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이야기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지상의 혈연관계가 천국까지도 이어지는 걸까?’ 1편입니다. 쓰다보니 분량이 많아져 할 수 없이 1, 2편 둘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전에 한번 다룬 것 같아 찾아보니 지난 8월 3일에 간략하게 다루었네요 ^^ 오늘은 원래 생각해 둔 다른 주제가 있었는데, 이번 주, 친인척 부고(訃告) 소식 및 저희 친형님의 25주기 기일도 찾아와 고민하다가 이 주제로 변경했습니다.

 

이 주제를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으려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먼저 좀 선행학습을 해야 합니다.

 

- 사후(死後), 영이 된다는 것

- 영의 외면과 내면

- 천국을 이루는 수많은 공동체

- 천국의 결혼

- 부모와 자녀의 영적 의미

- 천국과 지상의 상응

- 천국을 이루는 주님의 신성

 

등등...

 

네, 그만큼 쉬운 주제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렇다고, 이 주제에 대한 답이 꼭 무슨 저런 걸 다 알고 열심히 추론해야만 알 수 있는,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가 사후 천국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이 지상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답조차도 그걸 이해하려면 위와 같은 사전 이해들이 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은 지난 8월 3일, 나눈 글의 시작 부분입니다.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까마득한 조상을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하나? 또 나중에,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까마득한 후손이 찾아와 나한테 인사를 하게 되나?’...

 

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비천적(非天的), 비영적(非靈的)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국을 무슨 이 세상의 연장이요, 확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지요 ^^

 

답부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상 혈연관계는 지상에서 끝, 천국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천국에선 전혀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입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임종 및 깨어남

② 영의 외면(exteriors)의 상태변화

③ 영의 내면(interiors)의 상태변화

④ 천국 올라가기 전 오리엔테이션

⑤ 자신의 영원한 공동체에 합류

⑥ 우리가 지상에서 혈연관계로 살아가게 하신 이유

 

자, 그럼 먼저, ① 임종 및 깨어남입니다.

 

임종(臨終)은 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함’입니다. 산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겠지만, 천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신참 영의 깨어남’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가족들은 슬피 울고 있지만, 영계에서는 마치 신생아실의 돕는 간호사들처럼 천사들의 극진한 돌봄이 시작됩니다.

 

주님은 신참 영들이 깨어날 때, 마치 지상 신생아 무균실 환경처럼 일체 악한 영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제일 먼저 가장 높은 천사들인 삼층천 내적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이 천적 천사들이 오면 어떤 향기가 진동하는데요, 이 향기로 인해 일체 악한 영들의 접근이 금지됩니다.

 

세간, 가령, 호스피스 등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통해 임종을 앞둔 분들의 경우, 무슨 저승사자를 보시곤 한다는 말들을 듣는데요,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분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이 본 삼층천 천사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

 

이 ‘깨어남’(resuscitation, 소생, 부활)의 과정과 관련된 이야기가 또 많지만... 네, 하여튼 영계에서 막 깨어나는 신참 영은 천적, 영적 천사들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이후 영계에서 첫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다음은, ② 영의 외면(exteriors)의 상태변화입니다.

 

’하면 그냥 ‘’이지 무슨 ‘영의 외면, 내면’이 있다 하나 어리둥절하시지요? ^^ ‘영의 외면’이란 다름 아닌, ‘영의 내면’과 육체(肉, body, 살과 뼈로 된) 사이에서 둘을 연결시켜 주는, 영의 바깥, 겉 부분을 말합니다.

 

우리의 이 살과 뼈로 된 몸은 사실은 우리의 영이 입고 있는 옷입니다. 옷 자체에 무슨 생명이 없듯 사실 우리의 이 몸은 영과 분리된 후엔 그냥 물질일 뿐이어서 바로 썩고 부패하지요. 우리의 모든 기억과 경험, 감각과 감정 중에서, ‘영의 내면’, 즉, 속 사람(internal man)에 속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또 몸은 아닌, 그런 일체가 바로 이 ‘영의 외면’에 속합니다. ‘영의 내면’에 대해서는 요 바로 다음인 ③번 항목에서 다루겠습니다.

