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 (2)’ (2023/6/9)

 

하나님에 관한 두 번째 주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건전한 이성(sound reason)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신(, the Divine, 하나님, 주님)은 나눌 수 없다(the Divine is not divisible)는 걸 모르겠습니까? 또 무한자(無限者), 창조되지 않은 자도, 전능자도, 혹은 신이라는 것도 다 복수로 존재하는 건 불가능하다(a plurality of infinites, of uncreates, of omnipotents, and of gods, is impossible)는 것도 말이지요. 어떤 제정신이 아닌 사람(one destitute of reason)이 선언하기를, ‘다 가능하다. 복수의 무한자도, 창조되지 않은 자도, 전능자도, 그리고 신이라는 것들도 다 복수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정신 나간 주장을 하면서, 그리고 계속해서 만일 그들이 하나의 동일 본질(one identical essence)을 가진다면, 그러면 이것이 그들을 하나의 무한자, 창조되지 않은 자, 전능자, 그리고 하나님이 되게 할 수 있다주장한다면, (사실 이 주장은 좀 뒤죽박죽,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인데요) 이 하나의 동일 본질이 사실은 하나의 아이덴티티(one identity)가 아니었던 거 아닐까요? 하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 正體, 신원)라는 건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여러 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존재가 다른 것에서 나왔다고 해야 한다면, 다른 것에서 나온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신이, 하나님(God)이 아닙니다. 이런 여러 주장, 논란, 입장에도 불구, 불변의 진리는 하나님은 그 자체로 만물이 말미암는, 만물의 근원 되시는 분이시다(the God from whom all things are)라는 사실입니다. (DLW.27) Who that has sound reason can help seeing that the Divine is not divisible? Also that a plurality of infinites, of uncreates, of omnipotents, and of gods, is impossible? Suppose one destitute of reason were to declare that a plurality of infinites, of uncreates, of omnipotents, and of gods is possible, if only they have one identical essence, and this would make of them one infinite, uncreate, omnipotent, and God, would not the one identical essence be one identity? And one identity is not possible to several. If it should be said that one is from the other, the one who is from the other is not God in himself; nevertheless, God in himself is the God from whom all things are (see above, n. 16). (DLW.27)

 

※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신적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의 일곱 번째 주제, ‘만물이 말미암는 한 분의 신-인이 계신다’(There is one God-man, from whom all things come)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27번 글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오늘 위 메인 본문은 사실 매우 신학적, 철학적 논거여서 대부분, 읽어도 선뜻 눈에 들어오지들 않으실 겁니다. 저 자신, 사실 저는 이런 걸 매우 안 좋아합니다. 제가 신대원 시절,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조직신학이었거든요. 날마다 무슨 ‘성(性), 성, 성’, ‘론(論), 론, 론’, ‘적(的), 적, 적’ 하는 게 저는 정말 와닿질 않았고, 매우 매우 불편했는데요, 칼빈에 대해서 처음엔 호의적이었던 입장도 그의 대표적인 저작, ‘기독교 강요’(1536)를 읽고는 그냥 질려버렸지요. 당시 시대적 특성을 따라 스콜라식 저술 형태로 충만한 이 책을 읽고는 저는 그만 질식하는 줄 알았고... 나중에 영계에서 그를 여러 번 만나 대화했던 스베덴보리의 기록을 접하고는 완전... 네, 뭐, 하여튼 저는 이쪽은 아닌 사람 같은데요, 그래도 무슨 교리적 전반적 이해는 또 꼭 필요해서 날마다 꾸욱 꾹 마치 무슨 달팽이 기어가듯 그렇게 번역, 풀고 있습니다. 그냥 휙 읽는 것과, 이렇게 풀이식 번역으로 정리, 정돈하는 건 또 완전 차원이 다른 작업이군요!

 

2. 오늘 저 메인 본문은 어려운 표현들, 일상 중엔 잘 안 쓰는 용어들 때문에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절대 여럿으로 존재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라는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걸 저렇게 너무나 진지하게 말하고 있지요... 스베덴보리는 일종의 논문 형식으로 저술 중이기 때문인데요, 스베덴보리가 그의 모든 저술을 라틴어로 기록한 그 첫 번째 이유는, 스베덴보리는 그 첫 번째 독자층을 당대의 학자들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그 두 번째 이유는, 라틴어는 이미 사어(死語)라 더 이상 시대 변화에 따른 언어적 변화가 없어 그 원어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것도 있습니다.

 

3. ‘하나님에 관한 생각, 즉 신관(神觀)’을 올바로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모든 것의 기초라는 생각을 붙들고 함께 이 씨름을 해나가시기를 권합니다. 반드시 천국 입성을 향한 굳건한 반석이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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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 (1)’ (2023/6/8)

 

오늘부터는 하나님에 관한 두 번째 주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이며,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인간 지혜(human wisdom)의 모든 것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there is one God, the creator of the universe)는 신관(神觀)으로 연합(unite)하는데요, 그 모습은 마치 이것을 중심으로 모여드는(center)것처럼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이와 달리는 생각하지도, 그리고 할 수도 없는데요, 이것은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한테서나 다 볼 수 있는 본성(the general nature of his understanding)이지요. 만일 건전한 이성(sound reason)을 가진 사람에게 우주의 창조주가 두 분이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가 품는 반감(repugnance)을 느끼시게 될 텐데요, 이건 아마도 그의 귀에 들리는 말만으로부터, 그리고 인간 이성(human reason)의 모든 것이 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신관으로 연합, 이 신관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부터도이지 싶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는, 이성적, 합리적으로(rationally)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볼 때,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반적인 본성상(its general nature), 인간의 이성은 바로 이 능력에 의존하는데요, 이 본성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걸 직접, 그러니까 마치 스스로 보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능력에 의해 사람은 천국의 빛(the light of heaven)안에 있거나 그가 가진 대부분의 생각들을 거기서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진리는 천국 빛으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a universal of the light of heaven that God is one)인데요, 그렇지 않은 때는 그 능력으로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이 왜곡되었을(has perverted)때입니다. 그런 사람은 실제로는 그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그 낮은 부분들에 가해진 왜곡(twist)으로 인해 그걸 반대로(contrariwise)돌리고, 결국 그로 인해 그의 이성은 불건전(unsound)해지지요. (DLW.23) All things of human wisdom unite, and as it were center in this, that there is one God, the creator of the universe; consequently a man who has reason, from the general nature of his understanding, does not and cannot think otherwise. Say to any man of sound reason that there are two creators of the universe, and you will be sensible of his repugnance, and this, perhaps, from the mere sound of the phrase in his ear; from which it appears that all things of human reason unite and center in this, that God is one. There are two reasons for this. First, the very capacity to think rationally, viewed in itself, is not man’s, but is God’s in man; upon this capacity human reason in its general nature depends, and this general nature of reason causes man to see as from himself that God is one. Secondly, by means of that capacity man either is in the light of heaven, or he derives the generals of his thought therefrom; and it is a universal of the light of heaven that God is one. It is otherwise when man by that capacity has perverted 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 such a man indeed is endowed with that capacity, but by the twist given to these lower parts, he turns it contrariwise, and thereby his reason becomes unsound. (DLW.23)

