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50, 창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AC.350-354) - 아벨’, 양의 첫 새끼’, 기름’,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의 속뜻

 

4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350

여기 ‘아벨’은 앞서와 같이 체어리티(charity)를, ‘양의 첫 새끼’는 거룩한 것, 홀로 주님에게만 속한, ‘기름’은 천적(天的, the celestial) 그 자체, 이 역시 주님에게만 속한,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는 체어리티에 속한 것과 체어리티로 드리는 모든 예배들, 그래서 주님에게 기쁨이 되는 예배들을 말합니다. By “Abel” here as before is signified charity; and by the “firstlings of the flock” is signified that which is holy, which is of the Lord alone; by “fat” is signified the celestial itself, which also is of the Lord; and by “Jehovah looking unto Abel, and to his offering,” that the things of charity, and all worship grounded in charity, were well-pleasing to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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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 창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 AC.29, 창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11-13절,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And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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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최초의 형제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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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운동의 요람이 된 이 뽀르치운꼴라는 프란치스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장소였다. 프란치스코 운동의 참된 요람이 된 이곳은 그 후 이탈리아 반도를 휩쓴 혁명과 지진의 재난 속에서도 용케 잘 보존되어 오늘날도 남아있다. 이곳은 그의 벧엘, 하나님의 집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신비스런 사다리가 확고히 선, 세계에서 드문 성지이다. 여기에서 인류의 고통을 덜게 하는 가장 고상한 꿈이 꾸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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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년 2월 24일, 그날은 성 맛디아 첨례일, 축일이었다. 그날 뽀르치운꼴라 성당에서 아침 미사의 예배 인도는 수바시오 산 베네딕트회 수도사가 했던 것 같다. 그는 마태복음 10장 6절로 15절을 낭독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사제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프란치스코 쪽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신비스런 영감의 물결을 느끼면서 깊은 마음의 격동과 압박감을 느꼈다. 그것은 2년 전, 산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밑에서 듣던 영음보다 더 새롭고 명확한 예수님의 분부였다. 지금 자기 눈 앞에 서있는 사람은 사제가 아니라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이 그 순간 직접 프란치스코에게 너는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

 

...

 

그는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가면서 방금 들은 분부대로 지팡이도, 자루도, 지갑도 내던졌다. 신고 있던 신도 벗어 버렸다. 추워서 몸에 두르고 있던 외투도 벗어 버리고, 성당 수축 공사 때, 마당 구석에 버린 새끼줄을 주워다가 허리에 맸다. 즉석에서 낡은 옷 한 벌을 얻어 수도복을 삼아 입었다. 그것은 시골 사람들이 입는 긴 갈색 겉옷인데 두건이 달린 옷이었다. 옷 모양이 마치 긴 마대자루를 뒤집어 쓰고, 머리만 밖으로 내민 것 같아서 볼꼴이 우스운 것으로 아무도 입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례자처럼 나섰다. 감격이 새로왔다. 이같은 수도복 차림은 그날 이후 오늘날까지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모든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의 옷차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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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스베덴보리를 하다 보니 주님이 이 피조세계에 심으신 여러 원리 중 하나로서 ‘서로 상태가 비슷해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라는 게 있는 것 같구나.

 

가령,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하신 말씀처럼, 생전에 그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 상태인 사람이라야 사후에도 그에게 맞는, 즉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씀인데...

 

천사들이 그토록 지혜와 능력이 사람보다 수천수만 배 뛰어난 이유도 이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천사들의 상태가 주님을 닮아 자신의 역량 한도 내에서 주님이 주시는 모든 걸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복음서 여러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의 경우도, 그리고 현재도 그런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지 싶은데...

 

우리 역시 만일 주님의 이 병 고치시는 능력을 경험하고 싶으면, 저들처럼 먼저 우리 내면의 상태가 주님의 능력, 곧 주님의 신성(神性)이 흘러들어오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참고로, 천국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때 일어난다고 하니, 우리도 일상 중에 수시로 마음을 다해 주님을 바라보자.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그때 주님의 모든 능력이 우리의 수용 능력에 맞춰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흘러들어오실 수 있게 하자. 주님의 능력은 제한이 없으시나 다만 피조물인 나의 역량, 내 믿음의 그릇 사이즈 때문에 제약받으심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아버지는 주님이나 주님의 제자들이 감기 걸렸다는 걸 읽어본 적이 없구나. 그리고 이런 일이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날 줄 아버지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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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9,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AC.346-349) - 제물의 속뜻, 예배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349

