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71.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Verse 12.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 기억-지식들이 천적 지식들을 볼 때, 그 모습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묘사입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signifie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hich is described as to what it is when they see celestial knowledges;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그 기억-지식들이 이르기를, 저 지식들은 천적이다 하리라는 뜻입니다.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signifies that they will call the knowledges celestial;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그들, 그 기억-지식들은 천적인 것들엔 관심이 없고, 대신 오직 단순한 지식들, 그들이 얻었으면 하는 지식들에만 관심을 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signifies that they would not care for the celestial things, but only for the mere knowledges, which they would carry off.

 

2021-09-30(D5)-매일예배(2202, AC.1471, 창12,12), '창12,12 브리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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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3ConurvJ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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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65. 11절,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Verse 11. And it came to pass, when he drew nigh to come into Egypt, that he said unto Sarai his wife, Behold I pray, I know that thou art a woman beautiful to look upon.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이 배우기 시작하셨을 때를 말합니다. ‘애굽’,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스키엔티아 코그니티오눔] 말합니다. And it came to pass, when he drew nigh to come into Egypt” signifies when he began to learn; “Egypt,” as before said, mean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scientia cognitionum];

 

※ 주님도 어린 시절, 여느 어린이들과 같이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겉 사람(the external man)은 지식이 아니고서는 속 사람(the internal man)과 상응하고 일치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겉 사람은 유형의 신체를 가진 감각적인 것입니다. 마치 땅에 심기듯 지식이 겉 사람 안에 심기지 않으면 겉 사람은 그 어떤 천적, 영적인 것도 받을 수 없지요. 즉, 이 지식은 천적인 것이 담기는 그릇입니다.

 

이 지식은 반드시 말씀에서 와야 합니다. 말씀에서 오는 지식은 주님 자신으로부터 열린, 즉, 이 지식을 통해서 주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지식이기 때문이며, 말씀 자체가 주님에게서 나와 천국을 두루 통하고, 주님의 생명이 말씀 안 모든 것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 시절, 말씀 말고 다른 지식으로는 자신을 가득 채우시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자신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향해 열려 있고,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며, 주님이 결합하셔서 하나가 되실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말씀은 그 가장 안쪽, 가장 내적 의미로도 오직 주님에 관한 것뿐이며, 무엇이든지 오직 맨 처음 주님으로부터 온 것뿐입니다. 휴먼 에센스, 곧, 인성이라는 것은 그저 영원부터 계신 디바인 에센스, 곧, 신성에 보태어진 뭔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AC.1461)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천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진리에 관하여 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음을 말합니다. he said unto Sarai his wife” signifies that he so thought concerning the truths to which celestial things were adjoined;사래’, 아내로서의 ‘사래’는 주님 안에 있는 천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진리입니다. Sarai” as a wife is the truth adjoined to the celestial things that were in the Lord;

 

※ ‘아내’에 대한 말씀의 속뜻은 선과 결합한 진리 말고는 없습니다. 선과 진리의 결합은 정확히 결혼이라는 상황과 같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남편’은 선을, ‘아내’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닌 ‘사람’을 뜻할 때는 반대로 남편은 진리를, 아내가 선을 뜻합니다. 이것은 말씀 어디에서나 항상 같습니다. (AC.915)

 

여기서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이 나오면서 그의 아내 사래가 나오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사래는 진리입니다. 아브람이 자기 아내 사래에게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속뜻으로는, 진리를 천적인 것과 결합한 진리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갈 때, 아내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실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의 모든 실제 있었던 일들은 표상이며, 사용된 모든 말은 어떤 의미들을 가집니다. 말씀에 기록된 어떤 일, 사건들도, 그 순서와 말들 모두 이런 아케이나를 표현하기 위한 속뜻을 갖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AC.1468)

 

※ 아내로서의 ‘사래’는 천적인 것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진리이며, 이 천적인 것은 주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천적인 것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진리’라 하는 것은, 모든 진리는 주님이 그것을 가르치시기 전에 이미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적인 것은 늘 함께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둘 사이를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이 마치 빛이 불에서 나오는 것과 같지요. 이 진리는 주님의 속 사람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신성(Divine), 곧 신적 진리였습니다. 주님이 배우신 지식은 진리가 아니었고, 단지 뭘 담아두는 그릇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억 속 무엇이 들어 있든 그건 진리가 아닙니다. 비록 그리 불려도 말입니다. 진리는 그 안에, 곧 그릇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릇 자체는 진리가 아니고, 그릇 안의 내용물이 진리인 것입니다. 이 그릇은 말씀 관련 지식의 범주 안에서 주님에 의한 가르침을 통해 형성됩니다. 어쩜 열린다는 게 더 나은 표현이지 싶습니다. 천적인 것이 그 안으로 스며들 수도, 이런 식으로 신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인성 관련된 것들이 신성과 똑같이 될 수 있도록 신성과 인성을 결합하셨기 때문입니다. (AC.1469)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그 출처, 기원이 천적인 진리는 정말 기분 좋다, 정말 마음에 든다는 뜻입니다. Behold I pray, I know that thou art a woman beautiful to look upon” signifies that truth from a celestial origin is delightful.

