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1, ‘다 찬양하여라와, 찬66, ‘다 감사드리세입니다.

 

오늘은 창1 네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9절로 13절, AC 글 번호로는 27번에서 29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9-13)

 

이 본문을

 

땅이 드러나고 씨 맺는 것들, 열매를 향한 셋째 날

 

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에 주목하여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AC.27, 창1:9,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in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창1:9) A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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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 창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10)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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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 창1:11-13,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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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창1 셋째 날, 곧 거듭남의 세 번째 상태를 마칩니다. 이 ‘셋째 날, 세 번째 상태’에 나온 중요한 표현, 개념들은 속 사람과 겉 사람 간 ‘유입과 저장의 질서’, ‘기억 지식’, ‘마른 땅’, ‘’, ‘바다’ 및 오늘 본문에 나오는 ‘’,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 그리고 ‘inanimate’, ‘living soul’, ‘repentance’ 등입니다. 이들 개념이 각 절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에 빠짐없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부디 거듭 읽고, 또 읽고 하여 확실히 이해, 안 보고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공지입니다. 어느덧 AC 리딩 및 해설 병행 주일예배 설교가 자릴 잡아가는 중인데요, 지난주부터이지만, 앞으로 ‘AC본문 번역-해설-심화’로 구성된 원고를 리딩하는 형태의 주일설교로 쭉 갈 것 같습니다. 해설에 심화까지 곁들이다 보니 이 정도면 그냥 읽기만 해도 정말 귀한 주일설교 한 편 한 편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일예배는 또 시간의 제한도 고려해야 해서 그 주 범위에 해당하는 모든 글을 다 다룰 수는 없고, 그래서 오늘처럼 맨 끝 AC 글 한 편만 리딩하고자 합니다. 다만 그 앞 범위 글들은 오늘처럼 모두 프린트해서 나눠드리고요. 프린트가 없어도 제 블로그에 글 번호별로 계속 올리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3-15(D1)

 

2642, 4. 창1.4, 2026-03-15(D1)-주일예배(창1,9-13, AC.27-29), ‘셋째 날, 세 번째 상태’.pdf
0.68MB

 

 

주일예배(2026/03/22, 창1:9-25, AC.30-45),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2, ‘만유의 주 앞에’와, 찬67,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입니다. 오늘은 창1 다섯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4절로 25절, AC 글 번호로는 30번에서 45번입니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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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3/08, 창1:6-8, AC.24-26), '둘째 날, 두 번째 상태'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0, ‘큰 영광 중에 계신 주’와, 찬65, ‘내 영혼아 찬양하라’입니다. 오늘은 창1 세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6절로 8절, AC 글 번호로는 24번에서 26번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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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bearing fruit after it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And the earth brought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fter its kind, an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was in itself,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1:11-13)

 

AC.29

(earth), 사람이 이렇게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 씨앗들을 받을 준비가 되고, 선과 진리에 속한 어떤 것을 산출할 있는 상태가 되면, 주님께서는 먼저 어떤 연약한 것이 돋아나게 하시는데, 이것을 연한 (tender herb)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유용한 것이 나오는데, 이것은 다시 안에 씨를 지니고 있어 맺는 채소(herb yielding seed)라고 합니다. 마침내 선한 어떤 것이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것을 가진 열매 맺는 나무(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라고 하며, 모든 것은 각기 자기 종류대로입니다. 거듭나는 중인 사람은 처음에는 자기가 행하는 선과 자기가 말하는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선과 모든 진리가 주님에게서 나오므로, 그것들이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참된 신앙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중에 생명을 받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그것들이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믿을 있는 상태가 아니며, 다만 신앙의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상태에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상태는 여기서 생명 없는(inanimate) 것들로 표상되고, 그다음에 오는 신앙의 생명 상태는 생명 있는(animate) 것들로 표상됩니다. When theearth,or man, has been thus prepared to receive celestial seeds from the Lord, and to produce something of what is good and true, then the Lord first causes some tender thing to spring forth, which is called thetender herb; then something more useful, which again bears seed in itself, and is called theherb yielding seed; and at length something good which becomes fruitful, and is called the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each according to its own kind. The man who is being regenerated is at first of such a quality that he supposes the good which he does, and the truth which he speaks, to be from himself, when in reality all good and all truth are from the Lord, so that whosoever supposes them to be from himself has not as yet the life of true faith, which nevertheless he may afterwards receive; for he cannot as yet believe that they are from the Lord, because he is only in a state of preparation for the reception of the life of faith. This state is here represented by things inanimate, and the succeeding one of the life of faith, by animate things.

