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

이 말씀들은 사람이 이제 ‘여섯째 날’(sixth day)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늘’(heaven)은 그의 속 사람이고, ‘땅’(earth)은 그의 겉 사람이며, ‘그것들의 만상’(the army of them)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앎들인데, 이것들은 앞에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뜻해졌습니다. 속 사람을 ‘하늘’(heaven), 겉 사람을 ‘땅’(earth)이라 한다는 것은 앞 장에서 이미 인용한 말씀의 구절들에서 분명하며, 여기에 이사야의 다음 말씀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By these words is meant that man is now rendered so far spiritual as to have become the “sixth day”; “heaven” is his internal man, and “earth” his external; “the army of them” are love,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which were previously signified by the great luminaries and the stars. That the internal man is called “heaven,” and the external “earth,”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of the Word already cited in the preceding chapter, to which may be added the following from Isaiah: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 13) I will make a man more rare than solid gold, even a man than the precious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mite the heavens with terror,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its place (Isa. 13:12–13).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6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사51:13, 16) Thou forgettest Jehovah thy maker,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but I will put my words in thy mouth, and I will hide thee in the shadow of my hand, that I may stretch out the heaven, and lay the foundation of the earth (Isa. 51:13, 16).

 

이 말씀들에서 ‘하늘’(heaven)과 ‘땅’(earth)이 모두 사람에 대하여 서술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말씀들은 일차적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지만, 말씀의 내적인 것들은 교회에 대하여 말한 것은 무엇이든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면 결코 교회의 일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성전이 아닌 사람은 성전이 뜻하는 것, 곧 교회와 천국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를 단수로 ‘사람’(man)이라 합니다. From these words it is evident that both “heaven” and “earth” are predicated of man; for although they refer primarily to the most ancient church, yet the interiors of the Word are of such a nature that whatever is said of the church may also be said of every individual member of it, who, unless he were a church, could not possibly be a part of the church, just as he who is not a temple of the Lord cannot be what is signified by the temple, namely, the church and heaven.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man,” in the singular number.

 

해설

AC.82부터 창2:1의 상세한 속뜻 해설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창조의 ‘여섯째 날’은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형성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늘’은 속 사람이고 ‘땅’은 겉 사람이며, ‘그것들의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앎들입니다. 이것들은 창1에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묘사되었던 것들입니다. 따라서 창2:1은 앞 장의 창조 이야기를 마친 뒤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루어진 영적 인간의 상태를 하나로 모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하늘’과 ‘땅’을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으로 이해하는 근거를 밝히기 위해 사13:12-13과 사51:13, 16을 인용합니다. 이 인용들의 직접적인 목적은 각 구절의 모든 세부적인 속뜻을 여기서 해설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 자연계의 하늘과 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하여도 서술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사13:12의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와 같은 표현은 흥미로운 별도의 질문을 일으키지만, 그것이 AC.82에서 이사야를 인용한 직접적인 이유와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근거를 설명하는 마지막 부분이 중요합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지만, 교회에 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를 이루는 각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일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성전의 예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주님의 성전이 아니라면 성전이 뜻하는 교회와 천국에도 참으로 속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말씀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과 한 개인의 거듭남을 가리키는 표현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은 속 사람, 땅은 겉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한 상응 사전의 고정 공식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AC.82에서 중요한 것은 왜 교회에 관한 표현을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근거입니다. 교회는 그것을 이루는 사람들과 분리된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며, 각 사람 안에서 교회가 이루어져야 그들이 함께 교회를 이룹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 전체도 단수로 ‘사람’이라 합니다.

 

이렇게 보면 AC.82는 앞의 AC.81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AC.81은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차이를 설명했고, AC.82는 그 가운데 창1에서 형성된 영적 인간이 ‘여섯째 날’이 된 상태를 다시 확인합니다. 이제 이 영적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 및 그 안의 사랑과 신앙이 완성된 상태에서, 다음에는 일곱째 날로 표현되는 천적 인간의 상태가 설명될 것입니다. (AC.82 해설)

 

심화

1. 왜 주님은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라고 말씀하시는가?

 

AC.82 심화 1, 왜 주님은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라고 말씀하시는가?

