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에서 ‘religious belief’는 말씀의 내적 의미가 무엇을 다루는지를 설명하는 열거 가운데 등장합니다. 그 문장은, 겉 글자만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그 안에는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religious belief, 그리고 그와 연결된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religious belief’는 특정 교파의 교리나 기독교 내부 체계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동시에, 단순히 교회 밖 이교 신앙을 지칭하는 말도 아닙니다. 이 표현은 더 넓은 범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말하는 ‘religious belief’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신앙적 가르침과 믿음의 내용 전체’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신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신앙 세계 전반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있는 교리도 여기에 포함되고, 교회 밖이라 하더라도 신성을 인정하고 따르려는 종교적 신앙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핵심은 ‘주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왜 ‘church’와 ‘religious belief’를 나란히 두었는지도 자연스럽게 풀립니다.church는 역사적, 가시적 공동체를 가리키고,religious belief는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신앙의 내용과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범위는 교회 내부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 전체를 보면, 참된 신앙은 어디에서나 주님을 향할 수 있고, 신성을 인식하고 그 인도에 따르는 삶은 교회 밖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religious belief는 ‘교회 안의 교리 체계’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표현은 ‘faith’ 대신 ‘belief’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랑과 결합된 살아 있는 신앙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로서의 신앙 내용, 곧 ‘신앙의 세계’를 말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적 생명 상태라기보다, 신앙이 형성하는 사상과 가르침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것은 개인의 영적 상태를 분석하는 문맥이 아니라, 말씀의 내적 의미가 포괄하는 범위를 설명하는 총론적 문맥에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따라서AC.1에서 ‘religious belief’를 이해할 때는, 범위를 ‘이교 신앙’으로 좁히는 것도, ‘기독교 교리 체계’로 한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성과 인간을 연결하는 종교적 신앙 일반’, 곧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인도하는 신앙의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AC.1의 문장은 더욱 힘을 갖습니다. 겉으로는 유대교 의식과 역사처럼 보이는 말씀 안에, 실제로는 주님과 그분의 천국뿐 아니라, 인간이 신성과 맺는 모든 신앙적 관계의 구조가 담겨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단지 특정 종교 집단의 규례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신앙 세계 전체’를 담고 있는 신적 진리의 그릇이라는 선언입니다.
AC.45와AC.46을 읽다 보면 조금 혼란스러운 점이 있습니다.스베덴보리는‘짐승’이 인간의 애정을 뜻한다고 하면서 어떤 곳에서는 선한 애정을,다른 곳에서는 악한 애정을 뜻한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상응이라는 것은 하나의 자연물이 하나의 영적 의미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짐승=애정’이라면 선한 애정인지 악한 애정인지도 하나로 정해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은 상응을 처음 접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상응을 단순한‘영적암호표’처럼 생각하면‘물=진리’, ‘나무=지각’, ‘짐승=애정’처럼 하나의 단어 옆에 하나의 뜻을 적어 놓고 모든 성경 구절에 똑같이 대입하게 됩니다.그러나 실제로AC를 읽어 가면 상응은 그렇게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AC.46자체가 좋은 예입니다.첫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짐승이‘악한사람에게서는악한애정을,선한사람에게서는선한애정을’뜻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기본적인 연결은 유지됩니다.짐승은 인간의‘애정’과 관계됩니다.그러나 애정 자체에 선한 애정과 악한 애정이 있으므로,그것을 표현하는 짐승의 의미도 문맥과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자연계의 동물들도 모두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도움이 됩니다.AC.45에서 스베덴보리는 해를 끼치는 짐승과 해를 끼치지 않는 선하고 온순한 짐승을 구별했습니다.곰,늑대,개와 같은 동물을 악한 애정의 예로 들고,암송아지,양,어린양 같은 동물을 선하고 온순한 것의 예로 들었습니다.따라서‘동물’이라는 큰 범주가 애정과 상응한다고 해서 그 안의 모든 동물이 동일한 종류의 애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은 표현도 문맥의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AC.46에서 들짐승이 하나님과의 언약과 평화 속에 등장하는 구절들이 있는가 하면,겔34:25에서는‘악한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신다고 합니다.