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77

그 다음 그의 지성은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됩니다. 그 동산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입니다. 생명나무는 사랑을 뜻하고, 지식[scientiae]의 나무는 신앙을 뜻합니다. (8-9절) Afterwards his intelligence is described by the garden in Eden, in the east; in which the trees pleasant to the sight are perceptions of truth, and the trees good for food are perceptions of good. Love is meant by the tree of lives, faith by the tree of knowledge [scientiae] (verses 8–9).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8, 9절)

 

해설

AC.77은 천적 인간의 ‘지성’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개요로 보여 줍니다. AC.75에서는 그의 기억지식과 이성을, AC.76에서는 그의 생명을 다루었고, 이제 그의 지성은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은 이 문맥에서 단순히 아름다운 장소를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의 지성과 관계되는 모습으로 제시됩니다. 다만 왜 ‘에덴’이고 왜 ‘동쪽’인지까지 AC.77이 설명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 구체적인 속뜻은 뒤따르는 해설을 기다려야 합니다.

 

동산 안의 나무들도 구별됩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단순히 진리와 선의 ‘지식’을 말하지 않고 ‘퍼셉션’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개요만 가지고 퍼셉션의 성격을 모두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천적 인간의 지성 안에 진리와 선에 대한 퍼셉션이 있으며, 창2:9의 서로 다른 나무들이 그것을 묘사한다는 사실을 먼저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두 나무가 언급됩니다. 생명나무는 사랑을 뜻하고, 지식의 나무는 신앙을 뜻합니다. 이 대목은 이후 창2와 창3을 읽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식의 나무’ 자체를 처음부터 악한 것으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AC.77에서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분명히 ‘신앙’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후 지식의 나무와 관련하여 문제가 생길 때에는 신앙 자체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단순화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이 어떤 질서와 관계 안에 놓이는지가 어떻게 설명되는지를 따라가야 합니다.

 

AC.77은 이처럼 천적 인간의 지성을 하나의 동산으로, 그 안의 나무들을 진리와 선에 대한 퍼셉션으로, 그리고 그 중심적인 두 나무를 사랑과 신앙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창2:8-9의 상세 해설이 아니라 개요입니다. 그러므로 에덴, 동쪽, 나무, 보는 것, 먹는 것,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를 각각 고정된 상응표처럼 미리 완성하기보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천적 인간의 지성 안에서 서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전체 그림을 붙들고 뒤따르는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AC.77 해설)

 

 

 

AC.78, 창2:1-17 개요, ‘에덴의 강과 네 강, 지혜에서 나오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것들’ (10-14절)

AC.78동산의 강은 지혜를 뜻합니다. 거기에서 네 강이 흘러나왔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cognitio]입니다. 이것들은 속 사람에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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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6, 창2:1-17 개요, ‘그의 생명은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된다’ (7절)

AC.76그의 생명은 그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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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6

그의 생명은 그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7절)

 

해설

AC.76은 창2:7의 속뜻을 개요로 제시하면서 천적 인간의 ‘생명’에 초점을 맞춥니다. AC.75에서는 그의 기억지식과 이성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된다고 했고, 이제 AC.76에서는 그의 생명이 그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창2:5-7의 여러 표현은 서로 떨어진 장면들이 아니라 천적 인간에게 속한 것들을 차례로 보여 주는 하나의 흐름 안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설명하지 않고, 그것이 ‘그의 생명’을 묘사한다고만 말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개요에서 ‘생명의 숨’을 곧바로 어떤 특정한 인간의 능력이나 기능 하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 표현을 단순히 최초 인간의 육체가 처음 호흡하기 시작했다는 장면으로만 한정해서 읽는다면, 스베덴보리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거듭남의 연속적인 문맥을 놓치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AC.73부터 계속 다루고 있는 천적 인간입니다.

 

특히 ‘그에게 … 불어넣으심’이라는 표현은 그의 생명의 근원이 그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AC.76 한 문장만으로 그 생명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오는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개요가 직접 말하는 것은 천적 인간의 생명이 창2:7의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표현의 구체적인 속뜻은 뒤따르는 상세 해설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AC.76은 매우 짧지만 AC.75와 함께 중요한 구별을 보여 줍니다. 천적 인간에게는 기억지식과 이성이 있고, 또한 그의 생명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전자는 관목과 초목 및 그것들을 적시는 안개의 모습으로, 후자는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합니다. 이 각각이 천적 인간 안에서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는 아직 개요에서 앞당겨 정하지 않고, 이어지는 설명의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AC.76 해설)

 

 

 

AC.77, 창2:1-17 개요, ‘에덴동산의 지성, 퍼셉션, 사랑과 신앙’ (8-9절)

AC.77그 다음 그의 지성은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됩니다. 그 동산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입니다. 생명나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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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5, 창2:1-17 개요,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의 관목과 초목, 기억지식과 이성’ (5-6절)

AC.75그의 기억지식과 이성[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 are described by the shrub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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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5

그의 기억지식과 이성[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 are described by the shrub and the herb out of the ground watered by the mist (verses 5–6).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5, 6절)

 

해설

AC.75는 창2:5-6에 나오는 ‘관목’, ‘초목’, ‘지면’, ‘안개’를 천적 인간의 상태와 관련하여 읽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개요에서 먼저 사람의 ‘기억지식과 이성’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된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여기서 관목과 초목은 단순한 식물에 관한 묘사로만 읽히지 않고, 앞 번호에서 말한 천적 인간에게 있는 기억지식과 이성에 속한 것들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특히 ‘기억지식과 이성’이라는 순서를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적 인간이 되면 기억지식이나 이성이 없어지는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다만 AC.75는 아직 천적 인간에게서 기억지식과 이성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이전 상태와 비교하여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적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기억지식과 이성이 천적 인간을 만든다’는 식으로 미리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관목과 초목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이 개요는 기억지식과 이성만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적셔지는 상태까지 함께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지면’은 무엇이며, ‘안개’는 무엇이고, 왜 비가 아니라 안개로 적셔지는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러나 AC.75는 아직 그 각각의 의미와 관계를 풀어 설명하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은 창2:5-6의 여러 표현이 천적 인간의 기억지식과 이성의 상태를 묘사한다는 큰 윤곽을 먼저 보여 줍니다.

 

따라서 AC.75에서는 관목은 무엇, 초목은 무엇, 지면은 무엇, 안개는 무엇이라고 각각 고정된 상응표를 먼저 만드는 것보다 스베덴보리의 설명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한 문장에서 확실히 붙들 수 있는 것은 천적 인간에게도 기억지식과 이성이 있으며, 창2:5-6의 관목과 초목 및 그것들을 적시는 안개의 모습이 그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각각의 표현이 어떤 관계 속에서 그 상태를 나타내는지는 뒤따르는 상세 해설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AC.75 해설)

 

 

 

AC.76, 창2:1-17 개요, ‘그의 생명은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된다’ (7절)

AC.76그의 생명은 그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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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4,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2-3절)

AC.74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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