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27, 창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AC.226-228) - 사람은 영들과 천사들을 통해 주님의 통치 아래 있다

 

9-10절,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227

퍼셉션, 내적 딕테이트 및 양심(perception, internal dictate, and conscience)의 기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함에도, 오늘날 상황은 전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Swedenborg, 스베덴보리, 1688-1772) 이 주제에 관한 말씀을 좀 드릴까 합니다. 정말 엄청난 사실은 사람은 누구든, 심지어 그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영들과 천사들을 통해 주님의 다스리심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서 그에게 와있는 악한 영들의 지배가 시작되면, 역시 그에게 와있는 천사들은 악과 거짓들을 막느라 애를 쓰는데요, 그렇게 해서 하나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사람이 퍼셉션, 내적 딕테이트 및 양심에 의해 예리해져 가는 건 바로 이 전투를 통해서입니다. 이것과 또 시험을 통해 인간은 영들과 천사들이 자기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아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육체의 일에 아주 깊이 잠겨 영들과 천사들에 관한 걸 전혀 믿지 않는 그런 사람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지어 이런 영적 전투를 수백 번 느껴도 여전히 말하기를, 그런 건 다 상상이며, 마음이 어수선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허락하심을 받아 이런 영적 전투를 수천수만 번 느낄 수 있었고, 아주 생생하게 감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거의 수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이런 전투를 일으키는 그들이 누구며, 무슨 일을, 그리고 어디 출신인지, 그들이 올 때와 떠날 때 등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들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As it is desirable that the origin of perception, internal dictate, and conscience, should be known, and as at the present day it is altogether unknown, I may relate something on the subject. It is a great truth that man is governed by the Lord by means of spirits and angels. When evil spirits begin to rule, the angels labor to avert evils and falsities, and hence arises a combat. It is this combat of which the man is rendered sensible by perception, dictate, and conscience. By these, and also by temptations, a man might clearly see that spirits and angels are with him, were he not so deeply immersed in corporeal things as to believe nothing that is said about spirits and angels. Such persons, even if they were to feel these combats hundreds of times, would still say that they are imaginary, and the effect of a disordered mind. I have been permitted to feel such combats, and to have a vivid sense of them, thousands and thousands of times, and this almost constantly for several years, as well as to know who, what, and where they were that caused them, when they came, and when they departed; and I have conversed wit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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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26, 창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AC.226-228) - 표현들 대부분의 속뜻은 이미 앞에서

 

9-10절,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226

부르시며(crying), ‘동산에서 나는 소리(the voice in the garden),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their being afraid because they were naked), ‘숨었나이다(hiding themselves)의 의미는 앞에서 지금까지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이 네가 어디 있느냐,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먼저 질문 받는 건 말씀에서 흔한 일입니다. 주님은 이미 다 아시면서 말이지요. 그러시는 이유는, 그러면 그가 혹시 시인하고 자백할까 해서입니다. The meaning of “crying,” of the “voice in the garden,” of their “being afraid because they were naked,” and of “hiding themselves” has been previously explained. It is common in the Word for man to be first asked where he is and what he is doing, although the Lord previously knew all things; but the reason for asking is that man may acknowledge and conf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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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25,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동산 나무 사이에'의 속뜻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25

동산 나무 사이에(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가 자연적 선, 그 안에 ‘나무(a tree)라 하는 무슨 퍼셉션이 있는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건 천적 인간이 거주했던 ‘동산(the garden)을 생각하면 분명합니다. 선하고 참된 모든 것이 동산’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경작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말입니다. 선은 그 인모스트(inmost)가 천적이지 않으면 선이 아닌데요, 주님으로부터 이걸 통해서(from, through) 퍼셉션이 나옵니다. 이 인모스트를 여기서 사이(the midst)라 하는 건데요, 말씀 어디에서나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That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signifies natural good, in which there is some perception which is called a “tree,” is also evident from the “garden” in which the celestial man dwelt; for everything good and true is called a “garden,” with a difference according to the man who cultivates it. Good is not good unless its inmost is celestial, from which, or through which, from the Lord, comes perception. This inmost is here called the “midst,” as also elsewhere in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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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24,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자연적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24

자비, 평화, 그리고 모든 선, 즉 ‘여호와의 낯(the faces of Jehovah)은 퍼셉션을 가진 사람들한테 있는 딕테이트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한 방식은 다르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도입니다. 이들은 늘 자비롭게 작동하지만, 사람의 상태에 따라 수용됩니다. 이 사람의 상태, 곧 태고교회의 이 네 번째 후손의 상태는 일종의 자연적 선이었습니다. 자연적 선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스스로 숨는 그런 캐릭터의 사람들인데요,그 이유는 자신들이 벌거벗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 자연적 선조차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숨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수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8 12, 13절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 217번 글을 보세요.)  Mercy, peace, and every good, or the “faces of Jehovah,” are the cause of the dictate with those who have perception, and also, although in a different manner, with those who have conscience, and they always operate mercifully, but are received according to the state in which the man is. The state of this man, that is, of this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one of natural good; and they who are in natural good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y hide themselves through fear and shame because they are naked; while such as are destitute of natural good do not hide themselves, because they are insusceptible of shame; concerning whom, in Jeremiah 8:12–13. (See above, n. 217.)

