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08-06(D1)-주일예배(2498, 눅12,8-12),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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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FaLBfUOmw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의 속뜻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눅12:8-12)

 

 

우리나라에서 시민운동은 대략 1980년대에 학생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졌고, 당시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이 대거 시민단체를 만들거나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직업적인 시민운동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민운동과 생계 활동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진 후, 결국 정계에 진출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최근 윤석열 정부가 들여다보고 있는 바로는 우리나라 시민운동 거의 대부분이 사실은 다 돈과 관련된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이 어쩐지 순수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시민운동의 태생적 역할은 정부나 지자체에 대한 비판입니다만...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두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을 겨누는 진리 안에 반드시 사랑을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무자비한 칼과 같아서 세상을 분열시키고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영적 시민운동가이셨습니다. 오늘 본문 8절, 9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주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주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고 따르는 것이고요, 오늘날에는 말씀의 속뜻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마태복음 24장에서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30절) 하셨는데, 여기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이 바로 말씀의 속뜻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서 ‘사람’은 그 속뜻으로는, 각자의 내면에 있는 속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겉 사람만 가지고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속 사람으로부터 해야 하는데요, 그것이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해 ‘계시록 해설’ 794번 글 3번 항은,

 

사람은 영적인 마음과 자연적 마음 두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영적 마음은 속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고, 자연적 마음은 겉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다. 속 사람은 천국과 연결되어 있고, 겉 사람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통해 하는 일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해 하는 것이고, 속 사람과 무관하게 겉 사람을 통해 하는 일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하는 것이다. (AE.794:3)

 

한마디로 말하면, 무슨 일이든지 속 사람으로부터 해야 진실하며,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고 하면서 놓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속 사람이 아닌, 겉 사람으로부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에 대한 시인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시인하실 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진실합니다. 그러나 부인하신다면 그 일은 언제나 거짓이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10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주님을 ‘인자’(人子, Son of Man, 사람의 아들)라고 부를 때, 인자는 주님의 본질인 선과 진리 중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인자는 진리의 측면에서 주님을 뜻하고, 구체적으로는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아들’은 선의 측면에서 주님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천국의 천사들이나 완전히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말씀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의 의미를 얼마든지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못 해석하더라도 나쁜 의도가 아니라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성령’은 천국 천사들의 진리인 말씀의 속뜻, 곧 내적 의미(inner meaning)를 뜻합니다. 성령이 말씀의 내적 의미를 뜻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고 하신 것으로, 그리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보내시겠다, 또는 받으라 하신 것은 ‘감추어졌던 내적 진리를 이제 드러내 보여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말씀의 속뜻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며,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임의로 왜곡함으로써 내적 진리까지도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의 모든 구절 안에는 선과 진리 간 결혼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선 또는 진리를 임의로 없애거나 분리하는 것은 선과 진리의 결혼이라는 말씀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 되는 것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내적 진리와 관련하여 ‘계시록 해설’ 778번 글 4번 항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선과 진정한 진리는 말씀의 영적 의미 안에 들어있다. 그것들이 말씀의 자연적 의미 안에 있을 때는 모두 옷을 입고 있고, 몇 군데만 옷을 입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자연적 의미 안에 있는 선과 진리들을 우리는 외견상의 선이요 진리라고 부른다. (AE.778.4)

 

