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0r2oir1Vy3w

 

다음은 우리가 읽는 말씀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다음은 같은 구절을 천사가 읽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이 신성(神性, Divine things)을 향하실 때, 주님의 육체적 감각들도 함께 하였으며, 그때는 아직 주님의 신성이 충분하지 않아 어슴푸레한 상태였다.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눈이나 입으로 읽거나, 혹은 귀로 들을 때, 우리와 함께 있는 천사들은 위와 같은 내적 의미로 이해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비의(秘義, arcana)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감동 가운데 들어갑니다.

 

참고로, ‘아브람’은 주님의 휴먼 에센스 측면을, ‘아브라함’은 주님의 디바인(Divine) 에센스 측면을 각각 표상합니다. (AC.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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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F0zzW48tIU

 

주님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복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님의 모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모든 선 안에 거하며, 그로 말미암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됩니다. 복은 참 좋은 마음의 토양에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AC.1422)

 

주님은 저주는커녕, 누구를 미워하시지도, 벌하시거나 외면하시지도, 죽이시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셔서 본성상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며, 그때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악한 영들의 공격에 노출되고, 그래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저주는 모든 복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복에 포함된 모든 것과 정반대되는 모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끊어지는 것, 그래서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 이것이 저주이며, 이것이 모든 저주 아래 놓인 자들의 처지입니다. (AC.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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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0AaG2oIcc8

 

창12 이후 주님 오실 때까지, 말씀의 모든 것은 오직 세 가지, 곧 주님과 주님의 왕국, 그리고 교회를 표상하기 위해 쓰임 받은 것입니다.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란, 무엇을 대표하여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공이 되거나 자기가 드러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마치 무대 위 배우들처럼, 극 중 인물을 아주 잘 표현하다가 때가 되어 내려오면 됩니다.

 

아브람’은 주님, 아내로서의 ‘사래’는 천적(天的)인 것에 붙어 있고자 하는 진리, 누이로서의 ‘사래’는 지성적 진리, ‘애굽’은 기억-지식[scientia, 학문]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표상이며, 이런 내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영과 육으로 되어 있고, 육이 죽어야 영이 드러나듯, 말씀도 겉 글자가 잠잠해야 비로소 말씀의 내적 의미가 깨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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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EA920lijM

 

천국은 주님의 선의 종류만큼 많은 크고 작은 소사이어티로 되어 있습니다. 각 천사 공동체는 주님이 임하실 때, 임하시는 주님을 다 다르게 보는데요, 마치 하나의 산이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주님 때문이 아닌, 해당 천사 공동체의 선의 종류와 역량 때문입니다. 즉, 주님이 해당 공동체의 역량에 맞춰 임하시기 때문이며, 그 결과, 모두가 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고백하게 됩니다.

 

목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교회 내 참 다양한 분들이 계시는데, 그 영적 성숙도와 기타 여러 특성을 다 무시하고, 오직 ‘나를 따르시오’ 하면 분명 다들 힘들어하실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처럼 다양한 교인들에게 맞추시면, 그때는 다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시게 되지 않을까요?

 

한 분 한 분에 대해서는 주님께 여쭈면서 말입니다 ^^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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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일국 목사입니다. 오랜만에 소식 전해요 ^^

 

어제는 대학병원 안과 진료 예약 있어 다녀오느라 하루 쉬었습니다. 경과 보시더니 다시 3주 후 보자시는군요 ^^

 

참고로, 저는 지금 우안은 유리체에 피가 고여 사물이 뿌옇게 보이고, 좌안은 글씨의 받침이 안 보이는 상황입니다...

 

부디 아직 시력 좋으실 때, 아껴 쓰시기 바래요 ^^

 

저는 성경 말씀을 겉 글자의 뜻(letter sense)으로도, 그리고 속뜻(inner sense)으로도 읽었으면 하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의 경우, 겉으로는 우리는 천지창조 첫 육일 간 기록으로 읽지만, 속으로는 한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로도 읽는 식입니다.

 

여기 제가 ‘속뜻으로 읽는 창세기’라 하여, ‘아케이나(arcana)말씀 리딩’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준비했어요. 아래 링크입니다.

 

https://bit.ly/3BZPjEd

 

아케이나말씀리딩

 

www.youtube.com

 

많은 구독들 바라며, 새로운 관점, 큰 유익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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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1JWnstFmk8

 

’은 내적 예배를, ‘야벳’은 그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를, ‘’은 체어리티(charity, 이웃사랑)와 분리된 신앙을, ‘가나안’은 내적 예배와 분리된 외적 예배를 각각 가리키며, 이들은 홍수 후 첫 교회인 노아교회에서 일어난 갈래들입니다. 이중 우리에게 가장 근접한 ‘야벳’의 경우입니다.