 

12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렘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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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23,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낯을 피하는' 주체는 주님이 아니라 사람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23

주님의 얼굴(the face of the Lord)은 자비, 평화, 그리고 모든 선이시므로, 분명한 것은 주님은 만물을 향해 자비로우시며, 결코 그 어느 누구도 외면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 오히려 사람, 악 중에 있을 때 얼굴을 돌리는 자는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하신 이사야 말씀 As the “face of the Lord” is mercy, peace, and every good, it is evident that he regards all from mercy, and never averts his countenance from any; but that it is man, when in evil, who turns away his face, as is said by the Lord in Isaiah: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59:2) Your iniquities have separated between you and your God, and your sins have hid his face from you; (Isa. 59:2)

 

와, 그리고 여기 ‘그들이 자기들이 벗었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they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because they were naked) 하신 말씀을 보면 말입니다. and here, “they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because they were na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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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22,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의 속뜻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22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to hide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악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내적 딕테이트를 두려워함이라는 것은 그들의 대답인 10절 말씀,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를 보면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낯(The face of Jehovah), 즉 주님의 얼굴은 자비, 평강 및 모든 선이라는 것이 다음 축복의 말씀들을 보면 더욱 분명한 것처럼 말입니다. That to “hide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means to be afraid of the dictate, as is wont to be the case with those who are conscious of evil, is evident from their reply (verse 10):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The “face of Jehovah,” or of the Lord, is mercy, peace, and every good, as is clearly evident from the benediction: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6:25-26) Jehovah make his faces to shine upon thee, and be merciful unto thee; Jehovah lift up his faces upon thee, and give thee peace. (Num. 6:25–26)

 

시편에서는 And in David: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시67:1) God be merciful unto us, and bless us, and cause his faces to shine upon us. (Ps. 67:1)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4:6) There be many that say, Who will show us any good? Jehovah, lift thou up the light of thy faces upon us. (Ps. 4:6)

 

그래서 이사야에서는 주님의 자비를 ‘자기 앞의 사자(the angel of faces)라 하고 있습니다. The mercy of the Lord is therefore called the “angel of faces,” in Isaiah: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사63:7-9) I will make mention of the mercies of Jehovah; he hath requited them according to his mercies, and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his mercies; and he became their savior. In all their affliction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faces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pity he redeemed them. (Isa. 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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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21,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그날 바람이 불 때'의 속뜻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21

그날 바람이 불 때(the air or breath of the day)가 교회에 아직 어느 정도의 퍼셉션(perception)이 남아 있던 기간을 의미한다는 건 ‘’과 ‘’이 가진 상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태고인들은 교회의 상태들을 낮과 밤의 때들에 비유했는데, 교회가 여전히 빛 가운데 있었을 때를 낮의 때들로 보았고, 그래서 이 상태를 ‘그날(of the day)의 숨 또는 바람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낮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을 만큼의 퍼셉션이 아직 좀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님은 또한 신앙의 상태를 ‘’, 신앙이 없는 상태를 ‘’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That by the “air” or “breath” “of the day” is signified a period when the church had still somewhat of perception remaining,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day” and of “night.”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the states of the church to the times of the day and of the night, to the times of the day when the church was still in light, wherefore this state is compared to the breath or air “of the day,” because there was still some remnant of perception by which they knew that they were fallen. The Lord also calls the state of faith “day,” and that of no faith “night”; as in John: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9:4) I must work the works of him that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cometh when no man can work. (John 9:4)

 

같은 이유로, 사람의 거듭남의 상태들을 창세기 1장에서는 ‘날들’이라 하셨습니다. The states of the regeneration of man were for the same reason called “days” in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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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20,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거니시는 소리'의 속뜻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20

거니시는 소리(the voice going to itself)는 남아 있는 퍼셉션이 거의 없음을, 말하자면 마치 그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듯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음 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Jehovah called to the man)라는 데를 보면 뚜렷한 것처럼 말입니다. By the “voice going to itself,” is meant that there was but little perception remaining, and that alone as it were by itself and unheard, as is manifest also from the following verse where it is said, “Jehovah called to the man.”

