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7

‘셋’(Seth)이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이면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은 위에서 셋에 관하여 말한 것(3절)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That “Seth” is a second church less celestial than the most ancient church, its parent,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may appear from what was said above concerning Seth (verse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의 경우는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지나면서 앞서 언급한 원인으로 인해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해 간다는 것입니다. The case with churches, as we have said, is that by degrees, and in process of time, they decrease as to essentials, owing to the cause above mentioned.

 

해설

AC.497은 바로 앞의 AC.496에서 ‘셋은 태고교회보다 덜 천적이었다’고 한 이유를 한 걸음 더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창5:3에서 다룬 셋에 관한 설명을 다시 가리킵니다. 특히 AC.481-485에서 셋은 태고교회와 같은 천적 교회의 계열에 속하면서도, 그 퍼셉션의 상태가 태고교회 자체와는 달랐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덜 천적’이라는 말은 셋 교회가 전혀 다른 종류의 교회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천적 질서 안에서도 그 본질적인 생명과 퍼셉션의 충만함이 이전보다 감소했다는 뜻입니다.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표현은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쇠퇴는 먼저 외형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도 남아 있을 수 있고, 예배도 계속될 수 있으며,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언어와 형식도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어야 할 본질,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 그리고 그 사랑과 선에서 나오는 진리의 생명이 약해지면 교회는 겉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점차 이전 상태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경우에는 특히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직접 퍼셉션하던 천적 생명이 그 본질적인 것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앞서 언급한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 절 하나만을 가리키기보다, 앞에서 설명해 온 교회 쇠퇴의 원리를 배경으로 합니다. 특히 AC.494에서는 유전적 악이 세대를 거치며 누적되고, 사람들이 실제적인 악(actual evil)을 자기 삶으로 만들어 갈 때 그것이 다시 후대의 유전적 성향에 더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대를 거치면서 쇠퇴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간 자체가 교회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악을 실제 삶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반복되고 굳어지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점차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 점은 ‘부모인 태고교회’라는 표현도 더욱 의미 있게 만듭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생명을 이어받으면서도 부모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셋 교회 역시 태고교회로부터 그 천적 성격을 이어받았지만 동일한 정도의 퍼셉션을 지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따라서 창5의 계보는 이름만 바뀌는 기록이 아니라, 같은 큰 계열 안에서 교회의 내적 상태가 세대를 따라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후대일수록 무조건 더 악하다’는 식의 단순한 역사 법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태고교회에서 시작하여 지금 다루고 있는 일련의 교회들이 그 최초의 천적 상태로부터 점차 멀어져 간 특정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쇠퇴 속에서도 주님은 교회를 단번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앞선 교회로부터 다음 교회가 이어지도록 하십니다. 셋으로부터 에노스가 나오고, 다시 그 뒤를 이어 여러 교회가 계속되는 창5의 구조 자체가 바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497은 교회의 생명을 판단하는 기준을 외적인 규모나 제도의 지속에 두지 않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교회의 진정한 생명은 ‘본질적인 것들’이 살아 있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살아 있고, 신앙의 진리가 그 사랑과 결합되어 삶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은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서도 본질적인 것은 감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님은 쇠퇴하는 시대 속에서도 남아 있는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고 그것으로 다음 상태를 준비하십니다. 창5의 계보는 바로 그러한 쇠퇴와 보존, 그리고 계승의 역사를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AC.497 해설)

 

 

 

창5:6, AC.498, ‘셋으로부터 이어져 나온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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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6, AC.496, ‘셋으로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AC.496-498)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창5:6) AC.496‘셋’(Seth)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번째 교회로서,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었지만,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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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창5:6)

 

AC.496

‘셋’(Seth)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번째 교회로서,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었지만,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가 ‘백오 세를 살았다’(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는 것은 앞에서와 같이 때와 상태들을 의미하며, 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합니다. “Seth,” as was observed, is a second church, less celestial than the most ancient church, its parent,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that he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signifies, as before, times and states; that he “begat Enosh” signifies that from them there descended another church that was called “Enosh.”

