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

 

44. 24절, 25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Verse 24. 25,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사람은 땅처럼 먼저 자기 안에 신앙에 관한 지식이 심기지 않고는 어떤 선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Man, like the earth, can produce nothing of good unless the knowledges of faith are first sown in him, whereby he may know what is to be believed and done.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가,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의지(will)가 하는 일입니다. It is the office of the understanding to hear the Word, and of the will to do it.

 

말씀을 듣고 있지만 그걸 행하지는 않는다는 건, 마치 실제론 믿음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말로는 믿는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들음과 행함을 분리, 결국 일종의 나뉜 마음이 되는 것이며, 주님이 다음 구절들에서 '어리석다' 하신 사람들처럼 되는 겁니다. To hear the Word and not to do it, is like saying that we believe when we do not live according to our belief; in which case we separate hearing and doing, and thus have a divided mind, and become of those whom the Lord calls “foolish” in the following passage: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4, 26) Whosoever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I will liken unto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a rock; but everyone that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not, I liken to a foolish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the sand. (Matt. 7:24, 26)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앞서 보여드린 대로, 이해에 속한 것들을, 여기 ‘땅은 생물을 내되’,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understanding are signified—as before shown—by 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and also by the “fowl upon the earth,” and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but those which are of the will are signified here by the “living soul which the earth produces,” and by the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also by the “wild animal of that earth.

 

 

45. 태고(太古)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관한 것을 그렇게 상징했고, 그런 이유로, 예언서들과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것, 곧 이해와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Those who lived in the most ancient times thus signified the things relating to the understanding and to the will;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and constantly in the Word of the Old Testament, the like things are represented by different kinds of animals.

 

짐승은 두 종류, 악한 짐승과 선한 짐승이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후자는 우리에게 무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Beasts are of two kinds; the evil, so called because they are hurtful; and the good, which are harmless.

 

사람 속 악들은 악한 짐승들, 예를 들면, 곰, 늑대, 개 등으로 상징되고, 반면, 사람 속 선하고 부드러운 것들은 같은 본성을 가진 짐승들, 곧 어린 암소, 양, 어린 양 등으로 상징됩니다. Evils in man are signified by evil beasts, as by bears, wolves, dogs; and the things which are good and gentle, by beasts of a like nature, as by heifers, sheep, and lambs.

 

여기 언급된 ‘짐승’(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것들이며, 그래서 애정(affections)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는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beasts” here referred to are good and gentle ones, and thus signify affections, because it here treats of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사람 속 더 아래에 있는 것들, 즉, 몸(body)에 더 연결된 것들을 가리켜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 하고, 탐욕(cupidities), 쾌락(pleasures)이라 합니다. The lower things in man, which have more connection with the body, are called “wild animals of that earth,” and are cupidities and pleasures.

 

 

46. ‘짐승’이 사람의 애정, 곧, 악을 지닌 악한 애정과 선을 지닌 선한 애정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 속 많은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에스겔입니다. 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36:9, 11 거듭남을 다루는) Behold, I am for you, and I will look back to you, 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 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Ezek. 36:9, 11, treating of regeneration)

 

요엘서입니다. In Joel: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2:22) Be not afraid ye beasts of my field, for the dwelling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become grassy. (Joel 2:22)

 

다윗 또한 In David also: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73:22) So foolish was I, I was as a beast before thee. (Ps. 73:22)

 

예레미야입니다. 거듭남을 다루는 가운데 In Jeremiah, treating of regeneration: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27-28) 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 (Jer. 31:27–28)

 

[2]땅의 짐승’ 역시 유사한 상징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Wild animals” have a similar signification, as in Hosea: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 (Hos. 2:18)

 

욥기에 In Job: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욥5:22-23) 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 (Job 5:22–23)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겔34:25) 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Ezek. 34:25)

 

이사야는 In Isaiah: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0)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 (Isa. 43:20)

 

다시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겔31:6) 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 (Ezek. 31:6)

 

이것은 앗수르에 대한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상징하며, 에덴동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This is said of the Assyrian, by whom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and who is compared to the garden of Eden.