이 말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통해서는 진정한 선과 진리의 일부만 볼 수 있고, 전체는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 안에서는 진정한 선과 진리가 대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가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말씀 속에 진정한 선과 진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부분은 어느 곳일까요? 예를 들면 마태복음 7장 19절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라고 말씀하신 부분이라든가,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문자적인 뜻만으로도 그것이 믿음과 삶의 행위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복음 14장 6절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오신 주님이 곧 진리이며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문자적인 뜻만으로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인간의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은 문자적인 의미를 통해서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해석할 때,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은 잘못 해석하면 안 됩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회 안에서도 말씀의 문자적인 진리와 내적 진리가 서로 충돌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문자적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내적 진리 또는 내적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내적 진리를 이단의 진리라고 비난합니다. 거짓 진리를 진리로 굳게 믿는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사정을 아시고, 11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1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말씀에서 회당은 교회의 교리를 뜻합니다. 주님 당시 회당은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에 관한 상이한 해석들을 조정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당이나 권세 있는 자에게 끌려가는 것은 참된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인간의 지식으로 무장한 거짓 교리의 신봉자들과 교리적 논쟁을 벌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고, 그때 그 순간 할 말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가끔 내적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문자적인 진리를 앞세워 공격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들의 현란한 지식과 화술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두려움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천국의 비밀’ 8478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은 현재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한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내일 일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든 얻지 못하든 우울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에 만족한다. 부를 얻거나 명예를 얻는다고 다른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가난해도 슬퍼하지 않으며, 비천한 상황이 와도 낙담하거나 기죽지 않는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영원한 행복의 상태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에게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다른 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 마땅한 말이 떠오르면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뜨면 됩니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일들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끄는 수단으로 사용하신다는 주님의 섭리를 믿으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그날 먹을 것만, 즉 일용할 양식만 거두고, 내일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하신 것은 속뜻으로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의 속 사람의 소리,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겨누는 진리의 칼로 자신의 환부를 도려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겉 사람으로부터 하지 말고 속 사람으로부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합니다. 주님은 또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말씀을 안다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죄입니다. 그들이 말씀의 문자적인 뜻을 넘어서 내적 진리까지 훼손시키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 진리를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영계 체험’ 2706번 글을 보면, ‘천사들은 내적 진리에 반하는 욕망의 습관을 끊지 못하는 것도 성령을 거역하는 죄로 이해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새 교회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더 해당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적 진리에 대해 비교적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깊이, 그리고 많이 아는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내적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고, 모든 일 가운데서 섭리하시는 주님을 믿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매 순간 자기에게 닥치는 일들이 영원한 행복을 위한 주님의 섭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다고 우쭐대거나 나쁜 일이 있다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일을 담담하게 견딘다면 결국 평화와 행복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 모두 속 사람으로부터 주님을 시인하고 성령을 거역하지 않으며,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메시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마6:33-34)

 

아멘

원본

2020-05-24(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8-06(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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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前生), 환생(幻生) 및 윤회(輪廻)에 관하여’(2023/8/5)

 

지난날 이 주제, 이슈에 관하여 관심(?)을 갖던 중, 스베덴보리를 접하고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듯하여 있던 차, 마침 새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http://www.newchurch.or.kr/board_vOYt45)에 과거 누가 이런 질문을 올린 게 보여 어제오늘 생각을 좀 정리해봤습니다.

 

자유 게시판 - 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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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이슈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이것이 기독교의 관점과 정면 대치함에도 불구, 최면에 빠진 내담자가 실제로 이런 말들을 자기 입으로 술술 말하기 때문이지요.

 

다음은 그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이며,

 

 

부산에 사는 이**이라합니다.

요즘 힘든 일도 많고 마음도 심란하고 부산에 새 교회도 없고 ^^

 

제가 스베덴보리 신학자님 책을 몇 권 읽고 e-Library에 매일 성문서 읽기도 다 읽어가는데...

천국, 지옥은 나오는데 환생, 전생은 언급이 있는 것 같기도,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의 믿음이 약해서인지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데 전생, 환생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사랑합니다.

