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9-22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These are the births of Noah; Noah was a man righteous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Noah walked with God. 10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And Noah begat three sons: Shem, Ham, and Japheth.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And the earth was corrupt before God; and the earth was filled with violence.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And God saw the earth, and behold it was corrupt, for all flesh had corrupted its way upon the earth.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And God said unto Noah, The end of all flesh is come before me, for the earth is filled with violence from their faces, and behold I will destroy them with the earth.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Make thee an ark of gopher woods; mansions shalt thou make the ark, and shalt pitch it within and without with pitch. 15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And thus shalt thou make it: three hundred cubits the length of the ark, fifty cubits its breadth, and thirty cubits its height. 16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A window shalt thou make to the ark, and to a cubit shalt thou finish it from above; and the door of the ark shalt thou set in the side thereof; with lowest, second, and third stories shalt thou make it. 17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And I, behold I do bring the flood of waters upon the earth, to destroy all flesh wherein is the breath of lives from under the heavens; everything that is in the earth shall expire. 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And I will set up my covenant with thee; and thou shalt enter into the ark, thou and thy sons, and thy wife, and thy sons’ wives with thee. 19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And of every living thing of all flesh, pairs of all shalt thou make to enter into the ark, to keep them alive with thee; they shall be male and female. 20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Of the fowl after its kind, and of the beast after its kind, of every creeping thing of the ground after its kind, pairs of all shall enter unto thee, to keep them alive. 21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And take thou unto thee of all food that is eaten, and gather it to thee, and it shall be for food for thee and for them. 22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And Noah did according to all that God commanded him; so did he.

 

 

The Contents

 

599.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노아’라는 이름을 가졌던 교회의, 거듭나기 이전 상태입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state of the church called “Noah,” before its regeneration.

 

 

600. 9, 10절,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9절) 그 교회 사람들을 거듭날 수 있었던 사람들로 설명하고 있고, (10절) 그런 가운데 그 교회에서 세 종류의 교리(doctrine), 신학(theology)이 일어났는데, 그들이 바로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The man of that church is described, that he was such that he could be regenerated (verse 9); but that there arose thence three kinds of doctrine, which are “Shem, Ham, and Japheth” (verse 10).

 

9절,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노아의 족보’는 새 교회가 개선되거나 다시 태어날 방법에 대한 설명을,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그 교회는 체어리티를 타고난 교회였음을, 여기서 ‘의인’(또는 ‘의로운’)(just, righteous)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선과, ‘완전한’(perfect)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진리와 각각 관계가 있습니다. ‘당대’(generation)는 종교적 발전의 한 단계를, ‘하나님과 동행’은 앞서 에녹의 경우처럼, 여기서도 신앙과 관련된 교리를 각각 상징합니다.

 

10절,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 ‘세 아들을 낳았으니’는 그 교회에서 일어난 세 종류의 교리, 신학(theology)을, ‘셈과 함과 야벳이라’는 바로 그 세 종류의 교리를 각각 상징합니다.

 

※ 신앙은 곧 교리요, 교리는 곧 신학이고,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교리가 곧 그 교회의 입장이요, 곧 그 교회 자체입니다.

 

 

601. 11-12, 13절, 11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1, 12절) 태고 교회의 남은 후손들은 그들의 끔찍한 종교적 신념(persuasion, 설득, 기만)과 더러운 갈망(yearnings, 욕망) 때문에, 아무도 거듭날 수 없었음을, (13절) 그리고 그들은 결국 이런 걸로 자신을 철저히 파괴했다는 내용입니다. That the man who was left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could not be regenerated, on account of his direful persuasions and foul yearnings (verses 11–12); whereby he would utterly destroy himself (verse 13).

 

11절,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 ‘’(earth)은 전에 언급한(AC.562-563, 581:1) 인류를 상징하며, 그들의 끔찍한 종교적 신념(dreadful persuasions) 때문에 ‘부패하다’(corrupt), 그들의 더러운 갈망(foul yearnings) 때문에 ‘포악하다’(filled with violence) 하고 있습니다.

 

※ 본 절과 본 장 끝 절까지 ‘하나님’(God)이라는 호칭이 사용됩니다. 여기 지금은 교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절,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 ‘하나님이 보신즉’은 하나님이 인간을 아셨음을, ‘땅이 부패하였으니’는 인간 안에 지독한 거짓밖에는 없었음을,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는 인간의 감각적 집착이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를 파괴하였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 ‘하나님이 이르시되’는 과연 그러했음을,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는 인류는 파멸을 피할 수 없음을,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는 그들에게는 더 이상 선한 의지가 없음을,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는 인류는 교회와 함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각각 상징합니다.

 

 

602. 14, 15, 16절,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4절) 그러나 ‘방주’로 묘사되고 있는 ‘노아’ 교회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5절) 그리고 그에게 남아있는 리메인스는 수치(measures)로, (16절) 그의 이해(understanding)에 관한 것은 ‘’, ‘’, ‘’으로 각각 묘사되고 있습니다. But the man of the church called “Noah,” who is described by the “ark,” was not so (verse 14); and the remains with him are described by the measures (verse 15);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by the “window,” “door,” and “mansions.” (verse 16)

 

14절,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 ‘방주’(ark)는 그 교회 사람을, ‘고페르 나무’는 그의 정욕을, ‘칸들’(mansions)은 사람의 두 부분, 곧 의지와 이해를,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는 더러운 갈망의 범람으로부터 보전됨을 각각 상징합니다.

 

15절,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 이 절의 숫자들은 앞에서처럼 리메인스,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few) 리메인스를 상징합니다. ‘길이’는 그들의 거룩, ‘너비’는 그들의 진리, ‘높이’는 그들의 선입니다.

 

※ 방주를 사람으로 보고 방주 내부 구성을 마치 사람의 안팎 구성요소처럼 하나하나 묘사하고 있습니다.

 

16절,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낸 ‘’은 지적인(intellectual) 부분을, ‘그 문은 옆으로’는 듣는 것(hearing)을, ‘상 중 하 삼층으로’는 지식(knowledge), 사유(reason), 이해(understanding)에 속한 것을 각각 상징합니다.

