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The Contents

 

460. 이 장은 특별히 거의 홍수 전까지 쭈욱 이어진 세대들을 통해 태고 교회가 퍼져나간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461.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그 자체로 천적이었던 태고 교회는 ‘사람’(아담, man, [homo]),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던 교회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verse 1).

 

 

462. 2-3절,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태고 교회처럼 그렇게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Seth)이라고 합니다.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 바로 앞장 끝부분인 4장 25절을 보면,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라 하여, 같은 본문이 중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4장 25절에 나오는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아다와 씰라’로 상징된 새 교회를, ‘’은 체어리티를 얻게 될 새 신앙을 각각 상징하는 것입니다. (AC.434)

 

 

463. 6, 9, 12, 15, 18, 21절,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세 번째 교회는 ‘에노스’(Enosh)로(6절), 네 번째는 ‘게난’(Kenan)(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Mahalalel)(12절), 여섯 번째는 ‘야렛’(Jared)(15절), 일곱 번째는 ‘에녹’(Enoch)(18절), 그리고 여덟 번째는 ‘므두셀라’(Methuselah)(21절)로 각각 이름하였습니다. A third church was called “Enosh” (verse 6); a fourth “Kenan” (verse 9); a fifth “Mahalalel” (verse 12); a sixth “Jared” (verse 15); a seventh “Enoch” (verse 18); and an eighth church “Methuselah” (verse 21).

 

※ 여기 나오는 숫자들, 곧 ‘’(歲), ‘’(年) 등 ‘days’, ‘years’는 겉 글자 그대로의 뜻이 아닌, 해당 교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말씀에 나오는 숫자들에는 지금은 설명하기 어려운 아주 깊은 아케이나가 들어있습니다. (AC.486)

 

※ 가령, 말씀에 자주 나오는 숫자 ‘열둘’(12)은 그 속뜻으로는 ‘모두, 전부, 전체, ’(all)를, ‘’(3)은 ‘완전’(perfect)을 의미하며, 한 자리 숫자들도 그 아케이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두 자리, 세 자리 숫자 등으로 들어가면, 그 속뜻은 그야말로 정말 엄청나게 깊어집니다.

 

※ 예를 들어, 아담 교회의 경우, ‘팔백 년’(800년), ‘구백삼십 세’(930세) 및 이후 이어지는 교회들의 햇수의 의미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겉 글자의 세월이 아닌, 그 교회가 존속하는 동안 일어났던 상태 변화들을, 그것도 정말 어마어마한 상태 변화들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464. 22-24절,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라는 교회는, 태고 교회에 의해 드러나고 지각된 것을 교리적으로 잘 조직한 교회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고 대신 후대의 사용을 위해 보전되었습니다. The church called “Enoch” is described as framing doctrine from what was revealed to and perceived by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doctrine, although of no use at that time, was preserved for the use of posterity.

 

※ 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교리를 집대성, 일종의 조직신학처럼 발전시킨 교회가 바로 이 에녹이라는 교회였다는 말입니다.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This is signified by its being said that “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verses 22–24)

 

※ 에녹이라는 교회가 아주 중요한 유산을 남겼음에도 시대를 너무 앞서가(?) 그들의 결과물은 훗날을 위해 잠시 그 사용이 보류되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465. 25절,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아홉 번째 교회는 ‘라멕’(Lamech)이라 이름하였습니다.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466. 28-29절,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열 번째 교회, 이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母) 교회로서, ‘노아’(Noah)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이 교회를 고대 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467.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태고 교회가 즐겁게 누리던 퍼셉션(perception)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로 묘사되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The Iinternal Sense

 

468. 앞장을 통해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것으로부터 분명한 사실은, 이름들(names)은 이교들(異敎, heresies)나 교리들(敎理, doctrines)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 역시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들, 곧 현 맥락에서는 태고 교회로부터 바로 이 ‘노아’ 때까지, 변화를 겪으며 내려오면서도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부른 것입니다.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remains), ‘남은 자’(remnant)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 혹은 ‘중간에’, ‘땅에’ 있다고도 합니다.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각 사람 안에 있는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나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기 때문입니다.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은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사람은 죽게 됩니다.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로 상징된 사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 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일반적으로,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4:3-4)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Isa. 4:3–4)

