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창4:2)

 

 

341. 교회의 두 번째 자녀는, ‘아우’, ‘아벨’로 상징된 체어리티입니다; ‘양 치는 자’가 가리키는 것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고; ‘농사하는 자’는 체어리티가 전혀 없는, 하지만 신앙은 신봉 수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사람의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 이런 건 아예 신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신앙입니다.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s charity, signified by “Abel” and “brother”; a “shepherd of the flock” denotes one who exercises the good of charity; and a “tiller of the ground,” is one who is devoid of charity, however much he may be in faith separated from love, which is no faith.

 

 

342. 교회의 두 번째 자녀가 체어리티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합니다. 즉, 교회는 신앙과 체어리티 말고는 잉태하고 해산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That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s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church conceives and brings forth nothing else than faith and charity.

 

레아가 야곱에게서 낳은 첫 자녀들 역시 같은 것을 상징합니다; ‘르우벤’은 신앙을; ‘시므온’은 행하는 신앙을; 그리고 ‘레위’는 체어리티를 각각 가리키며, 이런 이유로, 레위 지파는 제사장직을 받아 ‘양 치는 자’임을 나타냈습니다. The same is signified by the first children of Leah from Jacob; “Reuben” denoting faith; “Simeon,” faith in act; and “Levi,” charity (Gen. 29:32, 33, 34), wherefore also the tribe of Levi received the priesthood, and represented the “shepherd of the flock.

 

32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창29:32-34)

 

체어리티가 교회의 두 번째 자녀이므로, 부르기를, ‘아우’라 하고, 이름하여 ‘아벨’이라 하는 것입니다. As charity is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t is called “brother,” and is named “Abel.

 

 

343. ‘양 치는 자’는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자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데요, 이것은 신구약 말씀에 나오는 하나의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That a “shepherd of the flock” is one who exercises the good of charity, must be obvious to everyone, for this is a familiar figure in the Word of both Old and New Testaments.

 

인도하고 가르치는 자를 ‘목자’라 하고, 인도를 받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양 떼’라 합니다. He who leads and teaches is called a “shepherd,” and those who are led and taught are called the “flock.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도,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지도 않는 자는 참 목자가 아니며, 선으로 인도함을 받지도, 선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는 자는 양 떼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He who does not lead to the good of charity and teach it, is not a true shepherd; and he who is not led to good, and does not learn what is good, is not of the flock.

 

굳이 말씀에서 무슨 구절들을 대대적으로 인용하면서까지 ‘목자’와 ‘양 떼’가 상징하는 것을 확실히 하려고 애쓸 필요는 거의 없습니다. 다음 몇 구절들 정도면 되지 싶습니다. It is scarcely necessary to confirm this signification of “shepherd” and “flock” by quotations from the Word; but the following passages may be cited.

 

이사야에서: In Isaiah: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The Lord shall give th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owest the ground, and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in that day shall he feed thy cattle in a broad meadow, (사30:23)

 

여기,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 체어리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where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denotes charity.

 

계속해서: Again: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The Lord Jehovih shall feed his flock like a shepherd; he shall gather the lambs into his arm, and carry them in his bosom, and shall gently lead those that are with young. (사40:11)

 

시편에서: In David: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Give ear, O Shepherd of Israel, thou that leadest Joseph like a flock; thou that sittest on the cherubim, shine forth. (시80:1)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I have likened the daughter of Zion to a comely and delicate woman; the shepherds and their flocks shall come unto her, they shall pitch tents near her round about, they shall feed everyone his own space. (렘6:2, 3)

 

에스겔에서: In Ezekiel:

 

3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ih, I will multiply them as a flock of man, as a hallowed flock, as the flock of Jerusalem in her appointed times; so shall the waste cities be filled with the flock of man. (겔36:37–38)

 

이사야에서: In Isaiah: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All the flocks of Arabia shall be gathered together unto thee, the rams of Nebaioth shall minister unto thee. (사60:7)

 

양 떼를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양 떼를 모으는’ 자들인 반면, 양 떼를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 않는 자들은 ‘양 떼를 흩는’ 자들입니다. 모두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체어리티의 일이요, 모두를 흩어 하나가 되지 못 하게 하는 것은 체어리티가 결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They who lead the flock to the good of charity are they who “gather the flock”; but they who do not lead them to the good of charity “scatter the flock”; for all gathering together and union are of charity, and all dispersion and disunion are from want of charity.

