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1:20)
AC.40
‘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것들’(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은 겉 사람에 속한 기억 지식을 뜻하고, ‘새들’(birds)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하는데, 이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합니다. ‘물속에서 돌아다니는 것들’(creeping things of the waters), 곧 ‘물고기들’(fishes)이 기억 지식을 뜻한다는 사실은 이사야를 보면 분명합니다. By 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are signified the memory-knowledge which belong to the external man; by “birds” in general, rational and intellectual things, of which the latter belong to the internal man. That the “creeping things of the waters,” or “fishes,” signify memory-knowledges is plain from Isaiah:
2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3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사50:2, 3) I came and there was no man; at my rebuke I dry up the sea, I make the rivers a wilderness; their fish shall stink because there is no water and shall die for thirst; I clothe the heavens with blackness (Isa. 50:2–3).
[2] 그러나 이 의미는 에스겔을 보면 더 분명한데, 거기서 주님은 새 성전, 곧 일반적으로는 새 교회를, 그리고 교회에 속한 사람인 거듭난 사람을 묘사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still plainer from Ezekiel, where the Lord describes the new temple, or a new church in general, and the man of the church, or a regenerate person; for everyone who is regenerate is a temple of the Lord: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겔47:8-10) The Lord Jehovih said unto me, These waters that shall issue to the boundary toward the east, and shall come toward the sea, being led into the sea, and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that shall creep for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there shall be exceeding much fish, because those waters shall come thither, and they shall heal, and everything shall live whither the river come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fishers shall stand upon it from En-gedi to En-eglaim, with the spreading of nets shall they be; their fish shall be according to its kind, as the fish of the great sea, exceeding many (Ezek. 47:8–10).
여기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의 어부들’(Fishers from En-gedi unto En-eglaim)과 ‘그물 치는 것’(spreading of nets)은 자연적인 사람을 신앙의 진리로 가르칠 사람들을 뜻합니다. “Fishers from En-gedi unto En-eglaim,” with the “spreading of nets,” signify those who shall instruct the natural man in the truths of faith.
[3] ‘새들’(birds)이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한다는 점도 선지자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이사야에 보면, That “birds” signify things rational and intellectual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Isaiah: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사46:11) Calling a bird from the east, the man of my counsel from a distant land (Isa. 46:11).
예레미야에서도 And in Jeremiah: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5)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5).
에스겔서에서는 In Ezekiel:
22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겔17:22, 23) I will plant a shoot of a lofty cedar, and it shall lift up a branch, and shall bear fruit, and be a magnificent cedar; and under it shall dwell every fowl of every wing, in the shadow of the branches thereof shall they dwell (Ezek. 17:22–23).
그리고 호세아에서는 새 교회, 곧 거듭난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And in Hosea, speaking of a new church, or of a regenerate man: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And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beast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s of heaven, and with the moving thing of the ground (Hos. 2:18).
여기서 ‘들짐승’(wild beast)이 실제 짐승을 뜻하지 않고, ‘새’(bird)도 실제 새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은, 주님께서 그것들과 ‘새 언약을 맺는다’(make a new covenant)고 하는 것만 봐도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wild beast” does not signify wild beast, nor “bird” bird, must be evident to everyone, for the Lord is said to “make a new covenant” with them.
해설
AC.40은 다섯째 날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생물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것들’, 곧 물속에서 돌아다니는 것들과 물고기들은 겉 사람에 속한 ‘기억 지식’을 뜻하고, ‘새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한다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먼저 ‘기억 지식’이라는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외부로부터 배우고 기억 속에 받아들이는 지식들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읽어 알게 된 내용, 교리를 배우면서 얻은 지식, 자연계와 삶을 통해 습득한 여러 사실 등이 모두 겉 사람의 기억에 들어옵니다. AC.40은 이러한 기억 지식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섯째 날에는 그것들이 ‘생물’로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이 점은 바로 앞의 AC.39와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AC.39에서는 사람이 아직 자기가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한다고 생각할 때 그에게 있는 것들이 식물처럼 ‘생명이 없는 것들’에 비유되지만, 사랑과 신앙으로 살아나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믿기 시작하면 ‘생물’에 비유된다고 했습니다. AC.40은 이제 그 생물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물고기는 기억 지식에, 새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에 대응합니다.