 

※ 천적이거나 천적인 것에서 나온 모든 진리는 속 사람에게는 행복이요, 겉 사람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것입니다. 천적 천사들에게도 그렇게 지각됩니다. 그러나 그 근원이 천적이지 않으면 정반대입니다. 속 사람 안에 두 종류의 행복이 있는데 그에 상응하여 겉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는 선이요, 다른 하나는 진리입니다. 천적 행복과 즐거움은 선으로 되어 있고, 영적 행복과 즐거움은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진리 자체가 행복과 즐거움을 수반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진리가 오직 천적 기원을 가지려면 이건 필수입니다. 그때 진리 자체가 천적이 되고, 천적 진리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비교해서 말씀드리면, 그때 진리는 마치 봄철 태양 빛과도 같습니다. 그 안에 열이 있어 땅 위 모든 것을 자라나게 하고, 활동하게 하는 빛 말입니다. 이 천적 진리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의 의미입니다. 이 표현에 담긴 더 많은 아케이나가 이어지는 주된 내용이 될 것입니다. (AC.1470)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1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주님이 말씀에서 오는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셨을 때, 주님은 그 지식에 담기는 진리가 천적인 것과 아주 가깝고, 정말 기분 좋은, 매우 마음에 드는 진리라고 생각하셨다

 

2021-09-29(D4)-매일예배(2201, AC.1465-1470, 창12,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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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rWLBLC-Z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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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6(D1)-제9권39호통422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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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56. 9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Verse 9. And Abram journeyed, going and journeying toward the south.

 

 

점점 옮겨갔더라’, 더 깊이 나아감을 말합니다. And Abram journeyed, going and journeying” signifies further progression;

 

※ 고대인들에게는 ‘여행’(travels), ‘여정’(journeys) 및 ‘체류’(sojournings)는 단순히 단어의 뜻 말고 무슨 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서도 이들 표현은 단순히 그 단어의 뜻밖엔 무슨 속뜻이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즉, ‘점점 옮겨갔더라’가 더 깊이 나아감을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go’와 ‘journey’의 뜻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여느 일반인처럼 지식을 향한 나아감이 시작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눅1:8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2:40)

 

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2:46-49)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주님도 다른 어린이들처럼 정상적인 교육을 받으시고 배우신 것입니다. (AC.1457)

 

 

남방으로’, 선과 진리 가운데로,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면이 빛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게 하시려고를 말합니다. toward the south” signifies into goods and truths, and thus into a state of light as to the interiors.

 

※ ‘’(南, the south)은 빛의 상태를 말합니다. 영계에서는 방위(quarters)도, 시간도 없고, 대신 방위와 시간으로 상징되는 ‘상태’(states)가 있습니다. 지적인 것들(intellectual things)의 상태는 날(the day)과 해(the year)의 시간(때)들의 상태 및 방위의 상태들과 같습니다. 날의 상태들은 저녁, 밤, 아침 및 정오의 상태들이 있고, 해의 상태들은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의 상태들이 있습니다. 방위의 경우는 해(the sun)의 상태들과 같은데, 서(西, the west), 북(北, the north), 동(東, the east) 및 남(南, the south)과 관련된 상태들이 있습니다.

 

지적인 것들의 상태가 이와 유사합니다. 놀라운 것은, 천국에서는 지혜와 지성(intelligence)의 상태 가운데 있는 이들이 곧 빛 가운데 있습니다. 정확히 그들의 상태에 따라 말이지요. 가장 높은 지혜와 지성 가운데 있는 이들은 가장 큰 빛 가운데 있습니다. 지혜는 사랑과 체어리티의 빛 가운데, 지성은 주님 신앙의 빛 가운데 있습니다. 천국의 빛은 지상의 빛 가지고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빛입니다. (AC.1521-1534, 1619-1625) 천국에는 빛과 지성 사이 이런 상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말씀에 나오는 ‘’은 이것 말고는 무슨 다른 속뜻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은 지식을 사용하여 아주 어렵게 구한 지성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천적, 영적 진리들인데, 천국에 있는 수많은 빛의 복사(輻射, radiations)가 바로 이것이며, 이지식은 앞서 말한 대로, 천국에서는 빛의 형태로 눈에 보이게 나타납니다. 주님이 지금 이 지식을 가지고 자신을 가득 채우고자 하심은, 나중에 주님의 인성(人性, the human essence)에 대해서도 주님 자신 실제 천국의 빛이 되고자 하심이며, 이것을 일컬어 여기 9절 오늘 본문에서는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하신 것입니다.

 

남방을 향한 아브람의 계속된 여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선과 진리를 향한 주님의 나아가심, 그래서 자신의 내면을 빛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게 하심에 관한 상징임을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천적, 영적 진리들이므로 천적,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지식을 통해서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여기서 후자는 그것을 받아 담아놓는 그릇입니다. 후자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있는 만큼 그 수가 많습니다. 이 지식 안, 곧 이들 진리의 그릇들 안으로 천적인 것들이 흘러들어옵니다. (AC.1458)

 

 

※ 이상으로 오늘 본문 9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은 실제 천국의 빛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시려고 계속해서 천적, 영적 지식으로 자신을 채우셨다

 

