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2(D1)-제9권34호통417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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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천국 안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13. 천국에서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을 신적 진리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called in heaven Divine truth, for a reason that will presently appear.

 

이 신적 진리는 주님에게서, 주님의 신적 사랑에서 나와 천국 안으로 흘러듭니다. This Divine truth flows into heaven from the Lord from his Divine love.

 

신적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적 진리는 마치 이 세상 해의 열(불)과 거기서 나오는 빛처럼 서로 연관됩니다. 이때 사랑은 해의 열(불)을,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진리는 해의 빛에 각각 상응합니다. The Divine love and the Divine truth therefrom are related to each other as the fire of the sun and the light therefrom in the world, love resembling the fire of the sun and truth therefrom light from the sun.

 

더 나아가 상응에 의해, 불은 사랑을, 빛은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를 각각 상징합니다.(주19) Moreover, by correspondence fire signifies love, and light truth going forth from love.(주19)

 

이런 사실로. 이제 주님의 신적 사랑에서 나오는 신적 진리라는 게 무엇인지가 명확해지는데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신적 진리와 결합한 신적 선이며, 그 결합을 통해 천국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봄과 여름, 세상 해의 열이 빛과 결합(융합)하여 지상 만물을 열매 맺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From this it is clear what the Divine truth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s Divine love is—that in its essence it is Divine good joined to Divine truth, and being so conjoined it vivifies all things of heaven; just as in the world when the sun’s heat is joined to light it makes all things of the earth fruitful, which takes place in spring and summer.

 

반면, 열이 빛과 융합하지 않으면, 즉 차가운 빛이 되면, 그때는 만물이 쇠잔하여 죽게 됩니다. It is otherwise when the heat is not joined with the light, that is, when the light is cold; then all things become torpid and lie dead.

 

천사들에게 있어서, 열에 비유되는 이 신적 선은 사랑의 선입니다. 그리고 빛에 비유되는 신적 진리는 일종의 그릇, 용기(用器)인데, 사랑의 선이 그 안에 담겨 밖으로 나오는 용기입니다. 선을 실어나르는 일종의 캐리어이지요. With the angels this Divine good, which is compared to heat, is the good of love; and Divine truth, which is compared to light, is that through which and out of which good of love comes.

 

 

14. 천국에 충만한, 천국을 이루는 신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적 결합(력)이기 때문입니다. The Divine in heaven which makes heaven is love, because love is spiritual conjunction.

 

사랑으로 천사들은 주님과 결합하며, 또 서로 결합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합한 천사들이 주님의 시야로는 모두 다 하나로 보입니다. It conjoins angels to the Lord and conjoins them to one another, so conjoining them that in the Lord’s sight they are all as one.

 

게다가 사랑은 모든 사람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천사들과 사람들 모두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Moreover, love is the very being [esse] of everyone’s life; consequently from love both angels and men have life.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가장 내적 활력은 바로 사랑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람은 따뜻해지지만, 사랑이 없으면 차가워지며, 완전히 빼앗기면 그때는 죽기 때문입니다.(주20) Everyone who reflects can know that the inmost vitality of man is from love, since he grows warm from the presence of love and cold from its absence, and when deprived of it he dies.(주20)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사랑의 퀄러티에 따라 자기가 가진 생명의 퀄러티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But it is to be remembered that the quality of his love is what determines the quality of each one’s life.

 

 

15. 천국에는 두 종류의 구별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입니다. 가장 내적 천국, 곧 삼층천은 주님 사랑의 천국, 이층천, 곧 중간 천국은 이웃 사랑의 천국입니다. In heaven there are two distinct loves,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in the inmost or third heaven love to the Lord, in the second or middle heaven love toward the neighbor.

 

이 두 사랑은 둘 다 주님에게서 나와 둘 다 천국을 이룹니다. They both go forth from the Lord, and they both make heaven.

 

이 두 사랑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는 천국에서는 밝은 빛 가운데 보이는데, 이 세상에서는 흐릿하기만 합니다. How these two loves are distinct and how they are conjoined is seen in heaven in clear light, but in the world only obscurely.