 

※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신적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의 일곱 번째 주제, ‘만물이 말미암는 한 분의 신-인이 계신다’(There is one God-man, from whom all things come)에 나오는, 책 전체 글 번호로는 23번 글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는 능력’으로 좀 풀어 번역한 이 ‘이해’(understanding)는 ‘의지’(will)와 함께 사람을 구성하는 두 키워드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이 둘이 있어서입니다. 이 둘은 주님의 신성과 상응하는데요, 즉 주님의 신성 중 선은 사람의 의지와, 그리고 진리는 사람의 이해와 상응합니다.

 

참고로, 주님은 사람의 의지 속으로는 직접 들어가시지만, 사람의 이해, 생각 속으로는 의지를 거쳐 간접적으로 들어가시는데요(HH.26), 저는 이걸 ‘가슴 신앙’, ‘머리 신앙’이라고 종종 번역합니다.

 

대략적으로는, ‘사랑’(love, charity), ‘’(good), ‘의지’(will), ‘애정’(affection), ‘’, ‘’, ‘’, ‘천적’(celestial, heavenly) 등이 한 흐름이고요, ‘신앙’(faith), ‘진리’(truth), ‘이해’(understanding), ‘이성’(reason, rational), ‘’, ‘포도주’, ‘’, ‘영적’(spiritual) 등이 또 다른 흐름입니다.

 

참고로, ‘하나 됨’, ‘한 몸’이라는 것은, ‘의지’는 ‘이해’의 의견을 사랑으로 받들고, ‘이해’는 ‘의지’가 원하는 것을 사랑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2.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the lower parts of his understanding)

 

창세기 6장 16절 말씀,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에 보면, ‘상 중 하 삼층으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아래, 이 구절 전체의 속뜻을 보면서 위 표현을 짐작해 봅니다.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는 지적 부분(the intellectual part)을, ‘그 문은 옆으로 내고’는 청각(hearing)을,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는 지식(knowledge, scientifica), 이성(reason, rationalia), 그리고 이해(understanding, intellectualia)에 관한 것을 각각 의미합니다. (AC.651)

 

창6:9-22은 거듭나기 전 ‘노아’라는 교회의 상태에 관한 내용인데요, 특별히 16절은 그 교회가 가진 이해에 관한 것들에 대한 내용으로서, 갑작스런 이런 내용에 좀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이처럼 사람의 이해에는 세 가지 전혀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우선은 알려드리며,

 

그러므로 ‘인간 이해의 낮은 부분들’인 ‘지식’, 특히 세상의 학습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주님의 계시보다 우선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왜곡’의 시작이요, 근원임을 직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질서, 순서는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출발, 사람의 겉 사람에 도착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반대의 길을 추구한 케이스들이 모두 ‘가인의 삶’, ‘각 교회 시대의 종말’ 및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3. 다음은 이런 내용들에 대하여 천사들은 모든 걸 이해하는 반면, 우리는 왜 이토록 어둡고 어려운가 하는 말씀을 좀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마칠까 하는데요, 아래는 천국 천사들이 왜 그토록 지혜로운가 하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0장, ‘천국 천사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Angels of Heaven) 267번 글입니다.

 

천사들이 그런 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다른 모든 완벽성과 마찬가지로 내적으로 갈수록 증가하므로, 내면이 열리는 정도만큼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다. 모든 천사에게는 생명의 세 단계가 있고, 이것은 세 천국에 상응한다. 내면의 첫 단계가 열린 이들은 일층천, 즉 가장 외적인 천국에 있다. 내면의 둘째 단계가 열린 이들은 이층천인 중간 천국에, 내면의 셋째 단계가 열린 이들은 삼층천인 가장 내적 천국에 있다.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이들 단계에 적합한 것이다. 따라서 가장 내적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중간 천국 천사들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이 초월하고, 중간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가장 외적 천국 천사들의 지혜를 그렇게 초월한다.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은, 더 높은 단계에 속한 것은 세부적이고, 낮은 단계에 속한 것은 일반적이며, 일반적인 것은 세부적인 것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을 수천수만 배 능가한다. 그러므로 더 높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도 낮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에 비하면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 같은 이치로, 낮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에 비하면 그런 차이가 난다. 사람은 육체적인 상태에 있고, 또한 육체의 감각에 속해 있으며, 육체의 감각은 낮은 단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감각적인 사람들, 즉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에 그들 사고의 범위를 국한한 사람들의 지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지혜가 하나도 없고, 단지 지식만 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을 넘어 그들의 사고를 고양시킨 사람들은, 특히 그 내면이 천국 빛을 받는 단계로까지 열린 사람들은 이와 다르다. (HH.267)

 

 

내용이 다소 어렵고 난해하더라도 위 3번 글을 읽어보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힘을 내셔서, 주님께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천국 빛을 구하시고, 해바라기와 같이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곧 천사들의 내면을 비추는 빛이 우리에게도 비춰 이 영광의 말씀들, 내용들이 이해되기 시작할 줄 믿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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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3)’ (2023/6/7)

