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4. 소생한 사람, 즉, 영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그에게 빛의 사용이 주어지고 나면, 앞서 말한 영적 천사들이 그 상태에서 그가 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서비스하며, 저 세상 삶에 관한 정보를 그에게 제공하되 그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After the use of light has been given to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so that he can look about him, the spiritual angels previously spoken of render him all the kindly services he can in that state desire, and give him information about the things of the other life, but only so far as he is able to receive it.

 

만일 그가 신앙 안에 있었고, 원한다면, 천사들은 그에게 원더풀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천국을 보여줍니다. If he has been in faith, and desires it, they show him the wonderful and magnificent things of heaven.

 

 

315. 그러나 만일 그 깨어난 사람, 즉, 영이 지도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그런 캐릭터라면, 그는 함께 있는 영들이 좀 가줬으면 하는데, 그러면 천사들은 그걸 즉시 알아차립니다. 저 세상에서는 모든 생각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기 때문입니다. But if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is not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willing to be instructed, he then desires to be rid of the company of the angels, which they exquisitely perceive, for in the other life there is a communication of all the ideas of thought.

 

그들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그들을 떠나갑니다. Still, they do not leave him even then, but he dissociates himself from them.

 

천사들은 모두를 사랑하며, 그를 친절히 도와 인도하여서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 말고는 무슨 원하는 게 없습니다. The angels love everyone, and desire nothing more than to render him kindly services, to instruct him, and to convey him to heaven.

 

그들은 이것을 가장 기뻐합니다. In this consists their highest delight.

 

 

316. 그 영이 그렇게 스스로 물러나면, 이번에는 선한 영들의 순서가 되는데,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그에게 모든 친절한 사무를 제공합니다. When the soul thus dissociates himself, he is received by good spirits, who likewise render him all kind offices while he is in their company.

 

그러나 그가 세상 살 때 모습이 이런 선한 영들하고 있는 것조차 불편한 그런 것이었다면, 그는 이번에도 이들 선한 영들이 어서 좀 가줬으면 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 또 반복, 결국 그가 세상 살 때 모습과 딱 맞는, 그래서 ‘완전 내 스타일이야!’ 싶은 영들을 만날 때까지 그에게 계속됩니다. If however his life in the world has been such that he cannot remain in the company of the good, he desires to be rid of these also, and this process is repeated again and again, until he associates himself with those who are in full agreement with his former life in the world, among whom he finds as it were his own life.

 

그때부터 그는 정말 놀랍게도 그가 몸 안에 있을 때 살던 그대로 그들 가운데서 생활합니다. And then, wonderful to say, he leads with them a life like that which he had lived when in the body.

 

이런 생활 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는 그는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일부는 오래, 일부는 짧게 이곳에 머물다가들 지옥으로 전달됩니다. 반면, 주님 신앙 가운데 있었던 영들은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천국으로 인도됩니다. But after sinking back into such a life, he makes a new beginning of life; and some after a longer time, some after a shorter, are from this borne on toward hell; but such as have been in faith toward the Lord are from that new beginning of life led step by step toward heaven.

 

 

317. 그러나 일부는 아주 천천히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또 어떤 영들은 아주 빨리 나아갑니다. Some however advance more slowly toward heaven, and others more quickly.

 

저는 사후 즉시 천국으로 올려지는 영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허락하심으로 두 가지 케이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I have seen some who were elevated to heaven immediately after death, of which I am permitted to mention only two instances.

 

 

318. 어떤 영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몇 가지 점에서, 그는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음이 분명했습니다. A certain spirit came and discoursed with me, who, as was evident from certain signs, had only lately died.

 

처음에 그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저 세상에 와 있고, 자기는 더 이상 세상 살 때 소유했던 집, 부(富) 같은 것들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른 나라에 있고, 그래서 세상 살 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박탈당했음을 알고, 근심에 쌓여 어디로 가야 할지, 지낼 곳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At first he knew not where he was, supposing himself still to be in the world; but when he became conscious that he was in the other life, and that he no longer possessed anything, such as house, wealth, and the like, being in another kingdom, where he was deprived of all he had possessed in the world, he was seized with anxiety, and knew not where to betake himself, or whither to go for a place of abode.

