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22)

 

AC.153

갈빗대가 여자로 지어졌다(built into a woman) 하지만, 앞에서 거듭남을 다룰 때처럼 여자가 창조되었다(created), 형성되었다(formed), 또는 만들어졌다(made) 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짓는 (build)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말이 말씀에서 사용되는데, 거기서 짓는 (build) 악들에 관하여, 일으켜 세우는 (raise up) 거짓들에 관하여, 새롭게 하는 (renew) 모두에 관하여 사용됩니다. 이사야에서는, The rib is said to bebuilt into a woman,but it is not said that the woman wascreated,orformed,ormade,as before when treating of regeneration. The reason of this is that tobuildis to raise up that which has fallen; and in this sense it is used in the Word, where tobuildis predicated of evils; toraise up,of falsities; and torenew,of both; as in Isaiah: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61:4) They shall build the wastes of eternity, they shall set up again the ancient desolations, and they shall renew the cities of the waste, the desolation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Isa. 61:4)

 

라고 합니다. 구절과 다른 구절들에서 황폐한 곳들(Wastes) 악들을 의미하고, 무너진 곳들(desolations) 거짓들을 의미합니다. 짓는 (build) 전자에 적용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set up again) 후자에 적용됩니다. 이러한 구별은 다른 곳에서도 선지자들에 의해 주의 깊게 지켜지는데, 예레미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경우가 그러합니다. Wastesin this and other passages signify evils; desolations,falsities; tobuildis applied to the former, toset up againto the latter, and this distinction is carefully observed in other places by the prophets, as where it is said in Jeremiah: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31:4) Yet still will I build thee, and thou shall be built, O virgin of Israel. (Jer. 31:4)

 

해설

AC.153은 창2:22에서 왜 갈빗대가 여자로 지어졌다(built into a woman)고 표현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동사의 선택입니다. 앞에서 인간의 거듭남을 설명할 때에는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표현들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여자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 않고 갈빗대가 여자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차이를 우연한 표현상의 변화로 보지 않고, 현재 다루는 인간의 상태와 관련된 의미 있는 구별로 읽습니다.

 

그 이유는 짓는 (build)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는 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AC.151에서 이미 짧게 제시되었지만, AC.153에서 그 근거가 본격적으로 설명됩니다. 지금 다루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천적 인간으로 형성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조상들의 천적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인도 아래 있기를 원했고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필요한 것은 처음의 창조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넘어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짓다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것은 AC.151에서 여자가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한 것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갈빗대는 생명을 얻지 못한 proprium이고, 여자는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입니다. 따라서 갈빗대를 여자로 짓는 은 인간이 원했던 proprium을 주님께서 그대로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상태에 있는 것을 일으켜 세워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짓다라는 한 동사가 지금까지의 proprium 논의와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 말씀의 선지서에서 사용되는 동사들을 더욱 세밀하게 구별합니다. ‘짓는 (build)은 악들에 관하여 사용되고, ‘일으켜 세우는 (raise up)은 거짓들에 관하여 사용되며, ‘새롭게 하는 (renew)은 악과 거짓 모두에 관하여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사야 61장의 황폐한 곳들무너진 곳들을 인용하는 이유도 이 구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황폐한 곳들은 악들을 의미하고 무너진 곳들은 거짓들을 의미하며, 전자에는 짓다, 후자에는 다시 일으켜 세우다가 적용됩니다.

 

여기서는 이 구별을 스베덴보리가 직접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말씀의 비슷한 동사들을 우리가 임의로 나누어 각각 다른 속뜻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선지자들이 이러한 구별을 주의 깊게지켰다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현재 본문에서는 짓다’, ‘일으켜 세우다’, ‘새롭게 하다를 비슷한 뜻의 수사적 반복으로만 보지 않고, 각각 악과 거짓의 회복에 관련된 구별된 표현으로 읽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것을 근거로 말씀에 나오는 모든 동사의 동의어적 차이에 우리가 임의의 상응을 만들어 붙여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는 AC.153이 직접 밝힌 범위가 기준입니다.

 

31:4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라는 말씀은 짓다의 의미를 다시 확증합니다. 이미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는 장면에서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창2:22짓다역시 단순히 무엇인가를 제작한다는 뜻보다, 이미 기울어지고 넘어진 것을 주님께서 다시 세우시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다루는 태고교회 후손들의 상태와 잘 맞습니다.