제물’이 예배를 의미한다는 건 유대교회의 표상들을 보면 분명한데요, 유대교회에서는 모든 종류의 희생제물 및 땅의 첫 열매들과 그 모든 소산물, 그리고 초태생(初胎生)의 봉헌물 등을 가리켜 ‘제물들’이라 하였고, 그들의 예배는 이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천국의 어떤 것들을 표상하며, 모든 것이 주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이들 제물들을 가지고 참된 예배를 상징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떤 표상이라고 하면서 정작 표상하는 게 없거나, 어떤 겉보기에 종교라고 하면서 정작 무슨 내적인 건 없고 대신 무슨 일종의 우상이나 죽음에 속한 것만 있다면 그게 무슨 표상이며, 그게 무슨 종교인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겉이 누리는 생명은 속의 것들로부터, 곧 주님으로부터 속의 것들을 통해서 공급되는 생명입니다. That by an “offering” is meant worship is evident from the representatives of the Jewish church, in which sacrifices of every kind, as well as the first fruits of the earth and of all its produce, and the oblation of the firstborn, were called “offerings,” in which their worship consisted. And as they all represented heavenly things, and all had reference to the Lord, it must be obvious to everyone that true worship was signified by these offerings. For what is a representative without the thing it represents? Or what is an external religion without an internal but a kind of idol and a thing of death? The external has life from things internal, that is, through these from the Lord.

 

※ 즉 모든 겉, 외적인 것들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내적인 것들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찰을 통해 분명한 것은 어떤 표상 교회에서 다루는 모든 제물은 주님을 향한 예배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제물들이 예배를 의미한다는 것은 예언서들 전반, 특히 말라기를 보면 분명합니다. From these considerations it is evident that all the offerings of a representative church signify the worship of the Lord; and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reat in particular in the following pages. That by “offerings” in general is meant worship, is evident in the prophets throughout, as in Malachi:

 

2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말3:2-4) Who shall abide the day of his coming? He shall sit as a refiner and purifier of silver, and he shall purify the sons of Levi, and purge them as gold and silver, and they shall offer unto Jehovah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Then shall the offering of Judah and of Jerusalem be pleasant unto Jehovah, as in the days of eternity, and as in ancient years. (Mal. 3:2–4)

 

공의로운 제물’은 내적 제물인데 ‘레위 자손’, 곧 거룩한 예배자들이 드릴 것입니다. 옛날은 태고교회를, ‘고대는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에스겔에서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is an internal offering, which the “sons of Levi,” that is, holy worshipers, will offer. The “days of eternity,” signify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e “ancient years,” the ancient church. In Ezekiel: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겔20:40) In the mountain of my holiness, in the mountain of the height of Israel, there shall all the house of Israel, all that land, worship me; there will I accept them, and there will I require your oblations, and the first-fruits of your offerings, in all your sanctifyings. (Ezek. 20:40)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은 주님으로 인한 체어리티로 상징되는 행위, 선행들과 같은 것입니다. 스바냐에서 Oblations” and the “first fruits of the offerings in the sanctifyings” are likewise works sanctified by charity from the Lord. In Zephaniah: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습3:10) From beyond the rivers of Ethiopia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10)

 

구스’는 천적인 것들을 소유한, 곧 사랑, 체어리티 및 체어리티로 행한 선행들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Ethiopia” denotes those who are in possession of celestial things, which are love, charity, and the works of ch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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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8,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AC.346-349) - 땅의 소산의 속뜻,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348

땅의 소산’이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을 의미한다는 건 또한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내용으로도 알 수 있는데요,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은 절대 신앙 행위라고 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건 그저 겉 사람에게 속한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에 관해 예레미야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That by the “fruit of the ground” are meant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ppears also from what follows; for the works of faith devoid of charity are works of no faith, being in themselves dead, for they are solely of the external man. Of such it is written in Jeremiah:

 

1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렘12:1-2, 4) Wherefore doth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Thou hast planted them, they also have taken root; they have gone on, they also bear fruit; thou art near in their mouth, and far from their reins;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Jer. 12:1–2, 4)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는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 ‘이 땅이 슬퍼하며’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에 관한 걸 가리킵니다. 같은 예언서에서 이런 행위들을 행실대로라 하고 있습니다. Near in the mouth, but far from the reins” denotes those who are of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concerning whom it is said that “the land mourns.” In the same prophet such works are called the “fruit of works”: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9-10) The heart is deceitful [supplantativum] above all things, and it is desperate, who can know it? I Jehovah search the heart, I try the reins, even to give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ays, and according to the fruit of his works. (Jer. 17:9–10)

 

미가에서 In Micah: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미7:13) The land shall be desolate because of them that dwell therein, for the fruit of their works. (Micah 7:13)

 