 

그때 그는 오직 주님이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과, 그는 세상 살 때처럼 혼자 자유롭게 생각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He was then informed that the Lord alone provides for him and for all; and was left to himself, that his thoughts might take their wonted direction, as in the world.

 

그는 이제 생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사후 세계에서는 모든 이의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이렇게 제가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근심 중에 그는 심장 지역에 속한 어떤 천적 영들의 교제권 속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들은 그가 원하는 것에 모든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He now considered (for in the other life the thoughts of all may be plainly perceived) what he must do, being deprived of all means of subsistence; and while in this state of anxiety he was brought into association with some celestial spirits who belonged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who showed him every attention that he could desire.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체어리티 가운데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받은 이 엄청난 친절을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 이것을 보면, 그는 살아생전, 신앙의 체어리티로 살던 사람임이 틀림없었고, 그래서 그는 즉시, 천국으로 올려졌습니다. This being done, he was again left to himself, and began to think, from charity, how he might repay kindness so great, from which it was evident that while he had lived in the body he had been in the charity of faith, and he was therefore at once taken up into heaven.

 

 

319. 저는 또 다른 경우를 보았는데, 그는 즉시 천사들에 의해 천국으로 옮겨져 주님의 영접을 받고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약간 경과 후에 천국으로 옮겨지는 훨씬 더 많은 경우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I saw another also who was immediately translated into heaven by the angels, and was accepted by the Lord and shown the glory of heaven; not to mention much other experience respecting others who were conveyed to heaven after some lapse of time.

 

2021-05-14(D6)-창세기(창3 클로징, AC.314-319), '창3 클로징, 사후 영원한 삶을 시작하기 (3)'.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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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Mi2n0ajR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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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창3:24)

 

311. 홍수로 사라진 사람들의 저세상 상태는 이렇습니다. 그들은 영들의 세계 그 어디에서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영들과 함께 할 수도 없지요. 있을 데라고는 오직 지옥뿐인데, 그마저도 다른 어떤 지옥으로부터도 분리된, 어떤 산 아래인 것 같은 지옥에 있습니다. In the other life, the state of those who perished by the flood is such that they cannot be in the world of spirits, or with other spirits, but are in a hell separated from the hells of others, and as it were under a certain mountain.

 

이것은 그들의 무서운 판타지들과 설득들의 결과, 마치 중간에 가로막는 산처럼 나타납니다. This appears as an intervening mountain in consequence of their direful fantasies and persuasions.

 

그들의 판타지들과 설득들은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영들을 아주 중증(重症) 인사불성 상태에 이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게 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다른 영들에게서 진리에 대한 그들의 모든 이해력을 빼앗아 그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Their fantasies and persuasions are such as to produce so profound a stupor in other spirits that they do not know whether they are alive or dead, for they deprive them of all understanding of truth, so that they perceive nothing.

 

세상 살 동안의 그들의 설득 능력, 사람의 혼을 쏙 빼먹는 능력 또한 그랬습니다. 저 세상에서도 그들은 다른 영들을 일종의 죽음으로 이르게 하지 않고는 그들과 어울릴 수가 없는 자들임이 예견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소멸되었고, 저 세상에서도 저렇게 격리된 채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들과는 다른 상태들을 허락하셨습니다. Such also was their persuasive power during their abode in the world; and because it was foreseen that in the other life they would be incapable of associating with other spirits without inducing on them a kind of death, they all became extinct, and the Lord of his Divine mercy induced other states on those who lived after the flood.

 

 

312. 이 절에서, 이들 홍수 전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상태가 아주 충분히 설명되었습니다. 그들은 ‘쫓아내시고’, 혹은 천적 선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In this verse, the state of these antediluvians is fully described, in that they were “cast out,” or separated from celestial good, and in that “cherubim were placed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이 표현, 개역 성경 표현인 ‘에덴 동산 동쪽에’라는 표현 대신 아래 영어 성경을 원어 그대로 옮기면 ‘에덴 동산을 향하여(toward) 동쪽으로부터(from)’라는 표현은 그들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홍수 후 세대들에게는 쓸 수 없습니다. 만일 홍수 후 세대들에게 이 표현을 썼다면 ‘에덴 동산으로부터 동쪽을 향하여’라고 했을 것입니다. This expression,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is applicable only to them, and could not be used in relation to those who lived afterwards, of whom it would have been said, “from the garden of Eden toward the east.

