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이야기 첫 번째 시간에서 저는 주님의 지혜에는 여섯 단계, 등급(degree)이 있다 말씀드렸고, 그 첫 1, 2등급은 오직 주님께 속한 영역이라 그 어떤 피조물도 이해불가이며, 3등급부터 차례로 삼층천, 이층천, 그리고 일층천 천사에게 허락되었으며, 마지막 6등급이 비로소 인류에게 허락되었다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적 시야, 시력을 가지고 이해할 수도 있겠어요. 우리는 내적 시력이 6등급으로 아주 안 좋아 아주 거칠고 대문짝만하게 써야 겨우 보여 더듬더듬 읽을 수 있지요. 그래서 한정된 지면에 몇 글자 싣지도 못하고, 말씀을 오직 겉 글자로만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위로 갈수록, 혹은 내적일수록 더 시력이 좋아 인류가 읽지 못하는 것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력이 좋을수록 더 많은 것을 읽고 볼 수 있으니까요.

 

참고로, 각 천국 천사들의 차이를 좀 말씀드리면, 삼층천 가장 내적 천사들의 지혜는 이층천 천사들의 지혜를 수천 수만배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이층천 천사들은 삼층천 천사들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물어봐야 합니다. 이런 관계는 나머지도 같습니다.

 

그러면 일층천 천사들을 보고 우리는 ‘에게, 겨우...’ 하겠지만... 인류의 현자(賢者)들의 지혜와 일층천 천사들의 지혜가 또 위와 같은 차이입니다. 그만큼 하늘의 지혜는 지상하고는 비교불가입니다.

 

밀턴, 괴테 및 스베덴보리 등 기네스 북에, 인류 중 가장 지능이 높았던 사람들로 등재된 이분들 역시 그저 하늘의 빛 한 조각 받아 저렇게들 뛰어나다 하지만 이분들 역시 일층천 천사 앞에 서서 그들의 지혜를 접하게 되면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감탄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아무리 뛰어난들 분명한 사실은 저들을 포함, 모든 피조는 유한한 반면,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수학을 좀 하신 분들은 이 유한과 무한의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무한 앞에 유한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네, 그런 것입니다. 주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어떤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걸 듣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주님께 겸손히 빛을 구하는 그런 태도가 안전할 것입니다.

 

창세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사전 준비를 좀 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의 시야가 너무 조야(粗野)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의도치 않게 주님과 주님의 말씀(The Word)을 모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성정 상, 그들이 깨닫고, 알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주님 모독의 길을 걸을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막으신 것입니다.

 

주님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의 두려움은 그것이 사람의 영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덕지덕지 붙어있기만 한 악은 나중에 주님이 떼어내시면 되지만, 영 자체가 변질되어 더럽혀지면, 그건 주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표현된 태고 교회의 멸망 때, 사실은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며, 그래서 이들은 지금도 지옥 저 한쪽 구석에서 지옥의 다른 영들을 해치지 못하게 따로 격리상태에 있습니다. 신성모독의 폐해는 이토록 정말 지독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처음 듣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인데,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6등급 시력인 인류에게 부득불 그들의 언어로 맞추어 주신 것임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 말씀을 읽을 때, 천사들은 각각 자기들의 시력으로 우리 눈엔 안 보이는 더 내적인 뜻으로 읽습니다. 그걸 가리켜 속뜻(internal meaning), 혹은 아케이나(arcana, 秘義)라 합니다.

 

셋째, 이런 속뜻을 이제는 인류에게 오픈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늘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나중에 어차피 천국 가면 다 알게될 걸 왜 굳이 골치아프게 미리...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말씀을 겉뜻으로만 읽어 본의 아니게 아주 엉뚱한 삶을 살다 생을 마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다시 오실 주님을 올바로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네 번째 교회인 현 기독교회는 말씀을 겉뜻으로만 읽어 말씀의 속뜻으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제 말씀의 속뜻을 여시고, 이 일에 필요한 많은 일꾼을 부르십니다. 인류 다섯 번째요, 마지막 교회인 주님의 새 교회는 태고 교회처럼 말씀을 속뜻으로 받드는 영원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속뜻을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원래 태초의 인류는 속뜻의 사람들이었으나 점차 주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게 되어 그 내면이 닫히고, 내적 시력을 잃게 된 것이므로, 이제라도 주님을 사랑하여 말씀의 영인 속뜻, 곧 말씀을 영으로 읽기를 간절히 사모하시면, 사람마다 조금씩 내적 시력이 회복되어 그 속뜻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빛 비춰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함. 이것이 말씀을 속뜻으로 읽는 열쇠입니다.

