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seventh day)이며, 따라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불렸다는 것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아르카나입니다. 이는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 사이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차이는 AC.81에서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seventh day) 또는 안식일(sabbath)이라는 것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말씀은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불립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며,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안식일입니다.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인 일곱째 날로 표상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이 법궤가 나아갈 때와 때에도 표상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법궤가 나아간 것은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였고, 법궤가 것은 평화의 상태를 표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법궤가 떠날 모세가 말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그곳에서는 법궤가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의 곳을 찾기 위하여(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갔다고 합니다. (10:33)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길을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곳을 찾았고 (10:33)

 

[3] 천적 인간의 안식은 이사야에서 안식일로 묘사됩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발을 금하여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58:13, 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천적 인간의 본성은 이와 같아서 그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주님의 뜻이 그의 (desire) 됩니다. 이리하여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데, 이것이 여기서는 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리는데, 이것은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으로 의미됩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해설

AC.85는 앞의 AC.84에서 제시된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는 아르카나를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부터 말합니다.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고 영적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같은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AC.81을 가리킵니다.

 

이 연결은 중요합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신앙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인정하고 양심의 결박 가운데 싸우는 사람이며, 천적 인간은 사랑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고 악과 거짓을 멸시하는 사람으로 구별되었습니다. AC.83에서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는 것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했고, AC.84에서는 천적 인간이 바로 일곱째 날이며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쉬신다고 했습니다. AC.85는 이 모든 설명을 안식일이라는 하나의 표상 안에 모읍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가 천적 인간을 안식일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이번 번호의 중심입니다.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것은 그 사람에게서 독립적으로 어떤 높은 영적 상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안식의 근원이신 주님의 형상이 그 사람 안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증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막2:28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를 인용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는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사람 자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참된 인간성의 원형과 근원이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적 인간이 사람이며 안식일인 것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이어서 스베덴보리는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안식의 의미가 단순히 노동을 멈추는 것에서 크게 확장됩니다. 안식은 주님의 나라의 상태이며, 그 본질은 평화입니다. 따라서 일곱째 날의 안식은 단순한 휴식의 표상이 아니라 주님의 질서가 이루어진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다음에는 이 안식의 원리가 교회와 개인에게 차례로 적용됩니다. 먼저 여기서 다루는 태고교회가 그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다고 합니다. 태고교회는 천적 교회였으며, 사랑과 퍼셉션의 질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주님의 안식을 표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의미는 태고교회라는 과거의 한 교회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AC.82의 원리가 다시 나타납니다. AC.82에서는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며, 그 자신이 교회가 아니면 교회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AC.85에서도 동일하게 안식일이라는 표상이 주님에게서 주님의 나라로, 교회로, 그리고 한 사람에게로 이어집니다. 한 사람 안에서 주님의 천적 질서가 이루어질 때 그 사람도 안식일이 됩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이 곧 주님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제한합니다. 주님은 안식일 그 자체이시고, 거듭난 천적 인간은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입니다. 원형과 형상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식에 앞서는 것이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입니다. 이것은 AC.84에서 말한 여섯 날 동안의 주님의 과 연결됩니다. 거듭남에는 싸움이 있습니다. 악과 거짓이 사람을 붙들고 있는 상태에서 주님께서 사람을 선과 진리의 질서로 이끄시는 과정은 싸움과 시험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싸움은 안식을 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영적 질서가 유대교회의 수고하는 여섯 날과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상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매우 넓은 원리로 밝힙니다. ‘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교회의 안식일 제도는 외적인 생활 규정에 그치지 않고 주님과 주님의 나라, 그리고 인간의 거듭남 가운데 이루어지는 안식을 표상했습니다.

 

이어지는 법궤의 예도 같은 구조를 보여 줍니다. 법궤가 광야에서 나아가는 것은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고, 법궤가 쉬는 것은 평화의 상태를 표상합니다. 그래서 법궤가 떠날 때 모세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라고 말하고, 법궤가 쉴 때에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아감의 대비입니다. 나아감에는 대적과 싸움이 있고, 쉼에는 주님의 임재와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여섯 날과 일곱째 날의 관계를 또 다른 성경의 표상으로 보여 줍니다. 광야의 여정이 싸움과 시험이라면 법궤의 쉼은 그 싸움 뒤에 오는 평화입니다.

