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2:4)

 

AC.89

 

하늘과 땅의 내력(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은 천적 인간의 형성입니다. 여기서 그의 형성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어지는 모든 세부 사항으로부터 매우 분명한데요, 아직 풀이 자라지 않았다는 말과,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그러하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과, 그 뒤에 모든 짐승과 하늘의 새를 만드셨다고 한 말도 그러합니다. 이는 그들의 형성이 앞 장에서 이미 다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이 다루어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의 사실로부터 더욱 분명해집니다. 곧 이제 처음으로 주님의 호칭을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이라 하신다는 점입니다. 앞의 구절들, 즉 영적 인간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단지 하나님(God)으로만 부르셨지요. 또한 이제는 (ground)(field)이 언급되는데, 앞의 구절들에서는 오직 (earth)만 언급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절에서는 하늘(heaven)이 먼저 언급된 뒤에 (earth)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earth)이 먼저 나오고 하늘(heaven)이 뒤따릅니다. 그 이유는 (earth)이 겉 사람을, 하늘(heaven)이 속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영적 인간에게서는 개혁이 (earth), 곧 겉 사람에서 시작되지만,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천적 인간에게서는 속 사람, 하늘(heaven)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are 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 That his formation is here treated of is very evident from all the particulars which follow, as that no herb was as yet growing;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s well as that Jehovah God formed man, and afterwards, that he made every beast and bird of the heavens, notwithstanding that the formation of these had been treated of in the foregoing chapter; from all which it is manifest that another man is here treated of. This however is still more evident from the fact that now for the first time the Lord is called “Jehovah God,” whereas in the preceding passages, which treat of the spiritual man, he is called simply “God”; and, further, that now “ground” and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the preceding passages only “earth” is mentioned. In this verse also “heaven” is first mentioned before “earth,” and afterwards “earth” before “heaven”; the reason of which is that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and “heaven” the internal, and in the spiritual man reformation begins from “earth,” that is, from the external man, while in the celestial man, who is here treated of, it begins from the internal man, or from “heaven.”

 

 

해설

 

이 글은 창세기 2장이 어디에서 새롭게 시작되는지를 분명히 선언하는 전환점입니다. 창2:4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내력’이라는 표현은, 흔히 창조 기사 전체의 요약이나 반복으로 오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읽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력(nativities)은 시간적 족보가 아니라, ‘상태의 형성과 전개’를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내력’을 천적 인간의 형성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앞 장에서 다루어진 영적 인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 차이는 사소한 문장 배열이나 단어 선택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본문 전체의 구조 속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아직 풀이 자라지 않았고,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말은, 단순한 자연 상태의 묘사가 아니라, ‘새로운 형성이 아직 외적 단계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고, 그 뒤에 짐승과 새를 만드셨다고 다시 말하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는 앞 장에서 이미 다루어진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급되는 이유는, ‘같은 외적 형상이지만 전혀 다른 내적 상태’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어도, 그 안에서 언급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이 차이는 하나님의 이름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앞 장, 곧 영적 인간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주님이 단지 ‘하나님’으로만 불리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사용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 이름의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사랑과 존재의 근원을, ‘하나님’은 진리와 질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사랑과 진리가 하나로 결합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는 곧 천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과 ‘’이 함께 언급되는 점도 중요합니다. 앞 장에서는 오직 ‘’만 언급되었습니다. ‘’은 겉 사람을 뜻하지만, ‘’은 그 겉 사람 안에서 이미 경작과 수용이 가능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는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이미 속 사람의 질서에 의해 준비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또 하나의 섬세한 표지는 단어의 순서입니다. 이 절에서는 ‘하늘’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이 나옵니다. 그러나 곧이어 다시 ‘’이 먼저 나오고 ‘하늘’이 뒤따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순서의 변화마저도 의미 없는 반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것을 ‘형성의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개혁이 겉 사람에서 시작됩니다. 즉, 행동과 사고의 외적 질서가 먼저 정돈되고, 그 뒤에 속 사람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는 ‘’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에게서는 반대입니다. 형성은 속 사람, 곧 ‘하늘’에서 시작됩니다. 사랑과 퍼셉션이 먼저 주어지고, 그다음에 겉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질서를 따르게 됩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두 종류의 사람이 단지 성숙도의 차이가 아니라, ‘형성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은 외적 순종과 진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지만, 천적 인간은 속에서 주어진 생명과 사랑이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AC.89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앞 장의 연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 곧 천적 인간의 형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선언을 이해하지 못하면,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의 반복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창세기 2장은 반복이 아니라 ‘가장 깊은 차원의 인간 이야기’로 열립니다.

