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창2:5, 6)
AC.90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과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은 일반적으로 그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겉 사람은 그가 영적 인간으로 있는 동안에는 ‘땅’(earth)이라 불리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ground), 그리고 또한 ‘들’(field)이라 불립니다. 곧이어 ‘안개’(mist)라고 불리는 ‘비’(Rain)는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입니다. By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are meant in general all that his external man produces. The external man is called “earth” while he remains spiritual, but “ground” and also “field” when he becomes celestial. “Rain,” which is soon after called “mist,” is the tranquility of peace when combat ceases.
해설
AC.90은 바로 앞 AC.89에서 제시한 어휘 변화 가운데 하나를 곧바로 설명합니다. 창2에서는 앞의 창조 기사와 달리 ‘땅’뿐 아니라 ‘지면’과 ‘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문체상의 변화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은 일반적으로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나오는 식물의 표현들은 자연계의 식물 자체보다 천적 인간의 겉 사람 안에서 나타나는 것들을 묘사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같은 겉 사람을 가리키면서도 인간의 상태에 따라 말씀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있는 동안 그의 겉 사람은 ‘땅(earth)’이라 불리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ground)’, 그리고 ‘들(field)’이라 불립니다. AC.8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2에 들어오면서 이전에는 없던 ‘지면’과 ‘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천적 인간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습니다. AC.90은 이제 그 이유를 직접 밝힙니다. 겉 사람 자체가 없어지거나 전혀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겉 사람이 천적 질서 안에 들어감에 따라 그것을 나타내는 말씀의 표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점은 AC.89의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 곧 하늘로부터 시작된다’는 설명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속 사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갖게 되면 그 질서가 겉 사람에까지 미치고, 겉 사람은 그에 따라 산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이 ‘그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말은 겉 사람이 독립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앞 AC.88에서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고 했고, AC.89에서는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90의 겉 사람의 산출 역시 그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땅’, ‘지면’, ‘들’을 하나의 고정된 상응 사전처럼 다루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AC.90이 직접 말하는 범위는 현재의 문맥에서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이 ‘땅’이라 불리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은 ‘지면’과 ‘들’이라 불린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물의 명칭 자체보다 인간의 내적 상태가 달라지면서 동일한 겉 사람도 말씀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앞 AC.88에서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비슷해 보이는 표현에도 서로 구별되는 관념이 있다고 한 것과 함께,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세밀한 어휘 차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읽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 문장은 다시 안식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스베덴보리는 ‘비’를 곧이어 나올 ‘안개’와 연결하면서 그것을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AC.84-87의 흐름과 직접 이어집니다. 여섯 날 동안에는 싸움과 수고가 있었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또는 안식일이 될 때 싸움이 그칩니다. AC.87에서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면서 싸움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90은 그 뒤에 오는 상태를 단순히 ‘싸움이 없음’이라는 소극적인 상태로만 말하지 않고 ‘평화의 평온’이라는 적극적인 상태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단순히 외부의 갈등이 없거나 마음이 잠시 편안한 심리 상태와 같지 않습니다. 문맥상 이것은 거듭남의 싸움이 그치고 주님의 질서가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흘러들어 가는 천적 상태의 평온입니다. 바로 앞 AC.85에서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결과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AC.90의 ‘평화의 평온’도 그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와 ‘안개’는 그러한 안식의 상태와 관련하여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것입니다.
결국 AC.90은 짧은 번호 안에서 창2의 새로운 어휘와 천적 인간의 상태를 연결합니다.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을 나타내던 ‘땅’은 천적 인간의 문맥에서 ‘지면’과 ‘들’로 표현되고, 그 겉 사람에서 산출되는 것들은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싸움 이후의 ‘평화의 평온’이라는 상태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AC.89가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면, AC.90은 그 속 사람의 질서 아래 놓인 겉 사람이 어떤 새로운 상태에 들어가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하는 번호입니다. (AC.90)
AC.91, 창2:5-6,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기 시작할 때, 싸움은 그치고 평온이 온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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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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