 

천국에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을 사랑하는 것이며, 선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선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이웃을 개인적 친구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며,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진리를 의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In heaven loving the Lord does not mean loving him in respect to his person, but it means loving the good that is from him; and to love good is to will and do good from love; and to love the neighbor does not mean loving a companion in respect to his person, but loving the truth that is from the Word; and to love truth is to will and do it.

 

이들 두 사랑이 선과 진리가 구별되듯 구별되며, 선과 진리가 결합하듯 서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이것으로 명료하게 알 수 있습니다.(주21) This makes clear that these two loves are distinct as good and truth are distinct, and that they are conjoined as good is conjoined with truth.(주21)

 

그러나 이런 사실은, 먼저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선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웃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지 않고서는 이해조차 어려울 수 있습니다.(주22) But this can scarcely be comprehended by men unless it is known what love is, what good is, and what the neighbor is.(주22)

 

 

16. 저는 이 문제에 관해 천사들과 거듭 대화를 나눴습니다. I have repeatedly talked with angels about this matter.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말하길,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임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아야만 하는 것은,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서로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은 주님을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선과 진리를 의도하고 행하여 자기의 삶이 되게 한 사람들은 주님을 닮으며,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말이지요. They were astonished, they said, that men of the church do not know that to love the Lord and to love the neighbor is to love what is good and true, and to do this from the will, when they ought to know that one evinces love by willing and doing what another wishes, and it is this that brings reciprocal love and conjunction, and not loving another without doing what he wishes, which in itself is not loving; also that men should know that the good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a likeness of him, since he is in it; and that those who make good and truth to belong to their life by willing them and doing them become likenesses of the Lord and are conjoined to him.

 

의도함이란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Willing is loving to do.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 가운데 그토록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말씀하시길, That this is so the Lord teaches in the Word, saying,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23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He that hath My commandments and doeth them, he it is that loveth Me; and I will love him and will make My abode with him. (요14:21, 23)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If ye do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요15:10)

 

 

17. 천국에서의 제 모든 경험이 증명하는 사실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과, 천사들을 감동하고 천국을 이루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천국 모든 구성원들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형상이며, 그들의 얼굴과 말과 생명 모든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눈부신 사랑 가운데 그들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주23) All experience in heaven attests that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that affects angels and makes heaven is love; for all who are in heaven are forms of love and charity, and appear in ineffable beauty, with love shining forth from their faces, and from their speech and from every particular of their life.(주23)

 

게다가 모든 천사와 영들은 자기에게서 나와 자기를 둘러싸는 생명의 영적 구체(球體, sphere) 아우라가 있는데, 이것으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애정의 퀄러티를 알 수 있으며, 때때로 아주 먼 데까지 그 아우라가 미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Moreover, there are spiritual spheres of life emanating from and surrounding every angel and every spirit, by which their quality in respect to the affections of their love is known, sometimes at a great distance.

 

각자 자신의 애정과 그에 따른 사고의 생명, 혹은 사랑과 그에 따른 신앙의 생명에서 이들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For with everyone these spheres flow forth from the life of his affection and consequent thought, or from the life of his love and consequent faith.

 

천사들에게서 발산되는 아우라는 너무나 사랑으로 충만하여 함께 한 사람들의 생명 가장 내적인 곳까지 감동을 줍니다. The spheres that go forth from angels are so full of love as to affect the inmosts of life of those who are with them.

 

저도 여러 차례 이런 걸 지각했고, 그렇게 감동을 받았습니다.(주24) They have repeatedly been perceived by me and have thus affected me.(주24)

 

천사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에서 얻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데요, 저 세상 삶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사랑을 따라 몸을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반면,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That it is love from which angels have their life is further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the other life everyone turns himself in accordance with his love—those who are in love to the Lord and in love toward the neighbor turning themselves always to the Lord, while those who are in love of self turn themselves always away from the Lord.