 

 

다음은 여기 달린 답변입니다.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교회 가르침은 전생과 환생은 없다고 가르칩니다. 꿈, 데자뷰, 과거에 대한 어떤 막연한 느낌 때문에 마치 전생 또는 환생이 있다고 종종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 이런 느낌은 우리가 중간영계의 영인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특성, 그리고 특히 그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어떤 특정한 영향에 따라서 예외적으로 뚜렷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삶은 각자에게 한 번씩 주어지는 고유한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 땅에서의 일생은 저세상을 위한 준비기간이자 시험대이며, 영적으로 봤을 때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해 나가는 과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매 순간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이 답변 중, ‘우리가 중간영계의 영인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특성, 그리고 특히 그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어떤 특정한 영향에 따라서 예외적으로 뚜렷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는, 바로 이 부분인데요, 앞서 제가 무슨 실마리를 찾은듯하다 한 게 바로 이 부분이어서 이걸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Human Race)에 나오는 글들입니다.

 

292. 각 사람에게는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이 와있다. 선한 영들을 통해서는 사람은 천국과 결합되고, 악한 영들을 통해서는 지옥과 결합된다. 이 영들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놓여있는 중간영계에 있다. 이곳에 대해서는 앞으로 특별히 따로 다룰 것이다. 이 영들이 사람에게 오면 사람의 기억 전체 안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생각 전체에 들어간다. 이때 악한 영은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선한 영은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 이 영들은 자기들이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이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모든 기억과 생각이 자기 것인 줄 안다. 또 그들에게는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태양계 내의 것은 아무것도 그들 시각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영들이 자기가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각별히 배려하신다. 만일 그들이 알아차리면 사람에게 말을 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악한 영의 경우 사람을 파괴하려 들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지옥과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사람의 영혼을, 즉 그의 신앙과 사랑을 파괴하고, 사람의 몸까지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들이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그럴 일이 없다. 이 경우 그들은 자기들의 말과 생각이 사람에게서 온 것임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로 나누는 말도 사람에게서 온 것인데도 그들은 자기가 하는 생각과 말이 자기 것인 줄 믿는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 것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이렇게 해서 영들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도록 그들이 모르는 제재를 받는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계속되는 경험의 결과로 사람과 영들과의 이러한 결합에 대해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이보다 더 잘 아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295. 사람과 함께 있는 영들은 그 애정, 즉 사랑에 있어서 그 사람과 동질인 영들이다. 선한 영들은 주께서 사람에게 보내시지만, 악한 영들은 그 사람 자신이 불러들인다. 그러나 사람의 애정이 변함에 따라 다른 영들이 함께 있게 된다. 따라서 사람의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각기 그 함께 있는 영들이 바뀐다. 유아기에는 순진성 안에 있는, 따라서 순진성의 천국인 가장 내적 천국, 즉 삼층천과 교통하는 영들이 함께 있다. 소년기에는 알고 싶어 하는 애정 안에 있는, 따라서 가장 외적인 일층천과 교통하는 영들이 함께 있다. 청년기와 장년기에는 진리와 선에의 애정, 즉 지성 안에 있는 영들이 함께 한다. 이들은 중간 천국, 즉 이층천과 교통하는 영들이다. 그러나 노년에는 지혜와 순진성 안에 있는 영들, 따라서 가장 내적 천국인 삼층천과 교통하는 영들이 함께 있다. 주께서는 고쳐지고 거듭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 연합을 유지하신다. 고쳐지고 거듭날 수 없는 사람들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을 가능한 한 악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이들에게도 선한 영들이 함께 있지만, 이 사람들은 자기와 동질인, 지옥과 교통하는 악한 영들과 직접 결합한다. 만일 그들이 사랑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거나 물질, 복수, 간음 등이면, 각각 똑같은 것을 사랑하는 영들이 와서 그들의 악한 애정 속에 머문다. 그 사람들은 선한 영들에 의해 악으로부터 저지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악한 영들의 선동을 받고, 악한 영들은 그 사람들에게 악한 애정이 우세한 한 그들에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악한 사람은 지옥에, 선한 사람은 천국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298. 사람과 함께 있는 영들은 천국에 결합된 영들이나 지옥에 결합된 영들 모두 결코 자기들의 기억과 생각을 사람에게 유입시키지 않는다. 만일 영들이 자기들의 기억과 생각을 가지고 사람에게 유입해 오면 사람은 영들의 것을 모두 자기 것으로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들을 통해 사람에게 흘러드는 것이 있는데, 천국으로부터는 선과 진리를 사랑함에 따르는 애정이, 지옥으로부터는 악과 거짓을 사랑함에 따르는 애정이 유입된다...

