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

 

460. 이 장은 특별히 거의 홍수 전까지 죽 이어진 세대들을 통해 태고교회가 퍼져나간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61. 태고교회 자체는,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는데, ‘사람’(아담, man, [homo])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일컬음을 받는 교회입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verse 1)

 

※ 천적이라 함, 곧 어떤 사람을 가리켜 천적 인간이다, 어떤 천사를 가리켜 천적 천사다 하는 것은, 그를 다스리는 주된 동기가 사랑인 사람이나 천사를 말합니다. 사랑, 선, 가슴 및 의지 등은 모두 천적 특성들이고, 반면, 신앙, 진리, 머리 및 이해력 등은 영적 특성들입니다. 주님은 천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의지 안으로 직접 들어가시지만, 영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이해력(understanding)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들어가십니다.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62. 태고교회처럼 그렇게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 여기 3절의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은 그 아담이 아니라, ‘셋’의 부모 교회인 ‘아다와 씰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속뜻이며, 말씀에서 이런 반복이 나올 때는 무슨 다른 상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얼핏 2장에서 또 한 번 반복되는 그런 경우인데,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영적 사람의 거듭남을, 2장의 창조는 천적 사람의 거듭남을 각각 가리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아담(homo)과 그의 아내’라는 표현은 지금 보고 있는 교회의 부모 교회를 상징하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해서, 이 3절의 아담은 4장 1절의 그 아담과 하와가 아닌, 바로 ‘아다와 씰라’를 가리킨다 보는 것입니다.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463. 세 번째 교회는 ‘에노스’(6절)라는 이름으로, 네 번째는 ‘게난’(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12절), 여섯 번째는 ‘야렛’(15절), 일곱 번째는 ‘에녹’(18절), 그리고 여덟 번째는 ‘므두셀라’(21절)로 각각 불렀습니다. A third church was called “Enosh” (verse 6); a fourth “Kenan” (verse 9); a fifth “Mahalalel” (verse 12); a sixth “Jared” (verse 15); a seventh “Enoch” (verse 18); and an eighth church “Methuselah” (verse 21).

 

※ 여기 나오는 ‘날’과 ‘해’, ‘자녀들’ 및 ‘몇 세를 살고’ 하는 표현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날’(日, days)은 일반적으로, ‘해’(年, years)는 구체적으로, 각각 때와 상태를 상징하며, ‘자녀’(sons and daughters)는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을 상징합니다. 또한 ‘팔백 년’, ‘구백삼십 세’ 같은 표현들의 아케이나는 해당 교회의 수많은 상태 변화들을 의미하는데, 그 수가 아주 크다는 뜻입니다. 이런 큰 수의 속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1’에서 ‘12’까지 기본적인 수에 대한 아케이나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하여튼 여기 나오는 이런 큰 수들은 해당 교회들에게 있었던 수많은 상태와 그 변화들을 상징하는 것이지 우리가 알던 겉뜻대로, 어느 한 개인의 실제 수명이 그렇게 천 년 가까이 오래 살았다는 그런 뜻이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464. ‘에녹’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지각된 것들로부터 골격이 짜여진 교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고 대신 후손들의 사용을 위해 보전되었습니다. The church called “Enoch” is described as framing doctrine from what was revealed to and perceived by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doctrine, although of no use at that time, was preserved for the use of posterity.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2-24절) This is signified by its being said that “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verses 22–24)

 

※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에녹은 그때까지 계시되고, 지각된 태고교회의 교리 혹은 신학, 가르침들을 가지고 일종의 조직신학처럼 다듬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앞서 시대를 뛰어넘은 것이었던지 이때는 쓰임을 받지 못하고 후대를 위해, 사실은 홍수 후 세대이지요, 나중 세대를 위해 따로 보관하신 것이며,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에녹은 일종의 리메인스, ‘남은 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465. 아홉 번째 교회는 ‘라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466. 열 번째 교회, 이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로서, 이름하여 ‘노아’라 하였습니다.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28-29절)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태고교회(아담교회, 아담에서 홍수 전까지), 고대교회(노아교회, 홍수 후부터 모세까지), 이스라엘교회(모세에서 주님 초림 때까지), 기독교회(주님 승천 후 재림 때까지), 끝으로 주님 오셔서 시작하실 새 교회(새로운 기독교회)가 있습니다.

 

 

467. ‘라멕’은 태고교회가 즐겁게 누리던 퍼셉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로 그려지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 이 퍼셉션(perception, 지각)은 홍수 전과 후를 나누는 아주 중요한 인류의 특징인데요, 이게 있으면 태고교회, 이게 없으면 나머지 교회들입니다. 즉, 홍수 후에 일어난 모든 교회들은 이게 없으며, 대신 양심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 자체가 사실 불가능하며, 아무리 설명을 한들 현생 인류는 못 깨달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퍼셉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내적 호흡(internal respiration)인데, 설명 불가, 천사들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홍수 전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선물을 기본적으로 타고나던 사람들, 인류였습니다.