 

오늘은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생각, 신관의 중요성’ 세 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다음 다룰 주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관(神觀, a correct idea of God)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이 하나님 신관이 종교를 가진 모든 사람의 가장 심오한 생각(the inmost of thought)을 구성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그것은 종교에 관한 모든 것과 예배에 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종교와 예배에 관한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참된 신관(a proper idea of God) 없이는 천국과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실로, 영계에서는 모든 국가가 하나님은 사람이시라는 생각, 신관(its idea of God as a man)에 따라 그 자리가 배정됩니다. 이 안에 주님에 대한 신관(the idea of the Lord)이 있기 때문인데요, 천국에는 주님에 대한 그밖에 다른 신관은 없습니다. 인간의 사후 삶의 상태(man’s state of life after death)는 생전 그가 확신하게 된 신관(the idea of God in which he has become confirmed)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정반대, 즉 하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계에서 주님의 신성을 부인함(the denial of the divinity of the Lord)이 곧 지옥을 구성한다는 것을 보면 아주 명백한 것입니다. (DLW.13) How important it is to have a correct idea of God can be known from the truth that the idea of God constitutes the inmost of thought with all who have religion, for all things of religion and all things of worship look to God. And since God, universally and in particular, is in all things of religion and of worship, without a proper idea of God no communication with the heavens is possible. From this it is that in the spiritual world every nation has its place allotted in accordance with its idea of God as a man; for in this idea, and in no other, is the idea of the Lord. That man’s state of life after death is according to the idea of God in which he has become confirmed, is manifest from the opposite of this, namely, that the denial of God, and, in the Christian world, the denial of the divinity of the Lord, constitutes hell. (DLW.13)

 

 

※ 윗글은 스베덴보리 저, ‘신적 사랑과 지혜’(Angelic Wisdom concerning Divine Love and Wisdom, 1763) 1장, ‘창조주’(The Creator)의 네 번째 주제, ‘하나님이 바로 사람이시다’(God is very man)에 나오는, 전체 글 번호로는 13번 글 내용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이시라는 생각, 신관(its idea of God as a man)에 따라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창세기 주석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49번 글(창1:26 주석) 내용 일부입니다.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서 주님께서 저들과 얼굴과 얼굴로 대화하실 때, 주님은 저들 앞에 ‘사람’(Man)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참 많지만, 아직은 좀 이른 것 같고요... 이 때문에, 저들은 주님 자신과 주님께 속한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사람’(m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저들 자신한테도 감히 ‘사람’이라 하지 않았으며, 오직 그들 자신 안에 있는 것들, 즉 사랑의 모든 선과 믿음의 모든 진리, 그러니까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인식한 것들한테만 ‘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들은 주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났다’한 것입니다.

 

천국 전체에 ‘하나님은 사람이시다’라는 이 생각이 충만하며, 그래서 천국은 사람 형태로 되어 있고, 천국 각 공동체도 사람 형태요, 천국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 역시 사람인데요,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역시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From Things Heard and Seen)

 

8장, ‘천국 전체는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

9장, ‘천국의 각 공동체는 한 사람으로 보인다’(Each Society in Heaven Reflects a Single Man),

10장, ‘천사는 완전한 사람 형태로 있다’(Therefore Every Angel Is in a Complete Human Form)

11장, ‘천국이 사람 모습임은 주의 신적 인성에서 비롯된다’(It Is from the Lord’s Divine Human That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Reflects Man)

12장, ‘천국의 모든 것과 사람의 모든 것은 상응한다’(There Is a Correspondence of All Things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Man)

 

등을 읽어 보시기 바라며, 아래 링크는 스베덴보리의 저서들 중 릴리즈된 저서들을 모아놓은 제 블로그 글이니 필요하신 분들은 가셔서 다운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영문 pdf 문서들입니다.

 

https://bygrace.kr/377

 

스베덴보리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bygrace.kr

 

 

2. ‘그 자리가 배정됩니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기술입니다.

 

또 밝혀둘 것은, 어느 공동체가 한 단위로 보일 때 반드시 사람의 모습이지만, 결코 한 공동체도 똑같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밝힌 대로, 그들의 선이 각기 다르고, 그에 따라 형태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 가족도 얼굴이 다 다르듯 공동체들도 다 다르다. 가장 내적이고 높은 천국의 공동체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공동체들은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람 모습이다.’(HH.70)

 

천국을 이루는 주님의 신성에 대한 친밀감(affinity)에 따라 세 천국이 구분되며, 각 천국 내 수많은 공동체들 역시, 그리고 한 공동체 내 수많은 구성원들의 위치, 자리 역시 주님의 신성에 대한 애정, 친밀감에 따라 정해지는데요, 이는 마치 가운데 환히 빛나는 전구 주위가 가장 밝고 전구와 거리가 멀수록 흐릿한 것과 같습니다.

 

 

3.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타국 이민을 생각하거나 일정 기간 체류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 나라 입국을 위한 여러 준비 및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처럼, 천국 역시 동일하며, 그래서 주님은 특별히 250여 년 전 스베덴보리를 찾으셔서 천국 입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오픈하셨습니다. 아래 링크는 스베덴보리가 누구인지 하는 간략한 프로필입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에 대한 보다 좀 깊숙한 전기가 필요하신 분은 위 스베덴보리 저작들(writings) 중 맨 아래 ‘COMPENDIUM’(叢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천국을 여시며, 그 입국의 비밀을 아낌없이 계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2023-06-07(D4)-C.1.1.3,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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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2)’ (2023/6/6)

 

 

오늘은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온 천국과 지상의 모든 교회, 그리고 모든 종교의 기초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이런 올바른 생각(a just idea of God), 즉 신관(神觀)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결합(conjunction)이 있고, 이 결합을 통해 빛과 지혜, 그리고 영원한 행복(light, wisdom, and eternal happiness)이 있기 때문입니다. (AR.서문) For the whole heaven is founded upon a just idea of God, and the whole church on earth, and in general all religion; since by that idea there is conjunction, and by conjunction light, wisdom, and eternal happiness. (Pref. to A. R)