따라서‘들짐승’이라는 말을 발견하자마자 무조건 선이나 악 가운데 하나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어떤 상태를 다루는 말씀인지,그 짐승이 어떤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상응이 임의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오히려 기본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문맥에 따른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짐승과 애정 사이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그 애정의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선한 사람 안에서 주님을 향하고 이웃을 향하는 애정과,자기와 세상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악한 애정은 모두‘애정’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범주에 속하지만 그 질과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상응을 읽을 때‘이자연물의정확한정답은무엇인가?’라고만 묻기보다‘이자연물이인간의어떤영역과관계되며,지금이문맥에서는그영역이어떤상태에있는가?’라고 묻는 것이 더 좋습니다.짐승의 경우에는‘애정과관계된다’는 기본 관계를 먼저 붙들고,그다음 그 애정이 선한지 악한지,온순한지 해로운지,질서 안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문맥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앞으로AC를 읽을 때 매우 중요합니다.같은 자연물이 긍정적인 문맥과 부정적인 문맥에 모두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그때마다 스베덴보리가 마음대로 뜻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기본적인 상응 관계 안에서도 대상의 질과 상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또 하나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이 원리를 근거로 독자가 마음대로 문맥에 맞추어 의미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됩니다. ‘긍정적인구절이니까좋은뜻,부정적인구절이니까나쁜뜻’이라고 임의로 정하는 것도 상응의 해석은 아닙니다.스베덴보리는 말씀 전체에 반복되는 용례와 상응의 질서를 통해 이러한 의미를 설명합니다.따라서 우리가AC를 읽을 때에는 개별 상응 하나를 떼어 자유롭게 응용하기보다,그가 여러 구절을 서로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AC.46에 그토록 많은 성경 구절이 인용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하나의 구절만 보고‘짐승은애정을뜻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에스겔과 예레미야와 호세아와 시편과 이사야와 계시록 등 말씀 전체에서 짐승과 생물이 어떤 문맥에서 사용되는지를 함께 보여 줍니다.상응은 한 구절에 억지로 끼워 넣는 해석이 아니라 말씀 전체의 내적 연결 속에서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글 자체가 보여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같은짐승이어떻게선한애정도악한애정도뜻할수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짐승’과‘애정’이라는 기본적인 상응 관계는 유지되지만,인간의 애정 자체가 선하거나 악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짐승의 의미도 그 성질과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중요한 것은 단어 하나에 뜻 하나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그 상응이 말씀 전체의 문맥에서 어떤 상태와 질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AC의 상응 해석이 조금 덜 낯설어집니다.상응은 단순한 단어 사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내적 상태를 자연계의 형상들을 통해 표현하는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4, 25)
AC.46
‘짐승’(beasts)이사람의애정(affections)을뜻한다는사실,곧악한사람에게서는악한애정을,선한사람에게서는선한애정을뜻한다는사실은말씀의많은구절을보면분명한데요,에스겔입니다. 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이렇게여기서전반적으로‘용들’(whales),‘과수’(fruittree),‘짐승’(wildanimal),‘가축’(beast),‘기는것’(creepingthing),‘나는새’(fowl)가함께언급되는데,이것들이사람안의살아있는원리들을뜻하지않는다면,여호와를찬양하라는부름을받을수없었을것입니다. 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tree,” “wildanimal,” the “beast,” “creeping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 선지자들은‘가축’(beasts)과‘땅의짐승’(wildanimalsoftheearth),또‘가축’(beasts)과‘들의짐승’(wildanimalsofthefield)을조심스럽게구별합니다.그럼에도사람안의선한것들은‘가축’(beasts)이라합니다.마찬가지로,하늘에서주님과가장가까운이들도‘생물’(animals)이라하는데,에스겔서와요한계시록에서모두그렇게말합니다. 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animalsoftheearth,” and “beasts” and “wildanimalsofthefield.”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또한복음이전파되는이들도‘피조물’(creatures)이라하는데,이는그들이새롭게창조되어야하기때문입니다. 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주3. 여기이단어는‘비스트’(beasts, 짐승, 야수)가아닌, 흠정역(theauthorizedversion)에서처럼‘애니멀’(animals, 짐승, 동물)로정확하게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의‘준’(ζοόν, z¯oon)과, 라틴과영어의‘애니멀’은서로정확히대응하며, ‘생물’(alivingcreature)이라는의미에맞기때문입니다. 원전(theoriginal)해당구절들에서사용된단어는준이며, 만일‘비스트’ 사용을의도했다면썼을법한테르(θήρ, th¯er)나테리온(θηρίον, th¯erion)이아닙니다. This word is here correctly translated “animals” and not “beasts,” as in the authorized version, for z¯oon in Greek, and animal in Latin and English, precisely correspond to each other, and properly signify “alivingcreature.” Z¯oon is the word used in these passages in the original, and not th¯er or th¯erion, as would be the case if “beast” had been intended.