 

 

603. 17절,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7절) 나머지 모두가 악과 거짓의 범람으로 소멸될 때 그는 보전될 것입니다. That he would be preserved when the rest would perish by an inundation of evil and falsity (verse 17).

 

※ ‘홍수’는 일종의 악과 거짓의 범람을,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는 태고 교회의 모든 후손이 파멸을 자초할 것임을,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는 그 교회에 속하여 그렇게 된, 즉 그런 종말을 맞이한 사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604. 18, 19-20, 21, 22절, 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18절) 그에게 있던 진리들과 선들이 구원을 받으며, (19-20절) 그렇게 해서, 무엇이든지 이해에 속했던 모든 것과 의지에 속했던 모든 것 역시 거듭남을 통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21절) 그는 구원받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으며, (22절) 그렇게 되었습니다. And that the truths and goods which were with him would be saved (verse 18); and thus whatever was of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was of the will, by regeneration (verses 19–20); for receiving which he was to be prepared (verse 21); and that it was so done (verse 22).

 

18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 ‘언약을 세우리니’는 그가 거듭날 것임을,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는 그가 구원을 받을 것임을 각각 상징합니다. 여기 ‘아들들’은 진리이며, ‘며느리들’은 선입니다.

 

19절,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 ‘생물’은 이해에 속한 것들을, ‘혈육 있는 모든’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너는 각기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는 그들의 거듭남을 각각 상징합니다. 여기서 ‘’(male)는 진리, ‘’(female)은 선입니다.

 

20절,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 ‘’(fowl)는 지적인 것들을, ‘가축’(beast)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땅에 기는 것’(creeping thing)은 둘 다를 상징하되 그 중 가장 낮은 것을,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는 앞에서처럼, 그들의 거듭남을 각각 상징합니다.

 

21절,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 그가 시행해야 할 ‘먹을 모든 양식을 자기에게로 가져옴’은 선들과 즐거움들(delights)을, 그가 행해야 할 ‘저축’은 진리들을,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는 양쪽 둘 다를 각각 상징합니다.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는 그렇게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그가 ‘했다’ 두 번 말하는 것은 두 가지, 선과 진리, 둘(both)을 말하는 것입니다.

 

The Iinternal Sense

 

605. 지금 다룬 주제는 ‘노아’라는 이름을 가진 새 교회의 형성(formation)으로, 그 교회의 형성을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수용된 방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The subject now treated of is the formation of a new church, which is called “Noah”; and its formation is described by the ark into which living things of every kind were received.

늘 그렇듯, 새 교회가 일어나기 전에는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데, 그것을 방주를 지어 띄움, 홍수로 범람한 물 위를 흔들거리며 하염없이 둥둥 떠다님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But as is wont to be the case, before that new church could arise it was necessary that the man of the church should suffer many temptations, which are described by the lifting up of the ark, its fluctuation, and its delay upon the waters of the flood.

새 교회, 곧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은 마침내 참된 영적 인간이 되면서 자유하게 되는데, 이것을 물의 빠짐과, 이어지는 많은 일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And finally, that he became a true spiritual man and was set free is described by the cessation of the waters, and the many things that follow.

말씀의 문자적 의미만 고수하시는 분들은 결코 이런 메시지를 볼 수 없습니다. 이 경우가 특히 그런데요, 말씀에 기록된 모든 것이 역사적으로 연결되고,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No one can see this who adheres to the sense of the letter only, in consequence (and especially is this the case here) of all things being historically connected, and presenting the idea of a history of events.

 

하지만 말씀을 이렇게 겉 글자와 달리 그 속뜻이 담기도록 기록한 이유는, 이런 형식이 그 당시 사람들의 스타일이요, 그들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무슨 대표성을 띤 그림처럼 포장, 그걸 역사 형태로 정돈하는 이런 문학 형태는, 그것이 더욱더 역사 시리즈물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그것은 더욱더 그들의 재능에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But such was the style of the men of that time, and most pleasing to them it was that all things should be wrapped up in representative figures, and that these should be arranged in the form of history; and the more coherent the historical series, the better suited it was to their genius.

고대인들은 오늘날처럼 어떤 사실을 날 것으로, 있는 그대로 다루느라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깊은, 심오한 사고(思考, thoughts)에 힘썼고, 그 결과는 오늘 본문에서 보듯 아주 기름진 결과들을 가져왔습니다. For in those ancient times men were not so much inclined to memory-knowledges as at this day, but to profound thoughts, of which the offspring was such as has been described.

이것이 고대인들의 지혜였습니다. This was the wisdom of the ancients.

 

 

606. ‘홍수’, ‘방주’ 및 이런 이유로, 이들과 관련된 것들이 거듭남과 거듭남에 앞서 선행하는 시험들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거듭남과 시험을 홍수, 그 범람하는 물에 비유하지요. That the “flood,” the “ark,” and therefore the things described in connection with them signify regeneration, and also the temptations that precede regeneration, is in some degree known among the learned at this day, who also compare regeneration and temptations to the waters of a flood.

 

※ 여기서 말하는 ‘오늘날’은 1750년대 유럽을 말합니다.

 

 

607. 하지만 이 교회의 캐릭터에 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But the character of this church will be described hereafter.

여기서는 살짝, 간략히만 말씀드리면, 태고 교회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던 반면, 지금 보고 있는 이 교회는 영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That an idea of it may be presented here, it shall be briefly said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was celestial, as already shown, but this church became spiritual.

태고 교회는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perception)을 가졌었던 반면, 지금 이 고대 교회는 퍼셉션이 아닌, 그 자리를 대신하여 다른 종류의 딕테이트(dictate, inner voice), 곧 양심(conscience)이라고 하는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a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this, or the ancient church, had not perception, but in its place another kind of dictate, which may be called conscience.