AC.82 심화1. 왜 주님은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라고 말씀하시는가? 사13:12에서 여호와께서는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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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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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세 가지 차이’

AC.81이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에서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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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이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에서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람이 무엇인지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도록 각각의 성질을 간략히 밝히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습니다. 첫째, 죽은 사람은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을 숭배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이고 천적인 진리와 선을 인정하지만, 사랑에서라기보다는 신앙의 원리에서 그렇게 하며, 또한 그 원리에서 행동합니다. 천적 인간은 영적이고 천적인 진리와 선을 믿고 퍼셉션하며,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그 사랑에서 행동합니다. This chapter treats of the celestial man, as the preceding one did of the spiritual, who was formed out of a dead man. But as it is unknown at this day what the celestial man is, and scarcely what the spiritual man is, or a dead man, it is permitted me briefly to state the nature of each, that the difference may be known. First, then, a dead man acknowledges nothing to be true and good but what belongs to the body and the world, and this he adores. A spiritual man acknowledg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but he does so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is likewise the ground of his actions, and not so much from love. A celestial man believes and perceiv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acknowledging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is from love, from which also he acts.

 

[2] 둘째, 죽은 사람을 움직이는 목적들은 오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삶만을 향하며, 그는 영원한 삶이 무엇인지도, 주님이 누구신지도 알지 못합니다. 혹 안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영적 인간을 움직이는 목적들은 영원한 삶을 향하며,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향합니다. 천적 인간을 움직이는 목적들은 주님을 향하며, 그분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와 영원한 삶을 향합니다. Second: The ends which influence a dead man regard only corporeal and worldly life, nor does he know what eternal life is, or what the Lord is; or should he know, he does not believe. The ends which influence a spiritual man regard eternal life, and thereby the Lord. The ends which influence a celestial man regard the Lord, and thereby his kingdom and eternal life.

 

[3] 셋째, 죽은 사람은 싸움 가운데 있을 때 거의 언제나 굴복하며, 싸움 가운데 있지 않을 때에는 악과 거짓이 그를 지배하므로 그는 종입니다. 그를 붙들어 매는 결박은 외적인 것으로, 법에 대한 두려움,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재산과 이익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평판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들입니다.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만 언제나 승리합니다. 그를 제어하는 결박은 내적인 것이며, 양심의 결박이라 합니다.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에는 그것들을 업신여기므로 정복자라 합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결박에도 제어되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그의 결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입니다. Third: A dead man when in combat almost always yields, and when not in combat, evils and falsities have dominion over him, and he is a slave. His bonds are external, such as the fear of the law, of the loss of life, of wealth, of gain, and of the reputation which he values for their sake. The spiritual man is in combat, but is always victorious; the bonds by which he is restrained are internal, and are called the bonds of conscience. The celestial man is not in combat, and when assaulted by evils and falsities, he despises them, and is therefore called a conqueror. He is apparently restrained by no bonds, but is free. His bonds, which are not apparent, are perceptions of good and truth.

 

해설

AC.81은 창1에서 다룬 영적 인간과 창2에서 다루는 천적 인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죽은 사람까지 포함한 세 상태를 직접 비교합니다. 여기서 ‘죽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는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만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AC.67-72에서 육체의 죽음과 다른 삶을 다룬 직후라고 해서 여기의 ‘죽은 사람’을 사망한 사람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81의 세 구별은 한 인간이 거듭남 가운데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 차이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근원에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만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이고 천적인 선과 진리를 인정하지만 ‘사랑에서라기보다는 신앙의 원리에서’ 그렇게 하며 그 신앙에서 행동합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믿을 뿐 아니라 퍼셉션하며,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랑에서 행동합니다. 따라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신앙이 없어지고 사랑만 남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앙이 사랑에서 나오고, 행동 역시 그 사랑에서 나오는 질서가 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차이는 사람을 움직이는 ‘목적’에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목적은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삶에 머뭅니다. 영적 인간의 목적은 영원한 삶을 향하고,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향합니다. 천적 인간의 목적은 먼저 주님을 향하고, 그분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와 영원한 삶을 향합니다. 여기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은 모두 주님과 영원한 삶을 향하지만 그 질서가 다릅니다. AC.73에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나아간다고 했던 말은 단순히 같은 것을 더 강하게 믿는 정도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목적의 질서가 달라지는 변화와도 관계됩니다.