 

[2] 씨를 뿌리는 이는 주님이시며, (seed) 그분의 말씀이고, (earth) 사람이라는 사실을 주님께서 친히 밝혀 주셨습니다. (13:19-24, 37-39; 4:14-21; 8:11-16) The Lord is he who sows, theseedis his Word, and theearthis man, as he himself has deigned to declare (Matt. 13:1924, 3739; Mark 4:1421; Luke 8:1116).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 어떤 것은 육십 ,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13:19-24, 37-39)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18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4:14-20)

 

11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11-15)

 

같은 뜻으로 주님께서는 이렇게도 설명하십니다. To the same purport he gives this description:

 

26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4:26-28) So is the kingdom of God, as a man when he casteth seed into the earth, and sleepeth and riseth night and day, and the seed groweth and riseth up, he knoweth not how; for the earth bringeth forth fruit of her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ear, after that the full corn in the ear (Mark 4:2628).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전체 천국을 뜻하고,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주님의 참된 교회를, 개별적인 의미에서는 참된 신앙에 속한 모든 사람, 신앙의 삶으로 거듭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천국(heaven)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천국이 사람 안에 있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친히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By thekingdom of God,in the universal sense, is meant the universal heaven; in a sense less universal, the true church of the Lord; and in a particular sense, everyone who is of true faith, or who is regenerate by a life of faith. Wherefore such a person is also calledheaven,because heaven is in him; and likewise thekingdom of God,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in him, as the Lord himself teaches in Luke: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0, 21) Being demanded of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should come, he answered them, and said,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neither shall they say, Lo here! or, Lo there!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Luke 17:2021).

 

이것이 사람의 거듭남에서 번째로 이어지는 단계이며, 그의 회개(repentance) 상태입니다. 상태 역시 그늘에서 빛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13절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것입니다. This is the third successive stage of the regeneration of man, being his state of repentance, and in like manner proceeding from shade to light, or from evening to morning; wherefore it is said (verse 13),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해설

AC.29에서는 셋째 날의 거듭남이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앞의 AC.27-28에서는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마른 땅이 드러나는 장면을 통하여,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겉 사람의 기억 속에 모이고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체가 준비되는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준비된 에서 처음으로 무엇인가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큰 나무와 풍성한 열매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연한 이 나오고, 다음으로 맺는 채소가 나오며, 마지막으로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나옵니다. 이것은 거듭남이 단번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를 점차 자라게 하시는 질서 있는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때 땅, 곧 사람이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씨앗의 근원입니다. 땅이 씨앗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기 안에서 선과 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셋째 날에 비로소 무엇인가 자라기 시작하지만, 그 생명의 근원은 땅 자체가 아니라 주님에게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은 연한 (tender herb)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께서 처음 돋아나게 하시는 어떤 연약한 이라고 표현합니다. 거듭남의 처음에는 선과 진리에 속한 것이 아직 매우 미약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조금 알게 되고 그것에 따라 살고자 하지만 이전의 습관과 자기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도 여전히 강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나타나는 변화는 연한 풀처럼 작고 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무엇인가가 주님에게서 오는 씨앗으로부터 사람 안에 돋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맺는 채소입니다. 여기서는 처음의 연약한 상태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유용한 이라고 표현하며, 그 안에 다시 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나옵니다. 이제 선한 것이 실제로 열매를 맺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따라서 이 세 표현은 주님께서 사람 안에 선과 진리에 속한 것을 처음 싹트게 하시고, 그것을 점차 자라게 하여 마침내 열매를 맺게 하시는 진행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이 모든 것이 각기 종류대로 이루어진다고 덧붙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1장에서 계속 반복되지만 AC.29은 여기서 종류의 세부적인 속뜻을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 그것을 선과 진리의 모든 질서, 영계의 분류, 선과 악의 분리 같은 넓은 교리 전체로 확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소한 AC.29의 문맥에서는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선과 진리에 속한 것들이 무질서한 혼합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자기 고유의 성질을 따라 산출된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더 넓은 의미는 이 표현이 이후 다시 나타날 때 함께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AC.29의 매우 중요한 반전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선과 진리에 속한 것이 싹트고 열매까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스베덴보리는 이 단계의 사람에게 아직 참된 신앙의 생명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기가 행하는 선과 자기가 말하는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모든 선과 모든 진리가 주님에게서 오지만, 이 단계의 사람은 아직 그것을 진정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완성된 영적 생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상태에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왜 식물들이 여기서 생명 없는 것들(inanimate things)로 표상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자연계의 식물이 문자 그대로 생명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구별하는 것은 거듭남의 상태입니다. 셋째 날에는 선과 진리에 속한 무엇인가가 사람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사람은 아직 그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참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다음 단계에서 등장하는 생명 있는 것들은 신앙의 생명을 실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나무까지 왔다고 해서 거듭남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셋째 날 전체는 여전히 다음 생명의 단계를 위한 준비입니다.