 

 

468. 이전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들을 볼 때 분명한 것은, 이름은 이교(異敎, heresy)나 교리(敎理, doctrine)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들, 곧 현 맥락에서는 태고교회로부터 바로 이 ‘노아’ 때까지, 변화를 겪으며 내려오면서도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부른 것입니다.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 ‘남은 자’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 혹은 ‘중간에’, ‘땅에’ 있다고도 합니다.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 안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나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기 때문입니다.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은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사람은 죽게 됩니다.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로 상징된 사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 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보통,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사4:3-4)

 

위 구절에서 남은 자들을 거룩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교회의 리메인스와, 또 교회에 속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 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다시 Again: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사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렘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미5:7)

 

[4] 한 사람 혹은 한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 분의 일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 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십’(10)은 리메인스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사6:12-13)

 

여기 남아 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아모스에서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암5:3)

 

이들과 다른 많은 구절들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고 있는 ‘리메인스’가 속뜻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한 도시가 그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이 들은 내용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창18:32)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532. ‘라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황폐해진 교회를 상징합니다. By “Lamec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the church vastated.

 

‘자녀들’은 그와 같은 교회를 계속해서 잉태 및 해산하였음을 상징합니다. (30-31절)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such a church. (verses 30-31)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534. ‘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敎會,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By “Noa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셈, 함, 야벳’은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32절) By “Shem, Ham, and Japheth” are signified three ancient churches, the parent of which was the ancient church called “Noah.” (verse 32)

 

 

535. ‘노아’라는 교회는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 중 하나로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2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That the church called “Noah” is not to be numbered among the churches that were before the flood, appears from verse 29, where it is said that it should “comfort them from their work and the toil of thei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안위하다, 위로하다’는 것은 살아남아 견디는 것입니다. The “comfort” was that it should survive and endure.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But concerning Noah and his son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536. 선행 페이지들에서, 홍수 전에 존재한 교회들에게 소유되었던 퍼셉션에 관한 많은 내용을 말씀드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은 퍼셉션에 관해 전혀 알려진 바 없어 어떤 사람들은 퍼셉션을 일종의 계시의 지속으로, 혹은 사람들 안에 심긴 어떤 것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상상일 뿐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걸로 등 이렇게 온갖 의견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리고 퍼셉션은 주님이 사랑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천적인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광범위한 천국 전체의 끝없는 다양성 안에는 이 퍼셉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등, 이런 여러 이유로, 사람들 안에 퍼셉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수많은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의 주된 종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As in the foregoing pages much has been said about the perception possessed by the churches that existed before the flood, and as at this day perception is a thing utterly unknown, so much so that some may imagine it to be a kind of continuous revelation, or to be something implanted in men; others that it is merely imaginary, and others other things; and as perception is the very celestial itself given by the Lord to those who are in the faith of love, and as there is perception in the universal heaven of endless variety: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ay be among men some conception of what perception is, of the Lord’s Divine mercy I may in the following pages describe the principal kinds of perception that exist in the heavens.

2021-09-02(D5)-매일예배(2181, 아케이나말씀리딩.창5), '아담의 계보, 에녹, 하나님과 동행, 노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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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a8R-fVJw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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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4

 

324.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리들, 이단이라고도 하는 교리들을 여기서 다루며, ‘에노스’라고 하는, 나중에 새롭게 일어난 교회도 다룹니다. Doctrines separated from the church, or heresies, are here treated of; and a new church that was afterwards raised up, called “Enosh.

 

※ 여기 언급되는 헤로시(heresies), 즉, 이단은 ‘태고교회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한 종교적 입장들(positions)’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25. 태고교회는 사랑을 통한 주님 신앙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 but there arose some who separated faith from love.

 

※ 사랑 따로, 신앙 따로,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신앙하는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 태고교회는 원래 주님 사랑, 주님 신앙이 퍼셉션(perception, 지각, 영적 통찰력)을 통해 그들 심비(心碑)에 직접 새겨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해의 열과 빛이 하나로 융합되어 만물에게 지각되듯 그들에게는 사랑과 신앙이 별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신앙을 따로 떼어내는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신앙은 하는 ‘가인’이라는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교리요, 가르침이요, 신학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이며, 마치 자기들이 무슨 새로운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것인 양 말한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로 융합, 결합된 것이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들의 선조는 그냥 알고 누리던 ‘신앙’이라는 것을 이들은 이제 학습을 하고, 땀 흘려 배워야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가인’이라,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 사랑)를 ‘아벨’이라 각각 이름하였습니다. (1-2절) The doctrine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was called “Cain”; and charity, which is love toward the neighbor, was called “Abel.” (verses 1–2)