 

영은 사후 몇 차례의 상태변화를 겪으면서 천국, 또는 지옥 갈 준비를 하게 되는데요, 그 첫 번째 상태변화가 바로 이 ‘영의 외면’의 상태변화입니다.

 

영의 외면’이 바로 저런 거여서 사후 신참 영들의 모습은 임종 직전 모습, 즉, 생전 모습과 거의 똑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 외면의 상태에서는 생전에 알던 가족과 친지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생각하던 모습이 아직은 남아있어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무척 반가워들 하지요. 모든 게 낯설고 어리둥절한 신참 영들을 이들 고참들(?)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구경도 시켜주고 이런저런 걸 알려줍니다.

 

여기서 잠깐, 사람 안의 ‘천국’이 무엇이며, 또 ‘지옥’이 무엇인지를 잠깐 생각해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가 하나 된 상태가 천국’이며, 이런 사람은 천국의 해당 공동체로 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안에서 ‘악과 거짓이 하나 된 상태가 지옥’이며, 이 사람 역시 지옥의 해당 공동체로 떨어집니다.

 

여기서 ‘해당 공동체’라는 것은, 사람은 생전에 이미 그 사람의 ‘중심 사랑’에 의해서, 자기는 모르지만, 그 영은 천국 또는 지옥의 어느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 ‘중심 사랑’이란, 그가 무엇을 하든 결국 그의 모든 행위의 근본 동기가 되는 하나의 사랑이 있는데, 이 사랑을 가리켜 ‘중심 사랑’(ruling love)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 사랑’이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이면 천국으로,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이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 상태변화 때, 일어나는 가장 중요 포인트는, 이 영의 ‘중심 사랑’을 통해 형성된 ‘영의 내면’을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즉, 선과 진리의 하나 됨, 또는 악과 거짓의 하나 됨이 진행되는 동안, 천국에 갈 사람한테서는 천국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악과 거짓을, 반면, 지옥 갈 사람한테서는 역시 지옥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선과 진리를 각각 떼어내는 일이 이때 일어납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면서, 이 영의 모습은 점점 달라지며, 이 첫 번째 과정이 마칠 즈음이면, 즉, 그의 ‘영의 내면’이 본모습을 드러내면, 그 모습은 ‘영의 외면’일 때와 너무도 달라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 영의 외면은 휴면 상태로 들어갑니다.

 

주님의 허락으로 영안이 열려 다른 사람들의 영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어떤 할머니는 등도 굽고, 흰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참 볼품없는 외모이지만, 그 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인 반면, 어떤 젊은 여자는 정말 많은 남자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매혹적이지만 그 영은 거의 괴물 수준이더라라고 합니다. 이때 이분들이 본 저들의 영은 사실은 저들의 ‘영의 내면’, 곧, 본모습을 본 것입니다.

 

영의 외면, 내면’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내키지는 않지만 어떤 사정이 있어 누굴 만나거나 할 때, 예의 상, 얼굴이나 태도에 내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표정, 행동을 하거나 정 그럴 수 없다면, 그저 무난하게라도 있다 옵니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있고, 도덕과 윤리, 상식과 정서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 속이 들키지 않게 가려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영의 외면’이며, 그렇다면, ‘영의 내면’은 아무도 안 볼 때, 누구 신경 쓸 일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을 때, 그때 나타나는 내 본 모습, 그것이 ‘영의 내면’입니다. 즉,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 그것이 ‘영의 내면’입니다.

 

다음 순서들인,

 

③ 영의 내면(interiors)의 상태변화

④ 천국 올라가기 전 오리엔테이션

⑤ 자신의 영원한 공동체에 합류

⑥ 우리가 지상에서 혈연관계로 살아가게 하신 이유

 

는 2편으로 미루어야 하겠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는 미니 결론을 미리 좀 말씀드리자면...