 

그들이 몸을 임의로 돌려도 결국 이렇게 됩니다. 이것은 저 세상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공간이라는 게 자신의 내면의 상태와 일치하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방위 역시 이 세상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 방향과 일치하도록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This is so, however their bodies may turn, since with those in the other life spaces conform to the states of their interiors, likewise quarters, which are not constant as they are in this world, but are determined in accordance with the direction of their faces.

 

그러나 그들을 주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는 것은 천사들 자신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님의 일 행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주님 자신을 향해 돌아서게 하시는 것입니다.(주25) And yet it is not the angels that turn themselves to the Lord; but the Lord turns to himself those that love to do the things that are from him.(주25)

 

이 주제에 관해서는 나중에, 저 세상 삶의 방위를 다룰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more on this subject hereafter, where the quarters in the other life are treated of.

 

 

18. 천국 주님의 신성은 사랑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 천국의 모든 것, 곧 평화, 지성, 지혜 및 행복을 담는 그릇이요,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 The Divine of the Lord in heaven is love, for the reason that love is receptive of all things of heaven, such as peace, intelligence, wisdom and happiness.

 

사랑은 자기 자신과 조화되는 것은 무엇이든 전부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이들을 갈망하고, 찾고, 자연스럽게 들이킵니다. 이 모든 것에 의해 풍요롭고 완벽해지기를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이지요.(주26) For love is receptive of each and all things that are in harmony with it; it longs for them, seeks them, and drinks them in as it were spontaneously, for it desires unceasingly to be enriched and perfected by them.(주26)

 

이것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인데요. 사랑은 마치 사람의 기억 창고를 뒤지듯 찾아 자기와 조화되는 모든 것을 꺼내 자기 안에 그리고 자기 아래 모아놓고 정돈합니다. 자기 ‘’에 두어 그것들이 자기 것이 될 수 있게 하고, 자기 ‘아래’ 두어 자기의 종이 될 수 있게 말이지요. 그러나 자기와 조화되지 않는 것들은 버리고, 내보냅니다. This, too, man well knows, for with him love searches as it were the stores of his memory and draws forth all things that are in accord with itself, collecting and arranging them in and under itself—in itself that they may be its own, and under itself that they may be its servants; but other things not in accord with it, it discards and expels.

 

사랑에는 자기와 조화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능력과, 진리와 결합하려는 갈망이 있음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살 때, 단순했던 어떤 사람들이 천국으로 올려졌는데, 그들이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자 천사들의 지혜와 천국의 모든 복이 그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선하고 진실한 것들을 오직 그것이 선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사랑했는데, 그런 이유로 그것이 그들의 생명에 심겼고, 거기 천국에 있는 모든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들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That there is present in love every capacity for receiving truths in harmony with itself, and a longing to conjoin them to itself, has been made clear also by the fact that some who were simple-minded in the world were taken up into heaven, and yet when they were with the angels they came into angelic wisdom and heavenly blessedness, and for the reason that they had loved what is good and true for its own sake, and had implanted it in their life, and had thereby become capacities for receiving heaven with all that is ineffable there.

 

그러나 자기와 세상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선하고 진실한 것을 받을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천국을 혐오하고 거부하며, 천국 입구, 천국의 흐름이 닿자마자 뛰쳐나와 자기와 같은 애정 안에 있는 지옥의 영들과 합류합니다. But those who are in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have no capacity for receiving what is good and true; they loathe and reject it, and at its first touch and entrance they flee and associate themselves with those in hell who are in loves like their own.

 

천국적 사랑에 이런 능력이 있음을 믿기 어려워하며, 직접 알아보고 싶어 하는 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 사랑의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천국에 저항하는 요소들이 일시 잠재워진 다음, 천사들이 있는 천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제게 말하기를, 자기들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내적 행복들을 지각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이전 상태로 곧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무척 슬퍼했습니다. There were spirits who had doubts about there being such capacities in heavenly love, and who wished to know whether it were true; whereupon they were let into a state of heavenly love, whatever opposed being for the time removed, and were brought forward some distance, where there was an angelic heaven, and from it they talked with me, saying that they perceived a more interior happiness than they could possibly express in words, and they lamented greatly that they must return into their former state.

