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60, 창2:24,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다 - 천적·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됨’ (AC.160-162)
즐겨찾기/AC 창2 2026. 5. 19. 07:22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창2:24)
AC.160
‘부모를 떠나는 것’(leave father and mother)은 속 사람에게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 사람을 잉태하고 낳는 것은 속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와 합하는 것’(cleave unto his wife)은 속 사람이 겉 사람 안에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한 몸이 되는 것’(be one flesh)은 그 둘이 거기에서 함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에는 속 사람과, 속 사람으로부터 나온 겉 사람이 영이었으나 이제는 육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천적·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되게 되었습니다. To “leave father and mother” is to recede from the internal man, for it is the internal which conceives and brings forth the external; to “cleave unto his wife” is that the internal may be in the external; to “be one flesh,” that they are there together; and because previously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from the internal were spirit, but now they have become flesh. Thus was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djoined to the own, that they might be as one.
해설
AC.160은 창2:24의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을 앞에서 계속되어 온 속 사람, 겉 사람, proprium의 변화라는 흐름 안에서 해설합니다. AC.159에서는 천적 인간에게 속 사람과 겉 사람이 매우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었으며, 겉 사람이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것을 천적 인간이 퍼셉션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겉 사람에 속한 proprium을 원하면서 이 구별을 더 이상 퍼셉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AC.160은 바로 그 변화된 상태를 창2:24의 세 표현을 따라 설명합니다.
먼저 ‘부모를 떠나는 것’은 속 사람에게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를 스베덴보리는 ‘겉 사람을 잉태하고 낳는 것은 속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부모는 자연적인 부모에 관한 교훈에 머무르지 않고, 겉 사람의 근원이 되는 속 사람을 가리킵니다. 앞 번호에서 천적 인간은 겉 사람이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에 의해 다스려지는 질서를 퍼셉션했다고 했는데, 이제 후손들은 proprium으로 기울면서 그 속 사람에게서 물러나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아내와 합하는 것’은 속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겉 사람과 관계가 끊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속 사람이 겉 사람 안에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속 사람에게서 물러났다고 해서 속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 방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내’는 AC.156에서 설명했듯 앞에서 ‘여자’라고 했던 proprium이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으로 인해 받게 된 표현입니다.
‘한 몸이 되는 것’은 그 둘이 거기에서 함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속 사람과 겉 사람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되어 구별이 사라졌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의 AC.159가 천적 인간에게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명시했고, 이번 번호의 마지막도 천적·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한 몸’은 구별 자체의 소멸보다, 변화된 상태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함께 있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이어지는 ‘이전에는 속 사람과, 속 사람으로부터 나온 겉 사람이 영이었으나 이제는 육이 되었다’는 문장은 특별히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곧바로 ‘처음에는 영적이었지만 이제 타락하여 육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일반적인 도식으로 바꾸어 버리면 현재 문맥의 세밀한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 천적 인간의 후손들이 proprium을 원하면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에서 ‘육’으로의 변화도 그 상태 변화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그 의미를 붙들어 줍니다. ‘이렇게 천적·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proprium은 천적·영적 생명 자체가 아닙니다. 천적·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둘이 완전히 동일한 하나가 되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도 생명의 근원과 그것을 받아 자기 삶처럼 누리는 proprium 사이의 구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AC.135와 매우 밀접하게 이어집니다. AC.135에서도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도 중요한 것은 ‘결합’과 ‘하나처럼 보임’을 ‘동일해짐’으로 바꾸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AC.160은 이제 창2:24의 ‘한 몸’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합니다. 천적·영적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지만, 그것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됨으로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생명과 하나처럼 경험되는 상태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AC.160은 ‘부모를 떠남’, ‘아내와 합함’, ‘한 몸이 됨’을 각각 떨어진 상응어로 읽기보다 하나의 상태 변화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속 사람에게서 물러나고, 속 사람이 겉 사람 안에 있게 되며, 그 둘이 함께 있게 되고, 천적·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되는 흐름입니다. 이것은 AC.131부터 시작된 천적 인간의 후손들이 proprium으로 기울어 가는 과정의 한 단계이며, 동시에 주님께서 그 proprium을 단순히 버려 두지 않으시고 생명과 결합시키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AC.160)
AC.161, 창2:24, ‘겉 사람의 proprium 안에 영적 천적인 것을 스며들게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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