 

다윗입니다. In David: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시148:2, 7, 9-10) Glorify ye him, all his angels, glorify Jehovah from the earth, ye whales, fruit trees, wild animal, and every beast, creeping thing, and flying fowl. (Ps. 148:2, 7, 9–10)

 

여기서도 같은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whales), ‘과수’(fruit tree), ‘짐승’(wild animal), ‘가축’(beasts),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 등, 이것들이 사람 속 생명의 원리들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일컬음 받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 tree,” “wild animal,” the “beast,” “creeping 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 선지자들은 ‘가축’과 ‘땅의 짐승’, 그리고 ‘가축’과 ‘들의 짐승’을 조심스럽게 구분했습니다. 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field.

 

하지만 사람 안의 선들은 ‘가축’이라 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animals)이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에스겔과 계시록 두 군데 다에서 말입니다. 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4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7:11; 19:4)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 (Rev. 7:11; 19:4)

 

또한 자신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

 

 

47. 이들 워딩에(these words)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앞 구절 말씀을 잘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을 보면,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을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는데,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만드셨다, 그리고 ‘가축’도... 등등,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먼저, 그리고 나중에 천적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That these words contain arcana relating to regeneration, is evident also from its being said in the foregoing verse that the earth should bring forth “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whereas in the following verse the order is changed, and it said that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likewise “the beast”; for at first, and afterwards until he becomes celestial, man brings forth as of himself; and thus regeneration begins from the external man, and proceeds to the internal; therefore here there is another order, and external things are mentioned first.

 

 

48. 사람이 이해에 속한 어떤 신앙 원리를 가지고 말을 하며, 그리고 그때 자기는 지금 진리 안에 있고, 선 안에 있다 확신하고 있다면,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분명히 지금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Hence then it appears that man is in the fifth state of regeneration when he speaks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he true and in the good.

 

이때 그를 통해서 일어난 일들을 가리켜 살아 있다(animate) 하시고,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라 하신 것입니다. The things then brought forth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es of the sea,” and the “fowl of the heavens.

 

이 사람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해에 속한 신앙뿐 아니라 이 신앙에서 나오는, 의지에 속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선도 행할 때, 그때 그는 여섯 번째 상태에 있는 것이며, 이때 그의 모든 행실을 가리켜 ‘생물’이다, ‘가축’이다 하는 것입니다. He is in the sixth state, when 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he speaks truths, and does goods; what he then brings forth being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이제 그는 사랑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행하기를 시작합니다. 비로소 영적 인간이 된 것이지요. 주님은 이를 가리켜 일종의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 하셨고, 이것이 지금 다룬 주제입니다.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from love, as well as from faith,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of God,” which is the subject now treated of.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4-25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속뜻)

주님의 최종 목적은 사람이 자원함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이 긴 거듭남의 과정을 도우시며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거듭남의 여섯 번째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의 의지에 관한 일을 하십니다. 곧 사람의 안에 있는 두 종류의 애정들에 관한 일인데, 육체와 가까운 저급한 애정들에서 영과 가까운 고급한 애정들까지, 그리고 선한 애정, 악한 애정에 관한 일들입니다. 다만 거듭남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주로 선한 애정과 깊이 관련됩니다. 사람은 처음엔 자기 힘으로 무엇을 말하고 무슨 일을 하지만 점차 이 모든 일이 주님으로 말미암음을 깨닫고 그 일의 순서가 바뀝니다. 즉, 주님을 시인하고, 주님을 앞세우며, 자기는 뒤로 물러납니다. 그는 예전엔 그저 머리로만 알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시인하고 자원함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는 거듭남의 마지막 단계, 영적 인간이 되며, ‘하나님의 형상’이 됩니다.