 

마찬가지로, 말씀 ‘두루 도는 불 칼’, 즉, ‘스스로 도는 검의 화염’이라는 표현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쓰고자 하였다면, ‘스스로 도는 화염의 검’이라고 표현해야 했을 것입니다. In like manner, had the words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been applied to the people of the present day, they would have been “the sword of a flame turning itself.

 

뿐만 아니라, ‘생명 나무’, 즉, ‘생명들의 나무’ 역시 ‘생명의 나무’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설명이 불가능한, 오직 천사들에게만 이해되는 이런 일련의 다른 것들은 더 이상 말씀드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상태마다 무한한 아케이나가 들어 있으며, 그 중 단 한 개도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이걸 이해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이 이들에게는 계시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며, 이들은 그 계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내면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Nor would it have been said the “tree of lives,” but the “tree of life”; not to mention other things in the series that cannot possibly be explained, being understood only by the angels, to whom the Lord reveals them; for every state contains infinite arcana, not even one of which is known to men.

 

 

313. 여기서 말씀드리는 내용이 첫 사람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한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유전된 악은 그로 말미암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가정한 것입니다. From what is here said of the first man, it is evident that all the hereditary evil existing at the present day did not come from him, as is falsely supposed.

 

여기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太古, the most ancient) 교회이며, 이 교회를 ‘아담’이라 부를 때,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사람은 땅에서, 즉 ‘사람이 아닌 상태’(nonman)에서 시작,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For it is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s here treated of under the name of “man”; and when it is called “Adam,” it signifies that man was from the ground, or that from being nonman he became man by regeneration from the Lord.

 

이것이 그 이름, 곧 ‘사람’이라는 이름의 기원과 상징입니다. 유전악에 대해서는, 이 경우는 이렇습니다. 실제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로 인해 그 자신 안에 어떤 본성이 초래되며, 그로 인한 악이 그의 어린 시절에 심겨 유전되는 것입니다. This is the origin and signification of the name. But as to hereditary evil, the case is this. Everyone who commits actual sin thereby induces on himself a nature, and the evil from it is implanted in his children, and becomes hereditary.

 

그렇게 해서 모든 부모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그리고 가계를 따라 그들의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며, 그렇게 각 세대 후손들 안에서 배가하고 늘어납니다. 유전악은 각 사람 안에 남으며, 각자 실제 짓는 죄로 인해 증가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절대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저절로 소멸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It thus descends from every parent, from the father, grandfather, great-grandfather, and their ancestors in succession, and is thus multiplied and augmented in each descending posterity, remaining with each person, and being increased in each by his actual sins, and never being dissipated so as to become harmless except in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by the Lord.

 

모든 주의 깊게 관찰하시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진리임을 분명히 아십니다. 부모의 악한 경향은 자녀 안에 눈에 보이게 남아 한 가족, 심지어 그 가계 전체가 그로 인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말입니다. Every attentive observer may see evidence of this truth in the fact that the evil inclinations of parents remain visibly in their children, so that one family, and even an entire race, may be thereby distinguished from every other.

 

2021-05-12(D4)-창세기(창3,24, AC.311-313),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후손 이야기 (3)'.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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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창3:24)

 

 

309. ‘두루 도는 불 칼’이 비정상적인 탐욕들과 설득들을 동반한 자아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페이지들을 가득 채울 수도 있을 만큼 많은 인용구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에스겔에 나오는 몇 구절만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 ‘비정상적인 탐욕들과 설득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의 신비들을 추구하게 하지만, 사실은 육체적, 세속적인 것들에게 끌려 휩쓸려 버리고 말게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That by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is signified self-love with its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 which are such that they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ut are carried away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might be confirmed by so many passages from the Word as would fill pages; but we will cite only these from Ezekiel: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Prophesy and say, Thus saith Jehovah, Say a sword, a sword, it is sharpened, and also burnished to make a sore slaughter; it is sharpened that it may be as lightning. Let the sword be doubled the third time, the sword of his slain; the sword of a great slaughter,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that their heart may melt, and their offenses be multiplied, I have set the terror of the sword in all their gates. Alas! it is made as lightning. (겔21:9-10, 14-15)

 

여기 ‘’은 사람의 황량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이 선과 진리는 전혀 못 보고, 대신 ‘많이 엎드러지게 하다’로 표현한 거짓들과 잘못된 일들만 볼 뿐임을 상징합니다. A “sword” here signifies the desolation of man such that he sees nothing that is good and true, but mere falsities and things contrary, denoted by “multiplying offenses.