 

세 번째 차이는 영적 싸움과 사람을 제어하는 결박에서 나타납니다. 죽은 사람은 싸움에서 거의 언제나 굴복하고, 싸움이 없을 때에는 악과 거짓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를 제어하는 것은 법이나 생명, 재산, 이익, 평판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외적인 결박입니다.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으면서 승리하고, 그를 제어하는 것은 양심이라는 내적인 결박입니다. 천적 인간은 더 이상 같은 방식의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이 공격해 와도 그것들을 업신여깁니다. 그에게도 결박이 있지만 그것은 외적으로 강제하는 결박처럼 드러나지 않고,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는 겉으로 보기에 어떤 결박에도 제어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이 세 구별은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을 서로 완전히 별개의 인간 종류로 나누기 위한 분류표라기보다, 앞 장과 이 장에서 다루는 거듭남의 상태 차이를 이해하게 하는 설명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천적 인간을 단순히 영적 인간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고만 이해하면 AC.81의 세밀한 구별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보여 주는 차이는 선과 진리를 어디에서 받아들이는가, 무엇이 삶의 주된 목적이 되는가, 악과 거짓 앞에서 어떤 내적 상태에 있는가에 있습니다. 이 세 기준을 붙들면 앞으로 창2에서 말하는 천적 인간의 상태를 훨씬 정확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AC.81 해설)

 

 

 

AC.82, 창2:1, ‘하늘은 속 사람, 땅은 겉 사람’ (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이 말씀들은 사람이 이제 ‘여섯째 날’(sixth day)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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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창2:1-17 개요, ‘주님으로부터의 퍼셉션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탐구’ (16-17절)

AC.80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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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 (16-17절) He is also permitted to acquire a 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from the Lord, but he must not do so from himself and the world, nor search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which would cause the death of his celestial nature (verses 16–17).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6, 17절)

 

해설

AC.80은 창2:16-17의 개요이며,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질서에 하나의 중요한 제한을 제시합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에덴동산과 같은 사람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그 안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아는 것’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별이 나타납니다. 천적 인간에게 선과 진리를 아는 것이 금지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금지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알려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창2:16-17의 금령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등장한다고 해서 지식이나 이성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AC.75에서는 천적 인간에게 기억지식과 이성이 있음을 말했고, AC.78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이 겉 사람에게 속하며 이것들까지도 지혜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80의 문제는 인간이 알고 생각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선과 진리 및 신앙의 아르카나를 무엇으로부터 알고 판단하려 하는가에 있습니다.

 

천적 인간에게 허락된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선과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AC.77에서는 에덴동산의 보기에 좋은 나무들이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선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AC.80은 그 퍼셉션의 근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퍼셉션을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직감이나 자기 확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그 뜻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혀 줍니다. 그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 ‘감각적인 것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외적인 것들과 관계되고, ‘기억지식’은 사람이 배우고 경험하여 기억에 받아들인 것들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 자체가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AC.78에서 기억지식은 천적 인간의 겉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AC.80은 자연계의 사실을 관찰하거나 기억지식을 배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가지고 신적인 것의 진실 여부를 인간 자신이 결정하려는 질서를 경계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질문이나 연구 자체의 금지로 읽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이 말씀의 속뜻을 밝히면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구별하고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C.80에서 금지되는 것은 탐구라는 행위 자체라기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라는 방식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것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서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 구별 때문에 AC.80을 반지성주의적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이성과 기억지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자연적인 사실을 감각과 관찰을 통하여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다루는 것은 ‘신앙의 아르카나’입니다. 자연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데 사용하는 감각과 기억지식을 그대로 신적인 것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문제가 단순한 인식 방법의 차이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닙니다. 창2:17의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이 속뜻에서는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되는 것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AC.73에서 거듭남 이전의 사람이 ‘죽어 있던’ 상태라고 한 것과 AC.80에서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AC.79와 AC.80을 함께 읽으면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도 보입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알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두 번호 모두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가지거나 아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방향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를 여기서 proprium이나 인간의 자유에 관한 전체 교리로까지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AC.79와 AC.80이 보여 주는 직접적인 연결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AC.80은 따라서 창2:16-17의 금령을 ‘알지 말라’는 명령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적 인간은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부터 아는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질서입니다.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할 때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는 것이, 이 개요에서 스베덴보리가 창2:16-17에 관하여 먼저 제시하는 핵심입니다. (AC.80 해설)

 

심화

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AC.80 심화 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AC.80 심화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창2:16-17을 개역개정과 AC에 실린 영어 성경으로 함께 읽으면 작은 차이 하나가 눈에 띕니다. 개역개정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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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이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에서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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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에덴동산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다' (15절)

AC.79천적 인간은 그러한 동산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15절) The celestial man is s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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