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하면 지구를 전제로 하는 말이니 ‘(天)’ 혹은 ‘(靈)’라 해야 할까요? ^^ 하여튼 천국에 충만한 무슨 기운을 표현하고 싶어 ‘천국의 대기’, 이렇게 제목을 정했습니다.

 

천국에 충만한 무슨 기운이란 바로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을 말합니다. 천국뿐이겠습니까? 사실 영계, 자연계를 포함, 지으신 모든 피조세계가 주님의 신성으로 충만하지요.

 

주님의 신성은 사랑이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선(good)과 진리(truth)입니다. 해의 열과 빛이 분명히 다르지만 병합되어 있는 것처럼 주님의 선과 진리 역시 병합되어 온 피조세계에 발산됩니다.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천국의 빛은 지상 정오의 빛보다 몇 배 더 밝은데, 이 빛은 진리의 빛, 곧 진리에 담긴 주님의 선의 빛이지요. 천국은 주님의 신성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이 주님의 신성에 대한 감응 여부와 정도 차이로 그 사람의 영성이 어떻다 저떻다, 거룩하다 세속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신성에 대한 태도가 곧 주님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실 주님의 신성을 담는 그릇입니다. 신성이 주님의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라 하였으므로 자기 안에 주님의 신성을 담는다는 것은 곧 주님의 선과 진리에 힘쓰는 것이 되겠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사람은 지구의 대기 중에서는 폐 호흡을, 천국에서는 신성 호흡을 합니다. 그러므로 생전에 미리 신성 호흡 준비를 안 했다가는 나중에 큰일날 수 있습니다 ^^

 

일상생활에서 주님의 선을 실천하며, 주님의 진리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정보들을 가지고 지상 생활에 적용, 삶을 새롭게 하는 것, 그것이 곧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

우선 이분들은 크게 주님과 나머지 모두로 양분해야 합니다. 나머지 모든 분은 그저 주님의 빛을 대신 반사, 은은한 달빛의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이지 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해이십니다. 그러나 해는 직접 보기엔 너무 눈이 부셔서, 주님은 그 빛을 달처럼 대신 반사,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통해, 해처럼 빛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둘은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생전 책 한 권 직접 쓰거나 남기지 않고 가셨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어록이니 책이니 뭘 친히...

 

이분들은 우리처럼 무슨 종이에 남기시는 대신 사람들의 마음, 심비(心碑)에 새기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접하는 모든 기록은 이분들을 직접 만났던 당대 사람들의 증언에서 나온 것입니다.

 

같은 책이라도 그래서 이런 책, 이런 기록은 그 무게감이 다르며, 그 감동이 차원이 다릅니다. 법적 용어로는 검사가 작성한 조서(調書)와도 같은 것입니다 ^^

 

거의 매일 번역의 일과 글 쓰는 일을 하는 저로서는 두 가지를 결심하게 됩니다.

 

하나는, 나도 내 얘기보다는 나를 만나주신 주님 이야기를 하자! 이분들도 자기와 함께 동행하신 주님 이야기로 살다 가신 것처럼, 그래서 주님을 빛반사하는 달로 살다가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다가야지... 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나는 내 실제 삶은 이런데 글에서는 저런 것처럼 거짓의 글은 쓰지 말아야지... 목회자로서 나는 내가 사는 만큼 설교하고, 설교하는 만큼 살아야지... 하게 됩니다.

 

아! 특히 이 후자는 얼마나 얼마나 어려운지요!!!

 

오, 주님,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며, 유튜브에 올리는 그 동기를 하감(下鑑)하시오며, 스마트폰과 세상 뉴스로부터 물러나서 주야로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시선을 고정하는, 맑고 밝은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아멘아멘, 영원히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의 여러 재미난 특징 중 하나는 천국은 자기의 내면이 열린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데라는 겁니다.

 

이걸 좀 응용하면, 그래서 사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데가 천국이라는 말이지요 ^^

 

자기 역량만큼만 담을 수 있으며 누릴 수 있는 덴데, 우리 주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이셔서 항상 부어주시거든요! 할렐루야!

 

자기가 아주 조그만 종지이든, 또는 태평양을 다 담을 정도이든 주님은 얼마든지 부어 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뭐뭐만큼이라는 원리(?)를 삶에 조금 응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좀 생각을 해 보면... 늘 아래와 같은 시선을 갖는 겁니다.

 

지금 이분이 듣고자 하시는 대답, 또는 이 애가 듣고싶어 하는 말이 뭘까?

 

지금 이분이 원하시는 게, 이 애가 바라는 게 뭘까?

 

무슨 아첨을 하라는 게 아니지요. 주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면 안 되지요... ^^

 

지혜롭게, 그리고 살피는 시선을 가지며,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섬김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오지랖의 경계를 잘 판단하시고... ^^

 

지금 저분의 역량이 어느 정도일까, 이 아이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일까를 살펴 대하라는 것입니다.

 

감당하실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무엇을 하면, 아무 유익도 없거니와 오히려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신 걸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알리고 전할 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자, 이걸 또 역으로 적용하면,

 

지금 나는 저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싶을 때, 화를 내거나 싸늘해지는 대신,

 

왜 이런 얘길 주님은 나로 하여금 듣게 하실까? 주님은 왜 나한테 저런 사람을 허락하셨을까? 등등...

 

또는

 

주님, 저는 이 모든 일이 주님의 허락하심, 주님의 섭리로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주님, 지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또는 왜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제게 빛을 비춰 깨닫게 해주셔요.

 

이렇게 매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여쭙는 것이 좋습니다 ^^

 

만물이 다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이웃 사랑은, 이웃 안에 담겨 있는 주님 닮은 형상, 곧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은 곧 주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웃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 곧 이웃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신 주님, 이웃으로, 부모자식으로, 선후배, 동료, 상사와 부하 등으로 내게 나타나신 주님께 피조물로서 예의바르게 행하는 것, 더욱 만물에 깃든 주님의 신성을 마치 주께 하듯 ‘대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