 

 

※ 위 글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속뜻’(Apocalypse Revealed, Wherein are disclosed the arcana there foretold which have hitherto remained concealed, 1766) 의 ‘저자 서문’(Author’s Preface)에 있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위 내용은 계시록 속뜻 주석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으로, 계시록이 어떤 책이며, 지난 역사 가운데 사람들이 이 계시록을 어떻게 풀어왔는지, 그리고 1757년에 영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때 형성된 새 하늘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는지, 그리고 이 새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 교회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다음 말씀들, 곧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21:9-10),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19:7, 9),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21:1-2, 5)

 

를 통해 확인하여 주며, 또 계속해서 기독교인들의 천국(The Christian heaven)은 고대인들의 천국(the ancient heavens) 아래 있다는 것과, 이 기독교인들의 천국에는 주님 성육신 이후 주님을 세 인격 아래 한 분 하나님(one God under three persons)으로 예배하면서 동시에 세 신에 대한 생각(an idea of three gods)은 가지지 않은 사람들만 입장이 허용되었다는 것, 그 이유는 기독교계 전체가 이 이 입장, 곧 세 인격의 삼위일체(the trinity of persons)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 하여튼 주님에 관한 이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라는 정확한 신관을 소유해야만 천국에서,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그에 합당한 위치를 배정받는다는 등의 전반적인 배경 가운데 기술된, ‘계시록 속뜻’(Apocalypse Revealed) 서문 전체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모든 종교의 기초가’,

 

우리 기독교, 특히 개신교인들은 유독 이런 표현에 매우 민감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오직 기독교 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즉시 저를 WCC 대하듯 경계들을 하십니다... 나중에 이 문제 역시 깊이 다루겠지만, 지금은 이 한 가지, 곧 그럼,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자녀가 아닌가? 인류 전체의 퍼센티지를 볼 때, 오히려 기독교는 일부에 지나지 않은데... 그러면 나머지 7, 80%의 타종교인들은 무조건 지옥 가는가? 저들이 타종교, 타문화권에서 태어난 게 저들의 죄인가? 주님이 그렇게 불공정하신 분인가? 이런 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차별, 구별은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구원에 대한 오해, 말씀을 겉 글자로만 이해, 너무 폭력적으로 적용한 데서 오는 부작용입니다. 주님의 시야, 주님의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라며, 이 주제가 좀 급하신 분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6장, ‘천국의 비기독교인들’(The Heathen, or Peoples outside of the Church, in Heaven)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틈틈이 탈북자들의 유튜브 채널을 봅니다. 저들의 무슨 드라마 같은, 사선을 넘어 생명의 나라로 넘어오는 그 파란만장한 사연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모두 제가 지상에서 천국을 사모하는 치열한 노력과 상응하기 때문인데요, 저들의,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은 이 땅에 태어나 감사할 줄 모르고, 교만하고 나태함 가운데 있는 저로 하여금 마음 다잡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 만 62세가 됩니다. 이젠 만나이만 쓴다네요 ^^ 제가 이 지상에서 얼마나 더 머무르게 될까요? 날이 갈수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제가 살아온 지난날, 그리고 선친께서 당부하신 통일되면 꼭 황해도 해주 선산을 찾으라신 당부 말씀 등... 이런 걸 보면 제가 이젠 정말 육학년이 되었다 싶습니다. 저는 수년 전 수도원 공부를 하면서부터 지상 생활의 그 무엇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임종하는 그날까지 주님 의지하며,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스베덴보리를 통해 계시하신 주님의 메시지들, 곧 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번역하며 소개하는 삶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저의 사랑하는 모든 구독자님들 또한 저와 이 길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023-06-06(D3)-C.1.1.2,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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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1)’ (2023/6/5)

 

오늘부터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을 좀 나누었으면 하는데요,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생각의 중요성(Importance of a just Idea of God)

 

2.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

 

3. 하나님이 바로 사람이시다(God is very Man)

 

4.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시지 않는다(God is not in Space)

 

5. 신적 본질 그 자체는 바로 사랑과 지혜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

 

6. 신적 사랑과 신적 지혜는 실체이며, 형체이다(The Divine Love and the Divine Wisdom are Substance and Form)

 

7.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며, 생명 그 자체이시다(God is Love itself and Life itself)

 

8. 신적 사랑의 본성(The Nature of the Divine Love)

 

9.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영원하심(The Infinity and Eternity of God)

 

10. 하나님의 전능하심(The Omnipotence of God)

 

11.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The Omniscience of God)

 

12. 하나님의 편재(遍在)하심(The Omnipresence of God)

 

13. 하나님에 관한 건 오직 계시로만 알 수 있음(Knowledge respecting God only possible by Revelation)

 

 

각 제목마다 서너 개씩의 아티클로 진행되지 싶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생각은 교회와 종교, 그리고 예배에 관한 모든 것 안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특히 신학적 주제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윗자리를 차지하는데요, 그중에서도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최상석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만일 이것이 거짓이면 그로 말미암은 모든 것 또한 거짓이거나 거짓이 되지요. 이런 지극히 높은 것은 또한 가장 내적이기도 해서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일련의 것들에 대한 본질이 됩니다. 이 본질은, 일종의 영혼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일련의 그 이어지는 것들에 대한 어떤 몸, 즉 자기를 닮은 어떤 몸을 형성합니다. 본질은 그 이어지는 것들을 따라 쭈욱 아래로 내려오면서 그 진리들 위에 빛을 비추는데, 만일 이 본질이 잘못되면 심지어 자기가 가진 무슨 흠과 오류들을 가지고 이어지는 그 아래 것들을 감염시키기도 합니다... ...the idea of God enters into all things of the church, religion, and worship; and theological matters have their residence above all others in the human mind, and the idea of God is in the supreme place there; wherefore if this be false, all beneath it, in consequence of the principle from whence they flow, must likewise be false or falsified; for that which is supreme, being also the inmost, constitutes the very essence of all that is derived from it; and the essence, like a soul, forms them into a body, after its own image; and when in its descent it lights upon truths, it even infects them with its own blemish and error... (BE.40)

