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5, ‘면류관 벗어서’, 찬69, ‘온 천하 만물 우러러입니다.

 

오늘은 2 첫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절로 3, AC 글 번호로는 82번에서 84번입니다만, 2 여는 글들 및 개요 글들 포함, 67번부터 다루겠습니다. 여기 여는 글들은 아래 71번 글을 참고하세요.

 

본문 함께 읽습니다.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1-3)

 

이 본문을

 

일곱째 날, 곧 천적 인간의 상태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AC.67, 창2, '말씀의 내적 의미(속뜻)를 알게 하시고, 알리게 하심'

AC.67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에게는 말씀의 내적 의미(the internal meaning of the Word, 속뜻)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내적 의미 안에는 이전에는 누구에게도 알려진 적이 없었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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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8, 창2,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 반응'

AC.68 저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은 이것이 모두 상상이라고 할 것이며,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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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9, 창2, '사람은 본래 영들,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AC.69 사람은 본래 주님에 의해 이렇게 창조되었습니다. 곧,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실제로 태곳적에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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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0, 창2, ‘소생’, 곧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으로 들어갈 때

AC.70 여러 해 동안 제가 듣고 보았던 것을 밝히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으므로, 여기에서는 먼저 사람이 ‘소생될 때’(when he is being resuscitated), 곧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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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1, 창2, 'AC 전개 방식'

AC.7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말씀 본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 사이에 그대로 끼워 넣게 되면, 그것들은 흩어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그것들을 각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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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2, 창2, '이런 방식을 이 장 끝에서부터 적용'

AC.72 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말해도 좋다는 허락을 저는 받았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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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3, 창2:1-17 개요,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1절)

창2:1-17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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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4, 창2:1-17 개요, '일곱째 날과 안식, 천적 인간'(2-3절)

AC.7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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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5, 창2:1-17 개요, '초목과 채소, 천적 인간의 내적 구조'(5-6절)

AC.75 그의 지식과 그의 이성(knowledge and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에 의해 적셔지는 땅에서 난 초목과 채소(the shrub and the herb)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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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6, 창2:1-17 개요, ‘생명의 숨, 천적 인간의 생명'(7절)

AC.76 그의 생명은 그에게 ‘생명의 숨’(the breath of lives)을 불어넣으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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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7, 창2:1-17 개요, '동방의 에덴동산, 천적 인간의 지성'(8-9절)

AC.77 그다음으로 그의 지성은 ‘동방의 에덴동산’으로 묘사됩니다. 그 안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들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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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8, 창2:1-17 개요, '네 강, 천적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10-14절)

AC.78 지혜(Wisdom)는 동산 가운데 있는 강을 의미합니다. 그로부터 네 강이 나뉘어 나오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good and truth)입니다. 둘째는 모든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knowledge [co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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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창2:1-17 개요, '경작하며 지킴, 천적 인간의 상태'(15절)

AC.79 천적 인간은 이러한 동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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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오직 퍼셉션으로만'(16-17절)

AC.80 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하고 참된지를 아는 지식 얻는 것은 허락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얻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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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천적 인간,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종 상태'