 

이 지점부터 창세기 2장은, 더 이상 질서가 세워지는 과정을 말하지 않고, ‘사랑에서 비롯된 생명이 어떻게 구체화되는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AC.89는 그 문을 여는 문장입니다.  

 

 

심화

 

1.주님의 호칭들

 

 

AC.89, 심화 1, ‘주님의 호칭들’

AC.89.심화 1. ‘주님의 호칭들’ 주님의 호칭들, 즉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주’, ‘구주’, ‘성령’, ‘아버지’,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인자’ 등에 대해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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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작용

 

 

AC.89, 심화 2, ‘작용’

AC.89.심화 2. ‘작용’ 위 설명 중, ‘스베덴보리에게 이 여러 호칭은 ‘서로 다른 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주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서로 다른 신적 측면, 작용, 나타나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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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작용의 영어 표현

 

 

AC.89, 심화 3, ‘작용’의 영어 표현

AC.89.심화 3. ‘작용’의 영어 표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위에서 설명드린 ‘작용’이라는 말은 특정 어떤 단어 하나를 직역한 것이라기보다, 스베덴보리의 여러 핵심 용어를 한국어로 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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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초목과 채소’, 겉 사람한테서 나오는 모든 것(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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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8, 창2:2-3, ‘안식’, 정체성의 변화, '하나님의 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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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그는 하나님의 (work of God)이라 불립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의 일을 마치셨다(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하며, 번이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 합니다. 선지서들에서도 사람은 거듭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하신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불립니다. 거듭난 사람에 관하여 말하는 이사야의 다음 말씀과 같습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아들들과 손으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일을 옛부터 듣게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냐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로부터 새로운 창조,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 형성하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은 위의 구절,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형성하시며, 그것을 만드신다(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 말씀에서뿐 아니라 같은 선지서의 다른 곳에서도 서로 뚜렷이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다음 말씀과 같습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The expressions tocreate,toform,and tomake,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내가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또한 장과 창세기 2장에서도 그러합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말씀, 하나님이 만드시면서 창조하신 그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구절에서도 그러합니다. 속뜻에서는 이러한 용법이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합니다. 주님께서 창조자(creator), 형성자(former), 또는 만드신 (maker)라고 불리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해설

AC.88은 앞의 여러 번호에서 계속되어 온 주님의 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분명하게 결론짓습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듭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완성한 작품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신 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7과 직접 연결됩니다. 거기서 스베덴보리는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끝났을 때 사람이 쉬었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쉬셨다고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AC.88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싸움뿐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는전체 과정 역시 주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창2에서 하나님이 그의 일을 마치셨다’, ‘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창조 이야기의 속뜻에서 하나님의 은 단순히 자연계의 우주와 생물을 제작하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인간을 죽은 상태에서 영적 인간으로, 그리고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새로운 창조가 주님의 일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명시적으로 새로운 창조,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창1-2를 거듭남의 이야기로 읽는 것은 우리가 창세기 본문 위에 나중의 교리를 임의로 덧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AC.88에서 스베덴보리 자신이 창조의 속뜻을 새로운 창조, 거듭남이라고 직접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새로운 창조가 주님 홀로 하시는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AC.88의 중심 명제입니다. 인간은 거듭남 가운데 실제로 진리를 배우고, 악을 거절하고, 시험 가운데 싸우며, 선택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생명과 능력을 주시고 선과 진리를 결합시키며 인간을 새롭게 만드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주님 홀로라는 표현을 인간의 자유와 협력을 제거하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인간은 실제로 싸움 가운데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다만 그 싸움의 힘과 승리, 그리고 거듭남 자체의 근원을 인간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주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응답하지만 자기 자신을 거듭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영적 공로를 근본적으로 배제합니다. 사람이 오랜 시험을 견디고 악을 피하며 선한 삶을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인간 자신이 바로 주님께서 만드신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사실을 선지서의 표현으로 확증합니다. 사람은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하신 이라고 반복하여 불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손이나 손가락의 형상이 아니라, 사람이 여호와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말씀의 반복적인 증언입니다.