 

저는 이 공부를 시작할 무렵, 오른쪽 눈 시력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더래서 더더욱 이 시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험했어요. 이 글을 쓰며 생각하니, 혹시 이 내적 시력의 메시지를 가르치시려는 무슨 주님의 섭리가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

 

이밖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겠지만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 세 번째 이야기부터 드디어 창세기 1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주님이 이 공부에 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늘의 빛, 환히 비추사 닫혔던 우리의 내면이 열리고, 어두웠던 내적 시야, 시력이 차츰 회복되어 말씀을 속뜻으로 읽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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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하면 지구를 전제로 하는 말이니 ‘(天)’ 혹은 ‘(靈)’라 해야 할까요? ^^ 하여튼 천국에 충만한 무슨 기운을 표현하고 싶어 ‘천국의 대기’, 이렇게 제목을 정했습니다.

 

천국에 충만한 무슨 기운이란 바로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을 말합니다. 천국뿐이겠습니까? 사실 영계, 자연계를 포함, 지으신 모든 피조세계가 주님의 신성으로 충만하지요.

 

주님의 신성은 사랑이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선(good)과 진리(truth)입니다. 해의 열과 빛이 분명히 다르지만 병합되어 있는 것처럼 주님의 선과 진리 역시 병합되어 온 피조세계에 발산됩니다.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천국의 빛은 지상 정오의 빛보다 몇 배 더 밝은데, 이 빛은 진리의 빛, 곧 진리에 담긴 주님의 선의 빛이지요. 천국은 주님의 신성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이 주님의 신성에 대한 감응 여부와 정도 차이로 그 사람의 영성이 어떻다 저떻다, 거룩하다 세속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신성에 대한 태도가 곧 주님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실 주님의 신성을 담는 그릇입니다. 신성이 주님의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라 하였으므로 자기 안에 주님의 신성을 담는다는 것은 곧 주님의 선과 진리에 힘쓰는 것이 되겠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사람은 지구의 대기 중에서는 폐 호흡을, 천국에서는 신성 호흡을 합니다. 그러므로 생전에 미리 신성 호흡 준비를 안 했다가는 나중에 큰일날 수 있습니다 ^^

 

일상생활에서 주님의 선을 실천하며, 주님의 진리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정보들을 가지고 지상 생활에 적용, 삶을 새롭게 하는 것, 그것이 곧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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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분들은 크게 주님과 나머지 모두로 양분해야 합니다. 나머지 모든 분은 그저 주님의 빛을 대신 반사, 은은한 달빛의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이지 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해이십니다. 그러나 해는 직접 보기엔 너무 눈이 부셔서, 주님은 그 빛을 달처럼 대신 반사,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통해, 해처럼 빛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둘은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생전 책 한 권 직접 쓰거나 남기지 않고 가셨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어록이니 책이니 뭘 친히...

 

이분들은 우리처럼 무슨 종이에 남기시는 대신 사람들의 마음, 심비(心碑)에 새기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접하는 모든 기록은 이분들을 직접 만났던 당대 사람들의 증언에서 나온 것입니다.

 

같은 책이라도 그래서 이런 책, 이런 기록은 그 무게감이 다르며, 그 감동이 차원이 다릅니다. 법적 용어로는 검사가 작성한 조서(調書)와도 같은 것입니다 ^^

 

거의 매일 번역의 일과 글 쓰는 일을 하는 저로서는 두 가지를 결심하게 됩니다.

 

하나는, 나도 내 얘기보다는 나를 만나주신 주님 이야기를 하자! 이분들도 자기와 함께 동행하신 주님 이야기로 살다 가신 것처럼, 그래서 주님을 빛반사하는 달로 살다가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다가야지... 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나는 내 실제 삶은 이런데 글에서는 저런 것처럼 거짓의 글은 쓰지 말아야지... 목회자로서 나는 내가 사는 만큼 설교하고, 설교하는 만큼 살아야지... 하게 됩니다.

 

아! 특히 이 후자는 얼마나 얼마나 어려운지요!!!

