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어제 ‘말씀(The Word)이란?’ 글 공유 후, 주님께 드린 기도문입니다...

 

주님, 오늘 글을 수신, 읽어본 많은 구독자들 중 아마 대다수가, ‘내용 자체는 전반적으로 맞는 말 같은데 이상하게 화가 나네...’ 할 것 같습니다. 개신교인으로서 제가 3년 전, 처음으로 이런 내용을 접했을 때처럼 말이지요.

 

개신교인에게 있어 바울 서신을 비롯, 다른 많은 신구약성경은 사실 성도들의 매일 일상 속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인데, 오늘 글은 그걸 통째로 건드리고 있으니까요...

 

주님, 오랜 세월 붙들고 살아온 성경 중 상당수가 사실은 메인이 아닌 조명이었다는 이런 글은, 비록 사람들을 힘들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본의 아니게 개신교인들,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나름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 저의 구독자들은 다들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이오니 불쌍히 여기시며, 빛을 비추사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이 글을 읽는 동안, 마음이 환하여지며, 눈이 밝아져 주님의 위로가 쏟아져 들어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글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간이 걸리고 마음이 힘들더라도 오늘 글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혹시 주님의 말씀(The Word)보다 더 우선하였던 어떤 교리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주님 의지하며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비롯, 종교개혁 여러 슬로건들도 그런 입장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정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러나 슬로건이라는 게 주님보다 클 수 없음을, 교리라는 게 주님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불러 영계에 올라 루터, 멜랑히톤 및 칼빈을 만나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던 스베덴보리가 전하는 그중 루터의 말,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alone)를 비롯, 자기가 힘써 주창했던 많은 독단교리들은 사실은 다 자기의 머리에서 나온 거라고... 당시 카톨릭하고는 무조건 대척점에 서야 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어떤 교리들, 곧 신앙에서 체어리티를 분리해내는 교리를 만들어내야 했던 거라고...’(TCR.796:4)

 

주님, 우리 개신교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보니 불교 가정이었고, 태어나보니 무슬림 가정이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태어나보니 개신교 가정이었고, 태어나보니 이런 교리들, 곧 사도들의 편지에서 추출한 교리들이었습니다...

 

주님, 저의 카톡 구독자들 중 상당수가 개신교인입니다. 저를 비롯, 이제 많은 새 일꾼들을 통해 이런 사실들을 저들에게 알리시고, 이제라도 우리로 하여금 주의 말씀(The Word)으로 돌아와 주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이 온전히, 그리고 아름답게 이루어지시기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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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치 뉴스나 유튜브 채널을 접하다보면 ‘아무개의 워딩을 그대로 전하면 이렇습니다...’ 하는 걸 간혹 읽거나 듣게 되는데요, 그것은 ‘입장과 지향점이 저마다 다른 기자들로 인해 이렇게 저렇게 재해석된 것 말고, 그 아무개의 입에서 나온 그대로의 말을 토씨하나 빠트리지 않고 그대로 전하다’라는 의미이지요. 말이란, 이 사람 저 사람 거쳐갈수록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성경도 그 66권 안에 소위 ‘워딩’과 ‘재해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특히 지난 이천년 성경의 형성 과정을 보면 여러 차례의 공의회를 거쳐 그때마다 이 책은 넣자, 저 책은 빼자 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 66권 성경이 픽스되었기 때문입니다. 6등급 시력을 가지고 결정한 것입니다.

 

신약성경 디모데 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에 나오는 ‘성경’은 당시 성경인 구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던 사도 바울을 포함, 다른 사도들 역시 자기들의 편지가 후대에 성경으로 채택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사람들로서, 이 소위 ‘워딩’과 ‘재해석’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그 구분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聖)’, 즉, ‘거룩하다’ 할 수 있으려면 오직 신(神), 곧 주님이 하신 말씀인가 아닌가만 보면 됩니다. 오직 주님의 워딩에만 모든 등급의 지혜, 곧 주님 자신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이라고 다 주님의 워딩은 아닙니다. 신구약 66권 중 주님의 워딩, 곧 말씀(the Word)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 : 창, 출, 레, 민, 신, 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시,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29권)

 

신약 : 마, 막, 눅, 요, 계 (5권)

 