 

그 예로 사45를 인용합니다. 그곳에서는 땅을 만들고 사람을 창조하며 하늘을 펴신 분이 여호와이심이 선언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거듭난 사람에 관한 것으로 읽습니다. 따라서 ’, ‘사람’, ‘하늘의 창조는 속뜻에서 새로운 인간이 이루어지는 거듭남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AC.82하늘 = 사람, = 사람이라는 설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는 말씀은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창조의 언어가 곧 거듭남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AC.88에는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세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세 말이 아무 차이 없이 반복되는 동의어가 아니라 서로 뚜렷이 구별되어사용된다고 말합니다.

 

이 점은 앞의 AC.84에서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거기서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각각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에는 세 표현에 미리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안전했습니다. 이제 AC.88에서 스베덴보리는 적어도 한 가지를 확실히 말합니다. 세 표현은 속뜻에서 각각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AC.88은 세 표현이 서로 구별된다고 말하지만, 이 번호 자체에서는 창조하다는 정확히 이것, ‘형성하다는 정확히 저것, ‘만들다는 정확히 또 다른 무엇이라고 각각의 의미를 완전히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번 번호에서 임의로 세 단계의 거듭남 체계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창조 = 사람, 형성 = 이성, 만듦 = 사람처럼 대응시키거나, ‘창조 = 신앙, 형성 = 체어리티, 만듦 = 행위처럼 세 가지를 확정하는 것은 AC.88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갑니다. 현재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 세 표현을 의도적으로 구별하며, 속뜻에서 각각 서로 다른 관념을 전달한다고 본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보여 주기 위해 그는 사43:7도 인용합니다. 그곳에서도 내가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 ‘내가 형성한 ’, ‘내가 만든 라는 세 표현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런 반복은 단순한 히브리 시의 문체적 변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말씀의 속뜻에서는 각각의 표현에 구별되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원리가 창세기에도 적용된다고 합니다. 1과 창2에서도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가 구별되어 사용되며, 2하나님이 만드시면서 창조하신 그의 모든 이라는 표현 역시 그러합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비슷한 단어가 반복된다고 해서 곧바로 완전한 동의어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독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님께서 창조자’, ‘형성자’, ‘만드신 라고 불리실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즉 구별되는 것은 동사만이 아닙니다. 그 동사에서 파생된 주님의 호칭 역시 각각 속뜻에서 구별되는 관념을 담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영감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이해와도 관계됩니다. 말씀의 표현은 우연히 선택된 것이 아니며, 특히 속뜻에서는 단어의 선택과 반복에도 질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표현도 왜 이 단어가 여기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리를 적용할 때에도 지나친 어휘 해부는 경계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구별한다고 밝힌 곳에서는 그 차이를 존중해야 하지만, 우리가 모든 성경의 유사어에 임의로 서로 다른 상응을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AC.88의 경우에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세 표현이 quite distinctively’, 곧 뚜렷이 구별되어 사용된다고 명시하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 세 표현보다 이번 번호에서 더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모든 동사의 주어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창조하시는 분도 주님이고, 형성하시는 분도 주님이며, 만드시는 분도 주님입니다. 세 동사의 차이를 아무리 정교하게 분석하더라도 이 중심을 놓치면 AC.88의 논지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결론은 새로운 창조,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입니다. 이 문장은 창1-2의 지금까지의 흐름을 압축합니다. 빛이 생기고, 물과 땅이 나뉘고, 식물이 자라고, 광명체가 나타나고, 생물이 생기며, 마침내 사람이 창조되는 모든 과정은 속뜻에서 주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거듭남의 질서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 넘어갈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도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AC.87에서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AC.88에서 주님께서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의 입니다.

