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힛데겔강’(river Hiddekel)은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합니다. ‘앗수르’(Asshur)는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은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랏’(Phrath), 곧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해설

AC.118은 셋째 강 힛데겔과 넷째 강 유브라데를 설명하면서 에덴에서 나온 네 강의 구조를 거의 완성합니다. 힛데겔은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그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앞의 두 강이 의지와 이해에 관계했다면, 이제 셋째와 넷째 강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까지 나타나면서 천적 인간 안에 있는 것들이 더욱 바깥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 대한 설명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힛데겔은 이성이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각각의 의미보다,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성의 참된 명철함은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은 AC.115에서 처음 분명하게 등장한 ‘유입’의 설명을 한층 구체화합니다. 거기서는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유입의 근원과 통로와 도착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성의 명철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따라서 사람의 이성이 참으로 밝아지는 것은 이성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99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질서가 회복된 사람에게서 주님께서 사랑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했습니다. AC.118에서는 그 가운데 특히 이성적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거듭남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근원에서 생명을 받아야 할 겉 사람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랏’, 곧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앞에서 기억지식을 부정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이유를 다시 보여 줍니다. 기억지식이 최하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묘사되는 질서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같은 겉 사람의 능력에 이르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가장 바깥 경계에 놓입니다. 문제는 기억지식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고, 그 가장 바깥의 것을 근원으로 삼아 위의 질서를 거꾸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118은 AC.80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천적 인간이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성과 기억지식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기억지식은 분명히 전체 질서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적 마음 역시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명철함을 받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성과 기억지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질서입니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이 스스로 근원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속 사람을 통하여 받아들이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AC.118은 네 강에 관한 설명 가운데서도 유입의 방향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주는 번호입니다. 사람에게 이성적 마음과 기억지식이 실제로 있지만, 참된 명철함의 근원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최하위 또는 경계를 이룹니다. 이렇게 볼 때 에덴의 강들은 천적 인간 안에 있는 여러 능력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질서를 이루며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C.118)

 

 

 

AC.119, 창2:14, ‘앗수르는 이성을 의미한다 -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앗수르’(Asshur)가 이성적 마음, 곧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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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구스와 스바 -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하는 말씀의 지명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더욱이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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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들과 향료가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들과 같은 것들을 뜻합니다. 이것은 앞서 인용한 사60:6, 마2:1, 11, 시72:15의 구절들(AC.113)에서도 분명합니다. The “land of Cush,” 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말씀에서 ‘구스’(Cush), 곧 ‘에티오피아’(Ethiopia)와 ‘스바’(Sheba)가 이와 유사한 것들을 뜻한다는 것은 선지서에서도 분명합니다. 스바냐에서는 ‘구스의 강들’(rivers of Cush)도 언급됩니다. 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 “Cush” or “Ethiopia,” and also by “Sheba,”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 “rivers of Cush” are mentioned: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습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또 다니엘에서는 북방 왕과 남방 왕에 관하여,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라고 합니다. 여기서 ‘애굽’(Egypt)은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Ethiopians)은 앎들을 뜻합니다. where “Egypt” 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 “Ethiopians” knowledges.

 

[2] 에스겔에서도,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라고 하는데, 이들도 마찬가지로 신앙에 관한 앎들을 뜻합니다. 또 주님에 관하여, 따라서 천적 인간에 관하여 말하는 시편에서는,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라고 합니다. 이 말씀들은 앞뒤 구절과의 연결에서 분명한 것처럼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뜻합니다. 솔로몬에게 와서 어려운 질문들을 하고 향료와 금과 보석들을 가져온 스바 여왕도 이와 유사한 것들을 뜻했습니다(왕상10:1-2).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 2)

 

말씀의 역사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은 선지서에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뜻하고, 표상하며,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해설

AC.117은 앞의 AC.116에서 ‘구스 땅’이 마음 또는 능력을 뜻하고, 기혼이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을 뜻한다고 한 해석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하여 뒷받침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구스, 곧 에티오피아에 금과 보석과 향료가 풍부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앞의 AC.113-114에서 금은 선을, 보석은 신앙의 진리를 나타냈고, 향료와 같은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것들과 연결되었습니다. 따라서 구스와 그 부요함은 여기서 단순한 지역적 풍요를 넘어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들을 나타내는 말씀의 이미지가 됩니다.

 

습3:5, 9-10을 인용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여기에는 ‘구스의 강들’이 등장하고, 그 너머에서 주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예물을 가져옵니다. 지금 창2:13에서도 둘째 강 기혼이 ‘구스 온 땅을 두른다’고 했으므로, ‘강’과 ‘구스’가 함께 등장하는 이 말씀은 기혼과 구스의 속뜻을 뒷받침합니다. 더구나 그곳에서 오는 것은 주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따라서 구스와 관련된 앎들은 단순히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 속하며 주님을 향하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11:43은 이 번호에서 특히 중요한 구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애굽’은 기억지식을 뜻하고 ‘구스 사람들’은 앎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두 표현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서는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앞의 AC.111에서 겉 사람이 기억지식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여기는 문제를 지적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기억지식은 사람이 외적으로 배우고 기억하는 지식과 관계되지만, 여기서 구스가 나타내는 앎들은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AC.116-117의 기혼을 단순히 지식이 많아지는 상태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겔27:22의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이 향료와 보석과 금을 가져오는 장면도 같은 의미를 뒷받침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들을 ‘신앙에 관한 앎들’과 연결합니다. 여기에서도 금과 보석과 향료가 다시 함께 등장합니다. 앞 번호들에서 각각 따로 설명했던 선과 진리, 그리고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이제 ‘앎들’이라는 주제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스와 스바가 나타내는 앎은 생명과 분리된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선과 진리의 내용,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을 알고 있는 상태와 관계됩니다.