 

그리고 28장, ‘천사와 사람과의 대화(The Speech of Angels with Man)에도 관련 글이 있어 인용합니다.

 

256. 천사나 영은 그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의 기억만을 사용해야 한다. 천사와 영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있다. 만일 어떤 영이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사람에게 말을 하면, 그 사람은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자기 것인 줄로만 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영의 생각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전에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어떤 것을 회상하는 것과 같다. 허락하심에 따라 나는 이것을 경험해 보아 알게 되었다. 이런 현상 때문에 고대인들 중에는 자기들은 수천 년을 지나 자기들의 전생과 전생에 행한 모든 것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돌아왔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때때로 전에 듣도 보도 않은 것이 기억처럼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영들이 영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사람들의 생각 안으로 유입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다소 내용이 좀 길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 각 사람에게는 중간영계에서 두 종류의 영들이 와 있다. 이는 스스로 떨어져나간 인류를 어떻게 해서든 자신과 계속 연결되어 있게 하시려는 주님의 자비이다.

 

둘째, 이 영들은 선한 영들의 경우, 각 사람의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악한 영들은 그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가 각각 그 기억과 생각이 자기 것인 줄 안다. 사람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악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이 와 있지 않으면 그는 존재할 수 없다.

 

셋째, 이 영들은 자기들이 사람 안에 와 있는 줄 모른다.

 

넷째, 이 영들은 에이전시(agency, 代行) 영들이다. 즉 선한 영들은 천국 어느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고, 악한 영들은 지옥 어는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렇게 해서 사람은 천국과, 그리고 지옥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다섯째, 사람의 애정 상태에 따라 와서 머무는 영들이 달라진다.

 

등...

 

 

이상을 종합했을 때, 저는 다음과 같이 나름의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최면에 빠진 상태에서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은 사실은 그에게 와있는 영들 자신의 기억과 생각이다. 이런 유입을 주님이 금하셨음에도 가끔 일어나는 것은 악한 영들은 기본적으로 주님의 명령을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불법에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 여러 겹의 전생, 환생 등은 이런 것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그런 어떤 것이다. 사람의 지상 생활은 ‘일생’(一生)이다. 윤회 같은 것은 없다.

 

둘째, 전생, 환생, 윤회 같은 것을 알아보려 하는 것은 주님이 금하신 것이다. 이는 주님의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인데, 따라서 누구에게 최면을 걸거나 스스로 그런 데를 찾아가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셋째, 절대 영들과 대화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영들은 사람의 육안을 통해 자연계를 볼 수 있으므로 우리가 보는 모든 컨텐츠들에 조심, 유의해야 한다. 음란, 폭력, 잔인, 공포 등의 컨텐츠들을 접하면, 그로 인해 우리 안의 영들이 깨어나 우리를 망가뜨리려 하기 때문이다.

 

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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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07-30(D1)-주일예배(2497, 눅12,1-7),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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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FnU2GV7-DY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1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눅12:1-7)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어떤 일에 대해 이 일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아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았다 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그 둘이 똑같기 때문이지요. 오직 주님만 구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후에는 다릅니다. 거기서는 이 일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AE.794:3) In this world no one can determine whether works are from the Lord or from man, since in external form the two kinds appear alike, but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 Lord alone, and after man’s life in the world their origin is disclosed (Matt. 10:26, 27; Mark 4:22; Luke 8:17; 12:2, 3, 8, 9). (AE.794:3)

 

우리 사회 전반에 종북(從北) 또는 종중(從中) 좌파의 사람들이 주도하는 거짓 선동의 거대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 양평 IC 선동이 있습니다. 이번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사례는 다행히 교사들 스스로 전교조의 개입을 원천 차단, 저들이 무슨 선동질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들의 모든 움직임을 선동 또는 괴담이라 하는 이유는 저들의 주장이 거의 다 사실과 진실이 심각하게 결여된, 거짓 뉴스이기 때문입니다.

