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1

이 장에서 ‘아들들’(sons)과 ‘딸들’(daughters)(4, 7, 10, 13, 16, 19, 26, 30절)도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도 그러하며, 다시 말해 선들과 진리들도 그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들과 선들은 분명하게 퍼셉션된 것들인데, 이는 그것들이 태고교회, 곧 다른 모든 후대 교회들의 으뜸이며 어버이인 교회에 관하여 서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same things are signified by “sons” and “daughters” in this chapter (verses 4, 7, 10, 13, 16, 19, 26, 30), but such as is the church, such are the “sons and daughters,” that is, such are the goods and truths; the truths and goods here spoken of are such as were distinctly perceived, because they are predicate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

 

해설

AC.491은 AC.486-490에서 설명한 ‘아들들과 딸들’의 의미를 창5 전체에 적용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덧붙입니다.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교회에서 그 진리와 선의 질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도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즉 어떤 교회가 어떤 내적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그 교회가 받아들이고 산출하는 진리와 선의 어떠함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상응을 기계적인 대응표처럼 이해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들 = 진리’, ‘딸 = 선’이라는 기본적인 상응은 같더라도, 그 진리가 어떤 진리이며 그 선이 어떤 선인지는 그것들이 속한 교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아들’이라는 표현도 태고교회에 관하여 사용될 때와 후대의 다른 교회에 관하여 사용될 때 그 진리의 내적 질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어의 기본 의미뿐 아니라 그 단어가 놓인 교회적 상태와 문맥까지 함께 보아야 합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진리들과 선들은 ‘분명하게 퍼셉션된 것들’입니다. 이 표현은 창5 초반부터 계속 강조되어 온 태고교회의 독특한 성격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선과 진리는 주로 외부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검토하여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내적으로 퍼셉션했습니다. 따라서 그 교회의 ‘아들들과 딸들’은 바로 그러한 퍼셉션에서 나온 진리들과 선들입니다.

 

이것은 앞의 AC.483과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등 여러 교회가 주로 퍼셉션의 차이에 따라 구별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교회가 낳은 ‘아들들과 딸들’ 역시 똑같을 수 없습니다. 각 교회의 퍼셉션이 달랐으므로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와 선의 어떠함도 달랐습니다. 창5에 같은 표현인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가 계속 반복되지만, 속뜻에서는 매번 똑같은 진리와 선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교회 상태에 고유한 진리와 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다른 모든 후대 교회들의 으뜸이며 어버이인 교회’(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라고 합니다. ‘으뜸’이라는 말은 태고교회가 최초이면서 가장 근원적인 교회였음을, ‘어버이’라는 말은 이후의 교회들이 그 교회로부터 이어져 나왔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창5에서 태고교회와 그 후대 교회들이 ‘낳음’의 언어로 연결되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앞선 교회의 선과 진리가 후대 교회에 전해지고, 후대 교회는 그것을 자신의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형태의 선과 진리를 산출하는 교회의 계승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는 지금 우리가 창5를 읽으며 계속 확인하고 있는 중요한 원리도 있습니다. ‘계승’은 ‘동일함’이 아닙니다. 셋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하면서도 동일하지 않았듯이, 이후의 교회들도 앞선 교회에서 이어지지만 각각 다른 퍼셉션과 다른 상태를 갖습니다. 따라서 창5의 계보는 동일한 교회가 이름만 바꾸어 계속되는 과정이라기보다, 앞선 교회로부터 받은 것을 다음 교회가 자신의 상태에 따라 이어받으면서 선과 진리의 어떠함도 함께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보면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도 그러하다’는 AC.491의 짧은 문장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교회의 참된 상태는 이름이나 외적 형태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어떤 진리가 받아들여지고 어떤 선이 살아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 진리와 선이 주님으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교회의 내적 어떠함은 결국 그 교회가 ‘낳는’ 진리와 선의 어떠함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창5:4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라는 짧은 표현 안에는 태고교회의 풍성한 영적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낳은 것은 단순한 후손이 아니라 분명하게 퍼셉션된 진리와 선이었으며, 그 진리와 선은 다시 후대 교회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들이 태고교회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퍼셉션의 상태가 달라지는 만큼 그들이 받아들이는 진리와 선의 질도 달라집니다. 이것이 창5의 반복되는 ‘아들들과 딸들’을 단순한 족보의 반복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과 계승의 역사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AC.491 해설)

