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씨 이야기

 

이지선 씨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이던 2000년 7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다가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 중화상을 입었다. 3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과 재활치료를 이겨낸 이씨는 그후 보스턴 대학 재활상담 석사, 컬럼비아 대학 사회복지 석사, 캘리포니아대(UCLA)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고 2017년 3월부터 한동대 교수가 되었다. 아래는 화상을 입어 수술과 재활치료 후 이씨가 남긴 말이다.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 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 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 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 게 낫다라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그런 생각은, 그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무런 희망 없이 길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하는 노숙자도, 평생을 코와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자라나는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신 이상 그의 생명은 충분히 귀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삶입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 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몸은 세상에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아픈 가슴은 오히려 축복의 자원이 되고 기막힌 통증으로 은혜를 알았다면, 그 통증은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하얀 가슴보다는, 하나님 모신 숯덩이 가슴이 낫고, 은혜를 모르는 편안하고 부유한 삶보다는 은혜를 먹고 사는 시련의 밤이 더 좋고, 기도를 모르는 궁궐보다는 기도를 배운 초막이 더 귀합니다.

 

고통 때문에 하나님 만난 것을 감사하고, 막힘 때문에 기도의 문이 열린 것을 감사하고, 잃어버림 때문에 믿음을 소유함에 감사하고, 날마다 힘겨운 삶 때문에 날마다 기막힌 은혜 주심에 감사하고, 은과 금이 넉넉치 못함에 예수 이름으로 부유함에 감사하고, 세상줄 끊어짐 때문에 천국 소망 얻었음에 감사하고, 못났음으로 위대하신 주님 바라봄으로 감사합시다.

 

지금 당장 죽을 일이 생겼어도 사방이 막혔어도 잠잠히 감사하며 기다리세요. 그러면 '인생여전'이 '인생역전'으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정득재목사.2021-04-16(D6), '이지선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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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LBORO'(말보로)

 

미국의 유수 공대에 다니는 어느 가난한 고학생이 우아하고 총명하게 생긴 지역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

 

여자 측 집안에선 둘을 갈라놓기 위해 여학생을 아주 먼 친척 집에 보내 버렸다.

 

남자는 그녀를 찾기 위해 몇 달을 헤매다녔다.

 

그러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녀 집 앞에서 해후를 하게 된다.

 

여자가 힘없이 말했다.

 

"나 내일 결혼해."

 

남자는 절망하여 말없이 있다가

 

"그럼 내가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 줄래?"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에 말아 피는 담배라서 몇 모금을 피니까 금새 다 타 버렸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여자는 눈인사로 집으로 돌아갔고 둘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에 그는 졸업하고 취직하여 세계 최초로 필터가 있는 담배를 개발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 여자가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는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검정색 벤츠를 타고 그녀를 찾아가 말했다.

 

"나 아직도 널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

 

여자는 망설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남자는 다음날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이다.

 

남자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 깜짝 놀란 건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그녀의 싸늘한 시신뿐이었다.

 

유서 지에는 아무 내용이 없었는데 아랫 쪽 우측 하단에 조그마한 글씨로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 고마워'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에 남자는 자기가 경영하는 담배회사의 필터담배에 'MARLBORO'(말보로)란 브랜드를 붙였다.

 

날개 달린 듯 팔리기 시작했다.

 

억만장자가 된 후에도 그녀를 잊지 못해 눈이 오는 날에는 하얀 꽃을 들고 그녀의 산소를 보살핀다.

 

'MARLBORO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사랑을 기억한다)의 이니셜이다.

 

 

[ 오늘의 한마디 ]

 

멀리 있다 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가까이 있다 해서 소홀하지 마세요.

 

 

정득재목사.2021-04-16(D6), ''MARLBORO'(말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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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의 ‘Azwie’(아즈위, 희망)

 

 

🌺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절해의 고도 루벤(Lubben) 섬 감옥으로 투옥된 사람이 있었다. 감옥은 두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도 없었다.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를 감방 구석에 변기로 던져 주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허락되었다. 간수들은 걸핏하면 끌어다가 고문하고 짓밟고 폭력을 가했다.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 그가 감옥에 끌려간 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땅으로 쫓겨났다. 감옥살이 4년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이듬해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감옥살이 14년이 되던 해에 큰딸이 결혼해서, 아기를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면회를 왔다. 큰딸이 말했다. “아버지! 아기 이름을 지어주세요.”

 

🌺 아버지는 말없이 땟물이 찌든 윗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꾸겨진 종잇조각을 꺼내 딸에게 건네주었다. 딸은 종잇조각에 쓰인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만델라 고향의 언어로, "아즈위!"(Azwie, 희망) 그는 그 후 온갖 치욕을 다 당하면서 13년간이나 옥살이를 더 했다. 1964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27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풀려났다.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것이다.

 

🌺 그는 남아공 흑백 분리 정책을 철폐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기를 박해하고 치욕을 주었던 정적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고고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은 인간의 품격을 한 계단 올려놓은 사람이라고 존경했다. 이가 바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 95세)다. 그 오랜 절망의 세월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 만델라는 대답했다. "나는 위대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아즈위(희망, 希望)를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지도자며, 희망을 주는 사람이 리더입니다. 오늘도 아즈위!(Azwie, 희망!)

 

 

✅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시편 71:5)

 

 

정득재목사.2021-04-15(D5), '넬슨 만델라의 ‘Azwie’(아즈위,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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