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창5:1)

 

 

469. ‘계보를 적은 책’이라는 표현은 태고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목록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표현은 그의 영적 창조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표현은 그의 천적 창조를 각각 상징하며, 이런 걸 볼 때, 이 구절은 태고 교회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denotes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signifies that he was made celestial: thus it is a descri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470. ‘계보를 적은 책’(출생들에 관한 책)이 태고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목록표라는 사실은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너무나 분명한데요, 이 5장에서 11장, 에벨의 때까지는 이름들이 특정 인물들(persons)을 상징하는 것이 절대 아닌, 실제적인 것들(things)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at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very evident from what follows, for from this to the eleventh chapter, that is, to the time of Eber, names never signify persons, but actual things.

 

태곳적 인류는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 구별되었습니다. 하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 및 그들을 섬겼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하나의 가문은 좀 더 크고 작은 가족들로 구성되는데, 멀리 떨어진 건 아니지만 함께 사는 것도 아닌, 그런 구성으로, 하나의 민족은 좀 더 많고 적은 가문으로 각각 구성되었습니다. In the most ancient time mankind wer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 house consisting of the husband and wife with their children, together with some of their family who served; a family, of a greater or lesser number of houses, that lived not far apart and yet not together; and a nation, of a larger or smaller number of families.

 

 

471. 그들이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만 구별되며, 그렇게 자기들끼리 따로 지낸 이유는, 그렇게 해야 교회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해야 모든 가족과 가문이 그들의 어른 아래로 모이고, 그래야 사랑과 참된 예배가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y dwelt thus alone by themselves, distinguished only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was that by this means the church might be preserved entire, that all the houses and families might be dependent on their parent, and thereby remain in love and in true worship.

 

또한 인상적인 것은, 각 가족마다 다른 가족과 구별되는 특이한 천성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 심지어 먼 후손까지도 그들의 부모 및 조상으로부터 어떤 특이한 천성과, 그들의 얼굴 생김새 및 다른 많은 특징들을 가지고 서로 구별될 수 있는 그런 특징적 캐릭터를 물려받는다는 것은 지금도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It is to be remarked also that each house was of a peculiar genius, distinct from every other; for it is well known that children, and even remote descendants, derive from their parents a particular genius, and such marked characteristics that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 face, and by many other peculiarities.

 

이렇게 거주함으로써 서로 뒤섞이는 대신 정확히 구별될 수 있도록, 주님은 이런 식의 거주 방식을 기뻐하셨습니다.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ight not be a confounding, but an exact distinction, it pleased the Lord that they should dwell in this manner.

 

이렇게 교회는 주님의 왕국을 생생하게 나타낸 표상이었습니다. 주님의 왕국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사이어티들이 있으며, 각각의 소사이어티는 그들의 사랑과 신앙에 따라 다른 모든 소사이어티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Thus the church was a living representative of the kingdom of the Lord; for in the Lord’s kingdom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each one distinct from every oth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이것이 앞에서 관찰한 것처럼, ‘혼자 사는 것’(cf. AC.139, 창2:18)과, ‘장막에 거주함’(cf. AC.414, 창4:20)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This, as observed above, is what is meant by “living alone,” and by “dwelling in tents.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창4:20)

 

또 같은 이유로, 주님은 유대 교회가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 구별되며, 그래서 모두가 자기 친족 가운데서만 결혼하도록 명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For the same reason also it pleased the Lord that the Jewish church should b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that everyone should contract marriage within his own family; but concerning thi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47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표현은 그가 영적으로 지음 받고 있음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표현은 그가 천적으로 지음 받고 있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 사실은 앞에서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을 보시면 나옵니다. That by the “day in which God created man” is signified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that by “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 is signified his being made celestial, appears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며, ‘짓다’(make)라는 말은 온전해져 가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2장 말씀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창조하기’(creating), ‘짓기’(forming) 및 ‘만들기’(making) 간 정확한 차이가 관찰되기 때문에, 거기서 영적 인간을 천적으로 변화시키신 것을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창2:2)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구절들에서도 ‘창조하다’(create)는 영적 인간과, ‘짓다’(make), 즉, 온전하게 하다는 천적 인간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cf. AC.16, 88) The expression to “create” properly relates to man when he is being created anew, or regenerated; and the word “make,” when he is being perfected; wherefore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observed between “creating,” “forming,” and “making,” as was shown above in the second chapter, where it is said of the spiritual man made celestial that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in making”; and in other passages also, to “create” relates to the spiritual man, and to “make,” that is, to perfect, to the celestial man. (See n. 16 and 88.)

 

 

473. ‘하나님의 모양’(likeness)은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은 영적 인간임 또한 앞서 보여드렸습니다. (cf. 창1:26) That a “likeness of 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 of 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1:26)

 

형상’은 ‘모양’을 준비하는 것이며, ‘모양’은 실물과 똑같아 보이는 모방입니다. 천적 인간은 주님의 ‘모양’으로서, 주님에 의해 온전히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474. 이런 이유로,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가 태고 교회의 출생 혹은 퍼져나감인 점을 볼 때, 이것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가는 첫 번째 묘사입니다. 퍼져나감이 여기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2021-06-28(D2)-매일예배(AC.469-474, 창5,1), '창조(create)와 지음(make), 모양(likeness)과 형상(image)'.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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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epCkxlkXxI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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