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3의 마지막 말씀은 ‘너희는기름과피를먹지말라’였습니다. 그런데 레7:22-27에서는 같은 명령이 훨씬 더 길고 강하게 반복됩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고, 어떤 피도 먹지 말라고 하며, 그것을 먹는 사람은 백성 가운데서 끊어진다고까지 합니다. 왜 기름과 피는 이처럼 특별하게 구별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직접적인 원전이 있습니다. ‘아르카나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5943(창45:18)은 레7:23-26을 직접 인용하면서 제사의 기름과 그것을 불사르는 것이 천적 신성 자체, 곧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선’을 표상한다고 설명합니다.
피 역시 제사의 핵심 상응입니다. 앞에서 여러 차례 보았듯이 스베덴보리는 제사의 피를 주님의 신적 인간에게서 나오는 신적 진리와 연결합니다. 그러므로 기름과 피는 제사의 두 중심인 선과 진리를 나타냅니다. 하나는 사랑의 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선에서 나오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이 그것을 먹으면 안 될까요? ‘먹는다’는 것이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는 원리를 함께 놓으면 매우 깊은 의미가 드러납니다. 인간은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여 살아야 하지만 그것들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선과 진리는 인간에게 전달되고 인간 안에서 살아 움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주님의 것입니다.
인간의 proprium은 바로 여기서 가장 미묘하게 개입합니다. 악한 일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선한 일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영적으로 더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가사랑했다’, ‘내가희생했다’, ‘내가진리를깨달았다’, ‘내가사람을변화시켰다’고 하면서 주님에게서 온 선과 진리를 자기 소유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름과 피를 먹지 않는 규례는 선과 진리를 거부하라는 뜻과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충분히 받아 살아가되 ‘그근원은주님에게있습니다’라고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선은 인간 안에 있지만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진리도 인간의 이해 안에 있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이 구별이 지켜질 때 인간은 주님의 선을 마치 자기 것처럼 자유롭게 행하면서도 공로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국적 자유의 역설입니다. 천사들은 선을 자기 의지에서 하는 것처럼 행하지만 그 선의 근원이 주님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레7에서 기름과 피가 다시 한번 엄격하게 보호되는 것은 제사의 중심을 지키는 일입니다. 거듭남의 마지막까지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있습니다. ‘선과진리는주님의것이다.’ 인간은 그것을 받아 자기 삶으로 삼되 그 근원을 proprium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바로 그 인정 안에서 주님과 인간의 참된 화목과 결합이 지속됩니다. (SWC.레7심화4)
레위기 7장은 레1부터 시작된 제사의 첫 큰 단락을 마무리합니다. 37절은 지금까지 나온 것을 ‘번제와소제와속죄제와속건제와위임식과화목제의규례’라고 한꺼번에 열거합니다. 그래서 레7은 새로운 제사 하나를 소개하는 장이라기보다 앞에서 배운 제사들을 다시 제사장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특히 화목제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제사의 목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장입니다. 죄를 깨닫고 정결하게 되는 것만이 끝이 아닙니다. 악과 거짓이 제거된 인간은 마침내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웃과 함께 누리며, 주님과 결합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1절로 7절은 속건제를 다시 다룹니다. 속건제물은 번제물을 잡던 곳에서 잡고 피는 제단 사방에 뿌리며,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을 덮은 기름, 두 콩팥과 그 기름, 간에 덮인 꺼풀을 제단에서 불사릅니다. 이것들은 레3의 화목제에서 이미 만났던 요소들입니다. ‘아르카나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0033(출29:13)은 피를 신적 진리와, 기름을 신적 선과 연결하며, AC.10072(출29:22)는 내장을 덮은 기름을 가장 낮은 것 안에 있는 선과 연결합니다. AC.10074(출29:22)는 콩팥을 자연적 인간의 내적 진리와 연결합니다. 그러므로 속건제가 단순히 ‘잘못에대한벌금’을 지불하는 제사가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실제 삶에서 손상된 것을 바로잡게 하실 뿐 아니라 자연적 인간의 가장 안쪽과 바깥쪽까지 선과 진리의 질서로 다시 세우십니다.