 

이 관점에서 안식도 다시 이해됩니다. 주님께서 쉬신다는 것은 창조주께서 피곤해지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수행하신 새로운 창조의 일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의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의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고 표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AC.88에서 하나님의 하나님의 안식은 서로 떨어진 두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거듭남이 완성되어 안식에 이르는 것이 곧 주님의 일이 마쳐지고 주님께서 쉬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중요한 변화를 줍니다. 거듭남이 주님의 일이라면 사람이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선을 자기 소유나 공로로 돌릴 이유가 없습니다. 동시에 자기 안의 변화가 더디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절망에 빠질 이유도 없습니다. 거듭남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일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악을 피하며 협력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AC.88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무행동이 아니라 거듭남의 생명과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AC.88은 그래서 창조와 거듭남을 연결하는 매우 좋은 기준 번호입니다. ‘창조라는 말을 볼 때 우리는 자연계의 최초 창조만 생각하기 쉽지만,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창조, 거듭남이라고 직접 말합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시는 일은 인간 안에서 계속되는 신적 역사입니다.

 

결국 AC.88의 핵심은 매우 분명합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입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주님께서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말씀에서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표현이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은 그 주님의 거듭남의 역사 안에 우리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서로 구별되는 아르카나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AC.88)

 

 

 

AC.87, 창2:2-3, '싸움은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하신 것이므로, 천적 인간에게서 안식이 시작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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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7

천적 인간이 안식일(sabbath) 또는 안식(rest) 하나의 이유는, 그가 천적 인간이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옵니다. 이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없으므로 멀리 달아납니다. 그리고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하신 것이므로, 주님께서 쉬셨다(rested) 합니다. Another reason why the celestial man is the sabbath, or rest, is that combat ceases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 evil spirits retire, and good ones approach, as well as celestial angels; and when these are present, evil spirits cannot possibly remain, but flee far away. And since it was not the man himself who carried on the combat, but the Lord alone for the man, it is said that the Lord rested.

 

해설

AC.87은 왜 천적 인간이 안식일이며 안식인지를 또 하나의 각도에서 설명합니다. 앞의 AC.84에서는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쉬신다고 했고, AC.85에서는 안식이 주님의 뜻이 사람의 뜻이 되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AC.87에서는 그 싸움이 실제로 어떻게 그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싸움을 수행해 왔는지를 밝힙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천적 인간이 될 때 싸움이 그친다고 합니다. 이 말은 AC.81과 다시 연결됩니다. 거기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고,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을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AC.87은 그 차이의 배후에 있는 영계의 질서를 설명합니다.

 

천적 상태에 이르면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수 없으므로 멀리 달아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싸움이 그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더 강한 의지력을 가지게 되어 악을 억누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둘러싼 영적 환경과 결합의 질서 자체가 달라졌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인간의 영적 상태를 영들과 천사들의 가까움과 멀어짐으로 설명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인간의 선과 악은 완전히 고립된 내면 현상으로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영계와의 결합 속에서 살며, 그의 지배적인 사랑과 상태에 따라 어떤 영적 사회와 연결되는지가 달라집니다. AC.87은 바로 그 질서를 짧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번 번호의 핵심은 단순히 악한 영은 떠나고 선한 영과 천사가 가까이 온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더 중요합니다.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하신 것이다.이 문장이 있어야 주님께서 쉬셨다는 말의 의미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거듭남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매우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인간은 싸움 가운데 실제로 고통을 느끼고 선택하며 악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을 가능하게 하고 악에 맞서 선과 진리를 보존하며 승리를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여섯 날의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사람이 쉬었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인간의 자유와 주님의 역사 사이를 균형 있게 이해하게 합니다. ‘주님 홀로 싸우셨다고 해서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인간이 실제로 싸움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 힘과 승리의 근원이 인간 자신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악과 거짓을 거절해야 하지만, 그 싸움의 능력과 선한 결과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AC.87은 거듭남을 자기 수련이나 도덕적 자기극복으로 보는 관점을 분명히 교정합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힘으로 수많은 악한 영들을 쫓아낸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그 사람 안의 질서를 바꾸시고, 악한 영들이 머물 수 없는 상태로 이끄신 결과 싸움이 그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없다는 표현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천적 인간에게 더 이상 어떤 유혹이나 공격도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확대하면 AC.81과 긴장이 생깁니다. AC.81은 천적 인간도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공격이 이전처럼 지속적인 내적 싸움의 상태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영들이 가까이 머물며 사람을 계속 붙드는 상태는 끝나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의 가까움이 지배적인 질서가 됩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의 접근은 일시적 공격일 수는 있어도 그 사람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AC.85에서 말한 주님의 뜻이 그의 뜻이 된다는 설명과도 잘 연결됩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삶의 중심으로 삼을수록 악한 영들이 그와 결합할 조건이 많지만, 주님의 선을 사랑하고 그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천적 상태에서는 그 결합의 질서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싸움이 자연스럽게 그치게 됩니다.

