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9,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truth from good'과 'good from truth'의 차이는 홍수 전과 후의 차이
번역/AC 2024. 2. 24. 06:57※ AC.209,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AC.207-210) - 'truth from good'과 'good from truth'의 차이는 홍수 전과 후의 차이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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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쓰인 표현들, 가령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the tree was good for food, pleasant to the eyes, and desirable for giving intelligence) 같은 표현들은 저 태곳적 살던 사람들의 지니어스(genius)에 맞게 조정된 그런 표현들인데, 특별히 의지에 관해서입니다. 그들의 악이 의지에서부터 샘솟듯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이 나오는 데를 보면, 이런 표현들은 의지라기보다는 이해에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는 태고인들은 선에서 비롯된 진리(truth from good)를 가지고 있었지만, 홍수 후를 살았던 사람들은 진리에서 비롯된 선(good from truth)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The expressions here employed, as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pleasant to the eyes, and desirable for giving intelligence,” are such as were adapted to the genius of those who lived in that most ancient time, having especial reference to the will, because their evils streamed out from the will. Where the Word treats of the people who lived after the flood, such expressions are used as relate not so much to the will as to the understanding; for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ruth from good, but those who lived after the flood had good from truth.
※ 참으로 천국을 비롯, 만물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곧 주님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로 되어 있는데, 만물 그 어디를 보아도, 그리고 인류의 역사, 그 흐름을 보아도 결국은 이 선과 진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