이런 ‘열매’는 아무 열매도 아니며, 이런 ‘행위’는 죽은 행위라는 사실, 그리고 열매와 뿌리 둘 다 진멸된다는 선언이 아모스서에 나옵니다. That such “fruit” is no fruit, or that the “work” is dead, and that both fruit and root perish, is thus declared in Amos: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암2:9) I destroyed the Amorite before them, whose height was like the height of the cedars, and he was strong as the oaks; yet I destroyed his fruit from above, and his roots from beneath. (Amos 2:9)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시21:10) Their fruit shalt thou destroy from the earth, and their seed from the sons of man. (Ps. 21:10)

 

그러나 체어리티의 행위들은 살아 있으며, 이런 행위들은 이사야에 보면 선포하기를, 그들은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라 하고 있습니다. But the works of charity are living, and of them it is declared that they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as in Isaiah: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사37:31) The remnant that is escaped of the house of Judah sha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Isa. 37:31)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는 체어리티로 행하는 것입니다. 같은 예언서에서, 그런 열매를 일컬어 영화로운 소산이라 하고 있습니다. To “bear fruit upward” is to act from charity. Such fruit is called the “fruit of excellence,” in the same prophet: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사4:2) In that day shall the shoot of Jehovah be beautiful and glorious, and the fruit of the earth excellent and comely for them that are escaped of Israel. (Isa. 4:2)

 

이는 또한 ‘구원의 열매’로, 같은 예언서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It is also the “fruit of salvation,” and is so called by the same prophet: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사45:8) Drop down, ye heavens,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pour down righteousness; let the earth open, and let them bring forth the fruit of salvation, and let righteousness spring up together; I Jehovah will create it. (Isa.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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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7,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AC.346-349) - 세월이 지난 후에의 속뜻, 가인’, 처음엔 그 정도는 아니었음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347

세월이 지난 후에’가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그리고 그 안에 순박함이 있었을 동안에는, 여기 가인이라 부르는 교리는 나중처럼 그렇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자녀를 여호와로 말미암았다 한 걸 보면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신앙이 너무 사랑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어 세월이 지난 후에라든지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 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참 신앙의 교리들이 다 그렇듯 말입니다.  That by the “end of days” is signified in process of time, is evident to all. At first, and while there was simplicity in it, the doctrine here called “Cain” does not appear to have been so unacceptable as it became afterwards, a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y called their offspring a “man Jehovah.” Thus at first faith was not so far separated from love as at the “end of days,” or in process of time; as is wont to be the case with every doctrine of true faith.

 

※ 참 신앙의 교리들은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메인이며, 신앙은 그 사랑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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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6,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AC.346-349) - 세월이 지난 후에’, 땅의 소산’,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의 속뜻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346

세월이 지난 후에’는 시간의 경과를, ‘땅의 소산’은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을,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은 그런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By the “end of days” is meant in process of time; by the “fruit of the ground,”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nd by “an offering to Jehovah,” worship thence der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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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5,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AC.341-345) - 농사하는 자’의 속뜻

 

2절,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45

농사하는 자’는 체어리티가 없는 사람, 하지만 사랑과 분리된 신앙으로는 또 아주 제대로일 수 있는, 이런 건 전혀 신앙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가인의 제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가 그의 동생을 죽였다는 것, 즉 ‘아벨’로 상징된 체어리티를 파괴했다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땅을 간다는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육적(), 세속적인 것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창세기 3 19절과 23절에,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tiller of the ground” is one who is devoid of charity, however much he may be in faith separated from love, which is no faith, is evident from what follows: that Jehovah had no respect to his offering, and that he slew his brother, that is, destroyed charity, signified by “Abel.” Those were said to “till the ground” who look to bodily and earthly things, as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in Gen. 3:19, 23, where we read that the man was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3:1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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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44,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AC.341-345) -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체어리티

 

2절,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44

신앙, 즉, 기억-지식 [스키엔티아 scientia], 지식 [코그니시오 cognitio], 그리고 신앙의 교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고 있을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막12:28-35; 마22:34-39) What avails faith, that is, the memory-knowledge [scientia], the knowledge [cognitio], and the doctrine of faith, but that the man may become such as faith teaches? And the primary thing that it teaches is charity. (Mark 12:28-35; Matt. 22:34-39)

 

※ ‘기억-지식(the memory-knowledge, scientia)은 학습한 지식,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인 반면, ‘지식(the knowledge, cognitio)은 경험으로 알게 된 지식, 경험을 통과한 스키엔티아라 할 수 있습니다.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12:28-35)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4-39)

 

이것이 신앙이 지향하는 모든 것의 최종목표이며, 만일 이게 안 되면, 모든 지식이나 교리는 한낱 빈껍데기에 다름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This is the end of all it has in view, and if this be not attained, what is all knowledge or doctrine but a mere empty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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