 

※ 위 글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이 의미하는 새 교회 교리에 대한 개략적 설명’(A Brief Exposition of the Doctrine of the New Church, Which Is Meant by “The New Jerusalem” in the Book of Revelation, 1769) 중 ‘새 교회 교리들에 대한 스케치’(A sketch of the doctrinals of the New Church) 6번 ‘그 신학 교리(dogmas)는 인격들(persons)에 관한 어떤 삼위일체(a trinity), 그러니까 세 분 하나님(three Gods)에 대한 생각이 거부된 후, 대신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이신 한 분 하나님(one God)에 대한 생각이 받아들여진 후에야 오류로 보입니다.’(The dogmas of that theology appear to be erroneous after the idea of a trinity of persons, and thence of three Gods, has been rejected, and the idea of one God in whom is the Divine Trinity is received in its stead.)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위 내용은 주님을 세 분 하나님, 곧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및 성령 하나님으로 나누는 입장의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2. 한 분 주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주님의 속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겉 사람이십니다. 우선은 이렇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분간 이 일종의 조직신학의 여정 중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비롯, 신적 삼위일체에 관한 보다 깊은 내용을 접하시게 되는데, 그때 좀 더 깊이 말씀드리겠습니다.

 

3. 다음은 성령에 관한 기술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소중히 간직한 모든 성직자는 영계로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사후 사흘째 되는 날에) 처음에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 특히 성령(the Holy Spirit)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데요, 성령은 그 자체로 무슨 신(a God)이 아니라, 유일하시고 편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적 활동(the Divine operation proceeding from the one and omnipresent God)을 말하는데 이것이 말씀에서 성령이 의미하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교리는 침대와 같아서 사람들은 교리 안에 있는 것을 편안해한다 했습니다.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 계시하신 모든 것 역시 주님의 어떤 거룩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 거룩한 질서인 교리의 세계, 주님 말씀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교회의 교리의 세계로 주님의 빛을 구하며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023-06-05(D2)-C.1.1.1,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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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국 신앙, 새 교회 신앙

The Faith of the New Heaven and of the New Church

 

1

이 신앙(faith)이라는 것은 범 우주적, 즉 보편적 형태(a universal form)와 어떤 특정한, 즉 구체적 형태(a particular form)로 먼저 전개되는데요, 그 맡은 역할이라 하면, 어떤 작품에 있어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들에 앞서 등장하는 서문(a preface)이라든지, 어떤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a gate), 혹은 그 뒤따르는 내용물이 그 나름의 어떤 식으로 들어있는 요약(a summary) 같은 게 있겠습니다. 이 신앙을 일컬어 새 천국 신앙, 새 교회 신앙이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천사들이 지내는 천국과 사람들로 구성되는 교회가 마치 사람 안의 속 사람, 겉 사람처럼 하나로 움직이기 때문이며, 그 결과, 교회에 속하여 신앙의 진리로 말미암아 사랑의 선 가운데 있으면서, 그리고 사랑의 선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진리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내면에 있어서는 천국에 속한 천사이며, 그러다가 사후, 천국에 들어가 그 사랑과 신앙의 하나 된 상태에 따라 그곳에서 행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지금 세우고 계시는 새 천국에서는 이 신앙이 그 서문이요, 입구이고 요약이라는 사실을 이제 밝히고자 합니다. This faith is first set forth in a universal and in a particular form, that it may serve as a preface set before the work that follows, also as a gate giving entrance to a temple, and as a summary, containing in their own mode the particulars that succeed. It is called the faith of the new heaven and of the new church because heaven which is the abode of angels, and the church which is made up of men, act as a one, like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consequently the man of the church who is in the good of love from the truths of faith and in the truths of faith from the good of love, is, in respect to the interiors of his mind, an angel of heaven; and being such he after death enters heaven and there enjoys happiness in proportion to the state of conjunction of his love and faith. Let it be known that in the new heaven, which the Lord is now establishing, this faith is its preface, gate, and summary.

 

 

2

새 천국 신앙, 새 교회 신앙의 보편적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faith of the new heaven and of the new church in its universal form is as follows:

 

영원부터 여호와이신 주님은 지옥을 정복하시고, 그의 인성(human)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일이 없었으면 사람은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The Lord from eternity, who is Jehovah, came into the world to subjugate the hells and to glorify his human; and without this no mortal could have been saved; and those are saved who believe in him.

 

[2] 이것을 신앙의 보편적 형태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신앙의 보편적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의 보편적 원리는 신앙의 모든 개별적인 것과 전체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본질(essence)에 있어, 그리고 그 인격(person), 그러니까 그 안에 신적 삼위일체(a Divine trinity)가 있으신 인격에 있어 한 분이시라는 사실과, 바로 그분이 주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the Lord God the savior Jesus Christ)시라는 사실은 신앙의 보편적 원리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신앙의 보편적 원리입니다. 주님은 인간한테서 지옥을 떼어놓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과, 주님은 그걸 지옥과 싸워 이기심을 통해, 그리고 그렇게 해서 지옥을 진압, 질서 회복 및 주님께 복종하게 하심을 통해 해내셨다는 사실은 신앙의 보편적 원리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인성을 영화롭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 또한 신앙의 보편적 원리입니다. 이 인성은 주님이 세상에서 옷처럼 입고 계셨던 것인데요, 이 '영화롭게 하신다'는 건, 그러니까 그 인성과 모든 것의 근원 되신 신성(the Divine)을 하나 되게 하셔서, 그 결과, 주님이 지옥을 영원히 질서 안에 있게, 그리고 주님에 대한 복종 가운데 있게 하심을 말합니다. 이 일은 오직 주님의 인성에게 허락된 시험들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심지어 그 마저도 견디셨는데요,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라고도 하는 마지막 시험 말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이 주님 편에서 본, 신앙의 보편적 원리들입니다. This is called the faith in its universal form, because this is the universal principle of faith; and the universal principle of faith must be in each thing and in all things of it. It is a universal principle of faith that God is one in essence and in person, in whom is a Divine trinity, and that he is the Lord God the savior Jesus Christ. It is a universal principle of faith that no mortal could have been saved unless the Lord had come into the world. It is a universal principle of faith that he came into the world to remove hell from man, and that he did remove it by means of contests with it and victories over it, and thereby he subdued it and reduced it to order and made it obedient to himself. It is a universal principle of faith that he came into the world to glorify his human which he took on in the world, that is, to unite it with the Divine from which [are all things], and thereby he eternally holds hell in order and under obedience to himself. As this could be accomplished only by means of temptations admitted into his human, even to the last of them, which was the passion of the cross, he endured even that. These are the universal principles of faith relating to the Lord.