 

[2] 그러나 아직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고, 또 아마 믿기도 어려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태고 교회 사람들은 내적 호흡을 했다는 것입니다. 외적 호흡은 그저 암묵적이었고요. But what is as yet unknown in the world, and is perhaps difficult to believe, is that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ad internal respiration, and only tacit external respiration.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많은 말을 하는 대신 천사들처럼 생각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안색의 무궁한 변화, 특히 입술 주변의 미세한 변화들을 가지고 어떤 정신적 이미지들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Thus they spoke not so much by words, as afterwards and as at this day, but by ideas, as angels do; and these they could express by innumerable changes of the looks and face, especially of the lips.

입술에는, 셀 수 없는 근섬유들이 시리즈로 있는데, 오늘날엔 이 근섬유들을 자유롭게 쓸 수가 없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자유로웠습니다. 그들은 그 근섬유들을 가지고, 오늘날 사람들이 또렷한 음성으로 한 시간 동안이나 설명해야 할 어떤 아이디어를 일 분도 안 되어 보여주기도, 상징하기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오늘날 우리처럼 단어나 단어의 이런저런 조합, 곧 문장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충만하고 분명하게 확 이해시킬 수 있었습니다. In the lips there are countless series of muscular fibers which at this day are not set free, but being free with the men of that time, they could so present, signify, and represent ideas by them as to express in a minute’s time what at this day it would require an hour to say by articulate sounds and words, and they could do this more fully and clearly to the apprehension and understanding of those present than is possible by words, or series of words in combination.

이런 이야기는 확실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입니다. This may perhaps seem incredible, but yet it is true.

또한 이 행성에 속하지 않은 다른 많은 존재가 있는데, 그들은 이런 비슷한 방식의 언어생활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관해서는 나중에 주님의 자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cf. AC.6814, 7359-7360, 7745-7746, 8022-8026, 8247-8248, 10587-10588, 10708-10710) And there are many others, not of this earth, who have spoken and at this day speak in a similar manner; concerning whom,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3] 저로 하여금 이 내적 호흡이 과연 무엇과 같으며,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배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It has been given me to know the nature of that internal respiration, and how in process of time it was changed.

그들 태고 교회 사람들은 천사들, 천사들이 이런 식으로 호흡을 하는데요, 이렇게 천사들이 가진 것과 같은 호흡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사고 속 아주 깊은 데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일종의 퍼셉션 같은 것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퍼셉션이라는 것은 설명 불가한 것인데, 설령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따라서 실제로는 아무도 그걸 믿지 않을 것입니다. As these most ancient people had a respiration such as the angels have, who breathe in a similar manner, they were in profound ideas of thought, and were able to have such perception as cannot be described; and even if it could be described such as it really was, it would not be believed, because it would not be comprehended.

그러나 그들의 후손으로 가면서 이 내적 호흡은 점차 감소, 고갈되어 갔습니다. 끔찍한 신념과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이 내적 호흡은 소름 끼치도록 추한 것 말고는 무슨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생존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그들 모두는 쓸어버림을 당했습니다. But in their posterity this internal respiration little by little came to an end; and with those who were possessed with dreadful persuasions and fantasies, it became such that they could no longer present any idea of thought except the most debased, the effect of which was that they could not survive, and therefore all became extinct.

 

 

608. 내적 호흡이 줄어들면서,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거의 똑같은 외적 호흡이 점점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 외적 호흡과 함께 온 것이 바로 말로 하는 스피치인데, 또렷이 발음되어 잘 들리는 스피치입니다. 생각을 구성하는 개별 아이디어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바로 이 스피치입니다. When internal respiration ceased, external respiration gradually succeeded, almost like that of the present day; and with external respiration a language of words, or of articulate sound into which the ideas of thought were determined.

이 과정에서 인간의 상태는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이 전에 가졌던 그런 식으로 사물을 지각할 수가 없었고, 이 퍼셉션을 대신해서, 양심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내적 음성(dictate)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곧 이 ‘내적 음성’이라는 것은 양심과 흡사하며, 퍼셉션과 양심 사이 거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 양심과 친숙합니다. Thus the state of man was entirely changed, and became such that he could no longer have similar perception, but instead of perception another kind of dictate which may be called conscience, for it was like conscience, though a kind of intermediate between perception and the conscience known to some at this day.

생각을 구성하는 아이디어들이 이런 형태의 주물 안으로 부어지기 시작하자, 즉, 말로 표현, 발음되기 시작하자, 태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속 사람을 통한 가르침을 받는 대신, 오직 겉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And when such determination of the ideas of thought took place, that is to say, into spoken words, they could no longer be instructed, like the most ancient man, through the internal man, but through the external.

태고 교회 계시들의 자리를 교리들이 계승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육체적 감각들을 가지고 붙들 수 있는 첫 번째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육체적 감각들은 기억 속 구체적 이미지들로 이미지화 되어 가고, 다시 아이디어들, 생각을 구성하는 것들인데, 다시 이미지화되어 아이디어들이 됩니다. 바로 이 아이디어들이 가르침의 어떤 도로 내지는 틀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And therefore in place of the revelations of the most ancient church, doctrinal things succeeded, which could first be received by the external senses, and from them material ideas of the memory could be formed, and from these, ideas of thought, by which and according to which they were instructed.

이렇게 태고 교회 뒤를 이어 일어난 교회인 고대 교회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니어스(genius, 재능, 마음, 정신, 심령)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인류에게 이 새로운 지니어스 또는 상태를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인류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Hence it was that this church which followed possessed an entirely different genius from that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if the Lord had not brought the human race into this genius, or into this state, no man could have been saved.

 

 

609. ‘노아’라 이름하는 교회 사람들의 상태변화 역시 똑같이 태고 교회 사람들의 상태변화에서 왔기 때문에, 앞서 설명대로, 그들 역시 아무도 더 이상 태고 사람들이 누렸던 방식으로 무슨 가르침을 받거나 내면이 열리거나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내면이 닫히고, 그래서 더 이상 하늘과 교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예전의 그런 건 다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As the state of the man of this church which is called “Noah” was altogether changed from that of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e could no longer—as said before—be informed and enlightened in the same way as the most ancient man; for his internals were closed, so that he no longer had communication with heaven, except such as was unconscious.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제는 오감을 통한 외적 방식으로밖엔 무엇을 배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Nor, for the same reason, could he be instructed except as before said by the external way of sense or of the senses.