2021-09-23(D5)-매일예배(2198, AC.1456-1458, 창12,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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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usKmig78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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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49. 8절,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Verse 8. And he removed from thence into the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and spread his tent; having Bethel toward the sea, and Ai on the east.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and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어린 시절 주님의 네 번째 상태, 즉, 사랑의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진행(progression)을 말합니다. ‘벧엘 동쪽 산으로 옮김’이 상징하는 바가 바로 사랑의 천적인 것들입니다. “He removed from thence into the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signifies the Lord’s fourth state when a child, namely, the progression of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signified by being transferred to a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 이 표현이, 어린 시절 주님의 네 번째 상태에 관한 것임은, 앞서 다룬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면, 또한 진행 순서 자체를 보면 분명합니다. 주님은 가장 먼저 유아기 때부터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 채워지셔야 했습니다.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란 여호와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그 사랑 안에 있는 이노센스(innocence)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생명의 더할 나위 없는 근원들이기 때문에, 일반적이든 구체적이든 모든 것이 이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부터 흘러나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단지 그 파생물이지요. 이들 천적인 것들은 사람의 유아기 때, 그에게 집중적으로 스며들기 시작, 어린 시절에 이르기까지 그를 채웁니다. 이때에는 사실 다른 무슨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사람이 사랑이 무엇인지, 어펙션(affection)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주님에게서 나와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 그를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유아들의 상태와 조금 시간이 흐른 어린 시절 초기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 안의 이것이 앞서 여러 번 말씀드린 (AC.468, 530, 560-561, 660-661) 리메인스(remains)입니다. 주님도 여느 사람들처럼 태어나셨기 때문에, 순서대로 실제로 유아기를 거쳐 어린 시절까지 서서히 이렇게 천적인 것들로 채워지셨고, 나중에는 지식들 가운데로 인도되셨습니다. 본 절에서는 이런 일이 주님의 경우에는 어떠셨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AC.1450)

 

※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사랑의 천적인 것들의 진행을 말하는 것임은, ‘’(mountain)이 상징하는 것, 곧, 천적인 것에 관한 내용들(AC.795-796) 및 ‘’(東, the East)이 사랑에 관한 여호와 자신에 관한 상징인 것, 그리고 ‘벧엘’의 상징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임을 보면 분명합니다. 주님은 앞서 살핀 대로(AC.101 등) ‘’ 자체이십니다. 천적인 것들은 사람 안에 지식 없이도 스며들고, 지식과 함께도 스며듭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천적인 것들은 지식 없이도 유아기로부터 어린 시절에 이르기까지 스며들며, 또한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는 지식과 함께 스며듭니다. 주님은 ‘벧엘’이라고 하는,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 가운데로 곧장 나아가셨기 때문에 본 절에서 표현하길, 아브람이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겼다 한 것입니다. (AC.1451)

 

 

장막을 치니’, 신앙의 거룩한 속성들을 말합니다. and spread his tent” signifies the holy things of faith;

 

※ ‘장막을 치니’, 신앙의 거룩한 속성들을 상징하는 것은, 전에(AC.414) 살핀 대로, ‘장막’(tent)의 상징이 사랑의 거룩한 퀄러티를, 그리고 그 결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거룩한 퀄러티를 상징하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그가 그의 장막을 쳤다’라는 표현은, 이 일이 이제 시작되었음을 상징합니다. (AC.1452)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주님의 상태가 아직 어슴푸레하였음을 말합니다. having Bethel toward the sea, and Ai on the east” signifies that his state was still obscure;

 

※ 주님의 상태가 아직은 어슴푸레, 즉,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관련, 아직 불투명한 상태임을 말합니다. 천적인 것들 가운데 있는 것과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가운데 있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유아 및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천적입니다. 그들은 부모를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노센스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반면, 어른들은 유아와 어린이들에 비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가운데 더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 중 상당수는 사랑의 천적인 것들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아직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을 배우기 전인 사람은 어슴푸레한 상태, 즉, 지식 수준의 상태 가운데 있으며, 이 상태를 가리켜,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한 것입니다. ‘벧엘’은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아이’는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말합니다.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아직 어슴푸레할 때는 ‘서쪽에 있다’ 합니다. 말씀에서, ‘서(西, the west)’는 어슴푸레한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며,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명료함 가운데 있을 때는 ‘동쪽에 있다’ 합니다. 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은 명료하기 때문입니다. (AC.1453)

 

※ ‘벧엘’과 ‘아이’가 각각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과,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상징하는 것은 아래 말씀들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벧엘’의 경우입니다.

 

3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13:3-4)

 

17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9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28:17, 19)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6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창35:1, 6-7)

 

18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26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삿20:18, 26-27)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삼상7:16)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삼상10:3)

 

27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왕하17:27-28)

 

12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암7:12-13)

 

이 외에도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고, 다음은 ‘아이’의 경우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수7:2)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수8:1-2이하 28절까지)

 

3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렘49:3-4)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그 상태에서 아버지께 드린 주님의 외적 예배를 말합니다.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signifies the external worship of his Father from that state;

 

※ ‘제단’에 관한 상징, 곧 예배에 관한 주된 표상에 대해서는 921번 글 참조 (AC.1454)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 상태에서 아버지께 드린 주님의 내적 예배를 말합니다. and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signifies the internal worship of his Father from that state.

