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1 심화
1. ‘감각과 단순한 지식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된다는 것은?’
AC.31에서 스베덴보리는 바로와 애굽에 관하여 ‘단지 감각과 단지 기억 지식의 원리’(the principle of mere sense and of mere knowledge)를 뜻하며, 여기서는 그것들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었음을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표현을 읽을 때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감각이나 기억 지식 자체를 나쁜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감각을 통하여 자연세계를 접하고, 기억 지식을 통하여 배우고 생각합니다. 앞의 AC.24-29에서도 기억 지식은 거듭남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문제는 감각과 기억 지식이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만’을 최종 기준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영적인 모든 것을 감각적 증거 아래에 두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천국, 영혼, 주님의 섭리와 같은 것을 오직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는지 없는지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질문하고 검토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연적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실재의 전부로 정하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감각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섬기는 자리가 아니라 영적인 것의 재판관이 될 때 질서가 뒤집힙니다.
기억 지식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과 신학과 교리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지식 자체는 귀중하며, 주님께서 거듭남 가운데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것만 참이다’, ‘내 이성이 납득하지 못하면 주님의 말씀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으로 기억 지식을 가장 높은 자리에 놓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지식이 사랑과 신앙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신앙의 가능 여부를 판정하는 지배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 삶에서는 이런 모습이 아주 미묘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교리에는 매우 정확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사랑과 자비가 사라질 수 있고, 말씀의 구절을 많이 알면서도 그 지식을 상대방을 판단하고 이기는 데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이 많아서 사랑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지식이라도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쓰이면 매우 유익합니다. 문제는 지식이 자기 지성에 대한 신뢰와 결합하여 사랑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입니다.
감각적인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 세계를 자세히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 자체는 신앙의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하여 주님의 지혜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적 사실만을 전부라고 여기고 영적인 원인이나 목적 자체를 배제할 때, 감각은 더 이상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지배하는 원리가 됩니다. AC.31에서 경고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질서의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감각과 단지 기억 지식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된다’는 말을 ‘과학이나 지식이 신앙을 파괴한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지식과 이해를 거듭남의 중요한 단계로 봅니다. 오히려 사람의 감각과 지식이 자기보다 높은 것, 곧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섬길 때에는 그것들이 거듭남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AC.31의 표현은 결국 ‘무엇이 무엇을 다스리는가?’의 문제입니다. 사랑과 신앙이 중심이 되고 감각과 기억 지식이 그것들을 섬기면 질서가 바르게 서지만, 감각과 기억 지식만이 최종 기준이 되어 사랑과 신앙을 재단하기 시작하면 영적 빛은 점차 가려질 수 있습니다. 에스겔에서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 모습은 바로 이런 상태를 나타냅니다. 자연적인 것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영적인 것 위에 올라가 지배할 때 사랑과 신앙의 빛이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AC.31 심화 1)
AC.31 심화 2, 사60의 ‘새 교회’는 어느 교회를 말하는가?
AC.31 심화2. 사60의 ‘새 교회’는 어느 교회를 말하는가? AC.31 [2]에서 스베덴보리는 사60:1-3, 20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이 ‘주님의 강림과 이방인들의 밝아짐, 따라서 새 교회와, 특히 어둠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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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1, 창1:14-17, ‘해와 달과 별 : 사랑과 신앙의 밝아짐과 어두워짐’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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