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2:5, 6)

 

AC.90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 일반적으로 그의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그가 영적 인간으로 있는 동안에는 (earth)이라 불리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ground), 그리고 또한 (field)이라 불립니다. 곧이어 안개(mist)라고 불리는 (Rain)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입니다. By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are meant in general all that his external man produces. The external man is called earth while he remains spiritual, but ground and also field when he becomes celestial. “Rain, which is soon after called mist, is the tranquility of peace when combat ceases.

 

해설

AC.90은 바로 앞 AC.89에서 제시한 어휘 변화 가운데 하나를 곧바로 설명합니다. 2에서는 앞의 창조 기사와 달리 뿐 아니라 지면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문체상의 변화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들의 관목들의 초목은 일반적으로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나오는 식물의 표현들은 자연계의 식물 자체보다 천적 인간의 겉 사람 안에서 나타나는 것들을 묘사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같은 겉 사람을 가리키면서도 인간의 상태에 따라 말씀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있는 동안 그의 겉 사람은 (earth)이라 불리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ground)’, 그리고 (field)이라 불립니다. AC.8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2에 들어오면서 이전에는 없던 지면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천적 인간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습니다. AC.90은 이제 그 이유를 직접 밝힙니다. 겉 사람 자체가 없어지거나 전혀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겉 사람이 천적 질서 안에 들어감에 따라 그것을 나타내는 말씀의 표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점은 AC.89천적 인간의 형성은 사람, 하늘로부터 시작된다는 설명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속 사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갖게 되면 그 질서가 겉 사람에까지 미치고, 겉 사람은 그에 따라 산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들의 관목들의 초목그의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을 의미한다는 말은 겉 사람이 독립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앞 AC.88에서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고 했고, AC.89에서는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90의 겉 사람의 산출 역시 그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 ‘지면’, ‘을 하나의 고정된 상응 사전처럼 다루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AC.90이 직접 말하는 범위는 현재의 문맥에서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이 이라 불리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은 지면이라 불린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물의 명칭 자체보다 인간의 내적 상태가 달라지면서 동일한 겉 사람도 말씀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앞 AC.88에서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비슷해 보이는 표현에도 서로 구별되는 관념이 있다고 한 것과 함께,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세밀한 어휘 차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읽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 문장은 다시 안식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스베덴보리는 를 곧이어 나올 안개와 연결하면서 그것을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AC.84-87의 흐름과 직접 이어집니다. 여섯 날 동안에는 싸움과 수고가 있었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또는 안식일이 될 때 싸움이 그칩니다. AC.87에서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면서 싸움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90은 그 뒤에 오는 상태를 단순히 싸움이 없음이라는 소극적인 상태로만 말하지 않고 평화의 평온이라는 적극적인 상태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단순히 외부의 갈등이 없거나 마음이 잠시 편안한 심리 상태와 같지 않습니다. 문맥상 이것은 거듭남의 싸움이 그치고 주님의 질서가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흘러들어 가는 천적 상태의 평온입니다. 바로 앞 AC.85에서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결과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AC.90평화의 평온도 그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개는 그러한 안식의 상태와 관련하여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것입니다.

 

결국 AC.90은 짧은 번호 안에서 창2의 새로운 어휘와 천적 인간의 상태를 연결합니다.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을 나타내던 은 천적 인간의 문맥에서 지면로 표현되고, 그 겉 사람에서 산출되는 것들은 들의 관목들의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싸움 이후의 평화의 평온이라는 상태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AC.89가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면, AC.90은 그 속 사람의 질서 아래 놓인 겉 사람이 어떤 새로운 상태에 들어가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하는 번호입니다. (AC.90)

 

 

 

AC.91, 창2:5-6,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기 시작할 때, 싸움은 그치고 평온이 온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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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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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2:4)

 

AC.89

하늘과 땅의 내력(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그의 형성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뒤따르는 모든 세부 사항으로부터 매우 분명합니다.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다는 , 땅을 사람이 없었다는 ,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는 , 그리고 후에 들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를 만드셨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이들의 형성은 이미 장에서 다루어졌음에도 여기서 다시 언급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이 다루어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처음으로 주님을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이라 한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단지 하나님(God)이라고만 하였습니다. 나아가 이제는 지면(ground) (field) 언급되는 반면, 앞에서는 오직 (earth) 언급되었습니다. 구절에서는 먼저 하늘(heaven) (earth)보다 앞에 언급되고, 후에는 (earth) 하늘(heaven)보다 앞에 언급됩니다. 이유는 (earth) 사람을, 하늘(heaven)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개혁이 (earth),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여기서 다루는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람, 하늘(heaven)로부터 시작됩니다. The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are 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 That his formation is here treated of is very evident from all the particulars which follow, as that no herb was as yet growing;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s well as that Jehovah God formed man, and afterwards, that he made every beast and bird of the heavens, notwithstanding that the formation of these had been treated of in the foregoing chapter; from all which it is manifest that another man is here treated of. This however is still more evident from the fact that now for the first time the Lord is calledJehovah God,whereas in the preceding passages, which treat of the spiritual man, he is called simplyGod; and, further, that nowgroundandfieldare mentioned, while in the preceding passages onlyearthis mentioned. In this verse alsoheavenis first mentioned beforeearth,and afterwardsearthbeforeheaven; the reason of which is thatearthsignifies the external man, andheaventhe internal, and in the spiritual man reformation begins fromearth,that is, from the external man, while in the celestial man, who is here treated of, it begins from the internal man, or fromheaven.