이런 이유로, 태고 교회를 위해 만들었던 어떤 계시들과 함께, 신앙에 관한 가르침들이 이 세대의 사용을 위해 보호, 보전된 것은 바로 주님의 섭리입니다. On this account, of the Lord’s providence, doctrinal matters of faith, with some of the revelations to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preserved for the use of this posterity.

가인’이 바로 이런 가르침들을 맨 처음 수집, 멸망을 대비, 보전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죽임을 면케 하셨다' 하신 이유입니다.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창4:15 관련 내용인 AC.392-396 참조) These doctrinal things were first collected by “Cain,” and were stored up that they might not be lost; and therefore it is said of Cain that a “mark was set upon him, lest anyone should slay him” (concerning which see what was said at that place, Gen.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에녹’은 이런 가르침들을 일종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으로 줄인 사람입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세대에게만 유용한 것이었으며, 이걸 가리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창5:24 및 AC.521 참조) These doctrinal matters were afterwards reduced into doctrine by “Enoch”; but because this doctrine was of use to no one at that time, but was for posterity, it is said that “God took him.” (See also Gen.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4)

 

지금 설명 중인 후손 또는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주님이 따로 보관하신 것이 바로 이들 신앙의 가르침입니다. 퍼셉션은 사라질 것이며, 그래서 이 신앙의 가르침들이 잘 견디고 보존, 후대에 전달되어야 할 것을 주님은 미리 내다보셨습니다. These doctrinal matters of faith are what were preserved by the Lord for the use of this posterity or church; for it was foreseen by the Lord that perception would be lost, and therefore it was provided that these doctrinal things should re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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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7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And Jehovah said unto Noah, Enter thou and all thy house into the ark; for thee have I seen righteous before me in this generation.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Of every clean beast thou shalt take to thee by sevens, the man [vir] and his wife; and of the beast that is not clean by twos, the man and his wife.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Of the fowl of the heavens also by sevens, male and female, to keep seed alive upon the faces of the whole earth.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For in yet seven days I will cause it to rain upon the earth forty days and forty nights; and every substance that I have made will I destroy from off the faces of the ground.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And Noah did according to all that Jehovah commanded him. 6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And Noah was a son of six hundred years, and the flood of waters was upon the earth. 7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And Noah went in, and his sons, and his wife, and his sons’ wives with him, into the ark, from before the waters of the flood. 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Of the clean beast, and of the beast that is not clean, and of the fowl, and of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ground,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There went in two and two unto Noah into the ark, male and female, as God had commanded Noah. 10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And it came to pass after the seven days that the waters of the flood were upon the earth.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In the six-hundredth year of Noah’s life, in the second month, in the seventeenth day of the month, in that day were 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broken up, and the cataracts of heaven were opened.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And the rain was upon the earth forty days and forty nights.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In the self-same day entered Noah, and Shem, and Ham, and Japheth, the sons of Noah, and Noah’s wife, and the three wives of his sons with them, into the ark.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They, and every wild animal after its kind, and every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every fowl after its kind, every flying thing, every winged thing.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And they went in unto Noah into the ark, two and two of all flesh wherein is the breath of lives.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And they that went in, went in male and female of all flesh, as God had commanded him. And Jehovah shut after him.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And the flood was forty days upon the earth, and the waters increased, and bare up the ark, and it was lifted up from off the earth.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And the waters were strengthened, and were increased exceedingly upon the earth; and the ark went upon the face of the waters.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And the waters were strengthened very exceedingly upon the earth, and all the high mountains that were under the whole heaven were covered.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Fifteen cubits upward did the waters prevail, and covered the mountains.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And all flesh died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as to fowl, and as to beast, and as to wild animal, and as to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and every man.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All in whose nostrils was the breathing [flatus] of the breath of lives, of all that was in the dry [land], died.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And he destroyed every substance that was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from man even to beast, even to creeping thing, and even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hey were destroyed from the earth; and Noah only was left, and that which was with him in the ark. 24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And the waters were strengthened upon the earth a hundred and fifty days.

 

 

The Contents

 

701. 1-5절,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기서 다룬 주제는 대략, 일종의 새 교회 준비입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n general is the preparation of a new church.

 

앞의 주제가 그 교회의 지적인 것들이었던 것처럼, 여기 주제는 의지에 속한 것들입니다. (1-5절) As the subject before was the intellectual things of that church, so here it is the things of the will. (verses 1 to 5)

 

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는 과연 그렇게 되었음을 (지금은 체어리티가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호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는 의지에 속한 것들을, 여기서 ‘’은 의지를, ‘방주로 들어가라’는 준비됨을,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는 그는 선을 가졌고, 그래서 거듭날 수 있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 ‘여호와’는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을 천적(天的, celestial)으로, ‘하나님’은 주님의 신성을 영적(靈的, spiritual)으로, ‘예수’는 주님의 인성(人性, the Divine Human)을 천적으로, ‘그리스도’는 주님의 인성을 영적으로 부르는 호칭입니다.

 

2절,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 ‘모든 정결한 짐승’은 선한 애정들(affections of good)을, ‘일곱’은 그들은 거룩함을, ‘암수’(man and his wife)는 선들이 진리들과 결합(conjoin)하였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 ‘부정한 것’은 악한 애정들(evil affections)을, ‘’은 그들은 상대적으로 세속적(profane, 모독적)임을, ‘암수’는 악들이 거짓들과 결합하였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3절,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 ‘공중의 새’는 이해에 속한 것들(things of the understanding)을, ‘일곱’은 거룩한 것들을, ‘암수’는 선들과 진리들을,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는 신앙의 진리들을 각각 의미합니다.

 

4절,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 ‘지금부터 칠 일이면’은 시험(temptation)의 시작을, ‘비를 내려’는 시험을, ‘사십 주야’는 시험의 기간을,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는 사람이 거듭나는 중일 때, 마치 파괴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 본성(the own of man)을 각각 의미합니다.