 

그렇다고 이때 사람이 행하는 선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바로 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사람을 이끌어 가십니다. 사람은 처음에는 내가 선을 행한다, 내가 진리를 말한다, 내가 악을 버린다고 느끼며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듭남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마치 자기 스스로 하는 것처럼 악과 싸우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다만 거듭남이 깊어질수록 그 선과 진리의 실제 근원과 능력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있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게 됩니다. AC.29의 셋째 날은 바로 그 인정에 이르기 전의 중요한 준비 단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어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씨 뿌리는 비유를 함께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 복음서에서 주님께서는 씨와 말씀, 뿌리는 자와 씨를 받는 땅, 그리고 결실을 서로 연결하여 설명하십니다.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직접 밝히고, 마가복음에서는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하며, 마태복음에서는 좋은 씨를 뿌리는 이를 인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창1의 씨와 땅을 거듭남의 말씀으로 읽는 것은 식물 이미지에 임의로 의미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사용하신 씨 뿌림의 언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의 차이도 같은 말씀이 사람에게 주어져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존하며 삶에서 결실하는가가 중요함을 보여 줍니다.

 

4:26-28의 비유는 이 성장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린 뒤 밤낮 자고 깨는 동안 씨는 자라지만 그는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됩니다. 1:11의 연한 풀,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와 각각을 일대일로 대응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AC.29에서 이 비유가 보여 주는 것은 주님의 나라가 씨 뿌림에서 시작하여 사람이 그 내적 진행을 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점차 결실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거듭남도 사람의 눈앞에서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생명이 점차 자라는 과정입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 범위로 설명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전체 천국이고, 덜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주님의 참된 교회이며, 개별적인 의미에서는 참된 신앙에 속한 사람, 곧 신앙의 삶으로 거듭난 각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단지 개인의 도덕적 개선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한 사람 안에 천국에 속한 질서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17:20-21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이 이 문맥에서 인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C.29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 외적 장소에만 두지 않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신앙의 삶으로 거듭나는 사람 안에서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이 셋째 단계를 회개(repentance) 상태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AC.29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여기서 회개를 단지 죄를 슬퍼하거나 잘못을 후회하는 감정으로만 이해해서는 부족합니다. 앞에서 기억 속에 받아들인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이제 실제 삶에서 무엇인가를 산출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따라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 사람은 그것이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 회개 역시 완성된 거듭남이 아니라 참된 신앙의 생명을 받기 위한 준비 상태입니다.

 

그래서 셋째 날에도 다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됩니다. 사람은 아직 그늘 속에 있지만 빛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으며,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던 선과 진리가 실제로는 주님에게서 온다는 더 깊은 인식을 향하여 인도받고 있습니다. 연한 풀에서 씨 맺는 채소로, 다시 열매 맺는 나무로 나아가는 성장도 바로 이 저녁에서 아침으로의 진행 안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완성된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현재 상태에서 시작하여 그가 받을 수 있는 만큼 선과 진리에 속한 것을 싹트게 하시고 점차 다음 단계로 이끄십니다.

 

AC.29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날의 사람은 아직 자기 선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참된 신앙의 생명에도 완전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 불완전한 상태를 버리지 않으시고 거듭남의 과정으로 사용하십니다. 사람에게서 겨우 연한 만 돋아나는 때에도 주님께서는 그 작은 시작을 다음 단계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성장의 근원은 땅인 사람에게 있지 않고 씨를 주시는 주님에게 있습니다. 결국 거듭남은 사람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자기 안에서 자라며 열매 맺도록 주님께 이끌리는 과정입니다. (AC.29 해설)

 

심화

1. 연한 , 맺는 채소, 가진 열매 맺는 나무 실제

 

AC.29 심화 1, ‘연한 풀,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의 실제 예

AC.29 심화1. ‘연한 풀,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의 실제 예 AC.29의 ‘연한 풀’(tender herb), ‘씨 맺는 채소’(herb yielding seed),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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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매를 맺는데도 아직 생명 없는 상태인가?