 

※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에 관한 글(AC.440) 참조. 여호와께 제단 쌓는 것은 외적 예배, 여호와의 이름 부르는 것은 내적 예배입니다. (AC.1455)

 

 

※ 이상으로 오늘 본문 8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어린 시절, 네 번째 상태로 계속 진행하셔서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 채우시고, 아직 어린 시절이시라 여전히 어슴푸레하시지만 주님은 그 상태에서, 채우신 사랑의 천적인 것들을 가지고 아버지께 외적, 내적 예배를 드리셨다

2021-09-22(D4)-매일예배(2197, AC.1449-1455, 창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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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JIw_avJw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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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45.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Verse 7. And Jehovah was seen of Abram, and said, 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who was seen of him.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여호와께서 주님이 아직 아이였을 동안 나타나셨음을 말합니다. Jehovah was seen of Abram” signifies that Jehovah appeared to the Lord while yet a child;

 

※ 앞에, 지금까지 다룬 내용들을 통해서, 그리고 ‘아브람’이라는 이름, 곧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표상이라는 것, 또한 주님은 먼저 천적인 것을 얻으신 후, 퍼셉션을 받으시는데, 이런 순서를 통해 ‘여호와께서 나타나심’이 이어지는 것 등을 두루 연결하면, 위와 같은 내적 의미로 정리됩니다. (AC.1446)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천적인 것은 주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야 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and said, 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signifies that celestial things should be given to those who should have faith in him;

 

※ ‘네 자손’의 ‘자손’은 ‘seed’입니다. 또 ‘이 땅을’의 ‘’은 ‘land’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말씀에서 ‘seed’는 주님 신앙을(AC.255, 256), ‘land’는 천적인 것을(AC.620, 636, 662, 1066) 각각 가리킵니다. (AC.1447)

 

※ 겉 글자의 뜻으로는, ‘아브람의 씨’는 야곱으로 말미암은 그의 후손을, ‘’은 가나안 땅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땅을 그들의 소유로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왕국과 교회에 관한 영적, 천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 가운데 표상 교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주님께서 그곳에서 태어나시니까요. 그러나 속뜻, 곧 내적 의미로는, ‘’는 주님 신앙 말고는, 그리고 ‘’은 천적인 것 말고는 달리 의미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위 본문의 내적 의미가 ‘천적인 것은 주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야 받을 수 있음’이 되는 것입니다. (AC.1447)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아버지께 드린 첫 번째 예배를 말합니다.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who was seen of him” signifies the first worship of his Father from the celestial of love.

 

※ ‘제단’은 예배에 관한 주된 표상(representative)입니다. (AC.1448)

 

※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창8:20)는 주님에 관한 표상입니다. 고대교회의 모든 제의는 주님에 관한 표상입니다. 유대 교회의 제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후대에 이르러 제의 중 메인 표상, 즉, 가장 주된 표상이 바로 ‘제단’(altar)과 ‘번제’(burnt offering)입니다. 번제에는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가 각각 그 상징하는 바 표상을 따라 드려졌는데, 정결한 짐승은 체어리티의 선을, 정결한 새는 신앙의 진리를 상징하였습니다. 고대교회의 사람들은 이런 걸 드리면서, 자기들이 주님께 선과 진리의 선물을 드리고 있음을 상징했습니다. 그 밖의 것으로는 사람이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AC.921)

 

 

※ 이상으로 오늘 본문 7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주님은 천적인 것, 곧 하늘에 속한 것은 오직 주님 신앙을 가진 자라야만 받을 수 있음을 퍼셉션으로 아셨고, 그때 주님은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아버지께 첫 예배를 드리셨다

 

2021-09-20(D2)-매일예배(2196, AC.1445-1448, 창12,7),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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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S6YruGTT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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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D1)-제9권38호통421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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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장

각 소사이어티는 작은 형태의 천국이고,

각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다

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and Each Angel in the Smallest Form

 

 

56. 거듭, 천국은 주님이 시인, 인정되시는 곳이며, 믿음과 사랑의 대상 되시는 곳입니다. Again, heaven is where the Lord is acknowledged, believed in, and loved.

 

서로 다른 소사이어티의 서로 다른 선의 다양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다양한 형태로 예배하는 것은 해롭기는커녕 오히려 이롭습니다. 천국의 완벽함은 바로 이 다양함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Variety in worship of the Lord from the variety of good in different societies is not harmful, but beneficial, for the perfection of heaven is therefrom.

 

이것을 식자층에서 통용 중인 용어들을 가지고 설명을 드리지 않으면, 그리고 이런 사실들을 통해서, 하나의 통일성이 완벽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다양함으로부터 나와야 하는지를 보여드리지 않으면 아마도 어느 누구도 이걸 이해하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싶습니다. This can scarcely be made clear to the comprehension without employing terms that are in common use in the learned world, and showing by means of these how unity, that it may be perfect, must be formed from variety.

 

모든 완전체는 다양한 부분들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구성 요소가 없는 완전체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그런 건 아무런 형태도, 따라서 자연히 아무런 퀄러티도 없기 때문입니다. Every whole exists from various parts, since a whole without constituents is not anything; it has no form, and therefore no quality.

 

하지만, 하나의 완전체가 다양한 부분들을 통해서 존재하며, 다양한 부분들이 하나의 완벽한 완전체를 이룰 때, 그리고 그 각각이 자기 자신을 마치 오랜 친구, 마음이 참 잘 맞는 친구처럼 서로에게 제공하여 계속 연결, 연결되면, 그런 완전체의 퀄러티는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But when a whole exists from various parts, and the various parts are in a perfect form, in which each attaches itself like a congenial friend to another in series, then the quality is perfect.