 

4.15 부정선거로 다수당이 된 게 99% 분명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 문재인 전 정권 사람들, 그리고 민노총을 비롯, 방송, 언론 노조와 정부 각 부처 산하 곳곳에 심어놓은 저들 좌파의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모두 다 거짓과 위선, 곧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른 모습들을 봅니다. 물론 우파 보수라 하여 이 거짓과 위선의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위선자들의 행동과 관련하여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794번 글 3항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요,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어떤 일에 대해 이 일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아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았다 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그 둘이 똑같기 때문이지요. 오직 주님만 구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후에는 다릅니다. 거기서는 이 일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AE.794:3)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이 있고,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이 있는데, 겉으로 보면 비슷,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일을 함에 있어 선 또는 진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은 겉으로는 선과 진리이신 주님의 일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 속에 사사로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은 언제나 진실하고,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은 언제나 거짓된 위선의 일입니다. 위선자들의 행동은 건전한 사람들의 이성을 파괴하고 분별력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미워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위선을 조심하라 하십니다. 1절입니다.

 

1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무리 수만 명이 모였는데 서로 밟힐 만큼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무리’(multitude)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무리가 모였다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선은 없고 진리만 많이 있다는 뜻인데요, 교회 안에 선은 없고 진리만 있을 때는, 그런 교회에서는 교인들끼리 서로 다투고, 서로에 대한 중상과 비방으로 심하면 교회가 분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의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예견,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조심하라 하십니다. 진리만 있고 선이 없는 사람들은 자칫 위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위선자들은 자신도 해치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해치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특별히 경계하셨습니다. 2절, 3절입니다.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남을 비방하거나 중상하는 사람들은 대개 대놓고 비방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누가 들을까 아주 은밀하게 하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고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하셨습니다.

 

※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8장, ‘두고 가는 것은 육체밖에 없다’(After Death Man Is Possessed of Every Sense, and of All the Memory, Thought, and Affection That He Had in the World, Leaving Nothing Behind except His Earthly Body) 462번 글로, 여기에 바로 이 구절들에 대한 의미가 나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기억 전체를 유지한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경우를 통해 보아왔다. 기록할 만한 많은 것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 세상에서 지은 자기 죄와 악행을 부인하는 영들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 결백하다고 믿지 못하도록 그들의 기억에서 생의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모든 행위가 차례로 꺼내져 재현되었는데 주로 간음과 음탕한 행위들이었다.

 

악한 기술로 남을 속이고 훔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사기행각과 도둑질도 연달아 모두 드러났는데 그중 많은 것은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고백해야 했다. 그 당시 그들 마음속에 뒤섞여 있던 모든 생각, 의도, 즐거움과 두려움까지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판과 관련, 뇌물을 받고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억으로 조사받았고, 처음 직책을 맡은 때부터 그만둔 날까지의 모든 것이 드러났다. 자세한 뇌물의 액수와 가치, 받은 일시, 당시 그들의 마음 상태와 의도까지 수백 가지가 떠올라 눈앞에 상영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놀랍게도 그들이 그런 행위를 기록해 둔 수첩까지 한 장 한 장 펼쳐져 읽힌다.

 

처녀들을 유혹해 수치스럽게 했거나 순결을 빼앗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심판을 받는다.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범행이 자세하게 떠오르고 재현된다. 처녀들과 여자들의 얼굴, 장소, 그때 했던 말들과 의도가 실제처럼 나타난다. 이것은 어떤 장면을 눈으로 볼 때처럼 즉각 나타나고, 어떤 때는 그 상영이 몇 시간씩 계속된다.