 

※ 교리(doctrine)에 대한 다른 번역은 가르침(teaching), 신학(theology) 정도가 좋겠습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창세기 1장부터 11장, 아브라함 등장 전까지는 실제 역사가 아닌, 고대인들의 문학 양식인 스토리텔링입니다. 즉, 이 기간 등장하는 인명(人名)은 실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닌, 그 시대에 존재했던 교회의 이름, 교리 혹은 신학의 이름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사람을 거듭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 저는 현재까지 밝혀진 지질학적 지구의 연대인 45억 년을 받아들입니다. 즉, 말씀(The Word)을 겉 글자의 뜻(letter sense, external sense)이 아닌, 속뜻(inner sense, internal sense)으로 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창세기 1장도 전통적인 육일간의 천지창조로 읽기보다는 한 사람의 거듭남의 여섯 상태, 또는 단계로 읽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쩌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가 이 45억 년 전체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구의 연대를 꼭 말씀에 명시적으로 일대일 대응시키실 필요를 느끼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인류의 구원, 곧 사람의 거듭남에만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326. 각각의 예배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인의 제사’로,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아벨의 제사’로 각각 표현하였습니다. (3-4절) The worship of each is described, that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by the “offering of Cain”; and that of charity, by the “offering of Abel.” (verses 3–4)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있었으나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4-5절) That worship from charity was acceptable, but not worship from separated faith. (verses 4–5)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327.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은 악한 상태가 되었는데요, 이걸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5-6절) That the state of those who were of separated faith became evil, is described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 (verses 5–6)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328. 체어리티를 보면 그 신앙의 퀄러티(quality, 質)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합니다. 만일 신앙이 주(主)가 되려 하거나, 체어리티 위에 올라 높아지려고 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7절) And that the quality of the faith is known from the charity; and that charity wishes to be with faith, if faith is not made the principal, and is not exalted above charity. (verse 7)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29. 신앙을 분리하여 체어리티보다 앞세우는 사람들로 인해 체어리티가 사라지게 되는데, 이것을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로 표현한 것입니다. (8-9절) That charity was extinguished in those who separated faith, and set it before charity, is described by “Cain slaying his brother Abel.” (verses 8–9)

 

※ 체어리티에서 신앙을 떼어낸 후, 신앙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체어리티는 흔적도 없이 씻겨 사라집니다.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330. 사라진 체어리티를 ‘핏소리’로 (10절), 왜곡된 교리를 ‘땅에서 저주를’로 (11절), 거기에서 나오는 악과 거짓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로 (12절)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verse 10);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verse 11);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verse 12)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그리고 그들은 자원하여 주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라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13-14절)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verses 13–14)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그러나 나중에 체어리티가 심기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주님은 신앙을 불가침의 것이 되게 하시며, 이것을 ‘가인에게 표를 주사’로 상징하신 것입니다. (15절)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verse 15)

 

※ 가인은 일종의 남은 자, 리메인스입니다. 홍수 후 인류에게는 홍수 전 인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님과 인류가 연결되는데요, 그때 쓰시기 위해 비록 가인 같은 신앙일지라도 주님은 보호하시며, 보전하시는 것입니다. 홍수 후 인류는, 홍수 전 인류와 달리 먼저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을 통해 체어리티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홍수 전 사람들, 특히 태고교회, 아담교회 사람들은 주님 사랑의 삶, 체어리티의 삶을 타고날 수 있었고,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생소해했습니다.

 

※ 가인에게 표를 주셨다는 것을 무슨 눈에 보이는 특별한 표를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단순히 주님의 방법으로 그를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그리고 이전 입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가리켜 ‘에덴 동쪽을 향하여 거주하는 가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16절)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verse 16)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331. 이 이단의 엄청난 확장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고 있습니다. (17절)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is called “Enoch.” (verse 17)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332. 이 에녹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난 이단들 역시 자기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그 끝에 라멕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라멕이라는 이단은 신앙이라는 게 전혀 없는 이단이었습니다. (18절) The heresies that sprang from this one are also called by their names, in the last of which, called Lamech, there was nothing of faith remaining. (verse 18)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333.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의 의미는 그때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새롭게 일어난 교회를 그들의 아들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교회의 천적인 것들을 ‘야발’로, 영적인 것들을 ‘유발’로, 그리고 자연적인 것들을 ‘두발가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22절) A new church then arose, which is meant by “Adah and Zillah,” and is described by their sons “Jabal,” “Jubal,” and “Tubal￾Cain”; the celestial things of the church by “Jabal,” the spiritual by “Jubal,” and the natural by “Tubal-Cain.” (verses 19–22)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334. 신앙과 체어리티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일어난 이 교회, 그리고 이것에 가해졌던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폭력으로, 주님이 표를 주시면서까지 정하신 가장 신성한 금지가 가장 심각하게 더럽혀졌습니다. (23-24절) That this church arose when everything of faith and charity was extinguished, and had violence done to it, which was in the highest degree sacrilegious, is described. (verses 23–24)