 

천국에서는 지상과 같은 ‘생육하고 번성함’이 없고, 대신 ‘주님의 선과 진리의 생겨남’이 있습니다. 지상은 천국의 상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혈연, 혈육도 이런 관점, 곧 주님의 선과 진리의 관점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자녀에 대한, 부모에 대한,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탈선하거나 오버하지 않을 수 있으며, 지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주님 사랑’이라는 ‘중심 사랑’을 연습하고 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 사랑은 자녀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 사랑’이며, 부모 사랑 또한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 사랑’이며, 남편 또는 아내에 대한 사랑도 남편 또는 아내의 모습으로 내 곁에 계신 ‘주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021-11-26(D6)-천국이야기(5), '지상의 혈연관계가 천국까지도 이어지는 걸까?(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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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

 

21. 4, 5절,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Verses 4, 5.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빛을 일컬어, ‘좋았더라’, 곧, ‘’(good)이라 합니다. 이 빛이 주님으로 말미암기 때문인데, 주님은 선 그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Light is called “good,” because it is from the Lord, who is good itself.

 

어둠’은 그동안 빛인 줄 알았던 모든 걸 의미합니다. 사람에게 거듭남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동안 악은 선인 것처럼, 거짓은 진리인 것처럼 행세해 왔습니다만, 이제 보니 그것들은 그저 어둠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그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그런 것들이었고, 여전히 남아 있는 어둠일 뿐입니다. The “darkness” means all those things which, before man is conceived and born anew, have appeared like light, because evil has appeared like good, and the false like the true; yet they are darkness, consisting merely of the things proper to man himself, which still remain.

 

※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고 그에 따라 생각하는 모든 것을 진리로 여기며, 또 자기가 의도하고 그에 따라 생각하는 모든 것을 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주님께 속한 것이면, 그것은 ‘’으로 비교됩니다. 낮은 빛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사람의 본성에 속한 것이면, 그것은 ‘’으로 비교됩니다. 밤은 어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Whatsoever is of the Lord is compared to “day,” because it is of the light; and whatsoever is man’s own is compared to “night,” because it is of darkness.

 

이런 비교, 이런 대비가 말씀에는 아주 자주 나옵니다. These comparisons frequently occur in the Word.

 

AC.21, 창1,4-5,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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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1DgfdRrx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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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3

 

1575. 8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Verse 8. And Abram said unto Lot, Let there be no contention, I pray, between me and thee, and between my herdmen and thy herdmen, for we are men brethren.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는 속 사람이 겉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의미입니다. Abram said unto Lot” signifies that the internal man said thus to the external.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는 둘 사이 하나 되지 못함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한 친족이라’는 그들 가운데 하나 됨이 있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Let there be no contention, I pray, between me and thee, and between my herdmen and thy herdmen” signifies that there ought to be no disagreement between the two; “for we are men brethren” signifies that in themselves they were united.

 

 

1576.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Abram said unto Lot.

 

이 말의 의미가 속 사람이 겉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라는 의미임은 여기 아브람은 속 사람을, 롯은 겉 사람을 각각 표상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분명합니다. 이 겉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곧 분리되게 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 internal man said thus to the external is evident from the representation of Abram, as being here the internal man; and from the representation of Lot, as being the external man that was to be separated.

 

아브람이 속 사람을 표상한다는 것은 그가 롯과 관련되어 언급되기 때문인데, 롯은 겉 사람 안에 있는, 곧 분리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That Abram represents the internal man is because he is spoken of relatively to Lot, who is that in the external man which was to be separated.

 

전에 말씀드린 대로, 겉 사람 안에는 함께 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There are in the external man, as before said, things that agree, and things that disagree.