해설
AC.46은 바로 앞의 AC.45에서 제시한 중요한 원리, 곧 말씀에서 ‘짐승’이 인간의 애정을 뜻한다는 것을 수많은 성경 구절을 통해 확인하는 글입니다. 첫 문장부터 그 목적이 분명합니다. 짐승은 악한 사람에게서는 악한 애정을, 선한 사람에게서는 선한 애정을 뜻하며, 이것은 말씀의 많은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 성경 인용이 유난히 많은 이유도 새로운 주제를 계속 추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짐승=애정’이라는 해석이 창1:24-25에만 임의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 전체의 용례를 통해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겔36:9,11과 렘31:27-28은 ‘거듭남’이라는 문맥에서 인용됩니다. 겔36에서는 황폐했던 땅이 다시 갈리고 심어지며 그 위에 ‘사람과짐승’이 많아지고 번성합니다. 렘31에서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에 ‘사람의씨와짐승의씨’를 뿌리고, 이어서 세우고 심으시겠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들을 가져오는 핵심 이유는 문자 그대로 사람과 동물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거듭남에 관한 이 말씀의 속뜻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여기의 짐승이 사람 안에서 살아나는 내적인 것, 특히 애정과 관련된 것을 뜻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AC.46은 여기서 ‘사람의씨는정확히무엇이고짐승의씨는정확히무엇이다’라는 세부 대응까지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 이상을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욜2:22의 ‘들짐승들아두려워하지말지어다’도 같은 방향에서 사용됩니다. 들의 풀이 돋고 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회복의 장면에서 들짐승 역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반면 시73:22에서는 시편 기자가 자신의 우매함을 고백하며 ‘주앞에짐승’과 같았다고 합니다. 이 두 구절만 보아도 ‘짐승’이라는 말 자체에 언제나 선한 뜻이나 언제나 악한 뜻 하나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AC.46의 첫 문장이 이미 말했듯이 악한 사람에게서는 악한 애정을, 선한 사람에게서는 선한 애정을 뜻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호2:18, 욥5:22-23, 겔34:25에서는 ‘들짐승’이 언약과 평화라는 문맥에 등장합니다. 호세아에서는 들짐승과 새와 땅의 곤충과 언약을 맺고, 욥기에서는 들짐승이 사람과 화목하게 되며, 에스겔에서는 화평의 언약과 함께 ‘악한짐승’이 땅에서 그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들을 함께 제시하는 것은 말씀에서 짐승과 들짐승이 단순한 동물 이야기를 넘어 사람의 내적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겔34:25가 굳이 ‘악한짐승’이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짐승’이라는 말 자체가 곧 악이라는 뜻이라면 ‘악한’이라는 구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43:20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들짐승이 여호와를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광야에 물이 생기고 사막에 강이 생겨 하나님의 백성이 마시게 되는 장면에서 승냥이와 타조 같은 들짐승도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문자적 자연물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들이 사람 안의 살아 있는 원리들을 가리키기 때문에 말씀의 속뜻에서 인간의 내적 상태와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겔31:6에서는 앗수르가 큰 나무로 묘사되고 그 가지에는 새들이 깃들이며 그 아래에서는 들짐승들이 새끼를 낳습니다. AC.46은 여기서 앗수르가 ‘영적인간’을 뜻하고 에덴동산에 비유된다고 짧게 설명합니다. 이 구절 역시 새와 짐승이 단순히 배경을 꾸미는 자연물이 아니라 영적 인간에게 속한 것들을 표현하는 말씀의 언어로 사용된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됩니다. 다만 이번 글은 앗수르나 나무, 가지, 새 각각의 속뜻을 자세히 해설하려는 곳은 아닙니다. 인용의 목적은 계속 ‘짐승이인간안의살아있는것들을표현한다’는 중심 주장에 있습니다.