6절과 7절에서는 속건제가 ‘지극히거룩하다’고 다시 선언되며 제사장들이 그것을 먹습니다. 레6에서 보았듯이 거룩한 제물을 먹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AC.2187(창18:8)은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을 교통, 결합, 자기 것으로 삼음과 연결합니다. 악과 거짓에서 정결하게 되는 것만으로 거듭남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결해진 자리에 주님의 선이 들어와 인간의 실제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버리는 것은 비움이고, 주님의 선을 받아 살아가는 것은 채움입니다. 레위기의 제사들은 이 두 방향을 계속 함께 보여 줍니다.
8절로 10절에서는 번제물의 가죽과 여러 소제물이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이것은 제사의 모든 것이 제단 위에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드려진 것 가운데 어떤 것은 제사장을 통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만 레7:8의 ‘가죽’ 자체를 이 문맥에서 무엇이라고 정확히 상응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이번에 충분한 직접 원전을 확보하지 못했으므로 세밀하게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7절로 10절 전체에 ‘돌아갈것이요’, ‘제사장에게로돌아갈것이니’, ‘균등하게분배할것이니라’가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제사는 인간이 주님께 무엇을 빼앗기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한 뒤 다시 그분에게서 받아 올바르게 누리는 질서를 가르칩니다.
11절부터 장의 중심인 화목제 규례가 시작됩니다. 레3에서 화목제의 기본 구조를 보았다면 여기서는 화목제가 ‘감사’, ‘서원’, ‘자원’이라는 서로 다른 상태에서 어떻게 드려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감사의 화목제에는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가 함께 드려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3절에는 ‘유교병’, 곧 누룩이 들어간 빵도 함께 등장합니다. 레2에서는 누룩을 제단의 화제로 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화목제의 감사 식사에서는 유교병이 함께 놓이는 것입니다. 본문 자체가 감사 화목제에 무교병과 유교병이 함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여기서는 조심스러운 구별이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누룩은 문맥에 따라 거짓이나 불순한 것을 의미할 수 있으며, 무교는 순수함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레7:13의 유교병이 왜 특별히 감사 화목제에 허용되는지를 직접 풀어 주는 강한 AC원전은 이번 검색에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유교병은정확히이것을뜻한다’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문자적 구조만으로도 중요한 차이는 분명합니다. 번제처럼 모든 것을 불살라 주님께 올리는 제사와 달리 화목제는 제사장과 제물을 드린 사람이 함께 먹는 제사입니다. 즉 인간의 실제 삶과 기쁨과 감사가 주님 앞의 교제 안으로 들어오는 제사입니다. 이 점은 별도 심화에서 원전상 확실한 부분과 해석상 유력한 부분을 구별하여 더 살펴보겠습니다.
15절로 18절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감사로 드린 화목제의 고기는 반드시 그날 먹어야 하고 아침까지 남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서원이나 자원으로 드린 화목제는 이튿날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단 셋째 날에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며 남은 것은 불살라야 합니다. 실제 본문은 감사제와 서원·자원제 사이에 이 시간 차이를 명확히 둡니다. 여기에는 ‘오늘의선을어제의것으로살아서는안된다’는 매우 매력적인 영적 독법이 가능하지만, 스베덴보리의 직접 해설로 확인되지 않은 세부를 확정적인 상응으로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거룩한 선을 받아들이고 누리는 데에도 상태와 질서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인간의 proprium이 붙들어 자기 소유로 만들기 시작하면 처음의 거룩한 교통이 변질될 수 있습니다.