 

 

 

창5:5, AC.492, ‘사라진 퍼셉션을 의미하는 사람의 죽음’(AC.492-49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창5:5) AC.492여기서 ‘날들’(days)과 ‘해들’(years)은 위에서와 같이 시대들과 상태들을 의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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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4, AC.490, ‘딸들이 의미하는 사랑과 신앙의 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0말씀에서 ‘딸들’(daughters)은 자주 선들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9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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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0

말씀에서 ‘딸들’(daughters)은 자주 선들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9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10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놓았도다 14수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17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45:9-17) Kings’ daughters were among thy precious ones; at thy right hand doth stand the queen in the best gold of Ophir; the daughter of Tyre with a gift; the king’s daughter is all glorious within; of eyelet work of gold is her raiment; instead of thy fathers shall be thy sons, (Ps. 45:9-17)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딸’(daughter)에 의해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이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들도 선들로 말미암아 ‘딸들’(daughters)이라 하는데, 이를테면 ‘시온의 딸’(daughter of Zion)과 ‘예루살렘의 딸’(daughter of Jerusalem)(사37:22 및 그 밖의 많은 곳), 또한 ‘내 백성의 딸들’(daughters of my people)(사22:4), ‘다시스의 딸’(daughter of Tarshish)(사23:10), ‘시돈의 딸’(daughter of Sidon)(12절), 그리고 ‘들에 있는 딸들’(daughters in the field)(겔26:6, 8)이라 합니다. where the good and beauty of love and faith are described by the “daughter.” Hence churches are called “daughters” by virtue of goods, as the “daughter of Zion” and the “daughter of Jerusalem” (Isa. 37:22, and in many other places); they are also called “daughters of my people” (Isa. 22:4), the “daughter of Tarshish” (Isa. 23:10), the “daughter of Sidon” (verse 12), and “daughters in the field” (Ezek. 26:6, 8).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사37:2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사22:4)

 

10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12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23:10, 12)

 

6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8그가 들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너를 치려고 사다리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방패를 갖출 것이며 (겔26:6, 8)

 

해설

AC.490은 앞의 AC.489에서 ‘아들들은 진리, 딸들은 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것 가운데 특별히 ‘딸들’이 왜 선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글은 짧지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드러냅니다. 말씀에서 ‘딸’은 단순히 여성인 자녀를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과 신앙에서 비롯되는 선, 더 나아가 그러한 선을 지닌 교회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45편에서 왕의 딸과 왕후가 금과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한 모습은 단순히 왕궁의 화려함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AC.490은 이를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 선과 함께 언급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인 아름다움은 겉모습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선이 진리를 통하여 드러날 때 생깁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의복과 금과 아름다움으로 단장한 딸의 모습은 교회 안의 선이 진리와 함께 아름답게 나타나는 모습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그러므로 교회들도 선들로 말미암아 딸들이라 한다’는 설명입니다. ‘시온의 딸’(daughter of Zion), ‘예루살렘의 딸’(daughter of Jerusalem) 같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교회가 ‘딸’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단순히 문학적인 의인화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를 참으로 교회 되게 하는 것이 그 안에 있는 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진리도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 진리가 사랑의 선 안에서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교회가 됩니다.

 

이 점은 앞에서 살펴본 가인의 문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가인으로 표상된 신앙이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었을 때, 진리는 더 이상 본래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딸’이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진리가 궁극적으로 사랑과 선을 섬겨야 한다는 말씀의 질서를 다시 보여 줍니다. ‘아들’과 ‘딸’, 곧 진리와 선은 서로 떨어져 존재하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한 교회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

 

또한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 ‘두로의 딸’, ‘시돈의 딸’처럼 어떤 지역이나 도시의 이름에 ‘딸’이 붙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그 지역의 여성들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읽을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이름이 나타내는 교회나 교회에 속한 것을 그 안의 선이라는 측면에서 ‘딸’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딸’이라는 표현을 만날 때에는 문맥에 따라 ‘어떤 선이 여기서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창5:4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라는 표현도 더욱 분명해집니다. 태고교회와 그 후대 교회들은 단지 오랜 세월 동안 존속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진리와 선을 계속 산출했습니다. AC.489가 ‘아들들’을 진리로 설명했다면 AC.490은 ‘딸들’을 선으로 설명하면서, 특히 그 선이 사랑과 신앙의 선임을 보여 줍니다. 교회가 살아 있다는 것은 진리를 많이 알고 있다는 데만 있지 않고, 그 진리가 사랑과 선으로 살아나며 계속해서 영적인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AC.490 해설)

