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5(D1)-주일예배(2511, 창50,25-26), '개장(開葬) 예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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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JYaOyLF6ic

 

 

 

시작

 

우리의 아버지요 할아버지셨던 故 권성조와 어머니요 할머니셨던 故 김정자, 두 분의 이장(移葬) 관련, 그 첫 번째 시작 예배인 개장(開葬)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시간, 두 분의 자손들이 이렇게 모여 모실 곳을 새롭게 천묘(遷墓)코자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 예를 갖추고자 하오니 이 예배를 도우시며, 또한 받으시고, 오늘 하루 모든 일정을 순적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1절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님 

성 삼위일체 우리 주로다

 

2절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보좌 앞에 

모든 성도 면류관을 벗어 드리네

천군 천사 모두 주께 굴복하니 

영원히 위에 계신 주로다

 

 

설교

 

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50:25-26)

 

 

두 분의 생(生), 졸(卒) 및 그 열매를 짧게 말씀드리면, 고 권성조는 1923년 생, 2015년 졸, 만 91세를, 고 김정자는 1926년 생, 2005년 졸, 만 79세를 각각 향(享)하시는 동안, 슬하에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및 친, 외 모든 손주와, 손주사위, 며느리, 그리고 증손들 포함 총 26명을 남기셨습니다.

 

두 분의 평생, 고요하고 은은한, 온유하고 성실, 진실하셨던 사랑 덕분에 이렇게 그 자손 된 저희 모두 그 복을 누리며 사는 줄 믿고, 오늘 두 분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자 모인 것입니다.

 

장인, 장모 되시는 두 분의 지난날 장례를 모두 집례했던 제가 이렇게 이제 이장까지 집례하면서 이장 관련해서는 성경에 무슨 예가 있나 찾아보니 그 첫 번째가 바로 오늘 본문, 창세기 그 유명한 요셉의 예였습니다.

 

다들 아시듯 요셉은 부유한 가나안 족장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가문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의 첫째 아들로, 그러나 라헬이 둘째를 낳다 죽어, 어린 시절, 아버지의 특별한 편애를 받으며 자라다가, 다른 모든 배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아버지 모르게 애굽으로 팔려 갔던, 그리고 그곳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 졸지에 노예의 삶을 살게 되었던, 그리고 외모가 준수하고 용모가 아름다워 안주인의 유혹이 거듭되던 중 결국 그걸 거절하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리고 그곳에서 왕의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 일로 나중에 애굽 왕 바로의 꿈도 해석, 그 일로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곧 시작되는 일곱 해 풍년과 이어질 일곱 해 흉년을 지혜롭게 대비, 애굽은 물론, 당시 근방 모든 나라를 살린 전천후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이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表象, representative)입니다. 표상이란, 역할 대행을 말합니다. 무대 위에 올라 맡은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 같은 것이지요. 인류의 죄 문제, 정확히는 지옥의 광기와 그로 인한 피조 세계 전체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친히 성육신(聖肉身, incarnation)하신 주님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그 요셉이 백십 세를 살고 숨을 거두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언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즉,

 

너희가 지금은 사정상 이렇게 타국살이를 하고 있으나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너희를 다시 고국 고토(故土),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그때 너희가 이곳을 나갈 때 반드시 나의 유골 또한 챙겨 그곳에 이장하도록 하라

 

고 말이지요.

 

이 가나안 땅과 시온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에게 있어 주님의 나라(The Lord’s Kingdom), 천국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가나안 땅, 가나안 땅 했던 것이며, 조금 확장하면,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전쟁도 그 뿌리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은 단지 영적인 의미, 표상, 상징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바람에 시작된, 그리고 지난 2천 년 동안 주인 없는 땅에 들어와 살았던 중동 유목민 족속 팔레스타인 간 비극인 것이지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요셉의 이장은 기억된 바 되었다가 430년 후, 모세의 출애굽 때 시행되었고, 이후 광야 생활 40년을 비롯, 여호수아 가나안 정복기 말미에 비로소 요셉의 유골을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함으로써 이 대략 5백 년 걸린 유언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수24:32)

 