 

또 다른 영들도 천국에 올라갔었는데, 더 높이, 더 내적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은 총명과 지혜가 더해져서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Others also were taken up into heaven; and the higher or more interiorly they were exalted the more of intelligence and wisdom were they admitted into, such as enabled them to perceive what had before been incomprehensible to them.

 

이런 사실로 보아 분명한 것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천국과 그 안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요 수용체라는 사실입니다. From this it is clear that the lov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receptive of heaven and all things therein.

 

 

19.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는 모든 신적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주님 자신 친히 이 두 사랑에 대해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include in themselves all Divine truths is made evident by what the Lord himself said of these two loves:

 

37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Thou shalt love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This is the greatest and fir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like unto it, 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the law and the prophets. (마22:37-40)

 

율법과 선지자’는 말씀 전체, 곧 모든 신적 진리입니다. The law and the prophets” are the whole Word, thus all Divine truth.

 

※ 각주

19. 말씀에서 ‘’은 천국적 사랑과 지옥적 사랑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fire” signifies heavenly love and infernal love (n. 934, 4906, 5215). 거룩한 하늘의 불’은 신적 사랑과 그 사랑에 속한 모든 애정을 상징합니다. Holy and heavenly fire” signifies Divine love, and every affection that belongs to that love (n. 934, 6314, 6832). 불에서 나오는 ‘’은 사랑의 선에서 나오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천국에 충만한 빛은 신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Light” from fire signifies truth going forth from good of love; and light in heaven signifies Divine truth (n. 3195, 3485, 3636, 3643, 3993, 4302, 4413, 4415, 9548, 9684).

 

20. 사랑은 생명의 불이며, 생명 자체가 실제로 사랑에서 나옵니다. Love is the fire of life, and life itself is actually therefrom (n. 4906, 5071, 6032, 6314).

 

21.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To love the Lord and the neighbor is to live according to the Lord’s commandments. (n. 10143, 10153, 10310, 10578, 10648)

 

22.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한 개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주님의 것인 진리와 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To love the neighbor is not to love the person, but to love that in him from which he is what he is, that is, his truth and good. (n. 5028, 10336) 사람을 사랑하지,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것을 사랑하지는 않는 사람들은 악과 선을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Those who love the person, and not that in him from which he is what he is, love evil and good alike. (n. 3820)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자선, 기부, 인애...)는 진리를 위하여 진리를 의도하고, 진리로 감동되어 진리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입니다. Charity is willing truths and being affected by truths for the sake of truths. (n. 3876, 3877)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는 모든 일과 모든 역할, 쓰임새 가운데 선, 정의 및 의로운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Charity toward the neighbor is doing what is good, just, and right, in every work and in every function. (n. 8120–8122)

 

23. 천사들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형상입니다. Angels are forms of love and charity. (n. 3804, 4735, 4797, 4985, 5199, 5530, 9879, 10177)

 

24. 영적 구체(球體, sphere)는 생명의 구체인데, 모든 사랑, 영, 천사에게서 흘러넘치고 뿜어져 나와 그들 자신을 에워쌉니다. A spiritual sphere, which is a sphere of the life, overflows and pours forth from every man, spirit, and angel, and encompasses them (n. 4464, 5179, 7454, 8630). 이것은 그들의 애정과 그에 따른 사고의 생명에서 나옵니다. It flows from the life of their affection and consequent thought (n. 2489, 4464, 6206).

 

25. 영들과 천사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돌아섭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돌아섭니다. Spirits and angels turn themselves constantly to their loves, and those in the heavens turn themselves constantly to the Lord (n. 10130, 10189, 10420, 10702). 저 세상 방위는 자신의 얼굴 방향에 따라 제각각이며, 그렇게 정해집니다. 이 세상 방위하고는 다릅니다. Quarters in the other life are to each one in accordance with the direction of his face, and are thereby determined, otherwise than in the world (n. 10130, 10189, 10420, 10702).

 

26. 셀 수 없는 것들이 사랑 안에 담깁니다. 사랑은 자기와 조화를 이루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한테로 모읍니다. Innumerable things are contained in love, and love gathers to itself all things that are in harmony with it (n. 2500, 2572, 3078, 3189, 6323, 7490, 7750).