19절로 21절은 그래서 ‘먹는사람의상태’를 강조합니다. 화목제 고기가 부정한 것에 접촉되면 먹지 못하며,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거룩한 화목제물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 앞에서 ‘먹음’이 교통과 결합과 자기 것으로 삼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이는가뿐 아니라 ‘어떤상태에서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합니다. 거룩한 진리를 많이 알고 입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거룩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을 붙든 채 거룩한 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면 오히려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섞게 됩니다. 그래서 정결은 결합보다 먼저 옵니다. 레4-6의 속죄제와 속건제가 레7의 화목제보다 앞에 놓여 있는 것도 이런 큰 질서와 잘 어울립니다.
22절로 27절에서는 레3마지막에서 이미 보았던 ‘기름과피를먹지말라’는 명령이 다시 매우 강하게 반복됩니다. AC.5943(창45:18)은 바로 레7:23-26을 직접 인용하면서 제사의 기름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선, 곧 천적인 신성을 표상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레3에서 확인했듯이 피는 신적 진리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기름과 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은 선과 진리를 인간의 proprium이 자기 것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와 연결됩니다. 선은 주님의 것이고 진리도 주님의 것입니다. 인간은 그것들을 받아 살아갈 수 있지만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선하다’, ‘내가진리를소유한다’고 하는 순간 주님에게서 온 것을 proprium의 것으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28절로 36절은 레7의 절정 가운데 하나입니다. 화목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기름과 가슴을 ‘자기손으로’ 가져옵니다. 가슴은 여호와 앞에서 흔들어 요제로 삼고, 기름은 제단에서 불사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아갑니다. 또 오른쪽 뒷다리는 거제로 제사장에게 줍니다. 여기에는 매우 직접적인 원전이 있습니다. AC.10087(출29:26)은 가슴을 ‘체어리티의선’, 더 높은 의미에서는 신적 영적인 것과 연결합니다. 가슴이 심장과 폐가 있는 부분이며, 중간 또는 둘째 천국의 영적 선과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슴을 흔드는 것은 그 선이 살아나게 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오른쪽 뒷다리에 대해서도 원전이 놀랍도록 분명합니다. AC.10075(출29:22)는 오른쪽 넓적다리 또는 뒷다리를 가장 내적인 천적 선과 연결하고, 레7:32, 34-35를 직접 인용하면서 가슴은 영적 선, 오른쪽 뒷다리는 천적 선을 표상한다고 설명합니다. 가슴은 둘째 천국의 체어리티의 선을, 오른쪽 뒷다리는 가장 안쪽 셋째 천국의 천적 선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 둘이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것은 단순한 제사장의 몫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영적 선과 천적 선의 교통과 받아들임을 표상합니다.
더구나 AC.10093(출29:27)은 ‘흔드는것’과 ‘들어올리는것’의 차이까지 설명합니다. 가슴을 흔드는 것은 신적 진리가 ‘인정되어살아있게되는것’을, 오른쪽 뒷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은 주님에게만 속한 신적 선이 ‘지각되고받아들여지는것’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차이를 영적 천국과 천적 천국의 차이와 연결합니다. 영적 천국에서는 신적 진리를 이해를 통해 ‘인정’하고, 천적 천국에서는 신적 선을 의지를 통해 ‘지각’합니다. 레7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 요제와 거제의 작은 동작 안에 천국의 두 큰 질서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화목제의 ‘화목’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화목은 단지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다가 제물을 보고 마음을 푸시는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신적 선과 진리가 인간에게 전달되고,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것이 체어리티와 사랑의 삶으로 자기 것이 되고, 다시 주님께 그 근원을 인정하는 교통과 결합의 상태입니다. 제단에는 기름이 올라가고, 제사장에게는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가 돌아가며, 깨끗한 사람들은 화목제의 고기를 함께 먹습니다. 주님과 제사장과 백성이 하나의 제사 안에서 연결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37절과 38절은 레1-7전체를 아주 아름답게 닫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위임식, 화목제가 모두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하나의 질서 안에 있습니다. ‘참된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1771, TCR) 506도 레7:1, 11, 37을 직접 인용하면서 이러한 제사 규례들을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에 속한 것으로 열거합니다. 