그런데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당연히 ‘왜 물고기가 기억 지식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AC.40은 그 이유를 추상적인 설명으로 풀기보다 말씀의 여러 구절을 제시하여 그 대응을 보여 줍니다. 먼저 사50:2-3에서 바다와 강의 물이 없어지자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목말라 죽는 장면을 인용합니다. 이 구절은 물고기가 단순히 자연계의 물고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인간의 내적·영적 상태와 관계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제시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에스겔의 새 성전 환상이 이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합니다. 겔47:8-10에서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다에 이르자 물이 되살아나고 고기가 심히 많아집니다. 그리고 어부들이 서서 그물을 칩니다. AC.40은 여기서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의 어부들’과 ‘그물 치는 것’이 ‘자연적인 사람을 신앙의 진리로 가르칠 사람들’을 뜻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이것이 왜 물고기와 기억 지식의 관계를 보여 주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사람을 신앙의 진리로 가르치려면 그 진리들이 자연적 차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AC.40은 바로 이러한 겉 사람의 기억 지식들을 물고기로 나타냅니다. 따라서 겔47장의 풍성한 물고기와 어부들은 단순한 어업의 번성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 교회와 거듭난 사람 안에서 자연적인 사람이 신앙의 진리로 가르침받는 상태를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인용됩니다.
여기서 ‘새 성전’과 ‘새 교회’와 ‘거듭난 사람’이 함께 언급되는 것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낯설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를 단지 외적인 종교 조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선과 진리가 한 사람 안에 받아들여질 때 그 사람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모습을 갖습니다. 그래서 AC.40은 새 성전을 ‘일반적으로는 새 교회’, 그리고 ‘교회에 속한 사람, 곧 거듭난 사람’과 연결합니다. 이어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성전’이라고 그 이유까지 직접 밝힙니다.
AC.40의 두 번째 중심은 ‘새들’입니다. 새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 역시 자신의 생각만으로 제시하지 않고 선지서의 여러 구절을 인용합니다.
사46:11의 ‘동쪽에서 부르는 날짐승’, 렘4:25의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겔17:22-23의 백향목 아래 깃드는 ‘각종 새’가 그 예입니다. AC.40이 이 구절들을 연이어 제시하는 목적은 각 구절의 모든 세부 속뜻을 여기서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번 글의 초점은 ‘새’가 말씀에서 단순히 자연계의 새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특히 렘4:25의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다’는 표현은 이런 독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사람이 없어지자 새들까지 날아간 광경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선지서의 표현 안에 인간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AC.40에서는 그 가운데 ‘새들’이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뜻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마지막으로 호2:18을 인용하는 이유도 중요합니다. 거기서는 주님께서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표현을 근거로 ‘들짐승’이 단순히 들짐승을, ‘새’가 단순히 새를 뜻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동물들과 영적인 의미의 언약을 맺으신다는 것이 본문의 궁극적인 뜻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은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속뜻을 읽는 방법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중요합니다. 그는 문자적 의미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문자 안에 인간의 거듭남과 교회에 관한 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 선지서에서 물고기와 새가 어떤 문맥에 놓이는지를 비교하면서 그 영적 의미를 밝혀 갑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도 있습니다. ‘물고기 = 기억 지식’, ‘새 = 이성적·지적인 것들’이라는 대응을 알았다고 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물고기와 모든 새를 문맥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같은 뜻으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40 자체도 여러 말씀을 함께 제시하면서 그 문맥 안에서 대응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상응은 단어를 암호처럼 치환하는 작업이 아니라 말씀 전체의 연결 속에서 살펴야 합니다.
또 하나 처음 읽는 독자가 궁금해할 수 있는 것은 ‘이성적인 것’과 ‘지적인 것’이 무엇이 다르기에 스베덴보리가 ‘그 가운데 지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 속한다’고 따로 말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AC.40은 여기서 그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본문만으로 둘을 억지로 명확하게 정의하기보다, 적어도 새가 인간의 단순한 기억 지식보다 높은 이성적·지적 영역을 나타내며 그중 지적인 것이 속 사람에 속한다는 정도를 먼저 붙드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문제는 별도로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섯째 날의 첫 장면이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앞에서는 사람이 진리와 선을 배우고 행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겼다면, 이제 사랑과 신앙으로 살아나면서 겉 사람의 기억 지식과 이성적·지적인 것들도 살아 있는 영적 질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창조 이야기에서는 물속에 생물들이 번성하고 하늘에는 새들이 날기 시작합니다.
AC.40의 핵심은 지식을 버리고 이성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인간에게 있는 기억 지식과 이성적·지적인 능력들이 어떤 영적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 줍니다. 물고기는 겉 사람의 기억 지식을, 새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들을 나타냅니다. 다섯째 날에 생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이제 이러한 것들도 앞의 AC.39에서 말한 ‘살아나는’ 상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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