 

위 구절에서 남은 자들을 거룩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교회의 리메인스와, 또 교회에 속한 사람이 상징되고 있습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단지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다시 Again: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10:20-21)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Isa. 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렘50:20)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Jer. 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미5:7)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Micah 5:7)

 

[4] 한 사람 혹은 한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 분의 일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 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10)은 리메인스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 분의 일이 아직 남아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사6:12-13)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Isa. 6:12–13)

 

여기 남아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아모스에서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암5:3)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Amos 5:3)

 

이들과 다른 많은 구절들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고 있는 ‘리메인스’가 속뜻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한 도시가 그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이 들은 내용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Gen. 18:32)

 

https://youtu.be/AVsLCNy0m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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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4-19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The Contents

 

234. 홍수(the flood)로 이어지는 그 교회의 상태가 여기 기술되고 있으며, 그때 그 교회는 끔찍하게 자기를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이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예언이 주어집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 ‘홍수’는 노아의 대홍수(大洪水, the Flood)를 말합니다.

 

 

235.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믿기가 좀...’ 하며 내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으로 표현된 감각 파트는 저주를 자초했고, 지옥과 같은 끔찍한 상태(infernal)가 되었습니다. (14절)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 ‘내켜 하지 않다’ 점잖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더 이상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은 그들의 감각 능력(their sensory capacity)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사람의 대표적인 감각 다섯 가지를 오감(五感)이라 하며, 각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및 촉각을 말하며, 이 오감으로 파악, 확인할 수 없으면 믿지 않겠다는 태도, 지금 창세기 본문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하여 뛰어드는 걸 막으시기 위해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5절)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 뛰어들되 온몸으로(with the whole of its being) 뛰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 혹은 본성(the own)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비록 어떤 합리(a rational)가 그들에게 주어져 다스리도록 했어도 말입니다. (16절)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verse 16).

 

※ 여기 ‘여자’는 교회의 더욱 심각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성을 사랑했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독립, 자신들의 자치권(autonomy)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독립, 벗어나고자 하면 할수록 진리에 대해 어두워지는 이유는, 이런 상태에서는 빛 되신 주님의 입류(入流, influx)가 차단, 더 이상 유입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때 이 교회에게는 이미 이성적 사고 능력(the ability to reason)이 있었음에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님이 주신 합리와 이성조차 역기능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38. 그 다음, 이성(합리, the rational)의 퀄리티(quality, 質) 설명입니다. 이성은 동의했고, 그 결과, 저주를 자초하였으며,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사실로 볼 때, 더 이상 이성은 사라지고 대신 추론(ratiocination)만 남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 ‘추론’이라 했지만, 사실은 왜곡에 가까운, 삐딱한 사고(skewed logic), 잔머리를 굴림 등과 같은 것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님 주신 건강한 이성과 합리를 잃어버리면 남는 것이라고는 이런 류의 얄팍한 것들입니다. 북한, 중공을 비롯, 전 세계 소위 ‘민주’와 ‘인권’을 외치는 좌파들의 행태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239. 저주와 황폐함(vastation), 그리고 그들의 정처 없이 떠돌게(ferine) 된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18절)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verse 18).

 

※ 영어 ‘vastation’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대신 ‘ruination’(파괴, 파멸)을 씁니다. ‘ferine’ 또한 ‘animalistic’(짐승 같은)으로 대신 표현합니다. 인간은 주님의 입류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야만 제정신일 수 있는데, 주님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여 이 입류가 차단되면 그때부터는 거의 짐승 같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에 빠지는 순간, 총명을 잃는 다음과 같은 장면처럼 말입니다.

 

29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34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단4:29-37)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였고(aversion), 그래서 사람인 상태에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19절)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verse 19).

 

※ 인간을 포함, 모든 피조물은 주님과 항상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어서 존재 및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산소호흡기를 떼는 순간, ‘삐’ 소리가 나며, 사망하는 것처럼, 주님을 미워하며, 주님의 인도를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면, 사람은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니며, 오히려 그 달갑지 않은 지옥을 살아서 미리 사는 참 딱한 처지가 됩니다...