각각의 제사는 따로 떨어진 종교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주님과 결합시키는 하나의 거듭남의 질서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레1의 번제에서 인간 전체가 주님의 사랑에 드려지는 모습을 보았고, 레2의 소제에서 선과 진리가 삶의 예물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레3의 화목제에서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레4와 5의 속죄제에서는 악과 거짓으로부터의 정결을, 레5와 6의 속건제에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실제로 회복하는 삶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레7은 다시 화목제로 돌아와 그 모든 과정의 목적을 보여 줍니다. 거듭남의 목적은 죄 없는 사람처럼 자신을 관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 그것이 자기 삶이 되고, 그 선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모든 선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결합의 삶에 있습니다. 그래서 레7의 마지막 모습은 제물을 잃어버린 인간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함께 먹고 누리는 인간입니다. 정결은 화목을 향하고, 회개는 결합을 향하며, 거듭남은 마침내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을 향합니다. (SWC.레7해설)
레위기 3장은 ‘너희는기름과피를먹지말라’는 매우 강한 명령으로 끝납니다. 더구나 이것은 한 번의 제사에만 적용되는 임시 규정이 아니라 ‘너희의모든처소에서너희대대로지킬영원한규례’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기름과 피를 특별히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이 질문에는 스베덴보리가 놀랄 만큼 직접적인 답을 줍니다. ‘아르카나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0033(출29:22)은 제사와 번제에서 모든 피를 제단에 붓고 모든 기름을 제단 위에서 불살랐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피’는 신적 진리를, ‘기름’은 신적 선을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레3:17의 ‘너희는기름과피를먹지말라’를 직접 인용합니다. 즉 레3마지막 절의 의미를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피가 신적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상응입니다. 주님의 피 역시 가장 높은 의미에서 주님에게서 발출하는 신적 진리와 관계합니다. 기름은 신적 선, 곧 신적 사랑의 선과 관계합니다. 따라서 피와 기름은 제사의 수많은 요소 가운데서도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먹지말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실제 음식 규정이었지만 그 안의 영적 의미는 훨씬 깊습니다. 신적 선과 신적 진리는 인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 근원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주님에게서 선과 진리를 받아 마치 자기 것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고 원하고 행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생명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proprium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인간의 proprium은 선을 행하고 나면 ‘내가했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내가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올바르게 살면 자신의 선함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과 봉사와 체어리티까지 자기 공로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레3은 말합니다. ‘모든기름은여호와의것이니라.’ 선은 네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고 합니다. 선도 주님의 것이며 진리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거듭남 교리에서는 인간이 자유롭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악을 피하며, 선을 행해야 합니다. 인간은 마치 자기 힘으로 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선을 행할 힘과 진리를 볼 수 있는 빛이 실제로는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모든것이주님에게서오니나는아무것도할필요가없다’고 하는 것도 잘못이고, ‘내가선을행했으니이것은내선이다’라고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인간은 전력을 다해 선을 행하되 그 선의 근원을 주님께 돌립니다. 진리를 열심히 배우고 이해하되 그 빛의 근원을 주님께 돌립니다.
그래서 기름과 피를 먹지 않는다는 규정은 매우 깊은 겸손을 가르칩니다. 겸손은 ‘나는아무가치가없다’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겸손은 내 안의 모든 참된 선과 진리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레3의 마지막 한 절이 장 전체를 닫는 완벽한 결론이 됩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내장과 콩팥과 간 주변의 기름을 떼어 제단 위에서 불사른 모든 과정이 결국 한 고백을 향합니다. ‘선은주님의것입니다.진리도주님의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인정 안에서 참된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선의 주인이 되려는 욕망과 진리의 주인이 되려는 교만을 내려놓을수록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가 내 안에서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름과피를먹지말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 있습니다. 선을 행하되 그 선을 먹어 자기 공로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되 그 진리를 먹어 자기 지혜의 소유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를 받아 삶으로 살되 언제나 그 근원을 주님께 돌리라는 것입니다.