 

※ 사람 일생이 백 년이라면, 이 백 년에 걸친 거듭남의 풀코스를 한결같으신 마음으로 우리를 돌보시며, 건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파노라마를 창세기 1장을 통해 맨 먼저 보여주시는 주님의 뜻을 눈으로 확인하며, 오늘 좀 흔들렸다고 좌절하는 그런 모습을 이젠 버리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창1,24-25, AC.44-48,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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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HnSlxeII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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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

 

43. 22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Verse 22.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자기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은 엄청나게 결실하며(fructify), 번성합니다(multiply). 몸 안에 사는 동안뿐 아니라 내세에서조차 어리둥절할 정도로 그렇습니다. Everything that has in itself life from the Lord fructifies and multiplies itself immensely; 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ody, but to an amazing degree in the other life.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to be fruitful)라는 건 사랑에 속한 걸,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to multiply)라는 건 신앙에 속한 걸 각각 말하는 겁니다. 사랑에 속한 ‘열매’ 안에는 ‘’가 들어 있는데, 이 씨로 말미암아 놀랍게 배가합니다. To “be fruitful,” in the Word, is predicated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and to “multiply,” of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the “fruit” which is of love contains “seed,” by which it so greatly multiplies itself.

 

※ 들의 풀과 나무, 강과 바다의 물고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가령 해바라기는 그 넓은 둥그런 꽃 한 판에 얼마나 많은 씨가 있으며, 열매, 가령, 옥수수 한 자루엔 얼마나 많은 낱알갱이가, 벼나 보리, 수수 같은 곡식들 한 줄기 줄기엔 또 얼마나 많은 낱알들이 맺히는지... 나무 한 그루도 보면, 가령 은행, 호도, 대추, 밤, 감, 사과 등등... 얼마나 많은 열매, 과일이 열리는지... 물고기는 또 어떤가요? 명란젓 만드는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은, 대구는, 오징어는? 등등... 또한 얼마나 그렇게 어마어마한지...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번성합니다 ^^

 

※ 인간과 달리 동, 식물의 경우, 주님의 이 정하신 복, 명령하신 축복이 예외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이유는, 동, 식물의 경우는 본능만 있을 뿐 스스로 무엇이 없어 주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거나 뒤집거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쓰임새 그대로 존재하며,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 판단하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최선인 줄을 알면서도 버젓이 악을 행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뒤집어 훼방을 놓고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으며, 오히려 주님의 복 받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화와 불행은 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오늘 본문 동, 식물의 이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가운데 살기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능력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 스베덴보리(1688-1772)를 통해 주님 알리신 이 아케이나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미미하고 세상에서 천대를 받고 변죽만 울리고 있습니다. 홍수 후 고대교회 초창기에도, 아브라함 이후 유대교회 초창기에도, 주님 성육신 이후 기독교회 초창기에도 늘 시작은 아주 미미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은 저마다 오랜 세월 대하처럼 흐르는 시대별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이 주님의 새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각 시대 초기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또한 말씀에서 주님의 ‘’(福, blessing)은 풍성한 결실과 번성을 상징합니다. 이런 ‘생육’과 ‘번성’이 모두 ‘’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The Lord’s “blessing” also in the Word signifies fruitfulness and multiplication, because they proceed from it.

 

※ 이 원리가 동, 식물에게만 적용되겠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그 하는 모든 일에 형통, 크게 번성, 번창할 줄 믿습니다. 요셉이 주님으로 말미암게 되자 그 안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가 흘러 들어가 바로의 애굽 전역은 물론 주변국들까지 구원하는 큰일이 일어남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 복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 중심적으로 볼 때, 태양(해)의 질량은 지구의 약 33만 배, 즉 지구는 그만큼 정말 보잘것없는 행성입니다. 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지구 하나를 비추고 덥히기 위해 그 큰 태양을 태우는 건 정말 큰 낭비가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도 언제나 늘 변함없이 그렇게 하십니다. 해는 늘 이 지구를 비추지만 지구의 자전으로 어디는 낮일 때, 어디는 밤이 되고, 또 지구의 공전으로, 어디는 여름일 때, 어디는 겨울이 됩니다.

