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7 심화

2. 자복만으로 끝나지 않고 보상까지 해야 했을까?’

 

5 전반부에는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라는 말씀이 나오지만 후반부의 속건제에 들어가면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성물에 잘못을 범한 사람은 그 잘못을 보상하고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제사장에게 주어야 합니다. 실제 손상이 발생했다면 실제 회복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회개를 마음의 상태로만 생각하면 우리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으니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의 악이 다른 사람이나 어떤 질서에 실제 손상을 입혔다면 그 결과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훔친 물건은 여전히 상대에게 없고, 거짓말로 훼손된 명예는 여전히 손상되어 있으며, 내가 회피한 책임은 누군가가 대신 짊어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회개는 가능한 경우 그 손상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이 점에서 속건제는 매우 실제적인 거듭남의 제사입니다. 회개가 진실한지는 감정의 강도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눈물을 많이 흘리고 죄책감을 크게 느끼면서도 실제 행동은 하나도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감정 표현은 크지 않아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돌려줄 것을 돌려주며 다시 같은 악을 행하지 않도록 삶을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5의 속건제는 후자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특히 오분의 일을 더하여라는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649(6:15)는 레5:16을 직접 인용하면서 보상 후 더해지는 오분의 일을 말씀에서 다섯이 어떤 것 또는 조금을 의미하는 사례와 연결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757-1759, AE) 548(9:5)은 레5:16을 비롯하여 율법에서 오분의 일을 더하도록 한 여러 경우를 직접 열거하면서, 양과 관련된 이 오분의 충분한 만큼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규정을 단순한 고대의 벌금제도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잘못을 대충 덮어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잡기에 충분하도록 회복하려는 태도와 연결하여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모든 잘못에는 반드시 20퍼센트를 갚아야 한다는 식으로 오늘날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상응의 핵심은 숫자를 현대의 계산식으로 옮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가 최소한의 면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과했으니 됐지’, ‘원금은 돌려줬으니 됐지가 아니라 내가 일으킨 손상을 진실하게 바라보고 가능한 범위에서 충분히 바로잡으려는 마음입니다.

 

물론 모든 손상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직접 사과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오래전의 말 한마디가 남긴 상처를 완전히 없앨 수도 없습니다. 이런 경우 회개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찾는 것입니다. 같은 악을 반복하지 않고, 비슷한 상황에서 이제는 진실을 선택하며, 과거에 해쳤던 종류의 이웃을 이제는 돕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불가능한 과거 복원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유 안에서 삶의 방향이 실제로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레5에서 자복보상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자복은 속의 인정이고 보상은 가능한 경우 그 인정이 겉의 삶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속 사람에서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정한 것이 겉 사람의 행동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바로잡겠습니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입니다.

 

5의 속건제는 우리에게 아주 간단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용서를 구한 가운데 아직 내가 바로잡을 있는 것이 남아 있는가?입니다. 있다면 회개는 거기까지 가야 합니다. 주님의 사함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게 하는 은혜가 아니라, 진실을 직면하고 가능한 것을 바로잡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힘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에서 시작된 회개가 잘못을 보상하되에까지 이르는 것, 그것이 레5가 보여 주는 살아 있는 거듭남의 모습입니다. (SW.7 5 심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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