레3의 마지막 고백은 그래서 아주 단순하면서도 깊습니다. ‘모든기름은여호와의것이니라.’ 내가 행한 선 가운데 참으로 선한 것은 주님에게서 왔고, 내가 깨달은 진리 가운데 참으로 진리인 것은 주님에게서 왔습니다. 이것을 마음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주님과의 화목과 결합을 보존하는 깊은 겸손입니다. (SWC.레3심화3)
레위기 3장에 들어서면 세 번째 제사인 ‘화목제’가 등장합니다. 레1에서는 번제를, 레2에서는 소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번제에서는 제물 전체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졌고, 소제에서는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더하여 일부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나머지를 제사장들이 받았습니다. 이제 화목제에서는 다시 동물과 피가 등장하지만, 번제와는 제사의 구조가 다릅니다. 제물 전체를 불사르지 않고 특별히 ‘기름’을 떼어 제단 위에서 불사릅니다. 그리고 장 마지막에는 ‘너희는기름과피를먹지말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레3을 여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는 ‘왜화목제에서는피와기름이이토록중요하게다루어지는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제사에 사용되는 짐승들이 아무 의미 없이 선택된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아르카나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1823(창15:9)은 소, 염소, 숫양, 어린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 등이 각각 고유한 의미를 가졌으며, 바로 그 때문에 한 종류를 다른 종류로 임의로 바꾸어 드릴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일상의 번제, 안식일과 절기의 제사, 자원제와 서원제, 화목제, 속죄와 정결의 제사마다 특정 동물이 정해져 있었던 것은 각각 다른 천적·영적 상태를 표상했기 때문입니다.
레3에서는 소와 양과 염소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레1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소 떼에 속한 동물은 겉 또는 자연적 인간 안에 있는 선과 진리의 정서를, 양 떼에 속한 동물은 속 또는 영적 인간 안에 있는 선과 진리의 정서를 표상합니다. AC.9391(출24:5)은 소와 송아지가 자연적 인간의 선과 관계하고, 양과 어린양 등이 속 또는 영적 인간의 선과 관계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레3의 화목제 역시 인간의 어느 한 부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결합은 속 사람에서만 이루어지고 겉 사람은 그대로 남는 일이 아니라, 속과 겉이 함께 질서 안으로 들어오는 거듭남의 과정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화목제에서는 ‘수컷이나암컷이나’ 드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번제에서는 수컷을 요구했지만 화목제에서는 둘 다 허용됩니다. 이것이 의미 있는 차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확보한 직접 원전만으로 레3의 수컷과 암컷을 각각 세밀하게 나누어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미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물의 종류와 성별까지도 대표교회의 제사에서 아무 의미 없는 규정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원전이 직접 밝혀 주는 데까지만 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제물을 가져온 사람은 그 머리에 안수합니다. 레1에서 살펴본 것처럼 안수는 단순히 손을 얹는 의식이 아닙니다. AC.10023(출29:10)은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이 전달과 받아들임, 곧 커뮤니케이션과 리셉션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머리는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에는 그 제사가 예배자의 전 존재와 관계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화목은 바깥에서 어떤 의식 하나를 행함으로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과 관계합니다.
