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17
94.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Verse 7.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spiraculum]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겉 사람을 지으심입니다. 그의 겉 사람은 전(before)까지는 사람(man)이 아니었습니다. 5절에,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o “form man, dust from the ground” is to form his external man, which before was not man; for it is said (verse 5)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그에게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시는 것을,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의 겉 사람 또한 살아있는(alive) 상태가 되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To “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is to give him the life of faith and love; and by “man became a living soul” is signified that his external man also was made alive.
95. 겉 사람의 생명, 즉, 앞의 두 구절에서는 신앙 혹은 이해(understanding)의 생명이, 본 절에서는 그의 사랑 혹은 의지(will)의 생명이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The life of the external man is here treated of—the life of his faith or understanding in the two former verses, and the life of his love or will in this verse.
지금까지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굴복, 그를 섬기는 걸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 싸우는 편이었지요. 이런 이유로, 겉 사람은 아직 ‘사람’(man)이 아니었습니다. Hitherto the external man has been unwilling to yield to and serve the internal, being engaged in a continual combat with him, and therefore the external man was not then “man.”
그러나 이제 천적 인간이 되면서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복종, 그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생명, 사랑의 생명으로 변화되어 가면서(being so rendered) 겉 사람은 또한 ‘사람’이 됩니다. Now, however, being made celestial,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it also becomes “man,” being so rendered by the life of faith and the life of love.
그를 준비하는 것은 신앙의 생명이지만, 그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생명입니다. The life of faith prepares him, but it is the life of love which causes him to be “man.”
9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라고 말씀하신 부분인데요, 이 경우는 이렇습니다. As to its being said that “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case is this:
고대에, 그리고 말씀에서, ‘코’(nostrils, 콧구멍)는 그 향기의 결과, 무엇이든 고마운 것(grateful), 감사한 것으로 이해되었는데요, 그게 바로 퍼셉션(perception)입니다. In ancient times, and in the Word, by “nostrils” was understood whatever was grateful in consequence of its odor, which signifies perception.
※ 이 퍼셉션은 홍수 이후 사람들은 알 수 없게 된, 오직 홍수 이전인 태고교회 사람들한테만 허용된 영적 통찰력입니다. 내적 호흡이라 할 수도 있는, 또는 입류(入流, influx)의 다른 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주님과 결합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입니다. 천사들은 지금도 이 퍼셉션으로 주님과 결합하고 있습니다. 이 퍼셉션이 사라져서 인류가 더 이상 주님과 결합할 수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그 빈자리를 ‘양심’(良心, conscience)이라는 것으로 대신하셔야만 했을 정도로 아주 본질적인 것입니다. 인류는 어떤 식으로든 늘 주님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순간이라도 소위 존재, 존속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허용되었던 퍼셉션이 닫힌 것은 그들의 어두워짐, 타락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여호와께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반복되는데요, 가령, 번제(the burnt offerings) 및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현한 것들에게서 주님은 ‘어떤 쉼과 안식의 향기(an odor of rest)를 맡으셨다’ 같은, 그런 기록들입니다. 사랑과 신앙에 관련된 것들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가장 좋아하시는 것, 가장 고마워하시는(most grateful) 것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 하시는 것입니다. On this account it is repeatedly written of Jehovah, that he “smelled an odor of rest” from the burnt offerings, and from those things which represented him and his kingdom; and as the things relating to love and faith are most grateful to him, it is said that “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출29:18)와 같은 표현들은 정말 자주 반복되지요. 또, 이것을 바울은 로마서에서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표현했지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 곧 주님을 가리켜 ‘콧김’(애4:20)이라 하신 것입니다. Hence the anointed of Jehovah, that is, of the Lord, is called the “breath of the nostrils” (Lam.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애4:20)
주님 자신 요한복음에서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라 하심으로써 같은 걸 상징하셨습니다. And the Lord himself signified the same by “breathing on his disciples,” as written in John: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20:22)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ye the Holy Spirit. (John 20:22)
97. ‘호흡’(breathing)과 ‘숨’(breath)으로 생명을 묘사하는 이유는,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사랑과 신앙의 상태들을 호흡의 상태들로 지각했기 때문인데요, 이 호흡 상태들은 후에 그 후손들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변했습니다. The reason why life is described by “breathing” and by “breath” is also that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perceived states of love and of faith by states of respiration, which were successively changed in their posterity.
이것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오늘날, 이와 관련해서 알려진 게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Of this respiration nothing can as yet be said, because at this day such things are altogether unknown.
태고시대 사람들은 이런 것에 매우 친숙했고, 내세의 사람들 역시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 위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런 것에 대해 친숙하지도, 접해본 적도 없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영 또는 생명을 ‘바람’(wind)에 비유하는 이유입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were well acquainted with it, and so are those who are in the other life, but no longer anyone on this earth, and this was the reason why they likened spirit or life to “wind.”
주님 또한 사람의 거듭남을 이야기 하실 때, 요한복음에서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The Lord also does this when speak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in John: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8)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voice thereof, and knowest not whence it cometh, or whither it goeth; so is every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John 3:8)
다윗의 시편들에서도 So in David: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33:6) By the word of Jehovah were the heavens made, and all the army of them by the breath of his mouth. (Ps. 33:6)
29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104:29-30) Thou gatherest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thou sendest forth thy spirit, they are created, and thou renewest the faces of the ground. (Ps. 104:29–30)
‘숨’을 사용하여 신앙의 생명, 사랑의 생명을 표현하는 것은 욥기서에도 나옵니다. That the “breath” [spiraculum] is used for the life of faith and of love, appears from Job: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욥32:8) He is the spirit in man, and the breath of Shaddai giveth them understanding. (Job 32:8)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33:4) The spirit of God hath made me, and the breath of Shaddai hath given me life. (Job 33:4)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7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을 지으시되 그 안에 주님의 생명, 사랑과 신앙의 생명인 퍼셉션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영적 인간 중이었을 때는 겉 사람이 여전히 속 사람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이제 천적 인간이 되고 나서는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겉 사람이 속 사람을 사랑하여 자원함으로 순종하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신앙의 생명을 받은 겉 사람은 비로소 생령, 곧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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