 

[3] 사람 편에서 본 신앙의 보편적 원리는 사람은 주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주님과 결합하게 되고,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건, 주님이 구원하신다는 걸 신뢰, 확신하는 건데요, 그런데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야 이 확신 또한 가질 수 있기에, 올바르게 산다는 건, 곧 주님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요한복음에서 가르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The universal principle of faith on man’s part is that he should believe in the Lord; for by believing in him there is conjunction with him and thereby salvation. To believe in the Lord is to have confidence that he saves; and as only those who live rightly can have this confidence, this, too, is meant by believing in him. And this the Lord teaches in John: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40) This is the Father’s will, that everyone that believeth in the son may have eternal life; (John 6:40)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He that believeth in the son hath eternal life; but he that believeth not in the son sha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abideth on him. (John 3:36)

 

 

3

새 천국 신앙, 새 교회 신앙의 구체적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faith of the new heaven and of the new church in a particular form is as follows: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 지혜 그 자체, 즉 선 그 자체, 진리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the Word)이신 신적 진리(Divine truth), 곧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신 신적 진리와 관련, 천국의 모든 것과 지옥의 모든 것, 그리고 교회의 모든 것을 그 처음 질서로 환원키 위해 세상에 오셔서 인성을 입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지옥의 권세가 천국의 권세보다 우세했고, 지상에서는 악의 권세가 선의 권세보다 우월했으며, 그 결과, 완전한 지옥살이(damnation), 즉 끔찍한 저주가 바로 문 앞에 위협적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은 신적 진리셨던 자신의 이 인성을 가지고 이 임박한 저주를 해결하셨는데요(removed), 그렇게 해서 천사들과 사람들을 구하셨고(redeemed), 그렇게 해서 자신의 인성 안에서 신적 진리와 신적 선, 즉 신적 지혜와 신적 사랑을 결합하셨으며(united), 그렇게 해서 그분의 영화롭게 되신 인성으로(with), 그리고 그 인성 안에서(in) 본래 영원부터 계셨던 신성으로 다시 돌아가신 것입니다. Jehovah God is love itself and wisdom itself, or is good itself and truth itself; and in respect to Divine truth, which is the Word, and which was God with God, he came down and took on the human for the purpose of reducing to order all things that were in heaven, and all things in hell, and all things in the church; because at that time the power of hell prevailed over the power of heaven, and upon the earth the power of evil over the power of good, and in consequence a total damnation stood threatening at the door. This impending damnation Jehovah God removed by means of his human, which was Divine truth, and thus he redeemed angels and men, and thereupon he united, in his human, Divine truth with Divine good or Divine wisdom with Divine love; and so, with and in his glorified human, he returned into his Divine in which he was from eternity.

 

요한복음의 다음 말씀은 이 모든 걸 의미합니다.  All this is meant by these words in John: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 14) The Word was with God, and God was the Word. And the Word became flesh; (John 1:1, 14)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요16:28) I came out from the Father and am come into the world; again I leave the world and go unto the Father; (John 16:28)

 

그리고 또 다음 말씀도 and also by these words: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일5:20) We know that the son of God is come, and has given us understanding that we may know the true; and we are in the true, in his son Jesus Christ. He is the true God and life eternal. (1 John 5:20)

 

이들 말씀들을 통해 분명한 것은, 주님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동일한데요,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이번에도 말씀이신 신적 진리로 오시는 게 아니면 역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From these words it is clear that without the Lord’s coming into the world no one could have been saved. It is the same today; and therefore without the Lord’s coming again into the world in Divine truth, which is the Word, no one can be saved.

 

[2] 사람 편에서 본, 신앙의 구체적인 원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particulars of faith on man’s part are:

 

(1)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신적 삼위일체가 그 안에 계신 분입니다. 주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분입니다. God is one, in whom is a Divine trinity, and the Lord God the savior Jesus Christ is that one.

 

(2) 구원하는 신앙은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Saving faith is to believe in him.

 

(3) 악을 행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악은 마귀의 일이며, 마귀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Evils should not be done, because they are of the devil and from the devil.

 

(4) 선은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선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Goods should be done, because they are of God and from God.

 

(5) 선은 겉으로 봐서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행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 안에 계신 주님에 의해서, 그리고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행하심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These should be done by man as if by himself; but it should be believed that they are done by the Lord in man and through man.

 

처음 둘은 신앙, 그 다음 둘은 체어리티(charity),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체어리티와 신앙 간 결합과, 그렇게 해서 주님과 사람 간 결합에 관한 것입니다. The first two are matters of faith, the next two of charity, and the fifth of the conjunction of charity and faith, thus of the conjunction of the Lord an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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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섭리는 주님의 사랑과 지혜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Divine Providence Is Government by the Lord’s Divine Love and Wisdom

 

※ ‘divine’이라는 단어는 ‘신(神)의’, ‘신성(神性)한’(holy) 등의 의미이므로 ‘divine providence’를 ‘신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저는 ‘’은 오직 주님 한 분뿐이므로 그냥 ‘주님의 섭리’로 번역합니다. 나중에 더 좋은 번역이 나오면 그때 바꾸겠습니다.

 

※ 마찬가지로, ‘the Lord’s divine love and wisdom’ 역시 그냥 ‘주님의 사랑과 지혜’로 번역합니다. 대신 따로 영어 표현을 괄호로 병기하겠습니다.

