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 심화

1.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C.2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in general and in particular)는 얼핏 보면 단순한 강조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읽는 데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더구나 이 표현은 AC.1에도 이미 등장했고, AC.2에서는 가장 작은 세부적인 하나하나, 가장 미세한 하나에 이르기까지도라는 말이 뒤따르면서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스베덴보리가 굳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전체적으로는 말씀이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에서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와 종교적인 믿음 등에 관계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개별적으로나라고 덧붙입니다. 말씀의 큰 이야기와 중심 주제만 내적인 것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이루는 개별적인 것들에도 내적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AC.2에서는 이것을 더욱 강화하여 가장 작은 세부적인 하나하나, 가장 미세한 하나에 이르기까지도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의미하고 품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AC의 해설 방식이 왜 그토록 세밀한지를 이해하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한 장 전체가 어떤 내적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몇몇 중요한 구절만 속뜻을 가지고 나머지는 그 이야기를 이어 주는 장식이나 배경이라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인물과 장소, 행동과 사물, 숫자와 방향, 반복되는 표현들까지 하나씩 살핍니다. 그렇게 하는 근거가 바로 말씀의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내적인 것을 품고 있다는 그의 확신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개별적으로를 각 단어 하나에 언제나 하나의 고정된 상응 뜻을 기계적으로 대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를 읽어 가면 같은 말도 문맥과 연결 관계에 따라 그 의미가 드러나는 방식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작은 세부에까지 속뜻이 있다는 것과 모든 단어를 고정된 상응 사전으로 해독할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전자는 AC.2가 직접 선언하는 말씀의 성격이고, 후자는 우리가 그 선언을 잘못 사용하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해석 방식입니다.

 

그리고 AC.2에서는 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가 특별히 주님과 연결됩니다. 말씀 안의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 생명 자체이신 주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말씀에는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의 궁극적인 초점은 단순히 성경의 모든 단어에는 숨은 뜻이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내적인 것들이 각기 그 나름의 방식으로 주님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라는 표현은 AC의 방대한 세부 해설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말씀의 전체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그 이야기를 이루는 개별적인 것들까지 내적인 것을 품고 있으며,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 확신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말씀을 큰 주제만 요약하지 않고 가장 세밀한 표현들까지 따라가며 해설합니다. (AC.2 심화 1)

 

 

 

AC.2 심화 2,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the Lord, who is the very life itself)

AC.2 심화2.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the Lord, who is the very life itself) AC.2에서 스베덴보리는 주님을 단지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지 않고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the Lord, who is the very l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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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 서문, ‘말씀의 생명은 주님에게서 온다’

AC.2그러나 기독교 세계는 아직도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아니 가장 작은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 가장 미세한 점 하나에 이르기까지도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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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4. 신적 진리(Divine Truth) 무엇인가?

 

AC.1 해설을 읽다가 신적 진리(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AC.1 원문 자체에는 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말씀의 내적인 것과 그 근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해설에 사용된 스베덴보리의 중요한 신학 용어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AC.1 어떤 단어를 신적 진리라고 번역한 것인가?가 아니라 해설에서 말한 신적 진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신적 진리는 단순히 인간이 알고 있는 옳은 정보나 참된 명제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 근원이 주님께 있는 진리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사실과 진리를 알 수 있지만, 신적이라는 말이 붙을 때에는 그 출처가 인간의 지식이나 추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적 진리는 말씀과도 깊이 연결되고, 인간에게 빛을 주며 선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인간의 이해 속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키기 시작할 비로소 신적 진리가 된다고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신적 진리가 신적인 것은 인간에게 어떤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 근원 자체가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 신적 진리를 자신의 이해와 삶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이 점은 AC.1과도 잘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구약의 외적 의식과 규례와 역사처럼 보이는 것들 안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주님과 주님의 천국과 교회 등에 관계한다고 선언합니다. 이때 말씀을 단순한 인간의 종교 문헌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 신적 진리라는 개념은 앞으로 매우 중요해집니다. 다만 AC.1 자체가 아직 그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는 그 의미를 미리 지나치게 확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AC.1과 관련하여 신적 진리를 기억할 때에는 우선 두 가지만 붙들면 충분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참인 정보를 뜻하는 말이 아니며, 그 근원이 주님께 있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AC를 읽으면서 말씀과 주님, 선과 진리, 신적 유입에 관한 설명이 쌓이면 신적 진리라는 말의 깊이도 점차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AC.1 심화 4)

 

 

 

AC.1, 서문, ‘말씀 안에 담긴 하늘의 비밀들’

AC.1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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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심화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해설과 심화 2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원어에서는 층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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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3. AC.1 층위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해설과 심화 2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원어에서는 층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서는 먼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AC.1 원문에는 우리가 해설에서 사용한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AC.1층위를 어떤 하나의 영어 또는 라틴어 단어의 번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 저작 전체에서 단계 또는 층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말 가운데 하나는 영어 번역에서 degree, 라틴어에서는 gradus입니다. 특히 서로 질적으로 구별되는 단계들을 설명할 때 이 개념은 스베덴보리의 인간론과 천국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AC.1에서 `gradus`라고 썼고 우리가 그것을 층위라고 번역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존 설명처럼 AC.1층위의 원어가 곧 degree, 더 엄밀히는 discrete degree라고 확정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고 한 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차이를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한국어입니다. 이후 다른 번호에서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gradus나 그 밖의 관련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 자리에서는 각각의 원어와 문맥을 따라 번역해야 합니다.

 

이것은 번역 작업에서 꽤 중요한 원칙입니다. 해설을 위해 사용하는 한국어 개념과 스베덴보리 원문의 전문용어를 서로 혼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층위가 스베덴보리 사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해서 그 단어가 등장하는 모든 해설의 배후에 반드시 하나의 동일한 원어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실제 원문에 gradus가 등장할 때는 그 문맥에서 단계, 층위, 정도 가운데 무엇이 가장 적절한지 따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AC.1 층위에 대한 원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조금 뜻밖입니다. AC.1에는 그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없다입니다. 층위는 우리가 해설에서 사용한 표현이며, 스베덴보리의 단계 개념을 대표하는 중요한 원어 가운데 gradus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둘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구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앞으로 라틴어 원문까지 함께 대조하며 AC를 번역할 때 훨씬 안전한 출발점이 됩니다. (AC.1 심화 3)

 

 

 

AC.1 심화 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심화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해설을 읽다가 ‘신적 진리’(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AC.1 원문 자체에는 ‘Divin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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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2, ‘층위’란 무엇인가?

AC.1 심화2. ‘층위’란 무엇인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말씀의 겉 글자와 그 안의 내적인 것이 단순히 같은 평면에 놓인 두 가지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표현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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