오늘 두 분의 이장은 이런 성경적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달라 어떤 특정 장소가 천국을 상징하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두 분의 이장으로 모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분의 유골은 세상에 남기고 가신 유일한 흔적이기 때문이며, 이 흔적으로 우리는 두 분과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부모,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의 대행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 가운데 사실은 온 인류의 영적 아버지이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 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모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그대로 주님에 대한 태도로 이해하십니다. 물론 부모들 중에는 전혀 주님의 대행자로서의 역할에 한참 역량 미달이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에 대한 건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자녀 된 도리만 다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주님을 성경 말씀으로 알지 못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이를 ‘’(孝)로 표현했습니다. 부모는 그 영적 실상으로는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대할 때, 부모님의 모습에서 하늘의 하나님, 곧 주님을 볼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의 인생은 크게 형통할 것입니다.

 

그 생생한 예가 여기 계신, 장녀 선자와 큰아들 내외이신 용진, 혜경 부부입니다. 여기 장녀 선자께서는 출가 전, 두 분 제과점과 가게로 바쁘시던 시절, 동생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 건사, 집안일 일체를 돌보셨으며, 여기 형님, 형수님은 두 어른 살아생전 참으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효성으로 어머님 땐 어머님을, 아버님 땐 아버님을, 그 모든 병수발과 대소변을, 그것도 집에서 직접 시중드셨고, 그걸 또 여기 있는 세 자녀 소현, 도윤, 그리고 막내 상윤이 생생하게 곁에서 보면서 자랐는데요, 그러니 그 복이 어디 가겠습니까? 다른 자녀들과 그 자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어머님 김정자의 모습으로, 아버님 권성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그 모든 섬김을 받으셨으며, 그래서 약속하신 하늘의 복을 그 자손 천 대까지 베푸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며 약속하시기를,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하셨는데요, 어떤 일을 할 때, 잔머리 굴리지 않고,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십계명을 비롯, 성경 말씀에 맞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고 부끄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정직하고 의롭기 때문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참고로, ‘천 대’란 ‘very much’를 말하며,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할 땐 ‘forever’라는 뜻입니다.

 

오늘 이 이장 예배를 통해 오직 주님과의 결합, 그 연결 고리를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죽으나 나중에 반드시 가나안 땅에 묻혀 끝까지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려고 몸부림을 쳤던 요셉처럼 말입니다. 아멘

 

 

찬송

 

3절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빛난 영광 

모든 죄인 눈 어두워 볼 수 없도다

거룩하신 이가 주님밖에 없네 

온전히 전능하신 주로다

 

4절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천지 만물 모두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성 삼위일체 우리 주로다

 

 

광고

 

 

마침 기도

 

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신 말씀대로 우리도 주님과 늘 연결되어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후 개장과 화장 및 납골에 이르기까지 애쓰시는 업체분들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순적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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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3, AC.156-159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Verse 23.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 23절 속뜻

 

천적 인간은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차이, 그리고 그 상호관계를 분명히 압니다. 천적 인간의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하나 됨, 곧 결혼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156.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은 겉 사람의 본성을 말하며, 여기서 (bone)는 이 본성이 생기가 거의 없음을, ‘(flesh)은 생기 있는 본성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자는 속 사람을 의미하며, 이어지는 구절에 보면 이 속 사람은 겉 사람과 결합하기 때문에, 앞서 여자(woman)라고 했던 본성을 여기서는 아내(wife)라고 합니다. ‘이제(Now)는 이 시점에서 이렇게 되었음을 말하는데요, 이때 상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y the own of the external man; “bone,” this own not so much vivified, and “flesh,” the own that is vivified. Man, moreover, signifies the internal man, and from his being so coupled with the external man as is stated in the subsequent verse, the own which was before called “woman” is here denominated “wife.” “Now” signifies that it was thus effected at this time because the state was changed.

