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마태복음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녹음 음량이 작을 수 있습니다. 양해 바라며, 이어폰으로 들으시기를 권합니다.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2-05(D1)-주일예배(2404, 마26,17-28, AC.3464.2), '성만찬'(The Holy Supper).pdf
0.44MB

https://youtu.be/RfMJmfTshKI

 

2. 성찬 원고 및 유튜브

성찬.pdf
0.13MB

https://youtu.be/gSab33gNj1I

 

 

3. 축도 원고 및 유튜브

2023-02-05(D1)-주일예배.축도.pdf
0.20MB

https://youtu.be/nd5gkpDgL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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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결혼 이야기’ (2023/2/4)

 

오늘은 오전 10시, 멀리 대전 도안 어느 웨딩홀에서 지인 자녀의 결혼식이 있어 부부 동반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잠깐 이 ‘결혼’, 특히 ‘천국 안의 결혼’(Marriages in Heaven)에 대하여 몇 가지 살피는 것으로 오늘은 대신하고자 합니다.

 

아래 내용은 스베덴보리가 10,837개의 글로 주석한 창세기, 출애굽기 각 장 오프닝과 클로징에서 특별히 따로 다룬 여러 다양한 주제 가운데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영들의 세계’ 관련 이슈들만 따로 추려 책 한 권으로 펴낸 ‘천국과 지옥’ 40장 ‘천국 안의 결혼’(366-386)에 나오는 내용이며, 김은경 역입니다.

 

 

366. 천국은 인류로 구성되고, 따라서 천사들도 남자와 여자가 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남자는 여자를 위해 창조되었고, 둘은 서로에게 속한다. 이성에 대한 사랑은 양쪽 성에 선천적인(innate)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과 마찬가지로 천국에도 결혼이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결혼은 지상의 결혼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따라서 이제 천국에서의 결혼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지상의 결혼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점이 비슷한가를 설명하겠다.

 

367. 천국에서의 결혼은 두 마음이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먼저 이 결합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마음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사고력(the understanding)이고, 하나는 의지(the will)이다. 이 두 부분이 하나로 움직일 때 한 마음이라고 한다. 천국에서는 남편이 사고력이라고 하는 부분의 역할을 하고, 아내는 의지라 하는 부분의 역할을 한다. 사람의 내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 결합이 몸에 속하는 더 낮은 차원으로 내려오면 사랑으로 느껴지고 지각되는데 이 사랑이 바로 결혼애(結婚愛, marriage love)다. 이것은 결혼애가 두 마음이 하나 되는 결합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국에서는 이것을 함께 산다고 하고, 둘은 둘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결혼한 한 쌍을 둘이 아니라 한 천사라고 한다.

 

369.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누구나 사고력과 의지가 있다. 그러나 남자는 사고력이 지배적이고(predominate), 여자는 의지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지배적인 것이 사람의 특성을 결정한다. 하지만 천국의 결혼에는 지배적인 것이 없다. 아내의 의지는 실제로 남편의 것이 되며, 남편의 사고력은 아내의 것이 된다. 이것은 두 사람이 상호적으로 서로 상대방과 똑같이 의도하고 생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해서 하나로 결합된다. 이 결합은 실제적인 결합니다. 그것은 아내의 의지가 남편의 사고력 안으로 들어가고, 남편의 사고력이 아내의 의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특히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때 이루어진다. 이것은 앞에서도 되풀이해 말했지만,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각과 애정을 나누기 때문인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그것이 더 특별히 이루어진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천국에서 결혼을 이루고, 결혼애를 낳는 것인 마음의 결합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서로 자기 것이 상대방의 것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82. 천국의 결혼과 지상의 결혼이 다른 점은 지상 결혼의 목적 중 하나는 자녀를 낳는데 있지만 천국 결혼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천국에서는 자녀 대신 선과 진리를 낳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설명했듯 천국 결혼이 선과 진리의 결혼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결혼에서는 무엇보다도 선과 진리, 그리고 그 둘의 결합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 결혼에서 늘어나는 것도 선과 진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나오는 ‘출생’과 ‘자손’은 영적 출생과 자손, 즉 선과 진리의 늘어남을 의미한다. ‘부모’는 생산하는 주체인 선에 결합된 진리를 의미하고, ‘아들’과 ‘’은 불어난 진리와 선을, ‘사위’와 ‘며느리’는 그 선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하는 등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천국 결혼은 땅 위의 결혼과 같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영적이기 때문에, ‘혼례’(marryings)라 하기에 적당하지 않고, 선과 진리의 결합에서 오는 마음의 결합이라고 해야 한다. 반면 땅 위의 결혼은 영적 결합뿐 아니라 몸의 결합도 되기 때문에 혼례다. 천국에 혼례가 없기 때문에, 그곳의 배우자들을 남편과 아내라 하지 않고, 두 마음이 하나로 합해진다는 천사들의 개념에 따라 ‘서로에게 속한다’는 뜻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이를 보면,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에 대한 아래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눅20:34-36)

 

 

어휴... 총 21개 글에서 좀 추리는 것도 쉽지가 않군요. 글 뒷부분엔 지상의 결혼 관련, 여러 이슈들도 살짝살짝 다루고 있습니다. 가령, 간음, 불륜이라든지, 이혼이나 일부 다처제 같은... 다 다룰 수 없어 따로 보내드리는 스캔 pdf 파일을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에 비추어 한 가지 분명, 또렷해지는 사회적 이슈가 저 개인적으로는 있었습니다. 바로 ‘성평등’이라든지 ‘성전환’ 같은 것인데요...