 

오, 주님,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며, 유튜브에 올리는 그 동기를 하감(下鑑)하시오며, 스마트폰과 세상 뉴스로부터 물러나서 주야로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시선을 고정하는, 맑고 밝은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아멘아멘, 영원히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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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여러 재미난 특징 중 하나는 천국은 자기의 내면이 열린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데라는 겁니다.

 

이걸 좀 응용하면, 그래서 사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데가 천국이라는 말이지요 ^^

 

자기 역량만큼만 담을 수 있으며 누릴 수 있는 덴데, 우리 주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이셔서 항상 부어주시거든요! 할렐루야!

 

자기가 아주 조그만 종지이든, 또는 태평양을 다 담을 정도이든 주님은 얼마든지 부어 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뭐뭐만큼이라는 원리(?)를 삶에 조금 응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좀 생각을 해 보면... 늘 아래와 같은 시선을 갖는 겁니다.

 

지금 이분이 듣고자 하시는 대답, 또는 이 애가 듣고싶어 하는 말이 뭘까?

 

지금 이분이 원하시는 게, 이 애가 바라는 게 뭘까?

 

무슨 아첨을 하라는 게 아니지요. 주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면 안 되지요... ^^

 

지혜롭게, 그리고 살피는 시선을 가지며,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섬김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오지랖의 경계를 잘 판단하시고... ^^

 

지금 저분의 역량이 어느 정도일까, 이 아이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일까를 살펴 대하라는 것입니다.

 

감당하실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무엇을 하면, 아무 유익도 없거니와 오히려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신 걸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알리고 전할 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자, 이걸 또 역으로 적용하면,

 

지금 나는 저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싶을 때, 화를 내거나 싸늘해지는 대신,

 

왜 이런 얘길 주님은 나로 하여금 듣게 하실까? 주님은 왜 나한테 저런 사람을 허락하셨을까? 등등...

 

또는

 

주님, 저는 이 모든 일이 주님의 허락하심, 주님의 섭리로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주님, 지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또는 왜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제게 빛을 비춰 깨닫게 해주셔요.

 

이렇게 매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여쭙는 것이 좋습니다 ^^

 

만물이 다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이웃 사랑은, 이웃 안에 담겨 있는 주님 닮은 형상, 곧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은 곧 주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웃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 곧 이웃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신 주님, 이웃으로, 부모자식으로, 선후배, 동료, 상사와 부하 등으로 내게 나타나신 주님께 피조물로서 예의바르게 행하는 것, 더욱 만물에 깃든 주님의 신성을 마치 주께 하듯 ‘대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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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창세기, 출애굽기에서 출발,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한 천사적 이해, 천국적 지각 가운데 우리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창세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하는데, 그런데 그에 앞서 선행 학습(?)으로 다루어야 할 중요 주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진리(Truth Divine)의 여러 단계(degree, 등급, 레벨, 차원... 등 번역이 좀...)와 그 가운데서 지상의 언어로 기록된 말씀(the Word in the letter)의 위치

 

말씀의 겉뜻과 속뜻

 

영계의 구조

 

삼위일체

 

등등... 이 외에도 무척 많으나 다른 다양한 주제는 별도 이야기로 다른 요일에 다루기로 하고요, 오늘은 위 첫 번째만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출16:10) 말씀에 대한 주석 ‘아케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Truth Divine)는 하나가 아닌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데, 이것은 천사들의 이해(angelic understanding)조차 초월합니다. 세 번째인 신적 진리(truth Divine) 3등급은 가장 내적 천국, 곧 삼층천 진리이며, 그러나 사람은 그 추호(秋毫)도 도저히 이해불가한 진리입니다. 네 번째인 4등급은 중간 천국, 곧 이층천 진리이며, 이 역시 사람에겐 이해불가입니다. 주님의 진리 다섯 번째, 5등급 진리는 가장 바깥 천국, 곧 일층천 진리이며, 이것은 몇몇 빛을 받은 사람들이 살짝 지각할 수는 있는 그런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불가인데, 혹시라도 어떤 영감으로 떠오르게 되면, ‘아, 그런 거구나!’ 지각하여 믿게 되는 그런 천재성이 나오게 됩니다. 끝으로, 여섯 번째인 6등급 신적 진리는, 이것이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적합한 진리이며, 그래서 말씀의 겉 글자로 표현이 된 것입니다... (AC.8443)

 