 

AC.29 심화 2, 열매를 맺는데도 왜 아직 ‘생명 없는’ 상태인가?

AC.29 심화2. 열매를 맺는데도 왜 아직 ‘생명 없는’ 상태인가? AC.29을 읽다 보면 조금 이상한 대목을 만나게 됩니다. 셋째 날에는 이미 땅에서 ‘연한 풀’이 돋고, ‘씨 맺는 채소’가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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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셋째 날을 회개의 상태라고 하는가?

 

AC.29 심화 3, 왜 셋째 날을 ‘회개의 상태’라고 하는가?

AC.29 심화3. 왜 셋째 날을 ‘회개의 상태’라고 하는가? AC.29의 문맥을 처음 읽으면 앞에서는 식물 이야기—‘풀’(tender herb), ‘씨 맺는 채소’(herb yielding seed), ‘열매 맺는 나무’(tree bearing fr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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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 창1:14-17(AC.30-37), ‘사랑과 신앙의 광명체 : 사랑으로 생명을 얻는 신앙의 넷째 날’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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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 창1:10, ‘물과 바다와 땅 : 지식이 모이고, 생명을 받아들일 거듭남의 그릇’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10)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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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10)

 

AC.28

말씀에서 (waters)로는 여러 지식(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 바다(seas)로는 많은 , 지식의 집합을 의미할 때가 많은데요, 이사야에 보면, It is a very common thing in the Word forwatersto signify 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 and consequently forseasto signify a collection of knowledges. As in Isaiah:

 

거룩한 모든 곳에서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1:9)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scientia] of Jehovah, as the waters cover the sea (Isa. 11:9).

 

이사야 다른 지식의 결핍이 다루어지는 곳을 보면, And in the same prophet, where a lack of knowledges [cognitionum et scientificorum] is treated of:

 

5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19:5, 6) The waters shall fail from the sea, and the river shall be dried up and become utterly dry, and the streams shall recede (Isa. 19:56).

 

학개에서 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In Haggai, speaking of a new church: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6, 7)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the dry [land]; and I will shake all nations; and the desire of all nations sha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Hag. 2:67).

 

거듭나는 중인 사람에 대해 스가랴서에서는 And concerning man in the process of regeneration, in Zechariah:

 

7여호와께서 아시는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14:7, 8) There shall be one day, it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but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and it shall be in that day that living waters shall go out from Jerusalem, part of them toward the eastern sea, and part of them toward the hinder sea (Zech. 14:78).

 

시편에도 보면, 황폐해졌다가 거듭나 주님을 경배하게 사람을 묘사하면서, David also, describing a vastated man who is to be regenerated and who will worship the Lord: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69:33, 34) Jehovah despiseth not his prisoners; let the heavens and the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 (Ps. 69:3334).

 

(earth) 그릇(recipient) 의미한다는 것이 스가랴를 보면 분명한데, That theearthsignifies a recipient, appears from Zechariah: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르시되 (12:1) Jehovah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 of the earth, and formeth the spirit of man in the midst of him (Zech. 12:1).

 

해설

AC.28은 앞의 AC.27에서 시작된 , 바다, 의 의미를 말씀의 여러 다른 구절을 통해 확증합니다. AC.27에서는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게 들어온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겉 사람의 기억에 들어가 기억 지식(scientifica)으로 머물며, 이렇게 모인 지식들이 바다를 이루고, 겉 사람 자체는 마른 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AC.28에서는 이것이 창1:9-10에만 적용되는 일회적인 풀이가 아니라, 말씀의 다른 곳에서도 반복하여 나타나는 의미임을 보여 줍니다. 은 여러 지식(cognitiones et scientifica), 바다는 그 많은 물, 곧 지식의 집합을, 은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수용체(recipient)를 의미합니다.

 

먼저 사11:9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는 말씀은 바다가 지식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 줍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것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충만함이 바로 물이 바다를 덮는 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창1:10의 모인 물과 바다를 지식들과 그 집합으로 읽는 것은 창세기의 한 구절에 임의로 붙인 상징 풀이가 아니라, 말씀의 다른 곳에서도 확인되는 언어의 연결이라는 것입니다.