 

 

344. 신앙, 즉, 기억-지식 [스키엔티아], 지식 [코그니시오], 그리고 신앙의 교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고 있을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이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What avails faith, that is, the memory-knowledge [scientia], the knowledge [cognitio], and the doctrine of faith, but that the man may become such as faith teaches? And the primary thing that it teaches is charity. (Mark 12:28-35; Matt. 22:34-39)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12:28-35)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4-39)

 

이것이 모든 신앙의 최종목표이며, 만일 이게 안 되면, 모든 지식이나 교리는 한낱 빈껍데기에 다름 아니지 않겠습니까? This is the end of all it has in view, and if this be not attained, what is all knowledge or doctrine but a mere empty nothing?

 

 

345. ‘‘농사하는 자’는 체어리티가 전혀 없는, 하지만 신앙은 신봉 수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사람의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 이런 건 아예 신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신앙입니다.’ 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가인의 제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가 그의 동생을 죽인 것, 즉, ‘아벨’로 상징된 체어리티를 파괴한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tiller of the ground” is one who is devoid of charity, however much he may be in faith separated from love, which is no faith, is evident from what follows: that Jehovah had no respect to his offering, and that he slew his brother, that is, destroyed charity, signified by “Abel.

 

땅을 간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육(肉)적, 세속적인 것들에 시선을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창세기 3장 19절과 23절에,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ose were said to “till the ground” who look to bodily and earthly things, as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in Gen. 3:19, 23, where we read that the man was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3:19, 23)

 

2021-05-19(D4)-창세기(창4,2, AC.341-345), '아벨, 양 치는 자, 농사하는 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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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Raf-IUze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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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창4:1)

 

 

338.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태고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 첫 자식, 처음 난 자녀가 신앙이며, 여기서는 ‘가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가 상징하는 것은, ‘가인’이라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을,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 사랑)와 별개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By the “man and Eve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as has been made known; its first offspring, or firstborn, is faith, which is here called “Cain”; her saying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ies that with those called “Cain,” faith wa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339. 앞선 세 장에서, 지금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충분히 보여드렸던 것은, ‘아담과 그의 아내’가 태고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하면서 이제 분명한 것은, 이 태고 교회의 영향을 받은 임신 및 출생이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온 본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In the three foregoing chapters it has been sufficiently shown that by the “man and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so that it cannot be doubted, and this being admitted, it is evident that the conception and the birth effected by that church were of the nature we have indicated.

 

이름을 주고, 이름을 가지고 사물을 상징하고, 그런 식으로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는 것은, 태고인들에게는 하나의 관례였습니다. It was customary with the most ancient people to give names, and by names to signify things, and thus frame a genealogy.

 

태고 교회와 관계된 것들도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대대로 하나는 잉태하고, 다른 하나는 해산하고 하였습니다. For the things of the church are related to each other in this way, one being conceived and born of another, as in generation.

 

그래서 말씀에서 교회와 관계된 것들을 일컬어, ‘잉태’, ‘해산’, ‘자녀’, ‘유아’, ‘어린이’, ‘아들’, ‘’, ‘젊은이’ 등으로 부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Hence it is common in the Word to call things of the church “conceptions,” “births,” “offspring,” “infants,” “little ones,” “sons,” “daughters,” “young men,” and so on.

 

말씀 중 예언서들에서 이런 표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The prophetical parts of the Word abound in such expressions.

 

 

340. 본문,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의 상징이, ‘가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을 체어리티와 별개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음이라는 것은, 이 장을 처음 시작할 때 드린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words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y that with such as are called “Cain” faith i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t the beginning of this chapter.

 

전에, 그들은 신앙이 무엇인지에 관해 무지한 듯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퍼셉션이라는 것으로 신앙의 모든 것을 지각했기 때문입니다. Previously, they had been as it were ignorant of what faith is, because they had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of faith.