제물을 잡으면 제사장들이 그 피를 ‘제단사방에’ 뿌립니다. 피는 신적 진리를 표상합니다. 그리고 제단은 주님의 신적 선과 그분께 드리는 예배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바로 여기에서 화목제의 깊은 중심이 드러납니다. AC.10047(출29:16)은 제단 둘레에 피를 뿌리는 것이 신적 선과 신적 진리의 결합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인간의 거듭남 역시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를 결합하시는 과정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화목’을 단순히 ‘하나님께화가나셨는데제물을드려마음을풀어드린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부족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거듭남 교리에서 주님과 인간의 결합을 방해하는 것은 주님 편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 안의 악과 거짓입니다. 인간이 진리를 받아 악을 피하고, 그 진리가 선과 결합될 때 인간은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더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화목제의 피가 제단 사방에 뿌려지는 장면은 바로 이 ‘진리와선의결합’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런데 레3에서 특별히 반복되는 것은 ‘기름’입니다. 소를 드릴 때도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떼어내고, 양을 드릴 때도 기름진 꼬리와 내장의 기름을 떼어내며, 염소를 드릴 때도 같은 명령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침내 ‘모든기름은여호와의것이니라’고 선언합니다. 왜 기름이 이토록 중요할까요?
AC.10033(출29:22)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분명한 답을 줍니다. 제사의 ‘피’는 신적 진리를, ‘기름’은 신적 선을 표상합니다. 그래서 제사의 모든 피가 제단에 드려지고 모든 기름이 제단 위에서 불살라졌습니다. 레3의 기름은 단순히 고대인들이 가장 좋은 부위를 하나님께 바쳤다는 정도를 넘어섭니다. 기름은 선을, 가장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의 신적 선을 표상하기 때문에 여호와께 속한 것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여기서 레3의 구조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피와 기름이 함께 있습니다. 신적 진리와 신적 선입니다. 피는 제단 사방에 뿌려지고 기름은 제단의 불에 올라갑니다. 진리와 선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레2에서도 고운 가루와 기름을 통해 선과 진리의 결합을 보았는데, 레3에서는 그것이 피와 기름이라는 더욱 강렬한 표상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말씀의 진리는 인간을 선으로 이끌기 위해 주어지고, 선은 진리를 통하여 자신의 올바른 형태와 방향을 얻습니다. 거듭남은 이 둘이 인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기름을떼어내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어느 부위의 기름인지 매우 세밀하게 지정하신다는 점입니다. ‘내장에덮인기름’, ‘내장에붙은모든기름’, ‘두콩팥과그위의기름’, ‘간에덮인꺼풀’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얼핏 보면 현대 독자에게 가장 낯설고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세부에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아르카나가 들어 있습니다.
AC.10072(출29:22)는 내장을 덮는 기름이 ‘가장낮은것들안에있는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내장은 자연적 인간의 가장 낮은 것들과 관계하고, 그 위의 기름은 그 가장 낮은 차원까지 내려와 있는 선을 표상합니다. 이것은 거듭남이 인간의 고상한 종교적 생각에만 머물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말투, 습관, 돈을 쓰는 방식, 일상의 관계, 몸과 감각의 즐거움을 다루는 방식처럼 삶의 가장 바깥쪽까지 주님의 선이 내려와야 합니다.
간에 덮인 꺼풀도 의미가 있습니다. AC.10073(출29:22)은 그것을 ‘정결하게된자연적인간의내적선’과 연결합니다. 간이 몸에서 피를 정화하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이 표상에도 정결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외적인 행동만 조금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인간 안쪽에 숨어 있는 동기와 정서까지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이 있습니다. AC.10074(출29:22)는 콩팥이 ‘정결하게된자연적인간의내적진리’를, 그 위의 기름은 그 진리에 속한 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AC.10032은 콩팥의 기능에서 그 상응을 설명하면서, 콩팥은 살피고 정결하게 하고 바로잡는 진리와 관계한다고 말합니다. 말씀에서도 주님께서 ‘마음과뜻을살피신다’고 할 때 원문에서 콩팥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레3의 제단 위에는 단순히 동물의 지방 조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상응의 언어로 보면 인간의 자연적 삶 가장 깊은 곳까지 선과 진리가 들어와 정결하게 되고, 그 정결해진 선과 진리가 사랑의 불 안에서 주님께 돌려지는 모습입니다. 주님과의 화목은 인간의 일부만 주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상태가 아닙니다. 속 사람에서 시작된 주님의 질서가 자연적 인간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양의 화목제에서는 한 가지 독특한 것이 더 등장합니다. ‘미골에서벤기름진꼬리’입니다. 이 역시 아무 의미 없는 세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제사의 세세한 부위까지 천국의 아르카나가 들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 확보한 직접 원전만으로 레3의 ‘기름진꼬리’ 자체의 의미를 충분히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기름=선’이라는 확실한 원칙을 넘어 꼬리의 세부 의미를 임의로 만들어 내지 않겠습니다.