 

그래서 천국은 다양한 부분들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 하나의 완전체입니다. 천국의 형태야말로 모든 형태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So heaven is a whole from various parts arranged in a most perfect form, for the heavenly form is the most perfect of all forms.

 

이것이 모든 완벽함의 기본이라는 사실은 모든 아름다움, 기분 좋음 및 기쁨의 본성을 보면 분명합니다. 그리고 참고로, 감각과 마음은 이들 아름다움, 기분 좋음 및 기쁨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퀄러티들은, 서로 화합을 이루고 마음이 잘 맞는 많은 부분들의 음악회와 화음, 아니면 질서정연하게 공존하거나 이어 나오거나 하지 않으면 절대로 샘솟듯 솟아나 흐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많은 부분들 없이 어떤 전부나 완전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That this is the ground of all perfection is evident from the nature of all beauty, agreeableness and delight, by which the senses and the mind are affected; for these qualities spring and flow from no other source than the concert and harmony of many concordant and congenial parts, either coexisting in order or following in order, and never from a whole without many parts.

 

이런 사실 때문에, 다양해야 즐겁다, 다채로워야 기쁘다고들 하며, 알려진 대로, 다양함, 버라이어티의 어떠함이 즐거움, 기쁨의 어떠함을 결정합니다. From this is the saying that variety gives delight; and the nature of variety, as is known, is what determines the delight.

 

이로 미루어, 천국의 그 엄청난 버라이어티에서 오는 완벽함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을 거울 보듯이 알 수 있습니다. From all this it can be seen as in a mirror how perfection comes from variety even in heaven.

 

자연계에 있는 모든 만물은 영계의 실상을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입니다.(주53) For from the things that exist in the natural world the things of the spiritual world can be seen as in a mirror.(53)

 

 

57. 천국에 관해 나누어 온 이 모든 사실은 또한 그대로 교회에도 해당됩니다. 교회는 지상에 있는 주님의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What has been said of heaven may be said also of the church, for the church is the Lord’s heaven on earth.

 

또 보면, 수많은 교회가 있고, 그 교회 하나하나를 가리켜 다 교회라고 합니다. 그 안에 사랑과 신앙의 선이 있는 한 다 교회입니다. There are also many churches, each one of which is called a church, and so far as the good of love and faith reigns therein is a church.

 

여기서도 역시, 주님은 다양한 부분들로 하나의 통일체, 완전체를 만드십니다. 즉, 수많은 교회들을 가지고 하나의 교회를 만드십니다.(주54) Here, too, the Lord out of various parts forms a unity, that is, one church out of many churches.(54)

 

그리고 구체적으로 한 교회 구성원 한 사람과 해당 교회에 대해서도 위와 같이 일반적으로, 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는 사람 안에 있지 밖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안에 주님이 사랑과 신앙의 선으로 계시는 한 하나의 교회입니다.(주55) And the like may be said of the man of the church in particular that is said of the church in general, namely, that the church is within man and not outside of him; and that every man is a church in whom the Lord is present in the good of love and of faith.(55)

 

거듭,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데요, 자기 안에 교회를 가진 사람은 마치 자기 안에 천국을 가진 천사와 같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때 이 사람은, 마치 천사가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듯 가장 작은 형태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 안에 교회가 있는 사람은 천사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천국입니다. Again, the same may be said of a man that has the church in him as of an angel that has heaven in him, namely, that he is a church in the smallest form, as an angel is a heaven in the smallest form; and furthermore that a man that has the church in him, equally with an angel, is a heaven.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 천사가 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사람-천사입니다.(주56) For man was created that he might come into heaven and become an angel; consequently he that has good from the Lord is a man-angel.(56)

 

사람하고 천사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What man has in common with an angel and what he has in contrast with angels may be mentioned.

 

천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있는 것은 천국 이미지를 따라 형성된 내면입니다. 그래서 그가 사랑과 신앙의 선 안에 있는 한, 그는 천국의 형상입니다. It is granted to man, equally with the angel, to have his interiors conformed to the image of heaven, and to become, so far as he is in the good of love and faith, an image of heaven.

 

그러나 사람에게만 있고, 천사에게는 없는 것은 세상 이미지를 따라 형성된 외면입니다. 이 외면은, 그가 선하면 그의 안에 있는 세상으로 하여금 천국에 종속되어 천국을 섬기게 합니다.(주57) But it is granted to man and not to angels to have his exteriors conform to the image of the world; and so far as he is in good to have the world in him subordinated to heaven and made to serve heaven.(57)

 

그리고 이때 주님은 그가 세상에도 있고 동시에 마치 그가 자신의 천국에도 있는 것처럼 그의 내면과 외면 양쪽 다 계십니다. And then the Lord is present in him both in the world and in heaven just as if he were in his heaven.

 

주님은 두 곳 다 신적 질서를 따라 계십니다. 하나님은 질서이시기 때문입니다.(주58) For the Lord is in his Divine order in both worlds, since God is order.(58)

 

 

58. 끝으로, 자기 자신 안에 천국이 있는 사람한테는, 자신에 관한 가장 크거나 일반적인 것에게뿐 아니라, 가장 작거나 구체적인 것, 그래서 가장 미세한 것에게조차 가장 큰 천국의 형상이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Finally it should be said that he who has heaven in himself has it not only in the largest or most general things pertaining to him but also in every least or particular thing, and that these least things repeat in an image the greatest.

