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창2:7)
AC.94
‘지면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form man, dust from the ground)는 것은 그의 겉 사람을 형성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겉 사람은 이전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5절에서 ‘땅을 갈 사람이 없었다’(no man to till the ground)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는 것은 그에게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셨다는 뜻이며,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man became a living soul)는 것은 그의 겉 사람도 살아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To “form man, dust from the ground” is to form his external man, which before was not man; for it is said (verse 5)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To “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is to give him the life of faith and love; and by “man became a living soul” is signified that his external man also was made alive.
해설
AC.94는 창2:7의 세 표현을 차례로 해석하면서 천적 인간의 형성이 어디에 이르는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는 ‘지면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둘째는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 셋째는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들을 각각 겉 사람의 형성,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받음, 그리고 마침내 겉 사람까지 살아 있게 됨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히 육체를 만들고 거기에 생물학적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의 속뜻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인간의 겉 사람에까지 이르는 천적 인간의 형성을 묘사합니다.
먼저 ‘지면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겉 사람을 형성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지면’은 앞의 AC.90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의 겉 사람이 ‘땅’이라 불리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 또는 ‘들’이라 불린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지면의 흙으로 사람이 형성된다는 것은 이미 천적 인간의 문맥 안에서 겉 사람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앞 AC.89에서도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 곧 ‘하늘’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으므로, 이것은 겉 사람이 자기 힘으로 새로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질서에 따라 겉 사람이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겉 사람이 ‘이전에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상당히 강하게 말합니다. 그 근거가 창2:5의 ‘땅을 갈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전에 육체를 가진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다루는 속뜻에서 아직 겉 사람이 천적 질서 안에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참된 의미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사람’이라는 말은 단순한 생물학적 인간을 넘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올바른 질서 안에 있는 인간이라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도록 형성되어 갈 때 비로소 그것도 ‘사람’이 됩니다.
다음으로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은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앞의 AC.76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AC.76에서도 천적 인간의 생명이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된다고 했는데, AC.94는 이제 그 생명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라고 밝힙니다. 따라서 ‘생명의 숨’은 단순히 호흡이나 육체적 생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속뜻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과 사랑의 생명입니다. 앞서 AC.83에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된다고 했던 흐름도 여기와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겉 사람도 살아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도’가 중요합니다.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되지만 그 생명이 속 사람에만 머물러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AC.91에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며,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온이 마치 비와 안개처럼 겉 사람을 적신다고 했습니다. AC.92에서는 그것을 ‘내적인 평화로부터 나오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AC.94에서는 그 생명이 겉 사람에까지 이르러 겉 사람 ‘또한’ 살아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이 겉 사람에까지 내려와 전체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살아 있음’도 자연적 생존과 구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살아 있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적 의미에서는 아직 참된 생명을 받지 못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참된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AC.94에서는 그것을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 생명이 겉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까지 흘러들 때 겉 사람도 살아 있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삶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삶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내적 생명을 받아 그 생명을 표현하고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AC.94는 AC.89 이후의 흐름을 매우 선명하게 완성합니다.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되고(AC.89), 겉 사람은 ‘지면’과 ‘들’이 되어 속 사람의 질서 아래 놓이며(AC.90),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고(AC.91),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을 받아 선과 진리를 산출합니다(AC.92-93). 그리고 이제 ‘생명의 숨’, 곧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 겉 사람에까지 이르러 그 겉 사람도 살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면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은 속뜻에서 주님께서 천적 인간의 겉 사람까지 형성하시고 살리시는 거듭남의 완성을 묘사합니다. (AC.94)
AC.95, 창2:7, ‘신앙의 생명은 준비시키고, 사랑의 생명은 사람 되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5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이 다루어집니다. 앞의 두 절에서는 그의 신앙 또는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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