 

AC.153은 또한 창2 후반부를 단순한 proprium 획득으로만 읽지 않게 해 줍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인도 아래 있기를 원하여 proprium으로 기울었다는 것만 본다면 이 과정은 타락의 시작으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빗대가 여자로 지어졌다는 표현 안에는 이미 그 상태를 향한 주님의 회복의 역사도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기울어졌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생명 없는 proprium을 생명을 얻은 proprium으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장면에는 인간의 기울어짐과 주님의 회복하시는 역사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다만 짓는 이 악들에 관하여 사용된다는 말을 주님께서 악을 지으신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문맥에서 짓는다는 것은 이미 악으로 인해 황폐해지고 넘어진 것을 다시 세우는 데 적용되는 표현입니다. 61:4와 렘31:4의 인용도 바로 그 회복의 문맥입니다. 따라서 이 동사는 악의 발생을 주님께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 무너진 상태를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이것이 갈빗대를 여자로 짓는다는 표현을 이해할 때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점입니다. (AC.153)

 

 

 

AC.154, 창2:22, ‘악 자체인 인간의 proprium과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2) AC.154악하고 거짓된 것은 무엇이든 인간의 proprium이 아니거나 인간의 proprium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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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2, 창2:22, ‘여자가 proprium을 의미하는 이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2) AC.152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며,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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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22)

 

AC.152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며, 여기에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깊은 아르카나가 함축되어 있음을 분별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woman) 인간의 proprium 의미한다는 것은 속임을 당한 것이 여자였다는 사실에서 있습니다. 인간을 속이는 것은 오직 그의 proprium, 같은 말로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It requires but little attention in anyone to discern that woman was not formed out of the rib of a man, and that deeper arcana are here implied than any person has heretofore been aware of. And that by thewomanis signified mans own may be known from the fact that it was the woman who was deceived; for nothing ever deceives man but his own, or what is the same,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만큼 탐스럽기도 나무인지라 여자가 열매를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3:1-6)

 

해설

AC.152는 먼저 창2:21-22의 갈빗대와 여자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직접적인 입장을 밝힙니다. 스베덴보리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여자가 실제로 남자의 갈빗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별할 수 있으며, 이 말씀 안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깊은 아르카나가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AC.152에서 스베덴보리 자신이 말하는 범위에서는 이 장면을 먼저 신체적으로 여성이 만들어진 과정을 기록한 사건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 사람들의 내적 상태에 관한 말씀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계속되어 온 해석과 정확히 이어집니다. AC.147에서는 갈빗대가 생명력이 거의 없는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했고, AC.148-149에서는 뼈와 살의 의미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AC.151에서는 갈빗대가 생명을 얻지 못한 인간의 proprium, 여자가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한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AC.152의 첫 문장은 갑자기 등장하는 주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진 속뜻의 설명을 전제로 한 결론입니다. 문자에 나타난 갈빗대와 여자의 장면 안에 인간의 proprium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생명을 얻는가 하는 더 깊은 아르카나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여자(woman)가 왜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하는지를 창3의 이야기와 연결합니다. 그 근거는 속임을 당한 것이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2의 여자와 창3의 여자를 하나의 연속된 내적 의미 안에서 읽고 있다는 뜻입니다. 2에서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어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여자로 표현되었고, 이후 창3에서는 바로 그 여자가 속임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연결을 통해 여자가 proprium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확증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매우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을 속이는 것은 오직 그의 proprium, 같은 말로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만 떼어 놓으면 proprium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며 언제나 악하다고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의 AC.141에서는 천적 인간과 천사에게도 주님께서 proprium을 주시며, 그들의 proprium 안에는 주님의 것들이 있고 그것이 가장 참된 천적인 자체라고 했습니다. AC.151에서도 여자는 단순히 proprium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152의 마지막 문장을 앞의 설명들과 분리하여 proprium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기서는 속임을 당하는상태에 놓인 인간의 proprium이 문제입니다.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의 인도 아래 있으려 할 때, proprium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의 지배 아래 놓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proprium이 인간을 속입니다. 이것은 AC.146에서 자기 자신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것들이 아무리 분명하게 표상되고 보여도 그것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한다고 한 설명과도 이어집니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에게 proprium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것이 어디에서 생명을 받고 무엇의 지배를 받는가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152는 창2와 창3 사이에 중요한 다리를 놓습니다. 2에서는 인간이 주님의 직접적인 인도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인도 아래 있기를 원하면서 proprium으로 기울어지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proprium을 그대로 죽어 있는 상태에 두지 않으시고 생명을 주어 인간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이 proprium이 이후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쪽으로 기울게 되면, 3에서 여자가 뱀에게 속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창3의 타락 이야기는 창2와 단절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창2 후반부에서 시작된 proprium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여자 = proprium이라는 표현 역시 모든 성경 구절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AC.151-152에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현재 창2-3의 이 특정한 문맥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상응의 의미는 다루는 주제와 문맥에 따라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여자가 등장할 때마다 무조건 proprium으로 바꾸어 읽는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현재 이 여자를 왜 proprium으로 해석하는지를 그 이야기의 연속성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AC.152는 매우 짧은 번호이지만 창2 후반부의 해석을 창3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갈빗대와 여자는 인간 남녀의 기원에 관한 문자적 설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proprium에 관한 깊은 아르카나를 담고 있으며, 특히 여자가 속임을 당한다는 다음 장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동시에 앞 번호들을 함께 읽으면 proprium 자체를 악이라고 단순화해서는 안 되고,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기울어 인간을 속이는 proprium을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게 됩니다. (AC.152)