 

해설

AC.89는 창2:4부터 시작되는 내용이 창1의 창조 기사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하늘과 땅의 내력은 속뜻에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뒤따르는 내용으로부터 매우 분명하다고 합니다. 1에서는 이미 초목이 나고 사람과 동물과 새가 창조되었는데, 2에서는 다시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다고 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후에 들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미 앞 장에서 그 형성이 다루어졌는데도 다시 언급되는 것은 이제 다른 사람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두 번째 역사적 개인을 뜻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다룬 영적 인간과 구별되는 천적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AC.83에서 영적 인간에게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고, AC.84-88에서는 그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과 안식일, 그리고 하나님의 일로 설명했습니다. 이제 AC.89부터는 그 천적 인간의 형성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부터 다른 사람이 다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본문상의 변화도 지적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단지 하나님이라고 하였지만, 이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합니다. 또한 앞에서는 만 언급되었지만 이제는 지면이 등장합니다. 이 변화들은 우연한 표현상의 차이가 아니라 지금부터 천적 인간의 형성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지입니다. 다만 AC.89는 왜 영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하나님이라 하고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는지 그 정확한 이유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번호에서는 우선 호칭의 변화 자체가 의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차이의 더 깊은 이유는 별도로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면 역시 이 번호에서 아직 각각의 의미가 설명되지 않으므로 뒤따르는 해설을 기다려야 합니다.

 

AC.89의 가장 중요한 설명은 창2:4의 어순에 있습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에서는 하늘이 땅보다 먼저 나오지만, 이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에서는 땅이 하늘보다 먼저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순서까지 속뜻에서 의미 있게 읽습니다. 은 겉 사람을, 하늘은 속 사람을 의미하며, 영적 인간에게서는 개혁이 , 곧 겉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천적 인간에게서는 속 사람, 하늘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 인간에게 속 사람이 없고 천적 인간에게만 속 사람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있지만,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구별하는 것은 개혁과 형성이 시작되는 질서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곧바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형성 과정을 세부적으로 완성해 설명하기보다, 영적 인간의 개혁은 겉 사람으로부터,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원문 자체의 구별을 정확히 보존하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AC.89는 앞으로 이어지는 창2의 상세 해설을 읽는 중요한 안내판입니다. 초목과 지면과 들, 사람과 짐승과 새가 다시 등장한다고 해서 창1과 같은 내용을 되풀이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다루는 것은 천적 인간의 형성이며,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과 지면이라는 새로운 표현, 그리고 하늘과 , 땅과 하늘의 순서가 그 전환을 보여 줍니다. 특히 영적 인간의 개혁이 겉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데 비하여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이 번호에서 밝혀지는 핵심적인 차이입니다. 다만 이것을 인간이 자기 내면을 탐색하여 스스로 천적 인간이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 AC.88에서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역시 그 형성의 주체가 인간 자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창조의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AC.89 해설)

 

심화

1.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

 

AC.8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2부터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지적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단지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천적 인간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호칭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먼저 AC.89가 실제로 말하는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이 호칭의 변화를 분명히 지적하고, 이것을 지금부터 앞에서 다루었던 영적 인간과는 다른 사람, 곧 천적 인간이 다루어진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AC.89 자체에서는 왜 영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하나님이라 하고 천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한 번호만으로 여호와는 언제나 사랑을 의미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진리를 의미한다거나,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고정해서 설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다른 곳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들을 찾을 수 있더라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은 채 AC.89의 짧은 언급만으로 전체 호칭 체계를 먼저 완성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이 질문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 , 구주, 아버지,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인자, 성령 등 주님에 관한 모든 호칭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것도 AC.89의 독자가 지금 필요로 하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러한 호칭들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만, 각각 성경의 문맥과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그 호칭을 설명하는 곳에서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여러 호칭이 나온다고 해서 먼저 각 호칭에 하나씩 고정된 기능이나 작용을 배정해 놓고 이후의 본문을 그 틀에 맞추어 읽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AC.89의 호칭 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 자신이 이것을 천적 인간의 형성이 새롭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제시했으므로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1에서 영적 인간이 형성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2에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등장합니다. 독자는 우선 이 변화가 우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AC를 읽는 방법에서도 중요한 원칙을 보여 줍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달라질 때 그 차이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이름 하나를 발견하자마자 미리 만든 의미표를 기계적으로 대입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그 이름의 차이를 실제로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따라가야 합니다. AC.89에서는 우선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의 변화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주제가 전환되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지라는 데까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라는 질문은 여기서 완전히 닫기보다 가지고 가는 편이 좋습니다. AC.89가 우리에게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은 호칭의 변화가 의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더 깊은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이후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이름들을 직접 설명할 때 하나씩 확인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먼저 만든 주님의 호칭 체계로 AC를 읽는 것이 아니라, AC 자체가 주님의 여러 이름을 어떻게 열어 가는지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AC.89 심화 1)