 

여기서 ‘’은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반대로 겉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을 포함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속 사람과 함께 하나를 이루며, 속 사람에게 속하기 때문입니다. By “Lot” are here meant the things that disagree; by “Abram,” therefore, are meant those which agree, including those which are in the external man; for these together with the internal man constitute one thing, and they belong to the internal man.

 

 

1577. 나나 너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Let there be no contention, I pray, between me and thee.

 

이 말의 의미가 둘 사이 하나 되지 못함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의미라는 것은 이미 드린 말씀으로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re ought to be no disagreement between the two is evident from what has already been said.

 

속 사람과 겉 사람 간 함께 함 또는 하나 됨에 관한 아케이나는 지금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The arcana relating to the agreement or union of the internal man with the external are more than can ever be told.

 

속 사람과 겉 사람 간 하나 된 적이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가 될 수도, 하나로 있을 수도 말이지요. 오직 주님만이 그러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With no man have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ever been united; nor could they be united, nor can they be, but with the Lord only, for which cause also he came into the world.

 

거듭난 사람들의 경우는 마치 이 둘이 하나 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들은 주님의 것이고, 함께 하지 않는 것들은 사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With men who have been regenerated, it appears as if they were united; but these belong to the Lord; for the things which agree are the Lord’s, but those which disagree are man’s.

 

※ 즉, 주님이 허락하셔서, 주님이 도우셔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이지, 절대 그들이 잘나서, 그들의 무슨 공로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겉과 속의 하나 됨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2] 속 사람 안에는 두 가지, 곧,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있어 이 둘이 하나를 이룹니다. 영적인 것이 천적인 것으로부터 올 경우엔 말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속 사람 안엔 두 가지, 선과 진리가 있어 이 둘이 하나를 이룹니다. 진리가 선으로부터 올 경우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역시 같은 얘깁니다만, 속 사람 안엔 두 가지, 사랑과 신앙이 있어 이 둘이 하나를 이룹니다.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올 경우엔 말입니다. 계속해서 같은 말입니다만, 속 사람 안엔 두 가지, 의지와 이해가 있어 이 둘이 하나를 이룹니다. 이해가 의지로부터 올 경우엔 말입니다. There are two things in the internal man, namely, the celestial and the spiritual, which two constitute a one when the spiritual is from the celestial; or what is the same, there are two things in the internal man, good and truth; these two constitute a one when the truth is from good; or what is also the same, there are two things in the internal man, love and faith; these two constitute a one when the faith is from love; or what is again the same, there are in the internal man two things,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these two constitute a one when the understanding is from the will.

 

이는 빛이 나오는 해를 보면 계속해서 더 잘 명료하게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This may be apprehended still more clearly by considering the sun, from which is light.

 

만일 해에서 나오는 빛 가운데 열과 광력(光力, illuminating power), 이 둘이 있으면, 봄철, 만물은 그로 인해 무럭무럭 생장(生長)합니다. 그러나 빛은 있는데 그 안에 해에서 나오는 열이 없으면, 겨울철, 만물은 쇠잔하여 죽게 됩니다. If in the light from the sun there are both heat and illuminating power, as in the springtime, all things are thereby made to vegetate and to live; but if there is not heat from the sun in the light, as in the time of winter, then all things become torpid and die.

 

[3] 이 모든 것으로 속 사람을 이루는 게 무엇인지가 분명하며, 그때 겉 사람을 이루는 것이 나타납니다. From all this it is evident what constitutes the internal man; and what constitutes the external thence appears.

 

겉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자연적입니다. 겉 사람이라는 자체가 자연적인 사람이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In the external man all is natural; for the external man itself is the same as the natural man.

 

속 사람에게 속한 천적, 영적인 것이 겉 사람에게 속한 자연적인 것 안으로 흘러들어와 마치 하나가 된 듯 움직일 때, 이때 속 사람은 겉 사람과 하나가 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The internal man is said to be united to the external when the celestial spiritual of the internal man flows into the natural of the external, and makes them act as a one.

