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2:5, 6)

 

AC.9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함축하는지는 사람이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되어 그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면 도저히 지각할 없습니다. 그것들은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일 때에는 사람이 아직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천적 인간이 되면 사람이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며, 그러므로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릅니다. (AC.87 참조) 평온은 (rain) 안개(mist) 의미됩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으로부터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평화에서 나오는 평온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이라 불리는 것들을 산출합니다. 이것들은 구체적으로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입니다. But what these things involve cannot possibly be perceived unless it is known what mans state is while from being spiritual he is becoming celestial, for they are deeply hidden. While he is spiritual, the external man is not yet willing to yield obedience to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re is a combat;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n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 combat ceases, and tranquility ensues (see n. 87). This tranquility is signified by rain and mist, for it is like a vapor with which the external man is watered and bedewed from the internal; and it is this tranquility, the offspring of peace, which produces what are called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which, specifically, are things 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from a celestial spiritual origin.

 

해설

AC.91AC.90에서 제시한 상응을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거듭남의 과정으로 풀어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이 내용이 깊이 감추어져있어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어 갈 때의 상태를 알지 못하면 도저히 지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 ‘안개’, ‘들의 관목’, ‘들의 초목을 각각 하나의 뜻에 대응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표현의 배후에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직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기꺼이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알면서도, 겉 사람 안에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나온 욕구와 습관과 생각들이 있어서 그것에 저항합니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서로 아무 관계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질서가 아직 겉 사람 안에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영적 인간에게 싸움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겉 사람이 사라지거나 인간의 자연적인 기능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것들이 속 사람의 질서 아래 놓여 그 질서를 기꺼이 섬기게 됩니다. AC.89에서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 하늘에서 시작된다고 했고, AC.90에서는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지면이라 불린다고 했습니다. AC.91은 그 이유를 더욱 안쪽에서 보여 줍니다. 겉 사람이 이제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므로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AC.87과 직접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될 때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므로 싸움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AC.91은 같은 변화를 이번에는 인간 내부의 질서에서 설명합니다. AC.87이 싸움의 영적 환경을 보여 준다면, AC.91은 그에 상응하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의 종식은 단순히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서로 저항하던 것이 질서 안으로 들어오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때 오는 것이 평온이며, 그것이 안개로 의미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매우 아름다운 자연적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속 사람으로부터 마치 수증기가 올라와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겉 사람은 억압되거나 메말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 사람으로부터 적셔집니다. 거듭남의 완성은 자연적인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속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두어 생명 있게 하는 과정이라는 점이 이 이미지에 잘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평온을 단순한 평온이라고 하지 않고 평화에서 나오는 평온이라고 합니다. 평화가 근원이고 평온은 그 평화에서 나오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평온이 들의 관목들의 초목을 산출합니다. AC.90에서는 이것들이 일반적으로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고 했는데, AC.91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을 뜻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해서 이성과 기억지식이 불필요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새로운 기원과 질서 안에 놓입니다.

 

이 마지막 점은 특히 중요합니다. 앞의 AC.80에서는 천적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알려 하거나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으로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만 떼어 읽으면 스베덴보리가 이성이나 기억지식을 부정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91에서는 천적 상태에서도 rationalia et scientifica’, 곧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산출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것들의 존재가 아니라 기원과 질서입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에서 출발하여 신적인 것을 지배하려 할 때가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천적 영적 기원 아래 놓일 때 이성과 기억지식도 올바른 쓰임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AC.91은 거듭남을 내적인 것은 선하고 외적인 것은 나쁘므로 외적인 것을 버리는 과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겉 사람은 속 사람을 섬겨야 하지만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과 기억지식 역시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과 질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영적 인간의 상태에서는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싸움이 있지만, 천적 인간의 상태에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기꺼이 순종하면서 평화에서 나오는 평온이 그 겉 사람을 적시고, 거기서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 새로운 질서 가운데 산출됩니다. 이것이 ’, ‘안개’, ‘들의 관목’, ‘들의 초목이라는 창2의 자연적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천적 인간의 형성 과정입니다. (AC.91)

 

 

 

AC.92, 창2:5-6, '평화의 평온은 싸움의 부재가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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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것들’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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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2:5, 6)

 

AC.90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 일반적으로 그의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그가 영적 인간으로 있는 동안에는 (earth)이라 불리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ground), 그리고 또한 (field)이라 불립니다. 곧이어 안개(mist)라고 불리는 (Rain)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입니다. By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are meant in general all that his external man produces. The external man is called earth while he remains spiritual, but ground and also field when he becomes celestial. “Rain, which is soon after called mist, is the tranquility of peace when combat ceases.