창세기 이야기 시작에 앞서 이런 아케이나(arcana, 秘義)를 먼저 살피는 이유는,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주님의 진리의 그 광대함과 깊이, 그리고 인간의 미천함의 현주소... 등을 통해 마음의 준비를 좀 먼저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 같아선 정말 처음부터 우리에게 천사들의 수준으로 진리를 부어주고 싶으셨겠지만 우리의 내면이 닫히고, 우리의 그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너무나도 정말 아니어서 할 수 없이 이 너무나도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 지상의 글자를 빌려 말씀을 기록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인간은 계속 주님과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네, 뭐, 하여튼 앞으로 이렇게 매주 월요 오후는 창세기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 그리고 부언하여 말씀드리면, 여기 제가 말씀드리는 거의 모든 문장은 사실은 ‘...라고 합니다. 하더군요. 라고 들었습니다. 읽었습니다...’ 등으로 끝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계시를 받거나 경험한 게 아니기 때문이며, 아주 살짝, 아주 조금, 혹시 도움되실까 저 나름의 해석을 붙여 풀이를 보태는 경우들이 있기는 할 겁니다만 저 역시 그저 옮기는 수준입니다. 이 옮기는 것 조차도 아주 떨림의 연속이지만요... ^^

 

주께서 내내 천국의 빛 비춰 주셔서 이 이야기들을 접할 때, 심령이 환하여지며, 닫혔던 내면이 열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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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사람들, 곧 태고 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 사람들에게 처음 나타나신 주님은 사람(The Human)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태고인들은 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고, 감히 자신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 사람이십니다. 작품은 그 작가를 표현하듯, 그래서 주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 안에는 이 사람 형태가 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세계인 천국 역시 그래서 당연히 사람 형태이며, 각 천국을 구성하는 수많은 공동체들 역시 사람 형태이고, 각 공동체의 구성원인 천사들 역시 사람 형태입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천국과 상응하며, 그래서 당연히 지상의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천국과 상응합니다.

 

사람의 심장은 천적 천국과, 사람의 폐는 영적 천국과... 하는 식으로, 사람의 모든 장기와 신체가 천국과 서로 상응합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이해는 천국에 대한 모든 아케이나(arcana, 秘義)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천국은 잠시 후면 우리 모두가 가서 영원히 살 곳입니다. 옆 나라 살러 갈 때도 사전 준비를 해야 하듯, 천국 역시 그렇습니다.

 

앞으로 금요일 오후마다 천국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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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eIBSeGl-Rs

 

창세기는 1장부터 11장까지는, 정확히는 에벨까지는 상응(相應, correspondence), 곧 이야기로, 12장부터는 실제 역사, 곧 실제 있었던 일로 기록된 말씀(The Word)입니다.

 

어떤 글이나 말이 말씀이 되려면 그 모든 일점일획에 세 가지, 곧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한 아케이나(arcana, 秘義, 속뜻, internal meaning)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모두 주님을 표상하며, 개별적으로는, 아브라함은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 인간을, 이삭은 영적 인간을, 그리고 야곱은 자연적 인간을 각각 표상합니다.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란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무대를 내려가 실제 사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무대 위에서는 자기가 맡은 어떤 인물을 대신 표현하는 배우들처럼 말입니다.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을, 사래는 선과 함께한 진리를, 롯은 주님의 겉 사람을... 등등 모든 인물은 어떤 형태로는 주님을 표상하기 때문에, 말씀에 등장하며, 말씀에 기록된 것입니다.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 문장과 단어, 글자는 말씀으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엔, 그저 이야기일 뿐이어서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접하게 된 아케이나는

 

1. 주님의 어린 시절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2. 주님 역시 여느 어린이들과 같은 배움을 시작하셨지만, 주님은 처음부터 천적인 것을 목표로 정주행, 한눈팔지 않으셨습니다.

 

3. 지식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그 순서는 주님-천적-영적-지성적-이성적-자연적입니다. 이 순서를 주님의 질서(Divine order)라 합니다.

 

4. 위 질서에 따라 모든 지식은 그 방향이 최종적으로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곧 그 지식 추구를 통해 주님께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 모든 단계의 쓰임새입니다.

 

5. 이 쓰임새를 벗어난 지식 추구는 마치 쭉정이와 같아 때가 되면 불에 던져 사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신 주님 말씀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다음 장인 창세기 13장은 롯과 아브람, 곧 주님의 겉 사람과 속 사람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빛 비춰주셔서 말씀 깊이 보관된 이 아케이나를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 내면을 열어주셔서 담을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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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 고유의 유전 악 때문에, 부른 적이 없는데도 알아서 찾아온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거듭거듭 말씀드렸습니다.