 

해설

AC.496은 창5의 계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아주 간결하게 확인해 주는 글입니다. 창5:6의 문자적 본문은 셋이라는 사람이 백오 세에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족보 기록이지만, 속뜻에서는 ‘셋 → 에노스’가 한 개인에게서 다른 개인이 태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로부터 또 다른 교회가 이어져 나온 과정입니다. AC.470에서 이미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뜻한다고 밝힌 원리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적용됩니다. 따라서 창5의 족보를 따라간다는 것은 태고교회 이후 여러 교회가 어떤 상태를 거쳐 차례로 이어졌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셋을 ‘두 번째 교회’라고 하면서 동시에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라고 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창5의 계승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최초의 태고교회가 지녔던 천적 상태가 그대로 복제되어 다음 교회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후대의 교회로 갈수록 그 상태에는 차이가 생겼습니다. 앞서 AC.481-485에서 셋 교회는 태고교회와 닮았지만 퍼셉션의 차이로 구별되는 교회였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교회’라는 말에는 시간적인 후대라는 뜻뿐 아니라, 태고교회와 구별되는 새로운 교회적 상태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셋 교회를 이미 태고교회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교회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셋을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라고 하면서도 곧이어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쇠퇴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천적 교회의 성격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그리고 선으로부터 진리를 퍼셉션하는 태고교회의 기본 질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생생함과 완전함이 최초의 태고교회와 같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백오 세를 살았다’(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는 표현 역시 실제 연령 자체가 속뜻의 중심이 아닙니다. AC.482-483과 AC.487-488에서 살펴본 것처럼 ‘해’와 ‘연수’는 교회의 때와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여기서 백오 년은 셋 교회가 어떤 상태를 지나 다음 교회인 에노스로 이어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105’라는 수 자체의 세부적인 의미를 풀지 않고, 앞에서 확립한 원칙대로 ‘때와 상태들’을 뜻한다고만 밝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숫자의 개별 상응을 억지로 풀기보다는, 창5의 연수가 교회 상태의 지속과 변화를 기록한다는 큰 원리를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표현은 창5의 ‘낳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교회에서 또 하나의 교회가 ‘태어난다’는 것은 앞선 교회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전혀 무관한 것이 새로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교회만의 고유한 상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에노스가 생겼다고 하지 않고, 셋으로부터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창5의 족보는 바로 이러한 교회적 계승의 연속입니다.

 

이 점에서 AC.496은 앞으로 이어질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등의 이름을 읽는 기본 틀을 마련합니다. 각각의 이름은 단순히 족보상의 한 사람을 지나가는 표지가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의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창5를 읽으면서 중요한 질문은 ‘이 사람은 누구인가?’에만 머물지 않고, ‘이 이름으로 나타난 교회는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을 이어받았으며, 그 상태는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창5의 긴 족보가 단순한 이름과 연수의 나열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의 상태가 변해 가는 가운데서도 교회를 이어 가시는 역사가 됩니다. (AC.496 해설)

 

 

 

창5:6, AC.497, ‘시간이 흐르며 본질적인 것들이 감소하는 교회’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7‘셋’(Seth)이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이면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은 위에서 셋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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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5, AC.495, ‘태고교회의 쇠퇴를 이해하는 열쇠, 퍼셉션’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5) AC.495태고교회가 어떻게 쇠퇴하였는지는 퍼셉션(perception)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태고교회는 퍼셉션을 가진 교회였으며,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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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5)

 

AC.495

태고교회가 어떻게 쇠퇴하였는지는 퍼셉션(perception)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태고교회는 퍼셉션을 가진 교회였으며, 오늘날에는 그러한 교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퍼셉션은 그 구성원들이 천사들처럼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주님으로부터 퍼셉션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과 진리는 시민 사회에서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가 하는 것이라기보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을 믿는 신앙의 선과 진리입니다. 삶으로 확증되는 신앙고백으로부터 퍼셉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How the most ancient church decreased cannot appear unless it be known what perception is, for it was a perceptive church, such as at this day does not exist. The perception of a church consists in this, that its members perceive from the Lord what is good and true, like the angels; not so much what the good and truth of civic society is, but the good and truth of love to the Lord and of faith in him. From a confession of faith that is confirmed by the life it can be seen what perception is, and whether it has any existence.

 