AC.81 이 장은 ‘천적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앞의 장은 ‘죽은 상태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 영적 인간이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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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2,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이제 영적 상태에 이르러(render) ‘여섯째 날’(the 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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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 ‘천지와 만물’(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지니라’(finished)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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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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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최근 개신교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 오랜만에 참 익숙하지만, 그러나 무척 낯설었던 시간을 가졌는데요, 참 익숙했던 건, 제가 개신교에서 50대 후반까지 머물렀었기 때문이고, 또 무척 낯설었던 건 예배와 설교 전반에 아르카나, 즉 ‘속의 언어’가 아닌, 세상 언어, 곧 ‘겉의 언어’가 많이 섞인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아르카나를 처음 접하던 초창기처럼 무슨 반감이 들거나 그러진 않았는데요, 스베덴보리가 죽는 날까지 자신의 배경인 루터교회를 출석했던 거나 주님이 안식일마다 유대교 회당을 찾으셨던 것처럼, 저 역시 전심으로 그 예배에 참여, 함께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웃고 즐거워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두 세계의 언어가 섞인 예배였지만, 속으로 실시간 통역을 하면서 ‘, 이걸 이렇게, 저걸 저렇게 표현한 거구나!’ 하면서 드렸습니다. 우리 안에 와있는 천사들 역시 우리의 일상 일거수일투족 중 그렇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아르카나 순도 8, 90%의 예배는 지상에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100%는 천국에서나 가능하겠지요. 어쩌면 주님이 훗날을 위해 미리 우리 교회를 통해 이것저것 테스트를 진행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과 ‘’은 같이 갑니다. ‘’은 ‘’이라는 그릇에 담기며, ‘’이라는 옷을 입고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동안 자연적 인간과 영적, 천적 인간 역시 같이 갑니다. 우리의 영적, 천적 인간은 겉으로 보기엔 ‘자연적 인간’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쉽진 않으시겠지만, 항상 이 ‘균형’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4-12(D1)

 

2646, 1, 창2.1, 2026-04-12(D1)-주일예배(창2,1-3, AC.67-84),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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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4/05, 창1:26-31, AC.51-66, 부활절),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 (3), 주님의 부활로 본 창1'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4, ‘왕 되신 주’,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161, ‘할렐루야 우리 예수’입니다. 오늘은 창1 일곱 번째, 창1 마지막 시간으로, 본문은 26절로 31절,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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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2:2, 3)

 

AC.84

천적 인간은 일곱째 (seventh day)입니다. 주님께서 여섯 동안 일하셨으므로 그것을 그분의 (his work)이라 하며, 그때 모든 싸움이 그치므로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rest from all his work) 합니다. 때문에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안식(rest)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불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씀 자체로부터 매우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해설

AC.84는 창2일곱째 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힙니다. 스베덴보리는 첫 문장에서 아주 간결하게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일곱째 날은 단순히 창조가 끝난 뒤 이어지는 시간상의 하루가 아니라, 속뜻에서는 거듭남을 통하여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3과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었을 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 됨 가운데 신앙이 아니라 사랑, 곧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AC.84는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천적 상태를 일곱째 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의 차이는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상태 차이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일을 사람의 일이라고 하지 않고 그분의 ’, 곧 주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부터 이어져 온 거듭남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악과 싸우며 실제로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사람 안에서 거듭남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여섯 날 동안의 모든 과정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이라고 불립니다.

 

이 점은 거듭남을 인간 자신의 영적 성취로 이해하지 않게 하는 데 중요합니다. 사람이 여섯 날을 자기 힘으로 통과하여 마침내 일곱째 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 안에서 일하시며 그를 죽은 상태에서 영적 인간으로, 그리고 천적 인간의 상태로 이끄십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자유롭게 주님의 역사에 응답하고 악과 싸우지만, 생명과 선과 진리의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이어지는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말은 AC.81과 직접 연결됩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만 언제나 승리한다고 했고,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을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4에서는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이유를 바로 이 싸움의 그침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안식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정적인 휴식이 아닙니다. 그 앞에는 여섯 날 동안의 주님의 일이 있고, 그 과정에는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적 상태에서는 그 싸움이 그칩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악과 거짓이 이전처럼 사람 안에서 서로 맞서는 싸움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도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말을 천적 인간에게 악과 거짓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81은 천적 인간도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다만 그는 그것들을 멸시합니다. 즉 악과 거짓이 접근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사람의 내면에서 선과 진리와 대등하게 다투며 그를 흔드는 상태가 더 이상 지배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안식을 인간처럼 일을 많이 하신 뒤 피곤하여 쉬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속뜻의 초점은 주님께서 피로를 회복하신다는 데 있지 않고, 사람 안에서 이루시던 거듭남의 싸움이 안식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쉬신다는 표현은 사실 인간에게 일어난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악과 거짓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주님께서 그를 거듭나게 하시는 일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 상태에 이르러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싸움이 그치면, 그 상태가 주님의 안식으로 묘사됩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의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고 안식일이라 불렸다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안식일은 히브리어의 , 그침이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AC.84에서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 어원 자체보다 그것이 나타내는 영적 상태입니다. 안식일이 거룩한 것은 단순히 일하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이루신 거듭남의 일이 싸움을 지나 안식에 이른 천적 상태를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안식일의 거룩함도 외적인 휴식 규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외적인 안식일은 그보다 더 깊은 내적 실재를 표상합니다. 인간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려는 질서가 물러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이 주된 것이 될 때, 그 사람의 내면에 안식일이 의미하는 상태가 이루어집니다.