 

 

 

창5:4, AC.491, ‘교회의 어떠함에 따라 달라지는 아들들과 딸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1이 장에서 ‘아들들’(sons)과 ‘딸들’(daughters)(4, 7, 10, 13, 16, 19, 26, 30절)도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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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4, AC.489, ‘교회가 낳는 아들들과 딸들, 진리와 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9‘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이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하며, 특히 ‘아들들’(sons)은 진리들을,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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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9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이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하며, 특히 ‘아들들’(sons)은 진리들을, ‘딸들’(daughters)은 선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예언서의 많은 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는 옛날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교회의 잉태와 출생을 ‘아들들과 딸들’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는, That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indeed by “sons” truths, and by “daughters” goods,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prophets; for in the Word, as also in olden time,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 are called “sons and daughters,” as in Isaiah: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그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사60:3-5)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lift up thine eyes round about and see; all they gather themselves together and come to thee; thy sons shall come from far, and thy daughters shall be nursed at thy side; then thou shalt see and flow together, and thy heart shall be amazed, and shall be enlarged, (Isa. 60:3–5)

 

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and “daughters” goods.

 

[2] 시편에서는, In David:

 

11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12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시144:11, 12) Deliver me and rescue me from the hand of the sons of the stranger, whose mouth speaketh vanity; that our sons may be as plants grown up in their youth, that our daughters may be as cornerstones hewn in the form of a temple, (Ps. 144:11–12)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의 아들들’(sons of the stranger)은 거짓된 진리들, 곧 거짓들을 의미하고, ‘우리 아들들’(our sons)은 진리의 교리들을, ‘우리 딸들’(our daughters)은 선의 교리들을 의미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stranger” signify spurious truths, or falsities; “our sons” signify doctrinals of truth; “our daughters,” doctrinals of good.

 

[3] 이사야에서는, In Isaiah: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8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43:6, 8) I will say to the north, Give up, and to the south, Keep not back; bring my sons from far,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bring forth the blind people, and they shall have eyes; the deaf, and they shall have ears, (Isa. 43:6, 8)

 

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의미하고, ‘맹인들’(blind)은 진리를 보게 될 사람들을, ‘귀먹은 자들’(deaf)은 진리에 순종하게 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daughters,” goods; the “blind,” those who would see truths; and the “deaf,” those who would obey them.

 

[4]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렘3:24) Shame hath devoured the labor of our fathers from our youth; their flocks, their herds,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Jer. 3:24)

 

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들들과 딸들’은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자녀들’(children)과 ‘아들들’(sons)이 진리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where “sons” and “daughters” signify truths and goods. That “children” and “sons” signify truths is plain from Isaiah:

 

22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사29:22-24) Jacob shall not now be ashamed, neither shall his face now wax pale; for when he shall see his children the work of my hands in the midst of him, they shall sanctify my name, and shall sanctify the Holy One of Jacob, and shall fear the God of Israel; they also that erred in spirit shall know understanding, (Isa. 29:22–24)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거룩한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holy one of Jacob, the God of Israel)은 주님을 의미하고, ‘자녀들’은 거듭난 사람들, 곧 선과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이는 실제로 그 구절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where the “holy one of Jacob, the God of Israel,” signifies the Lord; “children” signify the regenerate, who have the understanding of good and truth, as is indeed explained.

 

[5] 또 이사야에서는, Again: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사54:1) Sing, O barren, thou that didst not bear, for more are the sons of the desolate than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Isa. 54:1)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홀로 된 여인의 아들들’(sons of the desolate)은 초대교회, 곧 이방인들의 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의미하고, ‘남편 있는 여인의 아들들’(sons of the married wife)은 유대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desolate” signify the truths of the primitive church, or that of the Gentiles;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the truths of the Jewish church.

 

[6]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렘10:20)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of me, and are not, (Jer. 10:20)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또, where “sons” signify truths. Again: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렘30:20) His sons shall be as aforetime, and their congregation shall be established before me, (Jer. 30:20)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들들’은 고대교회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스가랴에서는, where “sons” signify the truths of the ancient church. In Zechariah: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슥9:13) I will stir up thy sons, O Zion, with thy sons, O Javan, and make thee as the sword of a mighty man, (Zech. 9:13)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signifying the truths of the faith of love.