 

AC.87의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안식을 단순한 심리적 평온이 아니라 영적 질서의 결과로 설명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서 안식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싸움을 끝내시고 악한 영들이 물러가며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는 질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안식입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평화는 자기최면이나 감정 조절로 만들어 낸 평온과 다릅니다. 그 평화는 주님께서 이루신 거듭남의 결과이며, 영적 결합의 질서가 바뀐 데서 오는 안식입니다.

 

이번 번호에서 천적 천사들이 따로 언급되는 것도 눈에 띕니다. 선한 영들뿐 아니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는 천적 인간의 상태가 단지 악이 약해진 상태가 아니라 더 높은 천적 질서와의 결합이 이루어진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AC.87 자체는 천적 천사들의 성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더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AC.84-87을 함께 보면 안식의 의미가 점점 풍성해집니다. AC.84에서는 싸움이 그쳐 주님께서 쉬신다고 했고, AC.85에서는 그 안식이 주님의 뜻이 사람의 뜻이 되는 평화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AC.86에서는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를 안식일의 저녁이라고 했고, 이제 AC.87에서는 그 싸움이 그치는 영적 배경과 주체를 설명합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 전체를 거듭남으로 읽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주님께서 쉬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육체적으로 피곤하여 일을 멈추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하여 수행하시던 거듭남의 싸움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싸움의 주체가 애초부터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싸움이 인간 자신의 일이었다면 그 싸움이 끝났을 때 인간이 쉬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홀로 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일이 끝났을 때 주님께서 쉬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는 매우 중요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거듭남의 과정에서 많은 싸움을 겪고 악을 이겼다고 해도, 그 승리를 자기 능력이나 자기 의의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싸움의 힘과 승리의 근원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악을 악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실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강제로 그를 거듭나게 하시는 방식은 아닙니다. AC.87은 자유를 없애는 말이 아니라 승리의 근원을 밝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주님 홀로 싸우신다는 표현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수동주의와도 다릅니다. 인간은 마치 자기 힘으로 싸우는 것처럼 실제로 싸워야 하지만, 그 힘이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그 후자의 진실, 곧 실제 근원은 주님이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이 점에서 AC.87proprium의 문제와도 조심스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싸움과 승리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 하면 거듭남마저 자기 공로가 됩니다. 그러나 싸움은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하시는 것이며, 인간은 그 주님의 역사에 응답하는 존재입니다. 이 질서가 유지될 때 안식도 자기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선물이 됩니다.

 

AC.87은 짧지만 싸움과 안식’, ‘인간의 자유와 주님의 역사’, ‘영들과 천사들의 결합’, ‘거듭남의 주체가 한 문단 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번호를 단순히 악한 영들이 떠난다는 흥미로운 영계 묘사로만 읽으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결국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이유는 그가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싸울 필요가 없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수행하시던 싸움이 그 사람 안에서 안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며, 그 질서 안에서 싸움은 그칩니다.

 

그러므로 AC.87의 마지막 주님께서 쉬셨다는 말은 거듭남 전체를 주님의 일로 돌리는 고백입니다. 사람은 싸움을 경험하지만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사람은 승리를 경험하지만 승리를 이루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일이 천적 상태에 이르면 싸움이 그치고 안식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천적 인간이 안식일이며 안식인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AC.87)

 

 

 

AC.88, 창2:2-3,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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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 -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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