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9, AC.102-106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Verse 9,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 9절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퍼셉션을 허락하시고, 그의 안을 동산 삼아 그 안에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감각과 지식의 나무들을 두셨습니다.

 

 

102. 나무(A tree)는 퍼셉션(perception)을 상징합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a tree desirable to behold)는 진리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truth), ‘먹기에 좋은 나무(a tree good for food)는 선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good),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는 감각적인 것, 즉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을 상징합니다. A “tree” signifies perception; a “tree desirable to behold,” the perception of truth; a “tree good for food,” the perception of good; the “tree of live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

 

 

103. 여기서 나무가 퍼셉션을 상징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적 인간이 주제라면 그때는 달라지는데요, 주제에 따라 서술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rees” here signify perceptions is that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but it is otherwise when the subject is the spiritual man, for on the nature of the subject depends that of the predicate.

 

 

104. 오늘날에는 퍼셉션이라는 게 무엇인지(what perception is)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는 어떤 내적 느낌, 감각인데요, 어떤 것의 참되고 선한 여부를 아는 것(a certain internal sensation, from the Lord alone, as to 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입니다. 이는 태고교회에는 아주 잘 알려져 있던 것입니다. 천사들의 경우, 그들은 이 퍼셉션이 매우 완벽한데요, 그들은 이 퍼셉션으로 어떤 것의 참되고 선한 여부와 그것이 주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서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퀄러티(the quality of anyone)를 단순한 그의 접근과 그가 가진 생각 하나만으로도 알며, 또 그에 관한 지식을 가질 정도입니다. 영적 인간(The spiritual man)은 퍼셉션은 전혀 없고, 대신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A dead man)은 이 양심조차 없지요. 많은 사람이 양심이라는 게 뭔지 모르며, 하물며 퍼셉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At this day it is unknown what perception is. It is a certain internal sensation, from the Lord alone, as to 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 and it was very well known to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perception is so perfect with the angels, that by it they are aware and have knowledge of what is true and good; of what is from the Lord, and what from themselves; and also of the quality of anyone who comes to them, merely from his approach, and from a single one of his ideas. The spiritual man has no perception, but has conscience. A dead man has not even conscience; and very many do not know what conscience is, and still less what perception is.

 

 

105.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이며, ‘동산 가운데(in the midst of the garden)는 속 사람의 의지 안(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입니다. 의지라는 것은, 말씀에서는 마음(the heart)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천사와 함께 주님의 주된 소유(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입니다. 이 의지라는 것이 비록 사람의 것인 양 여기저기 기술되고는 있지만, 사실 사람이란 아무도 스스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의지, 즉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은 사람의 것이 아니며, 탐욕(cupidity), 사람들은 이걸 의지라고 하는데, 이 탐욕이 바로 사람의 것입니다.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가 있는 데지요, 여기가 의지이며, 그리고 인간한테는 의지는 전혀, 대신 탐욕만 있을 뿐이므로, ‘생명나무는 참으로 주님의 자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랑과 신앙, 결과적으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입니다. The “tree of lives” i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in the midst of the garden” is 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 The will, which in the Word is called the “heart,” is 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 with man and angel. But as no one can do good of himself, the will or heart is not man’s, although it is predicated of man; cupidity, which he calls will, is man’s. Since then the will is the “midst of the garden,” where the tree of lives is placed, and man has no will, but mere cupidity, the “tree of lives” is the mercy of the Lord, from whom comes all love and faith, consequently all life.

 

 

106. 그러나 동산의 나무(the tree of the garden), 즉 퍼셉션(perception),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 즉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he tree of knowledge), 즉 감각적인 것, 그리고 단지 기억-지식일 뿐인 것에서 시작하는 신앙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nature of the “tree of the garden,” or perception; of the “tree of lives,” or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and of the “tree of knowledge,” or faith originating in what is sensuous and in mere memory-knowledge, will be shown in the following pages.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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