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도무지 절제할 수 없다면 (2025/9/9)

 

잠깐 쉰다고 무심코 스마트폰이나 PC를 켜 웹툰이나 유튜브, 인터넷이나 게임 등을 하느라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일에 몰두하는 것은,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영적 실상을 알게 되면 정신이 번쩍 나는 아주 안타까운 습관입니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이때 하늘, 곧 천국을 향한 창이 닫히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천국 입류(入流, influx)의 유입이 끊기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옥의 각종 위험에 노출,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멀리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걸로 창세기부터 말씀을 읽거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와있는 천사들은 말씀에 들어있는 아르카나(arcana, 秘義, 주님이 겉 글자 안에 담아두신 속뜻, 천국 천사들이 사용하는 성경은 이 아르카나로 기록되어 있음)를 통해 크게 감동, 주님이 자기들한테 주신 큰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를 지켜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더 이상 무방비 상태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상하게 일상 중 일이 계속 꼬이고, 악과 거짓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며,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지금 내 상태가 지옥 영들이 가까이하기 알맞은 상태는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 지옥은 모두 상태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비슷하면 가까이, 다르면 멀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내 속 사람의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 천국이 내게 열릴 수도, 지옥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일상 중에도 늘 천국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늘 천국과 연결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말씀 생활입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유튜브, 게임 등으로 보내는 시간들이 제법들 되실 텐데, 이제는 의지를 사용하셔서 조금씩 스마트폰의 역기능이 아닌, 순기능의 일상들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편리하게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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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창2:3까지를 창1로 했어야 하는 이유 (2025/9/8)

 

사실 개인적으로는 창세기 23절까지를 창세기 1장으로 했었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하나님’이라는 호칭 때문인데, 아직 영적으로 죽어있는, 즉 아직 거듭남의 과정이 시작도 안 된 사람들(1:2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이거나 영적 인간(靈的, spiritual man)이 되어가는 중인 사람들, 곧 거듭남의 과정 중인 사람들(1:3-2:3)한테는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의 두 호칭인 ‘여호와’와 ‘하나님’ 중 후자가 해당되며,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는 내내 ‘하나님’으로 호칭하는데 그것이 창세기 23절까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라는 호칭은 24절부터 나옵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것이죠. 창1:1-창2:3까지가 하나, 창2:4부터가 또 하나,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아래 말씀처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일곱째 날’이라는 표현 또한 분명히 나오는 걸로 보아 그렇다면 분명 천적 인간의 시작이기도 하여 좀 어리둥절한 게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이라는 호칭과 ‘일곱째 날’이라는 표현이 함께 쓰인 데에는 무슨 아르카나가 있는 건지 아직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면 공유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두 호칭, ‘여호와’와 ‘하나님’은 각각 선(good)과 진리(truth) 혹은 사랑(love)과 신앙(faith)으로 연결되며, 거듭남이 완료되어 ‘일곱째 날’, 곧 천적 인간(天的, celestial man)이 되기 전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진리로, 그러니까 신앙으로 먼저 주님을 접하게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 중 먼저 이해로 접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하나님’ 호칭이 나오는 것이지요.

 

주님의 신성 호칭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이런 것처럼, 주님의 신적 인성(人性, The Divine Human) 호칭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예수’는 선 또는 사랑, ‘그리스도’는 진리 또는 신앙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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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창조와 동물 창조 사이에 두 큰 광명체를 창조하신 이유 (2025/9/2)

 

창조의 육(六) 일, 곧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 중 셋째 날 풀, 채소, 나무 창조에서 다섯째 날 수중 생물과 공중의 새, 그리고 여섯째 날 땅의 짐승 창조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중간인 넷째 날에 두 큰 광명체를 창조하신 이유는, 머리 신앙, 지식 신앙,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신앙, 그러니까 잘난 체하는 신앙에서 가슴 신앙, 고백 신앙, 모든 공을 주님께 돌리는 신앙, 그러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애정의 신앙으로 넘어가려면 중간에 사랑과 신앙이라는 불이 궁창이라는 속 사람 안에 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 사람 안에 일단 이 두 큰 광명체, 곧 사랑과 신앙의 불이 켜지면, 그때부터 그동안 차갑고 냉랭하던, 그래서 못 움직이던(inanimate) 식물 신앙이 이제는 따뜻하고 온기 넘치는, 움직이는(animate) 신앙, 살아있고 생기 넘치는 동물 신앙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천국의 모든 힘과 능력이 우리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으로, 그리고 우리 몸 각 지체와 부분 및 각종 장기로 흘러들어오며, 영육 간 우리 몸 전체가 천사의 돌봄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의 각종 장애와 질병, 묶임과 매임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아멘, 할렐루야!

 

아, 그리고 한 가지! 그런데 이 두 큰 광명체가 속 사람 안에 창조되는 것은 본인이 원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저 식물 신앙에만 머무를 뿐, 주님의 이 두 큰 광명체, 곧 사랑과 신앙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주위에서 무슨 중보 기도를 해도 소용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저런 영적 전투란 전투는 다 겪은 후, 그러니까 갈 데까지 다 간 후에야 겨우 원하게 됩니다. 이마저도 사실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이지만요. 그러니까 질러가면 되는 길을 괜히 빙 돌아가지 마시고 얼른 하루속히 주님께 엎드리시고, 주님의 두 큰 광명체,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이 내 속 사람 안에 창조되어 불이 환하게 켜지기를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귀신이 들렸거나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몇 년째 누워계시는 등 그러니까 얼핏 우리 보기에 자력으로는 주님을 구하실 수 없을 것 같은 분들도 주님 보시기에는 그 속 사람이 준비되어 주님의 말씀, 곧 천국의 능력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분들한테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복음서 수많은 사례가 그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속 사람이 중요합니다. 천국도, 치유도, 묶임과 매임에서 풀림도 모두 속 사람의 상태와 그 역량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중보 기도는 그저 거들 뿐입니다. 본인이 원해야 합니다. 특히 속 사람이 말이죠.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15: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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