 

즉, 주님의 빛과 복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주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책임이라는 겁니다. 지구가 해를 바라볼 땐 낮이요, 봄, 여름이듯,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땐 주님의 빛과 복이 내 삶에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그게 바로 복 받는 삶인 것입니다.

 

23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Verse 23.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 지난번 다룬 것처럼 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즉, 첫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르며,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세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듭남 풀코스 가운데서 사람은 비록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시며 동행하시지만 그렇다고 늘 하하호호한 상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사람의 연약함 때문인데요, 사람은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또 어느새 자아를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피조물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한데요, 심지어 천국의 천사들조차 이런 상태 변화를 겪는다 하니 우리는 자신의 이런 연약함의 오르락내리락을 결코 이상하게, 또는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건, 천사들의 증언처럼, 오히려 이런 굴곡을 통해 더욱 예리해져 가며, 더욱 주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에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의 과정 가운데 이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성장, 성숙해져 가며, 그래서 어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리고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내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만큼 우리는 더 성장, 성숙해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2-23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속뜻)

주님은 마치 해가 잘 보이지도 않는 지구를 위해 늘 모든 정성을 다하듯 지으신 땅 위 모든 피조물을 위해, 즉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속 사람, 겉 사람을 위해 한결같으십니다. 주님의 질서 아래 있는 모든 동, 식물이 자기들 안에 있는 주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생육하고 번성하듯, 속 사람, 겉 사람 안에 거듭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이해, 이성과 합리, 지성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또 자아를 향해 눈을 돌림으로 저녁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밤은 없습니다. 곧 다시 새벽이 오며, 아침이 될 것입니다. 이는 거듭남의 완성, 곧 안식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그러나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우리는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우리가 우리를 포기할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됩니다. 힘을 다해 공부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사고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 지식에 힘쓰고, 그걸 선용(善用, 쓰임새, use), 천적 지혜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창1,22-23, AC.43,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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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crdodWyh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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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1절,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Verse 21.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ul that creepeth, which the waters made to creep forth, after their kinds, and every winged fowl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물고기들’은 앞서도 말했듯,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앙으로 움직이고, 그래서 살아있는 상태가 된 기억-지식들을 상징합니다. Fishes,” as before said, signify memory-knowledges, now animated by faith from the Lord, and thus alive.

 

※ 무엇이든 주님으로 말미암으면 ‘살아있는’(alive), ‘움직이는’(animate) 상태이지만, 자신으로 말미암으면 ‘죽은’(dead), ‘못 움직이는’(inanimate) 상태이기 때문이며, 지식들이 이런 상태가 된다는 것은, 비록 세상, 세속 지식이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주님을 향해, 주님을 위해 쓰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식, 특히 세상 지식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다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선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큰 바다짐승들’(whales, 고래, 또는 고래와 같은 거대한 수중생물들)은 기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을 상징하는데, 세부 원리들이 이 원리들을 향하기도, 또 들어오기도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주님 지으신 이 피조 세계에서는 어떤 지식이 일반 원리 아래 있지 않은 채, 무슨 낙동강 오리알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존재하고 또 존속할 수 있으려면 다 자기의 근원 되는 그런 더 큰 원리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Whales” signify their general principles, in subordination to which, and from which, are the particulars; for there is nothing in the universe that is not under some general principle, as a means that it may exist and subsist.

 

고래들’, ‘큰 바다짐승들’이 바로 그런 겁니다. 이들이 선지서, 예언서에서 가끔 언급되는 이유는, 이들이 바로 그 본문에서 다른 기억-지식들의 무슨 근원적인 역할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Whales,” or “great fishes,” are sometimes mentioned by the prophets, and they there signify the generals of memory-knowledges.