 

시72:7, 10에서는 다시스와 섬의 왕들, 스바와 시바의 왕들이 예물을 드립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시편이 주님에 관하여 말하며, 따라서 천적 인간에 관하여 말한다고 설명하고, 이 말씀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에 관하여, 따라서 천적 인간에 관하여’라는 연결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천적 인간을 동일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천적 인간에게 있는 참된 사랑과 신앙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지금까지의 설명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천적 인간 안에 나타나는 신앙의 천적인 것들은 그 사람 자신에게서 독립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의 질서에 속합니다.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스바 여왕은 어려운 질문들을 가지고 솔로몬에게 와서 향료와 금과 보석을 가져왔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역사적 사건에도 앞의 선지서에서 본 것과 유사한 것들이 표상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마지막 문장이 중요해집니다. ‘말씀의 역사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은 선지서에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뜻하고, 표상하며, 그 안에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역사적 서술도 단순히 과거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내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말씀 이해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따라서 AC.117의 여러 인용은 ‘구스 = 앎’이라는 대응 하나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의 나열에 그치지 않습니다. 금과 보석과 향료, 구스와 스바, 예물과 경배라는 이미지들이 반복되면서,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이 사랑과 신앙의 생명 안에 있을 때 어떤 성질을 가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창2:13의 기혼으로 돌아오면 그 흐름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생명의 강이 이제 인간의 이해와 그 안에 있는 선과 진리의 앎들에까지 이릅니다. 사람은 단순히 기억지식을 쌓아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신앙의 생명 안에서 선과 진리를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기혼과 구스는 바로 그 이해와 앎의 영역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AC.117 해설)

 

 

 

AC.116, 창2:13, ‘기혼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을 뜻함’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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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을 뜻하고, ‘구스 땅’(land of Cush)은 마음 또는 능력을 뜻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강에 관하여 말한 것은 의지에 관계하고, 이 둘째 강에 관하여 말한 것은 이해에 관계하는데, 선과 진리에 관한 앎들은 이해에 속합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해설

AC.116은 에덴에서 나온 네 강 가운데 둘째 강 ‘기혼’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기혼은 ‘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을 뜻하고, 기혼이 두르는 ‘구스 땅’은 마음 또는 능력을 뜻합니다. 앞의 첫째 강 비손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을 나타냈다면, 이제 둘째 강 기혼은 선과 진리에 관한 ‘앎’과 관계됩니다. 이로써 에덴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강이 여러 강으로 갈라진다는 말씀이 인간 안의 서로 구별되는 능력과 그 작용을 점점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앎’을 앞에서 자주 등장했던 ‘기억지식’과 곧바로 같은 것으로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문에서도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cognitio와 cognitiones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AC.111에서 겉 사람들이 거의 기억지식밖에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부른다고 했던 것과 달리, 여기서 말하는 앎들은 ‘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들입니다. 따라서 기혼이 나타내는 것은 단순히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축적하는 능력이 아니라, 선과 진리에 관한 것들을 알고 이해하는 데 관계된 마음의 영역입니다.

 

이 점은 이어지는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을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앞의 AC.111에서는 많은 사람이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16은 그 원리를 네 강의 해석에 직접 적용합니다. 첫째 강에 관한 것은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에 관한 것은 이해에 관계합니다. 하나의 마음 안에 의지와 이해가 있으면서도 둘은 서로 구별되고, 에덴의 첫째 강과 둘째 강은 그 구별되는 두 측면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기혼은 이해와 관계할까요? AC.116 자체가 그 이유를 바로 밝혀 줍니다. ‘선과 진리에 관한 앎들은 이해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단순히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선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지,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받아들이는 능력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기혼’이 나타내는 앎은 인간의 이해 안에서 선과 진리에 관한 것들이 자리 잡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강과 둘째 강을 함께 보면 앞에서 다소 추상적으로 들렸던 의지와 이해의 구별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AC.110-115에서 첫째 강 비손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과 관계되었고, 그 설명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제 둘째 강 기혼은 선과 진리에 관한 앎들을 가진 이해와 관계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마음을 하나의 막연한 영적 능력으로 다루지 않고, 의지와 이해라는 서로 구별되는 두 능력이 하나의 마음을 이루며 각각 고유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별 역시 인간의 능력을 주님과 독립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설명되는 네 강 전체의 출발점은 여전히 에덴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강입니다. 앞에서 그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며, 그 지혜가 동산을 적셔 지성을 주는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AC.107). 그리고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는 모두 그 근원에서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AC.112). 그러므로 의지와 이해, 그리고 그 이해 안에 있는 선과 진리의 앎들도 그 생명의 근원을 자기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AC.116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도 다시 에덴의 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잊지 않게 합니다. 마음에는 의지와 이해가 있고, 이해에는 선과 진리에 관한 앎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살아 있는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것은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는 것처럼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기혼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선과 진리를 파악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보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질서 안에서 인간의 이해가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 둘째 강입니다. (AC.116 해설)  

 

심화

1. ‘비손은 지성을 뜻하는데 왜 첫째 강은 의지에 관계한다고 하는가?’

 

AC.116 심화 1, ‘비손은 지성을 뜻하는데 왜 첫째 강은 의지에 관계한다고 하는가?’

AC.116 심화1. ‘비손은 지성을 뜻하는데 왜 첫째 강은 의지에 관계한다고 하는가?’ AC.110에서는 첫째 강 ‘비손’을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AC.116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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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구스는 사랑과 신앙에 속한 앎들을 뜻함’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또한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들과 향료가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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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하윌라 땅과 비손이 두르는 것은 지성과 그 유입을 뜻함’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태고인들은 ‘땅들’(lands)에 관하여 말할 때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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