 

※ 우리말 개역개정에는 이 ‘이제’에 대한 번역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157.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이 그 안에 인터널(the internal, 속에 해당하는 것, 內的인 것)이 있는 겉 사람의 본성을 의미하는 한, 그래서 고대에는 자신들의 본성(their own [proprii])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게 한 가족(one house)이든, 가계(one family), 기타 어떤 종류의 관계(any degree of relationship)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라반도 야곱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Inasmuch as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ied the own of the external man in which was the internal, therefore in ancient times all those were called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who could be called their own [proprii], and were of one house, or of one family, or in any degree of relationship. Thus Laban said of Jacob,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29:14)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Gen. 29:14)

 

그리고 아비멜렉 또한 자기 어머니의 혈육들(his mother’s brethren)과 외가 사람들(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And Abimelech said of his mother’s brethren, and of 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삿9:2) Remember that I am your bone and your flesh. (Judges 9:2)

 

이스라엘 지파들(The tribes of Israel)도 다윗에게 자신들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tribes of Israel also said of themselves to David,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삼하5:1) Behold, we are thy bone and thy flesh. (2 Sam. 5:1)

 

 

158. 사람(man, 아담)은 속 사람, 즉 같은 말이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사41:28)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Isa. 41:28)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요. 예레미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5:1)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Jer. 5:1)

 

정의를 행하는 자(One who executes judgment)는 지혜로운 사람을, ‘진리를 구하는 자(one who seeks the truth)는 총명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159. 그러나 천적 인간의 상태(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천적 인간 안에서 속 사람은 겉 사람과 구별되되, 실제로는 너무도 구별되어 속 사람, 겉 사람에게 속한 것은 각각 무엇이며, 겉 사람이 속 사람을 통해 주님에 의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천적 인간은 지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천적 인간의 후손들의 상태(the state of the posterity of this celestial man)는 자신들의 본성, 곧 자신들의 겉 사람에게 속한 본성을 징그럽게 원한 결과, 너무도 변질, 더 이상은 겉 사람과 속 사람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속 사람이라는 거하고 겉 사람이라는 거하고 같은 거 아냐? 할 지경이 되었는데요, 이런 일은 사람이 자신의 본성으로 기울어질 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not easy to perceive how the case is with these things unless 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 is understood. In the celestial man the internal man is distinct from the external, indeed so distinct that the celestial man perceives what belongs to the internal man, and what to the external, and how the external man is governed through the internal by the Lord. But the state of the posterity of this celestial man, in consequence of desiring their own, which belongs to the external man, was so changed that they no longer perceived the internal man to be distinct from the external, but imagined the internal to be one with the external, for such a perception takes place when man inclines to hi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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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스베덴보리를 알게 된 것은 젊은 시절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가족 중에 한 분이 ‘천국과 지옥’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서 읽게 됐는데, 새 교회의 진리가 매우 합리적인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여기 이런 경우, 즉 이 ‘천국과 지옥’ 책을 읽고, ‘새 교회의 진리가 매우 합리적인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하는 경우는, 적어도 제 경험에 의하면 매우 희귀한 경우입니다.
 
그나마 읽어보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있어도 천 명 중 한 명꼴일까요? 거의 99.9%가 읽어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거나, 읽으면서 자기가 아는 교리와 달라 속에서 불이 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괜히 속에서 화가 난다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천국 이야기를 하는데 왜 화가 날까요? 주님 식사 준비를 하면서 동생 마리아 때문에 힘들어 하던 마르다가 생각납니다. 하나 더 있다면, 이 책을 그저 새로운 지식 습득으로만 읽으시는 경우입니다. 위 여러 사례는 참 안타까운 경우들인데요, 만일 돌이키지 않으실 경우, 이런 분들의 사후, 어떤 운명이 이 분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저는 이 책을 읽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 지난 일지를 보니, 5년 전인 2018년 10월에 저는 이 책을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스베덴보리’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고, 충주봉쇄수도원 수도사 공부를 하면서 특히 성 프란체스코, 성 분도 요셉 라브르,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 등 수많은 수도사들과, 이영환 목사의 40일 금식 훈련, 서사라 목사의 천국과 지옥 간증 및 시흥영성수련원 공용복 선생의 핵심진리, 정원 목사의 저서들 등에 몰두하던 때였지요. 즉 천국과 지옥에 관한 수많은 견해와 체험, 간증 등에 둘러싸여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그래서 새로운 책을 접하면서 이건 또  무슨 새로운 견해의 등장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는 난생처음 접하는 내용에, 처음엔 당혹해 하며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아, 맞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뭔가 뿌옇던 시야가 바람이 불더니 갑자기 확 맑아지는 그런 느낌, 백두산 천지가 구름과 안개로 안 보이다가 바람에 걷히더니 갑자기 확 드러날 때의 그 숨 막힐 듯한 위용과 장관처럼 말이지요!
 