 

귀신 등 심령 괴기, 혹은 음란, 혹은 살인과 폭력 등, 내 취향에 맞는 성향에 따라 코드가 맞는 영들이 찾아와 우리 안에 둥지를 트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안에 깃든 악한 영을 여러 해 전, 주님의 허락으로 본 적이 있는데, 이에 관한 약간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사람의 경우, 죽는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래서 사실 주님 또한 우리 평생 우리를 대신하여 이들과 싸우시느라 쉬지를 못하십니다.

 

우리의 거듭남이 완성단계에 들어가면 그때는 악한 영들이 무슨 짓을 해도 더 이상 우리는 속지 않으며, 주님 사랑하는 마음의 중심이 요동치 않게 됩니다.

 

이때 악한 영들은 비로소 우리를 포기, 우리에게서 물러납니다. 즉, ‘아, 이 사람은 도저히 지옥으로 끌고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포기하자...’ 하는 것이지요.

 

한쪽이 항복을 선언하고 떠났으므로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어 대신 쉼과 안식의 상태가 시작됩니다. 이 상태를 창세기 1장과 2장 처음에서, 창조 여섯째 날 및 일곱째 날, 안식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그 속뜻으로는 한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여섯 단계와 상태로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 대신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그래서 쉼과 안식에 들어가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안식의 참된 의미이며, 그래서 안식일의 주인이 주님이신 겁니다.

 

거듭남의 전 과정은 보통은 평생에 걸친 지난(至難)한 과정이며, 우리 각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한, 주님과 천사들의 결코 쉼 없으신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모든 악과 거짓 앞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정말정말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신성(神性)의 나라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가 하나로 융합된 상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성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히 이 그릇의 크기를 키우며, 또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될 천국은 이 그릇의 크기만큼만, 그릇에 담긴 신성의 량만큼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늘 우리를 주님의 신성의 빛으로 환히 비추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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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오른눈 시야가 환해졌습니다. 할렐루야! 이젠 글씨를 또렷이 읽을 수 있으며, 심지어 바닥 머리카락도 볼 수 있습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치 오른 눈앞에 티슈 한 장 덧대고 사물을 보는 것 같이 뿌옜는데 말이죠...

 

혹시 몰라 며칠 더 지켜보고 나서 ‘아, 확실히 돌아왔구나!’ 싶어 오늘 이 소식, 함께 나눕니다 ^^

 

그간 여러 모로 함께하시며, 절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이젠 정말 이 눈을 아껴 쓸 생각입니다. 허튼 거 보느라 낭비하지 않고 말이죠.

 

제 안 천사들도 저의 이 육안 통해 보며, 그리고 주님 역시 천사들 통해 제가 보는 걸 함께 보시는데... 이젠 정말 천사는 물론, 주님 민망해 하실 그런 거에서 일체 물러나고자 합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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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e7MTCObb4c

 

오늘 본문 18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letter sense)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속뜻, internal sense)

주님은 이제 세상 학문과 헤어지실 때가 되어 깊이 생각에 잠기셨고 많이 슬퍼하셨다. 주님의 천적 진리를 향한 여정에 더 이상 세상 지식은 함께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씀의 육인 본문과 말씀의 영인 속뜻 사이엔 실제 우리 영육 간 간격만큼이나 생소한 큰 어리둥절함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마치 탈북민들이 강 하나 건너 5, 60년을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완전 별천지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과 같은 차이...

 

어차피 나중 언젠가 통일되어 그때 형편 나아지면 되지 굳이 목숨 걸고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게...

 

마치 어차피 나중에 죽어 사후 천국 올라가 알고 누리게 될 걸 굳이 생전에 말씀을 영으로 읽겠다고 저 애 쓸 필요 있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핏 그런가 싶지만 그러나... 이 차이는 실로 크며, 그 결과는 그랜드 캐년의 벌어짐보다도 더 큽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7-8)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13:44-46)

 

비록 아직은 몸 안에 있어 말씀을 영으로 읽는 게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러나 참으로 신실하신 주님은 위 약속의 말씀들대로 결국엔 깨닫게 하시며, 마침내 얻게 하십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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