 

이런 사실은,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고유한 사랑이며, 그 사랑은 그의 주된 사랑, 곧 그를 지배하는 사랑이라는 데서 비롯됩니다. This comes from the fact that everyone is his own love, and is such as his ruling love is.

 

그를 다스리는 이 사랑은 아주 작은 단위 안으로 흘러 들어가 그 안을 정돈, 배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곳을 자신과 닮은 꼴이 되게 합니다.(주59) That which reigns flows into the particulars and arranges them, and everywhere induces a likeness of itself.(59)

 

천국에서는 주님을 사랑함이 주된 사랑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보다 더 오직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In the heavens love to the Lord is the ruling love, for there the Lord is loved above all things.

 

그래서 주님은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십니다. 모든 것, 그리고 모든 개별 단위 가운데로 흘러 들어오셔서 그들을 정돈하시고, 주님 자신으로 옷을 입히시며, 그가 어디에 있든지 그를 천국으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Hence the Lord there is the All-in-all, flowing into all and each, arranging them, clothing them with a likeness of himself, and making it to be heaven wherever he is.

 

이것이 한 천사로 하여금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 되게 하는 것이며, 한 소사이어티로 하여금 좀 더 큰 천국이, 그리고 모든 소사이어티로 하여금 가장 큰 형태의 천국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This is what makes an angel to be a heaven in the smallest form, a society to be a heaven in a larger form, and all the societies taken together a heaven in the largest form.

 

주님의 신성이 천국을 이루며, 주님이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시라는 사실은 앞, 7에서 12번 글에서 살폈습니다. That the Divine of the Lord is what makes heaven, and that he is the All-in-all, may be seen above (n. 7–12).

 

 

 

※ 각주

 

53. 모든 완전체는 많은 부분들의 하모니와 콘서트에서 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무슨 퀄러티를 가질 수 없습니다. Every whole is from the harmony and concert of many parts. Otherwise it has no quality (n. 457). 이런 사실로, 천국 전체가 하나의 완전체입니다. From this the entire heaven is a whole (n. 457). 그리고 거기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이라는 한가지 목적에만 유념하기 때문입니다. And for the reason that all there have regard to one end, which is the Lord (n. 9828).

 

 

54. 어떤 교회든 선이 그 교회의 특징이요, 에센셜인 한, 선에서 분리된 진리가 아닌, 그 교회는 하나입니다. If good were the characteristic and essential of the church, and not truth apart from good, the church would be one (n. 1285, 1316, 2982, 3267, 3445, 3451, 3452). 선으로 말미암아 모든 교회는 주님 앞에서 하나의 교회가 됩니다. From good all churches make one church before the Lord (n. 7396, 9276).

 

 

55. 교회는 사람 안에 있지 밖에 있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자기 안에 교회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The church is in man, and not outside of him, and the church in general is made up of men that have the church in them (n. 3884, [6637]).

 

 

56. 자기가 하나의 교회인 사람은 가장 큰 천국 모습을 닮은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그의 마음에 속한 그의 내면이 천국 형태를 따라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천국의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man who is a church is a heaven in the smallest form after the image of the greatest, because his interiors, which belong to his mind, are arranged after the form of heaven, and consequently for reception of all things of heaven (n. 911, 1900, 1928, 3624–3631, 3634, 3884, 4041, 4279, 4523, 4524, 4625, 6013, 6057, 9279, 9632).

 

 

57. 사람은 내면과 외면이 있습니다. 내면은 천국 이미지를 따라 형성되었고, 외면은 세상 이미지를 따라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을 가리켜 고대인들은 소(小)우주라 하였습니다. Man has an internal and an external; his internal is formed by creation after the image of heaven, and his external after the image of the world; and for this reason man was called by the ancients a microcosm (n. 3628, 4523, 4524, 5115, 5368, 6013, 6057, 9279, 9706, 10156, 10472).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세상으로 하여금 천국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으며, 이런 일은 선과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천국으로 하여금 지옥을 섬기게 하는 사람한테는 악과 함께 정반대가 됩니다. Therefore man was created to have the world in him serve heaven, and this takes place with the good; but it is the reverse with the evil, in whom heaven serves the world (n. 9278, 9283).

 

 

58. 주님은 질서이십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선과 진리가 질서를 만듭니다. The Lord is order, since the Divine good and truth that go forth from the Lord make order (n. 1728, 1919, 2011, 2258, 5110, 5703, 8988, 10336, 10619). 신적 진리는 질서에 관한 법입니다. Divine truths are laws of order (n. 2447, 7995). 사람이 질서를 따라 사는 한, 즉, 사람이 신적 진리와 일치하는 선 안에 거하는 한, 그는 사람이며, 교회와 천국이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So far as a man lives according to order, that is, so far as he lives in good in accordance with Divine truths, he is a man, and the church and heaven are in him (n. 4839, 6605, 8513, [8547]).

 

 

59. 모든 사람을 향한 주된 사랑, 혹은 주도적 사랑은 개별 및 그의 삶 전체, 곧 그의 모든 사고와 의지에 관한 것들 가운데 있습니다. The ruling or dominant love with everyone is in each thing and all things of his life, thus in each thing and all things of his thought and will (n. 6159, 7648, 8067, 8853). 사람은 그의 생명의 주된 퀄러티와 같은 그런 것입니다. Man is such as is the ruling quality of his life (n. 987, 1040, 1568, 3570, 6571, 6935, 6938, 8853–8858, 10076, 10109, 10110, 10284). 사랑과 신앙의 다스림 아래 있는, 그런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을 이루는 모든 생명 단위들 가운데 있습니다. 비록 이런 사실을 본인은 모르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When love and faith rule they are in all the particulars of man’s life, although he does not know it (n. 8854, 8864, 8865).

