57.심화 3.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 ‘‘씨 맺는 채소’는 쓰임을 지향하는 모든 진리이고,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입니다.’라는 이 도입 문장이 이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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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6, 창1:29,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AC.56-57)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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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6.심화

 

1.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

 

AC.56 본문에 반복되는,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는데, 이것들은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라는 표현에서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 그의 삶과 일치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좀 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결론부터 아주 선명하게 말씀드리면, AC.56 천적(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종류의 선과 진리를 접할 때 마음이 자연스럽게 기쁘고 편안해진다’는 뜻이고, ‘그의 삶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가 평소에 선택하고 살아가는 방향과 정확히 같은 성질이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상태와 맞아떨어질 때 생기는 반응’입니다.

 

먼저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표현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수준의 좋아함’입니다. ‘천적’은 사랑 자체, 곧 선을 사랑하는 기쁨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나서 아무도 몰라도 마음 깊이 따뜻하고 평안한 기쁨이 남는 것, 이것이 천적인 기쁨입니다. ‘영적’은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기쁨입니다. 말씀을 읽다가 ,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마음이 환해지는 기쁨, 혹은 옳은 것을 분명히 알게 되어 마음이 정리되는 기쁨입니다. ‘자연적’은 그보다 바깥에서 오는 기쁨으로, 좋은 결과를 얻거나, 일이 잘 풀리거나, 관계가 편안해지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떤 기쁨을 느끼느냐는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남을 이기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남을 돕는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AC.56 기뻐한다’는 말을 통해 그 사람의 내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아주 실제적인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 삶과 맞는 것을 들으면 편안하고 기쁘지만, 맞지 않는 것을 들으면 불편하고 거부감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정직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고 힘을 얻습니다. 반대로, 속이는 데 익숙한 사람은 같은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이유를 붙여 피하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일치’와 불일치’입니다.

 

그래서 천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사랑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관한 것을 들을 때 깊이 공감하고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진리를 따라 살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들을 때 마음이 밝아지고 즐거워진다는 뜻입니다.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아직 바깥 결과 중심의 삶에 있기 때문에, 외적인 성공이나 편안함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걸 더 와닿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 내가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이게 논리적으로 맞다’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오늘 위로가 된다’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설교는 같지만, 기쁨의 지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삶의 중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C.56은 사실 아주 중요한 진단 기준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에서 기뻐하는가’를 보면, ‘내가 지금 어떤 삶의 상태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남이 진행되면, 기쁨의 내용도 바뀝니다. 처음에는 결과에서 기뻐하던 사람이, 점점 진리에서 기뻐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 자체에서 기뻐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천적, 영적,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수준에 따라 기쁨의 내용이 다르다는 뜻이고, ‘그의 삶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 기쁨이 그 사람의 실제 삶의 방향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사람은 자기가 실제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선과 진리를 만날 때 기뻐하며, 그 기쁨이 곧 그의 영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AC.56, 창1:29,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AC.56-57)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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