 

또 나훔에도 나오는데요, 거기 신앙의 신비들을 추구하는 자들을 가리켜,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라 하고 있습니다. It is also said in Nahum, of those who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The horseman mounting, and the flame of the sword, and the flash of the spear, and a multitude of the slain. (나3: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나3:3)

 

 

310. 이 구절 각각의 표현들에는 가장 깊은 의미들을 가진 아케이나가 너무나 많아 그걸 다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아케이나에 들어있는 것들은 홍수로 사라진 지금 이 사람들의 천성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홍수 후 살았던 사람들의 천성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Each particular expression in this verse involves so many arcana of deepest import (applicable to the genius of this people who perished by the flood, a genius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those who lived subsequent to the flood), that it is impossible to set them forth.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간략히 보겠습니다. 그들의 첫 부모 세대는 태고 교회를 형성한 세대로서, 천인(天人)들이었고, 그 결과, 그들 안에 심긴 천적(天的)인 씨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은 천적 기원을 가진 씨를 자기들 안에 가졌습니다. We will briefly observe that their first parents, who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celestial men, and consequently had celestial seeds implanted in them; whence their descendants had seed in them from a celestial origin.

 

천적 기원을 가진 씨는 사랑이 온 마음을 다스리며, 하나로 만드는 그런 것입니다. Seed from a celestial origin is such that love rules the whole mind and makes it a one.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의지와 이해력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방금 ‘하나로 만든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즉, 이 두 가지가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For the human mind consists of two parts,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사랑 혹은 선은 의지에, 신앙 혹은 진리는 이해력에 각각 속합니다. 태고 교회 사람들은 사랑 혹은 선을 가지고 무엇이 신앙 혹은 진리에 속하는지를 지각하였으며,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Love or good belongs to the will, faith or truth to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or good those most ancient people perceived what belongs to faith or truth, so that their mind was a one.

 

이런 인류의 후손이기 때문에, 동일한 천적 기원을 가진 씨가 필연적으로 남게 됩니다. 진리와 선이 각각 자기 쪽, 곧 진리는 진리 쪽에서, 선은 선 쪽에서 조금씩이라도 떨어져 나가는 것은 가장 끔찍한 경우인데요, 그렇게 되면 그들의 온 마음이 너무나 왜곡되어 저 세상에서 도저히 회복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With the posterity of such a race, seed of the same celestial origin necessarily remains, so that any falling away from truth and good on their part is most perilous, since their whole mind becomes so perverted as to render a restoration in the other life scarcely possible.

 

한편, 천적인 씨 대신 영적인 씨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홍수 후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오늘날 사람들도 해당합니다. It is otherwise with those who do not possess celestial but only spiritual seed, as did the people after the flood, and as also do the people of the present day.

 

이들에겐 사랑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선한 의지도 없지요. 그러나 신앙, 혹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은 여전히 있습니다. 이 능력으로, 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체어리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즉,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에 기반, 주님으로 말미암은 양심의 암시라는 방식, 즉, 이런 양심을 주님이 은근히 사람들 속으로 주입하시는 방식이지만 말입니다. There is no love in these, consequently no will of good, but still there is a capability of faith, or understanding of truth, by means of which they can be brought to some degree of charity, although by a different way, namely, by the insinuation of conscience from the Lord grounded in the knowledges of truth and the derivative good.

 

그들의 상태는 그래서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와 아주 다릅니다. 그 상태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후 다루겠습니다. Their state is therefore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the antediluvians, concerning which stat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현 세대에게는 정말 낯선 아케이나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아무도 천인이 무엇인지, 심지어 영인 조차 아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 사람의 마음과 생명의 퀄러티에 대해서조차 아는 바가 없고, 최종 결과인 사후 상태에 대해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These are arcana with which the present generation are utterly unacquainted, for at the present day none know what the celestial man is nor even what the spiritual man is, and still less what is the quality of the human mind and life thence resulting, and the consequent state after death.

 

2021-05-11(D3)-창세기(창3,24, AC.309-310),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후손 이야기 (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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