 

※ 주님이 가인에게 표를 주시면서까지 그를, 곧 신앙을 보호하신 것은, 이것으로 나중에 인류를 구원하셔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걸 건드리는 것은, 마치 이듬해 쓸 종자를 건드리는 것이어서 주님이 특별히 구별하시고, 금하신 것인데, 라멕이라는 이단 끝판왕에 이르러 이마저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는 이를 미리 아시고, 이때를 대비, 아다와 씰라를 일으키십니다. 항상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eth; for God hath appointed me another seed instead of Abel; for Cain slew him.

 

335. 요약입니다. ‘가인’으로 상징되는 신앙 이후 체어리티가 사라졌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앙이 일어났고, 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체어리티가 새롭게 심기게 되었습니다. 이 신앙을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25절) A summary of the subject is given: that after faith, signified by “Cain,” had extinguished charity, a new faith was given by the Lord, whereby charity was implanted. This faith is called “Seth.” (verse 25)

 

※ 가인이라는 신앙은 사실 건강하지 못한 신앙, 바람직스럽지 못한 신앙, 사랑에서 자신을 떼어내 자발적으로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인류 구원의 종자로 쓰기에는 좀... 그런데 이렇게 온전히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신앙, 셋이라는 신앙이 일어났습니다. 인류 구원의 파노라마는 이 새로운 신앙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336. 신앙에 의해 이식된 체어리티를 이름하여 ‘에노스’, 또는 또 다른 ‘사람’(man, homo)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 교회의 이름입니다. (26절) The charity implanted by faith is called “Enosh,” or another “man” [homo], which is the name of that church. (verse 26)

 

 

337. 이번 장이 태고교회의 퇴보, 또는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그 이단들과 종파들을 가인과 그 후손들의 이름들 아래 다루고 있는 까닭에, 참된 교회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교회의 이단들과 종파들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this chapter treats of the degener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falsification of its doctrine, and consequently of its heresies and sects, under the names of Cain and his descendants,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how doctrine was falsified, or what was the nature of the heresies and sects of that church, unless the nature of the true church be rightly understood.

 

태고교회는 천인(天人, a celestial man)이었으며,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 외 다른 신앙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교회였음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Enough has been said above concerning the most ancient church, showing that it was a celestial man, and that it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was of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이 사랑으로 그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신앙, 혹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하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번, 203번 글 참조) Through this love they had faith from the Lord, or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that belonged to faith,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unwilling to mention faith, lest it should be separated from love, as was shown above. (n. 200, 203)

 

[2] 이런 사람이 바로 천인이며, 시편에서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일컬어 왕이라, 천인을 일컬어 왕의 아들이라 하고 있지요. Such is the celestial man, and such he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in David, where the Lord is spoken of as the king, and the celestial man as the king’s son: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시72:1, 3, 5, 7)

 

여기서 ‘해’는 사랑을 상징하며, ‘달’은 신앙을, ‘산들’과 ‘작은 산들’은 태고교회를, ‘대대로’는 홍수 후에 일어난 교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보면,)By the “sun” is signified love; by the “moon,” faith; by “mountains” and “hills,”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of generations,”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until there be no moon” is said because faith shall be love. (See also what is said in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3] 이런 교회가 태고교회였고, 이런 교회가 그들의 교리였습니다. Su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and such was its doctrine.

 

그러나 이것은 지금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체어리티는 신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체어리티가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But the case is far different at this day, for now faith takes precedence over charity, but still through faith charity is given by the Lord, and then charity becomes the principal.

 

고대에 있었던 교리 왜곡의 시작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해 냈을 때부터라는 것을 이런 사실, 곧 태고교회의 본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follows from this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doctrine was falsified when they made confession of faith, and thus separated it from love.

 

이런 식으로 교리를 왜곡하거나,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내거나, 그냥 신앙만 고백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가인’이라고 부른 것이며,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Those who falsified doctrine in this way, or separated faith from love, or made confession of faith alone, were then called “Cain”; and such a thing was then regarded as an enormity.

 

※ 여기 글 번호들은 스베덴보리 저, ‘Arcana Coelestia’의 글 번호들이며, 이 참고 표시 ‘※’는 역자의 보충 설명이라는 표시입니다. 이 표시 글들은 아래 영어문장이 없습니다.

2021-09-01(D4)-매일예배(2180, 아케이나말씀리딩.창4), '가인과 아벨, 라멕, 아다와 씰라, 셋, 에노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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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fQXlwcVxyw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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