 

예배의 실체는 애정을 가지고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경배, 예배하되 참된 애정이 없으면 그건 경배도, 예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체어리티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서 오직 체어리티의 사람들, 실제로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야 주님의 심정을 알며, 그래야 주님을 참된 애정으로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배의 실체가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천진난만한 사람들입니다. ‘야벳’이 바로 이런 예배이며, 이런 예배 가운데 있는 이들이 바로 ‘야벳의 아들’(창10: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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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받은 글인데, 감동되어 공유합니다 ^^

 

"엄마, 나 오늘부터 도시락 두 개 싸줘. 한 개로 부족하단 말이야."

 

아이가 요즘 부쩍 크려고 그러는지 밥 타령을 하네요. 도시락도 하나 따로 준비해 놓고, 반찬도 이것저것 담아 놓고선 바라보고 섰습니다. 도시락 하나 더 싸는 게 이리도 힘들까 싶었어요.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며 늦게 오던 아들이 오늘은 시험을 치고 일찍 집으로 왔습니다. 도시락 가방을 현관에 놓고선,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도시락 하나는 그대로 가져왔네요. 오늘 배가 덜 고팠나 싶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지석아, 왜 그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고개를 들어 제 가슴에 안기더니, 

그제야 큰 소리로 울어버리는 아들...

 

그동안 하나 더 싸간 도시락은 아들의 짝꿍이 집안 사정으로 도시락을 못 싸 오게 되어 대신 싸다 준 거라는 말을 하며 울먹였습니다.

 

"근데 오늘은 왜 그냥 가져왔니?“

 

라고 묻는 말에, 친구 엄마가 암 수술을  하는 날이라 어젯밤 병원에서 꼬박 새우고,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는 아들의 말이었습니다. 

 

이제껏 힘든 친구를 위해 학교를 마치고선 같이 병원에 가서 병간호를 해줬다는 말도 함께요.

 

"그랬구나. 친구가 아주 힘들었겠구나."

 

애써 아들의 등을 토닥거린 후, 부엌에 와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친구 도시락 싸가랴, 병원에서 간병인 노릇 하랴... 이젠 남의 아픔도 헤아릴 줄 아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비 오는 저녁, 오늘도 아들은 늦나 봅니다.아홉 시가 넘었는데 말이죠.

 

열 시가 다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아들은 더 걸어갈 힘이 없는지 현관 앞에 주저앉고 맙니다.

 

"울 아들 오늘도 고생했네."

 

"엄마, 수술은 잘되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근데..."

 

말끝을 흐린 아들의 눈빛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애절함으로 저를 향해 있었습니다.

 

"친구가 초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대."

 

"그렇구나."

 

말을 잇지 못하고 등을 보인 채 힘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 맘엔 아들의 그림자 위로 겹쳐지는 알 수 없는 애잔함이 다가왔습니다.

 

며칠 후 집에 온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엄마, 친구 집에 웬 아주머니가 찾아와서는 김치와 음식을 한 아름 주고 가셨대."

 

"헐, 대박.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그렇지? 엄마, 야호! 신난다."

 

저렇게 신난 아들의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일요일이 두 번 더 지난 한가로운 오후,

 

"엄마!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그 아주머니가 또 다녀가셨는데, 이번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청소까지 다 해 주시고 가셨데. 진짜 대박이지? 그렇지 엄마? 그 아주머니 천사다, 그치?"

 

연신 그 아주머니 칭찬에 침이 말라가는 아들을 보고,

 

"너 그러다 그 아주머니를 이 엄마보다 더 좋아하겠다."

 

"벌써  그 아주머니 팬이 되었는걸요. 아마 조만간에 엄마보다 더 좋아질 것 같은데요."

 

"뭐야? 이놈의 자식이..."

 

그렇게 아들은 매일매일 특종을 실어 나르는 신문기자처럼 친구네 집 소식을 저에게 전하는 게 일이 되어갔습니다.

 

노을이 구름에 업혀 가는 해질 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저의 핸드폰으로 아들이 보낸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을 방금 보았다고요."

 

친구네 집에서 나오는 저의 모습을 아들이 본 것 같네요.

 

"띠릭..."

 

다시 또 울리는 아들의 문자,

 

"행복을 퍼주는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필요한 자리, 그 자리에  있어주는 행복나무 씨앗은 나누면 커지나 봐요.