 

10:33에서 법궤가 그들의 곳을 찾기 위하여앞서 갔다는 표현도 이 때문에 인용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사람을 끝없는 싸움 속에 붙들어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식으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거듭남의 싸움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며, 그 목적은 주님 안에서의 평화입니다.

 

그러나 AC.85의 가장 깊은 설명은 [3]에서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사58:13-14를 인용하여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합니다. 이사야는 안식일에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천적 인간의 내적 상태로 읽습니다.

 

그는 천적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주님의 뜻이 그의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AC.85에서 안식의 가장 중요한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근원이 달라졌습니다. 자기 자신의 욕망과 자기중심적 뜻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주님의 뜻이 외부에서 강제로 부과되는 명령으로 남지 않고 그의 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81의 천적 인간의 자유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거기서 천적 인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결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며, 그의 보이지 않는 결박은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을 행하도록 외부에서 억지로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과 그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적 상태에서는 주님의 뜻이 자신의 뜻이 되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가장 깊은 기쁨이 됩니다. 이것이 강제와 안식의 차이입니다. 외부에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면 그것은 안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선을 사랑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자신도 원하게 되면, 순종과 자유가 하나가 됩니다.

 

여기서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간의 의지 자체가 제거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천적 인간이 의지가 없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의지가 주님의 선과 결합되어 새롭게 질서를 얻습니다. 본문도 주님의 뜻이 그의 이 된다고 말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뜻에서 주님과 결합된 뜻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점은 AC.79-80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AC.79에서 천적 인간은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리되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는다고 했고, AC.80에서는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알려 하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해 그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5에서는 행동과 의지에서도 같은 질서가 나타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뜻을 근원으로 삼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AC.79소유’, AC.80’, AC.85뜻과 행동은 서로 연결됩니다.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선과 진리의 근원으로 삼지 않으며, 자기 뜻을 궁극적인 삶의 기준으로 삼지도 않습니다. 그의 생명은 점점 더 주님으로부터 받는 질서 안에 놓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때 인간에게 평화와 행복이 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사58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을 내적인 평화와 행복으로,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을 외적인 평온과 기쁨으로 풀이합니다. 즉 주님의 뜻이 자신의 뜻이 되는 천적 상태에는 내적 평화와 외적 평온이 함께 따릅니다.

 

이것은 평화를 단순히 외부 환경에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로 이해하지 않게 합니다. 천적 인간의 평화는 먼저 내적인 것입니다. 자기 뜻과 주님의 뜻이 서로 충돌하고, 악과 선이 계속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상태가 그쳤기 때문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적 질서가 외적인 삶에도 평온과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천적 인간에게 자연계의 고난이나 불편, 질병이나 손실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AC.85가 말하는 안식과 평화는 우선 영적 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외적 형편이 언제나 평탄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적 생명이 주님의 질서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평화로운 것입니다.

 

AC.85를 이렇게 읽으면 안식일의 속뜻도 상당히 달라집니다. 안식일은 단지 일하지 않는 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표상합니다. 여섯 날 동안에는 싸움과 수고가 있지만 일곱째 날에는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안에서 주님의 뜻이 사람의 뜻이 됩니다. 그래서 싸움이 안식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안식일의 외적 준수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유대교회의 안식일 자체가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도록 제정되었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 표상이 가리키는 내적 실재입니다. 외적인 안식일은 인간이 주님 안에서 누리는 내적 안식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번 번호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는 데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안식은 인간 안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심리적 평온이 아닙니다. 주님이 안식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나라가 안식이며, 주님의 형상이 된 천적 인간도 안식일이 됩니다.

 

따라서 안식의 중심은 결국 주님입니다. 주님 없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과 AC.85의 안식은 같지 않습니다. 천적 인간의 평화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얻는 평온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뜻이 물러가고 주님의 선하신 뜻이 자신의 뜻이 됨으로써 오는 평화입니다.

 

이 점에서 AC.85는 안식과 자유의 관계를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일반적으로는 자기 뜻을 포기하면 자유를 잃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천적 질서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뜻과 악의 지배 아래 있을 때 인간은 실제로 종이지만, 주님의 선을 사랑하여 그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유와 평화를 누립니다.