 

1. 주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즉, 주님의 사랑과 지혜로 다스리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사람은 먼저 앞서 주님의 사랑과 지혜에 대한 논문에서 이에 대하여 뭐라고 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즉,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지혜에 속하고, 주님의 지혜는 주님의 사랑에 속한다’(DLW.34-39); ‘주님의 사랑과 지혜는 그것으로 창조된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 안에서는 있을 수도, 지배적일 수도 없다’(DLW.47-51); ‘피조세계의 모든 것이 이들 주님의 사랑과 지혜로 창조되었다’(DLW.52, 53, 151-156); ‘만물은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담는 그릇이다’(DLW.55-60); ‘주님은 천사들 앞에 하나의 해로 나타나신다. 이 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은 사랑이고, 빛은 지혜다’(DLW.83-88, 89-92, 93-98, 296-301); ‘주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주님의 사랑과 지혜는 하나를 이룬다’(DLW.99-102); ‘영원부터 계신 주님, 이분이 곧 여호와이신데, 이 피조세계와 그 안의 만유를 주님 자신으로부터 지으셨다. 만유는 무(無, nothing)에서 온 게 아니다’(DLW.282-284, 290-295). To understand what divine providence is—namely, government by the Lord’s divine love and wisdom—one needs to know what was said and shown earlier about divine love and wisdom in the treatise about them: “In the Lord divine love is of divine wisdom, and divine wisdom of divine love” (n. 34–39); “Divine love and wisdom cannot but be in, and be manifested in, all else, created by them” (n. 47–51); “All things in the universe were created by them” (n. 52, 53, 151–156); “All are recipients of that love and wisdom” (n. 55–60); “The Lord appears before the angels as a sun, the heat proceeding from it being love, and the light wisdom” (n. 83–88, 89–92, 93–98, 296–301); “Divine love and wisdom, proceeding from the Lord, make one” (n. 99–102); “The Lord from eternity, who is Jehovah, created the universe and everything in it from himself, and not from nothing” (n. 282–284, 290–295).

 

※ 여기 글 번호들은 ‘Divine Love and Wisdom’에 나오는 글 번호들입니다. 그래서 앞에 DLW라는 약어를 사용합니다. 참고로, 스베덴보리의 여러 저작들은 공식 약어들이 있는데 거기서 가져온 것입니다. 참고로, 스베덴보리의 여러 저작들은 공식 약어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가령,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인 Arcana CoelestiaAC, 요한계시록 주석인 Apocalypse ExplainedAE, 결혼애(結婚愛)에 관한 Conjugial LoveCL 등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과 지혜에 대한 천사의 지혜’라는 제목의 논문에 나옵니다. This is to be found in the treatise entitled Angelic Wisdom about Divine Love and 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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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m7l_-0DM4M

24.창1,31, AC.60-63,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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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3.60.576-581.'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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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Verse 2, 3.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 2, 3절 속뜻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육 일간의 일은 주님이 일하신 날이며, 거듭남의 완성, 곧 천적 인간의 상태는 주님이 쉬시는 날, 곧 안식일입니다. 거듭난 당사자는 나 자신이지만 나를 대신하여 싸우신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쉬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성별하사 복되게 하셨습니다. ‘창조하다’, ‘짓다’, ‘만들다’ 하는 표현들은 모두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된 표현들입니다. ‘주님의 일’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일입니다.

 

 

84.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일곱째 날’인데요, 주께서 육 일간 일하셨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그의 일’(his work)이라 하며, 이때 모든 전투가 그치기 때문에, 주님을 가리켜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시니라’ 하는 것입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

 

이런 이유로, 이 일곱째 날은 성별(聖別, sanctif y)되었고, 히브리어로는 싸바쓰(sabbath)라 하며, 그 뜻은 ‘안식’(rest)입니다. 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

 

이렇게 사람(man)은 창조(create), 형성(form) 및 만들어(make)졌습니다. 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이 모든 것이 말씀들로부터 아주 분명합니다.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그래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일이라 하셨다는 사실은 이때까지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아케이나(arcana, 秘義)입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천적 인간의 본성을 접해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적 인간의 경우는 약간 있었는데, 앞서 81번 글을 보면,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 사이, 실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 이런 무지의 결과, 그들은 천적 인간 행세를 했습니다.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일곱째 날과 관련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혹은 ‘안식일’인 것과 관련하여, 이것은 주님 자신, 안식일이시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사실로 분명합니다.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이 사람 자체(man himself)이시며, 안식일 자체(the sabbath itself)이시라는 것입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천국과 지상에 있는 그분의 나라를 일컬어 그분으로 말미암은 일종의 안식일, 혹은 영원한 평화와 쉼이라고 합니다.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뤄지고 있는 태고교회는 이후 이 교회를 계승한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더 가장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주님의 모든 후속(subsequent) 및 가장 내적(inmost) 교회들 역시 일종의 안식일입니다. 모든 거듭나는 사람 역시 그가 천적이 되면 마찬가지인데요, 그것은 그의 모양이 주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먼저 육 일간의 전투 혹은 수고가 선행합니다.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이런 것들이 유대 교회에서 육 일간의 수고와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도입된 어느 것 하나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대한 표상(representative) 아닌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같은 설명이 궤(the ark, 여호와의 법궤)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궤가 나아갈 때와 궤가 쉴 때로 말이지요. 궤가 광야를 이리저리 다니는 것으로는 싸움과 시험(combats and temptations)을, 그리고 궤가 쉬는 것으로는 일종의 평화(peace)의 상태를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궤가 나아갈 때, 모세는 말하기를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여호와의 산을 떠난 궤를 일컬어서는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라 하였습니다.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3] 천적 인간의 쉼을 이사야에서는 안식일을 가지고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이것이 천적 인간의 질(質, quality)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적 욕구(his own desire)가 아닌, 주님의 선하신 즐거움(the good pleasure of the Lord)을 따릅니다. 이것이 그의 ‘즐거움’(desire)입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그 결과, 그는 내적 평화와 행복을 누립니다. 이것이 위 말씀,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로 표현된 의미이며, 동시에 그는 겉으로도 평온과 큰 기쁨을 누리는데, 이것이 바로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의 의미입니다.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86. ‘여섯째 날’이 된(has become) 영적 인간이 이제 천적 인간이 되려고 하는(is beginning to be) 상태가 여기서 먼저 다뤄지고 있는데요, 이때가 유대 교회에서 말하는 ‘안식일 저녁’입니다. 안식일의 거룩함을 저녁부터 지키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When the spiritual man, who has become the “sixth day,” is beginning to be celestial, which state is here first treated of, it is the “eve of the sabbath,”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keeping holy of the sabbath from the evening.