HH.1.7.56-58.'7장, 각 천사는 가장 작은 천국이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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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gyWmNgjL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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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31. 5절,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Verse 5. And Abram took Sarai his wife, and Lot his brother’s son, and all their substance that they had gotten, and the soul that they had gained in Haran: and they went forth to go into the land of Canaan; and into the land of Canaan they came.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선과 그동안 선에 인접해 있어 온, 붙어있어 온 진리를 말합니다. And Abram took Sarai his wife” signifies good to which truth has been adjoined;

 

아브람’,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 대로, 주님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어린 시절 주님을 가리킵니다. by “Abram,” as has been said, is meant the Lord; here, when he was a child;

 

아내’로서의 ‘사래’, 진리를 의미합니다. by “Sarai” as a “wife” is meant truth:

 

※ 말씀에서 교회가 묘사되는 두 가지 표현 중 하나는 ‘남자(vir)와 그의 아내’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homo)과 그의 아내’입니다. 전자의 경우, ‘남자’는 언더스탠딩(understanding) 또는 진리를, ‘아내’는 윌(will) 또는 선을 의미하고, 후자의 경우, ‘사람’은 사랑의 선 또는 사랑을, ‘아내’는 신앙의 진리 또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AC.915) 그러므로 여기 5절, ‘아브람과 그의 아내’는 후자, 곧 ‘아브람’은 선을, ‘아내’는 진리를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AC.1432)

 

※ 사람의 모든 것 안에는 결혼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말이지요. 그 이유는, 주님의 휴먼 에센스와 디바인 에센스가 바로 이 결혼이라는 이미지로 하나가 되기 때문이며, 만물의 기본 질서는 바로 결혼이라는 이 하나됨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천국과 지상 두 왕국의 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아브람’은 선을 의미하고, 그리고 선과 어울리는 짝은 진리이므로 여기서 ‘그의 아내’, 곧 ‘사래’가 나오는 것입니다. (AC.1432)

 

조카 롯과’, 감각적 진리를 말합니다. 한 어린아이 안으로 맨 처음 스며드는 것입니다. and Lot his brother’s son” signifies sensuous truth, thus the first that is instilled into a child;

 

※ 조카는 형제의 아들입니다. 말씀에서 ‘아들’은 진리를 (AC.264, 480, 491, 533), ‘형제’는 신앙의 진리를 (AC.367), 그리고 ‘’은 앞에서 감각이라 하였으므로, 이 ‘조카 롯’이 감각적 진리를 표상하는 것입니다. (AC.1434)

 

※ 어린아이는 주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으로 봅니다. 눈에 비치는 그 모든 것을 ‘보며,’ ‘이것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일까?’, ‘왜 이것을 만드셨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그 내적 의미까지는 알 수 없는 어린아이는 그러나 주님 지으신 이 세상을 ‘’으로 보며, ‘아, 이곳을 보니 천국도 이렇겠구나!’ 하며,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감각적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는 오직 천인(天人, the celestial man)한테만 스며들며, 오직 주님만이 천인이시므로 주님의 어린 시절인 지금, 주님에게 이런 감각적 진리가 스며든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천국의 진리를 받을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AC.1434)

 

모은 모든 소유와’, 모든 감각적 진리를 말합니다. and all their substance that they had gotten” signifies all things that are sensuous truths;

 

※ 식재료가 없으면 음식을 준비할 수 없듯,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 때도 우선은 그 생각의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 나오는 ‘모은 모든 소유’입니다. 이렇게 얻은, 또는 습득한 감각 진리들 중, 기억-지식은 영적 재료를 담는 그릇, 애정은 천적 재료를 담는 그릇입니다. 특별히 ‘하란’에서 얻은 것을 어슴푸레한 상태라 하는 것은, 그때가 아직 주님의 유아기를 비롯, 어린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AC.1435)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 그 어슴푸레한 상태에서 가능했던 모든 리빙 에센셜을 말합니다. and the soul that they had gained in Haran” signifies every living essential that was possible in that obscure state;

 