 

해설

AC.90은 바로 앞 AC.89에서 제시한 어휘 변화 가운데 하나를 곧바로 설명합니다. 2에서는 앞의 창조 기사와 달리 뿐 아니라 지면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문체상의 변화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들의 관목들의 초목은 일반적으로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나오는 식물의 표현들은 자연계의 식물 자체보다 천적 인간의 겉 사람 안에서 나타나는 것들을 묘사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같은 겉 사람을 가리키면서도 인간의 상태에 따라 말씀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있는 동안 그의 겉 사람은 (earth)이라 불리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ground)’, 그리고 (field)이라 불립니다. AC.8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2에 들어오면서 이전에는 없던 지면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천적 인간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습니다. AC.90은 이제 그 이유를 직접 밝힙니다. 겉 사람 자체가 없어지거나 전혀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겉 사람이 천적 질서 안에 들어감에 따라 그것을 나타내는 말씀의 표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점은 AC.89천적 인간의 형성은 사람, 하늘로부터 시작된다는 설명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속 사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갖게 되면 그 질서가 겉 사람에까지 미치고, 겉 사람은 그에 따라 산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들의 관목들의 초목그의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을 의미한다는 말은 겉 사람이 독립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앞 AC.88에서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고 했고, AC.89에서는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90의 겉 사람의 산출 역시 그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 ‘지면’, ‘을 하나의 고정된 상응 사전처럼 다루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AC.90이 직접 말하는 범위는 현재의 문맥에서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이 이라 불리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은 지면이라 불린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물의 명칭 자체보다 인간의 내적 상태가 달라지면서 동일한 겉 사람도 말씀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앞 AC.88에서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비슷해 보이는 표현에도 서로 구별되는 관념이 있다고 한 것과 함께,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세밀한 어휘 차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읽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 문장은 다시 안식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스베덴보리는 를 곧이어 나올 안개와 연결하면서 그것을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AC.84-87의 흐름과 직접 이어집니다. 여섯 날 동안에는 싸움과 수고가 있었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또는 안식일이 될 때 싸움이 그칩니다. AC.87에서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면서 싸움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90은 그 뒤에 오는 상태를 단순히 싸움이 없음이라는 소극적인 상태로만 말하지 않고 평화의 평온이라는 적극적인 상태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단순히 외부의 갈등이 없거나 마음이 잠시 편안한 심리 상태와 같지 않습니다. 문맥상 이것은 거듭남의 싸움이 그치고 주님의 질서가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흘러들어 가는 천적 상태의 평온입니다. 바로 앞 AC.85에서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결과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AC.90평화의 평온도 그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개는 그러한 안식의 상태와 관련하여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것입니다.

 

결국 AC.90은 짧은 번호 안에서 창2의 새로운 어휘와 천적 인간의 상태를 연결합니다.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을 나타내던 은 천적 인간의 문맥에서 지면로 표현되고, 그 겉 사람에서 산출되는 것들은 들의 관목들의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싸움 이후의 평화의 평온이라는 상태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AC.89가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면, AC.90은 그 속 사람의 질서 아래 놓인 겉 사람이 어떤 새로운 상태에 들어가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하는 번호입니다. (AC.90)

 

 

 

AC.91, 창2:5-6,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기 시작할 때, 싸움은 그치고 평온이 온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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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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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2:4)

 

AC.89

하늘과 땅의 내력(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그의 형성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뒤따르는 모든 세부 사항으로부터 매우 분명합니다.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다는 , 땅을 사람이 없었다는 ,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는 , 그리고 후에 들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를 만드셨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이들의 형성은 이미 장에서 다루어졌음에도 여기서 다시 언급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이 다루어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처음으로 주님께서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이라 불리신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단지 하나님(God)이라고만 불리셨습니다. 나아가 이제는 (ground) (field) 언급되는 반면, 앞에서는 오직 (earth) 언급되었습니다. 구절에서는 먼저 하늘(heaven) (earth)보다 앞에 언급되고, 후에는 (earth) 하늘(heaven)보다 앞에 언급됩니다. 이유는 (earth) 사람을, 하늘(heaven)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개혁이 (earth),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여기서 다루는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람, 하늘(heaven)로부터 시작됩니다.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are 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 That his formation is here treated of is very evident from all the particulars which follow, as that no herb was as yet growing;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s well as that Jehovah God formed man, and afterwards, that he made every beast and bird of the heavens, notwithstanding that the formation of these had been treated of in the foregoing chapter; from all which it is manifest that another man is here treated of. This however is still more evident from the fact that now for the first time the Lord is called Jehovah God, whereas in the preceding passages, which treat of the spiritual man, he is called simply God”; and, further, that now ground and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the preceding passages only earth is mentioned. In this verse also heaven is first mentioned before earth, and afterwards earth before heaven”; the reason of which is that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and heaven the internal, and in the spiritual man reformation begins from earth, that is, from the external man, while in the celestial man, who is here treated of, it begins from the internal man, or from heaven.