 

AC.81에서 시작된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차이가 여기까지 오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죽은 사람은 외적인 결박에 의해 억제되고, 영적 인간은 양심의 결박 가운데 싸우며,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여 자유롭게 행합니다. AC.85는 그 천적 자유의 내면을 주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뜻이 되는 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번호의 안식은 단순히 싸움이 없다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사랑하고 그것을 자신의 뜻으로 기쁘게 행하는 적극적인 생명의 상태입니다. 싸움이 사라진 자리를 공백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채웁니다.

 

결국 AC.85의 흐름은 하나입니다.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입니다. 주님의 천적 교회도 안식일이며, 거듭난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도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이 됩니다. 그 안식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과 시험이 있지만, 마침내 주님의 뜻이 자신의 뜻이 될 때 내적인 평화와 행복,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립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는 말의 가장 깊은 의미는 달력의 일곱째 날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사람 안에서 거듭남의 일을 이루셔서, 사람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뜻을 중심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자신의 뜻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바로 그 상태가 안식이며, 그 사람에게 이루어진 주님의 안식일입니다. (AC.85)

 

 

 

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 -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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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모든 싸움이 그친 안식의 상태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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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5, ‘면류관 벗어서’, 찬69, ‘온 천하 만물 우러러입니다.

 

오늘은 2 첫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절로 3, AC 글 번호로는 82번에서 84번입니다만, 2 여는 글들 및 개요 글들 포함, 67번부터 다루겠습니다. 여기 여는 글들은 아래 71번 글을 참고하세요.

 

본문 함께 읽습니다.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1-3)

 

이 본문을

 

일곱째 날, 곧 천적 인간의 상태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AC.67, 창2, '말씀의 내적 의미(속뜻)를 알게 하시고, 알리게 하심'

AC.67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에게는 말씀의 내적 의미(the internal meaning of the Word, 속뜻)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내적 의미 안에는 이전에는 누구에게도 알려진 적이 없었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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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8, 창2,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 반응'

AC.68 저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은 이것이 모두 상상이라고 할 것이며,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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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9, 창2, '사람은 본래 영들,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AC.69 사람은 본래 주님에 의해 이렇게 창조되었습니다. 곧,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실제로 태곳적에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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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0, 창2, ‘소생’, 곧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으로 들어갈 때

AC.70 여러 해 동안 제가 듣고 보았던 것을 밝히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으므로, 여기에서는 먼저 사람이 ‘소생될 때’(when he is being resuscitated), 곧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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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1, 창2, 'AC 전개 방식'

AC.7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말씀 본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 사이에 그대로 끼워 넣게 되면, 그것들은 흩어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그것들을 각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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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2, 창2, '이런 방식을 이 장 끝에서부터 적용'

AC.72 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말해도 좋다는 허락을 저는 받았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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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3, 창2:1-17 개요,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1절)

창2:1-17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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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4, 창2:1-17 개요, '일곱째 날과 안식, 천적 인간'(2-3절)

AC.7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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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5, 창2:1-17 개요, '초목과 채소, 천적 인간의 내적 구조'(5-6절)

AC.75 그의 지식과 그의 이성(knowledge and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에 의해 적셔지는 땅에서 난 초목과 채소(the shrub and the herb)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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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6, 창2:1-17 개요, ‘생명의 숨, 천적 인간의 생명'(7절)

AC.76 그의 생명은 그에게 ‘생명의 숨’(the breath of lives)을 불어넣으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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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7, 창2:1-17 개요, '동방의 에덴동산, 천적 인간의 지성'(8-9절)

AC.77 그다음으로 그의 지성은 ‘동방의 에덴동산’으로 묘사됩니다. 그 안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들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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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8, 창2:1-17 개요, '네 강, 천적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10-14절)

AC.78 지혜(Wisdom)는 동산 가운데 있는 강을 의미합니다. 그로부터 네 강이 나뉘어 나오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good and truth)입니다. 둘째는 모든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knowledge [co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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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창2:1-17 개요, '경작하며 지킴, 천적 인간의 상태'(15절)

AC.79 천적 인간은 이러한 동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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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오직 퍼셉션으로만'(16-17절)

AC.80 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하고 참된지를 아는 지식 얻는 것은 허락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얻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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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천적 인간,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종 상태'