시148은 이 논증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천사들뿐 아니라 바다의 큰 생물들, 과수, 짐승, 가축, 기는 것과 나는 새까지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개역개정의 ‘용들’에 해당하는 부분을 스베덴보리가 인용한 영어에서는 ‘whales’라고 표현합니다. AC.46은 바로 이 점을 붙들어, 이러한 것들이 사람 안의 ‘살아있는원리들’을 뜻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이 이번 글에서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해석 원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그렇다면짐승은선한애정입니까,악한애정입니까?’ AC.46의 대답은 ‘문맥과그짐승의성질에따라다르다’입니다. 이것은 상응을 단순한 암기표처럼 사용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짐승=애정’이라는 기본 관계가 있다고 해서 모든 짐승이 동일한 애정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하고 온순한 동물과 해로운 동물이 다르고, 같은 ‘짐승’이라는 표현도 어떤 사람과 어떤 상태를 다루느냐에 따라 선한 애정 또는 악한 애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말씀의 상응을 읽는 데 계속 필요한 원리이므로 별도의 심화에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AC.46후반부에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구별이 나옵니다. 선지자들이 ‘가축’과 ‘땅의짐승’, 또는 ‘가축’과 ‘들의짐승’을 조심스럽게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차이가 실제로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 각각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풀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가축은질서잡힌높은애정이고들짐승은본능적인낮은애정’이라는 식으로 우리가 빈칸을 채우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AC.46이 확실하게 말하는 것은 사람 안의 ‘선한것들’도 짐승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매우 놀라운 예를 하나 더 듭니다. 주님께 가장 가까운 하늘의 존재들도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에서 ‘생물’이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계7:11과 계19:4의 ‘네생물’이 그 예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의할 것은 영어 단어입니다. 각주에서 스베덴보리는 이곳의 말이 ‘beasts’가 아니라 ‘animals’로 번역되는 것이 정확하다고 설명합니다. 헬라어 ζῷον(zōon)은‘살아있는생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대목의 요점은 천사들을 야수에 비유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존재’라는표현이 얼마나 높은 영적 문맥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본문에 덧붙여 놓은 AE.462의 설명, 곧 ‘모든천사’를 가장 낮은 천국, ‘장로들’을 중간 천국, ‘네생물’을 가장 높은 천국과 연결하는 설명은 AC.46자체의 직접 설명이 아니라 훗날 스베덴보리의 ‘계시록해설’에서 가져온 보충 자료입니다. 참고할 수는 있지만, AC.46의 논증 자체와 구별하여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글에서 직접 필요한 것은 ‘주님께가까운하늘의존재들조차생물이라고불린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막16:15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은 ‘너희는온천하에다니며만민에게복음을전파하라’고 번역하지만,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표현은 영어의 ‘everycreature’, 곧 ‘모든피조물’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해 받는 이들이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새롭게창조되어야하기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창세기 1장의 창조와 인간의 거듭남이라는 AC전체의 큰 주제가 다시 만납니다. 거듭남은 단순히 기존의 사람에게 종교 지식 몇 가지가 더해지는 일이 아니라 ‘새롭게창조되는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AC.46에 왜 이렇게 많은 성경 구절이 한꺼번에 등장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각각의 구절을 완전히 해설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요엘, 시편, 예레미야, 호세아, 욥기, 이사야, 요한계시록, 마가복음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말씀에서 ‘짐승’, ‘들짐승’, ‘생물’, ‘피조물’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인간의 내적 생명과 연결되는지를 한꺼번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인용 구절을 따로 떼어 열세 편의 해설로 읽기보다, 이 인용들이 함께 무엇을 증언하는지를 보는 것이 AC.46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합니다.
AC.45가 ‘짐승은인간의애정을뜻한다’는 원리를 소개했다면, AC.46은 말씀 전체를 펼쳐 그 원리가 고립된 해석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동시에 중요한 균형도 가르쳐 줍니다. 짐승이라고 해서 모두 악한 것도 아니고, 모두 선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애정에도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듯이 말씀의 짐승도 그 성질과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애정을 표현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짐승이라는단어를보았으니뜻은이것이다’라고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의 문맥 속에서 어떤 생명과 어떤 애정이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