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37

창세기의 처음 장은 전체적으로 태고교회를 다루는데, 교회는 처음 시기부터 멸망한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man) [homo]이라 합니다. 장의 앞부분은 태고교회가 천적 인간이었던 가장 번성한 상태를 다루며, 여기서는 이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후손들을 다룹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해설

AC.137은 지금까지 읽어 온 창세기 1장과 2,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3장을 하나의 큰 역사로 묶어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의 처음 세 장이 전체적으로 태고교회를 다룬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 태고교회를 그 처음 시기부터 마침내 멸망하는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man) [homo]이라고 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사람은 단지 한 개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1-3의 속뜻에서는 태고교회와 그 교회를 이루었던 사람들의 상태가 하나의 연속적인 역사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설명은 지금까지 우리가 창1과 창2를 읽어 온 흐름도 다시 정리해 줍니다. 1에서는 사람이 거듭나는 과정이 단계적으로 묘사되었고, 2 앞부분에서는 그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된 상태가 다루어졌습니다. AC.137은 이 장의 앞부분을 태고교회의 가장 번성한 상태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번성했다는 것은 외적인 세력이나 물질적 풍요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께 인도받고 퍼셉션으로 선과 진리를 알며, 모든 지혜와 지성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질서 안에 있었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제 창2 안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AC.131에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했고, AC.132-136은 창2:18-25가 바로 그 문제를 다룬다는 전체 개요를 제시했습니다. AC.137은 이 전환을 태고교회 전체 역사 속에 놓아 줍니다. 앞부분이 태고교회의 가장 번성한 천적 상태였다면, 이제부터는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창2 후반부는 창3의 타락 이야기와 단절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의 상태가 변화해 가는 과정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후손들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한 사람의 어느 순간의 심리 변화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따라 변화해 가는 태고교회의 상태를 보고 있습니다. AC.127에서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는 욕망이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37은 창2 후반부에서 시작되는 proprium으로의 기울어짐과 그 후손들의 상태가 결국 창3까지 이어지는 큰 흐름 속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거쳐 멸망에 이르게 되는지는 앞으로의 본문을 따라가며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AC.137태고교회라는 말을 읽을 때 한 시점의 고정된 상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같은 태고교회 안에도 가장 번성한 상태가 있었고, 이후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상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창1-3 전체가 그 처음 시기부터 마지막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다룬다고 합니다. 따라서 태고교회 사람들은 모두 천적 인간이었다는 식으로 모든 시기를 동일하게 묶어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태고교회 자체에도 시작과 절정, 변화와 쇠퇴의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창3을 읽을 때에도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3의 뱀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타락을 갑자기 등장한 한 개인의 단회적인 사건으로만 읽기보다, 이미 창2 후반부에서 시작된 태고교회 후손들의 proprium으로의 기울어짐이 어떻게 더 진행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C.137은 아직 그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창1-3 전체가 태고교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다루며, 바로 이 지점부터 이야기의 초점이 가장 번성한 천적 상태에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후손들로 이동한다는 큰 구조를 붙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AC.137은 짧지만 창1-3 전체의 독법을 결정하는 중요한 안내문입니다. 1의 거듭남, 2 앞부분의 천적 인간, 2 후반부에서 시작되는 proprium으로의 기울어짐, 그리고 앞으로 창3에서 전개될 태고교회의 쇠퇴와 멸망은 서로 떨어진 이야기들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영적 역사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 큰 틀을 기억하면 이제부터 상세히 설명될 창2:18-25도 단순히 최초 남녀의 창조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만 읽지 않고, 태고교회가 가장 번성한 천적 상태에서 proprium으로 기울어 가기 시작하는 중대한 전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AC.137)

 

 

 

AC.136, 창2:18-25 개요, ‘프로프리움 안에 주입된 이노센스’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절) AC.136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이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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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

 

AC.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proprium 여전히 받아들일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니다. (25)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아담과 그의 아내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

 

