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91
그러나 사람이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되어 가는 동안 그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면, 이 말씀들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도저히 퍼셉션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이 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며, 그러므로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릅니다. (AC.87 참조) 이 평온을 ‘비’(rain)와 ‘안개’(mist)가 뜻합니다. 그것은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평온, 곧 평화에서 나오는 평온이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과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이라 하는 것들을 산출합니다. 이것들은 구체적으로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rationalia et scientifica]입니다. But what these things involve cannot possibly be perceived unless it is known what man’s state is while from being spiritual he is becoming celestial, for they are deeply hidden. While he is spiritual, the external man is not yet willing to yield obedience to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re is a combat;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n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 combat ceases, and tranquility ensues (see n. 87). This tranquility is signified by “rain” and “mist,” for it is like a vapor with which the external man is watered and bedewed from the internal; and it is this tranquility, the offspring of peace, which produces what are called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which, specifically, are things 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from a celestial spiritual origin.
해설
AC.91은 앞에서 계속 말해 온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고, 그 결과 싸움이 그치며 평온이 뒤따릅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단순히 싸움이 없어졌다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질서 안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 설명은 AC.87에서 말한 싸움의 종결을 인간 내부의 질서라는 측면에서 보충합니다. AC.87에서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옴으로써 싸움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AC.91에서는 같은 변화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저항하는 동안에는 싸움이 있지만,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면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릅니다. 두 설명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천적 인간의 안식을 보여 줍니다.
이제 AC.90에서 ‘비’와 ‘안개’를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이라 한 이유도 밝혀집니다. 그 평온은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움직임의 방향입니다. 천적 인간의 형성은 AC.89에서 말했듯이 속 사람에서 시작하며, 여기서도 평온이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으로 흘러나와 겉 사람을 적십니다. 따라서 ‘비’와 ‘안개’는 싸움이 끝난 뒤 단순히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으로 평화가 미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 평온은 또한 열매 없이 머물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을 산출한다고 하며, 이것들을 구체적으로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라고 설명합니다. AC.90에서는 관목과 초목을 일반적으로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에게도 이성과 기억지식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이제 그것들이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 점은 AC.75에서 개요로 제시했던 내용을 회수합니다. 거기서는 천적 인간의 기억지식과 이성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의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91에서 왜 안개가 그것들을 적시는지, 그리고 그 관목과 초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이성과 기억지식 자체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원과 질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바로 서면서 겉 사람에 속한 이성과 기억지식도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온 가운데 새로운 상태에 놓입니다.
그러므로 AC.91은 천적 인간의 안식과 평온을 인간 내부의 질서와 연결하는 중요한 번호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아직 저항하기 때문에 싸움이 있지만, 천적 인간에게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므로 싸움이 그칩니다. 그리고 그때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화의 평온이 겉 사람을 적시며, 거기에서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 산출됩니다. 이것이 창2:5-6의 ‘비’, ‘안개’, ‘들의 관목’, ‘들의 초목’ 안에 깊이 감추어진 내용입니다. (AC.91 해설)
심화
1.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AC.91 심화 1,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AC.91 심화1.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AC.91은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있지만, 천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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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2, 창2:5-6, '평화는 싸움의 그침만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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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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