 

예를 들면, 애굽 왕 바로를 가리켜 ‘큰 악어’라 할 때, 그것은 인간의 지혜 또는 지성, 즉 일반적으로는 지식 [scientia]을 가리켜 ‘애굽의 바로 왕이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Pharaoh the king of Egypt (by whom is represented human wisdom or intelligence, that is, knowledge [scientia] in general), is called a “great whale.

 

에스겔에서는 As in Ezekiel: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겔29:3)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that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myself. (Ezek. 29:3)

 

[2] 또 다른 곳에서도 And in another place: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겔32:2) Take up a lamentation for Pharaoh king of Egypt, and say unto him, thou art as a whale in the seas, and hast gone forth in thy rivers, and hast troubled the waters with thy feet, (Ezek. 32:2)

 

이 말씀이 가리키는 바는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고자 무척 애를 쓰는 사람들인데요, 이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들인 겁니다, by which words are signified those who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memory-knowledges, and thus from themselves.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사27:1) In that day Jehovah, with his hard and great and strong sword, shall visit upon leviathan the longish [oblongum] serpent, even leviathan the crooked serpent, and he shall slay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 (Isa. 27:1)

 

여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는 것은 진리의 일반적인 원리들 조차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By “slaying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 is signified that such persons are ignorant of even the general principles of truth.

 

※ 진리의 일반적인 원리는, 모든 세부, 또는 하부 진리는 상부 진리에서 오며, 상부 진리들은 단 하나의 근원 되는 진리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서는 So in Jeremiah: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렘51:34) Nebuchadnezzar the king of Babylon hath devoured me, he hath troubled me, he hath made me an empty vessel, he hath swallowed me as a whale, he hath filled his belly with my delicacies, he hath cast me out, (Jer. 51:34)

 

이 말씀의 의미는 그가 신앙의 지식들을 삼켰다는 것입니다. 위 말씀에서는 ‘좋은 음식’으로 표현되었는데요, 이걸 마치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듯 그렇게 삼켰다는 것입니다. ‘큰 뱀’(a whale)은 신앙 관련 지식들의 일반적 원리들을 단지 기억-지식들로만 소유하고, 또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denoting that he had swallowed the knowledges of faith, here called “delicacies,” as the whale did Jonah; a “whale” denoting those who possess the general principles of the knowledges of faith as mere memory-knowledges, and act in this manner.

 

※ 지식 중에서도 신앙에 관한 지식은 아주 값비싼 지식이며, 그중에서도 일반적 지식, 가령,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와 같은 말씀 지식은 가히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너무나도 귀한 생명의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그저 지식으로만, 머리로만 알고 가볍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도무지 무슨 가슴 신앙으로 감동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 예레미야 본문에서는 ‘큰 뱀’이라 한 것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1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속뜻)

주님은 사람의 겉과 속, 겉 사람과 속 사람 안에 모든 기억-지식과 합리, 지성을 가득하게 하시되 근본원리에서 특별원리로, 일반원리에서 세부원리로 아주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질서대로 쌓이게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선입니다.

 

※ 세상 지식을 학습, 습득하면서도 그 원천이 주님이심을, 또 그 지식들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천국 지성에 이르는 중에도 그 원천이 주님이심을 늘 시인하고, 지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고 싶으시면 그냥 간단히 허락만 하시면 될 것 같은데, 왜 주님은 이렇게 속 사람, 겉 사람, 내면, 외면, 기억-지식, 합리와 이성, 지성 등 복잡한 일을 또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하실까요?

 

그것은 천국은 내면의 나라, 내적 상태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여도, 속으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설령 주님의 허락이 있다 해도 사람은 천국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방열복을 안 입고 용광로 작업을 하는 것과 같아 천국에 들어갔는데도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는 상태를 맛보게 되기 때문이며, 그래서 주님은 사전에 이렇게 아주 단단히 준비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창1,21, AC.42,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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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ckHC7alI9E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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