AC.81 이 장은 ‘천적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앞의 장은 ‘죽은 상태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 영적 인간이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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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2,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이제 영적 상태에 이르러(render) ‘여섯째 날’(the 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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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 ‘천지와 만물’(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지니라’(finished)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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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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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최근 개신교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 오랜만에 참 익숙하지만, 그러나 무척 낯설었던 시간을 가졌는데요, 참 익숙했던 건, 제가 개신교에서 50대 후반까지 머물렀었기 때문이고, 또 무척 낯설었던 건 예배와 설교 전반에 아르카나, 즉 ‘속의 언어’가 아닌, 세상 언어, 곧 ‘겉의 언어’가 많이 섞인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아르카나를 처음 접하던 초창기처럼 무슨 반감이 들거나 그러진 않았는데요, 스베덴보리가 죽는 날까지 자신의 배경인 루터교회를 출석했던 거나 주님이 안식일마다 유대교 회당을 찾으셨던 것처럼, 저 역시 전심으로 그 예배에 참여, 함께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웃고 즐거워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두 세계의 언어가 섞인 예배였지만, 속으로 실시간 통역을 하면서 ‘, 이걸 이렇게, 저걸 저렇게 표현한 거구나!’ 하면서 드렸습니다. 우리 안에 와있는 천사들 역시 우리의 일상 일거수일투족 중 그렇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아르카나 순도 8, 90%의 예배는 지상에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100%는 천국에서나 가능하겠지요. 어쩌면 주님이 훗날을 위해 미리 우리 교회를 통해 이것저것 테스트를 진행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과 ‘’은 같이 갑니다. ‘’은 ‘’이라는 그릇에 담기며, ‘’이라는 옷을 입고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동안 자연적 인간과 영적, 천적 인간 역시 같이 갑니다. 우리의 영적, 천적 인간은 겉으로 보기엔 ‘자연적 인간’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쉽진 않으시겠지만, 항상 이 ‘균형’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4-12(D1)

 

2646, 1, 창2.1, 2026-04-12(D1)-주일예배(창2,1-3, AC.67-84),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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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4/05, 창1:26-31, AC.51-66, 부활절),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 (3), 주님의 부활로 본 창1'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4, ‘왕 되신 주’,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161, ‘할렐루야 우리 예수’입니다. 오늘은 창1 일곱 번째, 창1 마지막 시간으로, 본문은 26절로 31절,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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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2:2, 3)

 

AC.84

천적 인간은 일곱째 (seventh day)입니다. 주님께서 여섯 동안 일하셨으므로 그것을 그분의 (his work)이라 하며, 그때 모든 싸움이 그치므로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rest from all his work) 합니다. 때문에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안식(rest)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불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씀 자체로부터 매우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해설

AC.84는 창2일곱째 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힙니다. 스베덴보리는 첫 문장에서 아주 간결하게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일곱째 날은 단순히 창조가 끝난 뒤 이어지는 시간상의 하루가 아니라, 속뜻에서는 거듭남을 통하여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3과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었을 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 됨 가운데 신앙이 아니라 사랑, 곧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AC.84는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천적 상태를 일곱째 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의 차이는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상태 차이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일을 사람의 일이라고 하지 않고 그분의 ’, 곧 주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부터 이어져 온 거듭남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악과 싸우며 실제로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사람 안에서 거듭남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여섯 날 동안의 모든 과정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이라고 불립니다.

 

이 점은 거듭남을 인간 자신의 영적 성취로 이해하지 않게 하는 데 중요합니다. 사람이 여섯 날을 자기 힘으로 통과하여 마침내 일곱째 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 안에서 일하시며 그를 죽은 상태에서 영적 인간으로, 그리고 천적 인간의 상태로 이끄십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자유롭게 주님의 역사에 응답하고 악과 싸우지만, 생명과 선과 진리의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이어지는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말은 AC.81과 직접 연결됩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만 언제나 승리한다고 했고,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을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4에서는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이유를 바로 이 싸움의 그침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안식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정적인 휴식이 아닙니다. 그 앞에는 여섯 날 동안의 주님의 일이 있고, 그 과정에는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적 상태에서는 그 싸움이 그칩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악과 거짓이 이전처럼 사람 안에서 서로 맞서는 싸움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도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말을 천적 인간에게 악과 거짓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81은 천적 인간도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다만 그는 그것들을 멸시합니다. 즉 악과 거짓이 접근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사람의 내면에서 선과 진리와 대등하게 다투며 그를 흔드는 상태가 더 이상 지배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안식을 인간처럼 일을 많이 하신 뒤 피곤하여 쉬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속뜻의 초점은 주님께서 피로를 회복하신다는 데 있지 않고, 사람 안에서 이루시던 거듭남의 싸움이 안식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쉬신다는 표현은 사실 인간에게 일어난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악과 거짓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주님께서 그를 거듭나게 하시는 일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 상태에 이르러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싸움이 그치면, 그 상태가 주님의 안식으로 묘사됩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의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고 안식일이라 불렸다고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안식일은 히브리어의 , 그침이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AC.84에서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 어원 자체보다 그것이 나타내는 영적 상태입니다. 안식일이 거룩한 것은 단순히 일하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이루신 거듭남의 일이 싸움을 지나 안식에 이른 천적 상태를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안식일의 거룩함도 외적인 휴식 규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외적인 안식일은 그보다 더 깊은 내적 실재를 표상합니다. 인간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려는 질서가 물러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이 주된 것이 될 때, 그 사람의 내면에 안식일이 의미하는 상태가 이루어집니다.