 

당사자에겐 미안한(?) 말씀이지만, 아무리 육체에 무슨 손을 대어 성전환을 하신들 사후 영계에서는, 곧 그 사람의 영은 누구나 영원히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정작 본인은 자기는 육체로는 여자인데, 분명 그 성 지향성이 남성성이 강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 항의하실 수는 있겠으나... 네,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그저 주님과 개인적으로 해결을 보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은 선과 진리이신 분, 이 둘이 결혼, 하나의 신성으로 계신 분입니다. 주님의 이 신성으로부터 세상 만물이 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 등의 대칭구조로 창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무슨 소위 ‘성평등’이라는 중간지대(?)라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사정은 이해합니다만... 이런 일에 매진하느라 귀한 은사와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질서를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그만... ㅎㅎㅎ

 

그럼, 주말 잘 보내시고, 내일 복된 주일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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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를 매일 한 편씩 다루는 이유’ (2023/2/3)

 

즉, 서울 새 교회에서는 매주 한 편씩 다룬 주일설교 수백 편을 저는 매일 한 편씩 쉬지 않고 다시 다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래전 읽은, 아주 특별한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제목이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라는 책인데, 대한민국 어느 신대원 전도사가 중국 모처에 가서 탈북 형제자매 수백 명을 모아 성경통독을 통해 그들 의식 속 인 박힌 주체사상을 깨부수고, 복음의 전사들로 새 무장시켜 다시 북한으로 들여보냈다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내용이었지요.

 

한 15년 전 읽은 내용이라 지금은 어렴풋이만 기억나지만, 한 가지 아주 특별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내용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가 어쩌면 위 도입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그들이 힘썼던 훈련 프로그램은 아주 지극히 단순한 것으로서, 모처 숙소라는 곳에 십수 명씩 숨어지내며, 그저 새벽부터 밤까지 카세트를 틀고, 주구장창 성경통독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사람들의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거의 없어 모든 학습을 거의 ‘세뇌’라는 방식으로 해야만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무슨 저명한 설교가가 와서 그럴듯한 감성, 이성을 동원하며, 무슨 3대지 설교다 뭐다 이런 걸 하면 그들은 당췌 거이 무슨 소리냐고...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고 불평하지만...

 

자기들 중에 누가 나서서 말씀을 인용하며, ‘자,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시지 않았습네까?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합네다.’ 하면, 다들 ‘옳소!’ 하며 박수치고 환호하고 그런답니다...

 

놀라운 것은, 저들은 태어날 때부터 들어왔던 주체사상이라 그 머릿속에 아예 인이 박힌 사상인데도, 그런데 이 단순무식(?)해 보이는 성경통독이 그걸 깼다는 말입니다. 밤낮없이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던 성경통독으로 말입니다!

 

대전한밭제일교회를 담임하시던 이영환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지금은 원로로 섬기시지만 오히려 현역 때보다 더 수고하시는 사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4014 사역입니다. 3일 금식, 4일 보식을 열네 번, 그러니까 열세 번 하고 하루 더 하면 40일 금식하는 것이라는...

 

이 사역은 금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스피릿을 통해 목회자 본인의 근본적 변화와 그에 따른 목회 현장의 변화를 도모하자는 것이지요. 이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도입한 표어 하나가 있는데, 바로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이었고, 저 역시 이 운동의 1기생으로서 이 표어는 제가 느슨, 흐트러지려 할 때마다 저를 다잡는 아주 효과 만점의 표어였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답이 된 것 같은데요...

 

우리는 지상 언어로 기록된 말씀을 겉 글자로만, 문자로만 보는데 아주 매우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틀을 거의 못 바꾸지요... 마치 저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주체사상의 틀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이것, 곧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입니다. 물론 주님의 빛 비추심을 간구하면서 말이지요.

 

작년 11월 25일부터 시작한 이 속뜻 새벽예배... 오늘로 딱 71일 되었는데요, 벌써 저희 부부, 이제 말씀을 겉뜻으로만 볼 수 없게 되었음을 느낍니다. 뭐, 아직은 많이 어렴풋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역량 있는 분의 설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의 지난 여러 해 설교를 빌려 살짝 제 수준에 맞게 덧대어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살짝 덧대는 작업마저 사실은 체중 빠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쉽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그때마다 주님의 빛을 구하며, 저 표어,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을 속으로 외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네, 오늘은 좀 특별한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받는 이 다소 분량이 과한, 그래서 많이 좀 부담되는 이 카톡 공유시겠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빛을 구하시며, 꾹꾹 참고 한 몇 달 같이 달리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실 줄 믿습니다. 곧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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