 

해설

AC.89는 창2:4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창1의 창조 기사를 단순히 다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하늘과 땅의 내력은 속뜻에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이것은 뒤이어 나오는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1에서는 이미 식물이 나고 사람과 동물이 창조되었는데, 2에서는 다시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다고 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다시 들의 짐승과 하늘의 새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이미 끝난 창조가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뜻에서는 같은 사건을 중복해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른 사람’, 곧 앞에서 다룬 영적 인간과 구별되는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기 때문에 이러한 서술이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라는 표현은 특히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두 번째 인간이나 별개의 역사적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창1의 여섯 날을 거치며 형성된 영적 인간과, 이제 창2에서 더 깊이 다루어질 천적 인간의 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AC.83에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고, AC.84-88에서는 그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 안식일, 하나님의 일로 설명했습니다. AC.89부터는 바로 그 천적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더욱 세밀하게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창1과 창2의 차이는 단순한 두 창조 이야기의 차이가 아니라 속뜻에서는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이라는 서로 다른 상태의 차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사실을 보여 주는 중요한 표지로 하나님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을 지적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이 다루어질 때에는 단지 하나님이라 하였는데, 이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합니다. AC.89 자체는 여기서 왜 천적 인간과 관련하여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사용되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번호에서 그 의미를 미리 완성하여 설명하기보다는, 스베덴보리가 하나님의 이름의 변화 자체를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넘어왔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본문상의 표지로 읽고 있다는 점을 붙드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여호와 하나님의 차이가 직접 설명될 때 다시 살펴볼 중요한 주제입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이라는 표현입니다. 앞에서는 이 언급되었지만 이제는 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것 역시 스베덴보리에게는 우연한 어휘 변화가 아닙니다. 다만 AC.89의 목적은 아직 의 상응을 자세히 해설하는 데 있지 않고, 2:4 이하의 어휘가 앞의 창조 서술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통해 지금부터 다른 상태의 인간이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의 구체적인 의미 역시 뒤의 본문에서 직접 설명될 때 충분히 다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AC.89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마지막에 나오는 하늘의 어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은 겉 사람을, ‘하늘은 속 사람을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창2:4에서는 처음에 하늘과 이라 했다가 이어서 땅과 하늘이라고 순서를 바꿉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어순까지 의미 있는 것으로 읽습니다. 영적 인간의 개혁은 ’, 곧 겉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천적 인간의 형성은 하늘’, 곧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AC.82에서 하늘은 사람, 땅은 사람을 뜻한다고 밝힌 설명이 여기서 한 단계 더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인간의 개혁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천적 인간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을 단순히 영적 인간은 외적인 사람이고 천적 인간은 내적인 사람이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에게도 분명히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차이는 주님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질서와 사람이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습니다. 영적 인간은 먼저 말씀의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따라 살면서 겉 사람의 삶이 질서 안으로 들어가고, 그 과정을 통해 내적인 것이 열려 가는 방식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천적 인간의 상태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 안에 있는 사랑과 선이 주도권을 가지며, 거기에서 겉 사람의 모든 것이 질서 지어집니다. 앞서 AC.83에서 신앙보다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한 것과도 같은 방향입니다.

 

이 때문에 AC.89는 창2의 독법을 결정하는 중요한 안내판과 같습니다. 앞으로 나오는 초목, , 땅을 가는 사람, 흙으로 지어진 사람, 생명의 숨, 에덴동산, 각종 나무, 강과 들과 짐승을 창1에서 이미 나온 것들의 단순 반복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것들은 천적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어떤 질서 가운데 놓이는지를 보여 주는 새로운 문맥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특히 창1에서는 겉 사람에서 시작하여 속 사람을 향해 진행되는 영적 인간의 개혁이 두드러졌다면, 이제 창2에서는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향하여 질서가 내려오는 천적 인간의 형성이 중심이 됩니다.

 

동시에 여기서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표현을 인간이 자기 내면 깊은 곳을 스스로 탐색하여 천적 상태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바로 앞 AC.88은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이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내면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속 사람으로부터 역사하시고 그곳에서부터 겉 사람을 질서 있게 만드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AC.88주님께서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신다는 선언과 AC.89천적 인간의 형성은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설명은 이렇게 서로 이어집니다.

 

결국 AC.89의 핵심은 창2:4 이하를 읽는 관점의 전환입니다. 반복되는 창조 이야기가 아니라 천적 인간의 형성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 ‘이라는 어휘, ‘하늘과 의 순서까지 모두 그 전환을 알리는 표지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차이는 영적 인간의 개혁이 겉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데 비해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2의 이후 구절들은 바로 이 질서 안에서 읽어야 하며, AC.89는 그 전체 해석의 방향을 미리 세워 주는 번호입니다. (AC.89)

 

 

 

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것들’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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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8, 창2:2-3,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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