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7

생명을 ‘숨을 내쉼’(breathing)과 ‘숨’(breath)으로 묘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태고교회 사람들이 사랑과 신앙의 상태들을 호흡의 상태들로 퍼셉션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호흡은 그들의 후손들에게서 점차 변화하였습니다. 이 호흡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것들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고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삶에 있는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영 또는 생명을 ‘바람’(wind)에 비유한 이유였습니다. 주님께서도 사람의 거듭남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에서 그렇게 하십니다.주1 The reason why life is described by “breathing” and by “breath” is also that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perceived states of love and of faith by states of respiration, which were successively changed in their posterity. Of this respiration nothing can as yet be said, because at this day such things are altogether unknown. The most ancient people were well acquainted with it, and so are those who are in the other life, but no longer anyone on this earth, and this was the reason why they likened spirit or life to “wind.” The Lord also does this when speak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in John:1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8)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voice thereof, and knowest not whence it cometh, or whither it goeth; so is every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John 3:8).

 

시편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So in David: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33:6) By the word of Jehovah were the heavens made, and all the army of them by the breath of his mouth (Ps. 33:6).

 

29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104:29, 30) Thou gatherest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thou sendest forth thy spirit, they are created, and thou renewest the faces of the ground (Ps. 104:29–30).

 

‘숨’(breath)[spiraculum]이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는 것은 욥기에서도 분명합니다. That the “breath” [spiraculum] is used for the life of faith and of love, appears from Job: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욥32:8) He is the spirit in man, and the breath of Shaddai giveth them understanding (Job 32:8).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33:4) The spirit of God hath made me, and the breath of Shaddai hath given me life (Job 33:4).

 

주1, 원어에서는 ‘바람’(wind), ‘영’(spirit), ‘숨’(breath)이 모두 같은 단어로 표현됩니다. In the original languages, “wind,” “spirit,” and “breath” are all expressed by the same word. [Reviser]

 

해설

AC.97은 AC.96에 이어 왜 말씀에서 생명을 ‘숨을 내쉼’과 ‘숨’으로 묘사하는지를 설명합니다. AC.96에서는 콧구멍과 냄새가 퍼셉션과 연결되고,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이 주님께 가장 기분 좋은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신다고 했습니다. AC.97은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덧붙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사랑과 신앙의 상태들을 호흡의 상태들로 퍼셉션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독자에게 매우 낯선 내용입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이를 인정하여 ‘오늘날에는 그러한 것들이 전혀 알려져 있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태고교회의 호흡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를 현대의 호흡법이나 신체 현상으로 재구성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AC.97이 직접 알려 주는 범위는 그들의 사랑과 신앙의 상태와 호흡의 상태 사이에 오늘날에는 잃어버린 어떤 관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고대 사람들이 영 또는 생명을 ‘바람’에 비유한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예로 요3:8을 듭니다. 주님께서는 거듭남을 말씀하시면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라고 하신 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고 하십니다. AC.97에서는 바람과 영과 생명이 서로 무관한 표현들이 아니라, 거듭남과 생명을 설명하는 하나의 말씀의 언어 안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33:6과 시104:29-30도 같은 이유로 인용됩니다. 여호와의 ‘입 기운’으로 하늘의 만상이 이루어지고, 주께서 호흡을 거두시면 피조물은 먼지로 돌아가지만 주의 영을 보내시면 다시 창조되고 지면이 새롭게 됩니다. 특히 시104편의 ‘먼지’, ‘영’, ‘창조’, ‘지면을 새롭게 함’은 창2:7의 흙, 생명의 숨, 사람의 형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생명의 근원은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옵니다.

 

마지막으로 욥32:8과 33:4는 ‘숨’이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가리킨다는 것을 직접 뒷받침합니다. 전능자의 숨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며, 전능자의 숨이 사람에게 생명을 줍니다. 따라서 AC.94에서 ‘생명의 숨’을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라고 풀이한 것은 창2:7 한 구절만의 고립된 해석이 아니라 말씀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숨-영-생명-깨달음-창조’의 연결 속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AC.97의 핵심은 단순히 ‘숨은 생명을 뜻한다’는 대응 관계 하나에 있지 않습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사랑과 신앙의 상태와 호흡의 상태가 서로 연결되어 퍼셉션되었고, 말씀에서도 바람과 숨과 영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거듭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창2:7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말씀 전체의 생명 언어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AC.97 해설)

 

심화

1. 태고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호흡의 상태’로 퍼셉션했는가?

 

AC.97 심화 1, 태고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호흡의 상태’로 퍼셉션했는가?