 

다만 여기서 싸움이 그쳤다는 것을 거듭난 사람이 현실에서 더 이상 어떤 갈등이나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AC.84가 말하는 combat은 일반적인 인생의 고난이나 심리적 갈등 전체가 아니라 거듭남의 문맥에서 악과 거짓에 맞서는 영적 싸움입니다. 따라서 일곱째 날을 이제 삶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상태로 이해하면 본문의 뜻을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천적 인간의 안식을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도달하여 확보하는 완전무결한 상태처럼 생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 번호에서 여섯 날의 일이 명시적으로 그분의 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인간이 자기 수행으로 획득한 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신 거듭남의 질서에서 오는 상태입니다.

 

AC.84의 마지막 문장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스베덴보리는 비슷해 보이는 세 동사를 나란히 사용합니다. 이번 번호 자체에서는 그 차이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각각에 확정적인 상응을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표현은 창1과 창2에서 다루어진 창조가 단순히 최초 인간의 육체적 제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의 문맥에서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1에서 죽어 있던 사람은 여섯 날을 거쳐 영적 인간으로 형성되었고, 2에서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천적 인간의 상태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인간의 참된 창조는 그의 내적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형성되는 것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문장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자연계의 하늘과 땅, 빛과 광명체, 식물과 동물, 사람의 창조를 말하는 문자적 서술 안에서 그는 인간의 거듭남이라는 속뜻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의 끝에서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AC.83AC.84를 함께 보면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 넘어가는 구조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여섯째 날에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일곱째 날에는 그 천적 질서가 이루어져 싸움이 그칩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이 바로 일곱째 이며, 그 상태가 주님의 안식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식이 거듭남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이 지향하는 상태라는 점입니다. 여섯 날 동안의 싸움과 변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영원히 싸움 속에서만 살도록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을 사랑하고 진리를 퍼셉션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자유와 기쁨이 되는 질서로 이끄십니다. AC.81에서 천적 인간의 결박이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한 것도 이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수동성이 아니라 질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악과 거짓의 강제와 저항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사랑과 자유에서 나오므로 그 자체가 기쁨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죽은 정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평화에 가깝습니다.

 

AC.84는 또한 주님의 주님의 안식이 모두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듭남과 관계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여섯 날 동안 주님께서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다는 말씀을 인간 밖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행동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그 일을 어떤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가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2에서 제시된 원리와도 잘 맞습니다. 거기서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고 했고, 하늘과 땅 역시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이제 안식일 역시 인간 밖의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천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말씀의 큰 표상들이 한 사람의 거듭남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AC.84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는 문장은 단순한 상응 하나를 알려 주는 문장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창1에서 시작된 거듭남의 운동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며,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마침내 싸움이 그쳐 주님의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영적 인간의 싸움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싸움은 안식에 이르는 과정이며,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언제나 승리한다고까지 표현되었습니다. 양심에 따라 악과 싸우는 영적 상태는 실패한 상태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거듭남의 실제적인 과정입니다. 일곱째 날의 안식은 그 여섯 날의 일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합니다.

 

결국 AC.84에서 안식일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로 깊어집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이며, 여섯 날 동안의 일은 주님의 이고,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쉬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스베덴보리는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인간의 거듭남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여섯 날의 일과 일곱째 날의 안식은 바로 그 창조의 질서를 묘사합니다. 천적 인간은 그 안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며, 그래서 그 자신이 일곱째 입니다. (AC.84)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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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될 때,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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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1)

 

AC.83

하늘과 땅과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사람이 여섯째 (sixth day) 되었을 이루어졌다(finished) 합니다. 그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룰 때에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이,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are said to be finished,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 for then faith and love make a one. When they do this, love, and not faith, or in other words the celestial principle, and not the spiritual, begins to be the principal, and this is to be a celestial man.