 

※ ‘아담을 부르시며’의 ‘부르시며’는 ‘shouted’에 가까운 ‘called’입니다. 사람이 자기 오운에 깊이 잠긴 상태를 ‘깊이 잠들게 하시매’라 표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죄를 지었으나 양심의 소리가 들리는 사람한테는 이런 소리가 천둥 번개 소리처럼 들릴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에서 So in Isaiah:

 

3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6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사40:3, 6) The voice of one crying in the wilderness; the voice said, Cry. (Isa. 40:3, 6)

 

광야(The wilderness)는 신앙이라는 게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교회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the voice of one crying)는 주님의 오심에 대한 수태고지(受胎告知, the annunciation of the Lord’s advent), 곧 일반적으로는 주님의 오심에 대한 모든 소식입니다. 거듭난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 내적 딕테이트가 있는 사람들한테 일어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The “wilderness” is a church where there is no faith; the “voice of one crying” is the annunciation of the Lord’s advent, and in general every announcement of his coming, as with the regenerate, with whom there is an internal dic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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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19,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의 속뜻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19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가 그들이 두려워한 내적 딕테이트(dictate)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말씀에서 ‘소리(voice)가 상징하는 걸 보면 분명한데요, 말씀에서 ‘여호와의 소리(the voice of Jehovah)는 말씀 그 자체, 신앙의 교리, 양심이나 내적 주의, 경고, 또한 그 결과 야기되는 모든 책망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곤 합니다. 그래서 천둥소리를 ‘여호와의 소리’라고 하는데요, 요한계시록입니다. That by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s meant an internal dictate of which they were afrai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voice” in the Word, where the “voice of Jehovah” is used to designate the Word itself, the doctrine of faith, conscience or a taking notice inwardly, and also every reproof thence resulting; whence it is that thunders are called the “voices of Jehovah,” as in John: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계10:3) The angel cried with a loud voice, as a lion roareth, and when he had cried seven thunders uttered their voices, (Rev. 10:3)

 

그때 외적, 내적 둘 다인 어떤 소리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denoting that there was then a voice both external and internal. Again: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계10:7) In the days of the voice of the seventh angel the mystery of God shall be consummated. (Rev. 10:7)

 

시편입니다. In David:

 

32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33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시68:32-33) Sing unto God, sing praises unto the Lord, who rideth upon 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 lo, he shall send out his voice, a voice of strength. (Ps. 68:32–33)

 

옛적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은 태고교회의 지혜를, ‘소리’는 계시 및 내적 딕테이트를 뜻합니다. 계속해서 The “heavens of heavens which were of old,” denote the wisdom of the most ancient church; “voice,” revelation, and also an internal dictate. Again:

 

3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7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시29:3-5, 7-9) The voice of Jehovah is upon the waters; the voice of Jehovah is in power; the voice of Jehovah is in glory; the voice of Jehovah breaketh the cedars; the voice of Jehovah divideth the flames of fir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wilderness to shake; the voice of Jehovah maketh the hinds to calve and uncovereth the forests. (Ps. 29:3–5, 7–9)

 

이사야입니다. And in Isaiah:

 

30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1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 (사30:30-31) Jehovah shall cause the excellency of his voice to be heard, for through the voice of Jehovah shall Asshur be beaten down. (Isa. 3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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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18,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 '그날 바람이 불 때',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 '동산 나무 사이에' 등 8절 속뜻 개요

 

8절,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218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는 그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내적 딕테이트(an internal dictate)입니다. 이 딕테이트는 그들이 전에 소유했던 퍼셉션(perception)이 아직 좀 남아있는 겁니다. ‘그날 바람이 불 때(the air or breath of the day)는 그 교회에 아직 약간의 퍼셉션이 남아있던 기간을 가리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to hide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는 그 딕테이트를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마치 악을 의식하는 사람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숨긴 곳인 ‘동산 나무 사이에(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는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이 인모스트(inmost)를 ‘사이에(the midst)라 합니다. ‘나무(the tree)는 앞에서처럼 퍼셉션을 가리킵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남아 있는 퍼셉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치 유일하게 남은 것인 양 나무를 단수로 말하고 있습니다. By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s signified an internal dictate which caused them to feel afraid, this dictate being the residue of the perception which they had possessed; by the “air” or “breath” of the “day” is denoted a period when the church still possessed some residue of perception; to “hide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s to fear the dictate, as is wont to be the case with those who are conscious of evil; by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in which they hid themselves, is signified natural good; that which is inmost is called the “midst”; the “tree” denotes perception as before; but because there was little perception remaining, the tree is spoken of in the singular number, as if there were only one rem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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