 

 

The Internal Sense

 

241. 태곳적 사람들은, 천적 인간들이었는데요,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 사물들이 상징하거나 표현하는 하늘의 것, 주님의 것들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 이런 걸 ‘상응’(相應, correspondence)이라 하며, 오늘날 현대인들에겐 사라진 이 능력이 그들에겐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시력은 그저 일종의 대행 도구(an instrumental agency)였을 뿐이고, 결과적으로 중요한 건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 눈에 보이는 사물 그 자체보다는 그 사물로 상징되는, 그 사물이 상응하는 천국의 어떤 것을 생각하듯, 귀에 들리는 말 그 자체보다는 그 말이 의미하는, 가리키는 숨은 의미를 깨닫는 걸 말하며, 이런 방식의 언어생활이 태고인들의 일상 스피킹 매너(their manner of speaking)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창세기 본문도 태고인들의 이런 언어 스타일로 기록된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말보다는 말에 담긴 취지만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뜻, 취지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 사람들과의 대화를 잘 관찰하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보면서, 그것들을 사랑했고, 마음은 거기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에 관해 생각했고, 그것들을 가지고 천국과 주님께 속한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 눈에 보이는 그 너머의 것을 향해야 할 내적 시야가 눈에 보이는 사물에 갇혀 그만 외적 시야로 전락한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 천국과 주님에 관한 것을 세속적 관점에서만 출발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the principal)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도구(the instrumental)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 정반대, 주종이 바뀌며, 수단이 원리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들, 땅에 속한 것들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천국에 속한 것들을 이 원리를 가지고 추론(reason)하며, 그래서 그렇게 자신들을 소경으로 만들어갑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 이런 게 영적 소경입니다. 어떤 것의 내적 의미를 볼 줄 모르는 상태,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문법적 특이점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 디.엘. 무디(1837-1899)의 설교를 듣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회개의 몸부림을 치며 주님을 향해 돌이키는 중에, 어느 문법학자는 고작 한다는 말이, “당신은 방금 설교에서 스물세 번이나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을 사용했소.” 했다는 것과 유사합니다. 무디가 초등교육 밖에 받지 않은 것을 은근 조롱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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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eth; for God hath appointed me another seed instead of Abel; for Cain slew him.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he Contents

 

324.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리들, 이단(heresies)이라고도 하는 교리들을 여기서 다루며, ‘에노스’라고 하는, 그 후에 일어난 새 교회도 다룹니다. Doctrines separated from the church, or heresies, are here treated of; and a new church that was afterwards raised up, called “Enosh.”

 

※ 교회로부터 독립, 종교적으로 다르게 발전된 입장들을 말합니다.

 

 

325. 1-2절,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태고 교회는 사랑으로 주님을 신앙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사랑으로부터 분리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 but there arose some who separated faith from love.

 

※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신앙하는 교회... 사랑과 신앙 중 바람직한 순서는 사랑이 먼저여야! 물론, 그 반대라고 잘못되거나 틀린 건 아니지만...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가인’,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 사랑)를 ‘아벨’이라 하였습니다. The doctrine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was called “Cain”; and charity, which is love toward the neighbor, was called “Abel” (verses 1–2).

 

※ ‘이웃 사랑’은 이웃 안에 계신 주님, 곧 이웃 안에 깃든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 Essence)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26. 3-5절,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각각의 예배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인의 제사’,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를 ‘아벨의 제사’라 합니다. The worship of each is described, that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by the “offering of Cain”; and that of charity, by the “offering of Abel” (verses 3–4).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悅納, acceptable, pleasing)되었으나,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없었습니다. That worship from charity was acceptable, but not worship from separated faith (verses 4–5).

 

※ 주님이 안 받으시는 게 아니라 저런 ‘가인의 제사’로 예배하는 사람의 내면이 닫히는 바람에 주님으로부터 입류(入流, influx)가 들어가질 못하는 것입니다.

 

 

327. 5-6절, 5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분리된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상태는 악하게 되었는데, 이걸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 묘사하고 있습니다. That the state of those who were of separated faith became evil, is described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 (verses 5–6).

 

※ 아주 깊은 내적인 일들을 의인화하여 마치 무슨 재미난 스토리텔링처럼 전개하는 이런 문체 스타일! 이것이 바로 태고 교회 사람들의 스피칭 스타일이었습니다.