 

남을 중상하는 것을 가볍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의 비방과 중상이 그때 사용한 단어들까지 그대로 재연되는 것을 들었다. 세상에서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감추어 왔음에도,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과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상영되었다.

 

사기로 친척의 유산을 가로챈 사람이 있었다. 그도 같은 심판을 거쳐 판결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들 사이에 오간 서류와 편지가 읽혀지는 것이 내 귀에 들렸는데, 그것은 한 글자도 빠짐이 없다고 했다.

 

바로 그 사람은 죽기 얼마 전에 그의 이웃을 몰래 독살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밝혀진 과정은 이렇다. 그가 발밑에 구덩이를 파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 구덩이에서 한 사람이 마치 무덤에서 나오듯이 나와서 그를 향해 외쳤다.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그러자 그 살인자가 친절하게 말을 거는 모습, 잔을 건네주는 모습, 게다가 그 행위를 하기 전에 그가 한 생각과 그 후에 일어난 일까지 모든 것이 드러났다.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자 그는 지옥을 판결받았다.

 

한마디로 모든 악한 영에게는 그의 모든 악과 범행과 약탈과 사기와 속임수가 밝히 드러나고, 그의 기억에서 떠올려져 죄과가 충분히 입증된다. 또 모든 상황이 전부 공개되므로 이것을 부인할 여지가 없다.

 

나는 사람의 기억을 천사가 조사할 때, 그가 한 달 동안 생각한 것이 하루하루 일어난 그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되살려지는 것도 보았다.

 

이상의 사례들로, 사람은 자기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간다는 것과 사후에 만인 앞에 드러나지 못하게 감출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주님 말씀도 그것을 의미한다.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눅12:2-3)

 

(HH.462)

 

계속해서 4절, 5절입니다.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친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요한복음 15장 14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4)

 

말씀처럼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사람들, 즉 영적인(spiritual) 사람들이 주님의 친구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육신을 죽이는 재물이나 지위,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적인(natural) 사람의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람의 두려움에 대해 계시록 해설 696번 글 23항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영적인 사람의 두려움은 악한 삶과 교리의 거짓으로 인해 주님으로부터 멀어지지는 않을까, 또는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의 두려움은 세상 재물이나 지위,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행여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6, 7절입니다.

 

6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말씀에서 ‘참새 다섯 마리’는 신앙인의 지혜를 형성하는 작은 진리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돈을 받고 참새를 파는 것은 눈앞의 이득을 위해 진리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참새 하나도 잃어버리는바 되지 않게 하겠다고 하시고요,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머리털’은 몸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계에서의 신앙인의 삶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동과 그 속에 담긴 의도가 머리털입니다. 따라서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 하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말과 행동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의도까지 모두 아신다는 뜻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참 많지요. 그리고 바로 수치심과 후회와 같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의도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면 주님께서는 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조금 했더라도 진리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는 영적인 두려움뿐 아니라 세상의 권세에 대한 두려움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 혼란과 진통은 주님이 주시는 선과 진리와 우리 안에 있는 악과 거짓 간 싸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 교회 가르침에서는 큰 싸움을 시험이라고 부르고요, 작은 싸움을 발효(醱酵)라고 부릅니다. 발효란 술이 익을 때 일어나는 바로 그 발효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발효 과정을 거쳐 술의 맑은 원액과 찌꺼기가 분리되는 것처럼 영적인 발효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이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뒤섞여 있는 한 사회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모든 과정이 그렇듯이 우리 사회가 거듭나려면 영적인 시험과 발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선자와 진실한 자들이 주님에 의해 가려질 것입니다. 이때 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신앙생활로 인해 주님이 주신 사랑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속적인 사람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분과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3-14)

 

아멘

 

 

원본

2020-05-10(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7-25(D3)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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