 

해설

AC.83은 창1의 여섯째 날에서 창2의 천적 인간으로 넘어가는 전환을 매우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AC.82에서는 하늘이 속 사람, ‘이 겉 사람이며, ‘ 모든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AC.83은 왜 이 모든 것이 사람이 여섯째 이 되었을 때 이루어졌다고 하는지를 밝힙니다. 그 이유는 그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먼저 중요한 것은 이루어졌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거듭남에 더 이상 아무런 변화도 남아 있지 않은 절대적인 완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1에서 다루어진 영적 인간의 형성이 하나의 완성된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바로 이어지는 창2에서는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는 더 깊은 변화가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의 완성은 끝이라기보다 다음 상태로 넘어갈 수 있는 충만한 상태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상태의 핵심이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는 입니다. 1의 거듭남 과정에서 사람은 먼저 진리를 배우고 신앙을 통하여 선으로 인도됩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참인지 배우고, 그것을 믿으며, 그 진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신앙으로 받아들인 진리는 점차 삶의 선과 결합합니다. 사람이 단지 이것이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실제로 그것을 사랑하고 행하게 될 때, 신앙과 사랑은 더 이상 서로 떨어진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AC.81에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비교한 내용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천적인 진리와 선을 사랑으로부터라기보다는 신앙의 원리로부터인정하고 행동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랑으로부터 행동합니다. AC.83은 바로 그 전환을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의 변화는 신앙을 버리고 사랑만 남기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 점을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과 사랑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둘의 질서입니다. 이전에는 신앙이 앞에서 사람을 인도했다면, 이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신앙은 그 사랑과 하나 되어 존재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신앙이 아니라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신앙이 아니라는 말을 신앙이 중요하지 않게 되거나 필요 없어졌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미 첫 문장에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그대로 있지만 이제 독립적으로 앞장서는 원리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사랑과 하나 된 신앙이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된다는 다음 표현으로 다시 설명됩니다. 여기서도 영적인 것이 제거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the spiritualthe celestial의 관계는 서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없애는 관계가 아니라 무엇이 주된 것이며 무엇이 그 주된 것에 종속되어 질서를 이루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랑이 주된 것이 될 때 그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됩니다.

 

따라서 AC.83에서 천적 인간을 정의하는 핵심은 단순히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 됨 가운데 사랑이 주된 것이 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강하다고 해서 곧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 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그 가운데 사랑이 삶을 이끄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주된 이라는 개념도 중요합니다. 인간 안에는 사랑, 신앙, 지식, 이성, 기억지식 등 여러 가지가 함께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 가운데 무엇이 중심에서 다른 것들을 질서 있게 이끄느냐입니다. AC.78에서도 속 사람과 겉 사람에 속한 모든 것이 지혜에서 나오고, 그 지혜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3은 그 질서의 중심에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고 밝힙니다.

 

이 점에서 AC.83은 앞의 AC.77에서 생명나무가 사랑을, 지식의 나무가 신앙을 의미한다고 한 것과도 연결됩니다. 사랑과 신앙은 모두 천적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천적 질서에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며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문제를 이해할 때도 단순히 신앙이 나쁘다거나 지식이 나쁘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신앙과 지식이 사랑에서 분리되어 스스로 주된 것이 되려는 데 있습니다.