AC.97 심화1. 태고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호흡의 상태’로 퍼셉션했는가? AC.97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태고교회 사람들이 ‘사랑과 신앙의 상태들을 호흡의 상태들로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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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8, 창2:8, ‘동쪽 에덴동산,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천적 인간의 지성’ (AC.98-101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창2:8) AC.98‘동산’(garden)은 지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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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6, 창2:7, ‘콧구멍과 향기와 퍼셉션, 사랑과 신앙의 생명을 불어넣으심’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6‘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셨다’(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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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6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셨다’(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고대에는, 그리고 말씀에서는 ‘콧구멍’(nostrils)으로 냄새로 말미암아 기분 좋은 모든 것을 이해했으며, 이것은 퍼셉션을 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번제와 주님 및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는 것들로부터 여호와께서 ‘안식의 향기를 맡으셨다’(smelled an odor of rest)고 거듭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이 주님께 가장 기분 좋은 것이므로, ‘그가 그의 콧구멍을 통하여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주님을 ‘우리 콧구멍의 숨’(breath of the nostrils)이라 합니다(애4:20). As to its being said that “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case is this: In ancient times, and in the Word, by “nostrils” was understood whatever was grateful in consequence of its odor, which signifies perception. On this account it is repeatedly written of Jehovah, that he “smelled an odor of rest” from the burnt offerings, and from those things which represented him and his kingdom; and as the things relating to love and faith are most grateful to him, it is said that “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Hence the anointed of Jehovah, that is, of the Lord, is called the “breath of the nostrils” (Lam.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애4:20)

 

또한 주님 자신도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심’(breathing on his disciples)으로 같은 것을 뜻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And the Lord himself signified the same by “breathing on his disciples,” as written in John: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20:22)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ye the Holy Spirit (John 20:22).

 

해설

AC.96은 AC.94의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라는 표현에서 왜 하필 ‘콧구멍’과 ‘숨’이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AC.94에서는 ‘생명의 숨’이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시는 것을 뜻한다고 했고, AC.95에서는 신앙의 생명이 겉 사람을 준비하며 사랑의 생명이 그를 ‘사람’이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96은 그 생명이 왜 콧구멍을 통하여 불어넣어지는 것으로 묘사되는지를 밝힙니다.

 

스베덴보리는 고대와 말씀에서 ‘콧구멍’이 냄새로 말미암아 기분 좋은 것과 연결되며, 이것이 퍼셉션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코 = 퍼셉션’이라는 상응 공식을 하나 더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냄새를 맡아 어떤 것을 기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과 퍼셉션 사이의 관계를 스베덴보리가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적 인간의 퍼셉션은 앞에서도 계속 등장했으며, 이제 그것이 ‘콧구멍’이라는 말씀의 표현과 연결됩니다.

 

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표현이 ‘안식의 향기’입니다. 번제와 주님 및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는 것들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맡으셨다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물질적인 연기나 냄새 자체를 즐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AC.96은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이 주님께 가장 기분 좋은 것이라고 직접 설명합니다. 따라서 제사의 향기는 그것이 표상하는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과 연결됩니다.

 

이 때문에 ‘생명의 숨’도 콧구멍을 통하여 불어넣으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AC.94에서 그 생명이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라고 했는데, AC.96에서는 바로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이 주님께 가장 기분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콧구멍, 향기, 퍼셉션, 사랑과 신앙, 생명의 숨은 서로 떨어진 주제들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애4:20의 ‘우리 콧구멍의 숨’과 요20:22의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 말씀은 이 의미를 더욱 확증하기 위해 인용됩니다. 특히 요20:22에서는 숨을 내쉬는 행위와 성령을 받는 일이 직접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2:7의 ‘생명의 숨’ 역시 단순한 육체적 호흡에 머무르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전달이라는 속뜻을 갖는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렇게 AC.94-96은 하나의 연속된 설명을 이룹니다. 주님께서 겉 사람을 형성하시고, 그에게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이 겉 사람에까지 미쳐 그를 살아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AC.96은 이 생명이 퍼셉션과 사랑과 신앙의 질서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콧구멍’, ‘향기’, ‘숨’이라는 말씀의 표현들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AC.96 해설)

 

심화

1. 왜 ‘콧구멍’은 퍼셉션을 뜻하는가?

 

AC.96 심화 1, 왜 ‘콧구멍’은 퍼셉션을 뜻하는가?

