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창2:17)의 속뜻

 

먼저 여러 필요한 사전 배경이 되는 말씀들을 좀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선 위 제목에서 ‘열매’ 부분을 괄호 처리한 것은, 이 부분은 원문에는 없는, 우리말 번역자들이 적당히 의역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지만, 그렇게 되면, ‘나무를 먹지 말라’가 되어 너무 이상해 보이는 번역이 될 것 같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는 말씀을 겉뜻, 겉 글자로만 읽었기 때문인데요, 말씀은 사람과 같아 사람이 영과 육으로 되어 있듯 말씀도 영과 육, 즉 속뜻과 겉뜻으로 되어 있음을 저들 번역가들이 몰랐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우리는 겉, 즉 외적(外的, external) 존재로 물질계인 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고로 말씀을 겉뜻으로 읽지만, 천사들은 속, 즉 내적(內的, internal) 존재로 영계에 존재하기에 말씀을 속뜻으로 읽으며, 또한 말씀은 오직 천국과의 상응으로만 기록, 그 일점일획이 모두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천사들처럼 속뜻으로 읽어야 비로소 모든 게, 소위 무슨 난해구절이니 하는 거 없이, 온전히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주님과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계속해서 그래서 그 안에 이런 속뜻이 있는 성경이라야 ‘말씀(The Word)이라 할 수 있으며, 말씀 안에 들어있는 이런 천국의 비밀을 가리켜 ‘아르카나(라틴, arcana, 秘義)라 합니다. 이 아르카나를 주님의 생명으로 이해하셔도 되지 않을까 하며, 그러므로, 어떤 글이 ‘말씀’이 되려면, 그 안에 주님의 아르카나, 곧 생명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성경 66권 중 어떤 성경이 진정한 ‘말씀’인지는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66권 중 말씀(The Word)은...

성경 66권 중에서 속뜻(internal sense, inner meaning)이 있는 성경을 '말씀'(The Word, 총 34권)이라 하며,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 : 창, 출, 레, 민, 신, 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시, 사, 렘, 애, 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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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아브라함 등장 전까지는 실제 역사가 아닌, 인류의 유구, 장구한 역사를 크게 두 교회 시대로 나누어 매우 높은 수준의 스토리 텔링처럼 엮은, 그러나 그 안에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아르카나가 들어있는 그런 기록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건,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AC.66, 창1 뒤, ‘말씀의 네 가지 스타일’

※ AC.66, 창1 뒤, ‘말씀의 네 가지 스타일’ 66 말씀(the Word)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스타일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 스타일입니다. 그들의 표현 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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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지구 나이에 대하여 지질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즉, 45, 6억 년 정도로 본다는 말이지요. 그 가운데 인류의 등장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 아 참, 그렇다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건 절대 아닙니다. 살짝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진화론은 오늘 본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것'과 연결됩니다.

 

현재 아브라함의 등장을 학자들은 대략 기원전 최대 1900년 정도로 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의 세월, 즉 창세기 1장 1절부터 아브라함의 등장 전까지의 역사, 그 장구한 세월은 감히 상상이 안 될 정도로 까마득합니다. 이 장구한 세월을 주님은 고작 창세기 앞부분 열한 장으로 요약, 정리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아르카나를 담아놓으신 거지요.

 

※ 이걸 개신교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3:16)가 되겠습니다.

 

학자들은 무슨 좀 자세한 다큐가 필요하겠지만, 주님은 오직 사람의 생명, 곧 구원에 필요한 것 중심으로 그 일점일획에 초정밀, 고밀도 압축을 해 놓으셨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를 통해 자세히, 정말 자세히 딕테이션(dictation, 받아적기)하게 하셨지요. 그것이 스베덴보리가 8년에 걸쳐 상술한 ‘Arcana Coelestia’(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天界秘義, 1749-1756, 창, 출 속뜻 주석)이며,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주석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입니다. 스베덴보리 관련해서는 아래 글들을 참고하세요.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다음은 제가 번역하는 책들의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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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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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저 유구, 장구한 세월을 그 시대 일어났던 두 교회 시대를 중심으로 기술하셨다 하였는데,

 

※ 사실 지구의 나이가 45억년 정도 어쩌고 하지만, 이 역시 영원하신 주님께는 한 순간이지 싶습니다.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천국은 시공간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와 상태변화의 나라입니다.