제사장은 이 기름들을 제단 위의 ‘번제물위에서’ 불사릅니다. 이 표현도 중요합니다. 화목제가 번제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단 위에 있는 번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번제가 사랑의 선으로부터 드리는 예배를 표상한다면, 화목제 역시 그 사랑의 질서 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진정한 화목과 결합은 사랑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것을 ‘여호와께드리는음식’이라고도 부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실제로 음식을 필요로 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제사와 번제가 ‘떡’ 또는 음식이라고 불린 이유가 그 안에서 표상된 천적 선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AC.10079(출29:23)는 떡이 사랑의 선을 의미하며, 제사와 번제 역시 이러한 이유로 ‘떡’이라 불렸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고기와 지방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표상하는 사랑의 선과 그 선에서 나오는 참된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향기로운냄새’가 됩니다. 레1과 레2에서 반복해서 만났던 표현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는 주님께 받아들여지는 예배를 표상합니다. 주님께서 동물의 타는 냄새를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나오는 예배가 주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결국 레1의 번제, 레2의 소제, 레3의 화목제는 서로 다른 제사이면서도 모두 한곳을 향합니다.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가 결합되고, 그 사람의 삶이 사랑에서 나오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17절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강력한 명령으로 마무리합니다. ‘너희는기름과피를먹지말라.’ AC.10033은 바로 레3:17을 직접 인용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피는 신적 진리를, 기름은 신적 선을 표상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취하여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신적 선과 신적 진리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영적 삶에 매우 중요한 경고가 됩니다. 내가 어떤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알아냈다’고 생각하고, 어떤 선을 행했다고 해서 ‘내가선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영적으로 피와 기름을 자기 것으로 취하려는 위험에 빠집니다. 인간은 선과 진리를 받아 자유롭게 살아야 하지만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선도 주님의 것이고 진리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레3은 ‘모든기름은여호와의것이니라’고 선언합니다.
화목제의 핵심은 결국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에게 신적 진리를 주시고, 그 진리를 통해 인간을 정결하게 하시며, 인간 안의 진리와 선을 결합시키십니다. 그 결합이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높은 곳에서 자연적 삶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선과 진리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인정합니다. 바로 그때 주님과 인간 사이에 참된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레3앞에서 우리는 ‘나는하나님과화목한가?’라는 질문만 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이 물어야 합니다. ‘내가알고있는진리가선과결합되어있는가?’, ‘내자연적삶의가장낮은부분까지주님의선과진리가내려와있는가?’, ‘나는내가행하는선을나의공로로여기고있지는않은가?’, ‘내가아는진리를나의지혜로여기고있지는않은가?’입니다.
레1에서 우리는 전부를 불살라 주님께 드리는 번제를 보았습니다. 레2에서는 고운 가루와 기름이 하나가 되는 소제를 보았습니다. 이제 레3에서는 피와 기름, 곧 진리와 선이 함께 제단에 드려지는 화목제를 봅니다. 거듭남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자기에게서 선과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더욱 깊이 인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레3의 마지막 선언은 화목제 전체를 꿰뚫는 고백이 됩니다. ‘모든기름은여호와의것이니라.’ 우리의 선도 주님의 것이고, 우리의 진리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 선과 진리가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우리의 삶은 주님과 결합하는 화목의 삶이 됩니다. (SWC.레3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