 

 

328.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신앙의 퀄러티(quality, 質)는 체어리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하므로, 만일 신앙이 주(主)가 되려 하거나 체어리티 위에 올라 높아지려고 하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And that the quality of the faith is known from the charity; and that charity wishes to be with faith, if faith is not made the principal, and is not exalted above charity (verse 7).

 

※ 즉, 자신이 어떤 신앙인인지를 알려면 자신의 체어리티의 생활을 보라는 말입니다. 신앙, 신앙하면서 정작 체어리티, 곧 이웃을 사랑한다거나 자선이나 기부 등의 모습이 없다면 그건 좀...

 

 

329. 8-9절,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신앙을 분리하여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체어리티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것을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That charity was extinguished in those who separated faith, and set it before charity, is described by “Cain slaying his brother Abel” (verses 8–9).

 

 

330. 10-16절,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사라진 체어리티를 가리켜서는 ‘핏소리’라고, 왜곡된 교리는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거기에서 나오는 악과 거짓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라고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verse 10);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verse 11);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verse 12).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향해 등을 돌렸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라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verses 13–14).

 

※ 주님이 이들을 외면하시거나 벌하시는 게 아닙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면 내면이 닫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생명의 좋은 것으로부터 차단됩니다. 즉, 이런 상황은 본인이 스스로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체어리티가 이식(implant)되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주님은 신앙을 불가침(inviolable)의 것이 되게 하시며, 이것을 ‘가인에게 표를 주사’로 상징한 것입니다.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verse 15).

 

※ 비록 지금은 절름발이 신앙일지라도 말입니다. 신앙은 사랑과 함께 가야 하는데, 아직 미성숙한 신앙, 아직 뭘 모르는 신앙인지라 마치 아벨을 죽인 가인처럼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해도 말입니다. 그럴지라도 주님은 그 가능성을 열어두십니다. 제정신이 돌아올 줄 아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기다리십니다. 우리도 상대방이 나와 좀 다른 신앙이라 하더라도 정죄하고 판단하고 하는 것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섭리와 그 일 하심을 믿고, 그저 우리 할 도리, 곧 그의 안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만 전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이전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을 가리켜 ‘에덴 동쪽을 향하여 거주하는 가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verse 16).

 

※ 비록 가인의 신앙일지라도 주님은 표를 주셔서 보호하십니다. 즉, 가인의 신앙이 선을 넘지 못하도록 그 위에 일종의 신성한 금지(a sacred ban)를 두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자비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 이단을 악하게 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단을 편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이단을 악하게 대하여 자칫 우리 자신, 악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단에게도 이런 안전장치를 두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는 꼭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331. 17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이 이단의 엄청난 확장(amplification)을 ‘에녹’이라 합니다.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is called “Enoch” (verse 17).

 

 

332. 18절,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이 에녹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난 이단들 역시 저마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그 끝에 라멕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라멕이라는 이단은 신앙이라는 게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이단이었습니다. The heresies that sprang from this one are also called by their names, in the last of which, called Lamech, there was nothing of faith remaining (verse 18).

 

 

333. 19-22절,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그 후에 새 교회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의 의미이며, 그들의 아들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으로 이 새 교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천적(celestial, heavenly)인 것들을 ‘야발’, 영적인 것들을 ‘유발’, 그리고 자연적(natural, earthly)인 것들을 ‘두발가인’으로 각각 묘사하고 있습니다. A new church then arose, which is meant by “Adah and Zillah,” and is described by their sons “Jabal,” “Jubal,” and “TubalCain”; the celestial things of the church by “Jabal,” the spiritual by “Jubal,” and the natural by “Tubal-Cain” (verses 19–22).

 

 

334. 23-24절,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신앙과 체어리티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리고 모독(violence)이 가해졌을 때 일어난 교회, 그래서 가장 심각한 신성모독(sacrilegious) 가운데 있었던 그런 이야기입니다. That this church arose when everything of faith and charity was extinguished, and had violence done to it, which was in the highest degree sacrilegious, is described (verses 23–24).

