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5)
AC.23
말씀에서 ‘날’(day)이 시간 자체를 뜻하는 용례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day” to be used to denote time itself. As in Isaiah:
6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22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사13:6, 9, 13, 22) The day of Jehovah is at hand. Behold, the day of Jehovah cometh.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her place in the day of the wrath of mine anger. Her time is near to come, and her days shall not be prolonged (Isa. 13:6, 9, 13, 22).
7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 15그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사23:7, 15) Her antiquity is of ancient days.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yre shall be forgotten seventy years, according to the days of one king (Isa. 23:7, 15).
‘날’(day)이 시간을 뜻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또한 그 시간의 상태를 뜻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예레미야에 보면, As “day” is used to denote time, it is also used to denote the state of that time, as in Jeremiah: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are stretched out (Jer. 6:4).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렘33:20, 25) If ye shall make vain my covenant of the day, and my covenant of the night, so that there be not day and night in their season (Jer. 33:20, also 25).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해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날’(day)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해석 원리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그가 처음부터 ‘날은 곧 상태다’라고 단순하게 등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에서 ‘날’이 문자적인 하루를 넘어 ‘시간 자체’를 나타내는 용례가 매우 흔하다고 설명하고, 이어서 날이 시간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 시간의 상태’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AC.23의 논리는 ‘날은 하루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날 → 시간 → 그 시간에 속한 상태’로 깊어지는 구조입니다.
첫 번째 증거군은 사13:6, 9, 13, 22와 사23:7, 15입니다. 사13장에는 ‘여호와의 날’,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는 표현들이 이어지며, 특히 마지막에는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고 하여 ‘때’와 ‘날들’이 나란히 사용됩니다. 여기서 ‘날’은 단순한 24시간 하나를 가리키는 말로 제한되지 않고 어떤 사건과 상태가 펼쳐지는 때를 나타냅니다. 사23장에서도 ‘옛날’, ‘그날’,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이라는 시간 표현들이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두로, 왕, 칠십이라는 각각의 상응을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서 ‘날’이라는 말이 하루보다 넓은 시간과 시대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AC.23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날’이 시간을 나타내므로 또한 ‘그 시간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용되는 첫 구절이 렘6:4의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입니다.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실제 하루가 저물어 가는 모습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때의 상황과 상태를 함께 담아냅니다. 바로 앞 AC.22에서 ‘저녁’과 ‘아침’이 각각 영적 상태를 나타낸다고 설명한 것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따라서 시간의 표현은 말씀 안에서 그 시간에 속한 상태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렘33:20, 25의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 그리고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라는 표현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도 낮과 밤은 실제 자연의 시간 질서를 배경으로 하지만, 스베덴보리가 AC.23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목적은 낮과 밤에 ‘그 때’가 있으며 시간의 표현이 그에 속한 상태와 결부되어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 단락에서 곧바로 낮과 밤을 시험과 회복의 모든 교대에 일대일로 대응시키거나, 거듭남의 모든 과정에 대한 별도의 섭리 법칙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주제들은 해당 내용을 직접 다루는 다른 AC 문맥에서 살피는 편이 안전합니다.
애5:21의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는 ‘날’과 ‘상태’의 관계를 특히 이해하기 쉽게 보여 줍니다. 지나간 달력의 날짜 자체를 다시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날들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그 날들에 속했던 삶과 상태가 새로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더구나 바로 앞에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라는 기도가 놓여 있으므로, 여기서 새롭게 되기를 구하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회귀가 아니라 주님께로 돌이켜지는 삶의 회복과 연결됩니다. 다만 AC.23은 여기서 ‘옛적’을 곧바로 태고교회라고 해설하지 않으므로, 이 구절의 직접적인 역할도 ‘날들이 그 날들에 속한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보면 AC.23이 왜 AC.22 바로 뒤에 놓이는지도 분명해집니다. AC.22에서는 ‘저녁’과 ‘아침’이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내며, 사람 자신의 것에 속한 상태에서 주님께 속한 상태로 나아가는 질서가 설명되었습니다. 이제 AC.23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창1에서 반복되는 ‘날’ 자체가 단순한 시간 단위에 머물지 않고 그 시간에 속한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말씀 전체의 용례를 제시합니다. 따라서 창1의 ‘첫째 날’, ‘둘째 날’과 이어지는 날들을 거듭남의 연속적인 상태들로 읽는 것은 ‘날’이라는 단어에 임의로 새로운 뜻을 붙인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시간과 상태가 결부되어 표현되는 방식을 따라 읽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AC.23을 근거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날’을 언제나 기계적으로 ‘영적 상태’라고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곳에서는 실제 하루가 중심일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더 넓은 시간이나 시대가 중심일 수 있으며, 또 어떤 곳에서는 그 시간에 속한 상태가 함께 표현됩니다. 중요한 것은 문맥입니다. AC.23이 보여 주는 것은 ‘날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상태만을 뜻한다’는 상응 사전식 공식이 아니라, 말씀에서 시간의 표현이 그 시간에 속한 상태를 함께 담을 수 있다는 해석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창세기 1장의 전체 구조와 만날 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AC.6에서 스베덴보리는 창1의 여섯 날을 인간 거듭남의 여섯 연속적인 상태라고 이미 제시했습니다. AC.23은 이제 여러 선지서의 용례를 통해 ‘날’이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읽기를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창1의 날들은 단순히 시계로 계산되는 여섯 개의 시간 단위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차례로 새롭게 하시는 거듭남의 상태들로 읽힙니다.
결국 AC.23의 핵심은 ‘시간을 버리고 상태만 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에서는 시간과 상태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간의 이름이 그 시간에 속한 영적 상태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1의 ‘날’을 읽을 때도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가?’라는 질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날은 거듭나는 사람의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가?’라고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AC.23이 창조의 날들을 거듭남의 날들로 읽도록 열어 주는 중요한 해석 원리입니다. (AC.23 해설)
AC.24, 창1:6-7(AC.24-25), ‘궁창의 구별 : 속 사람과 겉 사람이 구별되기 시작하는 때’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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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 창1:5(AC.22-23), ‘저녁에서 아침으로 : 사람의 것에서 주님의 것으로 나아가는 첫 날의 질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창1:5) AC.22이제 ‘저녁’(evening)이 무엇을 뜻하고, ‘아침’(morning)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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