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또는 영에 관하여 그들이 육체의 삶 동안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영들과의 체험에서 얻은 몇 가지 사례

 

AC.445

더 나아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학자들은 죽은 뒤에도 살아갈 영혼, 곧 영을 ‘추상적 생각’(abstract thought) 외에 다른 것으로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연장(extension)과 연장에 속한 것을 암시하는 어떤 표현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데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떤 주체(subject)에서 떼어 내어 추상적으로 생각한 생각 자체에는 연장이 없지만, 생각의 주체와 생각의 대상에는 연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장이 없는 대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경계를 정하고 연장을 부여합니다. 이것은 학자들이 영혼 또는 영을 단지 생각으로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며,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음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It was further remarked, that the learned have no other belief than that the soul which is to live after death, that is, the spirit, is abstract thought. This is very manifest from their unwillingness to admit of any term that implies extension and what belongs to extension, because thought abstractedly from a subject is not extended, whereas the subject of the thought, and the objects of the thought, are extended; and as for those objects which are not extended, men define them by boundaries and give extension to them, in order that they may comprehend them. This shows very clearly that the learned have no other conception of the soul or spirit than that it is mere thought, and so cannot but believe that it will vanish when they die.

 

해설

AC.445는 바로 앞 AC.444에서 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보다 일반적인 문제로 확대합니다. AC.444의 사람은 영을 아무런 연장도 유기적 실체도 없는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AC.445에서는 이러한 관념이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당시 학자들에게 널리 나타나는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문제 삼는 핵심은 영혼의 존재를 말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추상적 생각’(abstract thought)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추상적 생각’이라는 표현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누군가’와 그가 생각하는 ‘무엇’을 모두 떼어 낸 채 ‘생각’ 자체만을 하나의 독립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생각은 반드시 생각하는 주체에게 속한다고 봅니다. 생각 자체를 주체로부터 추상하면 연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생각하는 주체와 그 생각이 향하는 대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을 단순히 ‘생각’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생각하고 지각하며 살아 있는 실제 주체로서의 영은 설명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 때문에 AC.445에서는 ‘생각의 주체’(subject of the thought)와 ‘생각의 대상’(objects of the thought)을 구별합니다. 이 구별은 앞의 AC.444와 직접 연결됩니다. 사후의 영은 단순히 ‘생각이 남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고, 원하고, 생각하는 주체입니다. AC.444에서 영이 ‘유기적 실체’라고 한 것도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생각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며, 스베덴보리는 그 주체를 아무런 실체도 없는 추상적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연장이 없는 대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경계를 정하고 연장을 부여하여 이해한다’는 말은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사고가 어떤 것을 이해할 때 그것을 전혀 무규정적인 상태로 두기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직접 공간적 연장을 가진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대상조차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경계를 지어 하나의 구별되는 대상으로 파악합니다. 즉 인간의 이해는 어떤 것을 파악하려면 그것을 다른 것과 구별되는 일정한 것으로 생각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을 아무런 형체나 구별도 없는 순수한 추상으로 생각하는 데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AC.445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한 사고방식이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적합니다. 영혼이나 영을 ‘단지 생각’이라고 여긴다면 육체가 죽을 때 그 생각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실제로 살아 있는 영적 주체의 활동으로 보지 않고 육체에 붙어 있는 추상적인 현상처럼 생각한다면,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그 생각의 주체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실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영을 추상적 생각으로만 이해하는 관념 안에 이미 사후 존속을 믿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들어 있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AC.443-445는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AC.443에서는 육체가 사라지면 영의 삶이 희미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다루었고, AC.444에서는 영이 연장도 유기적 실체도 없는 단순한 생각이라는 관념을 한 사람의 사례를 통해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AC.445에서는 그것을 학자들의 일반적인 관념으로 확대합니다. 세 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육체에는 강한 실재성을 부여하면서 영에는 그와 같은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사후 세계 체험을 통해 바로 이 관념을 뒤집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말하는 ‘연장’의 문제는 단순히 영이 공간을 얼마나 차지하는가를 묻는 철학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밑에는 ‘영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인가, 아니면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 나타나는 추상적인 생각에 불과한가?’라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AC.445에서 스베덴보리가 경계하는 것은 영을 지나치게 ‘비물질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결국 아무런 실재성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서 사후에 살아가는 영은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이며, 바로 그 존재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감각과 욕구와 사고를 가지고 계속 살아갑니다. (AC.445 해설)

 

 

 

AC.446, 창4 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의 실재를 부정하는 오류’

영혼 또는 영에 관하여 그들이 육체의 삶 동안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영들과의 체험에서 얻은 몇 가지 사례 AC.446나는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견해, 곧 영은 눈으로 볼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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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4, 창4 뒤, ‘영은 단지 생각일 뿐이며 아무런 형체도 없는가?’

영혼 또는 영에 관하여 그들이 육체의 삶 동안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영들과의 체험에서 얻은 몇 가지 사례 AC.444이 세상에 살 때 영은 아무런 연장(extension)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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