HH.1.3.13-19, '3장, 천국 안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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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RwCMNTik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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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These are the births of Noah; Noah was a man righteous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Noah walked with God. (창6:9)

 

 

610. ‘노아의 족보’는 새 교회가 개선되거나 다시 태어날 방법에 대한 설명을 의미합니다. By “the births of Noah” is signified a description of the reformation or regeneration of the new church.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그 교회는 체어리티를 타고난 교회였다는 뜻입니다. ‘의인’(또는 ‘의로운’)(just, righteous)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선과 관계가 있고, ‘완전한’(perfect)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진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That “Noah was a man just and perfect in his generations” signifies that he was such that he could be endowed with charity; “just” (or “righteous”) has relation to the good of charity, and “perfect” to the truth of charity.

‘당대’(generation)는 종교적 발전의 한 단계를 말합니다. The “generations” are those of faith.

‘하나님과 동행’은 앞서 에녹의 경우처럼, 여기서도 신앙과 관련된 교리를 상징합니다. To “walk with God” signifies here as before, when said of Enoch, the doctrine of faith.

 

 

611. ‘노아의 족보’라는 표현이, 새 교회가 개선되거나 다시 태어날 방법에 대한 설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앞서 말씀드린 내용들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창2:4; 5:1) That by “the births of Noah” is signified a description of the reformation or regeneration of the new church, is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before (Gen. 2:4; Gen. 5:1).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2:4)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612.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Noah was a man righteous and perfect(주2) in his generations.

이 교회는 체어리티라는 정서를 타고날 수 있었던 교회였음을 위와 같이 표현한 것이라는 이런 사실은, ‘의인이요 완전한’이라는 표현의 상징을 확인하면 됩니다. ‘의인’(또는 ‘의로운’)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선과, ‘완전한’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진리와 각각 관련됩니다. 같은 의미를 이 교회만의 차별화된 특징인 체어리티를 들여다 볼 때 또 만나게 되는데요, 그것은 주님의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따라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AC.640, 765) That this signifies that he was such that he could be endowed with charit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just and perfect,” “just” (or “righteous”) having regard to the good of charity, and “perfect” to the truth of charity; and also from the essential of that church being charity,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의인’(또는 ‘의로운’)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선과 관련이 있고, ‘완전한’은 체어리티에 수반된 진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아래 이사야 말씀을 보면 확실합니다. That “just” (or “righteous”) has regard to the good of charity, and “perfect” to the truth of charity,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Isaiah: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They will seek me daily and desire knowledge of my ways, as a nation that doeth righteousness, and forsaketh not the judgment of their God; they will ask of me the judgments of righteousness, and will long for the approach of God. (사58:2)

 

여기 ‘규례, 판단’(judgment)은 진리에 의해 옹호되는 일들을, ‘공의, 의’(righteousness)는 선에 의해 촉구되어지는 일들을 각각 대표합니다. Here “judgment” denotes the things which are of truth, and “righteousness” those which are of good.

 

‘정의와 공의를 행함’은 선과 진리를 행하는 일종의 공식 표준이 되었습니다. (아래 말씀들 참조) “Doing judgment and righteousness” became as it were an established formula for doing what is true and good (as in Isa. 56:1; Jer. 22:3, 13, 15; 23:5; 33:15; Ezekiel 33:14, 16,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사56:1)

 

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13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5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렘22:3, 13, 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렘23: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렘33:15)

 

14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16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19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겔33:14, 16, 19)


주님 말씀입니다. The Lord said: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The righteous(주3) shall shine forth as the sun, in the kingdom of my father, (마13:43)

 

‘의인들’은 체어리티를 타고난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종말과 관련된 구절에서는, “the righteous” meaning those who are endowed with charity; and concerning the consummation of the age he said: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The angels shall go forth and shall sever the wicked from among the righteous. (마13:49)

 

여기서도 ‘의인들’은 체어리티에서 오는 선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Here also the “righteous” denote those who are in the good of charity.