 

 

 

AC.88, 창2:2-3,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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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그는 하나님의 (work of God)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의 일을 마치셨다(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하며, 번이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 합니다. 선지서들에서도 사람은 거듭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하신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합니다. 거듭난 사람에 관하여 말하는 이사야의 다음 말씀과 같습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work of God,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he rested from all his work.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아들들과 손으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일을 옛부터 듣게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냐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로부터 새로운 창조,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 형성하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은 위의 구절,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형성하시며, 그것을 만드신다(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 말씀에서뿐 아니라 같은 선지서의 다른 곳에서도 서로 뚜렷이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다음 말씀과 같습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The expressions tocreate,toform,and tomake,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내가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또한 장과 창세기 2장에서도 그러합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말씀, 하나님이 만드시면서 창조하신 그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구절에서도 그러합니다. 속뜻에서는 이러한 용법이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합니다. 주님을 창조자(creator), 형성자(former), 또는 만드신 (maker)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creator,” “former,ormaker.

 

해설

AC.88은 앞에서 계속되어 온 주님의 이라는 표현을 매우 분명하게 결론짓습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이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7과 직접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싸움을 수행한 것이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하신 것이라고 했고, 이제 AC.88에서는 싸움뿐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는 것까지 모두 주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창2에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의 일을 마치셨다,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고 하는 은 속뜻에서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일과 관계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더 이상 우리가 추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명확하게 새로운 창조,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이라고 직접 밝힙니다. 따라서 창1과 창2의 창조를 거듭남과 연결하는 것은 창조 이야기 위에 후대의 교리를 임의로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이 번호에서 직접 밝히는 속뜻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사실을 확증하기 위하여 사45:11-12, 18, 21을 인용합니다. 이 인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는 주체가 한결같이 여호와라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인용하기 직전에 거듭난 사람에 관하여 말하는 이사야의 다음 말씀이라고 직접 밝힙니다. 따라서 이 인용의 중심은 사45에 등장하는 모든 표현에 각각 새로운 상응을 부여하는 데 있지 않고, 거듭난 사람 역시 여호와의 손으로 하신 일이며 새로운 창조의 주체는 주님이심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특히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라는 반복을 곧바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별도의 상응으로 바꾸기보다, AC.88이 이 인용을 통하여 실제로 내리는 결론을 따라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 결론은 새로운 창조,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AC.88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세 표현입니다. AC.84에서 스베덴보리는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그때는 세 동사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AC.88에서는 적어도 한 가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이 세 표현은 아무 차이 없이 반복되는 동의어가 아니라 서로 뚜렷이 구별되어 사용되며, 속뜻에서는 각각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여 주기 위해 사45에 이어 사43:7내가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를 다시 인용하고, 1과 창2에서도 같은 구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AC.88창조하다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고 형성하다만들다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까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세 표현을 속 사람과 겉 사람, 신앙과 사랑과 행위 같은 세 단계에 임의로 대응시켜서는 안 됩니다.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세 표현이 서로 구별된다는 사실이며, 그 정확한 차이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더 밝혀 줄 때 확인하면 됩니다.

 

따라서 AC.88에서 세 동사의 차이보다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모든 동사의 주체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는 분도 주님이고, 형성하시는 분도 주님이며, 만드시는 분도 주님입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도 사람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결과가 아닙니다. AC.87에서는 주님 홀로 사람을 위하여 싸우셨다고 했고, AC.88에서는 주님께서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 자신이 하나님의 입니다. 이것이 창조와 거듭남을 하나로 연결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는 말씀을 사람의 새로운 창조와 연결합니다. AC.88의 중심은 결국 스베덴보리 자신의 한 문장으로 가장 정확하게 정리됩니다. 새로운 창조,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입니다. (AC.88 해설)

 

 

 

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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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7, 창2:2-3, '주님 홀로 사람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주님께서 쉬셨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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