 

다만 여기서 싸움이 그쳤다는 것을 거듭난 사람이 현실에서 더 이상 어떤 갈등이나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AC.84가 말하는 combat은 일반적인 인생의 고난이나 심리적 갈등 전체가 아니라 거듭남의 문맥에서 악과 거짓에 맞서는 영적 싸움입니다. 따라서 일곱째 날을 이제 삶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상태로 이해하면 본문의 뜻을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천적 인간의 안식을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도달하여 확보하는 완전무결한 상태처럼 생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 번호에서 여섯 날의 일이 명시적으로 그분의 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인간이 자기 수행으로 획득한 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신 거듭남의 질서에서 오는 상태입니다.

 

AC.84의 마지막 문장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스베덴보리는 비슷해 보이는 세 동사를 나란히 사용합니다. 이번 번호 자체에서는 그 차이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각각에 확정적인 상응을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표현은 창1과 창2에서 다루어진 창조가 단순히 최초 인간의 육체적 제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의 문맥에서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1에서 죽어 있던 사람은 여섯 날을 거쳐 영적 인간으로 형성되었고, 2에서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천적 인간의 상태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인간의 참된 창조는 그의 내적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형성되는 것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문장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자연계의 하늘과 땅, 빛과 광명체, 식물과 동물, 사람의 창조를 말하는 문자적 서술 안에서 그는 인간의 거듭남이라는 속뜻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의 끝에서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AC.83AC.84를 함께 보면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 넘어가는 구조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여섯째 날에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일곱째 날에는 그 천적 질서가 이루어져 싸움이 그칩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이 바로 일곱째 이며, 그 상태가 주님의 안식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식이 거듭남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이 지향하는 상태라는 점입니다. 여섯 날 동안의 싸움과 변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영원히 싸움 속에서만 살도록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을 사랑하고 진리를 퍼셉션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자유와 기쁨이 되는 질서로 이끄십니다. AC.81에서 천적 인간의 결박이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한 것도 이와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수동성이 아니라 질서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악과 거짓의 강제와 저항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사랑과 자유에서 나오므로 그 자체가 기쁨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죽은 정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평화에 가깝습니다.

 

AC.84는 또한 주님의 주님의 안식이 모두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듭남과 관계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여섯 날 동안 주님께서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다는 말씀을 인간 밖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행동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그 일을 어떤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가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2에서 제시된 원리와도 잘 맞습니다. 거기서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고 했고, 하늘과 땅 역시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이제 안식일 역시 인간 밖의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천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말씀의 큰 표상들이 한 사람의 거듭남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AC.84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는 문장은 단순한 상응 하나를 알려 주는 문장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창1에서 시작된 거듭남의 운동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며,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마침내 싸움이 그쳐 주님의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영적 인간의 싸움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싸움은 안식에 이르는 과정이며,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언제나 승리한다고까지 표현되었습니다. 양심에 따라 악과 싸우는 영적 상태는 실패한 상태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거듭남의 실제적인 과정입니다. 일곱째 날의 안식은 그 여섯 날의 일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합니다.

 

결국 AC.84에서 안식일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로 깊어집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이며, 여섯 날 동안의 일은 주님의 이고,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쉬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스베덴보리는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인간의 거듭남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여섯 날의 일과 일곱째 날의 안식은 바로 그 창조의 질서를 묘사합니다. 천적 인간은 그 안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며, 그래서 그 자신이 일곱째 입니다. (AC.84)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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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될 때,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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