 

※ 인간의 본성은 주님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이며, 거듭남이란 이런 본성을 파괴하는 과정, 곧 그 결과, 주님의 인도를 기꺼이 따르게 하는 과정입니다.

 

5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이것은 전과 같이, 과연 그렇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앞장 22절과 비교할 때, 거기 노아는 두 번 ‘행하였다’ 하는 반면, 여기서는 한 번만이고, 거기서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여기서는 ‘여호와’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거기서는 이해에 속한 것들이, 여기서는 의지에 속한 것들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에 속한 것들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자기들하고는 다른, 구별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의지에 속한 것들은 이해에 속한 것들을 자기들과 결합하거나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해는 의지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702. 6-10, 11-12절, 6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다음은 그 시험들에 관한 내용인데, 6절로 10절은 지적인 것들에 관한 시험, 그리고 11, 12절은 의지에 속한 것들에 관한 시험입니다. Next its temptations are treated of, which are described as to its intellectual things from verses 6 to 10, and as to the things of the will in verses 11–12.

 

6절,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 ‘노아가 육백 세라’는 시험 중 그의 첫 번째 상태를,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는 시험의 시작을 각각 의미합니다.

 

7절,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 ‘노아는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는 그가 시험 중에 보호받았음을, ‘아들들’은 앞에서처럼 진리를, ‘아내’는 선을, ‘며느리들’은 선들과 결합한 진리들을 각각 의미합니다.

 

8-9절, 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 ‘정결한 짐승’은 앞에서처럼 선한 애정들을, ‘부정한 짐승’은 악한 애정, 곧 자기를 향한, 더러운 갈망을, ‘’는 보통은 사고(思考, thoughts)를, ‘땅에 기는 모든 것’은 감각(sensuous part) 및 그로 인한 즐거움들을, ‘둘씩’(two and two)은 상응하는 것들(things corresponding)을, ‘방주로 들어갔으며’는 그들이 보호를 받았음을, ‘암수’는 앞에서처럼 선과 진리를,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는 과연 그렇게 되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10절,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 앞에서처럼 시험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11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 시험의 두 번째 상태를,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의지에 속한 것들에게 일어난 극단적인(extreme) 시험을,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이해에 속한 것들에게 일어난 극단적인 시험을 각각 의미합니다.

 

12절,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 시험이 계속되었음을 의미하며, ‘’는 시험을, ‘사십 주야’는 그 기간을 각각 가리킵니다.

 

 

703. 13-15절,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뒤이어 이 교회가 보호(protection) 및 보전(preservation)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Afterwards the protection of this church is treated of, and its preservation (verses 13 to 15).

 

13절,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 그들이 ‘방주로 들어갔고’는 앞에서처럼 여기서도 그들이 구원을 받았음을, ‘노아’는 그 교회의 어떠함, 곧 퀄러티를, ‘셈, 함, 야벳’은 그 교회에서 시작된 교회들의 어떠함(what was of the church), 곧 퀄러티(qualities)를, ‘노아의 아내’는 그 교회 자체를, ‘그의 아들’은 교리적인 것들을, ‘세 며느리가 다’는 그 교회에서 나온 교회들 자체를 각각 의미합니다.

 

14-15절,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4절,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 ‘그들’은 보통은 그 교회에 속한 사람을,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는 모든 영적 선을,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는 모든 자연적 선을,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는 모든 감각 및 육적(sensuous and corporeal) 선을,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는 모든 영적 진리를, ‘나는 것’은 자연적 진리를, ‘날개 있는 것’은 감각적 진리를 각각 의미합니다.

 

※ 여기 맨 나중 ‘나는 것’(flying thing), ‘날개 있는 것’(winged thing)은 한글 번역에는 빠졌습니다. 이 모든 기술이 사람의 선과 진리에 대한 묘사임을 알았더라면, 세 종류 선을 언급했으니 당연히 세 종류 진리가 나올 것을 알았을 텐데 말이지요... 속뜻을 모르고 번역을 했거나 역본을 선택했다는 증거입니다.

 

15절,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는 앞서와 같이 그들이 구원받았음을, ‘둘씩’ 역시 앞에서처럼 쌍을,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는 일종의 새 피조물, 혹은 그들이 주님께 받은 새 생명을 각각 의미합니다.

 

16-18절,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그러나 16절로 18절은 그 상태, 곧 그들은 흔들렸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But what its state was, that it was fluctuating, is described in verses 16 to 18.

 

16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 ‘들어간 것들’은 그 교회인(the man of the church)에게 있었던 것들을, ‘모든 것의 암수’는 모든 종류의 선들과 진리들이 그와 함께 있었음을,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는 받으실 수 있도록 그가 준비 완료된 것을,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는 인간은 더 이상 천적 교회인(the man of the celestial church)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하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17-18절,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 ‘사십 일’은 ‘노아’라는 교회가 지속된 기간을, ‘홍수’는 여전히 범람했던 거짓들을,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는 그들의 흔들림(fluctuation, wavering)이 어땠는지를,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는 그들의 흔들림이 그 주기와 세기(frequency and strength) 면에서 얼마나 엄청났었는지를 각각 의미합니다.

 

 

704. 19-24절,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끝으로, 태고 교회의 마지막 후손과 그 캐릭터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거짓된 신념과 자아 사랑의 탐욕에 사로잡혀 사라져버릴 정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19-24절) Finally the last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in regard to its character: that it was possessed by persuasions of falsity and by yearnings of the love of self to such a degree that it perished (verses 19 to 24).

 

19-20절,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는 거짓에 설득되어감이 이런 식으로 증가하였음을,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는 모든 체어리티의 선이 사라졌음을,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는 남아 있는 체어리티가 전혀 없었음을, ‘십오’(fifteen)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조금밖에 남지 않았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21-22절,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는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었던, 즉, 그 안에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이 있었던, 태고 교회인이었던 사람들을, ‘육지에 있어’는 그 안에 더 이상 그런 생명이 없었던 사람들을, ‘다 죽었더라’는 그들은 사라졌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23절,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는 자아 사랑에 속한 갈망들(yearnings)을, ‘지면’은 태고 교회의 후손을,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는 그들의 악한 본성(nature)을, ‘사람’은 본성 그 자체를, ‘가축’은 갈망들을, ‘기는 것’은 쾌락들(pleasures)을, ‘공중의 새’는 거기서 나오는 거짓들을,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는 결론, 즉, 태고 교회의 종말(expired)을,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는 새 교회를 구성한(constituted) 사람들만 보전되었음(preserved)을,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은 새 교회에 속했던 모든 것들을 각각 의미합니다.