저는 특히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첫째, 이 책을 비롯, 특히 스베덴보리의 수년간의 역작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를 통해서 천국을 비롯, 그동안 석연찮던 거의 모든 신학적 주제들과 영적 이슈들이 거의 다 설명된다는 것이었는데요, 적어도 당시 제 수준과 역량에서는 말이지요,설명이 된다’는 게 제게는 중요했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기 전, 특별히 물리학 등 순수 과학에 끌렸던 제게 이런 접근은 의미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과거 천동설이 지동설로 갈아타던 과정처럼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던 어떤 현상이나 증거를 새로운 이론으로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비록 당시엔 당혹스럽고 힘들더라도 후자를 새로운 정설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학문적으로도 옳다 저는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설명하실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이 저는 평소 좀  납득이 잘 안 되었었습니다.
 
둘째, 스베덴보리는 이 모든 기록을 통해 오직 주님만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입장과 견해가 사사로운 것이었다면, 분명 어딘가에 그 흔적이 교묘히 숨어있을 텐데, 추호도, 그리고 지난 5년간 저는 이 책 말고도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번역을 해오고 있는데요, 그 10,837개나 되는 글 어디에서도 스베덴보리는 그 흔한 이단 사설들에서 볼 수 있는 더러운 사사로움 없이 오직 주님만 높이며, 또 주님이 허락하신 것만 밝히고 있는 걸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새로운 계시이며, 참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흔히들 인터넷 검색을 통한 다른 사람들의 글만 읽고는 스베덴보리는 이단이래 하면서 물러나시는데요, 그보다는 본인이 직접 스베덴보리를 읽고 판단하시기를 권합니다. 본인이 참으로 반듯하고 정직하다면 분명 그 영이 꿈틀하며 어떤 유의미한 반응을 할 것입니다. 주님의 빛, 천국 빛에 건강하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끝으로, 저는 스베덴보리를 통해 밝히신 이 새로운 계시를 통해 참으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나아가 어떤 신(神, The Divine)이신지를 점점 또렷이 알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참된 평화 가운데 거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참으로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천국에 주목할수록,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참으로 '말씀'(The Word)이란 무엇이며, 구원이란 무엇인가?  타종교 등 교회 밖의 사람들은? 타교단, 교리가 다른 사람들은? 등, 사람의 사후 전개될 양상에 대한 지식이 생기자 그동안 잘 몰라서 붙들고 추구했던 것들로부터 물러나 보다 더 자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 고백은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순간부터 저는 천국 관점, 곧 천사들의 관점에서 지상의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후 바울서신에 뿌리를 둔 현 기독교, 그리고 개신교의 많은 근본적인 오류에서 물러나되 마치 지상에서 발사된 로켓이 죽을힘을 다해 중력을 거슬러 올라 궤도 위에 안착하듯 그렇게 물러날 수 있었고, 지금은 남은 생애를 오직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들(Writings)을 번역, 전파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 아래는 혹시 도움되실까 제가 읽었던 번역인 김은경 역을 공유합니다. 이 말고도 여러 번역이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그리고 가능하면 영역본으로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라틴 원본으로 읽으실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요. 저는 라틴을 몰라 못 읽고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읽고 있는 영역본도 아래 공유합니다.
 
http://bit.ly/3t7Zl6Y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그 중간의 영인들의 세계의 구조, 현상, 그곳 사람들의 상태와 생활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후 겪게되는 세계를 스베덴보리의 천사와의 대화, 관찰과 기록을 통해 알게되며 영의 실

spiritual-world.com

 

heaven_and_hell, 58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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