해설

AC.495는 창5:5의 마지막 해설이면서, 앞으로 태고교회의 쇠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앞의 AC.492와 AC.494는 ‘죽었다’는 것이 그 교회를 특징짓던 퍼셉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도대체 퍼셉션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사라진 것을 교회의 죽음이라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AC.495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태고교회를 ‘퍼셉션을 가진 교회’라고 규정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단지 지식이 많거나 판단력이 뛰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퍼셉션은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주님으로부터 퍼셉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어떤 교리를 듣고 논증을 거쳐 그것이 옳다고 결론 내리는 것보다 훨씬 내적인 방식으로, 주님으로부터 유입되는 선과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들의 퍼셉션을 ‘천사들처럼’(like the angels)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퍼셉션을 막연한 직감이나 느낌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왠지 이것이 맞는 것 같다’고 느끼는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은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선입견도 매우 강한 확신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AC.495가 퍼셉션의 내용을 ‘주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을 믿는 신앙의 선과 진리’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점에서 중요합니다. 퍼셉션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며, 그 내용 역시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는 삶에 관한 선과 진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또 여기서 시민 사회의 선과 진리를 구별합니다. 이것은 사회생활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태고교회의 퍼셉션이 주로 사회적 규범이나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알아내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었으며,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 속한 선과 진리를 내적으로 지각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퍼셉션은 일종의 초자연적인 정보 획득 능력이나 미래를 알아맞히는 능력과도 다릅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중요합니다. ‘삶으로 확증되는 신앙고백’(a confession of faith that is confirmed by the life)으로부터 퍼셉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퍼셉션을 단순한 내적 느낌에 맡겨 두지 않습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신앙과 실제 삶이 서로 일치할 때, 그 삶을 통하여 그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의 어떠함이 드러납니다. 참된 퍼셉션은 말로만 ‘나는 이것이 진리라고 느낀다’고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진리가 사랑과 선의 삶으로 나타나는 데서 확인됩니다.

 

이 점은 태고교회가 왜 쇠퇴했는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그들의 교회적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는 데 있었으므로, 사랑의 상태가 변질될수록 퍼셉션 역시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앞의 AC.494에서 설명한 것처럼 악이 반복되고 세대를 거쳐 유전적 악이 증가하면서 태고교회의 처음 상태가 점차 손상되었습니다. 사랑이 변하면 그 사랑에서 나오는 지각도 변합니다.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던 상태가 사라졌을 때, 말씀은 그것을 그 교회가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창5에서 각 교회가 퍼셉션의 차이에 따라 구별된다는 AC.483의 설명과도 연결됩니다. 셋, 에노스, 게난 등은 단순히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상태의 교회들을 나타내며, 그 차이의 중심에는 퍼셉션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창5의 계보를 따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세대가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에 있던 퍼셉션이 여러 교회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마침내 소멸해 가는지를 따라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오늘날에는 그러한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다가 어떤 진리를 깊이 깨닫거나, 기도 중에 무엇이 옳은지를 강하게 느끼거나, 양심을 통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깨닫는다고 해서 그것을 곧바로 태고교회의 ‘퍼셉션’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후대의 영적 인간에게 주님은 주로 말씀의 진리와 신앙, 그리고 그 진리로 형성된 양심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태고교회의 퍼셉션은 그와 구별되는 천적 교회의 고유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퍼셉션이라는 개념이 오늘날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앙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진리는 단지 머릿속에 저장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선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AC.495가 퍼셉션을 설명하면서 마지막에 ‘삶으로 확증되는 신앙고백’을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태고교회와 같은 퍼셉션을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제 삶에서 살아갈수록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나 주장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내면과 삶을 변화시킵니다.

 

결국 창5:5의 ‘죽었더라’를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이 죽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AC.495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고유한 생명이었던 퍼셉션이 사라져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퍼셉션의 본질은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의 선과 진리를 알아차리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의 쇠퇴는 단순한 조직의 쇠퇴나 교리 지식의 감소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던 내적 생명의 쇠퇴였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창5의 ‘죽음’을 통해 보여 주는 교회의 죽음이며, 동시에 모든 시대의 교회가 자신의 생명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AC.495 해설)

 

 

 

창5:5, AC.492-496 심화 1, ‘유전적 악은 어떻게 대대로 누적되며, 우리는 조상의 죄까지 책임져야

창5:5, AC.492-496 심화1, ‘유전적 악은 어떻게 대대로 누적되며, 우리는 조상의 죄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AC.494는 태고교회가 쇠퇴한 주된 원인을 설명하면서 ‘유전적 악’(hereditary evil)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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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5, AC.492-495 심화 2, ‘태고교회의 퍼셉션과 오늘날의 양심은 어떻게 다른가?’

창5:5, AC.492-495 심화2. ‘태고교회의 퍼셉션과 오늘날의 양심은 어떻게 다른가?’ AC.495는 태고교회가 ‘퍼셉션을 가진 교회’였으며 ‘오늘날에는 그러한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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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6, AC.496, ‘셋으로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AC.496-498)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창5:6) AC.496‘셋’(Seth)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번째 교회로서,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었지만,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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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5, AC.494, ‘퍼셉션의 죽음과 유전적 악의 누적’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5) AC.494그가 ‘죽었다’(died)는 것이 그러한 퍼셉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죽다’(die)라는 말의 의미에서 분명합니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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