 

AC.83은 또한 왜 창2가 창1의 반복이 아닌지를 보여 줍니다. 1에서 사람은 여섯째 날에 이르러 영적 인간으로 형성됩니다. 사랑과 신앙도 이미 존재합니다. 그런데 창2에서는 그 둘의 내적 질서가 더욱 깊어져 사랑이 주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창2의 천적 인간은 창1의 영적 인간과 전혀 별개의 새로운 인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거듭나게 하신 영적 인간이 더 깊은 천적 질서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여기서 되기 시작한다는 표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고만 하지 않고 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사이의 전환적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여섯째 날에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하고, 이어지는 일곱째 날에서 천적 인간의 상태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따라서 거듭남을 너무 딱딱한 단계표로 나누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순간까지는 완전히 영적 인간이었다가 다음 순간 갑자기 완전히 다른 천적 인간으로 바뀐다는 식보다는, 신앙과 사랑이 결합되고 그 질서가 변화하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어 가는 과정으로 읽는 것이 AC.83의 표현에 더 잘 맞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데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이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순종하는 일이 많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진리를 붙들고 행동합니다. 이것은 결코 낮게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 인간의 거듭남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거듭남을 계속 이루어 가시면, 이전에는 의무와 양심으로 행하던 선을 점차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하는 으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진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가 사랑과 하나가 되어 삶 자체가 됩니다. AC.83이 말하는 신앙과 사랑의 하나 됨을 우리의 경험에 적용한다면 이런 방향에서 조심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의무감으로 하는 신앙은 가치가 없고 자발적인 사랑만 참된 것이다라는 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인간의 신앙과 양심도 주님께서 거듭남 가운데 형성하시는 귀중한 것입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으나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붙들고 양심에 따라 악과 싸우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사랑의 질서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의 차이를 우열만으로 보는 것보다 주도 원리의 차이로 보는 것이 이번 번호에서는 특히 중요합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신앙이 주도적인 위치에서 사람을 선으로 인도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신앙이 그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둘 다 주님의 거듭남의 질서 안에 있지만 그 내적 형태가 다릅니다.

 

AC.83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는 말로 신앙과 삶의 관계도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이 머리 안의 교리적 동의로만 남고 실제 사랑과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직 하나를 이룬 상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사랑이라고 주장하면서 진리를 떠나는 것도 AC.83의 하나 됨과 다릅니다. 여기서 하나가 되는 것은 바로 신앙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에게 신앙과 체어리티가 분리될 수 없다는 더 넓은 가르침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만 AC.83의 직접적인 문맥은 일반적인 신앙과 체어리티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신앙과 사랑의 질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밝히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 더 넓은 교리 전체를 이번 번호에 모두 끌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는 것을 두 개의 독립적인 실체가 나중에 기계적으로 합쳐진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본래 삶을 향하고, 참된 사랑은 진리와 함께합니다. 거듭남 가운데 주님께서는 사람이 받아들인 진리가 선의 삶과 결합되도록 이끄십니다. 그 결합이 깊어질수록 사람이 아는 것과 원하는 것, 믿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의 분열도 줄어듭니다.

 

바로 이 점에서 여섯째 날의 이루어짐이 이해됩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형성되고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갖추어진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이 서로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인간 안의 영적 질서가 하나의 완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완성은 곧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하면서 천적 인간의 상태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안식과 일곱째 날은 바로 그 상태를 더 깊이 보여 줄 것입니다. 따라서 창2:1 이루어지니라는 말씀은 창1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창2의 천적 상태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

 

AC.82AC.83을 함께 읽으면 창2:1의 속뜻이 상당히 분명해집니다. ‘하늘은 속 사람이고 은 겉 사람이며, ‘ 모든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지식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어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하나 됨 가운데 이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AC.83의 핵심은 단순히 사랑이 신앙보다 중요하다는 문장으로 축약하면 오히려 놓치는 것이 생깁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하나 가운데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입니다. 신앙은 제거되지 않고 사랑 안에서 자신의 참된 자리를 얻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넘어가는 전환입니다.

 

결국 AC.83은 천적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매우 명료하게 보여 줍니다. 신앙만으로 천적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을 버리고 사랑만 남김으로 천적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거듭남 가운데 신앙과 사랑을 하나 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사랑이 주된 것이 되게 하실 때 영적인 질서가 천적인 질서로 깊어집니다. 이것이 창2에서 말하는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AC.83)

 

 

 

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모든 싸움이 그친 안식의 상태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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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2, 창2:1, ‘하늘은 속 사람, 땅은 겉 사람 - 한 사람이 곧 교회여야 한다’ (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이 말씀은 이제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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