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2023/4/2)

 

1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5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눅6:1-5)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0)

 

십계명, 즉 십성언(十聖言)에 따라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가 구전 율법으로 아주 상세하게 규정되어 왔는데요...

 

먼저, ‘안식일’(the Sabbath)의 속뜻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신성 그 자체(the Divine Itself)와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 of the Lord) 간 하나 됨(the union)을, 내적 의미(the internal sense)로는, 신적 인성과 천국들, 즉 천국 간 결합(the conjunction)을, 그래서 그곳 선과 진리 간 결혼(the marriage of good and truth)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쉼과 평화, 천국 상태에 있으라는 말씀이며, 이는 곧 모든 염려, 불안,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그러므로 복된 상태에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이는 곧 자아로 말미암은 일체의 것들은 금하고, 대신 오직 주님 뜻에 부합, 합당한 것들을 하라는 말씀이지요. 사람이 이 상태에 있을 때가 바로 참 ‘안식일’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뜻을 몰랐던 유대인들은 그 수많은 ‘하지 말라’는 규례, 규정들을 지키느라 진정 안식일에도 도무지 쉴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싶습니다.

 

천국은 시공간의 나라가 아닌, 상태와 그 변화의 나라입니다. 즉 지상의 춘하추동, 그리고 아침, 낮, 오후와 저녁 등 일상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천국에도 열과 빛의 변화, 즉 주님의 선인 열과, 진리인 빛은 늘 영원불변하시지만, 각 구성원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변화, 즉 주님의 선과 진리에 대한 각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저들 각 개인이 느끼는 상태의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어, 영으로는 천국과 지옥, 육으로는 지상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 ‘천국과 지옥’이라 함은 천국과 지옥에서 각각 파견된 천사들과 악한 영들이 모든 사람에게 와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외적인 것, 곧 세상을 생각하고, 감각적인 것에서 기쁨을 찾고자 할 때, 그것이 천국에선 어두움이요, 추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아와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주님 향해 시선 고정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신 주님 말씀 꼭 기억하고,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늘 ‘안식일’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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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레위(마태)더러 나를 따르라 하신 이유’ (2023/3/30)

 

27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있는지라... (눅5:27-39)

 

레위’라는 이름의 속뜻은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이고, ‘세리’라는 직업의 속뜻은 이방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 곧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과 진리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 하여 저절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사람인 것도,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 하여 무조건 자아 사랑, 세상 사랑의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레위더러 나를 따르라 하신 그 속뜻은 교회 밖 이방인 가운데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셔서 제자를 삼으심입니다.

 

일상의 삶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가령 예를 들면, 자기 직업과 관련된 일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정직하고 성실, 근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보다도 먼저 말입니다.

 

쓰임새’(use)와도 통하는데요, 주님께 쓰임 받는다는 생각, 이 쓰임을 통해 더 큰 어떤 주님의 공공선에 기여한다는 생각, 또 이 쓰임, 이 직업과 관련된 모든 것 안에 주님이 계신다는 생각, 그래서 아주 사소한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으며, 관련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생각 등등...

 

이 모든 것이 주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베드로처럼 레위도 그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어안이 벙벙한 따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레위처럼 자신의 일터에서 주님 눈에 들어 제자로 부르심 받는 큰 축복의 하루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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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침상째 달아 내려진 한 중풍병자’ (2023/3/29)

 

...18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5:17-26)

 

나병’의 속뜻, 그 영적 의미가 ‘영적 모독’, 즉 마음으로 시인하고 인정한 주님 말씀을 버젓이 범하고 있는 것이라면, ‘중풍병자’는 진리를 따라 살고자 애는 쓰나 살아낼 능력이 없는 사람, 즉 악을 멀리하려 해도 잘 안되고, 선을 행하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며, 그래서 좌절하는 경우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주님, 주님은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학습해서 아는 진리와는 달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는 그 안에 선이 들어있는 진리, 선을 동반한 진리, 선을 행할 능력이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주님 사이 연결을 가로막는 벽을 오늘 본문에서는 ‘무리’로 표현했습니다.

 

주님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그리고 직접적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선일지라도 일단 행하여 습관 들이는 것이 필요하며, 안 하던 걸 하려니 그 쉽지 않음이 마치 지붕을 뜯는 것과 같아 본문에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중보기도 하기, 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 직장 동료들을 친절하게 대하기,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자식 간에 선한 말, 사랑의 말로 대화하기 등등...

 

선 안에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크고 작은 선을 통해 그 물꼬를 트면, 그때부터 우리 안에 주님의 능력이 흘러들어와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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