 

24절,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 이는 태고 교회의 마지막 한계를, ‘백오십’(a hundred and fifty)은 마지막 한계, 곧 처음을 의미합니다.

 

 

The Iinternal Sense

 

705. 여기서 특별히 다룬 주제는 ‘홍수’로, 이 홍수는 ‘노아’라 하는 교회에 속한 사람이 거듭날 수 있기 전 겪어야 했던 시험뿐 아니라, 거듭날 수 없었던 사람들의 황량함(desolation)까지를 의미합니다. The subject here specifically treated of is the “flood,” by which is signified not only the temptations which the man of the church called “Noah” had to undergo before he could be regenerated, but also the desolation of those who could not be regenerated.

 

이 시험과 황량함, 둘(both)은 말씀에서 ‘홍수’, 혹은 물의 ‘범람’에 비유되며, 그렇게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Both temptations and desolations are compared in the Word to “floods” or “inundations” of waters, and are so called.

 

이사야에서는 시험을 가리켜 Temptations are denoted in Isaiah:

 

7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1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사54:7-9, 11) For a small moment have I forsaken thee, but in great compassions will I gather thee again. In an inundation of anger I hid my faces from thee for a moment; but in the mercy of eternity will I have compassion upon thee, saith Jehovah thy redeemer. For this is the waters of Noah unto me, to whom I have sworn that the waters of Noah should no more go over the earth, so have I sworn that I would not be wroth with thee and rebuke thee, O thou afflicted and tossed with tempests and not comforted. (Isa. 54:7–9, 11)

 

이는 앞으로 거듭날 교회와 그 시험에 관한 것으로, 이를 일컬어 ‘노아의 홍수’라 하고 있습니다. This is said of the church that is to be regenerated, and concerning its temptations, which are called the “waters of Noah.

 

[2] 누가복음에서 주님 자신 시험을 ‘큰물’이라 부르셨습니다. The Lord himself also calls temptations an “inundation,” in Luke:

 

47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눅6:47-48) Jesus said, Everyone that cometh unto me, and heareth my sayings and doeth them is like unto a man building a house, who digged, and went deep, and laid a foundation upon the rock; and when an inundation came, the stream beat upon that house, but could not shake it, because it had been founded upon the rock. (Luke 6:47–48)

 

여기 ‘큰물’이 시험을 말하는 것임은 누가 보아도 분명합니다. That temptations are here meant by an “inundation” must be evident to everyone.

 

황량함 또한 이사야에서는 가리키기를 Desolations are also denoted in Isaiah:

 

7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사8:7-8) The Lord bringeth up upon them the waters of the river, strong and many, the king of Asshur and all his glory; and he riseth up above all his channels, and shall go over all his banks: and he shall go through Judah; he shall inundate and go through; he shall reach even to the neck. (Isa. 8:7–8)

 

여기 ‘앗수르 왕’은 거짓의 환상, 원리 및 그로 인한 추론(reasonings)을 말하며, 이것은 인간을 황폐하게 하는(desolate) 것인데, 이것이 바로 태고인들(antediluvians)을 황폐하게 한 주범입니다. The king of Asshur” here stands for fantasies, principles of falsity, and the derivative reasonings, which desolate man, and which desolated the antediluvians.

 

[3]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3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렘47:2-3) Thus hath said Jehovah, Behold waters rise up out of the north, and shall become an inundating stream, and shall inundate the land and the fullness thereof, the city and them that dwell therein. (Jer. 47:2–3)

 

이는 블레셋에 관한 말씀으로, 그들은 영적인 일들에 관하여 거짓 원리를 취하고, 거기서 나오는 것으로 사고하는(思考, reason) 자들로서, 그런 사고(reasonings)는 마치 태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을 황폐하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This is said of the Philistines, who represent those who take up false principles, and reason from them concerning spiritual things, which reasonings inundate man, as they did the antediluvians.

 

시험과 황폐(desolations), 이 둘이 말씀에서 ‘홍수’나 물의 ‘범람’으로 비유되며, 또 그렇게 일컫는 이유는, 그것이 ‘둘러싸는 것’(circumstanced), 곧 자기들 안에 있는 기만(persuasions)과 거짓 원리들을 가지고 들어와 사람 안에 있는 그런 것들을 흥분시키는(excite) 악한 영들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both temptations and desolations are compared in the Word to “floods” or “inundations” of waters, and are so called, is that they are similarly circumstanced; it being evil spirits who flow in with their persuasions and the false principles in which they are, and excite such things in man.

 

거듭나고 있는 사람한테는 시험이 수반됩니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황량함, 황폐함이 있습니다. With the man who is being regenerated, these are temptations; but with the man who is not being regenerated they are desolations.

 

https://youtu.be/EgMjwc8Bq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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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6:1-8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And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an that they were good; and they took to themselves wives of all that they chose.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There were Nephilim in the earth in those days; and most especially after the sons of God went in un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y bare to them; the same became mighty men, who were of old, men of renown.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And Jehovah saw that the evil of man was multiplied on the earth, and that all the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every day.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it repented Jehovah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I will destroy man whom I have created, 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both man and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fowl of the heavens; for it repenteth me that I have made him.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And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Jehovah.

 

 

The Contents

 

554.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state of the people before the flood.

 

 

555. 1-2절,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교회가 있던 곳의 사람들을 갈망(渴望, yearnings)이, 이것이 ‘딸들’인데,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That with man, where the church was, yearnings—which are the “daughters”—began to reign.