 

이어 사19:5-6은 그 반대 상태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직접 지식의 결핍이 다루어지는 이라고 소개합니다.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라는 표현은 앞의 사11:9에서 물이 충만한 모습과 대조됩니다. 앞에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충만함이 물의 충만함으로 표현되었다면, 여기에서는 물이 없어지고 마르는 모습이 지식의 결핍을 나타냅니다. 이 두 구절을 함께 놓으면 AC.28에서 말하는 물과 지식의 관계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애굽, , 갈대와 부들의 세부 상응까지 모두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AC.28의 직접적인 목적은 물과 바다가 지식 및 그 집합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말씀의 용례로 확증하는 데 있습니다.

 

2:6-7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교회에 대해 말하면서라고 소개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이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AC.28은 여기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 각각의 속뜻을 세밀하게 풀이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 교회의 형성을 말하는 문맥에서도 창조의 언어인 하늘, , 바다, 육지가 함께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자연적 창조 언어가 말씀의 다른 곳에서는 교회의 영적 상태와 새로워짐을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예로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14:7-8에 이르면 스베덴보리는 더욱 분명하게 거듭나는 중인 사람에 대하여라고 말합니다. 어두워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라는 말씀에 이어,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물과 바다가 거듭남의 문맥 속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AC.28동해서해, 여름겨울의 세부적인 의미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 이상의 상응을 덧붙이기보다, 물과 바다가 단순한 자연물에 그치지 않고 거듭나는 사람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는 말씀의 언어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안전합니다.

 

69:33-34 역시 같은 점을 다른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황폐해졌다가 거듭나 주님을 경배하게 사람을 묘사하는 말씀이라고 직접 소개합니다.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라는 표현에서 하늘과 땅과 바다가 거듭난 사람의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여기에서도 바다 가운데 움직이는 모든 을 별도로 살아 있는 지식이라고 확정하거나, 찬송을 인간 존재 전체의 특정한 영적 상태로 세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AC.28에서의 직접적인 역할은 하늘과 땅과 바다라는 표현들이 인간의 거듭남과 주님을 경배하는 상태를 말할 때에도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 슥12:1은 앞의 인용들과는 조금 다른 역할을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들면서 이 수용체(recipient)를 의미한다는 것이 여기에서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라는 표현에서, AC.28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자리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앞의 AC.27에서 마른 땅, 곧 겉 사람이 드러난다는 설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다만 여기에서도 사람 안의 심령을 근거로 거듭남 전체의 세부 구조를 새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AC.28에서 필요한 만큼 말하면, 바다가 지식들의 집합이라면 은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지식을 의미한다고 해서 지식 자체가 곧 영적 생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이 수용체라고 해서 땅 자체가 생명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진다는 뜻도 아닙니다. 앞의 AC.27에서 보았듯이 자연적이든 영적이든 천적이든 겉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간 것들은 그곳에서 기억 지식으로 머물며, 나중에 주님에 의해 거기에서 불러내어집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기억에 모여 있다는 것과 그 지식이 실제 선한 삶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은 같은 단계가 아닙니다.

 

이 점은 바로 다음 창1:11-12AC.29로 이어질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물이 모여 바다가 되고 땅이 드러난 뒤에야 그 땅에서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AC.28은 아직 거듭남의 열매 자체를 설명하는 단계가 아니라, 그 열매가 나타날 수 있는 질서가 준비되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사람은 많은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것을 삶에서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억 속의 지식과 실제 생명의 열매를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AC.28의 핵심은 많이 아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다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물은 여러 지식이고, 바다는 그 지식들이 모인 집합이며, 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아직 다음 단계의 생명을 위한 준비와 질서에 속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상태에서 창1:10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합니다. 지식이 모이고, 바다가 형성되고, 땅이 드러남으로써 이제 다음 단계에서 생명이 싹트고 열매 맺을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AC.28 해설)

 

심화

1. 스베덴보리는 AC 초기부터 어떻게 여러 말씀의 속뜻을 있었을까?’

 

AC.28 심화 1, ‘스베덴보리는 AC 초기부터 어떻게 여러 말씀의 속뜻을 알 수 있었을까?’

AC.28 심화1. ‘스베덴보리는 AC 초기부터 어떻게 여러 말씀의 속뜻을 알 수 있었을까?’ AC.28을 처음 읽으면 한 가지 흥미로운 의문이 생깁니다. 이제 겨우 창1을 설명하는 AC.28인데, 스베덴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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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 창1:11-13, ‘연한 풀에서 열매 맺는 나무까지 : 회개 안에서 자라나는 거듭남의 셋째 날’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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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 창1:9, ‘물이 모이고 땅이 드러남 : 기억 속에 모인 진리와 겉 사람의 준비’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in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창1:9) A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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