 

어느새 내 마음에 심어져 있는 '행복나무', 아들과 함께 예쁘게 키워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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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들 계시죠? 한 달 만에 인사드립니다

 

제가 지난 1월에 있었던 우안(右眼) 시술을 통해 그동안 맑은 시야로 생활할 수 있었는데 다시 재발,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현재 우안은 다시 못 보는 상태고, 좌안 역시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진료 및 치료 중이기는 합니다만 좀... ^^

 

제가 지난 주 금(8/27)부터 ‘아케이나 말씀 리딩’이라는, 창세기, 출애굽기를 하루 한 장씩 아케이나로 리뷰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아케이나, 곧 속뜻으로 읽는 것이어서 기존 겉뜻으로 읽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고, 또 저의 부족한 역량으로 많이 부끄럽지만... ^^ 아래 링크입니다

 

https://bit.ly/2Y4QMKw

 

아케이나말씀리딩

 

www.youtube.com

 

스베덴보리(1668-1772, 스웨덴)의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을 제가 직접 번역, 사이사이 설명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절 단위 자세한 살핌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하다 보니 장 단위 숲을 보는 것도 필요하구나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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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까마득한 조상을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하나? 또 나중에,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까마득한 후손이 찾아와 나한테 인사를 하게 되나?

 

답은, 지상 혈연관계는 지상에서 끝, 천국까지 이어지지 않는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후, 영계에서 눈을 뜬 후, 먼저 가신 부모님과 혈육들을 만나 입 싹 씻거나 안면 싹 바꾸고 하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너무너무 반가워 펄쩍펄쩍 뛰지요 ^^

 

그러나 이런 반가운 인사는 얼마 동안 만입니다. 사람은 사후, 몇 번의 상태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때 겉, 곧 영의 외면은 휴면상태로 들어가고, 속, 곧 영의 내면이 열리는데, 이것이 바로 앞으로 영원히 머물게 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며, 이 상태가 되면, 더 이상 세상 살 때 지니고 살던 모습이 아니게 되어, 더 이상 서로를 알아볼 수도, 인식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을 산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서 주님을 등지고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의 삶을 산 사람들은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모습으로 바뀝니다. 후자의 경우, 자기들끼리는 사람 모습으로 보이지만, 천국 빛 앞에서는 본 모습이 드러납니다

 

천국은 수많은 공동체로 이루어지며 각 공동체는 주님의 특별한 선을 표현합니다, 곧, 주님의 어떤 선 하나는 천국의 어떤 한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각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고유한, 또는 대표적인 선을 따라 해당 공동체로 배정되며, 이렇게 지상에서는 혈육으로 만나 함께 살았어도 천국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선을 따라 흩어지기 때문에 선의 종류가 같지 않으면, 사후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어차피 헤어질 것을 왜 굳이 지상에서 서로 혈육으로 만나 함께 살게 하실까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주님의 선으로 준비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선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으므로 주님이 혈육 저마다의 모습, 곧 아버지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모습으로, 형제의 모습, 자녀와 손주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로 계신 주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곧, 아버지 안에 계신 주님께 예를 다해야 합니다. 어머니도, 형제도, 아들도, 딸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조금 확장하면, 우리의 이웃, 교회, 그리고 사회 직장 등,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며, 이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기억하고 혈육을 사랑해도 사랑해야 혹시 모를, 내 핏줄을 사랑하면서 사실은 주님께는 죄를 짓는 우매함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꼭 붙들고 있어야 자식이 나를 속상하게 해도 자식 안에 계신 주님께 예의 바르게 행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으시겠지만...

 

지상 혈연과 혈육 관계는 지상까지만, 천국은 오직 주님과 나, 일대일 사랑의 나라, 그리고 이런 주님 사랑으로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나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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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오늘 말씀의 한 토막입니다

 

...저는 램프가 달린 램프 스탠드와 꽃처럼 생긴 가장 값진 조명기구들을 주님에 대한 경외함으로, 온 힘을 다해 부지런히 빚고 있는 천사 같은 영들을 보았습니다. 두어 시간 동안 저는 그들이 얼마나 엄청난 수고로 그 모든 것들로 하여금 아름답고, 또 주님을 잘 표현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지를, 허락을 받아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AC.552)

 

스베덴보리가 주님의 허락으로 영이 열려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 체험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여기서 그들이 이 조명기구로 하여금 ‘주님을 잘 표현하게’ 하려고 저렇게 무던히도 애를 쓰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천국을 비롯, 피조세계 내 모든 피조물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지으신 주님을 표현해야 합니다. 어떤 작품이든지 자기를 만든 작가를 표현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오늘 주님을 잘 표현했나요? 저의 말과 태도, 일상을 통해 주님을 얼마나 드러냈으며, 주님이 보이셨을까요...

 

주님을 잘 표현하는’ 피조물의 본분으로 오늘도 내일도 살기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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