 

천적 인간은 이제 말씀드릴 ‘아침’입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morning” to be spoken of presently.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눅23:54)

 

 

87. 천적 인간을 가리켜 ‘안식일’ 또는 ‘쉼’이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천적이 될 때,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Another reason why the celestial man is the “sabbath,” or “rest,” is that combat ceases when he becomes celestial.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다가옵니다. 이들이 있으면 악한 영들은 도저히 머무를 수가 없어 멀리 달아납니다. The evil spirits retire, and good ones approach, as well as celestial angels; and when these are present, evil spirits cannot possibly remain, but flee far away.

 

전투를 치른 사람이 이 사람 본인이 아니라 홀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안식하시니라’ 하는 것입니다. And since it was not the man himself who carried on the combat, but the Lord alone for the man, it is said that the Lord “rested.”

 

 

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일’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해 지금까지 싸워오셨고, 지금까지 그를 창조해 오셨으며, 지으시고 만들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하는 것이며, 한 번 더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는 것입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인간은 선지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한 일’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사야에,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새 창조, 혹은 거듭남은 오직 주님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창조하다’(create), ‘짓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을 다음 두 가지 경우와, 또 창세기 본 장과 앞 장에 아주 특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 구절 중,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하는 부분, 그리고 같은 이사야 다른 구절, 예를 들면,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and to “make,” 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또 창세기 1장과 지금 2장,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는 부분들입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속뜻을 생각할 때, 이런 용법을 만나면 늘 그 표현을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다음 케이스들이 바로 그런 경우들입니다. 주님을 가리켜 ‘창조하시는 분’(creator), ‘빚으시는 분’(former), ‘만드시는 분’(maker)으로 표현하는 경우들이지요.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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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Verse 1.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 1절 속뜻

 

영적으로 ‘여섯째 날’에 이르게 되었을 정도로 연단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의 속 사람은 ‘천’(天, heaven),그의 겉 사람이 ‘지’(地, earth)이며, 그의 사랑과 신앙 및 관련 모든 지식이 ‘만물’(萬物, the army of them)입니다.

 

 

82. 이 구절의 의미는, 사람이 그동안 연단을 받아 이제 ‘여섯째 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인 상태가 되었다(have become)는 것입니다. ‘’(天, heaven)은 그의 속 사람, ‘’(地, earth)는 그의 겉 사람입니다. ‘만물’(萬物, the army of them)은 사랑, 신앙, 그리고 그에 속한 지식이며, 이는 앞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상징된 것입니다. By these words is meant that man is now rendered so far spiritual as to have become the “sixth day”; “heaven” is his internal man, and “earth” his external; “the army of them” are love,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which were previously signified by the great luminaries and the stars.

 

속 사람을 ‘하늘’, 겉 사람을 ‘’이라 하는 것은, 앞서 전 장에서 이미 인용된 말씀 구절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the internal man is called “heaven,” and the external “earth,”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of the Word already cited in the preceding chapter,

 

참고로, 그 말씀 중 몇을 다시 인용하면,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이 구절들에 다음 이사야 말씀들을 추가하면,  to which may be added the following from Isaiah: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13) I will make a man more rare than solid gold, even a man than the precious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mite the heavens with terror,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its place. (Isa. 13:12–13)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6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사51:13, 16) Thou forgettest Jehovah thy maker,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but I will put my words in thy mouth, and I will hide thee in the shadow of my hand, that I may stretch out the heaven, and lay the foundation of the earth. (Isa. 51:13, 16)

 

이들 말씀으로부터, ‘하늘’과 ‘’이 사람(man)에 관한 서술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이런 표현들이 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고는 있지만, 말씀의 내면들은 다음과 같은 속성, 곧, 교회에 관한 언급은 또한 그 교회의 모든 부분에 관한 언급일 수도 있는, 일단 그 자신, 교회가 아니면 그가 교회의 어떤 부분이 되는 건 절대 불가능한, 마치 자신이 주님의 성전이 아닌 자는 성전, 곧 교회와 천국으로 상징되는 그 무엇이 절대 될 수 없는,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From these words it is evident that both “heaven” and “earth” are predicated of man; for although they refer primarily to the most ancient church, yet the interiors of the Word are of such a nature that whatever is said of the church may also be said of every individual member of it, who, unless he were a church, could not possibly be a part of the church, just as he who is not a temple of the Lord cannot be what is signified by the temple, namely, the church and heaven.

 

※ 천사들의 모임을 천국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천사 하나하나가 사실은 가장 작은 천국이기 때문이라는 원리와 같습니다. 구성원은 천국이 아닌데, 그걸 다 모으면 천국이 되는 그런 건 불가능하고, 넌센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에 대하여 ‘사람’(man)이라는 단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man,” in the singular number.

 

 

83.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고 합니다. 이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are said to be “finished,”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 for then faith and love make a one.

 

이렇게 될 때, 사랑 혹은 천적 원칙(the celestial principle)이 주요 원리(the principal)가 되기 시작합니다. 신앙이나 영적 원칙이 아니고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천적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When they do this, love, and not faith, or in other words the celestial principle, and not the spiritual, begins to be the principal, and this is to be a celestial man.

 

※ 즉,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해도 사랑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천적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할 때, 거의 영 순위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聖)은 관례상 붙여 부른 것입니다. 엄두섭 저, ‘성 프란치스코’(은성출판사)를 꼭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 영적 인간은 영생을 추구하다 보니 주님을 만나지만, 천적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다 보니 영생을 얻게 됩니다. 좀 과하게 비유하자면,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와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의 차이와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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