 

그게 바로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와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입니다. 이 구분은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노아의 홍수’로 알고 있는 어떤 상황이지만, 내면적, 내적(內的, internal)으로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이라고 하는, 주님이 태고교회에게 부여하신 어떤 선천적, 태생적 능력의 유무였습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자신, 설명하기가 참 쉽지 않은 거라 하였는데, 그러니까 천국 천사들의 어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말합니다. 이것은 지상의 무엇으로 학습하여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닌,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 곧 주님의 선과 진리에 대한 통찰력입니다. 이 퍼셉션이 있는 사람 또는 천사는 어떤 것의 성질, 곧 그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과 진리인지를 즉시, 그리고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에 비해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걸 잘 몰라 늘 주님의 뜻 알기 위해 참 다양한 애들을 쓰고 있지요. 태고교회가 누렸던 이 ‘퍼셉션’이 우리한테는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우리는 늘 뿌연 상태, 흐리멍덩한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천지창조의 첫 육 일간 기록으로 알고 있는 창세기 1장은 사실은 쌩 무지렁이였던, 즉 완전히 자연적, 감각적, 세속적이기만 했던 인간이 주님의 자비로 빛을 받아 밟게 되는 거듭남의 대략 여섯 단계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기간을 그는 ‘영적 인간(靈的, a spiritual man)으로 지내다가 그 마지막 단계, 그러니까 창세기 2장부터는 안식 상태인 ‘천적 인간(天的, a celestial man)이 됩니다. 즉 창세기 1장은 영적 인간, 2장은 천적 인간의 장이지요. 재미있는 건, 창세기 1장에서는 주님의 칭호가 오직 ‘하나님’으로만 나오는데, 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뀝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네, 이런 차이가 이 ‘영적, 천적’이라는 거에 있는데요, 이는 굉장히 근원적이고, 태생적인 차이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건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천적 나라(天的, the celestial kingdom), 영적 나라(靈的, the spiritual kingdom)' (렘31:33-34, HH.1.4.20-28) (2022/8

https://bygrace.kr/1134 주보, 주일예배(8/28, 렘31:33-34, HH.20-28), '천적 나라(天的, the celestial kingdom), 영적 나라(靈的, the spir 1. 주보 2.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M3ZG38BUuFU 3. 축도 원고 및 유튜브 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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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영적 인간은 위 ‘퍼셉션’이 없습니다. ‘퍼셉션’은 오직 천적 인간한테만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에덴동산’이 나오며, 9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하여, 여러 나무들이 나오는데요, 이 나무들이 바로 퍼셉션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AC.102,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AC.102-106)

※ AC.102,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AC.102-106)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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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까지 길었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바로 위 링크의 글에도 나오지만, 오늘 본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감각적인 것, 즉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을 말합니다. 여기서 ‘기억-지식’이란 세상에서 학습을 통해 얻는 지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 말씀,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저 말씀은, 주님 신앙의 신비, 주님의 신성에 속한 걸 주님이 주시는 퍼셉션이 아닌, 그저 이 육에 속한 오감(五感,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세상에서 학습하여 습득한 걸 가지고 접근했다가는, 즉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의 태도로 접근했다가는 영적으로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아, 그리고 또한 이 말씀은 아래와 같은

 

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19:23-24)

 

하는 주님 말씀하고도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것'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에 아주 짙게 침투해 있는데요, 아래는 창세기 1장 27절의 속뜻 주석인 AC.54번 글에 나오는 그 몇 가지 예입니다.