 

 

335. 25절,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요약입니다. ‘가인’으로 상징되는 신앙 이후 체어리티가 사라졌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앙이 일어났습니다. 이 신앙에 의해 체어리티가 이식되었습니다. A summary of the subject is given: that after faith, signified by “Cain,” had extinguished charity, a new faith was given by the Lord, whereby charity was implanted.

 

※ ‘이식되었다’는 것은 ‘소개, 진행되었다’, ‘would be introduced’의 뜻입니다.

 

이 신앙이 ‘셋’입니다. This faith is called “Seth” (verse 25).

 

 

336. 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신앙에 의해 이식된 체어리티를 이름하여 ‘에노스’, 또는 ‘사람’(man, homo)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 교회의 이름입니다. The charity implanted by faith is called “Enosh,” or another “man” [homo], which is the name of that church (verse 26).

 

 

The Iinternal Sense

 

 

337. 이번 장이 태고 교회의 퇴보, 또는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그 이단들과 종파들을 가인과 그 후손들의 이름들 아래 다루고 있는 까닭에, 참된 교회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교회의 이단들과 종파들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this chapter treats of the degener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falsification of its doctrine, and consequently of its heresies and sects, under the names of Cain and his descendants,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how doctrine was falsified, or what was the nature of the heresies and sects of that church, unless the nature of the true church be rightly understood.

 

태고 교회는 일종의 천적 인간(天人, a celestial man)이었으며,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 말고 다른 신앙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교회였음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Enough has been said above concerning the most ancient church, showing that it was a celestial man, and that it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was of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이 사랑으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 혹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하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번, 203번 글 참조) Through this love they had faith from the Lord, or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that belonged to faith,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unwilling to mention faith, lest it should be separated from love, as was shown above (n. 200, 203).

 

[2] 이런 사람이 바로 천적 인간이며, 시편에서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일컬어 왕이라, 천적 인간을 일컬어 왕의 아들이라 하고 있지요. Such is the celestial man, and such he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in David, where the Lord is spoken of as the king, and the celestial man as the king’s son: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시72:1, 3, 5, 7)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Ps. 72:1, 3, 5, 7)

 

여기서 ‘해’는 사랑을 상징하며, ‘달’은 신앙을, ‘산들’과 ‘작은 산들’은 태고 교회를, ‘대대로’는 홍수 후에 일어난 교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By the “sun” is signified love; by the “moon,” faith; by “mountains” and “hills,”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of generations,”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until there be no moon” is said because faith shall be love.

 

(이사야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보면,) (See also what is said in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3] 이런 교회가 태고 교회였고, 이런 교회가 그들의 교리였습니다. Su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and such was its doctrine.

 

그러나 이것은 지금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체어리티는 신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체어리티가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But the case is far different at this day, for now faith takes precedence over charity, but still through faith charity is given by the Lord, and then charity becomes the principal.

 

※ 여기 ‘지금’(at this day, now)은 스베덴보리가 이 주석을 집필하던 1750년대 유럽을 말하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진 바 없고,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이지 싶습니다.

 

고대 교리 왜곡의 시작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해 냈을 때부터라는 것을 이런 사실, 곧 태고 교회의 본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follows from this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doctrine was falsified when they made confession of faith, and thus separated it from love.

 

이런 식으로 교리를 왜곡하거나,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내거나, 그냥 신앙만 고백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가인’이라고 부른 것이며,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an enormity)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Those who falsified doctrine in this way, or separated faith from love, or made confession of faith alone, were then called “Cain”; and such a thing was then regarded as an enormity.

 

※ 천사들은 악의 모양만 보고도 기겁, 질색하며 물러납니다. 천적 인간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유튜브, 인터넷 등을 통해 쉴새 없이 쏟아져나오는 악의 기운 앞에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되면서도 아무렇지 않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우리의 자화상 앞에 정말 정말 슬퍼해야 합니다. 심지어 불의를 꾸짖고 정의를, 공의를 부르짖을 때조차 그렇습니다. 그때 자칫 방심하여 악한 기운에 삼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조차 우리는 주님처럼,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나라를 사랑해도 주님 신성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야 뭐가 바뀌겠느냐?’ 하겠지만... 참으로 주님의 섭리 아래 엎드릴 줄 아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으며, 그것이 주님을 높이는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https://youtu.be/a3wRTY0G0dc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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