해설

AC.136은 창2:25아담과 그의 아내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의 속뜻을 미리 요약하면서, AC.132부터 이어져 온 proprium의 문제가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허락되고,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된 데 이어, 이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이노센스의 근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인간의 proprium 안에 이노센스가 있다고 하지 않고, 그것이 주님으로부터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계속 확인해 온 질서와 일치합니다. 지혜와 지성, 이성과 지식이 주님의 것이며,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도 주님께서 부여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proprium 안에 들어오는 이노센스 역시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다고 해서 생명과 선의 근원이 인간 자신에게 옮겨간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노센스가 proprium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스며든다는 점입니다. AC.134에서는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고, AC.135에서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었습니다. 그런데 AC.136에서도 proprium 자체를 제거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흐름만 놓고 보면, 주님께서는 인간이 proprium으로 기울려는 성향을 단순히 없애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허용하시면서도, 그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이노센스가 함께할 수 있도록 다루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받아들일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이 문장은 proprium 그 자체를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어야 그것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AC.136까지 읽은 단계에서는 인간의 proprium을 독립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 반대로 주님께서 단순히 제거하시는 대상으로만 볼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고 생명을 결합하시며 이노센스를 스며들게 하시는 과정 전체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설명은 창2:25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를 읽는 방향도 미리 보여 줍니다. 아직 벌거벗음부끄러워하지 않음각각의 구체적인 속뜻은 뒤의 설명을 기다려야 하지만, AC.136에 따르면 이 구절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proprium 안에 있는 상태와 관계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벌거벗음은 곧바로 수치나 죄의 상태를 뜻한다고 미리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창3에서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상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이후 설명을 따라가며 확인해야 합니다.

 

AC.132부터 AC.136까지를 함께 보면 이제 하나의 흐름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주님께만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인간에게 자신이 받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셨지만, 인간은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되었고, 이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인간의 proprium을 허용하시면서도 그것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주님의 질서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AC.136에서 아직 이노센스란 정확히 무엇인가?를 후대의 교리까지 끌어와 완성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독자가 붙들어야 할 것은 더 단순하면서도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지만,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자기 생명의 근원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영적 생명이 결합되고, 다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스며듭니다. 바로 이 상태가 창2:25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한상태를 이해하는 문을 열어 줍니다. (AC.136)

 

 

 

AC.137, 창2:18-25 배경, ‘태고교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 천적 인간에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후

AC.137창세기의 처음 세 장은 전체적으로 태고교회를 다루는데, 이 교회는 그 처음 시기부터 멸망한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man) [homo]이라 합니다. 이 장의 앞부분은 태고교회가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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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5, 창2:18-25 개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다’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절) AC.135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게 됩니다. (24절) Celestial and 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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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

 

AC.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게 됩니다. (24)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몸을 이룰지로다 (24)

 

해설

AC.135는 창2:24둘이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의 속뜻을 미리 요약합니다. AC.132-134에서는 사람이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proprium으로 기울었으며, 마침내 자신의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는 과정이 설명되었습니다. 이제 AC.135에서는 그 proprium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가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proprium이 주어졌다고 해서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의 AC.124에서는 지혜와 지성과 이성과 지식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했고, AC.129에서는 출발점이 주님이면 생명이고 자기 자신이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진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안에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을 갖게 된다는 뜻일 수 없습니다. AC.135는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는 표현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적·영적 생명과 인간의 proprium이 그 근원에서 실제로 하나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사랑하고 생각하고 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경험됩니다. 그러나 앞에서 계속 밝혀 온 생명의 근원은 주님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인간이 자기의 것으로 느끼는 삶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이 점에서 AC.135허락된 proprium이라는 AC.132의 표현도 조금씩 이해하게 합니다. 만일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진다는 것이 단순히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면, 이어서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된다는 설명은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자기의 것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주어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거기에 결합됨으로써 인간에게는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는 상태가 형성됩니다. 다만 이 결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이 한 문장만으로 더 나아가 규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문에 창2:24둘이 몸을 이룰지로다도 이 문맥에서는 먼저 자연적인 부부의 결합을 넘어 인간의 proprium과 천적·영적 생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씀으로 읽게 됩니다. 앞에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것이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지는 것을 묘사한다고 했으므로, 이제 이 되는 것은 그 proprium에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인 각 표현의 상응은 이어지는 번호에서 설명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 전체 구조만 붙드는 것이 안전합니다.

 

AC.135는 또한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을 엽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내가 생각한다’, ‘내가 원한다’, ‘내가 사랑한다’, ‘내가 행한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AC.135의 표현을 따르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기때문에 이러한 경험이 가능하다고 이해할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나 자유와 책임의 관계까지 여기서 완성해서 설명하기보다는, 현재 본문이 직접 말하는 범위 안에서 그 가능성만 열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AC.135proprium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한 문장을 제공합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지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은 여전히 주님으로부터 오며, 그것들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인간에게는 하나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창2:24를 해설하면서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된다는 말만이 아니라 하나처럼 보인다는 스베덴보리의 섬세한 구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AC.135)

 

 

 

AC.136, 창2:18-25 개요, ‘프로프리움 안에 주입된 이노센스’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절) AC.136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이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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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4, 창2:18-25 개요,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다 -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짐’ (21-23절)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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