 

 

 

AC.153, 창2:22, ‘짓다 -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2) AC.153갈빗대가 ‘여자로 지어졌다’(built into a woman)고 하지만, 앞에서 거듭남을 다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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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1, 창2:22, ‘여자 -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 (AC.151-15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창2:22) AC.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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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22)

 

AC.151

짓는 (build)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의미하고, 갈빗대(rib) 생명을 얻지 못한 인간의 proprium, 여자(woman)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인간의 proprium 의미하며, 여자를 사람에게로 이끌어 오신 (he brought her to the man) 그의 proprium 그에게 허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후손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천적 인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인도 아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proprium으로 기울었고, 그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이었으며, 그러므로 여자(woman) 하고, 뒤에는 아내(wife)라고 합니다. By tobuildis signified to raise up what has fallen; by therib,mans own not vivified; by awoman,mans own vivified by the Lord; byhe brought her to the man,that what is his own was granted him. The posterity of this church did not wish, like their parents, to be a celestial man, but to be under their own self-guidance; and, thus inclining to their own, it was granted to them, but still an own vivified by the Lord, and therefore called awoman,and afterwards awife.

 

해설

AC.151은 창2: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는 말씀의 주요 표현들을 하나씩 풀이하면서, AC.131부터 이어져 온 proprium의 논의를 중요한 지점까지 정리합니다. 특히 이제 갈빗대여자의 차이가 명확하게 제시됩니다. 갈빗대는 생명을 얻지 못한 인간의 proprium이고, 여자는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인간의 proprium입니다.

 

먼저 짓는 (build)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는 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여자를 지으신다는 것은 속뜻에서 전혀 없던 어떤 독립적인 proprium을 새로 만들어 인간에게 붙여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에서 인간은 이미 자기 자신의 인도를 원하며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그 상태에 있는 인간을 그대로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proprium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짓는다는 것은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는 의미를 가집니다.

 

갈빗대(rib)AC.147-149에서 설명한 것처럼 생명을 얻지 못한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이것이 매우 소중하고 심지어 모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AC.149에서는 인간의 proprium이 천국에서 볼 때 생명 없는 뼈처럼 보이지만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으면 살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갈빗대에서 여자가 지어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죽어 있는 proprium이 그대로 존속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로 생명을 얻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때문에 여자(woman)는 이제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합니다. 이 대목은 앞의 AC.138을 읽을 때 우리가 조심스럽게 유보했던 부분을 본문 자체가 확정해 줍니다. AC.138에서는 그를 돕는 배필이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하고 뒤에서 여자로 지어진 갈빗대라고 한다는 정도까지만 설명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때에는 여자를 문맥과 관계없이 언제나 proprium을 뜻하는 고정된 상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AC.151에 이르러서야 현재 창2:22의 문맥에서 여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직접 밝혀집니다.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인간의 proprium입니다.

 

여자를 사람에게로 이끌어 오신 (he brought her to the man)은 그의 proprium이 그에게 허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 역시 AC.132 이후 반복되어 온 허락된 proprium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인간은 주님께만 인도받는 천적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인도 아래 있기를 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욕구 자체를 인간 안에 악으로 주입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원하는 proprium을 그 자체로 죽어 있는 상태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proprium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둘째 문단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역사적·교회적 배경을 다시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사람들은 태고교회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조상들처럼 천적 인간이 되어 주님의 직접적인 인도 아래 있기를 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인도 아래 있기를 원했습니다. 바로 이 욕구 때문에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기울어진 상태에서조차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proprium이 허락되었지만, 그것은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이었습니다. 이 점이 창2의 이 장면을 단순한 타락의 묘사로만 읽을 수 없게 합니다.

 

여기서 AC.147깊은 도 다시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여기며, 자기에게 속한 것을 가진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AC.149-150에서 밝혀졌듯 실제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이제 AC.151은 인간이 원했던 바로 그 proprium이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어 그에게 허락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역사는 인간에게 자기 경험을 빼앗아 자기 자신이 없는 존재로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인간이 자기 것으로 경험하는 proprium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때문에 그것을 여자(woman)라 하고 뒤에는 아내(wife)라고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번호에서는 아직 여자아내라는 두 표현 사이의 차이를 자세히 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 차이에 별도의 의미를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문맥의 여자가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인간의 proprium이며, proprium이 인간에게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설명에서 이 여자가 사람과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가 더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AC.151)

 

 

 

AC.152, 창2:22, ‘여자가 proprium을 의미하는 이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2) AC.152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며,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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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0, 창2:21, ‘깊은 잠 -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다고 여기는 상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50인간이 자신의 proprium 안에 있을 때, 곧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다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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