 

그러나 그들이 신앙의 교리를 뚜렷이 구분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퍼셉션으로 알던 것들을 가져다가 교리화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전에는 심비(心碑)에 저절로 새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But when they began to make a distinct doctrine of faith, they took the things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reduced them into doctrine, calling it “I have gotten a man, Jehovah,” as if they had found out something new; and thus what was before inscribed on the heart became a mere matter of knowing.

 

고대에 그들은 모든 새로운 것에 어떤 이름을 주었고, 이런 식으로 그 이름들에 들어있는 것들을 설명했습니다. In ancient times they gave every new thing a name, and in this way set forth the things involved in the names.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그녀의 고통을 들으셨다’(창16:11)를 상징하며, Thus the signification of the name Ishmael is explained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her affliction; (창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16:11)

 

르우벤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창29:32)를, that of Reuben, by the expression, “Jehovah hath looked upon my affliction; (창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9:32)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다’(창29:33), the name Simeon,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that I was less dear; (창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29:33)

 

유다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29:35)를, and that of Judah by, “This time will I praise Jehovah; (창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29:35)

 

그리고 모세가 세운 제단을 가리켜 ‘여호와 닛시’(출17:15), 곧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 하였습니다. and an altar built by Moses was called, “Jehovah my banner. (출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17:15)

 

이런 식으로 여기 신앙의 교리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또는 ‘가인’이라 명명한 것입니다. In like manner the doctrine of faith is here denominated “I have gotten a man, Jehovah,” or “Cain.

 

2021-05-18(D3)-창세기(창4,1, AC.338-34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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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v6vQvx61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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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뜻

THE INTERNAL SENSE

 

 

337. 이번 장이 태고 교회의 퇴보, 또는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그 이단들과 종파들을 가인과 그 후손들의 이름들 아래 다루고 있는 까닭에, 참된 교회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교회의 이단들과 종파들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this chapter treats of the degener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falsification of its doctrine, and consequently of its heresies and sects, under the names of Cain and his descendants,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how doctrine was falsified, or what was the nature of the heresies and sects of that church, unless the nature of the true church be rightly understood.

 

태고 교회는 천인(天人, a celestial man)이었으며,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 외 다른 신앙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교회였음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Enough has been said above concerning the most ancient church, showing that it was a celestial man, and that it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was of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이 사랑으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 혹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하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번, 203번 글 참조) Through this love they had faith from the Lord, or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that belonged to faith,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unwilling to mention faith, lest it should be separated from love, as was shown above. (n. 200, 203)

 

[2] 이런 사람이 바로 천인이며, 시편에서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일컬어 왕이라, 천인을 일컬어 왕의 아들이라 하고 있지요. Such is the celestial man, and such he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in David, where the Lord is spoken of as the king, and the celestial man as the king’s son: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시72:1, 3, 5, 7)

 

여기서 ‘’는 사랑을 상징하며, ‘’은 신앙을, ‘산들’과 ‘작은 산들’은 태고 교회를, ‘대대로’는 홍수 후에 일어난 교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보면,) By the “sun” is signified love; by the “moon,” faith; by “mountains” and “hills,”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of generations,”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until there be no moon” is said because faith shall be love. (See also what is said in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3] 이런 교회가 태고 교회였고, 이런 교회가 그들의 교리였습니다. Su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and such was its doctrine.

 

그러나 이것은 지금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체어리티는 신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체어리티가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But the case is far different at this day, for now faith takes precedence over charity, but still through faith charity is given by the Lord, and then charity becomes the principal.

 

고대 교리 왜곡의 시작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해 냈을 때부터라는 것을 이런 사실, 곧 태고 교회의 본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follows from this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doctrine was falsified when they made confession of faith, and thus separated it from love.

 

이런 식으로 교리를 왜곡하거나,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내거나, 그냥 신앙만 고백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가인’이라고 부른 것이며,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Those who falsified doctrine in this way, or separated faith from love, or made confession of faith alone, were then called “Cain”; and such a thing was then regarded as an enormity.

 

2021-05-17(D2)-창세기(창4, AC.337), '창4 이해를 위한 배경, 참된 교회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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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Q__1bxAh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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