 

그 결과, 자연적인 것은 또한 천적, 영적인 것이 되는데, 천적, 영적인 것의 입장에서 보면, 더 낮은 단계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겉 사람 역시 천적, 영적인 것이 되는데, 천적, 영적인 것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겉, 바깥 단계가 됩니다. As a consequence of this the natural also becomes celestial and spiritual, but a lower celestial and spiritual; or what is the same, the external man becomes celestial and spiritual, but a more external celestial and spiritual.

 

[4] 속 사람과 겉 사람은 둘 다 뚜렷이 구별됩니다. 천적, 영적인 것들은 속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연적인 것들은 겉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are altogether distinct, becaus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re what affect the internal man, but natural things are what affect the external.

 

뚜렷이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즉, 속 사람에게 속한 천적, 영적인 것이 겉 사람에게 속한 자연적인 것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것을 그 고유 본성으로 둘 때, 이들은 하나 된 상태에 있습니다. But though distinct, they are still united, namely, when the celestial spiritual of the internal man flows into the natural of the external, and disposes it as its own.

 

※ 즉, 마치 두 종류의 나무를 그 좋은 부분만 더욱 특화하기 위해 접붙이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밀감나무를 탱자나무에 접을 붙여 병충해에도 강하고 씨 없는 귤을 생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속 사람은 겉 사람과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하나 됨은 주님이 그렇게 하셨거나 그렇게 하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In the Lord alone the internal man was united to the external; this is not the case in any other man, except so far as the Lord has united and does unite them.

 

사랑과 체어리티만이, 혹은 선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랑과 체어리티, 즉, 어떠한 선도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Love and charity only, or good, is what unites; and there is never any love and charity, that is, any good, except from the Lord.

 

이것이 바로 아브람의 말,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는 말 속에 담긴 하나 됨입니다. Such is the union that is intended in these words of Abram: “Let there be no contention between me and thee, and between my herdmen and thy herdmen.

 

[5]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라고 말하는 건 이런 경우입니다. 속 사람 안에는 두 가지, 천적, 영적인 것, 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를 만드는 두 가지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또 겉 사람 안에도 자연적 선이라고 하는 천적인 것과, 자연적 진리라고 하는 영적인 것, 두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It is said, “Between me and thee, and between my herdmen and thy herdmen,” for the case is thus: as there are two things in the internal man, namely, the celestial and the spiritual, which as before said make a one, so also are there in the external man, its celestial being called natural good, and its spiritual natural truth.

 

나나 너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는 말은 선과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속 사람의 선은 겉 사람의 선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라는 걸 의미하며,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는 말은 진리와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속 사람의 진리는 겉 사람의 진리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Let there be no contention between me and thee” has reference to good, meaning that the good of the internal man should not disagree with the good of the external man; and “Let there be no contention between my herdmen and thy herdmen” has reference to truth, meaning that the truth of the internal man should not disagree with the truth of the external man.

 

 

1578. 우리는 한 친족이라 For we are men brethren.

 

이 말의 의미가 둘이 함께 하나가 되어 있음이라는 것은, ‘친족’(man brother)의 의미가 하나 됨, 곧, 진리와 선의 하나 됨이라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are united together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man brother,” as being union, and in fact the union of truth and good.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3장 8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속뜻)

속 사람이 겉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였으니 어떤 경우에도 이 하나 됨을 해치는 일이 없게 하자. 내 안에 있는 천적, 영적인 것들과 네 안에 있는 자연적 선과 진리들 사이에 늘 하나가 되게 하자.’

 

※ 겉 사람 안에도 두 종류, 곧 속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에 주목하여, 주님으로 말미암은 속 사람, 곧 천적, 영적인 것과 함께 할 수 있는 겉 사람의 것은 더욱 힘쓰고, 함께 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는 물러서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021-11-24(D4)-매일예배(2241, AC.1575-1578, 창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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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b1ZzcH8z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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