오직 이 말씀들에만 주님의 지혜 전 등급이 다 들어있고, 나머지 성경들은 이 말씀들을 환히 비추는 조명의 역할로 쓰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나머지 성경들이 아무 쓰임새가 없었다면 지난날 여러 차례 성경 공의회 때, 주님은 이 글들이 성경에 포함되지 못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성경 66권 중 메인은 말씀들이고, 나머지는 이 말씀들을 환히 비추는 조명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케이나(arcana, 秘義, 모든 등급의 주님의 지혜)는 오직 말씀들에만 있으며, 말씀은 주님 자신입니다. 말씀들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구약의 말씀들은 많이 난해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간절히 빛 비춰주시기를 구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시면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주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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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이야기 첫 번째 시간에서 저는 주님의 지혜에는 여섯 단계, 등급(degree)이 있다 말씀드렸고, 그 첫 1, 2등급은 오직 주님께 속한 영역이라 그 어떤 피조물도 이해불가이며, 3등급부터 차례로 삼층천, 이층천, 그리고 일층천 천사에게 허락되었으며, 마지막 6등급이 비로소 인류에게 허락되었다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적 시야, 시력을 가지고 이해할 수도 있겠어요. 우리는 내적 시력이 6등급으로 아주 안 좋아 아주 거칠고 대문짝만하게 써야 겨우 보여 더듬더듬 읽을 수 있지요. 그래서 한정된 지면에 몇 글자 싣지도 못하고, 말씀을 오직 겉 글자로만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위로 갈수록, 혹은 내적일수록 더 시력이 좋아 인류가 읽지 못하는 것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력이 좋을수록 더 많은 것을 읽고 볼 수 있으니까요.

 

참고로, 각 천국 천사들의 차이를 좀 말씀드리면, 삼층천 가장 내적 천사들의 지혜는 이층천 천사들의 지혜를 수천 수만배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이층천 천사들은 삼층천 천사들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물어봐야 합니다. 이런 관계는 나머지도 같습니다.

 

그러면 일층천 천사들을 보고 우리는 ‘에게, 겨우...’ 하겠지만... 인류의 현자(賢者)들의 지혜와 일층천 천사들의 지혜가 또 위와 같은 차이입니다. 그만큼 하늘의 지혜는 지상하고는 비교불가입니다.

 

밀턴, 괴테 및 스베덴보리 등 기네스 북에, 인류 중 가장 지능이 높았던 사람들로 등재된 이분들 역시 그저 하늘의 빛 한 조각 받아 저렇게들 뛰어나다 하지만 이분들 역시 일층천 천사 앞에 서서 그들의 지혜를 접하게 되면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감탄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아무리 뛰어난들 분명한 사실은 저들을 포함, 모든 피조는 유한한 반면,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수학을 좀 하신 분들은 이 유한과 무한의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무한 앞에 유한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네, 그런 것입니다. 주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어떤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걸 듣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주님께 겸손히 빛을 구하는 그런 태도가 안전할 것입니다.

 

창세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사전 준비를 좀 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의 시야가 너무 조야(粗野)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의도치 않게 주님과 주님의 말씀(The Word)을 모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성정 상, 그들이 깨닫고, 알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주님 모독의 길을 걸을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막으신 것입니다.

 

주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의 두려움은 그것이 사람의 영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덕지덕지 붙어있기만 한 악은 나중에 주님이 떼어내시면 되지만, 영 자체가 변질되어 더럽혀지면, 그건 주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표현된 태고 교회의 멸망 때, 사실은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며, 그래서 이들은 지금도 지옥 저 한쪽 구석에서 지옥의 다른 영들을 해치지 못하게 따로 격리상태에 있습니다. 신성모독의 폐해는 이토록 정말 지독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처음 듣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인데,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6등급 시력인 인류에게 부득불 그들의 언어로 맞추어 주신 것임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 말씀을 읽을 때, 천사들은 각각 자기들의 시력으로 우리 눈엔 안 보이는 더 내적인 뜻으로 읽습니다. 그걸 가리켜 속뜻(internal meaning), 혹은 아케이나(arcana, 秘義)라 합니다.

 

셋째, 이런 속뜻을 이제는 인류에게 오픈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늘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나중에 어차피 천국 가면 다 알게될 걸 왜 굳이 골치아프게 미리...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말씀을 겉뜻으로만 읽어 본의 아니게 아주 엉뚱한 삶을 살다 생을 마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다시 오실 주님을 올바로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네 번째 교회인 현 기독교회는 말씀을 겉뜻으로만 읽어 말씀의 속뜻으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제 말씀의 속뜻을 여시고, 이 일에 필요한 많은 일꾼을 부르십니다. 인류 다섯 번째요, 마지막 교회인 주님의 새 교회는 태고 교회처럼 말씀을 속뜻으로 받드는 영원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속뜻을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원래 태초의 인류는 속뜻의 사람들이었으나 점차 주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게 되어 그 내면이 닫히고, 내적 시력을 잃게 된 것이므로, 이제라도 주님을 사랑하여 말씀의 영인 속뜻, 곧 말씀을 영으로 읽기를 간절히 사모하시면, 사람마다 조금씩 내적 시력이 회복되어 그 속뜻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빛 비춰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함. 이것이 말씀을 속뜻으로 읽는 열쇠입니다.

 

저는 이 공부를 시작할 무렵, 오른쪽 눈 시력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더래서 더더욱 이 시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험했어요. 이 글을 쓰며 생각하니, 혹시 이 내적 시력의 메시지를 가르치시려는 무슨 주님의 섭리가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

 

이밖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겠지만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 세 번째 이야기부터 드디어 창세기 1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주님이 이 공부에 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늘의 빛, 환히 비추사 닫혔던 우리의 내면이 열리고, 어두웠던 내적 시야, 시력이 차츰 회복되어 말씀을 속뜻으로 읽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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