AC.96 심화1. 왜 ‘콧구멍’은 퍼셉션을 뜻하는가? AC.96에서 스베덴보리는 고대와 말씀에서 ‘콧구멍’으로 냄새로 말미암아 기분 좋은 모든 것을 이해했으며, 이것이 퍼셉션을 뜻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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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7, 창2:7, '호흡과 숨이 생명을 뜻하는 이유, 태고교회의 퍼셉션'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7생명을 ‘숨을 내쉼’(breathing)과 ‘숨’(breath)으로 묘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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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5, 창2:7, ‘신앙의 생명은 준비하고, 사랑의 생명은 그를 ‘사람’이 되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5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을 다룹니다. 앞의 두 절에서는 그의 신앙 또는 이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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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5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을 다룹니다. 앞의 두 절에서는 그의 신앙 또는 이해의 생명을, 이 절에서는 그의 사랑 또는 의지의 생명을 다룹니다. 지금까지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와 싸워 왔으며, 그러므로 그때의 겉 사람은 ‘사람’(man)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천적 인간이 되면서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며, 신앙의 생명과 사랑의 생명으로 그렇게 되어 겉 사람도 ‘사람’(man)이 됩니다. 신앙의 생명은 그를 준비하지만, 그를 ‘사람’(man)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생명입니다. The life of the external man is here treated of—the life of his faith or understanding in the two former verses, and the life of his love or will in this verse. Hitherto the external man has been unwilling to yield to and serve the internal, being engaged in a continual combat with him, and therefore the external man was not then “man.” Now, however, being made celestial,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it also becomes “man,” being so rendered by the life of faith and the life of love. The life of faith prepares him, but it is the life of love which causes him to be “man.”

 

해설

AC.95는 AC.94에서 말한 ‘겉 사람이 생명을 얻음’을 더욱 세밀하게 설명합니다. 그 생명에는 신앙 또는 이해의 생명과 사랑 또는 의지의 생명이라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앞의 두 절에서는 전자를 다루었고, 이제 이 절에서는 후자를 다룬다고 합니다. 따라서 창2의 이 부분은 단순히 겉 사람이 살아났다는 한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이 어떤 질서로 생명을 얻는지를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 겉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던 이유도 다시 분명해집니다. 겉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AC.91에서 처음 분명하게 설명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싸움이 여기서 ‘사람’이라는 표현과 직접 연결됩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과 올바른 질서 안에 있지 않을 때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아직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이 되면서 관계가 달라집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며, 신앙의 생명과 사랑의 생명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따라서 AC.94의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겉 사람까지 이러한 생명 안에 들어왔다는 뜻이었습니다. 거듭남은 속 사람만 변화시키고 겉 사람을 남겨 두는 일이 아니라, 마침내 겉 사람까지 속 사람과 질서를 이루어 살아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AC.95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구별을 하나 더 합니다. ‘신앙의 생명은 그를 준비하지만, 그를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앙의 생명은 사람을 준비하는 실제적이고 필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의 완성에서는 신앙이 독립적으로 주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하나를 이루며 사랑이 주된 것이 됩니다. 이것은 AC.83에서 이미 설명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는 질서와 정확히 이어집니다.

 

따라서 AC.95의 핵심은 신앙과 사랑 가운데 하나를 버리고 하나만 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생명이 준비하고 사랑의 생명이 그를 ‘사람’이 되게 한다는 질서에 있습니다. 이해에 속한 것이 먼저 준비되고, 마침내 의지와 사랑에 속한 생명이 그 사람의 삶 자체가 될 때 겉 사람도 속 사람과 함께 살아 있는 질서 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AC.94와 AC.95를 함께 읽으면 ‘생명의 숨’이 왜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라고 했는지도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종교적 지식을 더해 주는 생명이 아니라 사람의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을 새롭게 하고, 마침내 그의 겉 사람까지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게 하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완성에서 주된 것은 사랑입니다. (AC.95 해설)

 

심화

1. 왜 신앙의 생명은 사람을 ‘준비’할 뿐이고, 사랑의 생명이 그를 ‘사람’이 되게 하는가?

 

AC.95 심화 1, 왜 신앙의 생명은 사람을 ‘준비’할 뿐이고, 사랑의 생명이 그를 ‘사람’이 되게

AC.95 심화1. 왜 신앙의 생명은 사람을 ‘준비’할 뿐이고, 사랑의 생명이 그를 ‘사람’이 되게 하는가? AC.95의 마지막 문장은 매우 강합니다. ‘신앙의 생명은 그를 준비하지만, 그를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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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6, 창2:7, ‘콧구멍과 향기와 퍼셉션, 사랑과 신앙의 생명을 불어넣으심’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6‘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셨다’(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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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4, 창2:7,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 - 겉 사람도 살아 있게 되다’ (AC.94-9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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