 

[2] 하지만 ‘완전한’(perfect)은 체어리티 가운데 자라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진리는 여러 다른 곳에서 비롯될 수 있는데, 체어리티의 품에 안겨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 가운데서 자란 진리, 이 진리를 이름하여 ‘완전한’, ‘완전한 자’(perfect man,)라 하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다윗의 글에 나옵니다. But “perfect” signifies the truth which is from charity, for there is truth from many another origin; but that which is from the good of charity from the Lord is called “perfect” and a “perfect man,” as in David: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Who shall sojourn in thy tent, who shall dwell in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He that walketh perfect, and worketh righteousness, and speaketh the truth in his heart. (시15:1-2)

 

‘완전한’(perfect, 혹은 온전한 complete, 정직한, 반듯한 upright) 사람을 여기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perfect” [or “complete”] man is here described.

계속해서 Again: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With the holy thou wilt show thyself holy; with the perfect man thou wilt show thyself perfect, (시18:25)

 

‘완전한 자’는 체어리티를 동반한 거룩이나 선의 결과로 완전한 사람, 반듯한 사람입니다. where the “perfect man” is one who is so from holiness, or the good of charity.

다시 계속해서 And again: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Jehovah will withhold no good from them that walk in perfectness [integritate]. (시84:11)

 

[3] ‘완전한 자’(perfect man), 반듯한 한 개인은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선으로 격려를 받는 사람, 다시 말해서, 타인을 위한 사랑으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은 반듯함, 정직함에 대해 말씀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면 분명한데요, 말씀에서는 이것을 종종 ‘걸어가다’(walk), ‘길’(way) 같은 단어로 표현합니다. 반듯한 사람 혹은 성실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반듯한, 옳은’(upright, right)이나 ‘정직, 청렴’(uprightness, rectitude)을 사용하는데, 이런 단어들은 진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That a “perfect man” is one who is true from good, or who speaks and does truth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words “walk” and “way” being often applied to what is perfect, that is, to wholeness or entirety, and also the words “upright” or “uprightness,” which words pertain to truth.

예를 들면, 다윗의 글입니다. As in David: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I will teach the perfect in the way how far he shall come unto me. I will walk within my house in the perfectness of my heart; (시101:2)

 

그리고 6절에서 and in the sixth verse: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He that walketh in the way of the perfect, he shall minister unto me. (시101:6)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Blessed are the perfect in the way, who walk in the law of Jehovah. (시119: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Perfectness and uprightness shall guard me. (시25:21)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Mark the perfect man, and behold the upright, for the end of that man is peace. (시37:37)

 

이 구절들을 보면, ‘정직하다, 의롭다’(righteous)는 선을 행하는 사람을, ‘온전하다’(perfect)는 선에서 나온 진리를 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또한 ‘정의와 공의를 행함’인 것입니다. It is evident from these passages that he is called “righteous” who does what is good, and that he is called “perfect” who does what is true therefrom, which also is to “do righteousness and judgment.”

 

‘거룩’(holiness)과 ‘의’(righteousness)는 신앙의 천적 측면이며, ‘온전함, 성실’(perfectness, integrity)과 ‘공의’(judgment)는 그런 천적 측면에서 나오는 영적 측면입니다. “Holiness” and “righteousness” are the celestial of faith; “perfectness” and “judgment” are the spiritual thence derived.

 

 

※ 각주

 

2. 여기에 쓰인 ‘완전하다’는 ‘전체’, ‘모든, 온’의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말, 단어는 정수입니다. [개정자] “Perfect”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whole,” “entire.” Swedenborg’s word is integer. [Reviser]

 

3. 두 영어 단어 ‘정의롭다’, ‘의롭다’에 대한 라틴어는 하나밖에 없으며, ‘정의’, ‘의’의 경우도 같습니다. [개정자] The Latin has only one word for our two English words “just” and “righteous,” and it is the same with “justice” and “righteousness.” [Reviser]

2021-08-20(D6)-매일예배(AC.610-612, 창6,9), '노아의 족보,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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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3klxbYx56o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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