 

...이는 참 부러운 특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말이지요.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외적(external)이요, 겉, 감각의 사람들이어서 영적, 천적인 주의 말씀들도 오로지 감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가령, 신령한 사람은 방언도 유창하고 세련되게 해야 하며, 안수기도를 하면 바로 눈앞에서 병이 척척 낫고, 각종 장애도 바로 나아야 하며, 예언 기도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 받기를 참 좋아하며, ‘’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고, 무지하며, 내적(internal)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예 이해조차 못 하면서도 자기는 믿는 사람이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자기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므로 죽으면 천당 간다고 믿는 그런 현실입니다...

 

위 내용은 다음 글에 나옵니다. 참고하세요.

 

AC.54,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AC.53-54)

※ AC.54,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AC.53-54)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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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29,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129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은, 인간은 그가 세운 원칙들에 의해 지배되며, 그 원칙들이 설령 노골적인 거짓이어도 말입니다, 그의 모든 지식과 이성은 그 원칙들을 편든다는 것입니다. 그 원칙들에 대한 지지 성향의 수많은 고려사항들이 그의 마음에 기꺼이 제공되고, 그렇게 해서 그는 거짓된 것 가운데서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돼!’와 같은 어떤 원칙을 세운 사람은 결코 무얼 믿을 수가 없는데요,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거나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질서는 사람이 주님, 곧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뒤따르고, 그의 눈이 밝아지는데, 심지어 이성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까지도([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그렇게 됩니다. 이는 그가 과학을 배운다고 해서 못하게 하거나, 과학은 그의 삶에 유용하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며, 그가 신앙 안에 있다고 해서 그가 세상 학자들처럼 생각하거나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으며, 가능한 한, 영적 천적 진리들을 자연적 진리들을 가지고 학계에 친숙한 용어들로 확실하게 하는 것은 이 원칙에서 비롯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그의 출발점은 주님이셔야 하며, 결코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Everyone may know that man is governed by the principles he assumes, be they ever so false, and that 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for innumerable considerations tending to support them present themselves to his mind, and thus he is confirmed in what is false. He therefore who assumes as 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 can never believe, becaus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cannot be seen with the eyes, or conceived by the imagination. But the true order is 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 and he is enlightened even 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For it is by no means forbidden to learn the sciences, since they are useful to his life and delightful; nor is he who is in faith prohibited from thinking and speaking as do the learned of the world; but it must be from this principle—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 and, so far as possible,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 Thus his starting point must be the Lord, and not himself; for the former is life, but the latter i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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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28,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128

세속적이고 육적인 사람은 속으로 말하기를, 만일 신앙과 신앙에 관계된 모든 것을 감각에 속한 걸 가지고 내가 볼 수 있게 하거나, 기억에 속한 걸 가지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나는 안 믿을꺼야라고 말이지요. 그는 또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서로 절대 반대일 리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굳게 확신하는데요, 그는 이렇게 감각에 속한 걸 가지고 천적이고 신적인 걸 배우고자 합니다만, 그러나 이는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는 더욱더 스스로를 눈멀게 하여 결국엔 아무것도, 심지어 어떤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영생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게 되는데요, 이런 결과는 그가 가정하고 있는 원리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더 많이 먹을수록 그는 더욱 죽게 되지요. 그러나 세상이 아닌, 주님을 통해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곧 말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들은,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요. 그는 이런 원리로 자신의 생각을 조절합니다. 그는 이성, 지식, 감각 및 자연에 속한 것들을 통해 스스로 굳게 확신합니다. 아니다 싶은 것들은 버리면서 말입니다.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says in his heart, If I am not instructed concerning the faith, and everything relating to it,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so that I may see, or by means of 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so that I may understand, I will not believe; and he confirms himself in this by the consideration that natural things cannot be contrary to spiritual. Thus he is desirous of 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in what is celestial and Divine, which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for the more he desires to grow wise by such means, the more he blinds himself, till at length he believes nothing, not even that there is anything spiritual, or that there is eternal life. This comes from the principle which he assumes. And this is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of which the more anyone eats, the more dead he becomes. But 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 says in his heart that the Lord must be believed, that is, the things which the Lord has spoken in the Word, because they are truths; and according to this principle he regulates his thoughts. He confirms himself 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and those which are not confirmatory he casts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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