※ ‘사람들’로 번역한 것은 ‘’이라고도 하는 ‘소울’(soul)입니다. 이 소울은 인간 안에 있는 ‘살아있는 것’, 곧 인간의 ‘생명’입니다. 인간 안에서 살아있는 것은 육체가 아닌 소울이며, 육체는 단지 소울에 의해 사는 것일 뿐입니다. 이 소울이라는 생명의 근원은 천국의 사랑입니다. 천국 사랑에 근원을 두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생명을 가질 수도, 생명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소울은 천국 사랑을 가지고 사는 선이며, 이 선이 곧 리빙 에센셜입니다. (AC.1436)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주님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천적이며, 사랑인 것들을 향해 나아가셨음을 말합니다. and they went forth to go into the land of Canaan” signifies that he thus advanced to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 ‘가나안 땅’, 곧 ‘랜드 오브 가나안’은 천국과 지상, 주님의 왕국을 표상합니다. 이곳에 표상 교회가 있었고, 이 교회 안 모든 것, 가령, 각종 제의, 희생 제물, 제사장 등 섬기는 사람들, 성막 등 모든 것이 주님과 주님의 왕국에 대한 천적, 영적 표상물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거룩한 곳이며, 그러나 참으로 거룩한 곳으로 구별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로 인한 천국적 퀄러티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 왕국에는 이런 퀄러티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AC.1437)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주님은 결국 천적이며, 사랑인 것들을 얻으셨음을 말합니다. and into the land of Canaan they came” signifies that he attained to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 주님은 마침내 천적이며, 사랑인 것들에 도달하셨습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나머지 모든 것이 여기서 연유합니다. 이런 천적 사랑이 어린 시절 주님에게 맨 먼저 유입되며, 서서히 스며든 것입니다. 이것은 씨가 되어 이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씨는 천국이며, 주님은 여호와로부터 출생하셨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자기 안에 그 씨로 천국을 가지신 유일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씨는 악한 씨요, 더러운 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시는 새로운 씨를 받아야 합니다. 아멘, (AC.1438)

 

※ 이상으로 위 5절의 내적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선이신 주님은 늘 곁에 있어온 진리와, 순진무구한 감각으로 받아들인 모든 진리, 그리고 비록 아직은 어슴푸레하지만 모든 기억-지식과 애정 및 생명의 에센셜들을 가지고 천국, 사랑의 여정을 시작, 결국 도달하셨다

2021-09-17(D6)-매일예배(2193, 아케이나말씀리딩.창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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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Rsvdjn4O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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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25.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Verse 4. And Abram went as Jehovah spoke unto him; and Lot went with him. And Abram was a son of five years and seventy years when he went forth out of Haran.

 

아브람’, 이미 말씀드린 대로, 휴먼 에센스 측면에서 주님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By “Abram,” as already said, is represented the Lord as to his human.

 

※ 휴먼 에센스(human essence), 이 에센스를 우리말로 옮기기가 살짝 개운치가 않습니다. 굳이 옮기자면, ‘인간으로서의 본질(本質)’ 정도가 되겠습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정수(精髓)’, ‘진수(眞髓)’도 있습니다. 창12는 주님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주님의 인성(人性)이 신성(神性)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 곧 신적 인성이 되어가시는 과정이므로 필요한 곳에서는 단순히 ‘인성’으로 번역하겠습니다.

 

※ ‘아브람’은 주님의 휴먼 에센스 측면을, ‘아브라함’은 주님의 디바인(Divine) 에센스 측면을 각각 표상합니다. (AC.1426)

 

※ 1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 휴먼 에센스를 유전하신 주님이 그러나 자신에게 디바인 에센스 역시 있음을 처음 자각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AC.1407)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신성한 것을 향하신 주님의 진보, 나아가심을 말합니다. And Abram went as Jehovah spoke unto him” signifies his progression toward Divine things;

 

※ 주님의 휴먼 에센스가 디바인 에센스로 되어가는 첫발을 떼신 것, 그 여정의 시작을 말합니다. (AC.1427)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감각적인 것을 말합니다. ‘’ 역시 주님을 표상하는데, 특별히 육체적 감각을 가진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주님을 표상합니다. and Lot went with him” signifies what is sensuous; by “Lot” is represented the Lord as to his sensuous and corporeal man;

 

※ 주님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것 외에는 여느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몸, 곧 육체적 감각을 가지셨는데, ‘’은 주님의 이런 측면을 표상합니다. 주님은 타고나신 이런 외적 속성들로 하여금 일생을 통해 천적 속성들과 하나 되게 하셔서 결국 신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주님의 인성, 주님의 휴먼은 우리와 달리 나중에 신적 인성, 디바인 휴먼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화, 영광화(glorification)입니다. (AC.1428)

 

아브람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직은 신성이 많지 않으셨음, 충분하지 않으셨음을 말합니다. and Abram was a son of five years and seventy years” signifies that as yet there was not very much of the Divine;

 

※ 말씀에서 ‘’(7), ‘칠십’(70)은 거룩함(AC.395, 433, 716, 881), 특히 주님을 가리키며, 그래서 신적 거룩, 디바인 홀리니스(Divine holiness)를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숫자 ‘’(5)는 ‘적다’를 표시합니다(AC.649). 그래서 ‘칠십오’(75)는 신성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AC.1429)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주님의 불투명한 상태를 말합니다. when he went forth out of Haran” signifies an obscure state of the Lord.

 

※ ‘하란’은 데라, 아브람, 그리고 라반, 곧 우상숭배와 관련된 곳입니다. 즉, 예배가 외적일 뿐이었던 곳이지요. 이런 ‘하란’도 내적 의미로 넘어가면 더 이상 ‘우상숭배’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어슴푸레하다’, ‘불투명하다’ 같은 의미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위 표현이 곧 주님의 불투명한 상태를 표상하는 이유입니다. (AC.1430)

 

※ 이상으로 위 4절의 내적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이 신성(神性, Divine things)을 향하실 때, 주님의 육체적 감각들도 함께 하였으며, 그때는 아직 주님의 신성이 충분하지 않아 어슴푸레한 상태였다.

2021-09-16(D5)-매일예배(2193, 아케이나말씀리딩.창12,4),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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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r2oir1Vy3w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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