 

※ ‘사람’은 그 시절 존재하던 인류를, ‘땅 위’는 교회가 있던 모든 지역을, ‘딸들’은 ‘사람’의 의지에 속한 것들, 곧 갈망, 욕망(appetites, cravings)을 각각 의미합니다.

 

※ 점잖게 ‘yearnings’(갈망, 열망, 간절히 사모함)로 표현했을 뿐, 사실은 탐욕(cupidity)입니다. 주님 향한 순전한 사모함이 아닌, 자기를 향한 더러운 욕망입니다. 현재 이 본문은 부패한 후손, 홍수 멸망을 목전에 둘 정도로 맛이 간 사람들에 관한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까지 간 사람들의 의지란 극히 비정상적인 의지, 곧 회복 불가능한 광적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과 자신들의 갈망을 결합, 그런 식으로 자신들이 악과 거짓 가운데 있음을 확실히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1-2절) Also that they conjoin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with their yearnings, and thus confirmed themselves in evils and falsities, which is signified by “the sons of God taking to themselves wives of the daughters of man” (verses 1–2).

 

※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들, 곧 신앙적인 가르침들을, ‘딸들’은 갈망, 욕망, 탐욕을 각각 의미합니다.

 

※ 사람 마음의 원하는 것들은 주님 신앙의 가르침 아래 머무르며,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 새로워져야 하는데, 이들은 정반대로 이 순서가 뒤집혔음을 봅니다. 아무리 주님으로부터 좋은 것이 내려와도 사람 마음의 원하는 것, 곧 탐욕에 사로잡혀 악취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퍼셉션(perception)을 누리던 태고 교회 후손들에게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556. 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 결과, 선과 진리의 리메인스(remains)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러나 예언하시기를, ‘인간이 계속 리메인스를 갖고 있을 수 있도록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지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리메인스를 ‘백이십 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절) And whereas there were thus no remains of good and truth left, it is foretold that man should be differently formed, in order that he might have remains, which are “a hundred and twenty years” (verse 3).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같은 방식, 즉, 퍼셉션으로 인도함을 받지 않을 것임을,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는 그들이 육(肉)의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임을,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그들은 여전히 신앙에 관한 리메인스를 가져야만 살 수 있음을 각각 의미하며, 그래서 주님은 홍수 후 사람들에게는 퍼셉션 대신 양심(良心, conscience)을 주셨습니다.

 

 

557. 4절,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신앙에 관계된 교리적인 것들을 자신들의 갈망에 푹 담근 사람들은 여기에 더한 자기 사랑의 결과,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들이 가장 위대하다는 끔찍한 망상에 빠지는데, 이들이 바로 ‘네피림’입니다. (4절) Those who immers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in their yearnings, and in consequence of this as well as of the love of self conceived dreadful persuasions of their own greatness in comparison with others, are signified by the “Nephilim” (verse 4).

 

※ ‘네피림’은 자신들이 가장 높고 위대하다는 확신과 망상에 사로잡혀 주님을 향한 일체의 거룩하고 참된 그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긴 사람들을,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는 이런 일이 그들이 신앙에 관한 가르침을 자신들의 갈망과 욕구에 잠기게 하여 거짓된 것을 확신했을 때 일어났음을, ‘그들은 용사라’는 그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음을,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는 전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 어떤 선이 주님으로 말미암은, 천국으로 말미암은 선이 되려면 그 안에 이노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나라 사랑을 빙자(?)하여 목사가 정치 세력을 규합, 자기를 높이는 것은 자칫 현 시대 네피림이 될 수 있습니다.

 

 

558.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렇게 되고 나자 선과 진리에 관한 무슨 의지나 퍼셉션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5절) In consequence of this there no longer remained any will or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verse 5).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지기 시작했음을,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는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이 전혀 없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559. 6절,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주님의 자비(mercy)에 대한 묘사입니다. (6절) The mercy of the Lord is described by “repenting and grieving at heart” (verse 6).

 

※ 주님은 결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만물을 온전히 영원부터 예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천적 인간이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될 줄 예견하셨습니다.

 

사무엘의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삼상15:29)

 

모세의 글에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23:19)

 

주님의 자비는 인류를 향하여 행하신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인류는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상태에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상태에 따라, 그리고 벌을 받게 되어 있는 사람이든, 선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 사람이든 주님은 모두 불쌍히 여기십니다.

 

7절,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들은 이런 갈망과 이런 신념은 사람을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을 입증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7절) That they became such that their yearnings and persuasions must needs prove fatal to them (verse 7).

 

※ ‘이르시되 내가 사람을 쓸어버리되’는 인류가 전멸을 자초할 것을,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는 태고 교회의 후손이었던 사람들을,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는 그들의 의지 안에 무엇이 있든지 그것이 그들을 전멸시킬 것임을, ‘공중의 새까지’는 그들의 지적 능력이나 사고 능력 안에 무엇이 있든지를,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는 불쌍히 여기심을 각각 의미합니다.

 

8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건짐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려면 새로운 교회가 반드시 일어나야 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노아’입니다. (8절) Therefore in order that the human race might be saved, a new church should arise, which is “Noah” (verse 8).

 

※ ‘노아’는 새 교회를,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주님은 인류가 이렇게 구원받게 될 것을 예견하셨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The Iinternal Sense

 

560.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기 전에 먼저, 홍수 이전 교회의 상황은 어땠는지를 좀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efore proceeding further we may mention how the case was with the church before the flood.

 

일반적으로는, 후에 일어난 교회들의 상황들과 같았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즉, 주님 강림 전 유대교회의 경우나, 주님 강림 후 기독교회의 경우처럼, 참 신앙 지식의 부패와 타락, 뒤집힘 및 불순물을 섞음 등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는, 홍수 전 교회에 속한 사람의 경우,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무서운 신념, 곧 소름 끼치는 망상을 품게 되었고, 신앙에 속한 선과 진리를 역겨운 갈망, 욕망에 철저히 잠기게 하여 그 결과, 그들 안에 리메인스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지경까지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Speaking generally, it was as with succeeding churches, as with the Jewish church before the Lord’s advent, and the Christian church after his advent, in that it had corrupted and adulterated the knowledges of true faith; but specifically, as regards the man of the church before the flood, he in course of time conceived direful persuasions, and immersed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in foul yearnings, insomuch that there were scarcely any remains in them.