 

해설

AC.489는 AC.486에서 짧게 제시했던 ‘아들들은 진리, 딸들은 선’이라는 상응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입증합니다. 그러나 이 글의 핵심은 단순히 ‘아들 = 진리, 딸 = 선’이라는 대응표를 하나 더 익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첫 문단의 ‘교회의 잉태와 출생을 아들들과 딸들이라 한다’는 설명이 오히려 이 글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교회가 ‘잉태하고 낳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새로운 진리와 선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앞의 창5:3에서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낳는’ 것으로 표현된 것과도 연결됩니다. 자연적 생명에서는 부모에게서 자녀가 태어나지만, 영적 생명에서는 주님으로부터 받아들인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새로운 선과 진리가 생겨납니다. 따라서 창5:4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라는 표현은 단순히 아담에게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녀들이 더 있었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고, 태고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진리와 선이 산출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AC.486과 연결하여 이 진리와 선이 그들이 ‘퍼셉션한’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에게 진리와 선은 단순히 외부에서 배우고 기억하여 보유하는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앞의 AC.483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교회들을 구별하는 주된 특징 자체가 퍼셉션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내적으로 퍼셉션했고, 그렇게 받아들여진 진리와 선이 그 교회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었습니다.

 

사60:3-5가 좋은 예입니다. 문자에서는 흩어졌던 아들들과 딸들이 돌아오는 장면이지만, 속뜻에서는 교회 안으로 진리들과 선들이 모여드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고 딸들은 안기어 온다’는 것은 단순한 가족의 재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회복시키실 때 진리와 선이 다시 풍성해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교회가 살아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144편의 ‘이방인의 아들들’은 거짓된 진리들, 곧 거짓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아들’이라는 말 자체가 언제나 참된 진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 줍니다. 무엇으로부터 태어났느냐에 따라 참된 진리가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은 진리의 교리들을 의미하지만 ‘이방인의 아들들’은 거짓을 의미합니다. 상응은 단어 하나를 기계적으로 치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단어가 놓인 전체 문맥과 그 근원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사43:6, 8에서 ‘아들들’과 ‘딸들’이 돌아오는 것과 함께 ‘맹인’이 보고 ‘귀먹은 자’가 듣게 되는 것도 같은 질서를 보여 줍니다. 진리와 선이 사람 안에 회복될 때 그는 비로소 영적으로 보기 시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과 연결되고, ‘듣는 것’은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아들들과 딸들의 귀환은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의 질서가 회복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54:1의 ‘홀로 된 여인의 아들들’과 ‘남편 있는 여인의 아들들’은 ‘아들’이 실제 혈육의 자녀를 넘어 교회에 속한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전자를 초대교회, 곧 이방인들의 교회에 속한 진리로, 후자를 유대교회에 속한 진리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어떤 여인의 자녀가 많아진다는 것은 속뜻으로는 그 교회 안에서 진리가 풍성해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는 창5의 족보를 읽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셋, 에노스, 게난 등의 이름이 각각 교회를 나타내며, 그 연수는 그 교회의 상태와 상태 변화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AC.489는 그 교회들이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반복되는 표현까지 열어 줍니다. ‘이름’은 교회를, ‘날들과 해들’은 그 교회의 상태와 변화를, ‘아들들과 딸들’은 그 교회 안에서 퍼셉션된 진리와 선을 나타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놓이면 창5의 족보는 단순한 인명과 수명의 목록이 아니라 교회가 이어지고 변화하며 그 안에서 진리와 선이 계속 산출되는 영적 역사가 됩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출생’이라는 표현은 진리와 선의 근원이 주님께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영적 진리를 만들어 내거나 선을 생산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그 생명이 사람 안에서 사랑과 신앙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선과 진리가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창5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반복되는 말은 태고교회의 생명력이 단순히 오래 존속했다는 데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받아들인 선과 진리가 그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영적 결실을 맺었다는 데 있음을 보여 줍니다. (AC.489 해설)

 

 

 

창5:4, AC.490, ‘딸들이 의미하는 사랑과 신앙의 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0말씀에서 ‘딸들’(daughters)은 자주 선들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9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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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4, AC.488, ‘천사들에게 시간은 상태와 그 변화’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8‘날들’(days)이 일반적인 상태를, ‘해들’(years)이 특별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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