 

그들이 이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사실은 스스로를 질식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리메인스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AC.530), 사람을 짐승 수준의 삶에서 인간의 삶으로 고양하는 것이 바로 이 리메인스이기 때문입니다. When they came into this state they were suffocated as if of themselves, for man cannot live without remains; for, as we have said, it is in the remains that the life of man is superior to that of brutes.

 

리메인스를 가지고, 즉, 주님에게서 온 리메인스를 통해서, 사람은 사람이 될 수도,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 수도, 온갖 종류의 일들을 생각할 수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리메인스 그 안에는 영적, 천적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From remains, that is, through remains from the Lord, man is able to be as man,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to reflect upon matters of every kind, and consequently to think and to reason; for in remains alone is ther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561. 그러면 리메인스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But what are remains?

 

리메인스는 사람이 유년기부터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배워 그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선과 진리뿐 아니라, 거기서 기원한 모든 상태, 가령, 영유아기 순진무구한 상태, 부모, 형제, 선생님과 친구를 향한 사랑의 상태,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 및 가난한 자, 빈궁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상태 등, 한 마디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상태 또한 가리킵니다. They are not only the goods and truths that a man has learned from the Lord’s Word from infancy, and has thus impressed on his memory, but they are also all the states thence derived, such as states of innocence from infancy; states of love toward parents, brothers, teachers, friends; states of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nd also of pity for the poor and needy; in a word, all states of good and truth.

 

선과 진리와 함께 기억에 각인된 이런 상태를 일컬어 리메인스라 합니다. 이것은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관되는데, 이때 주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도 눈치 못 채게 조심조심 그의 속사람 안에 쌓아가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즉, 악과 거짓에 관련된 것들하고는 철저히 격리됩니다. These states together with the goods and truths impressed on the memory, are called remains, which are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and are stored up, entirely without his knowledge,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ompletely separated from the things that are proper to man, that is, from evils and falsities.

 

이 모든 상태는 그 가운데 아주 작은 것조차 잃는 것이 없도록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존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도록 전에 이런 경험을 했는데요, 사람의 모든 상태는 그의 영유아 때부터 아주 늙었을 때까지 내세에 그대로 보존될 뿐만 아니라 다시 체험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상태는 그가 현세에 살면서 처음 겪었던 상태 그대로 정확히 다시 체험됩니다. All these states are so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that not the least of them is lost, as I have been given to know from the fact that every state of a man, from his infancy to extreme old age, not only remains in the other life, but also returns; in fact his states return exactly as they were while he lived in this world.

 

우리 기억에 아로새겨진 선과 진리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이노센스나 체어리티도 마찬가지, 즉, 하나도 잃는 것은 없습니다. Not only do the goods and truths of memory thus remain and return, but also all states of innocence and charity.

 

그리고 악과 거짓의 상태가 재현될 때, 곧, 이들 악과 거짓이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 심지어 아주 작은 것조차 역시 고스란히 남아있고, 다시 체험되는데요, 이때는 주님에 의해 선한 상태로 누그러뜨려집니다. And when states of evil and falsity recur—for each and all of these, even the smallest, also remain and return—then these states are tempered by the Lord by means of the good states.

 

이 모든 사실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면, 그는 반드시 영원한 지옥살이, 곧, 영원히 지옥에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AC.468번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From all this it is evident that if a man had no remains he must necessarily be in eternal damnation. (See what was said before at n. 468.)

 

 

562. 홍수 전 사람들은 결국 리메인스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게 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독특한 멘탈 때문인데요,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관해, 무서울 정도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종교적 신념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멘탈적 특성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고자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들은 어마어마한 자아 사랑의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을 신으로 여기며, 자기들이 하는 생각은 무엇이든지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people before the flood were such that at last they had almost no remains, because they were of such a genius that they became imbued with direful and abominable persuasions concerning all things that occurred to them or came into their thought, so that they would not go back from them one whit, for they were possessed with the most enormous love of self, and supposed themselves to be as gods, and that whatever they thought was Divine.

 

이런 종교적 신념, 종교적 설득력, 이쯤 되면 종교적 수준의 자기기만인데요, 이런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어떤 사람들한테서도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고 질식시켜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내세에서는 이 홍수 전 시대 사람들은 다른 영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는데요, 그들이 나타나면 그들은 공포스럽다 판명된 자신들의 이 종교적 신념을 주입함으로써 사람들의 모든 사고능력을 거두어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이쯤 하고, 나머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허락하심으로 이어지는 그 부분에서 계속하겠습니다. (AC.1265-1272) No such persuasion has ever existed in any people before or since, for it is deadly or suffocative, and therefore in the other life the antediluvians cannot be with any other spirits, for when they are present they take away from them all power of thought by injecting their fearfully determined persuasions, not to mention other matters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shall be spoken of in what follows.

 

 

563. 이런 종류의 자기기만이 사람을 점유, 점령하게 되면, 이것은 무슨 접착제처럼 착 달라붙어 만일 이것이 없었으면 여전히 남아있었을 선과 진리로 하여금 도저히 남아나게도, 더 이상 쌓이게도 하질 않습니다. 또 그동안 쌓아놓은 것들은 사용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들은 이런 망상의 정상에 도달, 결국 그들에게 부합하는 고유한 종말, 멸망에 이르게 되며, 홍수와 다름없는 범람으로 질식당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종말을 ‘홍수’에 비유하며, 태고인들의 관습에 따라 같은 것, 곧, 홍수로 묘사합니다. When such a persuasion takes possession of a man, it is like a glue which catches in its sticky embrace the goods and truths that otherwise would be remains, the result of which is that remains can no longer be stored up, and those which have been stored up can be of no use; and therefore when these people arrived at the summit of such persuasion they became extinct of their own accord, and were suffocated by an inundation not unlike a flood; and therefore their extinction is compared to a “flood,” and also,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most ancient people, is described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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